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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용의 아이2 : 안식(安息)

2020.09.21 12:1209.21

화운중학교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근처 먹거리가 있는 곳으로 향하거나 시내로 나가는 버스에 올랐다. 용 경장과 김 순경은 학교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교복의 행렬을 보며 여유로운 걸음으로 순찰을 했다. 뽑기방에 모여 있는 남학생들이 기계를 못살게 굴지는 않는지 살짝 살펴본 김 순경이 입을 열었다.

나 학교 다닐 때 뽑기 기계에 수억 들였는데, 경장님은 뽑기 잘 하세요?”

나는 뽑기에 수억을 들일 만큼 용돈이 넉넉하지 못해서……. 너는?”

끝내주게 잘 하죠.”

그렇겠지 수억이나 들였는데. 그렇게 뽑은 인형들은 다 어떻게 했냐?”

당근 여자친구 줬죠.”

그 여자친구는 지금 뭐 하는데?”

모르죠. 어디 가서 애 낳고 살고 있을지도 몰라요. 걔한테 눈독들인 새끼들이 워낙 많아서…….”

김 순경은 참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참 영양가 없게 마무리 지었다. 헛물 잘 켜는 김 순경의 평소 행동거지로 보아, 어쩌면 그 당시 김 순경은 그 여자친구가 관리하는 어장의 일개 물고기 한 마리였을 가능성이 컸다. 용 경장은 아버지(법적인 아버지 용태수가 아니라 실제로 키워 준 용을 말한다.)가 어린 수안을 납치했을 때, 용 경장이 밤마다 무얼 하고 다니는지 캐겠다고 형사놀이에 심취해서 미행했던 김 순경을 떠올렸다. 김 순경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용 경장은 이미 김 순경의 엉성한 미행 행각을 알고 있었고, 소장은 김 순경이 사명감에 불타 비밀스레 보고한 내용을 한쪽 귀로 흘려들었다. 지금도 용 경장은 그 때의 소장처럼 김 순경의 이야기를 한쪽 귀로 흘려버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청신경을 곤두세웠다. 젊은 여자의 울음소리였다. 그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디 가세요?”

김 순경이 용 경장을 따라오며 물었다.

저 쪽에 살펴볼 데가 있어서…….”

용 경장이 여자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말해도 이 순경은 이해 못할 일이었기에 대충 말하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용혈(龍血)을 먹으며 용의 손에 키워진 용 경장의 오감(五感)은 인간을 뛰어넘어 야생의 육식동물 수준이었다. 지금 들려오는 이 울음소리는 보통 사람인 김 순경에게 절대 들릴 리가 없었다.

울음소리에 가까워질수록 용 경장의 귀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들렸다. 정확하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수군대는 소리로 보아 한두 명이 아니었다. 목소리들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청소년의 것이었다. 가장 가까운 학교가 화운중학교니까 중학생들이겠지. 냄새를 맡았더라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코가 어제부터 이상했다. 감기인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두세 번 걸려 본 게 다인 감기가 이렇게 사람 답답하게 만드는 것인 줄 새삼 깨달았다.

우는 아이 한 명에 수군대는 아이가 여럿이라면…….’

여럿이 한 명을 괴롭히는 모양이었다. 학교폭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 경장의 걸음이 빨라졌다.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모여 있는 얼기설기 얽힌 골목을 서너 번 돌아 드디어 아이들을 찾아냈다.

너희들 뭐야?”

용 경장이 소리쳤다. 김 순경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용 경장 옆에 섰다. 용 경장은 무언가를 둘러싸고 서 있는 아이들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코가 정상이었다면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전에 벌써 맡았어야 할 냄새였다. 아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덩치의 경찰에게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중 한 여학생의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 있는 게 보였다. 친구가 그 여학생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용 경장이 가까이가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터 주었다. 서 있는 아이들 사이에는 쭈그리고 앉아서 머리를 모으고 바닥을 내려다보는 세 아이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 냄새의 주인공이었다.

경은아!”

용 경장이 부르자 경은이 고개를 들어 용 경장을 쳐다봤다.

? 삼촌.”

경은은 벌떡 일어나 용 경장의 팔을 잡고 바닥을 가리켰다. 함께 앉아있던 아이들도 일어서서 용 경장과 김 순경이 잘 볼 수 있게 옆으로 물러났다.

얘 어떡해요? 빨리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데, 아무도 못 만지고 있어요. 누가 학대한 거 같아요.”

경은이 가리킨 곳에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고양이가 누워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여기 있는 아이들 또래일지도 몰랐다. 바닥에서 굴렀는지 온몸에 흙이 묻어 있고 군데군데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똑바로 일어서보려고 앞발을 이리저리 버둥거려 보지만 몸은 기우뚱하다가 이내 바닥에 늘어지기를 반복했다. 초점을 잃은 눈은 갈 곳을 몰라 흔들렸다. 뒷다리는 미동도 없었다. 척추 어디쯤에서 신경이 끊어진 듯 보였다. 이 불쌍한 어린 생명 때문에 저 여학생이 그렇게 대성통곡을 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이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죽음이 코앞까지 와 있는 참혹한 모습에 감히 안아 볼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용 경장은 두 손으로 조심조심 고양이를 감싸서 들었다. 옆에서 김 순경이 !’하는 소리를 냈다. 김 순경도 차마 손을 댈 생각을 못할 정도로 처참한 고양이를 맨손으로 드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비어져 나온 작은 비명이었다. 그 작고 짧은 비명에 더러운 고양이와 죽음에 대한 혐오가 가득했다. 용 경장은 고양이를 얼굴 가까이 가져와 이리저리 살펴보고 냄새도 맡아 보았다. 물론, 눈으로 살피는 척 하면서 냄새는 아이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몰래 맡았다.

어때요? 빨리 병원에 가면 살릴 수 있겠죠?”

경은이 물었다.

사람이 학대한 게 아니야. 다른 고양이한테 당한 거야.”

용 경장의 말에 아이들이 말도 안 된다며 미심쩍어 했다. 어떻게 같은 동족을 그것도 어린 것을 저렇게 만들 수가 있냐는 말들이었다.

고양이는 너희들 생각보다 훨씬 어렸을 때 독립을 해. 어미가 다음에 나올 새끼를 키우려면 일찍 독립시킬 수밖에 없어. 그렇게 독립한 어린 고양이들은 살 곳을 찾아다니다가 다른 큰 고양이들에게 당하는 경우가 허다 해. 심지어 어떤 놈들은 새끼 고양이를 잡아먹는 경우도 있어.”

아이들이 저마다 비명과 성토의 목소리를 냈다.

야생의 동물들을 사람처럼 생각하지 마. 저희들도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얘는 가망이 없어. 척추가 부러졌고, 이미 몸이 차가워. 병원에 가도 안락사밖에 답이 없어.”

아이들은 그래도 병원에 데려가 보자고 아우성이었다.

누가 키울래?”

용 경장이 한마디 하자 아우성치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병원에 데려가서 어찌어찌 살렸다 치자. 하반신 마비에다 평생 병원비 들어갈 고양이를 누가 키울래? 이 중에 아무도 안 데려가면 보호소에 가서 며칠 있다가 안락사 되는 거야.”

죽어가는 불쌍한 생명을 살려야겠다는 순진한 마음만 앞섰던 아이들은 그 뒤의 일을 얘기하자 서로 눈치만 살폈다. OO이네는 고양이 키우니까 데려가서 같이 키우면 되겠다든가 XX가 제일 먼저 발견했으니까 데려가라든가 △△이는 장래희망이 수의사니까 데려가라는 말들을 했지만 아무도 내가 데려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이들 사이에 데려가라, 싫다, 티격태격 분란만 생겼다.

자기는 책임지기 싫으면서 남한테 떠넘기지 마. 그렇게 친구한테 떠넘겨서 자기 양심의 가책을 줄이려는 수작들 그만 해. 잠깐의 동정심으로 함부로 생명을 책임지려는 생각도 하지 말고. 그렇게 데려간 생명 때문에 힘들어지면 후회하고 미워하다가 결국 버리게 될 거야.”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고 입만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얘는 내가 데려가서 잘 묻어줄 테니까 너희들은 어서 집으로 가. 오늘 기말고사도 끝났으니까 시원하게 샤워하고 TV나 봐. 딴 데로 새지 말고……. 김 순경, 가서 얘 담을 만한 상자 좀 찾아 봐.”

김 순경이 상자를 찾으러 가자 아이들도 골목을 돌아 사라졌다. 용 경장 앞에는 경은과 한 남자아이만 남았다. 그 남자아이도 돌아가려는 것을 경은이 옷을 살짝 잡아당겨 세운 것이었다.

?”

용 경장이 경은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아이들이 가고 나면 고양이의 고통을 영원히 없애주려 했는데, 경은이 남아서 쳐다보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게 되자 살짝 짜증도 났다. 여름방학을 앞둔 덥고 습한 날씨도 짜증에 한몫 했다.

그 고양이 어디다 묻어줄 거예요? 그냥 쓰레기통에 버릴 거죠?”

적당한 곳을 찾아서 묻어줄 거야. 그거 감시하려고 안 가고 있는 거야? 남자친구도 못 가게하고?”

얘는 그냥 남자사람친구고요, 고양이도 어디다 묻을지 궁금하지만 그보다는 삼촌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

무슨 할 말?”

삼촌네 집 좀 구경시켜 주세요.”

으잉?”

용 경장이 얼굴을 구기며 놀란 소리를 내자 남자아이는 꾸중이라도 들은 것 마냥 안절부절못했다. 그에 반해 경은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남자아이의 이름은 강산호’, 경은과는 학교 영상창작동아리 친구였다. 기자가 꿈인 산호는 여름방학 전에 제출할 동아리 과제로 농촌 빈집의 실태에 대한 주제로 보도 영상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마땅한 주제를 못 찾았던 경은은 산호와 손을 잡았다. 용 경장이 보기에 산호는 순하고 소심한 아이였다. 기자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반대로 경은은 물불 가리지 않고 들이대는 성격이다. 산호가 경은과 같이 있으면 경은의 기에 눌려 많이 힘들어할 것 같았다. 용 경장은 경은이 주먹을 보여주며 과제를 같이 하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모습이 저절로 상상됐다. 그러나 용 경장의 상상과 달리 산호는 경은의 배경 때문에 함께 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곳 중산읍의 빈집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는 파출소장 엄마를 둔 경은은 산호가 활용하기에 아주 좋은 친구였다. 그리고 용 경장의 집은 용송시로부터 소개받아 수리해서 살고 있는 집으로 빈집 활용의 좋은 예가 되었다.

