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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원의 도둑

2013.06.02 01:1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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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도둑

-클라이브 바커의 『시간의 도둑(The thief of Always』에 관하여


senyor


  1. 들어가는 글


  SF의 3대 거장을 꼽으라면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아이작 아시모프가 꼽히듯 호러의 3대 거장을 꼽으라면 스티븐 킹, 러브크래프트, 그리고 클라이브 바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킹 식 호러는 이 셋 중 가장 캐쥬얼하고 대중적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자주 마주치는- 마음에 드는 부분도 있고 꺼림칙한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익숙한 이웃이라거나, 도로를 질주하는 거대한 몬스터 트럭, 퇴근길에 한잔 하고 나오는 술집 문에 붙어 있던 광고와 같은 '일상적 존재'에서 불현듯 느껴지는 이질성과 섬뜩함, 즉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공포'의 디테일을 리얼하게 묘사하는데 있어 스티븐 킹만큼 뛰어난 호러 작가는 없을 것이다. 자연스레, 스티븐 킹 식 호러는 세밀한 디테일의 묘사와, 그러한 묘사를 통해 쌓아올린 '일상성'의 이미지를 전복하는 데서 발생시키는 전율감에 중점을 둔다. 킹이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기도 하고, 초자연적 공포 요소가 배제된 스릴러 내지는 순문학(쇼생크 탈출이라거나 그린 마일 같은)도 있다 보니 그렇지 않은 작품도 많긴 하지만, 그래도 대체적인 기조는 그러하다.

  러브크래프트 식 호러는 그보다 훨씬 심원하고 깊숙한 영역에서 '공포감'을 이끌어낸다. 인류가 이 지상을 걷기 한참 전부터 대륙의 산맥 지하와 깊은 바닷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인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질적인 고대의 신들과 그 수하들이 주로 문명에서 벗어난 오지에 일종의 '식민지'를 건설하고서,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그 광기를 퍼뜨리고 있다… 인간이 신봉해 마지않는 이성과 합리성은 그 초월적인 광기와 불가해함에 직면하는 순간 산산이 깨져버릴 나약한 장막에 불과하다… 는 큰 틀 아래에서 독자의 심리 깊숙한 곳에 도사린 '근원적인 불쾌감'을 이끌어 내는데 강점을 보이는 러브크래프트 식 호러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잔혹한 묘사 없이 도입부터 천천히 쌓아올리는 특유의 그 불길하고 스멀스멀거리는 '분위기'와, 그러한 분위기의 고조 끝에 흘깃 모습을 드러내는 절대적 공포의 끝자락을 잠시 접하고 미쳐 버리거나 자살하는 인간 정신의 나약함을 강조하는 것이 러브크래프트 식 호러의 전형이다.

  클라이브 바커 식 호러는 앞의 둘과는 전혀 다르다. 바커의 작품 대부분에서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전제는 '모든 존재는 저마다 욕망의 대상을 갖고 있으며, 그러한 욕망이 결코 완전히 채워지지 않기에 괴물 역시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받는 불행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그와 접촉한 인간에게 공포심을 주지만, 그 괴물들 자신도 저마다의 공포나 고뇌, 고통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공포나 고뇌, 고통을 가장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어필하는 것이 잔혹한 고어 묘사고, 따라서 바커의 작품 대부분은 대단히 고어하고 끔찍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러한 묘사 저변에 깔린, '진정 두려워 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고통의 본질은 어떤 것인가' 라는 문제의식은 놀랄 정도의 깊이가 있다. 그런 면에서 바커 식 호러는 킹이나 러브크래프트의 그것과는 궤가 다르다. 킹의 캐쥬얼함은 상업적 천박함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러브크래프트의 찐득거리는 불쾌함은 그저 작가 자신이 품고 있던 외국인 혐오와 편집증의 소산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바커가 묘사하는 '공포'에는 일종의 예술적인 격조와 품위가 감돈다. 그리고 그러한 깊이는 동화로써 쓰인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2. 작품에 관해


