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



  자정이다. 강남역으로부터 대학로로 가는 승합차를 기다리고 있다. 땅 속으로 파고
든 전기 기차는 이미 잠들었다. 죽어져 기어다니는 듯한 사람들 틈으로 막 깨어난 망
령들이 하느작하느작 뛰쳐든다. 눈먼 행인들이 망령과 섞여 논다. 물고기의 눈이다!
이맛살에 물기운 듣는다. 듣는다. 울음소리! 등줄에 소름 돋는다.

  "그건 비명 소리였어……"

  긴장감, 긴장감이라니? 나는 구역에서 구역으로 흘러다니는 망령들의 일원이다. 나
라는 사람은 그렇다. 이 서울에 용납받은 진정한 시민이다. 내 삶을 지탱하는 약물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던가? 서로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럴
테다. 서울의 시민, 불가사의한 수수께끼와 헤아릴 수 없는 가로등 아래에서 남몰래
완비된 약재를 한꺼번에 흡입하는 물고기, 그리고……스스로 망령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나 또한 일상의 복용자이며, 흐느적거리는 물고기 눈깔이다. 오늘 밤 이
후에도 나는 끊임없이 존재할 테다, 영원히 서울을 떠돌아야 하리라! 엉겁한 물고기
알의 일부이며, 곧은 척추의 누군가이며, 아가미와 허파와 지느러미의 복합존재자다.
나약한 일상에 시달린 끝에 타락한 망각 妄覺  과 죽음이다.

  "선도자가 돌아다니고 있어. 유령을 쫓고 있어."

  마지막 승합차 맨 뒷자리에는 말이 무더기로 엉겨 있었다. 그건 한 자루의 사회였
다. 누군가는 등골을 키우고 누군가는 지느러미를 키운다. 천천히 성장하고 있다. 충
분히 숙성해 발아하기 전에 삼켜질 씨앗이며, 진정한 서울 시민을 위한 약품의 원료
일 테다. 그들은 서울의 심부로 운반되고 있다. 물고기 눈들 또한 서울 이곳저곳을 이
동하고 있다. 이 서울의 밤 길바닥 위에 찬연하고 비린 물 고일 때면 망연한 표정의
물고기 눈들이 걸어다닌다. 승합차를 탄다. 강남과 강북을 오간다. 이들은 서로 밀착
되어 앉아 있었는데, 생며으로 충만한 것처럼 보인다. 맨 뒷자리로부터 뿜어진 영혼
의 냄새에 물든 탓이다. 정거장마다 새로운 물고기 눈들이 올라선다. 정원이 초과될
때까지 올라타, 자신들 또한 알이었다는 듯 스스럼없이 서로에게 엉겁한다. 온몸에
돋은 물기운이 끈적거리기 시작한다. 승객들은 끈적끈적 이어져 갔다. 그들 서로 수
군거린다. 구두 바닥에 들러붙은 살음의 한 조각 한 조각이 질척거렸다.

  철벅, 철벅, 철벅.

  채 성숙하지 못한 알이 약품으로 변용되고, 누군가에게 삼켜지는 것은 빈번한, 아주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서울의 일상이다. 낮에 몸을 키우고 밤에 영혼을 길러 부란의
직전에 이르른 때 돌연 어두운 입 어두운 위장 안으로 흘러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의 누군가는 분명히 부화할 테다, 그는 완전히 성장해 제 형제들을 삼키기 시작할
테다. 자잘한 이빨을 빛내며 아작아작, 씹고, 삼키고 그리하여. 완벽한 시민이 된다.

  "다른 일을 생각할 수가 없어, 그 뿐이라고. 다소나마의 구원이라면 연애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걸까? 또 한 주머니의 알이라도 낳을 수 있다면 좋겠어."

  사랑에 관해서는, 우리를 나포한 선도자들의 규율에 따라야 한다. 우리는 사로잡힌
지 칠일째 되는 날에, 그로부터 충분한 기간을 버텨낼 수 있는 약품을 부여받는다. 그
것은 스스로의 과거이며 이 서울의 미래이며, 누군가의 일생이다. 그것이야말로 기쁨
으로 충만된 일상의 확증이다. 언젠가 누군가, 홀로 일탈했다!