경은의 이야기를 다 들은 용 경장은 경은의 부탁을 깔끔하게 거절했다. 먹을 거 사 들고 놀러 오는 거라면 환영이지만 카메라까지 들고 와서 집을 구석구석 찍는 건 싫었다. 경은은 집 전경과 수리한 부분만 찍겠다고 했지만 용 경장은 단호했다.

구석구석 수리했어. 그래서 안 돼.”

그러면 저녁에 치킨이랑 콜라 사가지고 놀러 갈게요.”

놀러 오는 거 아닌 거 뻔히 아는데 내가 허락하겠니? 어서 집으로 가.”

경은이 되지도 않는 애교스런 표정을 짓고 살살 웃으며 말했지만 용 경장은 김 순경이 구해온 상자에 고양이를 넣고, 순찰차로 향했다.

얘네 아빠 이장님인데…….”

경은의 이 말이 용 경장의 발목을 잡았다. 강씨에다 화운중학교에 다닌다면 현기5리 이장 아들이 틀림없었다. 세 자녀에게서 나온 손주들이 줄줄이인 다복한 현기5리 강창국 이장에게 늦둥이 아들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녀석이 이 녀석일 줄이야. 찬찬히 뜯어보니 산호의 얼굴에 강 이장의 얼굴이 배어 있었다. 아들이 맞네!

현기리는 중산읍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빈집이 있을 턱이 없으니 아이들이 이장인 아빠가 아니라 경찰인 용 경장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시골 파출소는 관할 지역 이장들과의 끈끈한 연대가 필수였다. 이장들의 협조로 경찰이 동네를 살피는 일이 훨씬 수월해 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경은이 이장님 카드를 내밀었다.

저 맹랑한 것!’

용 경장은 경은을 잠깐 흘기고 순찰차로 곧장 걸어갔다. 경은이 계속 잡고 늘어질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학생들이 일찍 하교하는 기말고사 시즌을 맞아 중산읍 내에 있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주변 순찰을 마치고 파출소로 돌아온 용 경장에게 민원이 들어와 있었다. 소장이 용 경장을 불러 직접 현기5리 강창국 이장님의 민원을 전달했다.

강 이장님한테 신세진 거 있어? 이장님이 용 경장을 콕 집어서 도와달라시던데?”

아까 화운중학교 순찰 돌 때 이장님 아들이랑 경은이가 저희 집을 찍고 싶어 하는 걸 단칼에 거절했더니…….”

경은이?”

산호라는 아이는 꿈이 기자라서 나름대로 주제도 정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이 있는 거 같아요. 계획을 이행할 추진력은 없어 보이지만……. 그런데 경은이는 기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동아리 과제를 하기 위해서 산호랑 같이 하려는 거 같은데, 덕분에 산호의 추진력을 경은이가 보완해주고 있죠.”

용 경장의 말을 들은 소장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경진이는 걱정이 없는데 경은이는 앞으로 뭐가 되려는 지, ! 뭔 계획이 있어야 고등학교도 맞춰서 진학하지. 이대로 그냥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어영부영 삼 년을 보낼 거 같아서 큰일이야. 공부나 잘해? 그러면서도 운동선수는 안할 거라고 요즘엔 운동도 안 해.”

경진과 경은 자매는 유도인 부모를 둔 덕분에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유도를 시작했다. 소장 부부는 이 험한 세상에 여자 애들이 제 몸 하난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유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경은이 어렸을 땐 국가대표가 되겠다고 열심이더니 6학년 때부터 시들해져서 중학교 땐 유도는 취미일 뿐이라고 건성으로 했다. 3학년이 되자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대기업에 취직한다며 운동을 완전히 끊고 만날 책상 앞에 앉아서 스마트폰만 뒤적거렸다. 소장의 한숨을 저절로 만들어내는 경은이였다.

소장은 경은이 뭐라도 한다면 적극 지원해 줄 심산이었다. 강 이장이 소장에게 경은과 산호가 같이 과제를 한다거나 용 경장이 집을 보여주길 거부했다는 말은 안 한 것 같았다. 아니면, 산호가 아빠에게 그런 말은 빼고 도와달라는 말만 했거나. 아무튼, 소장과 강 이장 모두 용 경장이 아이들을 위해 뭔가 도움을 주길 바라고 있었다. 게다가 강 이장이 소장을 통해 정식으로 민원을 넣은 이상 용 경장이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골 파출소 경찰의 일은 치안 유지만큼이나 대민봉사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농번기 땐 일손이 모자라는 농가에 경찰들이 모여 노력봉사를 하기도 하는데, 건전하게 꿈을 좇는 청소년을 돕는 일 또한 경찰에겐 노력봉사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내일 하교 시간에 맞춰 용 경장이 아이들을 데리고 빈집이 제일 많은 호곡리로 가기로 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용 경장은 코 때문에 일부러 40분을 걸어서 퇴근했다. 천천히 걸으며 자연의 냄새를 맡으면 코가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용의 후각을 갖고 있던 코가 갑자기 사람의 후각으로 성능이 떨어지니 여간 답답하고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용 경장의 바람을 무심하게 져버린 코는 오는 내내 별 차도가 없었다.

내일까지 코가 안 나으면 모레는 병원에 가봐야지. 이젠 목도 컬컬하네.’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골목을 돌아선 용 경장은 대문 앞에 있는 아이들을 보고 걸음을 우뚝 멈췄다. 담벼락에 기대서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산호와 책가방을 깔고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경은이었다. 인기척을 느낀 아이들이 용 경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경은은 배시시 웃으며 옆에 있는 치킨 봉지를 들어 보였다.

이렇게 가까운데서 아이들의 냄새는커녕 치킨 냄새도 못 맡았다니…….’

용 경장은 절망감에 이제 두통까지 오는 것만 같았다. 코만 멀쩡했어도 멀리서 아이들 냄새를 맡고 피했을 텐데, 꼼짝 없이 잡혀서 집을 보여주게 생겼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라 그 핑계로 아이들을 돌려보내려 했지만, 아이들은 부모님과 화상통화로 용 경장 인증까지 시켜가며 늦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문도 안 잠겨 있는데 용케 안 들어가고 밖에서 기다렸네.”

모든 걸 포기한 용 경장은 비아냥을 섞어 말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주인 없는 집에 막 들어갈 정도로 막무가내는 아니에요.”

경은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제 집인 양 앞장서서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날 용 경장의 집은 산호에게 구석구석 사진이 찍혔다.

 


다음날, 용 경장은 점심 식사 후에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로 갔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에는 방학식 전까지 단축수업을 한다는데, 그래도 학교에서 밥은 먹여서 하교시키는 게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용 경장이 아이들 점심까지 먹일 뻔했다. 아이들을 태우고 호곡리 매화마을로 가는 내내 경은의 수다 폭격에 시달려야 했다. 감기가 걸리면 왜 코가 고장 나는 것일까. 용 경장은 코는 놔두고 귀가 고장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경은의 수다 폭격을 외면하며 무사히 매화마을까지 운전하는 인간 승리를 이뤄냈다.

이 마을은 집이 경사진 밭 사이에 띄엄띄엄 박혀 있었다. 산 속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개천이 있고, 개천 양 옆으로 논이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때문에 폭이 넓지 않은 논은 개천을 따라 길게 이루어져 있었다. 개천은 오래 전에 정비를 해 웬만한 비로는 논으로 범람하는 일이 없었다. 논이 있는 부분이 이 마을의 유일한 평지였다. 나머지 땅은 산 모양대로 경사가 진 밭이었고, 그 사이사이 산에 박아놓은 것처럼 오래된 집들이 군데군데 자리했다. 조선 시대인지, 고려 시대인지 관리들의 폭정을 피해 도망 온 사람들이 모여 만든 마을인데 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논이랑 밭을 만든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동네 노인들의 말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집들 중에 반은 빈집이야. 관리 안 된 지 몇 년에서 수십 년까지 된 집들이라 언제 허물어질지 알 수 없어.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집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해.”

용 경장은 마을에 대해 대강 설명해 주고 평소 순찰할 때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먼저 마을 전체를 찍어야겠다고 했다. 용 경장은 절대 길을 벗어나지 말 것과 보고 싶은 집이 있으면 전화 하라고 신신당부 한 후 마음대로 돌아다니도록 허락했다.

이 동네는 올 때마다 좀…….’

용 경장은 이 마을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죽음을 앞두고 맥없이 누워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짐승 같아서였다. 용 경장이 어렸을 때, 아버지는 사냥해 온 짐승의 마지막 몇 숨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번은 새벽이 형이 처음으로 혼자 사냥한 오소리를 가지고 온 적이 있었다. 새벽이 형이 의기양양해서 가지고 온 오소리는 척추가 끊어지고 목에서 피를 쏟으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 숨을 쉬고 있었다. 아버지는 새벽이 형에게 어서 죽이라고 했지만 사냥이 처음인 새벽이 형은 잡는 것 까지는 해도 죽이는 건 하지 못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굴속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 질렀다. 깜짝 놀란 새벽이 형이 얼떨결에 오소리의 목을 비틀어 숨통을 끊었다. 아버지는 내 몸을 이루어줄 먹잇감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라고 했다. 그 고마운 존재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는 고통을 빨리 끝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죽어가던 오소리가 마지막 몇 숨을 힘겹게 몰아쉬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오늘은 어제 봤던 죽어가던 고양이의 모습까지 같이 떠올랐다. 용 경장에게는 좋지 않은 기억을 가중시켜 떠오르게 하는 기분 나쁜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그 마지막 몇 숨을 이루고 있는 것은 죽음이 가까운 노인들이었다. 자식들이 사는 도시로 나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 노인도 있고, 평생을 보낸 이 동네를 떠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서 못 떠나는 노인도 있었다. 그들이 몇 뙈기 되지 않는 논밭을 가꾸며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꾸준히 세상에서 사라지는 중이었다. 10년 안에 이 마을에 순찰차가 들어올 일이 없어질 거라고 예상했다. 저승으로 이끄는 거대한 손이 하늘을 덮은 것처럼 마을이 갑자기 어둑어둑해졌다.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허물어져가는 폐가보다 사람 보기가 더 힘든 을씨년스러운 마을에 끈끈한 공기가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가 며칠 소강상태였는데, 오늘 저녁부터 다시 비가 쏟아진다더니 하늘은 벌써부터 쏟아 부울 기세였다. 아이들에게 비가 오기 전에 빨리 사진 찍고 가자고 하려고 전화기를 꺼내려는데 30미터 쯤 떨어진 고추밭에서 할머니가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무당할머니?’

