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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퇴마록 외전

2013.06.30 23:2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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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외전
이우혁, 엘릭시르, 2013년 3월


날개 (revinchu@empal.com http://twinpix.egloos.com)



 90년대 장르 소설의 상징이자, 하나의 문화였던 [퇴마록]의 외전이 20년이 지나 출간되었다. [퇴마록]은 혜성처럼 등장한 책이었고, 특별한 마케팅이 없이도 전 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은 작품이었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열광적으로 읽은 책이었으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하나의 현상이었다. [퇴마록]은 단순히 베스트셀러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신드롬이자 문화 현상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열기가 얼마나 높았냐면 사람을 만나서 할 말이 없을 때, [퇴마록]을 읽었는지 물어보고 그에 관해서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이제야 출판사를 옮겨 1,000만부가 팔린 책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새로 나온 소장판을 합치지 않더라도 더 팔렸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퇴마록] 말세편 6권 출간 당시 2001년 누적 판매량이 970만부였으며, 완간 이후 지속된 판매량을 예상하면 상당한 수치일 것으로 알 수 있다. 세월이 지난 지금 [퇴마록]은 엘릭시르(문학동네) 출판사로 옮겨 소장판이 출간되었고, 여러 문학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문열의 [삼국지](이문열·나관중, 민음사, 1988년 5월)가 순수 창작물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조정래의 [태백산맥](조정래, 한길사, 1986년 10월)과 함께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한 시리즈다. 이렇듯 판매량만 놓고 봤을 때 [퇴마록]은 한국 장르소설계에 깨지지 않을 전설이다.

 [퇴마록]은 PC통신에 연재되었던 작품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사례로 대표적이며,(93년 하이텔 공포/SF(summer)란에 연재) 작품 속에는 90년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은 물론, PC통신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삽입되어 있다. 거대담론과 리얼리즘에 천착하는 한국 문학계와 달리 귀신, 기공, 투시, 염력, 도교, 불교, 밀교, 기독교, 신화, 전설, 무속 등 온갖 판타지·오컬트 소재를 혼합하여 독특한 매력을 선보였다.(초기 국내편의 경우 이 소설의 장르를 명확히 규명할 수 없다고 말한 것에 반해 2000년대 이후에 출간된 말세편에서는 판타지 소설로 말할 만큼, 시대를 앞서나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퇴마록]의 영향력은 15~24억 원을 투자하여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를 표방하고 나선 영화가 1998년 8월 15일에 개봉했으며 그 당시개봉 이후 1주일 만에 전국적으로 6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서울관객 41만, 전국 관객 113만(45만, 150만이라는 설도 있다)) 한국영화 사상 최단기간의 흥행기록을 세운 것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① 영화가 원작(소설)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였고, ② 평이 최악일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졌으며 무엇보다도 ③ 청소년 관람불가였는데도 불구하고 100만을 넘었다는 소리다.(그해 한국영화 흥행 순위 5위 기록) 그 당시 [퇴마록]의 핵심 팬들이 십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람 연령을 낮추고 완성도를 높였으면 [쉬리] 이전에 진짜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퇴마록]은 고루한 소설의 인식을 깨트린 90년대의 본격적인 엔터테인먼트 소설이었으며, 옴니버스 형태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독특한 구조를 취한 작품이었다. 등장인물들은 지금보아도 매력적으로 그려졌으며, 한국 장르소설 역사를 봐도 20년 동안 팬덤이 유지될 정도로 강력한 개성과 생동감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또한, 따로 해설집이 발간될 정도로 방대한 조사량의 [퇴마록]의 정체성 중 하나인데, 이는 작품의 매력이며 독자들을 열광케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퇴마록]의 매력 요소로는 책에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관념에 부합한 면도 있다. 그리고 장르적 감성에 직격하는 다양한 기공과 주술은 당시 십대들을 매료시켰던 것이다. [퇴마록]은 지금의 판타지, 무협, 라이트노벨이 하고 있는 오락적 성격이 강한 청소년 소설의 역할을 했다. 물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작품은 없듯이, 습작 경험이 없는 작가가 PC통신에 충동적으로 연재한 처녀작이었기 때문에 문장력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지나친 국수주의나 역사관 등이 꾸준히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는 책 뒤에(혼세편 6권) 직접 그런 비판적 논지를 실어서 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였다.

