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임희근 옮김, 열린책들, 2010년 3월

pilza2 (pilza2@gmail.com http://www.pilza2.com)

개미 이후 비로소 나온 읽을 만한 베르베르의 작품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 문학계에서 길이 남을 의미를 남긴 작가다.

 바로 자기 나라 못지않게(혹은 그 이상으로) 우리나라에서 더 인기가 많고 높은 평가를 받는 외국 작가라는 이유에서인데, 프랑스에서도 특이한 일로 여겨졌던지 작가 자신이 자기 작품에서 패러디할 정도다([천사들의 제국]의 등장인물 중에 자기 나라인 프랑스보다 러시아에서 더 인기를 얻는 작가가 있다).

 이런 경우가 영미권에서라면 크게 드문 일은 아니다. 영국 작가가 미국에서 더 인기를 얻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같은 언어이고 문화도 유사하니 번역도 필요 없고 작품 소개에 시간차도 크지 않다. 장르소설의 경우를 봐도 존 딕슨 카는 미국 작가이지만 영국에서 더 인기를 얻어 영국 추리작가 협회 회원이었고 아예 조 힐처럼 영국에서 데뷔한 미국 작가도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언어의 장벽이 있으면 상황은 어려워진다. 이때 어쩔 수 없이 혹은 강제로(?) 자국보다 외국에서 인기를 얻은 경우가 있으니 바로 망명 작가들이다. 과거 소련이나 동구권 등 사상 및 출판의 자유가 제한된 나라에서 탄압을 받은 작가나 작품들, 대표적으로 겨우 ‘불에 타버리지 않고’ 살아남은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같이 자국에서 출간을 거부당한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이슬람교 모독죄로 사형 판결까지 받은 살만 루시디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외엔 미국에서 숱한 출판사로부터 거부당하고 프랑스에서 출간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와 미국에서 푸대접을 받다가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격찬을 계기로 알려진 에드거 앨런 포를 들 수 있겠다. 두 경우가 다 베르베르의 나라인 프랑스라는 점이 재미있는 우연이다.

 이제 베르나르 베르베르로 돌아오면, 앞에서 언급한 경우와는 많이 다르다. 프랑스와 한국은 언어의 장벽이 크고 영국, 미국, 중국에 비해 번역물이 활발히 소개되는 나라도 아니다. 베르베르가 탄압을 받거나 자국에서 출간을 거부당한 일은 당연히 없다. 그럼에도 그가 우리나라에서 일종의 브랜드를 이루며 성공을 거둔 비결은 출판사 열린책들의 마케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해리 포터가 등장하기 이전이며 지금처럼 청소년 소설 레이블이 난립하기 이전인 1990년대는 청소년 소설에 대한 수요는 있었으나 만족시켜줄 작품이 그렇게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때 엉뚱하게도 치열한 입시경쟁이 청소년 소설의 활로가 되었다. 바로 대입시험에 수능과 논술이 도입되면서 논리적 글쓰기를 위해서는 풍부한 독서가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이때 시류를 타서 [반갑다 논리야] 시리즈가 베스트셀러가 된 게 1992년이고 [개미]가 1993년에 나오면서 일종의 지식소설로서 화제를 모았다. 지금도 청소년 소설의 가장 큰 소비자는 부모라는 말이 있고, 왜 청소년 소설에 요즘 청소년들 못지않게 예전(?) 청소년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지에 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속설도 있듯이 이런 [개미]의 마케팅은 소설에서 지식이나 교훈을 추구하려는(또는 그래야 한다고 여기는) 부모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역시 비슷한 시기의 베스트셀러인 [쥬라기 공원] 역시 그런 성격이 짙었다. 따라서 SF를 강조하며 장르 팬덤에게 파고들었던 그리폰 북스가 낮은 판매량으로 빠른 절판의 수렁(?)에 빠졌던 것과 대조적으로 상대적으로 SF로는 낮은 평가를 받았던 [개미]와 [쥬라기 공원]은 대중에게 SF나 장르소설이 아니라 지식과 교훈을 주는 소설(특히 청소년에게 권할 만한 소설)로 포장되었던 덕분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는 전적으로 출판사의 과감하고 강력한 마케팅 전략에게 공을 돌려야 할 일이다.

 이러한 [개미]의 성공 이후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은 빠짐없이 우리나라에 출간되었고 크게 망한 경우는 없이 거의 전부가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10년 이상 공을 들인 데뷔작 [개미]의 충격에 맞설 후속작은 나오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사후세계에 대한 신화와 전설을 잔뜩 끌어 모아 프랑스식 해학과 유머로 덧칠한 [타나토노트]까지는 그렇다 쳐도 B급 SF로 쳐주기도 힘든 이후의 작품들은 그야말로 이름값으로 팔린다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의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표적으로 20년 전쯤에 마이클 크라이튼이 슬쩍 써먹고 버린 소재를 인류 최후의 비밀이라며 거창하게 포장하여 핵심 소재로 썼던 [뇌(원제가 ‘최후의 비밀’이다)], 전작의 아우라까지 잃어버린 안일하고 허술한 속편 [개미혁명], SF계에서는 70년대 이후로 창피해서 차마 쓰지도 않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대놓고 쓴 [빠삐용] 등이 좋은 예시다. 그리고 그 절정이 바로 단편집 [나무]였다.

