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그냥 번역을 한건데, 이런 건 어디 올리면 좋을까요^^a 뭐, 암튼 일단 올리면서, 진아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죠! ㅎㅎ



   “이건 보통 일이 아냐.”
라고 중얼거리면서, 고헤(五兵衛)는 집에서 나왔다. 방금 전의 지진은 특별히 심하다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길고 묵직한 떨림과 신음하는 듯한 땅의 울림은, 늙은 고헤에게 이제껏 경험한 적이 없었던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고헤는 걱정스러운 듯이 자기 집 정원에서 아래쪽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풍년을 축하하는 마을 축제의 전야제 준비에 온통 마음이 쏠려 있어서, 방금 전의 지진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
  마을에서 바다로 옮겨온 고헤의 눈은, 갑자기 그곳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바람과는 반대로 파도가 먼바다로 먼바다로 이동해 가면서, 순식간에 해안에는 넓은 모래사장과 검은 바위 바닥이 드러나고 있었다.
  “큰일이다. 해일이 일어날 게 틀림없어” 라고 고헤는 생각했다. 이대로 두면 사 백 명의 목숨이 마을과 함께 한 번에 삼켜져버린다. 이제 한시도 지체할 수는 없다.
  “좋아.”
라고 외치고는 집으로 달려 들어온 고헤는, 큰 횃불을 들고 뛰어 나왔다. 그곳에는 막 거두어들인 볏단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
  “벼를 태워버리는 건 황송하지만, 이것으로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거다.”
라고 고헤는 그대로 그 볏단들 중 하나에 불을 옮겼다. 바람이 불어와서 불길은 파앗! 하고 솟구쳐 올랐다. 하나 또 하나, 고헤는 정신없이 달렸다. 이렇게 해서 자기 논의 볏단 전부에 불을 붙여버리고는 횃불을 버렸다. 마치 실신한 듯이, 그는 그곳에 우뚝 선 채로 먼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주변은 점점 어두워졌다. 볏단의 불은 하늘을 태울 듯 했다. 산사(山寺)에서는 이 불을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종을 쳐댔다.
  “화재다! 촌장님 댁이다!” 라고 소리치며 마을의 젊은이들은 서둘러 산 쪽으로 달려 왔다. 뒤이어 노인도, 여자들도, 아이들도, 젊은이들의 뒤를 따르듯이 달려 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고헤의 눈에는 그 모습이 개미의 행렬처럼 굼떠보였다. 이윽고 스무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달려 왔다. 그들은 곧 불을 끄려고 했다. 고헤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내버려 둬라! 큰일이 났다. 마을 사람들을 이리로 오게 하는거다.”
  마을 사람들을 차례로 모여 들었다. 고헤는 뒤따라 뒤따라 올라 오는 남녀 노소의 인원수를 한 명 한 명 헤아렸다. 모여든 사람들은 타고 있는 볏단과 고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봐라. 저기 왔다.”
  황혼녘의 어슴푸레한 빛에 의지해서 사람들은 고헤가 손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멀리 바다 저 끝에서, 가늘고 검은 한 줄기의 선이 보였다. 그 선은 순식간에 두꺼워졌다. 넓어졌다. 대단한 속도로 해안으로 다가왔다.
  “해일이다!”
라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바닷물이 절벽처럼 눈앞에 닥쳐온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산이 덮쳐 오는 듯한 중량감과 수 백 번의 천둥이 한꺼번에 떨어진 것 같은 울림으로 해안에 부딪혔다. 사람들은 넋을 잃고 뒤로 물러섰다. 구름처럼 산 쪽으로 돌진해 온 물보라 밖에는 한 순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기들 마을 위를 거칠게 휩쓸고 지나가는 희고 무서운 바다를 보았다. 두 번, 세 번, 바다는 마을 위로 나아갔다가는 물러났다.
  높은 곳에서는 잠시 동안 이야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모두는 파도에 깎여 나가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마을을 다만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볏단의 불은 바람이 불어오자 또다시 타올라, 저녁 어스름에 휩싸인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비로소 제정신을 차린 마을 사람들은, 이 불 덕분에 살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아무 말 없이 고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다.


1937년 일본《소학국어독본(小學國語讀本)》에 수록된 이야기(平川祐弘《小泉八雲-西洋脫出の夢》(신조사, 1981) 157-159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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