  마침내 헤매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돌아왔다.

  그날들, 그 대학로를 뛸 때 나는 주위를 흘러가는 광경 모두가 내가 배운 모든 것들
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떠 있는 것을 봤다. 유능한 마라토너라도 버텨낼 수는 없을
테다, 그곳은 끝없이 이어지는 화창한 사막이다. 말끔한 태양 아래에서 셀 수도 없는
일요일을 지내고, 바짝 메마를 즈음에야 바다 그림자를 보곤 그게 신기루라는 걸 깨
닫고! 마주칠 누구도 없는 그 길에서, 끝도 모를 그 길에 주저앉은 채 기다렸다……서
울의 사막 저 멀리서, 잘파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서울의
경계 그 멀리서 잘팍대는 소리 들려왔다. 나는 도망칠 수 없었다. 잘팍잘팍 소리 쫓아
왔다. 나는 한자리에서 배회했다. 선도자들은 다시 한 번 나를 나포해 와 주었다.

  "배를 가르고, 오물을 모두 씻어낸 다음에 올라타는 거야, 잊지 말라고!"

  승합차 운전 기사의 팔은 모두 여덟 개다. 능란하게 일상을 조정하는 그 팔들은 마
치 채찍처럼 보인다. 능란하게 움직이는 건 그의 팔이 아니라 운전대와 기어 손잡이
일런지도 모른다. 고도로 기계화되고 완성된 규칙 속에서 춤추는 손잡이! 운전 기사
는 밤 내내, 혹은 그보다 더 오랫동안 차를 몰아야 한다. 벌써 한 시다. 승합차는 이제
야 반쯤 비었다. 그는 뼈가 다 녹을 때까지 일했다. 여덟 개의 팔이 모두 흐느적거리
고, 머리가 둥글어질 정도로 열심히 일만 했다. 머리와 팔밖에 안 남았다. 완벽하다.

  누군가 슬그머니, 손 내밀어 알 자루에서 등골 비쳐나는 어린 것을 훔쳐 먹는다.

  그는 아귀와 흡사하다. 광희동에 도착하는 순간 또 하나를 씹어 먹었다. 알 자루를
뜯어 먹곤 모른 척, 조는 척 조악거린다. 눈꺼풀 하나 없는 아귀였다. 우리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졸기 시작한다. 누군가, 나 조는 사이 우리들 틈으로 스며들었다. 우
리는 달콤한 꿈에 시달리는 척하며 그가 올라타는 것을 외면한다. 승합차는 부르르
떤다. 우리는 모르는 척 존다. 승합차가 또 한 번 부르르 떨었다. 운전 기사가 흐느낀
다. 그 누구가 올라탄 것이다. 그는 우리보다 한층 끈적거린다. 그는 끈적끈적하고 비
릿하다.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며, 단조로운 일상을 조율하는 서울의 선도
자이며, 아직 부화하지 못한 알의 수호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엄청난 변화를
모두 삼키고, 두려움과 불길함을 모두 모두 집어삼키고, 한 구역의 부패한 물고기 눈
알과 여러 무더기의 해골과 맑은 해 흘러내린 덕수궁 돌담길에서 튀어나온, 형용할
수 없는 냄새들을 다 들이마셔선 상쾌한 비린내로 다 뱉아내는, 완벽한 정적 속 완전
히 똑같은 일상의 체현자다. 그는 철퍽철퍽 걷는다. 아귀는 소스라친다. 그는 꾸왁꾸
왁 운다. 아귀는 무작정 몸 돌려 도망치려 한다. 도망칠 수 없다. 도망칠 수 없다. 그
는 아귀의 뒤를 악착스럽게 쫓아간다. 서울을 좀먹는 처참한 물고기 눈!

  꿀꺽.

  푸르스레한 승합차 속에서 그는 한층 파랗게, 잔혹하게 번쩍거렸고 그의 입에 걸린
아귀의 꼬리지느러미는 닳은 구둣창처럼 번득였다. 아귀가 그 입 안으로 기어들어 갔
을 때 나는 그들의 바로 앞 자리에 앉아 있었다. 비참한 소리, 비참한 몰골, 인간의 삶
을 즐겨 먹는 그들을 엿보고 있었다. 씹지도 않고 삼키는 소리를 들었다.

