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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백년의 악몽

2011.01.28 23:2701.28





pilza2.compilza2@gmail.com
  1. 바다와 꿈

  게렝델 가족의 아이들은 매일 밤 저마다 똑같은 내용의 악몽을 꾼다. 늘 고통 속에서 잠을 깨면서도 서로의 공공연한 비밀을 부모에게만은 숨기려 한다. 그런데 이 꿈은 그냥 꿈이라고 여기고 넘어가기엔 너무나 신기하고 불가사의하다. 같은 꿈이 매일 반복되는 것은 물론이고 잠에서 깨면 몸에서 바다의 냄새가 생생하게 남는 등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악몽의 정체를 알아낸다면 반복을 멈추거나 해결할 방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둘째 뤼네르가 행동에 나선다. 그의 꿈은 어느 범선에 올라타서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선원의 모습을 목격하고 공포로 가득한 채로 깨어나며 중단되었는데, 이때 대화 중에 들렸던 '모르방'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고 이를 실마리 삼아 악몽의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마침내 그가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꿈에서 겪었던 일이 과거에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것.

  점차 밝혀진 내막에 의하면 이들 게렝델 집안 아이들을 덮친 악몽은 어머니 에노가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바다를 병적으로 기피하며 도피하려 했던 에노가. 그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으며 아이들의 꿈과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걸까. 그것을 모두 알아낸 가족들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 퓨젤리(John Henry Fuseli)의 1781년작, The Nightmare. 악몽에 사로잡힌 여자의 가슴 위에 몽마가 앉아 있다.

  2. 바다와 기억

  본작은 출판사 홍보 때문에 서점에서도 미스터리로 분류되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직접 읽어보면 환상소설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 것이다. 악몽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추리나 복선, 트릭과 반전 같은 추리물의 요소는 거의 없다. 대신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가 흘러들어와 서로에게 실제적인 영향을 끼치는 구성과 내용 및 묘사는 남미의 매직 리얼리즘을 연상시키며 내용적으로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에 가깝다.

  아이들이 조상들에게 일어난 일, 혈통에 얽힌 과거의 비극을 알아내고 이를 이겨내어 미래로 향한다는 기본 얼개는 분명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상당한 찬사를 바치고 있는 역자 후기에서도 본작을 판타지나 미스터리보다는 성장소설로 읽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데, 이러한 요소는 어머니와 아이들의 대비를 통해 두드러진다.

  뱃사람의 후예인 어머니 에노가는 선조들로부터 슬프고 고통스러운 기억만을 물려받았다. 그로 인하여 바다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느낀 어머니는 바다로부터 도피하기에만 급급하며 살아왔다. 반면 악몽이라는 형태로 그런 과거의 고통을 이어받았으면서도 이를 수용하고 극복해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선명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뚜렷하고 강력한 이미지는 바로 바다이다. 평생에 거쳐 도피했던 에노가의 바다, 나고 자라며 한 번도 보고 겪지 못했음에도 꿈에서 생생하게 체험했던 아이들의 바다,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간 재앙과 죽음 그 자체인 아르델리아의 바다, 희망이며 고난이며 삶 그 자체였던 아벨과 카르덱의 바다……. 바다는 그들 전부의 탄생과 삶, 죽음을 모두 품은 세계 자체인 것이다.

"넌 바다의 어두운 얼굴만을 알고 있지. 하지만 우리가 길들일 수 없는 그 야성의 물, 죽음이자 생명인 그 거친 물은 바로 우리의 일부분이란다. 우리는 물로 이루어져 있어. 그리고 네 안에도 뱃사람들의 피가 흐르고 있고, 또 그들이 유산으로 남긴 대양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도 네 몸 어딘가에 숨어 있단다. 난 그걸 느낄 수 있어."
(본문 중에서)

  인용한 문구는 본작의 주제랄까 핵심을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바다는 물이요, 물은 피 속을 흐르고 있고, 피는 곧 혈통을 뜻하니, 바다는 그들의 생명의 근원이며 흐름인 셈이다. 혈통에 새겨진 기억의 유전이 꿈이 되어 나타난 셈이라고 할까. 따라서 어머니와 같이 도피만 해서는 바다의 저주를 떨쳐낼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뱃사람의 후손임을 자각하고 바다를 직시한 후에야 비로소 악몽에서 해방되고 미래로 향할 수 있었다.

  3. 바다와 씻김굿

  그런데 여기서 조금 미진한 본작의 내용을 나름의 해석으로 채우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역자 후기에서도 언급했듯 본작은 악몽을 비롯한 비현실적인 사건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있진 않는데, 물론 모든 환상소설이 사건을 명쾌하게 밝히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주류문단 쪽의 비평적 시각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오히려 높게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작가가 무책임하다거나 무성의하다는 소리(구체적으로는 별다른 설정 없이 쓰는 것 아니냐는 비난)를 듣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설명은 필요한 법이다. 물론 장르소설에서의 시각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지만.

  그래서 필자는 동양인임을 앞세워 서양인이 쓴 이 소설에 동양인의 시각을 적용해보고자 한다. 과거의 기억이 현세의 아이들을 악몽이라는 형태로 덮치는 이 이야기에 윤회전생과 업보라는 개념을 적용하면 어떨까. 아이들의 꿈은 곧 전생의 기억 혹은 조상 대대로 전해진 사념 혹은 원념이 구현된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어떨까.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이쪽이 조금 더 직접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꿈의 수수께끼를 다 알아내고 악몽에서 해방된 아이들의 모습은 씻김굿과도 같은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 이승과 저승을 하나로 이어주어 망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씻김굿. 그렇다면 본작의 이야기는 바다에서 벌어진 한 바탕 씻김굿이라 말할 수 있겠다. 삶과 죽음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곳, 그곳이 바로 바다인 것이다.

  4. 꿈의 닻

  본작의 원래 제목은 L'ancre des reves, 직역하면 '꿈의 닻'이다. 역제인 '백년의 악몽'은 '백년의 고독'을 이식하여 붙여진 듯한데, 생각해보면 두 작품 사이의 유사점이 제법 있는 것 같다.

  유전되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매직 리얼리즘 수법을 통해 그려낸다는 점이 바로 그것인데, 그런 의미도 있고 유명 작품과 비슷하면 기억하기 쉬워 홍보에도 좋기 때문에 여러모로 나쁘지 않은 제목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제목을 지어 붙인 작가의 의도를 존중한다면 임의로 바꾸는 건 좋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데, 대신 표지는 원서의 그림을 그대로 써서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잘 살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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