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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조호근 옮김, 현대문학, 2017년 5월

최근(뭉뚱그려 2010년대 후반이라고 하자) 한국 과학소설을 읽으며 SF에 입문한 사람은 의문 혹은 불만을 품을 가능성이 있다.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이 매우 많으며, 여성 작가도 매우 많다는 사실 때문이다.
최근 단편집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여성작가SF단편모음집』,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를 보면 뒤의 두 권은 각각 여성작가와 페미니즘을 테마로 했으니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지만, 전자는 남성작가 2명, 여성작가 1명, 성별불명 1명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전체적으로 세 단편집 수록작 대다수가 여성 주인공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보고 불평등, 불공정을 떠올린다면 섣부른 착각이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한국 소설 전체든, 세계 SF 전체든 어느 기준으로 봐도 남성작가가 쓴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 압도적으로 많은 ‘남초’세상이다. 따라서 유독 과학소설에서 여성작가와 여성 주인공 작품이 많이 등장한 것은 시대의 흐름 및 그로 인한 변화와 진보를 예리하게 파악하고 적용하는 SF장르의 특성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며, 기울어진 천칭의 불균형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흐름 위에서 지금부터 살펴볼 대상은 남성 주인공만 잔뜩 나오는 남성작가의 단편집이다. 수록작 다수가 1960년대 단편이라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이런 시대에서 처음 읽은 감상은 발표된 당시에 읽었다면 느낄 감상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일부러 그런 차이에 비중을 두고 다루어볼 생각이다.

밸러드는 『크리스털 세계』를 위시한 종말소설 시리즈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가다.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밸러드풍’이라는 수식어를 만들 정도로 개성이 잘 드러난 단편들이 소개되어 다행이다.
밸러드는 후기에서 자신의 단편에 대해 SF 잡지에 실렸지만 SF가 아니라는 항의를 들었다고 술회했다. 실제로 그렇게밖에 여길 수가 없는 이유는 그가 SF의 클리셰나 가제트를 활용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단편 전체가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문단 작가가 자신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SF 장르를 차용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단편집에서 보이는 밸러드 단편의 특징은 대부분의 작품 주인공이 남자, 특히 중년 남자인 경우가 많다는 점. 심지어 소년이나 청년이 주인공인 경우조차 찾기 힘들다. 여자는 아예 안 나오는 단편도 많고 나오더라도 중요하거나 능동적인 역할을 맡는 경우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대부분 여자는 주변 소품이나 이룰 수 없는 욕망의 대상으로 그려질 뿐이다. 이런 남류(?) 작가의 한계가 곳곳에서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당대 영국 중산층 남자의 심리를 예민하게, 어떤 때는 극도로 과장되게 그려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침울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중년 남자를 주인공으로 주로 그려낸 밸러드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작가 자신의 과거를 살펴봐야 한다.
밸러드는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고 포로수용소에서 오랫동안 지냈으니 이때의 강렬한 경험이 평생에 걸쳐 그의 인생과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소설 창작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밸러드의 소설 중에 영화로도 제작되고 가장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은 안타깝게도 SF가 아니라 어릴 적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태양의 제국』이다.
어릴 때부터 목숨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고 세상은 언제든 붕괴되고 멸망할 수 있다는 의식을 품고 자라난 아이에게 세계란 거대한 트라우마 자체이리라. 평생 쌓은 이상의 명예와 부를 안겨준, 자서전에 가까운 소설 『태양의 제국』을 인생 말년에 썼다는 사실은 밸러드가 자신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정리하기까지 긴 세월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대신 그 전까지 그는 세상이 멸망하고 전쟁이 벌어지는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세계를 그려내어 자신의 어둠을 표현했다. 또 하나의 대표작 『크래시』와 2016년에 영화화된 『하이 라이즈』의 과격하고 잔혹한 내용도 그런 어둠의 반영이리라.
반면 밸러드 소설의 남자 주인공들은 대부분 작가와 흡사한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듯이 시종 음울하고 비관적이며 무기력한 면모를 보인다. 이렇게 우울한 중년 남자의 심리를 주로 그려낸 단편들이 많아서 앞에서 언급했듯 여성 주인공이 새로운 시대를 헤쳐나가는 최근 과학소설을 읽다가 이 단편집을 읽으면 실망할 우려가 크다. 그럼에도 SF 독자의 시선에서 흥미롭게 읽을 만한 단편을 골라 추천해본다.


수용소 도시
폐쇄된 도시에 갇힌 주인공은 탈출을 꿈꾸지만 마치 악몽 속에 나올 듯한 도시는 세계 그 자체였다. 탈출도 혁명도 변혁도 이루지 못한 밸러드풍 남자 주인공의 좌절담.

크로노폴리스
시계가 금지된 세계에서 시간과 시계에 매료된 주인공은 몰래 찬 시계를 들킨 교사에게 이끌려 시간의 도시(크로노폴리스)를 방문한다. 서서히 멸망해가는 도시와 시계에 몰두하다 광기에 빠지는 주인공이 음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고더드 씨의 마지막 세계
중년남자 고더드는 우연히 세계의 비밀을 목격하고 파국을 예상하게 된다. 웰스와 브래드버리가 연상되기도 하고, 가상현실을 다룬 작품의 선구자로 봐도 무방할 듯.

빌레니엄
인구폭발로 공간부족에 시달리는 도시 하층민의 애환을 보르헤스풍의 초현실적 기법으로 그려냈다. 비록 1990년대 후반까지 인류를 사로잡았던 맬서스식 인구증가 공포는 사라졌지만, 예전에 화제가 된 홍콩의 빈민가 이야기를 봐도 그렇고 소설 속 내용이 가진 설득력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여기까지 보면 밸러드의 단편은 인물보다 세계를 주인공으로 두어야 옳을 것 같다.

시간의 정원
이 단편집에서 몇 없는 판타지 소설. 제목부터 내용까지 로드 던세이니의 느낌이 난다. 비록 밸러드가 던세이니의 글을 읽었는지 좋아했는지 여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이 단편만 읽으면 오마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잠재의식 인간
지금은 반박되어 사라졌지만 한때 인류를 두렵게 만든 〈서브리미널 효과〉를 소재로 삼아 그 폐해와 파국을 극한까지 그려냈다. 넘치는 광고와 과소비를 조장하는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

사라진 레오나르도
도난당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을 찾던 두 주인공은 과거 도난당했던 예수화에 동일하게 생긴 인물이 그려져 있음을 발견한다. 그의 정체는? 미스터리로 시작하지만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까 봐 곤란한, 예측 불가능한 내용으로 끝난다.

종막의 해안
핵실험을 했던 섬에 표류한 남자의 이야기. 멸망한 세계 같은 적막한 섬의 모습은 그에게 이 세상의 모습 전체나 마찬가지다. 독특하게 그려진 축소된 종말소설. ‘밸러드풍’의 뜻을 설명하기 위해 예시로 들 수 있을 단편.

어느 절대자의 탄생과 죽음
우화적인 과학소설. 신에 대한 믿음의 탄생과 소멸, 종교의 탄생과 부작용을 매우 빠른 시간 안에 벌어지는 사건으로 그려낸다. 군더더기 없이 적은 분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남아냈다.

미확인 우주정거장 조사 보고서
아마도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과학소설다운 단편. 거대하고 무한한 공간에 대한 반복적인 심상을 극한에 달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치밀하게 표현했다. 역시 인물보다 세계가 주인공이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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