  어딘가 멀리서, 울음소리 온다.

  무섭다. 무섬이 켜켜이 일어선다. 비린 물이 넘실대는 밤이다. 비린내가 넘쳐나는
밤이다. 서울의 지면이 새롭게 융기해 새로운 건물을 일으키는 밤이다, 지면은 점차
높아지고 우리들은 덧칠된 아스팔트 위를 걸어다닌다. 선도자는 우리 뒤를 쫓아다녔
다. 사백이십 년 동안 땅 속에 숨어 있던 옛 세계의 등골이 노출되기도 했다. 우리들
발밑에서 무엇인가 융기하는 것은 빈번한, 아주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서울의 일상이
다. 그중의 무언가는 굳건히 굳어질 테다, 그건 주위의 영양분을 모두 빨아먹고 완전
히 화석화에서 벗어난 등골이 되어 곁의 다른 건물들을 무너뜨린다. 그리하여 하얗고
커다란, 새로운 건물로 선다. 우리들은 며칠 정도 새로운 등골 아래 나려지는 그림자
속에서 곰곰히 생각한다. 온갖 장소의 어떠한 대상도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질 때,
그때 새롭게 솟아난 등골이야말로 우리의 목적지로 서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들
은 이미 목표에 도달한 셈이 되는 것이다. 넘어진 건물은 신혹히 철거된다. 딱딱한 덩
어리들은 하물하물 무너졌다. 우리들 사랑의 성기는 완벽한 규칙 속에서 허물어진다.
태양이 떨어져 내리면 그림자는 서울 가득 번져나곤 했다. 우리들은 낮이면 큰 건물
그림자 속을 흘러다닌다. 정수리에 햇발 꽂는 그 눈을 피해야 한다, 실수로 눈초리에
노출되어 점성을 잃고 메말라 버린 누군가는 승합차에서 어린 등골을 훔쳐 씹고, 그
리곤 선도자에게 잡아먹혔다. 소소한 유음과 꿀꺽, 소리만 남겨졌다.

  "양귀비도, 만다라케도……이 세상 그 어떤 마술의 약을 들이킨다 해도, 어제까지의
달콤한 서울은 두 번 다시 그대의 것이 되지 못하리, 꾸우왁."

  감파른 오셀로는 흐느낀다. 양쪽 볼을 풍선처럼 부풀리며 꾸왁, 울듯 트림했다. 우
리들의 서울은 훌륭한 선도자들의 빛을 반사하는 비릿한 우물이며, 우리들, 서울 시
민들은 공동 속에 번져난, 하이얗게 질린 포자일 테다.

  그는 등을 돌린다.
  
  그는 나를 쏴본다.
  
  검은 눈동자와 흰자위가 쉴새없이 뒤집혀졌다.

  그의 몸은 머리와 가슴, 다리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좌우대칭이며 전후 등
배도 잘 분화되어 있다. 머리는 편평한 삼각형이고 눈꺼풀도 훌륭하고 큰 입은 멋지
고 윗턱에는 매력적인 작은 턱니도 있다. 작은 턱니로 아귀를 붙잡아 삼켰다. 삼켜진
아귀는 식도를 지나 위, 십이지장, 회장, 대장, 직장으로 골고루 분포되고 흡수된다.
필요한 부처에 요긴하게 사용될 테다. 꾸우왁, 트림 한 번 했다. 통째로 삼켜진 아귀
도 울음주머니 사이를 지나며 유음 삼아 몇 마디, 터뜨린다. 꾸왁, 안녕을 고했다.

  "그녀에게 뭐라고 말해 줘, 내가 죽어가고 있다고 하든지……"

  아귀의 연인은 이미 잡아먹혔다. 그래서 아귀는 미쳐 버렸다. 햇발 쏟는 한낮에 거
리로 뛰쳐나가, 정수리 가득 빛줄을 꽂고 새벽까지, 장충동 골목을 내달렸다. 좋은 서
울 시민은 결코, 규율을 어길 수 없다. 어겨서는 안된다. 꾸왁, 소리만 남겨질 테다.