옛날에는 용한 무당이었다는데 나이가 들면서 신()발이 약해져 이 마을의 다른 사람들처럼 밭일로 생계를 꾸리다가 가끔 어디서 불러 주면 굿을 했단다. 이제는 허리도 굽고 무릎도 성치 않아 걸을 때마다 기우뚱 기우뚱 아슬아슬하게 걷는 이 할머니는 어찌된 영문인지 고추밭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용 경장은 무당할머니에게 달려가며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마을은 무전기가 터지지 않았다.

? 마침 전화하려던 참인데.”

소장이 반색하며 전화를 받았다.

무당할머니 실종신고 들어왔죠?”

, 어떻게 알았어? 또 매화마을에 계셔?”

자식이 없는 무당할머니는 치매가 걸린 후부터 옆 동네에 사는 조카가 모셨다. 조카는 한집에 살지는 않지만 근처에 집을 얻어 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무당할머니의 집에 들러 살림을 챙겨주었는데, 작년부터는 가출살이 꼈는지 자꾸 사라졌다. 조카가 동네를 뒤지다가 무당할머니를 못 찾으면 파출소에 신고하기를 반복한 게 한 달에 서너 번은 되었다.

요즘에는 매화마을에 잘 가시네. 알았어. 내가 조카 분한테 전화할게.”

소장이 말했다. 전화를 끊은 용 경장은 걸음도 힘들게 걷는 노인네가 뛰다가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얼른 쫓아가 붙잡았다. 용 경장이 오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뛰던 무당할머니는 갑자기 두 팔을 잡히자 발작하듯 소리 질렀다.

으아악! 잘못했어요. 한번만 봐주세요. 다신 안 그럴 게요. 때리지 마세요.”

용 경장을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젊은 시절 누군가에게 맞고 살았었는지, 무당할머니는 소리소리 지르며 빌고 몸부림쳤다. 잡힌 팔을 빼려고 온몸을 휘두르는 무당할머니의 힘과 유연함에 용 경장은 젊은이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무당할머니를 진정시키기 위해 용 경장은 한 손으로 할머니의 머리를 잡고 자신을 쳐다볼 수 있게 돌렸다.

할머니, 저예요! 저 좀 보세요.”

용 경장의 손에 머리를 결박당한 무당할머니는 그제야 용 경장과 눈을 맞췄다. 또렷이 용 경장의 눈을 응시하는 무당할머니의 새카만 눈동자 안에는 막막한 공포가 가득했다. 용 경장을 보고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몇 초간 버둥거리던 무당할머니는 뒤늦게야 용 경장을 알아봤는지 용 경장을 위에서 아래로 쭉 훑어보더니 스르르 온몸의 힘을 풀었다. 무당할머니가 쓰러지듯 주저앉으려는 걸 용 경장이 부축해서 천천히 바닥에 앉혔다.

하아! 용 순경.”

무당할머니는 깊은 한숨과 함께 용 경장을 불렀다. 용 경장을 바라보는 무당할머니의 눈은 여느 80대 노인과 다름없는 탁한 갈색이었다. 용 경장은 치매 기가 있다가 이제 제정신으로 돌아왔나 보다 했다.

, 할머니. 저 알아보시겠어요?”

용 경장이 근무하는 중산파출소 경찰들은 모두 한 번씩은 실종된 무당할머니를 찾아 온 경험이 있어서 무당할머니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무당할머니는 소장과 용경장만 기억했다. ‘아줌마 순경용 순경으로.

내가 용을 못 알아보겠느냐?”

용은 제 성이고요.”

무당할머니가 아직도 신이 서려있어서 용 경장의 모습에서 용이 보였던 것인지, 성이 씨라 용이라고 말한 것인지 용 경장은 알 수 없었다. 무당할머니는 한 팔을 들어 자신이 뛰어나온 고추밭 너머를 가리켰다.

가지 마.”

저 집이오?”

고추밭 너머엔 오래된 빈집이 손가락만 튕겨도 허물어질 것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무당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귀신이 있어.”

귀신이라는 말이 다른 사람도 아닌 전직 무당의 입에서 나오니 용 경장은 심장이 내려앉았다. 팔뚝의 털이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깜짝이야. 귀신이라니요. 할머니 때문에 소름끼쳤잖아요.”

용 경장은 농담하지 마시라고 웃으며 말했다.

가지 마.”

, 안 갈게요. 걱정 마세요. 여기서 저랑 잠깐 쉬고 계시면 조카가 모시러 올 거예요.”

잠시 후, 아이들이 용 경장과 무당할머니 곁으로 왔다. 아이들을 보자 무당할머니는 귀신이 있으니 저 집으로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몇 분 후, 무당할머니의 조카가 낡은 용달을 끌고 와 할머니를 모셔갔다. 멀어지는 용달을 확인한 용 경장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곧 비가 올 것 같아. ?”

용 경장이 돌아본 곳에 있어야 할 아이들은 이미 고추밭을 거의 지나 빈집에 다다르고 있었다.

, 이 녀석들아! 거기 가지 말라고 할머니가 말씀하셨잖아. 그리고 보고 싶은 빈집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하랬지?”

용 경장이 소리쳤다.

이 집이 보고 싶어요.”

경은이 용 경장을 향해 소리 치고는 잡풀이 우거진 마당으로 들어섰다.

저 놈들을 그냥…….”

용 경장은 아이들을 잡으러 고추밭으로 뛰었다. 고추밭을 지나 허물어진 담장 안으로 들어오자 깨진 시멘트 조각들이 밟혔다. 사람이 사용하던 시절에는 시멘트로 깨끗하게 정리된 마당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은 세월이 망아지 같은 저 아이들의 나이를 합쳐놓은 만큼이나 길어지자 금이 가고, 깨지고, 그 틈으로 풀이 자라고, 낯선 사람들과 짐승들의 발에 채여 쟁기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크고 작은 시멘트 조각들이 여기저기 뭉치고 흩어져 있었다. 용 경장의 발에 채여 구르는 시멘트 조각의 소리를 들었는지, 경첩 하나가 떨어져 기울어진 나무 문 안쪽에서 경은이 머리를 내밀고 말했다.

삼촌 여기 누가 사나 봐요.”

용 경장은 경은이 있는 곳으로 갔다. 사극에나 나올법한 부뚜막이 있는 부엌이었다. 경은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식은 밥과 뭇국이 있었다. 물론 수저도 함께였다. 아까 무당할머니가 고추밭에서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뛰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까 그 할머니가 귀신 주려고 올린 음식 같아.”

에에이, 설마요!”

경은이 거짓말 말라는 투로 말했다. 마루 삼촌이 귀신 이야기로 겁주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까 본 그 할머니가 젊었을 땐 용한 무당이었대. 점도 잘 보고, 굿도 잘 하고…….”

거짓말.”

그렇게 말하는 경은의 목소리가 영 자신이 없는 게 마음 한 구석에서 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눈앞에 있는 증거가 너무 확실해서 제대로 부정도 못하고, 제발 거짓말이길 바라는 모습이었다. 용 경장을 올려다보는 눈도 겁을 먹은 빛이었다.

진짜야. 소장님께 물어 봐. 우리 파출소에선 다들 무당할머니라고 부르니까.”

용 경장은 무당할머니를 고추밭에서 만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걷기도 힘든 노인네가 무얼 봤는지 헐레벌떡 도망쳐 나온 이야기며, 용 경장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이야기를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납량특집극처럼 꾸몄다. 용 경장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던 경은이 뒤로 슬며시 물러나며 말했다.

집이 너무 오래돼서 무너질 거 같아요. 집안은 위험할 것 같으니까 바깥만 찍을래요.”

경은은 기울어진 나무문 밖으로 냉큼 나가 진작부터 나가 있던 산호와 함께 집 뒤쪽으로 갔다. 곧 죽어도 귀신이 무섭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경은과 겁 많은 산호였다. 용 경장은 무당할머니 외에 다른 사람의 흔적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집안을 살펴보았다. 빈집은 범죄자의 은신처가 되기도 하고, 비행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되기도 하고, 범죄 현장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부엌에 있던 밥과 국은 무당할머니가 귀신에게 올린 젯밥으로 보였지만, 용 경장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어야 하는 경찰이었다.

툇마루를 밟고 올라서서 방문을 가만히 열어보았다. 옛날 새마을운동 때 창호지 문을 없애고 만든 나무문이라 키가 큰 용 경장은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높이가 낮았다. 방안에 들어서자 눅눅하고 차가운 공기가 덮쳤다. 바깥도 비 오기 전의 습한 공기였지만 결코 차갑진 않았다. 깨진 창문으로 공기가 통했을 텐데도 이상하게 온도차가 심하게 느껴졌다. 용 경장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곰팡내가 살짝 난 것 외에는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았다. 용 경장이 들어온 반대편에도 문이 있었다. 그 문을 여니 오래된 싱크대가 있는 부엌이 있었다. 옛날식 시골집은 이렇게 구식과 신식 부엌이 모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부엌 한쪽에는 작은 금성냉장고도 있었다. 그리고 냉장고 옆, 용 경장의 시야에서 잘 안 보이는 쪽에 사람의 엉덩이가 보였다.

허억!”

용 경장은 너무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만 냈다. 쪼그리고 앉아 냉장고 뒤에 숨은 사람은 안타깝게도 냉장고가 너무 작아 몸을 다 숨기지 못하고 있었었다.

, 누구세요?”

용 경장이 나오지 않으려는 목소리를 억지로 밀어내 물었다.

잘못했어요. 때리지 마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가냘프게 말한 사람은 젊은 여자였다.

저는 경찰이에요. 저 말고는 아무도 없어요. 이쪽으로 나오세요.”

용 경장은 가까이 다가갔다가 무서움에 떠는 여자를 더 겁나게 만들까봐 그 자리에 서서 조용조용 말했다. 여자는 앉은 채로 고개만 내밀어 용 경장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힘들게 일어선 여자를 본 용 경장은 놀라움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때리지 말라고 공포에 떠는 목소리로 빌던 여자는 만삭의 임신부였다.

괜찮으세요?”

용 경장이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런 곳에 계세요? 여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한 집이에요. 댁이 어디에요? 제가 모셔다드릴 게요.”

아니요. 여기가 편해요.”

