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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더 - 신데렐라는 없다

2013.10.31 22:1310.31

신더
마리사 마이어, 김지현 옮김, 북로드, 2013년 8월

날개 (revinchu@empal.com http://twinpix.egloos.com)

 모든 소설은 단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인상에 박힌 적이 있다.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마지막 강의실 장면에서 한 강사의 대사다. "전에 어느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즐겨 했지/모든 소설에는 10가지 다른 주제가 있다고/하지만 난 그가 틀렸다고 생각해/오직 하나뿐이지/난 누구인가?" 내가 이 말에 큰 인상을 받은 이유는, 그 동안 내가 본 많은 영화와 소설에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 신데렐라를 SF로 재해석한 [신더] 역시 인용한 대사에 부합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난 누구인가?'라는 주제를 천착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더'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다루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신데렐라의 SF판이라고 생각했던 신더는 결말에 다다러서는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한다. 이점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신더, 신데렐라가 아닌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 것.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자, 긴 서사의 프롤로그다.
 '신더'를 처음 읽을 때는 단순히 신데렐라를 SF 버젼으로 바꾼 소설이라고 짐작하기 쉽다. 나 역시 그런 관점에서 읽었다. 재투성이 소녀를 사이보그 소녀로 치환했을 뿐이라고.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신데렐라에서 시작되었더라도 전혀 다른 세계와 인물들을 창조해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배경은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인물들은 전형적이면서도 생동감 있게 묘사된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인 '신더'에게 몰입하기가 어렵지 않다.
 이 세계는 4차 세계대전을 겪은 우리와 다른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달에는 인류와 다르게 진화한 또다른 인종이 있는데, 이들은 마치 외계인처럼 느껴질 정도다. 문명이 더 고도로 발전되었으며, 아서 클라크의 말을 연상케 하는 생체전기를 이용한 '마법'을 부릴 줄 안다. 이 마법이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세뇌라는 점은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달의 여왕의 마법이라니. 이 소설은 SF 배경을 깔고 있지만, 동방의 황태자가 나오고 달의 여왕이 나오면서, 역시 동화적이면서 판타지적인 느낌이 가득 배어 있다. 정교한 외삽이 적용된 우리의 근미래가 아니라, 동화를 비틀면서 갖가지 다른 상상력을 끌어들여 만든 새로운 우주다. 누구나 손목에 생체칩이 박혀 있어 신원 파악이 되고 있으며, 안드로이드가 위험한 노동을 담당하고, 신체의 일부가 기계인 사이보그는 박해 받으며 인간 취급을 당하지 못한다. 특히 사이보그를 대하는 태도는 노예에 가까운데,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인공심장을 달거나 의족을 다는 식의 사이보그를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 취급을 당하지 못하는 사이보그는 이질적인 설정이었다.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이기도 했지만, 이야기의 진행상 필요할 설정이라 넘어간 부분이었다.
 십대 소녀가 주인공이고 황태자가 나오며, 달의 여왕, 마법 같은 대사가 나오는 기묘한 청소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신데렐라를 현대적 감각으로 각색해서, 오히려 신데렐레의 안티테제처럼 느껴진다.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 신데렐라는 이 소설에 없다. [신더]에는 운명의 불길을 뚫고 자신을 찾아가는, 완성시켜가는 소녀가 있다.
 [신더]의 세계는 결코 밝은 동화와 다르다. 피가 튀기고 레투모시스라는 역병이 도는 음침한 세계다. 신데렐라는 집에서 구박을 당하면서 고작 무도회에 가지 못하는 시련을 겪지만 이 소설 속 '신더'는 동화가 아닌 소설답게 한층 복잡한 위기들을 가지면서 풍부한 서브플롯을 구축한다.

 루나인은 몇 세기 전에 지구인 식민지 이민단에서 진화한 종족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루나인은 인간을 세뇌할 수 있다고들 한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느끼지 말아야 할 것을 느끼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게 만든다나. 그 기괴한 능력 때문에 루나인은 탐욕스럽고 폭력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고, 레바나 여왕은 그중에서도 단연 최악의 인물이었다.(52)