  물내음 때문에 모두가 미칠 지경이다. 그러나 나는 더 심각한 문제를 걱정하느라 코
가 막혀 버렸다. 어린 영혼의 냄새를 잊은 나는 시체와 흡사해진다. 영혼의 빛으로부
터 코를 막아 버린 나는 차가운 백열등처럼 허옇게 질린다.

  선도자는 아귀를 쫓아온 걸까? 그는 누구를 노려보고 있는 걸까?

  정거장이다. 종로5가다. 걸어서도 삼십 분이면 대학로까지 갈 수 있다. 과감하게,
밤거리로 내려서야 한다, 가파른 계단을 서둘러 걸어내려야 할 테다. 이 밤 내내 걷게
되더라도 나는 내려야만 한다. 내일까지 계속 걷게 되더라도 나는 내려야만 할 테다.
더는 숨을 참을 수 없고, 노려보는 그의 눈에 버틸 수 없고 가슴의 날카로운 기복을
더는, 견뎌낼 수가 없다! 나는 서둘러 내렸다. 나는 급히 뛰쳐내렸다.

  가슴 빈 터를 들켜선 안된다!

  왜 그렇게도 두려웠던 것일까. 그러나 비현실적으로 이그러진 서울의 사막을 아직
도 기억하기 때문에,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끝없는 일요일과 끝없는 휴식으로 열
린 서울의 지평선에 내동댕이쳐져 정신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으깨지기 전에, 도망쳐
야 한다, 선도자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선도자는 또다시, 쫓아오고 있었다. 그는
찰박찰박 걷는다. 나는 소스라친다. 그는 끄악끄악 운다. 나는 무작정 몸 돌려 도망치
려 했다. 그는 내 뒤를 억척스럽게 쫓아왔다! 서울의 밖으로 내쫓기는 것을 견딜 수
없다, 그런 환상을 다시 견뎌낼 수는 없을 테다. 내처 뛰려는 순간 질척거리는 다섯
발가락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비릿한 물내가 나를 미치게 만든다, 내가 얼마나 어리
석은 방식으로 도망치려 했는지 깨달았다, 이 흑백의 눈을 가진 사람은 내 등어리를
손가락으로 한 번 찌르고서 제 귀에까지 이르를 기다란 혀로 내 슬두노리를 옭아 묶
었다. 내가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몸만 수그리자 그도 내민 혀를 되삼켰다. 우리 둘,
서울의 박동을 모방하여 멈춰 선다. 어딘가 멀리서 울음소리 온다. 사십이 초 동안 매
초마다 울음소리 들렸다. 그는 도로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그 따라 천천히 고개 돌렸다.

  바로 곁에서 그를 치어다볼 때의 공포는 승합차 앞자리에서 엿볼 때와는 완전히 달
랐다. 그는 꿈이 실체화한 빛이다. 감당할 수 없이 커다랗고 푸르스레한, 너비를 잴
수 없이 뿜어져나는 도시의 가장자리에 선 위대한, 어떤 형용사라도 갖다 붙일 수 있
는, 성서에나 등장하는 훌륭한 선도자! 위대한 공간으로부터 진실한 시간을 움켜쥔
채 이윽고 땅 위로 나려선, 그 형태가 채 빚어지지 않은 서울의 밤거리에 선 개구리!

  승합차는 아직도 정거자에 서 있다. 우리는 마흔두 걸음도 못 걸었다.

  승합차의 외관이 내 맘을 짓뭉갠다. 정거장에 가로등 불빛 한 줌 없이 승합차만 홀
로 밝다. 마침내 다다를 지평선은 배꼽 없는 배처럼 둥글게 이어져 흘러왔다. 선도자
는 승합차가 떠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아무도 없어질 때야 그는……

  돌연 우리 멈춘 곁을 소녀가 뛰어 지나쳐 갔다. 기다려 주세요, 제발 멈춰 있어요,
네 시간 이십분이나 뛰었어요! 물갈퀴가 찢어졌어요……사십이 일 동안 아무 것도 먹
지 못했어요! 서울 한가운데 버려졌어요, 이젠 길도 모르겠어요 난 사막으로 돌아갈
거예요, 내게 자리 하나만 양보해 주세요. 난 당신들을 믿어요……승합차는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거장에 빛 한 뼘, 승합차만 번쩍인다. 위대한 개구리는 고개를 젓
는다. 마리암이 될 수 없는 소녀로다, 위대한 개구리는 고개를 또 한 번 젓는다.