여자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집안에 편하게 앉아있어도 힘들 임신부가 바람도 제대로 막아줄 수 없는 폐가를 편하다고 하다니, 도대체 이 여인은 무엇으로부터 숨은 것인지 알아내서 도와줘야할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으세요? 제가 도와드릴 게요.”

여자는 얼른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저한테 말씀하시기 힘드시면 저희 파출소에 여경도 있으니까 같이 가요.”

여자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저 여기서 나갈 수 없어요. 안 돼요.”

여자의 얼굴이 금세 공포에 질렸다. 용 경장은 처음에 여자가 했던 말 때리지 마세요.’를 떠올렸다. 누군가 임신부를 때렸고, 그 사람으로부터 피신해 온 거라고 자연스럽게 짐작되었다.

혹시 가정폭력 때문에 여기로 피신해 오신 거예요?”

무서움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던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굴러 내렸다.

그 사람이 남편분이세요?”

남편이라는 말에 여자는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남편이 옆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주눅이 들어서 부들부들 떨었다.

이 개…….’

용 경장은 속으로 이 여자의 남편을 저주하고 욕을 퍼부었다. 어깨를 움츠리고 스스로를 꼭 끌어안는 여자의 팔이 가느다랬다. 어떻게 만삭의 임신부 팔이 저럴 수가 있을까. 임신기간 내내 얼마나 시달림을 받은 것일까. 어떻게든 이 가련한 여인을 돕고 싶었다. 몇 번 더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드리겠다고 설득해 봤지만 여자는 요지부동이었다.

여기 계속 있다가 남편분이 찾아오면 어떡해요? 저랑 같이 가시면 경찰이 지켜드릴 거예요.”

여자는 용 경장이 지나왔던 방을 가리켰다.

저 방에 벽장 있어요. 거기 숨으면 돼요. 아까도 거기 숨었어요.”

용 경장은 열려 있는 문으로 방안을 대충 훑어봤다. 한쪽 벽에 벽장이 있었다. 벽장 문이 벽과 같은 벽지로 도배가 되어 있어서 아까는 눈에 띄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여자의 아까라는 말이 걸렸다.

혹시 아까 남편분이 왔었어요?”

여자는 고개만 급하게 끄덕였다. 용 경장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거 봐요. 여긴 남편한테 들킬 수 있어요.”

그래도 안 들켰어요. 아까 그 사람, 집 바깥으로만 둘러보다가 갔어요.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괜찮아요.”

남편이 왔었다는 건 이 장소가 남편도 아는 곳이라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마음 같아선 번쩍 안아서 데리고 나가고 싶었지만 상대는 임신부였다. 안 나간다고 버티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었다. 용 경장은 설득할 다른 말들을 찾아보았다.

식사는요? 홀몸도 아니신데 여긴 먹을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용 경장이 찾아낸 다른 핑계거리는 끼니였다.

밥을 챙겨 주시는 착한 할머니가 있어요.”

고추밭에서 뛰어나오던 무당할머니가 생각났다. 요즘 무당할머니가 이곳 매화마을에서 자주 발견됐던 이유가 이 여자 때문인 거였다. 아까는 이 여자의 밥을 챙겨주러 왔다가 남편을 발견하고 도망쳐 나온 거라고 유추해보니 무당할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이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 집을 귀신이 있는 집이라고 말한 것 같았다.

생각보다 멀쩡하네.’

치매가 오면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더니 무당할머니의 상태는 정신이 나갔을 때보다는 들어왔을 때가 더 많은가 보다. 아무튼, 거동도 힘든 할머니가 고작 챙겨줄 수 있는 건 식은 밥과 뭇국이다. 그나마도 삼시세끼를 잘 챙겨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 여자를 빨리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야만 했다.

삼촌!”

밖에서 경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밖에 누가 왔어요. 어떡하지?”

깜짝 놀란 여자가 사색이 된 얼굴로 허둥지둥 용 경장을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안심하세요. 중학생 여자애예요. 제 조카예요.”

용 경장은 일부러 여자애를 강조해서 말하며 안심시키려 했지만 여자는 벽장문을 열고 쏙 들어가 버렸다. 그 무거운 배를 하고 허리 높이의 벽장을 날렵하게 오르는 모습이 너무나 익숙했다. 밖에서 작은 소리만 나도 겁을 집어먹고 하루에도 열 번은 들락거렸던 것 같았다. 여자가 벽장문을 닫자 집안은 원래 사람이 없었던 모습이 되었다. 이렇게 있으면서 없는 듯 며칠을 보냈을까. 용 경장은 귀신같은 거 믿지 않지만 그래도 폐가는 들어오기 꺼림칙했다. 그런데 벽장 속의 여자는 얼마나 남편이 무서웠으면 이런 데서 며칠 동안이나 숨어 살았을까. 용 경장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개새끼 잡히면 머리를 박살내버릴 테다.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이 쥐어졌다.

? ? 왜 불렀어?”

용 경장이 툇마루로 나가며 소리 질렀다. 마당에서 용 경장을 찾던 경은과 산호가 용 경장의 서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왜 화를 내요?”

경은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용 경장은 아차 싶었다. 화를 낼 대상이 이쪽이 아닌데 얼떨결에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고 말았다.

! , 미안.”

그 안에 뭐 있어요?”

용 경장이 화를 누그러뜨리니 경은의 호기심이 상승했는지 툇마루로 올라오려 했다. 용 경장은 경은을 말리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왜 불렀는데? 집에 갈까? 비가 올 거 같아.”

! 그것도 걱정이었다. 일기예보에선 오늘 저녁부터 폭우가 쏟아질 거라고 했는데, 이 집이 비를 제대로 막아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산의 초입에 자리 잡고 있어서 흙더미가 무너져 내릴 위험도 있었다.

집 뒤에 누가 흙을 파헤쳤다가 덮은 흔적이 있어요. 시체를 묻었을지도 몰라요.”

아니야, 뭘 심으려고 갈아놓은 거야.”

저런 언덕에다가 심긴 뭘 심어? 저렇게 손바닥만 한 땅에 뭘 심어 먹을 수가 있어?”

약초 같은 거, 더덕 같은 거 심을 수도 있지.”

두 아이가 집 뒤에서 무얼 봤는지 서로 옥신각신이었다. 용 경장은 아이들을 앞세우고 집 뒤로 갔다. 아이들 말대로 흙을 파헤친 흔적이 있었다. 경은의 말대로 깊이 팠다가 다시 덮은 것인지, 산호의 말대로 무얼 심으려고 삽으로 대충 갈아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용 경장이 농사를 지어봤으면 금방 구분했을 텐데, 그런 쪽으로는 서울 촌닭 김 순경과 매한가지였다. 흙을 만져보니 이렇게 된지 하루도 안 된 거 같았다. 두 손으로 파헤쳐보고 싶었다. 흙이 아직 물러서 용 경장의 손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 야생의 용마루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나중에…….’

이건 나중에 내가 조사해 볼 테니까 일단 오늘은 철수하자. 하늘 봐봐. 오늘부터 폭우가 쏟아진댔어.”

용 경장은 싫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떠밀어 차로 향하게 했다. 아이들이 고추밭을 지나 산비탈을 완전히 내려간 걸 확인한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계속 들렸으니 여자는 아직까지 나오지도 못하고 벽장에 숨어있는 게 확실했다. 용 경장은 벽장 앞에서 차분하게 말했다.

아까 그 경찰이에요. 이제 아이들 데리고 갈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나간 다음에는 안심하고 나오셔도 돼요. 그 안은 너무 좁아서 힘들잖아요.”

용 경장은 여자가 뭐라 대답이라도 해 주길 바라며 말을 끊었다. 몇 초간 조용하던 벽장문이 조금 열렸다. 여자가 문틈으로 눈만 내놓고 이리저리 살폈다. 그 두려움 가득한 눈빛에 용 경장의 분노가 다시 들끓었다.

혹시……, , 남편분 성함이랑 주소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 가서 선생님이 여기 계신 걸 알려주려는 게 아니라 제가 뭘 좀 알아볼 게 있어서 그래요.”

여자는 살짝 보이는 눈으로 용경장의 눈치를 살폈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절대로 선생님에 대한 얘기 안 할 거예요. 임신부를 그렇게 때릴 정도면 다른 데서 폭력을 휘둘렀을 가능성이 커서 그래요. 다른 폭력 피해자가 없나 찾아보고, 필요하면 그 사람 체포해서 감옥에 넣을 거예요. 그러면 안심하고 나오실 수 있으시죠?”

여자는 머뭇거리다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제가 잘못한 거예요.”

여자가 힘없이 입을 열었다.

그 사람 나쁜 사람인줄 알면서, 사는 게 너무너무 끔찍해서, 술집보다 나을 것 같아서 따라나섰어요. 그래도 처음에는 잘해줬어요. 아이가 생긴 다음부터 때리기 시작한 거예요. 아이를 지우라고 했는데, 제가 고집 부리고 낳겠다고 했거든요.”

선생님은 잘못한 거 없어요. 아무리 엄마 뱃속에 있어도 심장이 있는 이상 독립된 생명이에요. 함부로 죽이면 안 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잘못한 거예요. 선생님은 옳은 선택을 하셨고, 저는, 경찰은 선생님을 보호해드릴 거예요.”

이것은 용 경장의 의무이자 결심이었다.

, , . 장서리 79-1번지요.”

용 경장은 잊기 전에 얼른 수첩에 적었다. 그 사이 여자는 조용히 벽장문을 닫았다.

집으로 가는 내내 아이들은 아까 봤던 빈집 뒤의 땅에 대해 티격태격했다. 경은은 분명히 누군가 시체를 묻었을 거라는 주장이었고, 산호는 더덕이나 황기 같은 오래 될수록 좋은 약재를 심기 위해 갈아놓은 거라고 반박했다. 아이들의 생각은 부모의 직업을 따라가는 모양이라고 용 경장은 생각했다.

얘들아! 삼촌 운전하는데 좀 조용히 해 줄래?”

아이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용 경장이 한마디 했지만 약발은 잠시 뿐이었다. 잠깐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목소리가 커졌다. 용 경장은 아이들을 집 앞에 내려다 줄 때까지 정신 사나움을 견디면서 운전해야 했다.

아이들을 내려준 후, 차를 돌려 장서리로 향했다. 다행히 장서리는 중산파출소 관할구역이어서 용 경장이 움직이기가 용이했다.