  이 작품은 ‘거대한 회색 짐승 2월이 하비 스윅을 산 채로 먹어치웠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하비는 올해 10살인, 본인의 평가에 의하면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며 단지 엄마가 시킨다고 청소를 할 필요는 없는’ 나이의 소년이다. 그 나이 때 소년이 으레 그러하듯 자신이 클 만큼 컸으며 부모님의 잦은 자질구레한 잔소리를 들어야 할 때는 지났다고 여기는 10살의 입장에서 봤을 때 2월은 실로 잔인한 달이다. 즐거운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수백 년 전의 옛날이야기처럼 여겨지고, 거리에는 청량함과 깨끗함을 잃고 지저분해진 눈이 녹아가고 있다. 방학은 막바지고, 이제 곧 지루한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10살 소년으로서는 끔찍할 정도의 이 권태 가운데서, 자신의 이름을 릭투스라고 밝힌-작중의 묘사를 보자면 어딘지 모르게 닳고 닳은 영업사원을 연상케 하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하비를 찾아와서는 ‘낮에는 언제나 해가 빛나고 밤에는 항상 신기한 일로 가득한 곳을 알고 있다’고 제안한다. 이 장면에서 의미심장한 지점은 릭투스는 하비가 지금 무엇을 가장 간절히 원하는지 아주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곳이 과연 어디이며 어떻게 가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행위를 거부한다는 점(릭투스는 ‘질문은 머리를 썩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비가 떠날 것인지 말 것인지의 여부를 철저하게 하비의 자율에 맡긴다는 점이다. 이 두 요소의 대비는 놀라울 정도로 기독교적이다. 기독교 교리에 의거해 봤을 때,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손에 넣었다. 이것은 인간 이성의 발아를 의미함과 동시에, 그 지혜로서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을 할 권리- 즉 자유의지를 얻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선악과를 먹고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신의 무한한 자비와 은총이 가득한 낙원에서 쫓겨나 땀 흘리며 괴롭게 일해야만 하고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속된’ 세상으로의 영원한 유배를 의미하기도 했다. 또한, 릭투스를 만나기 전 하비 스윅의 일상이 권태와 무기력으로 가득 찬 끔찍한 나날들이었다는 것도, 영지주의에서는 하와를 유혹한 뱀을 두고서 거짓된 신인 데미우르고스가 창조한 세계에서 해방시키고자 한 진정한 신적 존재 아이온의 사도로 해석하는 것과 부분적으로 맞닿아 있다.1)


1) 영지주의는 ‘신이 전지전능하며 무한히 선한 존재라면 왜 이 세계는 이토록 고통과 절망, 악으로 가득한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구성된, 기독교에 대한 일련의 이단적 해석이다. 현재에 남은 사료가 많지 않은 데다가, 영지주의의 세부 갈래에 따라 가르침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그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는 현재의 세계는 진정한 신이 아니라 거짓된 신들인 데미우르고스가 창조한 것이며 그렇기에 존재론적으로 열등한 결함품이거나, 혹은 아예 근본적으로 사악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지혜를 통해-영지주의가 주류 기독교에 의해 이단으로 지목된 결정적인 이유이다. 주류 기독교에선 인간이 자신의 지혜가 아니라 신에 대한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악’으로 대표되는 결함으로 가득한 물질세계를 벗어나 진정한 신과의 일치를 이룸으로써, 스스로가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이단으로 지목된 두 번째 이유다. 정통 교리에서 인간은 신에 의해 구원받아야 할 존재이지 스스로 신처럼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4세기 경 지중해 지역에서 번성했다가 5~6세기 사이 자체적인 모순과 주류 기독교의 탄압으로 사멸했다.


  릭투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하비는 매일이 휴일이며, 언제나 새로운 즐거움과 놀잇거리로 가득 차 있는 마법의 장소인 후드의 저택에 도착한다. 그곳에서는 신경질적인 선생도, 따분한 교과서도, 무거운 가방도 없다. 후드의 저택에 도착한 하비를 맨 처음 반겨준 것은 자신을 먹어치운 음울한 2월이라는 회색 늑대가 아니라 밝게 빛나는 태양과 정원에 가득히 핀 꽃들, 그리고 맛있는 음식 냄새였다. 결함과 손실, 악으로 가득 차 있으며 헛된 감각적 쾌락으로 인간을 묶어두고 진정한 지혜로의 길을 막는 ‘거짓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2)