  꿀꺽.

  "그녀는 이제 겨우 속아가미가 생긴, 이제 겨우 뒷다리가 나온, 이제야 막 꼬리가 스
러지기 시작한 소녀였는데! 그녀 역시 개구리가 될 텐데! 어여쁜 올챙이였는데!"

  "난소가 발달되지 못했어. 수란관이 엉망이야. 배란할 수 없어."
  
  몰각의 승합차를 바라보며 커다랗고 푸르스레한 개구리는 또 또 고개 젓는다.

  "훌륭한 예언자를 낳을 수 없어. 신은 사막이 아닌 여기 서울에 계셔."

  그가 앞발가락을 내밀어 보인다. 파랗다. 생식기 하나, 따라 뚜렷하게 떠올랐다.

  승합차는 떠났다. 떠난 자리 어둠 깔릴 때야 가로등이 휘영청, 떠올랐다. 나는 무어
라 말할 수 없는 감상에 휩싸여 단호하게, 그를 뿌리치곤 서둘러 걸었다. 종로에서 대
학로까지, 삼십분이면 도달할 거리다. 등빛 흐르는 도로를 따라 걸으리라.

  그는 악착같이, 내 뒤를 쫓아 걷는다.

  절벅, 절벅, 절벅.

  그의 정수리가 푸르스레 종로 거리로 섞여 든다. 나는 그의 윤곽과 그림자의 위치가
쉴새없이 바뀌는 걸 엿본다, 그는 내 걸음이 점차 느려지는 것을 엿본다, 천천히 가까
워졌다! 그는 몽상에 사로잡힌 한 젊은이가 홀로 종로 거리를 걷는 것에 동정을 느끼
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감히 걸음을 서둘 수도 없다, 그는 느긋하게 입을 다신다. 할
짝할짝대는 그 소리! 그 소리 내게는 절망적인 종고성처럼 들렸다. 물고기 아가리에
바늘 꿰일 때 울리는, 그 막막한 절망의 호소 같은 소리다. 나는 어쩔 줄 몰라 눈감는
다. 나는 이제 눈을 뜨고 있다. 훌륭하고 진지한 기둥과 마주칠 때까지, 울듯 걸었다.
아련한 순간과 순간 사이에서 순진한 광증으로 환영처럼 걸었다. 서울의 막다른 골목
까지 내몰려 내부에서 싹트기 시작한 공포와 외부에서 찔러 들어온 기괴한 공포와 달
빛을 듬뿍 담고 있는 공포의 기둥 표면의 빛에 허옇게 질려서……
  
  새로운 등골이 새하얗게, 방송통신대학 앞에 솟아올라 있었다. 새로운 환영이다.

  나는 이 기묘하게 휜 뼈가 바로 그의 목적지였으며, 경배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았
다. 나는 완전히 착각했다. 나는 그를 오해했다. 나는 다시 죄지은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붙잡았다.

  "도대체 왜, 한 어린 여자에게 관심을 뒀나? 어째서 나와 함께 여기까지 왔나? 그녀
는 서울로 추락한 천사야. 무슨 망상 같은 거야. 자네 마훈드야? 예언자야? 왜?"

  그가 다시 한 번, 내 어깨를 움켰다. 무시무시한 개구리의 다섯 발가락, 기괴한 밤의
악랄한 운명, 내 넋은 또 한 번 두려움에 살라진다! 한낮의 종교가 따위나 기뻐할 행
운에 내가 걸려들다니, 공상 속에 깊이 빠져들었다니……서울의 어떤 논리도 어떤 벽
돌도 아무런 의지가 되지 못할 테다, 나는 하나의 물거품으로 쫓겨날 테다!