박정택의 집은 단독주택과 연립주택들이 있는 주택가의 가장자리 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박정택의 집에서 마을 중심가 쪽으로는 연립주택과 단독주택들이 무질서하게 있었고, 반대쪽은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다. 오래된 작은 단층집 대문 앞을 기웃거리던 용 경장은 안에 아무도 없음을 감지하고 돌아섰다. 감기 때문에 냄새는 잘 맡지 못해도 귀는 멀쩡했다. 그런 용 경장의 귀에 아무런 움직임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대로 아무런 소득도 없이 가야하나 주저하고 있는데, 이삼십 미터 쯤 떨어진 집 마당에서 동네 아줌마로 보이는 중년의 아낙 셋이 낮은 담장에 바짝 붙어 용 경장을 쳐다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용 경장은 혹시 뭔가 도움 될 만한 게 없을까 싶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 집에 무슨 일 났어요?”

용 경장이 가까이 가기도 전에 한 아줌마가 소리쳐 물었다. 용 경장은 그 집 앞까지 가서 말했다.

혹시 박정택이라는 사람 아세요?”

저 집 남자 이름이 박정택이야?”

한 아줌마가 묻자 다른 아줌마가 대답했다.

몰라. 아무튼 박 씨야.”

일단 들어와요. 날도 더운데 고생이 많으시네.”

용 경장은 뭐라도 들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아줌마들이 있는 마당으로 들어갔다. 넓은 마당에는 파라솔이 설치된 평상이 있었다. 용 경장이 평상에 앉자 한 아줌마가 안에서 냉커피를 내왔다.

그 박 씨가 사고 쳤어요?”

또 누구 두들겨 팼나?”

그 인간 큰일 낼 줄 알았어.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선들 안 샐까.”

아줌마들은 용 경장이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떠들었다.

그 사람이 누굴 잘 패요?”

아줌마들의 말 틈새를 비집고 용 경장이 얼른 물었다.

여자를 그렇게 패고 난리야.”

한 아줌마가 용 경장이 가장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아줌마는 박정택의 집 바로 옆에 있는 연립주택에 살고 있었다. 아줌마의 집에서 창문을 열어 놓으면 박정택의 집 마당에서 하는 말소리가 잘 들렸다. 물론 박정택이 집 안에 들어가서 하는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싸우는 소리는 또 잘 들렸다. 주로 들리는 소리는 박정택의 고함소리, 뭐가 깨지는 소리, 여자의 비명 등이었다.

그래도 이번 여자는 같이 소리 지르고 싸웠어.”

그 여자 대단하네. 그러다 더 맞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싸우고 맞으면서 왜 같이 살아?”

그러니까 여자들이 안 붙어 있고 계속 바뀌지. 계속 붙어 있으면 그게 정신 나간 년이지.”

잠시만요. 여자가 많이 바뀌었어요?”

아줌마들의 말을 뚫고 용 경장이 물었다.

대판 싸우고, 비명 지르고, 살림살이 다 깨부수고 나면 그 다음날부터 한동안은 집이 조용해요. 여자가 집 나간 거지 뭐.”

근데 저 백정 같은 인간이 여자 꼬시는 재주는 좋은지, 얼마 안 있으면 또 딴 여자가 들어와서 살아.”

박정택이 그 집에 이사 온 지가 십 몇 년 되었는데, 처음 이사 올 때 같이 온 여자를 비롯해서 그동안 예닐곱 번은 여자가 바뀌었다고 했다.

애는 없어요?”

용 경장이 물었다.

다행히 애는 없어요. 애가 있었으면 그 애는 또 얼마나 쥐어 팼겠어요?”

여기엔 애가 없는데, 다른 데 있을 지도 모르지.”

그게 뭔 소리야?”

첨에 같이 이사 왔던 여자가 나중에 임신해서 배가 꽤 불렀는데, 그 배를 하고 나갔지. 이삼 년 전에 살던 여자도 임신했던 걸로 아는데, 유산을 했는지 임신한 채로 집을 나갔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 미친놈이 임신했는데도 그렇게 때리더라니까요.”

염병!”

아줌마들은 박정택을 성토하는 말들을 욕을 듬뿍 쳐서 쏟아냈다.

지금도 여자랑 같이 살고 있어요?”

용 경장이 아줌마들의 욕설을 잠재우고 물었다.

며칠 전에 한바탕 하더니 또 조용해진 거 봐선 그 때 나간 거 같아요.”

그 분도 임신하지 않았나요?”

용 경장의 질문에 아줌마들은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너 못 봤어?”

한 아줌마가 박정택 옆집에 사는 아줌마에게 물었다.

이젠 신경 쓰기도 싫어서 싸우는 소리 나면 문 닫아버려. 애 공부해야 되는데, 그놈의 집구석 이사도 안 가고…… 암튼, 그 여자 얼굴도 몰라.”

동네에서 오다가다 본 적 없으세요? 마트 가실 때라든지요.”

매화마을 빈집에 숨어있는 임신부의 이야기가 나올까 하고 용 경장이 다그쳐 물었다.

그 집 여자들은 밖에 잘 안 나와요. 만날 눈탱이가 밤탱인데 창피해서 어떻게 나와요? 깜깜할 때 이따만한 썬글라스 끼고 모자 쓰고 나오더라고요. 근데, 이번 여자는 그것도 못 본 것 같네. 그래도 처음 이사 왔던 여자는 인사도 하고 통성명도 했는데…….”

이름이 뭐더라?”

미정이? 영미?”

그 비슷한 이름이었는데, ‘자가 들어갔는데…….”

아줌마들은 오래 전에 떠나버린 이름을 기억하느라 애썼다.

그렇게 싸우고 때리는데 경찰에 신고는 안 하셨어요?”

용 경장이 물었다.

처음 삼사 년은 동네 사람들이 신고를 몇 번 했지. 근데 경찰이 오면 뭐해요? 여자가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하면 그냥 가는데. 그래서 나중에는 싸우는 소리 나면 다들 그러려니 해요.”

동네 아줌마 삼총사 덕분에 박정택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용 경장은 경찰이 왜 박정택을 찾느냐는 아줌마들의 질문에 교통범칙금을 안 내서 그렇다고 얼버무리고 파출소로 향했다.


용 경장이 파출소에 도착했을 때, 소장은 송골계곡 여름파출소 지원을 나가고 없었다. 원래는 이 경사와 김 순경이 가 있었는데, 오늘 밤 폭우에 대비해 계곡에 놀러온 피서객들을 미리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일행이 숫자가 많은데다가 술까지 마셔서 여름파출소 인원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근처 파출소들에서 상황 되는 경찰들이 출동하게 되었다.

용 경장은 소장에게 매화마을에서 만난 임신부와 박정택에 대해 보고하고 도와줄 방법을 강구하려고 했지만 내일로 미뤄야 했다.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나 야간 근무조가 출근해 있었다. 용 경장은 퇴근 후에 다시 그 집에 가 볼 생각이었다. 용 경장이 퇴근 전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파출소 전화기가 울렸다. 용 경장은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난 후라 별 신경 안 쓰고 보고서 작성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용이오?”

전화를 받은 야간 근무조의 경찰이 놀라 소리쳤다. 용 경장은 자판을 놀리던 손을 멈추고 그 쪽을 바라봤다. 다른 경찰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그 쪽만 쳐다봤다. 용이 용송경찰서 위를 천천히 배회하고 있다는 전화였다. 전화한 경찰은 혹시 용 경장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이 되어 전화한 것이었다.

용경장의 아버지(법적인 아버지 용태수가 아니라 용 경장을 키운 용을 말한다.)가 어린 아이를 납치했다가 용 경장의 활약으로 아이를 구출한 소동이 있은 지 두 달 가까이 지났다. 용태수와 우리나라 용을 지키는 회원들의 노력으로 100년 가까이 숨어 지내던 용들이 이제는 대한민국의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용이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는 말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용을 발견하고 옆에 서서 셀카를 찍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가는 사람도 있는 상황이었다. 용태수와 회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용 경장과 용의 관계를 모른다. 때문에 파출소로 전화를 건 경찰은 용으로부터 아이를 구출한 용 경장을 찾아 복수를 하려고 용이 경찰서 위를 배회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틀렸지만 용이 용 경장을 찾는 건 맞았기에 용 경장은 보고서를 대충 정리하고 나와 자전거를 타고 용송경찰서로 향했다. 가는 내내 매화마을의 임신부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 여인이 오늘 밤도 무사히 보내길 바랄 뿐이었다.

용 경장이 용송경찰서가 멀리 모이는 곳까지 이르자 하늘에 떠 있던 용은 아들을 발견했다. 아버지와 눈을 마주친 용 경장은 자전거를 돌려 집으로 달렸고 용은 높이 날아올라 아들을 쫓았다. 용 경장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슈퍼에 들러 여러 가지 채소와 육류를 잔뜩 사가지고 커다란 비닐봉투 네 개에 꽉꽉 채워서 집으로 들어갔다.


인적이 뜸한 캄캄한 밤이 되자 용은 하늘에서 내려와 용 경장이 마당 평상 위에 펼쳐 놓은 채소와 고기들을 먹었다. 방에 있던 용 경장은 그 소리에 마당으로 나왔다.

오랜만이에요, 아버지.”

그래.”

용은 먹느라 바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부자(父子)는 납치사건 이후 두 달 남짓 만에 처음 만난 것이었다.

배가 많이 고프셨나 봐요.”

하늘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러게요. 왜 그렇게 오래 계셨어요?”

용은 이젠 대답을 끊었다. 용 경장은 아버지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몇 분만에 게 눈 감추듯 채소와 고기들을 먹어치운 용은 하늘을 향해 용트림을 한 번 하더니 안정된 자세로 똬리를 틀었다.

마당이 좁구나.”

아버지가 큰 거예요. 왜 그렇게 오래 떠 계셨어요?”

회원들이 네가 내 아들이란 걸 절대 비밀로 하라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다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우리나라 용을 수호하는 회원들은 세상 사람들이 용에 대해 알아선 안 될 비밀들을 지키기 위해 용이 세상에 나가 해도 되는 일과 해선 안 될 일을 귀가 아프도록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용에 대해 알아선 안 될 비밀 중 하나가 용혈(龍血)이었다. 용혈을 먹고 자란 용 경장의 특별한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면 나쁜 마음을 가진 인간들이 살아있는 용의 피를 얻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용 경장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무조건 숨겨야한다고 입이 닳도록 강조했다. 용의 말을 들은 용 경장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하늘에 몇 시간 계시느라 고생하셨네요. 사람들 앞에서 저랑 친하게 보이셔도 되요. 사람들이 무슨 사이냐고 물으면 그냥 친한 사이라고 하시면 돼요.”