2)영지주의는 사멸했지만, 물질세계는 ‘모든 세속적인 것들의 왕’인 사탄이 지배하는 장소이며 그리스도 인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바탕 인식은 역설적으로 현대의 기독교 교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후드의 저택을 둘러싼 마법은, 하비 스윅의 10살짜리 소년다운 꿈들을 거의 무한대로 채워준다. 오전에는 쾌적한 봄, 오후에는 뜨겁고 향기로운 여름, 저녁에는 선선하고 하늘이 푸르른 가을, 밤에는 포근한 크리스마스. 그리고 매일 밤의 크리스마스가 올 때마다 저택 거실의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놓이는, 꼭 선물로 받고 싶었던 물건들까지. 하비는 자신보다 약간 앞서 이 저택으로 온 또래의 소년 웬델과, 훨씬 빨리 온-그러나 하비나 웬델과는 달리 무언가를 깨닫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소녀 룰루와 더불어 릭투스가 요구했던 대로 결코 ‘질문’을 던지는 법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도중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매일 반복되는 핼로윈 축제의 저녁, 전에 웬델의 짓궃은 장난으로 겁에 질린 적이 있는 하비는 웬델을 놀려주기 위해서는 어떤 괴물로 분장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던 앞에, 릭투스의 형제이며 후드의 두 번째 하인을 자칭하는 자이브가 나타난다. 비쩍 마르고 늘 유쾌해 보이는 인상의 소유자인 자이브는 하비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는 듯한 태도로 웬델에 대한 복수를 종용하고, 하비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괴물이 무엇인지 자이브에게 말해준다. 자이브는 “한 두 가지 변신이 없으면 도대체 핼로윈이 뭐겠어?”라는 말과 함께 그런 하비를 세 번째 형제이며 후드의 세 번째 하인인 마르에게 안내하고 비대한 대머리 여성의 모습을 한 마르는 하비로 하여금 가면과 의상으로 분장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잠시 동안 진짜로 하비가 원하던 바로 그 괴물의 형상으로 변화시킨다. 그 괴물은, 바로 흡혈귀였다.

  서양의 오컬트 전통에 있어서, 오랜 세월 동안 피는 영혼의 화폐이며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동물의 생피를 마심으로써 그 동물의 특수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믿음은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었으며, 상대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상대의 근원을 자신의 것으로 취한다는 해석으로 이어져 왔다. 그에 대해 기독교에서는 성서의 창세기 9장 4절 “고기를 그 생명인 피 째로 먹지 말지니라” 신명기 12장 15~16절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으니 정한 자와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으려니와 그 피를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지어다” 등의 구절을 통하여 피를 마시는 것을 강력한 금기로 삼아 왔는데, 이는 기독교가 성립되고 로마의 국교로 선포되는 과정에서 그 교리에 기존부터 존재해왔던 이교 신앙들의 여러 요소를 흡수함과 동시에 기존의 신앙들과의 차별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비롯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육신의 죽음과 영혼의 심판을 거부하고 영원히 지상에 남아 있으면서, 살아 있는 자들의 피를 마심으로써 스스로의 부정한 불멸을 이어가는 존재인 흡혈귀는 가장 반 기독교적인 괴물인 것이다.3)


3)상세한 것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참조. 소설에서의 드라큘라 백작은 기독교 신앙을 경멸하며 훈 족의 왕 아틸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자신의 혈통에 자부심을 가진 무인 가문의 후예라는 언급 밖에 없지만 드라큘라의 모델이 된 왈라키아 대공 블라드 체페슈는 투르크에 맞서 기독교 세계의 방패 역할을 한 영웅이었다는 점과 맞물려, 해당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게리 올드먼과 앤소니 홉킨스, 키아누 리브스라는 화려한 캐스팅으로 이목을 모은 1992년 버젼이 특히 대표적이다)나 여타 창작물에서는 드라큘라가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기사였다거나 적어도 한 때 신실한 기독교 신자였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신앙을 버리게 되었고 한 발 더 나아가 존재 자체로 기독교의 신을 모독하는 괴물이 되었다는 설정이 흔하게 등장한다.