  그때 서울 한가운데 솟구친 등골이 달을 향해 기묘하게, 휘어진 채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달빛이 흘러내렸다. 가로등은 침묵하고 달빛만 등골 따라, 흘러내린다, 등
골뼈 도막 표면에 형형하게 드러나는 기괴한 문장! 나도 저으기 아는 그 문장들! 달빛
따라 끝도 없이 길다란 문장들 흘렀다. 등골 표면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서 있는
내 발목에 찰랑거릴 정도로 노면을 흐르고 있다. 여전히 반짝거리는 문장들에 개구리
얼굴이 모두 드러났다. 멀리서 또 가까이서 질퍼덕질퍼덕 소리 일렁인다. 바다인 양
소리 일렁인다, 파도처럼 선도자들이 모여든다, 새로 솟은 등골을 경배하기 위해 선
도자들이 모였다. 나는 감히 그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다. 몽롱한 기억만으로도 나
는 완전히 시들었다, 창백한 서울의 시민이 되어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오늘 밤,
잔인한 운명이 나를 다시 한 번 이글어 그들의 곁에 내동댕이쳤다! 나는 이들이 인간,
또는 그 비슷한 무엇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은 선도자다, 툭 튀어나온 눈알로
서울의 진정한 시민을 감시하는 위대한 개구리 떼다, 극적으로 치솟아오른 등골의 주
위를 맴도는 서울의 규칙이며 모든 시민의 독백 속에 등장하는 영혼의 체현이다.

  최초의 시민이 서울에 나타났을 때부터 그들을 선도해 온, 가장 최후까지 서울에 남
아 있을 어떤 것이며 과거로부터 살아남은 기이한 것이며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이 서
울을 몇 번이나 재생시키는 죽음에의 저항자이며……기괴한 밤의 모임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 곧추선 내 마음은 한층 갈피를 잡지 못한다, 어쨌거나 그들은 개구리
야! 개구리, 개구리, 우리 영혼에 기묘한 효과를 떠안겨 주는 개구리들이다!

  달이 기괴하게 흘러내리는 동안 나는 개구리, 개구리, 개구리만 바라봤다. 우리 서
울의 규칙으로부터 태어난 완전한 총아, 그들이야말로 진실한 서울의 시민들일 테다.

  개구리가 외쳤다.

  "꾸왁!"

  개구리들이 외쳤다.

  "꾸왁꾸우왁!"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음과 운을 맞추어 외친다! 문장, 나도 저으기 아는 그 문장! 나
따라 울었다. 개구리 떼에 휩쓸리며 나 따라 울었다. 울음소리 위로 달빛이 쏟아져 내
렸다. 예언자의 성기를 씹어 삼키거나 마흔두 가지 계율을 암송하거나 약속된 천국으
로 추락하는 환상 따위가 문장 따라 일렁거렸다, 그 모든 계시가 서울을 씻어 갔다,
정화! 무엇을? 누구가? 애원과 애원, 누구에게! 달빛이 개구리 떼를 노려보고 있는 내
정수리에 꽂혔을 때, 나는 무심코 환희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정신병자처럼 큰
소리로 계속해서, 울어댔다, 무엇이 슬픈지도 모른 채 넋을 다 사르며 울었다 턱이 덜
걱거리고 목소리가 갈라지고, 내장이 뭉클뭉클 솟아오르고, 시홍이 분해되어 눈뜬 장
님처럼 빛덩이를 직시할 때야 목견하게 되는 비밀, 숨겨진 비밀 그리고 또 비밀!

  그리고 나는 마침내, 숨겨졌던 비밀 중의 진실을 목격했다.

  나는 그 광경을 기억한다. 길바닥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그 수면에 소리 찰랑일 때
등골 주위를 둘러선 선도자들 위로 달이, 달이, 흘러내린 빛 따라 떨어져 내렸다. 울
음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서울의 모든 악몽, 그 배후에 도사린 끔찍한 존재가
빛덩이 뒤에 숨어 남몰래 재빠르게 선도자들 위로 흘러내렸다. 섬뜩한 운율!

  선도자들이 울고 있었다. 달에서도 누군가, 울고 있다.

  우는 달 따라 밤하늘이 흐느끼고 있다.