용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렇게 말하면 되겠구나.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용은 거짓말을 못 한다. 거짓말을 할 때도 있지만 너무 티가 났다. 용마루가 내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용마루와 친하다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용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어쩐 일이세요?”

조금 있으면 큰비가 올 거다.”

네 알아요. 일기 예보에서 폭우가 쏟아질 거라고 했어요.”

너랑 같이 비를 맞으려고 왔다.”

용은 물을 좋아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은 더 좋아한다. 특히 폭우라면 더없이 좋아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폭우를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족과 함께 맞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용이 키우던 자식 넷 중에 셋은 용이 살기 좋은 곳을 찾아 훌쩍 떠나버리고, 아내는 장기수면(長期睡眠)에 들어가 있어서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은 막내인 용 경장뿐이었다.

당연히 비를 맞아야죠.”

인간인 용 경장은 그냥 비도 아닌 폭우를 맞으며 날아다니는 게 썩 내키진 않았지만 아버지를 위해 좋아하는 척했다. 오랜만에 만난 부자는 비를 기다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시체가 맞다니까.”

누가 거기다 왜 시체를 묻냐고. 너는 망상이 너무 심해.”

촉이야. 경찰의 촉!”

너네 엄마가 경찰이지 니가 경찰이야?”

가서 파 볼래?”

팠는데 시체 안 나오면?”

나와. 무당할머니가 귀신 있다 그랬잖아. 분명히 거기 묻힌 시체의 영혼이야.”

경은과 산호는 동아리방에 앉아서 매화마을에서 봤던 빈집 뒤에 시체가 묻혀 있다, 아니다를 놓고 티격태격했다. 그러다 거기에 다시 가서 땅을 파보자는 결론을 냈다.

거기 가려면 차가 있어야 하는데, 땅 파러 가자고 하면 마루 삼촌이 당근 안 갈 텐데…….”

나 그 삼촌 무서워. 같이 가기 싫어.”

어차피 마루 삼촌은 안 갈 거야. 넌 쎈 남자만 보면 그렇게 기가 죽더라.”

경은이 매화마을까지 갈 교통수단 때문에 고민하자 산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라고 부르며 매화마을 빈집 이야기를 간략하게 했다. ‘라방, 구독자, 좋아요등의 이야기를 하며 같이 가자고 졸랐다. 20분이 넘게 통화를 하다가 전화를 끊은 산호가 의기양양하게 씩 웃었다.

누구야?”

우리 사촌 형인데, 재수 학원 다니거든. 근데 그건 페이크야. 사실은 우리 외삼촌이랑 외숙모 몰래 유튜브 해. 그래서 시체가 나올지도 모르는 장소가 있으니까 거기 파는 거 라방 하자 그랬어. 팠는데 진짜로 시체가 나오면 구독자 수 확 올라가고, 좋아요 터질 거라고 꼬셨더니 넘어왔어.”

그 형 차 있어?”

누가 재수생한테 차를 사주냐?”

근데 왜 꼬셨어?”

면허증은 있으니까 외삼촌 차 몰래 가지고 나온대. 그래서 외삼촌 잠든 다음에 움직여야 돼.”

이 깜찍 발랄한 10대들은 그렇게 위험한 작당모의를 했다.


용 경장과 소장은 모니터를 보며 점점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이 놈 이미 폭력 전과가 있잖아.”

박정택은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길 가던 여성을 폭행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었다. 15년 전의 일이었다. 같이 사는 여자들을 그렇게 많이 때렸다는데, 의외로 폭력 전과는 그거 하나였다. 서울에서 살다가 장서리로 이사 온 건 13년 전이었다. 혼인신고 이력은 없었다.

혼인신고를 한 적이 없으니 그동안 같이 살았던 여자가 누군지 알 수가 있나.”

모니터를 향해 구부정하게 등을 구부리고 있던 소장이 허리를 펴며 말했다.

매화마을로 가 봐야겠어요. 그 여자 신원 확인을 하면 가족이나 누구 도와줄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겠죠?”

퇴근해야지. 오늘 많이 피곤했을 텐데…….”

자정 무렵부터 쏟아진 폭우로 오후 내내 소방대와 경찰은 여기저기 사고 수습하느라 바빴다. 용송시에는 계곡과 강에 피서객이 많은 편이었다. 비가 오기 전에 위험지역에서 피서객들을 대피시키긴 했지만 예상보다 강렬하게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피서객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늦은 오후부터 빗줄기가 조금 약해지긴 했어도 여전히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내일 낮에 좀 쉬면 되요.”

! 내일은 야근인가?”

.”

그러면 나랑 같이 가.”

용 경장은 창밖을 내다봤다. 구청에서 산사태에 대비해 매화마을 주민들을 마을 회관으로 모두 대피시켰다는데, 그 중에 임신부는 없다고 했다. 보나마나 그 사람은 없는 척 벽장 안에 숨어 있을 게 뻔했다. 쏟아지는 비를 보며 소장이 정리하고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왠지 전화 소리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며 김 순경이 전화 받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니나 다를까

소장님! 무원교가 무너졌답니다.”

뭐어?”

파출소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소리쳤다.

다리를 건너던 승용차가 아래로 떨어졌는데 안에 운전자가 갇혔답니다. 지금 물이 상당히 불어 있어서 사람들이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답니다.”

무원교가 지나는 주양천은 평소엔 깊이가 성인 무릎까지도 오지 않는 개천이었다. 가뭄 땐 물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자정부터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우에 지금은 성인 허리 높이까지 불어나 있었다.

대체 해마다 안전검사를 어떻게 한 거야? 40년도 안 된 다리가 비 좀 온다고 무너져?”

소장은 열을 내며 뛰어나갔다. 그 뒤를 파출소 직원들이 줄줄이 따라 뛰었다.


주양천은 물이 한참 불어나 물길 양 쪽으로 나 있는 산책로와 자전거 길까지 범람한 상태였다. 따라서 평상시보다 두 배로 강폭이 늘어난 데다 거센 물살에 폭우까지 합세해 강 한 가운데에 옆으로 누워있는 차까지 접근하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처음엔 파출소 직원들뿐이라 이렇다 할 장비도 인원도 없어서 고전하다가 소방대가 도착한 후에야 겨우 차까지 접근한 것이었다. 소방차에 연결된 밧줄을 허리에 묶은 용 경장이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흉폭한 강으로 뛰어들었다. 물살에 떠내려가다가 다시 올라오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사고 차를 잡을 수 있었다. 용 경장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용 경장이 허리에서 밧줄을 풀어 차 바퀴에 고정시키자 그 밧줄을 잡고 소방관과 경찰들이 하나둘씩 강으로 들어와 인간 띠를 만들었다. 용 경장은 혹시나 하고 찌그러진 문을 잡아당겨 보았지만 예상대로 문이 열리지 않았다. 강가에서부터 쇠지렛대가 사람들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어 오고 있었다. 그걸로 어떻게든 문을 열어보라는 말이었다. 하늘을 향한 조수석 유리를 통해 운전자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보였다. 점점 더 불어나는 강물의 높이만큼 차안의 물도 차오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차안이 물로 꽉 찰 것이었다. 용 경장은 조수석 문을 밟고 올라섰다. 차는 넘어질 것처럼 기우뚱 했지만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버텼다. 구원을 갈망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운전자에게 비키라고 손짓했다. 운전자가 힘겹게 대시보드와 앞유리 사이로 몸을 붙이는 와중에도 물은 차 안을 계속 메우고 있었다. 용 경장은 두 팔로 얼굴을 감싸는 시늉을 했다. 운전자가 용 경장의 뜻을 알아듣고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자 용 경장이 쇠지렛대로 조수석 유리를 힘껏 내리쳤다. 한 번 만에 유리에 구멍이 나고 거미줄 같은 금이 생겼다. 맨손으로 금이 간 유리를 뜯어내 사람이 나올 수 있을만한 크기로 구멍을 키웠다. 운전자가 양 팔을 내밀자 용 경장이 두 팔을 잡고 잡아당겼다. 운전자는 후덕한 체격의 아저씨였지만 어렵지 않게 쑥 빠져나왔다. 운전자의 상체가 차 밖으로 나오자 비를 맞으며 제방 위에서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고무보트를 탄 소방관 두 명이 용 경장이 연결한 밧줄을 잡고 다가오고 있었다. 용 경장은 빗소리와 물소리를 뚫고 운전자에게 소리쳤다.

선생님 이제 안심하세요. 저기 고무보트 오면 으악!”

용 경장의 몸이 하늘로 붕 떠올랐다. 용 경장이 잡고 있던 운전자도 함께 하늘을 날았다.

이제 일이 끝나서 비놀이를 하고 있던 게냐?”

용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새벽부터 용 경장이 출근하기 전까지 아들을 안고 빗속을 날아다니며 물놀이가 아닌 비놀이를 했던 용은 아들의 퇴근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파출소에서 멀지않은 이곳에서 아들을 발견했다.

그거 아니에요, …….”

하마터면 용 경장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비 때문에 사고가 나서 이 사람을 구하는 중이었어요. 이 사람 어서 병원으로 데려가야 해요.”

그래? 그러면 아까 거기로 다시 갈까?”

용은 아래로 향했다. 아들을 낚아챘던 사고차 위에 둘을 내려주려 했다.

여기 말고요, 저쪽에 빨갛고 큰 차 보이시죠? 그 쪽에 내려 주세요.”

용이 둘을 소방차 옆에 내려주자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뛰어왔다. 운전자는 이미 실신한 상태였다. 다리가 무너져 추락하고 용에게 잡혀 하늘을 나는 초유의 충격을 연속으로 받았으니 맨정신으로 있는 게 더 이상했다. 용 경장이 운전자를 들것으로 옮기는 작업을 도와주고 일어서자 용 경장 옆으로 소방관 한 명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려앉았다. 잠시 후에는 경찰이 똑같은 얼굴로 내려앉았다. 용 경장은 그들의 모습과 주양천에서 철수하고 있는 구조대를 건져 올리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웃음이 터져나왔지만 차마 웃을 수는 없어서 안면근육에 힘을 주었다.

우리 아버지 참 귀여우셔!’

구조작업을 하던 경찰과 소방관들을 다 건져낸 용은 아들의 부탁으로 사고차까지 건져냈다. 이후로도 계속된 사고, 조난, 침수 신고 전화로 용 경장과 소장은 매화마을에 갈 수가 없었다. 용은 그저 아들과 함께 비를 맞는다는 게 신이나 아들을 따라다니며 구조 활동을 도왔다.


