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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말의 힘

2004.05.30 02:2105.30

사후경직. rigor mortis. 그 말. 그 단어. 십년 전의 일이다. 십년 전 운운하니까 머쓱한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딱 십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하얀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다. 관리를 잘못한 탓에 몸뚱이의 어딘가에서 기형적인 분위기가 나는 마르티스 종이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개라고 하자. 그 개를 나는 좋아했다.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매일 산책하거나 그런 낭만적인 일은 없었지만, 목욕시켜주는 것도 가끔 지긋지긋했지만 나는 개가 좋았다. 그것만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알았다면 분명 잘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개를 좋아했으니까. 정말이다. 그러나 좋아해도 밥을 주고 털을 빗겨주는 것은 싫었다. 그 개는 여름에 죽었다. 딱 10개월을 살았다.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다. 토요일이었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왜 개 이야기를 하는 거냐, 화내지 말고 들어주기 바란다. 그날 나는 집에 아주 일찍 돌아왔다. 개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랬다. 그것은 말하자면 사고 같은 것이었다. 전날, 그러니까 금요일 저녁, 아니 금요일 점심에 나는 수박 껍질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수박 껍질 같은 게 어째서 개에게 치명적이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어쨌든 개는 그걸 먹었고 저녁부터 앓기 시작하더니 몸을 휘청휘청 거리다가 내 방 앞에서 넘어졌다. 들어올리니까 당근색 배설물이 길게 늘어졌다. 가족들은 모두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열시 즈음. 당시 열시는 너무 깜깜했다. 내 옆에 앉아서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형이 문득 고개를 돌리더니 그건 내장이야, 하고 알려주었다.
나는 줄곧 병원 밖에 있었다. 밤이었는데 사람들은 줄창 내 앞을 지나갔고 종종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집에 돌아오니까 열두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아버지는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개를 눕히더니 방으로 들어가서 곧 잠들었다.
귀가했을 때 개는 여전히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나는 가방을 내리고 그 옆에 앉아서 개를 안아들었다. 어쩐지 무거웠다. 거의 떨어뜨릴 정도였다. 무거운 나는 개를 오랫동안 안고 있었다. 집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았고 벽에 기댄 채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이제 그만 누군가 돌아와서 나를 혼내고 그런 짓은 그만두라고 말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렇게 말해도 그때 나는 정신이 맑았다. 아니, 맑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고하고 있었다. 빠르게 회전하는 머리. 다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만큼 나는 모든 것을 생각했다. 손가락 끝까지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개는 ‘ㄷ’자로 늘어진 채 내 품에 있었다. 한쪽 눈에 흰 막이 껴 있었다. 코끝은 말라 있었다. 그래, 입은 약간 벌어졌고, 뒷다리의 털이 둥글게 뭉쳐있었다. 내가 안고 있는 동안 개는 점점 무거워졌다. 너무 무거워서 팔이 아파왔다. 마루로 들어오던 햇빛이 가늘고 어두워졌을 때 결국 나는 개를 떨어뜨렸다. 개가 나무토막처럼 뚝 떨어졌기 때문에 개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눈을 뜨고 ‘ㄷ’자 모양인 채. 천천히 마루에서 빠져나와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그래, 그러면 신문지에 싸서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어, 하고 말했다. 전화를 끊기 직전에 불쌍하구나, 라고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쓰레기봉투를 집어 들고 마루로 돌아왔다. 신문지에 싸기 전에 개를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눈을 뜨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것처럼 눈을 감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할 수 없었다. 손을 대고 아래로 움직이는 것만으로 눈이 감길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신 앞발을 잡아보았다. 차갑고 딱딱했다. 기분 나쁜 감촉이었다. 나는 개의 앞발을 잡고 손을 움찔거렸다. 개의 발은 차갑고 딱딱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신문지에 개를 싼 후 쓰레기봉투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베란다 창문에 기대어 놓았다. 귀가할 때마다 가족들은 내게 개가 죽었냐고 물었다. 나는 응, 응, 응 하고 세 번 대답했다.
개가 죽어서 슬펐다. 좀 더 잘해주었어야 했다, 무엇보다 눈을 보여주지 못해서 분하다, 한번쯤 같이 눈밭을 걸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이 몇 번이고 반복했다.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할 수 없었다. 슬펐다. 일주일 동안은 매일 매일 울었고 그 후로 한 달 동안은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수업을 듣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모두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분했던 것은 개가 꿈에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 슬퍼하는 것으로는 꿈에 나와서 용서해 줄 수 없다. 슬픔이 부족하다. 그건 개가 내리는 형벌 같았다. 과자나 사탕이 나오고 혹은 귀신이 나오는 꿈을 꾼 후 나는 한참 침대에 앉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혹시 나는 전혀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럭저럭 두어 달이 지났을 때 일이다.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는데 텔레비전에서 흰 개가 나와서 나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어엉, 하고. 아버지는 고개를 숙였고 형은 숟가락을 손에 든 채 장난을 쳤다. 어머니는 계속 밥을 먹었다. 나는 울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형은 장난을 어머니는 밥을 그러다가 어머니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신경질을 내며, 한편으로 묘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그만해, 네가 죽였잖아, 하고 소리쳤다.
나는 딸꾹질을 하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래, 네가. 네가 죽였잖아. 네가 살인자야.”
네가 살인자야, 하고 어머니는 한 번 더 말했다. 나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소리를 질러댔다. 뒤따라 온 것은 형이었다. 형은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작고 다정한 목소리로 얼른 나와, 바보야, 얼른 하고 말했다.

아니, 잠깐, 화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떠들어댔다고, 게다가 화내기에는 이미 늦었다. 지금 나는 그저 사고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때에는 실로 이성적이 되어서 잊고 있던 것들이 계속 생각난다. 이번에는 정신도 맑은 것 같다.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느낌이다. rigor mortis. 사전을 펴들었을 때 공부방의 작은 창으로 들어오던 햇빛이 기억난다. 그 빛 속에 손을 펴고 바라보았던 일도 떠오른다. 멋진 이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입 속에서 음미해보다가 사전을 덮고 웃었다. rigor mortis, rigor mortis. 한편 개의 이름은 여전히 생각나지 않는다. 문득 흰둥이나 바둑이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어쩌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발한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어머니, 하고 불러보고 싶은 기분도 든다. 불러볼까, 어머니. 그러자 그녀가 눈동자를 굴려서 나를 바라보았다. 바닥에 누워있던 그녀의 몸은 점점 ‘ㄹ’자 모양으로 말리더니 나중에는 딱딱하게 굳어져서 우두둑 우두둑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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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년을 맞이하야 좀 더 쓸만한 글을 올려야할 텐데, 어쩐지 어쩐지 송구합니다.
아무튼-
1주년 축하드려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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