  하늘은 오래 전부터 울고 있었다. 달에 갇힌 채 반려를 찾는 여자의 질점액이 빛되
어 흘러내렸다. 선도자들도 모두, 모두 다 울고 있다, 반려에게 바치는 사랑의 세레나
데다.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온 선도자들이 마주 볼 수 없는 서로에게 보내는 비명소
리다. 상호 간의 신호체계가 달과 서울 사이에 끊임없이, 번져나고 있었다. 누군가는
양쪽 볼을 고무 풍선처럼 부풀리며 울었고 누군가는 턱 밑을 부풀렸다. 이것은 추호
도 거짓 없는 확실하고 가장 진실한 고백이다. 아래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같았
고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 있는 것과 같았다, 모두가 같은 형태의 울음이다. 선도자들
은 서로에게 손짓한다. 서울이, 달이, 출렁이는 길바닥이 울부짖었다. 우리들의 약제
는 이 하나인 울음의 반영이다……피 흘리는 자궁의 비린내, 반짝이는 질점액……

  달빛의 정체라니!

  나는 달아난다! 달아난다! ……무정형의 알 자루를 움켜쥔 선도자들 틈을 빠져나가
려 발버둥쳤다, 선도자들은 끝도 없이 몰려들었다, 길바닥 위를 헤엄쳐 몰려든다. 모
두가 똑같은 얼굴로, 희열에 찬 개구리의 얼굴로 헤엄친다. 울음소리가 서울 거리에
일렁인다. 이런 데서 살아왔다니, 이런 데서 살아가야 하다니! 나는 달아난다. 나는
달아난다. ……튀어나온 길턱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이마가 깨진다, 승합차는 지평
선 너머로 사라졌고 이제는 울음소리 가득 찬 거리에서 몰려드는 선도자들을 헤치며
달리는 나는 피 흘린다, 피내음일랑 나 따라 달렸다. 비린내는 끝도 없다. 꿈이 사멸
하는 이 서울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피를 흘려야만 한다, 어리석고 안타깝
고 기막힌 종족이여, 서울의 시민들이여, 우리들의 밤을 질투하며 악착같이 뒤쫓는
개구리들의 교미를 봐라! 우리들이 부모처럼 따르는 선도자의 정체를 봐라! 우리의
영혼이 우물 위로 떠오를 때 무의미의 영생으로 손 내밀어 해충을 방제하는 개구리를
알아라! 우리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들의 알 주머니 위로 또 알 주머니가 쌓이리라.

  사위 조용해졌을 때, 나는 혜화동로터리에 서 있었다. 새벽이다. 새벽이다.

  달은 고요했고 거리는 스산했다. 조조히 어둠 떠난다. 물고기 눈들이 천천히, 거리
를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위대한 규칙의 숭배자들이 천천히, 헤엄쳐 나왔다.

  새벽이다. 대학로로부터 강남역으로 가는 승합차들이 쏟아져 나왔다. 땅굴을 헤매
는 전기 기차가 출발 도착음을 외쳐댄다. 죽어져 기어다니는 듯한 사람들 틈에서 비
틀거리며, 망령들이 뛰쳐나온다. 눈먼 행인들은 망령과 작별한다. 물고기의 눈!

  내 눈 위로 눈꺼풀이 뒤덮인다. 천천히, 사위 스러진다. 아무도 없게 되리라. 이맛살
의 물기운이 메마른다. 말라붙는다. 등줄 소름이 가시처럼 돋는다.

  "그건 울음소리였어……"

  서글픔, 서글픔이라니? 나는 구역에서 구역으로 흘러다니는 망령의 일부였다. 나라
는 사람은 그랬다. 이 서울의 일부로 움직이는 진정한 시민이었다. 내 삶을 지탱하는
약물의 이름조차 모르는 서울 시민이다. 누가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
르리라, 그건 또 다른, 이 서울에 감추어진 비밀이다. 나 또한 일상의 복용자이며 흐
느적거리는 망령이었으며, 물고기 눈깔이었다. 달이 드러낸 정체를 바라보기 전까지
나는 아가미와 허파와 지느러미의 완전한 복합존재자였다. 나약한 일상은 또 한 번
산산조각나 버렸고 타락한 망각과 죽음은 하룻밤 사이에 돌연 부활했다. 악착스레 내
뒤를 쫓는 선도자들을 피해 서울의 사막을 헤매게 되리라. 또는, 아무도 없는 거리를
끝도 모르며 걸어야 하리라. 언젠가 다시 한 번, 선도자가 나를 포획해 줄 때까지.