 프랑스 원본에도 없던 유명 화가 뫼비우스의 삽화를 넣을 정도로 공을 들인 덕분인지 [개미] 이후 작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단편집 [나무]의 수록작은 SF에서 말하는 90% 쓰레기에 해당하는 글이었다. SF를 잘 모르지만 한 번 써보려는 초보 작가가 곧잘 지적당하는 ‘아이디어의 1차적 제시’에 불과한 미숙한 글이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출판사 열린책들은 독자들로부터 이런 베르베르풍의 단편을 모집하여 [나무2]라는 제목으로 엮어내었는데 이 아마추어의 글들 역시 베르베르의 글과 큰 차이가 없었으며 이는 [나무]의 허접함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말았다는 후일담을 남겼다.

 그렇다면 지금 소개하려는 두 번째 단편집 [파라다이스]는 어땠나? 결론적으로 말해서 [나무]보다는 나아진 면모를 보였다. 작가가 그동안 경험과 실력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아무래도 타당할 것 같다. 10년 이상 공을 들인 충격적 데뷔작 [개미]를 낮게 평가할 독자나 평론가는 거의 없겠지만 작가로서의 베르베르는 [개미] 출간 이후부터가 시작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무]는 아직 경력도 짧고 역량이 부족하던 시절의 산물이었고 이제 [파라다이스]가 본격적으로 작가의 실력을 드러낸 결과물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다.

 필자처럼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낮게 평가하거나 비정상적(작품 수준에 비해 과도한)인 인기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라도 [파라다이스]는 읽어볼 만한 단편집이다.

 대표적으로 단편 세 편을 소개한다.


내일 여자들은
 지금까지 읽은 베르베르의 글 중에서 가장 나은 것 같다. 단편에 대해서 작가의 인상을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여자만(혹은 남자만) 있는 세상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런 세상을 그릴 때는 [여자만의 나라] 같은 극단적인 설정이나 [와이 더 라스트맨]과 같은 디스토피아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반면 이 단편은 그런 세상이 오게 되는 원인, 이유를 그리는 일종의 전일담에 해당하는데 예고된 인류 멸망의 위기를 인공진화를 통해 극복하려는 과정을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그려낸다.

 특히 주인공 마들렌을 중심으로 어머니와 딸, 과거와 미래(레베카), 권력자와 (탄압받는) 과학자, 남자와 여자라는 복잡다층적인 관계를 그려내는 부분이 뛰어나다. 도식적으로 그려지기 쉬운 남녀관계를 이 단편은 이렇듯 한 인물(주인공의 경우 여성이고 딸이며 과학자이고 어머니가 될 존재)을 통해 다면적이고 중층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어 소설에서 표현하는 페미니즘과 성역할에 관심 있는 사람의 일독을 권한다.


영화의 거장
 작가의 영화에 대한 애정과 지식(특히 스탠리 큐브릭)을 엿볼 수 있었고 읽는 재미도 있었으나 결론은 다큐멘터리가 최고의 영화라는 엉뚱한 선입견에 기초한 내용이 되는 바람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실이 픽션보다 더 극적이라는 말은 흔히들 하지만 영화의 재미란 줄거리와 인물의 연기만이 아니다. 연출과 편집, 미장센 같은 요소도 빠질 수 없을 텐데 몰래카메라식의 촬영으로 이루어진 영화가 최고의 영화로 군림할 수 있을까. 영화광을 자처하는 작가의 글이라고 믿기 힘든 결말이었다.

 물론 소설의 전제로 초반에 나오는 ‘종교나 역사를 간단히 근절시켰다’는 부분은 너무 허황되어서 태클을 걸 기력도 없으니 넘어간다. 굳이 설정을 따지거나 오류를 찾지 말고 읽으면 확실히 재미는 있는 단편이다.


농담이 태어나는 곳
 소설 자체가 거대한 농담이라고 할 수 있는, 농담에 대한 농담 같은 소설.

 작가는 스스로 단편집의 수록작을 과거와 미래로 분류하는데 과거는 주로 자신의 체험담을 기초로 한 글이고 미래는 SF/판타지에 가까운 글인데 이 단편은 시대만으로 따지면 과거를 무대로 해야 적절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구성은 스티븐슨이나 해거드로 대표되는 근대 모험소설의 전통을 따른다. 호기심을 품고 수수께끼를 추적하여 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감춰진 장소에서 세상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대 조직과 만난다. 여기서는 바로 세상의 농담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코미디언들의 왕국이 등장하는데 조직 안에 들어가 거의 종교 같이 엄격하고 비밀스런 의식을 통과하는 주인공, 그리고 결국 주인공의 활약으로 비밀이 드러나며 파국을 맞는 최후의 결말까지 전통에 충실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댓글 0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3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