 90년대 초반 장르소설의 대표 아이콘인 [퇴마록]은 2001년 작가가 초반부터 예정한 결말로 마무리되었다. 여기서 작가 의식이 드러나는데, 장르 소설 중에서 인기를 얻으면 중단하지 못하고 몇 십권씩 아직도 책을 출간하는 작품들이 있다. 그러나 [퇴마록]은 돈이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작가가 계획한 대로 끝났다. 이는 조앤 롤랑의 [해리 포터]를 연상케 하는데 아무리 엄청난 인기를 얻어도 작가는 처음에 계획한 결말을 맺고 끝내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퇴마록 외전]의 경우도 당시부터 출간이 예고되어 있던 작품으로 갑자기 기획된 것이 아니다. 이미 PC통신에서도 몇몇 외전은 짧게나마 연재가 되었고, 어린이 동아에도 준후가 학교를 가는 에피소드가 연재된 적이 있었다. 즉, 다른 작품의 집필이나 작가의 슬럼프, 출판사를 변경하는 일들이 맞물리면서 공교롭게 20주년 기념으로 나오게 되었을 뿐이다.(그렇기 때문에 외전에서 말세편 이후의 이야기는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팬들이 오랜 기간 기다렸던 [퇴마록 외전]은 그럼 어떤 모습일까. 일단 외전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작품은 본편에 수록되지 못한 이야기이다. 즉, 본편의 성격과 다르며 이야기도 가볍기 짝이 없다. 보편에서 항상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목숨을 건 전투를 하고, 처절하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펼쳐지고, 씁쓸한 감정이나 감동을 주었던 것에 반해 외전은 주인공들의 숨겨진 일상을 팬서비스 성격으로 보여주는데 치중하고 있다. 따라서 대상 독자층은 이미 [퇴마록] 전권을 읽은 사람이며, 주인공들의 일상을 엿보고 싶은 팬인 것이다. 이점을 간과한다면 제대로 독자층을 파악했다고 할 수 없으며 책의 성격 역시도 알지 못한 채 읽게 되는 것이다.

 그 당시 나왔어야 했다는 평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외부 사정 때문에 차치하고라도 외전의 특성상 본격적인 에피소드가 아니라서 아쉽다는 평이나, 이야기가 다소 김이 빠져서 약한 인상을 받았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지하고 심각하며 구성이 치밀한 작품들이었다면 이미 본편에 수록되지 않았을 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들은 [퇴마록]이 옴니버스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그 간극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한 마디로 외전을 정의하자면 늦게 도착한 추억의 편지다. 이미 90년대 퇴마록과 함께 자라온 세대에게는 [퇴마록]은 자신의 90년대이자 유년시절 추억 그 자체이다. 그리고 여기, [퇴마록 외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90년대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늦은 추억이 도착한 것이다.

 마치 어렸을 때 미처 읽지 못한 친구의 편지를 개봉하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치면 90년대 [퇴마록] 독자들을 울고 웃게 했던 인물들이 약간은 낯선 모습으로 살아 움직인다. 서로 어색한 것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지만,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게 만든다는 점에서 외전은 의의를 지닌다.

 [퇴마록]의 매력은 그 뛰어난 캐릭터성과 온갖 초자연적인 소재뿐만 아니라 탄탄한 구성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열렬히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장르적인 소재를 사용해도 얼마든지 지루할 수 있지만, [퇴마록]은 계속 사건을 발생시키고, 의문을 증폭시키면서 수수께끼를 푸는 추리적 구조를 취했기 때문에 페이지 터너(Page-Turner,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책)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었던 것이다.