 인간을 세뇌하는 루나인이 있는 세계. 그들 중에 일부는 지구로 잠입해서 죽은 사람의 칩을 이식받아 지구인으로 숨어 살아간다. 세뇌가 자연스러운 능력인 루나인들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전체적인 플롯은 사실 흥미로운 편은 아니다. 동화의 골격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소설다운 각색을 거쳤지만, 대부분의 진행이 예상이 가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끝까지 흥미롭게 흘러가는 이유는, 예상되는 장면을 손쉽게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는 예상한 비밀이 빨리 밝혀지고 사건이 정리되길 바라는데, 이야기는 자꾸 플롯 단계에서 지연시키며 비틀기를 시도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조급함을 느끼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신더의 정체가 언제 드러날지, 그러고 나서 어떤 결말을 맺을지 궁금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흡인력을 띈다. 그리고 마침내 몇 페이지 남지 않고 치달은 결말은 다음 권을 애타게 찾게 만든다. 약간씩 예상을 벗어나면서, 익숙한 서사에서 새로운 서사로의 길로 나아간다.
 이 책은 결국 '루나 클로니클'이라는 4부작 연대기의 첫 작품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안드로이드를 거침없이 때려 부스는 수리공 신더. 그러면서도 황태자의 마음을 빼앗지만, 스스로의 기원을 알게 되면서 자아정체성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황급히 해피엔딩을 찾거나 신파로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담담한 강인함 때문에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모든 동화는 운명적이다. 벗어날 수 없는 예언의 사슬 속에서 예정된 결말로 다가간다. [신더]는 운명을 개척하는 이야기다. 동화 속 세계와 다르게 동화적 콘셉트 위에서 새로운 우주를 펼치고, 로맨스를 끼워넣으면서도 신더에게 철저히 집중한다. 로맨스에 집중을 하거나, 기존 서사를 따라가기에만 급급했다면, 이 소설은 지금의 매력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최근 영미권에서 유행한 영 어덜트 소설인 동시에 강한 여성이 주도하는 장르소설의 계열로도 볼 수 있다.(물론 주인공의 나이대 등이나 작품 성향등 많은 차이가 보이나,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사건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트와일라잇], [뱀파이어 다이어리], [뱀파이어 아카데미], [문 콜드], [열일곱, 364일], [스타터스], [헝거 게임], [웜 바디스] 같은 작품들과 비슷한 톤을 느낄 수 있다. 좀비물이지만 대런 섄의 [좀B]도 유사한 정서의 지점이 있다.) 요즘 시대에 동화 속 연약한 공주 캐릭터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더 이상 사람들은 신데렐라를 꿈꾸지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꿈꾸지도 않는다. 신데렐라는 없다. 우리 눈앞에는 신더가 있다. 그러나 그 신더가 진짜 신더일까? 사이보그가 되기 전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신더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 소설은 신데렐라의 SF버젼인 신더를 그리고 있는 듯하지만, 진실은 다른 곳에 있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감상은 한 마디로 이것이다. 신데렐라는 없다는 것. 적어도 이 소설 안에서는 말이다. 독자는 금세 루나인의 마법을 의심하듯이, 신더의 정체를 의심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묻게 된다. 신더, 너는 누구니? 나는 네가 누군지 알 것 같아. 네가 스스로의 정체를 알았을 때, 너는 너일 수 있을까? 신더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독자는 계속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강인하고 꿋꿋한 신더의 반응을 기대하게 된다. 기억을 모른다는 사실에서부터 예정된 신더의 각성은 곧 이 소설의 핵심이다.
 네가 누구인지 안다면, 앞으로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니?
 또한, 읽는 독자는 자신에게 되묻게 된다. 내가 이 위치에 있더라면, 혹은 신더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짚어보는 재미가 있다. 십대 소녀들이 공감할 만한 강인한 여성들이 SF/판타지 배경 속에서 로맨스에 빠지면서도 사건을 직접 해결하며 주체로써 기능한다. 위에서 열거한 소설들 중에 마음에 든 소설이 있었던 독자라면, 이 소설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설들의 공통점은 출간 즉시 높은 인기와 인지도를 얻고 급속도로 영상화가 진행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쉽게 읽히면서도 감정 이입이 쉽고 로맨스와 모험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다. 때론 섬뜩하기도 하고 현실적이기도 하지만 가슴을 설레게 하기도 하는 사랑과 모험이 있다고 할까. 매력적인 서사가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 중에서도 [신더]는 동화적 컨셉이라는 다른 소설과의 차이점을 지니고, 자기만의 색을 지닌다.

 신데렐라가 계단을 뛰어가는데 왼쪽 구두가 바닥에 들러붙고 말았어요. 그가 모든 계단에 송진을 발라놓았거든요. (317쪽, 4부 시작 전 문구-본문 아님)

 "이제는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안드로이드가 메스를 집어넣고 족집게를 꺼냈다. 금속이 딸깍 부딪치는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사샤의 피부 밑에서 작은 칩을 꺼내는 걸 지켜보며 신더는 눈살을 찌푸렸다. 보호용 플라스틱 코팅이 피에 뒤덮여서 새빨갛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려면 필요하지 않아요?"
 안드로이드가 몸체의 플라스틱 덮개를 열고는 안에 든 쟁반 위에 칩을 떨어뜨렸다. 거기엔 피범벅이 된 칩들 여남은 개가 쌓여 있었다. 안드로이드는 누더기나 다름없는 이불을 사샤의 눈 위로 끌어올리고서 간단하게 대꾸했다.
 "저는 지시 사항을 따르도록 프로그래밍되었을 뿐입니다." (172쪽)

 신더는 할 말을 더듬어 찾았다. 맥박이 고동치고 시야에 흰 점들이 깜빡였다. 귀퉁이에서 빨간 경고등이 점멸하며 그녀에게 진정해야 한다고 알렸다.
 "저는 뭐 이런 몸이 되고 싶어서 됐나요? 어머니든 누구한테든 입양해달라고 부탁한 적 있어요? 제가 대체 뭘 잘못했는데요!" (75쪽)

 "저런 성격은 보기 드물잖아요. 직접 프로그래밍하신 겁니까?"
 황태자가 매일같이 시장에 안드로이드를 가져오는 손님처럼 스스럼없는 태도로 노점의 문틀에 기대섰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처음부터 저랬어요. 양어머니가 사 오신 건데, 아마 프로그래밍 에러겠지 싶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싸게 사셨겠죠."
 "나는 에러 없다!" 이코가 뒤에서 소리쳤다.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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