새벽 두 시 반.

산호의 외사촌 형 준익은 매화마을에 차를 세웠다. 경은과 산호가 먼저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고, 준익은 라이브방송 장비를 주섬주섬 챙겼다. 마을은 마을이 아닌 것처럼 깜깜했다. 어느 집도 불이 켜져 있지 않았고, 먹구름이 칠흑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들이 타고 온 차의 전조등이 유일한 빛이었다.

비가 그쳐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오늘 못 올 뻔했잖아.”

무슨 비가 그렇게 무식하게 오냐?”

그건 비가 아니라 폭포라고 해야 돼.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포!”

아무튼 비 때문에 울 엄마 아직도 퇴근 못하고 있잖아.”

그러다 너네 엄마 퇴근하면 너 들키는 거 아니야?”

방문 닫혀 있으니까 나 자는 줄 알겠지. 근데, 너네 형한테 내 얼굴 안 나오게 잘 찍으라고 단단히 일렀지?”

너랑 내 얼굴 절대 나오면 안 된다고 귀에서 피가 나게 얘기했어.”

경은과 산호가 스마트폰 불빛을 비추고 낯익은 고추밭을 향해 걸으며 이야기했다. 뒤에서는 준익이 머리에 헤드랜턴을 쓰고 라이브방송을 하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지금 제가 걷고 있는 이곳은 용송시에 있는 매화마을이라는 곳인데요, 산속에 노인들만 사는 동네라서 그런지 조용하고 음침합니다. 노인들이 원래 일찍 자잖아요. 그래서 지금 새벽 두 시 반밖에 안됐는데 불 켜진 집이 하나도 없어요. 제가 잘 아는 경찰 말에 의하면 이 동네는 노인들만 살기 때문에 인구가 계속 줄고 있대요. 돌아가시니까. 그래서 빈집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요, 지금 저는 지인의 제보를 받고 빈집 중에서 귀신이 있다는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귀신이 있다는 말은 진짜 무당이 한 말이에요. 제가 구독자 늘리려고 지어낸 말이 아니에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무당, 아니, 지금은 할머니가 되셔서 전직 무당이신데, 젊으셨을 땐 신빨이 장난 아니었다고 동네 어른들이 말씀하셨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전직 무당이셨던 그 할머니 모시고 인터뷰를 할 계획입니다.”

준익은 산호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거짓말을 살짝 보태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경은과 산호가 고추밭을 지나 빈집 앞에 섰다.

! 지금 제보자들이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바로 저 집인가 본데요, 우아! 툭 치면 무너질 거 같이 생겼어요.”

빈집 마당으로 들어선 준익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이곳저곳을 비추며 끊임없이 떠들었다. 산호가 가리킨 부뚜막 부엌에 들어가니 산호의 말대로 밥과 국이 있었다. 과감하게 숟가락으로 맛까지 본 준익은 상하지 않았다며 맛을 평가했다. 그 모습을 본 경은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오늘 여기 온 진짜 목적은 바로 어제, 아니죠. 열두 시가 지났으니까 그저께네요. 제보자들이 이 집 뒤에서 땅을 팠다가 덮은 흔적을 발견했다고 했거든요.”

준익은 안내하라고 손짓했다. 경은과 산호는 집 뒤로 향했다. 준익은 카메라로 둘의 뒷모습을 찍으며 따라갔다. 끊임없이 나불대는 입으로는 시체가 나오면 지금 라이브로 시청하는 구독자들은 다시없을 대단한 걸 생방송으로 보는 거라며 빨리 친구들에게 연락해 방송을 보게 하라고 부추겼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연락 안 해서 친구들이 이걸 생방으로 못 본다면 두고두고 원망할 거예요. 어서 연락하세요.”

채팅창에 설레발치지 마라.’, ‘이 시간에 깨워서 라방 보게 했는데, 시체 안 나오면 죽여버린다.’ 등의 글들이 쭉쭉 올라가고 있었지만 준익은 거기에 대해 전혀 대꾸하지 않고 제 할 말만 해댔다. 경은과 산호가 걸음을 멈췄다.

땅이 패였어.”

비가 그렇게 무식하게 왔으니 토사가 흘러내렸나보지.”

그런가 봐. 진흙이 장난 아니네. 발이 무거워.”

셋은 운동화에 잔뜩 붙은 진흙을 돌이나 나무를 차서 떨어뜨렸다. 경은이 시체가 묻혀 있다고 주장하는 자리로 가 바닥에 플래시를 비췄다. 준익은 흥분한 목소리로 이제 곧 시체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소리치고 스마트폰을 산호에게 넘겼다.

제보자님, 여기 잘 찍어 주세요. 여러분! 여기 땅을 팠다가 덮은 자리라서 그런지 이번 비에 많이 패여 있습니다. 원래 시체는 깊이 묻는 거거든요. 제가 한번 파 보겠습니다.”

준익은 목장갑을 끼고 허리에서 캠핑용 야전삽을 풀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산호는 땅을 파는 준익의 모습이 잘 보이게 조금 떨어져서 찍었다.

제보자님! 가까이 와서 여기 땅이 잘 보이게 찍어 주세요.”

준익의 말에 산호가 가까이 다가가 삽으로 파내고 있는 바닥을 찍었다. 준익은 땅을 파면서도 계속 떠들었다. 이따금씩 산호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에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말하기도 했다. 경은은 대단한 말발이라고 중얼거렸다. 흙이 물을 잔뜩 머금어서 무거웠지만 무르기도 해서 야전삽으로도 잘 파졌다. 이삼 분 쯤 파고 있으니 채팅창에 슬슬 지친다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왔다. 입으로는 뭔가 나올 것 같다고 떠들던 준익도 속으로는 아무 것도 못 건지면 그나마 있는 구독자마저 떨어져 나갈 거라고 걱정하고 있을 때 야전삽에 무언가 이상한 게 닿는 느낌을 받았다. 준익은 과장되게 놀란 얼굴을 카메라 앞에 들이대고 드디어 시체를 발견한 것 같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채팅창에는 거짓말 마라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갔다. 이미 야유나 조롱의 글에는 이골이 난 듯 준익은 아랑곳 않고 살살 흙을 긁어냈다.

가까이…….”

준익이 손짓하자 산호가 땅바닥에 가까이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 이거 옷인 거 같습니다.”

준익의 말대로 땅 속에서 옷이 나왔다. 그러자 채팅창에는 거짓말치지 마라.’, ‘미리 옷 묻어 놓고 쇼한다.’등의 글이 올라갔다. 준익은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옷이라도 묻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쓰레기가 나왔으면 엄청난 조롱과 욕이 올라왔을 텐데, 옷이 나와서 그나마 채팅창이 얌전히 올라가고 있었다.

옷이 아니라 시체일 지도 모르잖아요? 시체가 상하면 안 되니까 살살 더 파보겠습니다.”

속으로는 버려진 옷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시체인 척 떠들며 좀 더 넓게 흙을 걷어냈다.

여기 뭐가 걸리는데요. 돌인가? 일단 걷어내고요.”

준익은 돌을 잡았다가 비명을 지르고 뒤로 나자빠졌다. 경은과 산호도 준익의 비명 소리에 놀라 같이 소리 질렀다.

, 왜 그래? 놀랐잖아, 씨발!”

산호가 준익을 향해 소리소리 질렀다. 준익은 산호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낚아채 자기가 만진 것에 가까이 가져갔다.

, 씨발! 뭔가 물컹했어.”

그게 뭔지 다시 확인한 준익은 그대로 주저앉아 말도 못하고 비명만 꽥꽥 질렀다. 산호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소리 질렀다.

뭐야? 뭔데 그래?”

, 손이야.”

준익이 숨을 헐떡거리며 겨우 말했다. 일어나 도망치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손에서 스마트폰은 놓치지 않았다. 카메라는 계속 파헤쳐진 땅바닥을 향해 있었지만 준익의 의지가 아니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경은이 들어왔다. 경은은 손이 나온 곳을 가까이서 살폈다.

드디어 나왔구나. 답답했지?”

경은은 친구를 위로하듯 말했다. 준익과 산호는 그런 경은의 모습에 입을 딱 벌렸지만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아니,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경은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한 비가 경은의 눈물을 가렸다. 넋 나간 표정으로 경은을 보던 산호는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빗방울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 , 가자, . 비 온다.”

! 쟤 이상해. 쟤 좀 어떻게 해 봐.”

준익은 여전히 카메라를 경은에게 향한 채 산호에게 소리쳤다. 고개를 떨구고 소리 없이 울던 경은이 고개를 번쩍 들어 앞을 응시했다.

박정택! 이제 그만 해, 이 새끼야!”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지르는 경은의 소리에 산호와 준익은 숨이 멎을 듯했다. 산호가 알고 있는 경은이 아니었다. 준익은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산호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경은이 응시하고 있던 어둠 속에서 남자의 기합소리가 들렸다. 산호와 준익은 소리가 난 쪽으로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준익의 헤드랜턴이 비추는 빛 속으로 검은 형체가 뭔가를 들고 뛰어 들어왔다. 동시에 커다란 짐승 같은 것이 산호와 준익 사이를 순식간에 지나갔다. 둘은 트럭이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 엄청난 힘과 위압감을 느꼈다.

경은은 눈앞으로 돌진해 오는 정택을 피하지 않고 부릅뜬 눈으로 똑바로 쳐다봤다. 남자는 삽을 높이 들어 경은을 내리쳤다. 경은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준익과 산호가 비명을 지르고 엉덩이를 바닥에 질질 끌면서 뒤로 물러났다. 몇 초간 세찬 빗소리만 가득했다. 용 경장은 꼭 끌어안고 있던 경은을 살며시 떼어내며 얼굴을 살폈다.

경은아, 괜찮아?”

어어어어…….”

눈물에 푹 잠긴 눈으로 용 경장을 쳐다보는 경은은 말을 하지 못했다. 일단 경은이 다치지 않았음을 확인한 용 경장은 고개를 돌려 정택을 노려보았다.

야비하게 삽날로…….”

삽날에 등을 찍힌 용 경장이 너무나 멀쩡하게 자신을 노려보자 정택은 당황한 얼굴로 삽을 다시 높이 쳐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삽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온몸을 던져 정택을 쓰러뜨린 소장은 그의 손에서 삽을 빼앗아 던져 버렸다. 정택은 벌떡 일어나 자신을 쓰러뜨린 게 여자라는 걸 확인하고는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이 년이 감히…….”