  나는 우물에 번져난 하나의 포자였으며, 땅 위로 떨어져 내린 하나의 물거품이며 서
울을 향해 다시 흘러가는 몰아의 환영으로 달 없는 사막을 끝도 모른 채 헤맨다. 나는
다시 한 번 소리를 쫓아야 한다. 나는 기억해냈다, 최초의 일탈에서 내가 무엇을 따라
뛰었던가? 울음소리, 울음소리, 밤하늘에서 흘러내리던 그 소리들! 정수리에 꽂히는
햇발 뿌리치며 나는 걷는다. 무섭도록 선명한 광경이 완전히 잊혀질 때까지 나는 걷
는다. 망각 忘却 이 나타날 때까지 선도자들은 나를 내버려 둘 테다. 망각에 사로잡힐
때까지 나는 버림받은 채 헤매야 한다. 나는 도망치고 있다, 나는 돌아가고 있다, 나
는 아직도, 기억한다……내가 돌아가지 못하는 서울의 그밤에 떨어져 내린 달과 길바
닥을 헤엄치던 선도자들을. 일상에 시달리다 솟구친 서울의 등골을 둥글게 에워싸고
울부짖던 그들을. 달에서부터 질점액을 쏟아 붓던 그녀들을. 가임성 암수 개구리들이
달과 서울 사이의 장막을 걷어내고 서로에게 빠르게, 헤엄쳐 가던 그밤, 서울의 심부
가 솟구칠 때, 길바닥이 일렁이던 그 순간 진정한 서울이 시민들의 환상을 집어삼키
던 모습을. 우리 살음의 발판을 허무는, 감추어졌던 서울의 비밀을. 온갖 방추형 물고
기와 측편형 물고기와 편형 물고기와 세장형 물고기들이 들끓고 있는 그 서울에서 지
금껏 그들을 쫓아다니는 선도자들의 비밀을 바로 그 순간, 그 어두운 곳에서 또 한 번
직시한 것이다. 교미는 어두운 밤, 개구리로 꽉 차 있는 달에서 이루어졌다.

  망각 妄覺 일어선다. 서울의 사막 저 멀리서, 잘파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명비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696 단편 우주류7 이수완 2004.06.08 0
695 단편 꽃향기1 어처구니 2004.06.06 0
694 단편 [일본 이야기/번역] 아미다데라 절의 비구니 hermod 2004.06.04 0
693 단편 [일본 이야기/번역] 볏단의 불1 hermod 2004.05.31 0
692 단편 말의 힘1 양소년 2004.05.30 0
691 단편 어느 재즈바에서. 글루 2004.05.30 0
690 단편 땀 흘리는 아내3 투덜이 스머프 2004.05.19 0
689 단편 귀여운 게 제일 강해 >ㅁ<b 명비 2004.05.12 0
688 단편 겨울짐승 두 마리를 꿈꾸네1 명비 2004.05.11 0
단편 월색 月色 흘러나리는 밤 명비 2004.05.11 0
686 단편 이상한 나라의 DK 양소년 2004.05.07 0
685 단편 [단편] 아기침대 unica 2004.04.28 0
684 단편 기억의 조각 memories 2004.04.26 0
683 단편 습격 memories 2004.04.22 0
682 단편 세 번째 이벤트 - 소재 : 거울입니다. mirror 2004.03.21 0
681 단편 [이벤트] Eyes on Me2 미로냥 2004.04.06 0
680 단편 짝짓기 아진 2004.04.05 0
679 단편 두 번째 이벤트 - 동화 재해석입니다.4 mirror 2004.02.21 0
678 단편 [이벤트] 새벽 3시 반 요정 오다1 unica 2004.03.20 0
677 단편 졸업 명비 2004.03.1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