 이 ‘흡혈귀’라는 키워드는, 작품의 후반까지 꾸준히 변주되면서 핵심적인 주제와도 관련을 맺는다. 흡혈귀로 변한 하비는 겁에 질려 도망치는 웬델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학적 즐거움을 느끼지만 결정적인 순간 자이브는 하비로 하여금 ‘이것은 게임이 아니라 교육’이라고 강변하며 웬델을 죽일 것을 종용하고 하비는 그를 거부한다. 본 모습으로 돌아온 하비에게 자이브는 “넌 위대한 존재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고 비웃지만 하비는 그건 단지 장난일 뿐이었다고 단언하고 그런 하비에게 자이브는 “그 말에 찬성하지 않는 이들도 많을 걸. 세상의 모든 위대한 힘이 실제로는 다 흡혈귀나 영혼 도둑들이라고 말할 이들이지. 우리는 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해.”라는 말을 남겨놓고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하비는 후드의 저택이 주는 온갖 즐거움 이면에 숨겨진 의혹과 공포를 서서히 느끼게 되고, 그의 결단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 어떠한 사건 이후로 결국 후드의 저택을 떠나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결의한다. 웬델과 함께 후드의 저택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하비의 뒤로, ‘영업사원’ 릭투스, ‘놀이꾼’ 자이브, ‘융합자’ 마르(이 별명들은 작품 내에선 언급되지 않으며, 다만 그들의 역할과 본질에 따라 내가 임의로 붙인 것이다)의 뒤를 잇는- 후드의 네 번째 하인이며, 가장 흉포하고 두려운 존재인 ‘이빨 도둑’ 카르나가 추적해온다. 가까스로 카르나를 따돌린 둘은 드디어 집으로 돌아오지만, 둘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후드의 저택에서 한 달 여가 흐르는 동안 30년이 지난 세상과 늙어버린 부모님들이었다. 충격을 받은 하비는 자신에게서 시간을 훔쳐간 후드에게서 시간을 되 훔쳐옴으로써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다시 한 번 후드의 저택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3. 나오는 글


  클라이브 바커는 스스로가 직접 감독하기도 한 호러 영화 『헬레이저』 시리즈 중 1편의 원안이 된 중편 소설 「헬바운드 하트」와 단편집 『피의 책』으로 대표되는 유혈 낭자한 이미지로 인해 많은 오해를 받지만 어려서부터 종교적, 영성적 분위기가 강한 가정 환경 하에서 자라왔으며 성서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왔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그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나는 스스로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정짓지 않겠다”고 밝히긴 했지만-이것은 바커 본인이 게이라는 점도 한 몫 했을 걸로 보인다- 그의 삶과 창작 세계 전반에 걸쳐 기독교 교리와 종교적 사고관이 크나큰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러한 속성이 가장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작품의 후반부, 후드의 네 하인들의 정체와 후드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드디어 드러나는 부분이다. 자세한 것은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힐 수 없지만, 릭투스는 후드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생각해 보렴. 너는 카르나 같은 것이나, 어쩌면 나 따위를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후드를 상처 입히지는 못할 거야. 그는 너무 늙었고, 너무 현명하고, 너무 죽어 있지.” 너무 늙었고, 너무 현명하고, 너무 죽어 있는 것. 극히 오래되었고, 극히 많이 알며, 극히 공허한 것. 그 중심에는 아무 것도 도사리고 있지 않은 완전한 무(無).

  기독교에서는 말하고 있다. 신은 ‘존재’이며, 지옥은 신의 ‘부재’이고, 악이란 고유한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닌 선의 ‘결핍’이라고.

  이 리뷰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이 작품은 ‘고향을 떠나 별천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돌아왔더니 고향에서는 많은 세월들이 흘러 있더라’라는 식의 옛날이야기(일본의 우라시마 타로 설화나,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이 쓴 단편 「립 밴 윙클」 같은)의 전통적 서사 얼개와 더불어 ‘영웅이 고향을 떠났다가 역경을 겪고 다시 귀향하는’ 신화적 모티프도 포함하고 있다(오딧세우스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클라이브 바커는 거기에 기독교적 색채를 가미하고 서사 구조 자체도 ‘출발’-‘역경’-‘복귀’-‘재출발’-‘큰 역경’-‘확고한 승리’로 변경을 줌으로써, 단지 고대 신화에서 나타난 원형적 도상을 복제하거나 시간을 아껴 쓰라는 식의 단순하고 진부한 교훈을 담은 동화로 남게끔 하는 게 아니라 오직 이 작품만의 깊이와 심오함을 세련되게 드러내고 있다. 그 아우라는 흐릿하지 않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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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뇰 13.06.02 01:30 댓글

    2. 부분에서 "이 장면에서 의미심장한 지점은 릭투스는 하비가 지금 가장 간절히 원하는지 아주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곳이 과연 어디이며 어떻게 가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행위를 거부한다는 점" 이 문장에서, '하비가 지금'과 '가장 간절히' 사이에 '무엇을'이 빠졌군요orz

  • 세뇰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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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양원영 13.06.02 01:35 댓글

    추가했슴니다. ㅋㅋ

  • 양원영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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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뇰 13.06.02 01:44 댓글

    오오 감사합니다. 빠르시네요. 언제 양원영님께 밥 한끼라도 사 드려야 할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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