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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

할란 엘리슨, 신해경·이수현 옮김, 아작, 2017년 7월


지금껏 거울 리뷰에서 같은 시리즈는 되도록 하나로 묶어서 다루었다. 어슐러 K. 르 귄의 서부해안 연대기도 그랬고 사실상 별개의 장편인 J.G. 밸러드의 『물에 잠긴 세계』, 『불타버린 세계』, 『크리스털 세계』를 〈지구 종말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함께 소개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할 얘기가 많아서 1권을 따로 나누었다. 그때 할란 엘리슨 단편집 전체에 대해 다뤘으므로 이번에는 남은 두 권에서 인상적인 단편을 골라 소개한다.
2권은 육체, 3권은 사랑을 테마로 나눈 것 같은데 딱히 사랑이나 애정을 다룬 단편이 많지는 않다. 엘리슨의 소설 자체에 그런 성향이 많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 세 권으로 할란 엘리슨의 대표작은 전부 읽을 수 있다. 그 외의 국내 출간작을 찾아보면 스타트렉 각본을 원작으로 한 「영원의 끝에 있는 도시」(『SF시네피아』 수록), 「머신 섹스」(원제 Catman, 『사이버 섹스』 수록), 「모든 새는 보금자리로 돌아온다」(『플레이보이 SF 걸작선 1』 수록)를 들 수 있는데 전부 절판된 지 오래된 책이므로 소장하지 못했다면 크고 오래된 도서관(물론 SF판타지 도서관 포함)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넘어가겠다. 할란 엘리슨은 독특하고 개성적인 제목을 잘 붙이기로 이름난 작가다. 개인적으로는 제목 잘 짓는 작가로 레이 브래드버리, 어슐러 K. 르 귄, 로저 젤라즈니, 코니 윌리스, 마고 래너건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엘리슨 스스로도 제목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어 눈길을 끌고 기억에 오래 남는 제목을 붙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자신의 생각과 좋은 제목 짓는 요령을 밝힌 글이 마침 번역 출간되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읽어보기를 권한다(『Now Write 장르 글쓰기 1 : SF 판타지 공포』에 수록).
이하는 2, 3권에서 인상적이고 뛰어난 단편을 골라봤다.

마노로 깎은 메피스토

중편이라 불러도 좋을 이 단편은 사실 사전지식 없이 읽어야 재미있으니 구체적은 설명은 피하겠다. 이 정도는 언급해도 될 것 같은데 앞부분은 『다잉 인사이드』와 흡사하다. 독심술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숨어 사는 소심하며 우울한 사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보통 그런 능력이 있으면 점술사나 초능력자로 활동하며 부와 명예를 얻지 않을까(최소한 제임스 랜디의 검증을 통과하면 1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을 테니)? 개인적으로 『다잉 인사이드』를 재미없게 읽고 실망했던지라 처음엔 비슷하게 진행되는가 싶어서 불안했으나 다 읽고 나니 꽤 마음에 들었다.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엘리슨의 소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상적인 한 편만 고르라면 아무래도 이 단편일 수밖에 없다. 길지만 매우 독특하고 개성적인 제목, 짧지만 충격적인 내용 양쪽 모두 한 번 접한 사람은 좀처럼 잊기 힘들 것이라 믿는다.

크로아토안

도시전설을 소재로 한 호러 단편으로 구성과 분위기에서 스티븐 킹이 연상되기도 한다. 창작시기를 생각하면 오히려 킹의 선배격이겠지만. 우리에겐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앨리게이터〉 덕분에 알려진 하수구 악어 이야기는 1920년대에서 30년대까지 미국에서 유행했던 괴담이라고 한다(위키백과 참조). 그러나 엘리슨이 이런 소재를 흔하게 우려먹을 작가이던가. 여기에 갓난아이를 변기에 버린다는 소재를 추가하더니 인상적인 결말로 끝맺는다.

랑게르한스섬 표류기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제목을 먼저 짓지 않았을까 싶다. 제목 장인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엘리슨의 단편 중에서도 기발한 제목인데, 이자에 붙은 배분비기관에 붙인 비유적인 이름인 ‘섬’을 실제 섬으로 상정하여 자신의 몸 안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축소된 인물이 신체 안으로 들어가 모험한다는 같은 소재를 쓰면서도 아이작 아시모프의 『마이크로 결사대』와는 천지 차이다. 어쩌면 이 소설 혹은 원작에 해당하는 영화를 본 엘리슨이 일종의 반발 혹은 안티테제로 쓴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콜럼버스를 뭍에 데려다준 남자

역시 인상적인 제목에 이끌려 보게 만드는 단편. 레벤디스라는 정체 모를 인물이 매일같이 펼치는 기행을 다루었다. 레벤디스는 초현실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때론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해내는데 거의 매일 선행과 악행을 번갈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제목에 있는 콜럼버스를 뭍에 데려다준 일도 그중의 하나다. 문화인류학이나 신화학에서 말하는 ‘트릭스터’의 정의에 들어맞는 듯하다.

바실리스크

엘리슨치고는 직설적이고 명료한 제목. 전쟁에 참여하여 희생되고 고통받는 이의 이야기를 절절하게 그리면서 결국 보여주는 것은 아무 피해도 입지 않은 전쟁 그 자체다. ‘전쟁은 늙은이가 일으키고 젊은이가 죽는다’라는 경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인상적인 단편.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

연쇄살인마는 왜 인류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나? 왜 그는 먼 행성에서 동상으로 만들어졌나? 일곱 머리 용은 왜 배출되었나? 이 소설은 광기가 곧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상자의 정체는 무엇이며 왜 전쟁을 일으켰나?
답 없는 수많은 질문으로 이루어진 듯한 단편. 사실 예전에 아마추어 번역본으로 읽었을 때는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몇몇 인상적인 장면만 기억에 남았을 뿐인데, 솔직히 이번에 제대로 된 번역으로 읽어도 완전히 이해했다는 자신은 들지 않는다. 어쨌든 과학소설을 넘어 온 세상의 단편소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면서 유명한 제목(일본에서 이와 비슷하게 제목을 붙이고 큰 인기를 얻은 연애소설도 있을 정도로)을 가진 단편이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사이 영역

엘리슨판 『신곡』 혹은 『사자의 서』. 앨프리드 베스터를 칭송하던 작가다운 실험작이다. 『타이거! 타이거!』가 과학소설계에 준 충격은 얼추 알지만 얼마나 많은 후배 작가가 이 기법을 이어받았는지는 알지 못했는데, 적어도 여기에 하나의 확실한 예시가 있음을 알았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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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감 18.09.17 15:59 댓글

    올해 6월에 잠드셨다고 하네요. 좋아하는 작가 분이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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