 외전에서는 그러한 추리적 요소는 확실히 약하며, 항상 비장하고 참혹하기까지 했던 전투 역시 없는 편이다. 따라서 본편에서 느낀 매력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의 중심은 캐릭터들의 일상이다. 비일상에서 활약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아닌 일상의 모습을 보는 게 외전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인 것이다. 여기에는 본편에서는 볼 수 없는 캐릭터들의 허술한 모습과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법

 [퇴마록] 국내편 {하늘이 불타던 날} 직후의 에피소드를 담은 단편이다. 바로 세 명의 퇴마사가 처음 만나는 역사적인 첫 에피소드의 직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후에 합류한 승희는 여기에 등장하지 않고, 세 남자가 어떻게 뭉치게 되었는지 그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모습은 결코 화려하거나 비장하지 않다. 오히려 궁상맞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하지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안면이 없던 세 남자가 갑자기 모여 살게 되었는데, 서로 성향도 살아온 이력도 가지고 있는 능력도 다른데 금세 화합이 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본편에서는 알 수 없었던 준후의 적응기를 볼 수 있다. 본편만 봤을 때는 금세 세상에 익숙해진 아이로 알았지만, 사실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이 단편에서 드러난 디테일을 통해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나아가서 그 뒤에 준후가 겪었을 어려움도 독자는 이제 더 구체적으로 상상이 가능해졌다. 또한, 세 사람이 서로를 놀랍게 본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보편에서는 익숙해진 모습만 봤기 때문에 이들이 서로의 능력에 감탄하고 놀라는 부분은 민망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현암이 벽을 부수고 그것을 다시 메꾸는 것을 내면의 구멍의 은유로 보여주는 것도 단순하면서도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었는지 알 수 있는 단초였다. 또한, 결국 이들이 관계의 진전을 보이며 끝맺음을 했을 때, 이미 19권의 책을 읽은 독자들은 결국 이들이 어떤 과정을 겪을지 알기 때문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
 바로 앞 에피소드의 며칠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앞에서는 주로 대화를 통해서 세 사람이 소개를 하는 일종의 인트로 같은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이들의 첫 퇴마행을 다룬다. 전설적인 퇴마사들의 첫 퇴마행이라니. 설명만으로는 아직 안 읽은 독자라면 엄청 기대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시 외전답게 본편과 달리 엉망진창인 퇴마행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잘 하는 경우는 없고, 모든 퇴마행이 화려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본편에 들어갈 수 없었던 수 천의 퇴마행들은 대부분 이토록 사소해보이면서 혹은 중요한 일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주는 에피소드이자, 현실의 사회문제까지 내포한 의미심장한 단편이었다. 본편에서도 PC통신과 관련된 에피소드와({아무도 없는 밤} 네트워크를 타고 원령이 컴퓨터 바이러스에 깃든 에피소드({아라크노이드}) 등에서 네트워크와 주술적인 요소를 섞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는데, 이번 단편 역시 마찬가지다. 단말기로 PC통신을 하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그런데 박신부만 영적인 기운을 느끼고 준후와 현암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미세하지만 분명 무언가가 있다. 그건 과연 무엇일까? 퇴마사들은 고생 끝에 그 정체가 원귀가 아닌 악의, 증오심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여기서 작은 힘으로 소멸시켜버릴 수 있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고립된 인간의 마음을 좀 먹는 존재이며, 영원히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외전 전체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는데, 과거의 사건으로 묘사하지만, 지금의 인터넷에 만연한 문제들을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퇴마록]에서는 낙태아들이 모인 원귀가 세상에서 제일 강한 능력자들도 모조리 압도할 만큼 강력하다는 식으로 초자연적인 현상과 사회적 문제점들을 절묘하게 녹여내는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사람들을 자살로 모는 악플들이 만연한 지금은, 이 세 명의 퇴마사가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을 뒤덮은 악의의 화신이 되었다. 현암이 과거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미래는 이미 우리 앞에 당도해 있는 것이다.

준후의 학교 기행
 오래 전 사설 BBS 혁넷에 연재하기도 한 작품으로 그때와는 설정이 바뀐 채 나왔다. 준후가 처음 학교를 가게 되는 이야기는 외전에 수록될 대표적인 에피소드였다. 우리는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다. 본편에서도 짧게 준후가 학교를 갔었지만 문제가 생겼고 금방 나와야 했다는 것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사건을 실제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 속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준후의 모습은 새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준후의 앳된 모습은 준후의 팬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야기는 현암의 조언으로 점입가경으로 빠지는 준후의 학교 생활을 보여주며 잔잔한 웃음을 준다. 동시에 준후는 학교에서 어린 영을 보게 되고 그 영을 위한 진언을 외운다. 준후의 행동은 학교에서 용납되지 않을 일들 뿐이었고, 무리에서 이탈하는 일이었다. 그건 퇴마행이 결국 사회에 편입되기 힘든 비일상이라는 소리며, 이 에피소드는 단순히 준후가 학교에 적응 못하는 일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준후가 자신이 퇴마사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현암 역시 준후의 모습을 보며 아무 이득도 없고 어둠 속에서 이름 없는 영을 도와야만 하는 일을 스스로 하게 될 것이라는 깨닫는다. 영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외면하고 무사히 학교 생활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준후는 그러지 않는다. 이미 퇴마사이기 때문에.

짐 들어 주는 일
 [퇴마록] 세계편 초반, 승희가 막 합류한 더운 여름날의 에피소드다. 드디어 외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승희가 등장하는 외전이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는 가장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 승희가 현암에게 마음이 있어서 같이 쇼핑을 가는 게 주된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가벼운 외전답게 둘의 소박한 첫 데이트를 그리고 있다. 초반에는 쇼핑에서 여자들이 장시간 활기 넘치게 하고 남자들은 지루해 죽는다는 속설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데, 이런 속설을 이용해서 승희와 현암의 모습을 그리는 게 소소한 재미를 주면서도 약간은 뻔해서 아쉬웠다. 후반부에 갈등이 심화되는 것은 승희가 보답으로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하고, 불량배들과 일부러 트러블을 일으키는 부분이다. 여기서 승희는 자신을 보호해서 현암이 멋지게 싸울 것을 기대했지만, 현암은 목석처럼 맞기만 한다. 현암은 함부로 공력을 써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승희는 자기 생각은 안 하냐며 화를 내고 가버린다. 이때, 현암의 속마음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이미 승희의 마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모른 척하기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현암의 마음은 말세편까지 다 읽은 독자라면 얼마나 오랫동안 절절히 숨기고 키워나갔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라서 애틋해진다. 그리고 제목이 단순히 쇼핑 본 짐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승희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독자는 이들의 이후 미래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되는 이야기였다.

생령 살인
 네 명의 주인공 다음으로 처음으로 조연의 에피소드를 다룬 단편이다. 바로, 퇴마사 일행만큼이나 인기 있는 주기 선생(박상준)이 주인공으로 활동하는 이야기다. 퇴마사들이 세계편에서 {왕은 아발론에 잠들고} 편에 해당하는 영국으로 출국했을 무렵, 검사 백호는 할 수 없이 주기 선생에게 초자연적인 사건을 의뢰한다. 주기 선생의 팬이라면 정말 즐겁게 읽을 만한 단독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외전이라면 역시 이렇게 조연들이 조명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재미를 느끼게 한다. 사이비 교주가 사람들이 다 목격한 상황에서 살인을 저질렀지만, 다른 곳에서도 동시에 목격되어 무죄로 판정난다. 그러나 이것은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한 살인이기 때문에 주기 선생에게 의뢰를 한 것이다. 주기 선생은 교주가 생령을 통해 살인을 했다고 추리한다. 이 단편은 주기 선생이 현암을 계속 의식하는 점이나, 기부를 하는 점이나, 양과 늑대에 대한 생각 등 속내가 여실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고 재미있다. 본편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심리묘사가 자세하게 되기 때문에 내면을 더 들여다보는 효과를 가져 온다. 인물에 대해서 더 뚜렷하게 알 수 있었고, 앞의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인간미가 입체적인 모습으로 살아나는 듯했다. 외전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단편이었고, 작가도 즐겁게 써내려간 느낌이 났다. 흥미롭게도 말세편의 현암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황금의 발}과 거울의 상처럼 쌍을 이루는 단편인데, 여기서 현암과 주기 선생의 차이가 드러난다.

회상을 마치며

 그야말로 전설이자 신화인 [퇴마록]의 외전은 일단 다시금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책이었다. 인물들이 다시 머릿속에서 살아나 움직이고 들어보지 못한 대화를 나눈다는 점은 신기했고,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물론 그 [퇴마록]이라는 이름에 비해서는 아쉬운 점도 분명 크게 다가왔다. [퇴마록] 하면 손을 놓을 수 없는 흡입력과 긴장감이 최고인 장르소설 아니던가. 외전에서는 힘이 빠졌기 때문에 추억을 음미하면서 읽을 뿐, 손에 땀이 난다든가, 뒤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 당시 표현대로 국민학교를 사용하지만 ‘몸’, ‘반려동물’ 같이 그때 잘 안 쓰인 용어들의 등장은 어색했고, 대화들도 지나치게 평이하고 친절해서 전체적으로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서먹서먹한 관계이고 초반이라지만 일상에서의 대화들은 집중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본편에서 주로 비장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어색한 연기를 하듯이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일상을 보여주자, 낯 뜨거운 느낌이 드는 것이다.

 또, 오랜 시간이 지나 나왔는데 외전의 편수도 아쉬웠다. 주기 선생을 제외하고 다른 조연들은 등장조차 못하다니. 출판사의 말세편 소장판 보도자료에서도 ‘일제 강점 시절 무련(현정)의 추적담’ 같은 작품이 예고되어 있었는데 빠졌고, 그 외에도 다른 조연들도 충분히 외전의 에피소드로 나올만한데 분량의 문제인지 계획이 없는지 안 나와서 아쉬운 감이 있다. 이후 외전이 한 권 더 나온다고 하니 이런 아쉬움들이 해소될만한 이야기들이 기대가 된다.

 물론 이 책만으로도 20년의 세월 동안 [퇴마록]을 잊지 않고 그 인물들을 가슴 한켠에 새겨놓은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간이 지나도 독자들의 뇌리 속에는 여전히 퇴마사들은 유년 시절을 함께한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허구 속의 존재이면서도 함께 생사를 같이 한 친구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영원히 기억 속에 살아간다는 것. 이야기는 사람을 웃게 만들고, 즐겁게 하고, 감동을 주고, 추억을 갖게 만든다. 허구의 모험과 삶 그리고 친구를 선물한다. 삶에서 이야기가 없다면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외전을 통해 이들의 일상을 엿본 덕분에 독자는 이제 이들의 비일상 뿐만 아니라 일상까지 상상할 동력을 얻었다. 퇴마사들은 때로는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고, 악령을 없애지만 한편으로는 궁상맞은 모습도 보이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법을 읽었기에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앞으로도.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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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뇰 13.06.30 23:54 댓글

    나왔다는 것도 잊고 있었는데 기대되는 작품들이 많네요, 리뷰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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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담 13.07.09 16:19 댓글

    외전인지라 퇴마록의 그 느낌은 아니더라구요. 개정된 퇴마록이 보고 싶네요. 얼음의 악령은 완전히 새로 쓰였고 세계편4권이 수정이 많이 되서 읽어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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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주현 13.07.13 21:31 댓글

    리뷰 잘 봤습니다. 언젠가 돈이 되면 개정편과 같이 꼭 읽어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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