소장은 달려드는 정택을 잡아 어깨 위로 넘겼다. 정택의 다리가 허공을 가르며 호를 그렸다. 그의 몸이 바닥에 충돌하자 진흙과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정택은 바닥과 충돌한 충격에 짐승 같은 비명을 질렀다. 소장은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정택 버려두고 경은에게로 달려갔다. 용 경장은 경은을 소장에게 안겨주고 정택에게로 걸어갔다. 경은은 그제야 엄마!’를 외치며 울었다. 정택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네 발로 기었다. 용 경장은 한 팔로 기어가는 정택의 허리를 감싸 번쩍 들었다. 허리가 들린 채로 용 경장에게 대롱대롱 매달린 정택은 소리 지르며 발악했다. 그러나 용 경장은 흔들림 없이 정택을 들고 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정택에게 수갑을 채우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너희들은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통화를 마친 용 경장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 지르자 일어서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던 산호가 한 손을 들어 시체를 가리켰다.

, , , 시체…….”

용 경장은 산호가 가리킨 곳을 살펴보더니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삽도 없이 파헤치는데도 흙이 뭉텅뭉텅 퍼내졌다. 용 경장은 흙을 파내며 자신을 한없이 원망했다. 힘으로라도 그 임신부를 데리고 나왔어야 했는데, 어제라도 와 봤어야 했는데……. 이 사람이 죽은 게 제 탓이라고 생각했다. 용 경장의 눈에서 눈물이 솟아나왔다. 몇 분 정도 흙을 걷어내자 시체의 몸이 반 이상 드러났다.

?’

시체를 확인한 용 경장은 예상 밖의 모습에 당황했다. 임신한 여자가 아니었다. 용 경장이 봤던 임부목이 아닌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여자였다. 얼굴도 달랐다. 죽은 지 며칠 안 된 모습인데 그 임신부가 아니었다. 용 경장은 벌떡 일어나 빈집으로 향했다.

어디가?”

경은을 끌어안고 있던 소장이 소리쳐 물었다.

그 여자가 아니에요.”

용 경장은 큰소리로 대답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벽장 앞에 섰다.

저 어제 본 경찰입니다. 문 열게요. 놀라지 마세요.”

용 경장은 혹시라도 여자가 놀랄까봐 천천히 벽장 문을 열었다. 빛 한 가닥 없는 어둠속이었지만 용 경장의 눈엔 벽장 안이 훤히 잘 보였다. 벽장 안을 본 용 경장은 생각이 멈추고 말았다.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고 폭우 속을 전속력으로 달려온 변 팀장이 활짝 열린 방문으로 들어왔다. 석상처럼 미동도 않는 용 경장 옆에 서서 손전등으로 벽장 안을 비춰 본 변 팀장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게 뭐야! 도대체 죽은 지 얼마나 된 거야? 완전히 백골이네.”

벽장 속에서 반쯤 벽에 기댄 채로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백골은 용 경장의 눈에 익은 임부복을 입고 있었다. 용 경장의 머릿속에서 이 임부복의 주인과 이야기를 나눴던 때가 그대로 복기되었다. 변 팀장은 꼼짝도 하지 않는 용 경장을 보고 피식 웃었다.

놀랐어? 너 설마 백골 처음 보냐? 그래도 경찰이 이렇게 당황하면 안 되지.”

변 팀장은 손전등을 이리 저리 비추며 집안을 살폈다. 방 옆에 있는 부엌을 둘러보고 나온 변 팀장은 용 경장의 등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 너 이거, 대체 얼마나 다친 거야?”

등판을 다 적신 피가 바지까지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변 팀장은 밖에다 대고 구급차 부르고 용 경장을 부축하라고 소리쳤다. 변 팀장과 함께 온 형사 하나가 방으로 들어와 용 경장을 부축해 나갔다. 용 경장은 형사가 이끄는 대로 밖으로 나와 툇마루에 앉았다. 삽으로 머리를 찍힌 것만 같았다. 누군가 뇌를 꺼내고 진흙을 채워 넣은 것 같았다. 용 경장이 넋 나간 사람마냥 멍하니 앉아있는 사이 형사들은 현장을 수습했고 비는 점점 잦아들었다. 산호와 준익은 울면서 내려가 경찰차에 탔다. 소장은 경은의 어깨를 꼭 감싸 안고 집 뒤에서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대로 마당을 통과해 고추밭으로 나가려는데 난데없이 무당할머니가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았다. 멍하니 있던 용 경장은 고개를 돌려 무당할머니를 쳐다봤다. 무당할머니는 들고 있던 우산을 떨어뜨리고 소리 내어 울었다. 경은의 두 손을 꼭 잡고 구부러진 등을 최대한 펴서 경은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다 끝났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가? 이제 편히 쉬시게.”

무당할머니는 한 손으로 경은의 팔을 위로하듯 쓸어내렸다. 소장은 경은과 무당할머니를 용 경장 옆에 앉혀놓고 무당할머니의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마친 후 소장은 경은에게 잔소리를 시작했다. 그러자 무당할머니가 소장을 향해 말했다.

아줌마 순경! 이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감히 용을 범할 수는 없어서 이 아이를 잠시 빌린 것뿐이니 아이를 너무 나무라지 말거라.”

뜻 모를 소리에 소장은 할머니의 치매가 다시 도진 건가 했다. 캄캄한 새벽에 빗속을 걸어 여기까지 왔으니 결코 제정신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무당할머니의 조카가 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

날이 밝기 전에 산호의 부모님과 준익의 부모님이 경찰서로 와 아들을 데려갔고, 용 경장은 병원에서 찢어진 등을 꿰맸다. 의사는 천만 다행으로 뼈는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삽 정도로 상할 뼈가 아니라는 걸 의사가 알 리 없었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용 경장은 아버지가 있는 정겨운 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마당에서 똬리를 틀고 자고 있던 용은 용 경장이 들어오는 소리에 눈을 뜨고 아들의 냄새를 맡았다.

다친 게냐?”

조금요.”

용은 아들의 등에 코를 대고 상처를 살폈다.

피를 꽤 많이 흘린 것 같구나.”

괜찮아요. 병원에서 치료해서…….”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다.”

피곤해서 그래요. 잠 깬 지 이틀이나 지났잖아요. 비가 또 올까요?”

날씨가 흐리긴 했지만 비는 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장마철이었다. 날씨를 본능적으로 정확하게 맞추는 아버지에게 날씨를 물었다.

당분간 비는 안 올 거다. 그러니 이제 나도 가야지. 근데, 오늘은 쉬고 내일 가려고 한다. 나도 사람들 구하느라 피곤했거든.”

새벽에 용 경장과 소장이 매화마을로 출발한 후에도 용은 소방대를 따라다니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면 저 아버지랑 잘래요.”

용 경장은 동글동글 말린 용의 몸을 기어 올라가 똬리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 안에서 잠을 자면 귀신 꿈은 안 꿀 것 같았다.

좁네요.”

네가 큰 거다.”

용 경장은 곧바로 잠에 빠졌다. 


꼬박 하루 동안 죽은 것처럼 잠을 잔 용 경장은 점심때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용은 아들에게 앞발을 내밀었다. 그 발톱에는 용혈이 고여 있었다. 다친 아들을 위한 용의 처방이었다. 용 경장은 한 숟가락 정도 되는 용혈을 말없이 받아 마셨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입에 대지 않았을 것이었다. 용혈을 계속 복용하다가 노을이 형처럼 용으로 변할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이걸 마셔야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갈 거다.”

용이 말했다.

어디로요?”

글쎄다. 서쪽으로 가 볼까? 먼저 알프레도를 맡긴 집부터 들르고 생각해 봐야겠다.”

용이 이 동네에 온 날, 알프레도를 바닥에 내려 놨더니 자기가 살던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고 했다. 이제 이 동네를 떠날 생각이므로 알프레도를 찾아 데리고 가려는 것이었다. 용 경장은 아버지에게 알프레도가 원래는 세바스찬인데 이름을 잘못 가르쳐드렸다고 자백하지 않았다. 두 달 남짓 지나는 동안 세바스찬도 알프레도라는 이름에 적응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야간 근무조인 용 경장은 조금 이른 출근을 했다. 소장과 동료들은 하루 더 쉬라고 했지만, 파출소의 적은 인원과 빠듯한 근무 시간표 상 그가 쉴수록 다른 사람이 고달파질 수밖에 없어서 쉴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버지의 품속에서 스물네 시간 넘게 잔 덕분인지 몸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용혈까지 복용해서 그런가 출근했을 땐 컬컬하던 목도 부드럽고 코도 제 기능을 거의 다 회복했다. 의사는 차 안에서 에어컨을 너무 세게 튼 게 감기의 원인일 수도 있다고 했다. 김 순경이 자기는 더위에 약하다며 차만 타면 에어컨을 세게 틀어대더니 용 경장이 감기에 걸리고 만 것이었다.

소장은 어제와 오늘 변 팀장에게 빈집 변사체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들었다.

집 뒤에 있던 변사체는 최근에 박정택과 같이 살았던 여자야. 동네 아줌마들이 며칠 전에 크게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잖아? 그날 그 여자를 죽여서 거기에 묻었어. 그러고는 비가 많이 오니까 흙이 떠내려가서 시체가 드러날까봐 삽을 들고 다시 거기에 갔는데, 애들이 있어서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대. 그런데 갑자기 경은이가 박정택을 부르니까 들킨 줄 알고 거기 있는 애들을 다 죽이려고 했대.”

새벽에 매화마을에 도착한 용 경장과 소장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뛴 덕분에 아이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 경찰은 빈집 주변에서 땅에 묻혀있는 시신 네 구를 더 찾아냈다. 모두 박정택의 짓이었다. 크게 싸우고 난 후에 같이 살던 여자들이 도망갔다는 아줌마 삼총사의 이야기는 틀렸다. 도망간 게 아니라 죽임을 당한 거였다. 벽장 안에서 발견된 백골은 박정택이 장서리에 이사 올 때 같이 온 장미영이었다. 아줌마 삼총사가 이름에 자가 들어갔다고 했던 그 여자였다. 처음 살인을 저지른 박정택은 당황해서 시신을 땅에 묻을 생각도 못하고 빈집의 벽장 안에 던져놓은 것이었다.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 내지는 가축 정도로 생각한 박정택은 조금만 기분이 나빠도 여자에게 온갖 행패를 부렸다. 그러다 죽으면 아무런 가책도 없이 땅에 묻었다. 박정택은 여자인 소장에게 당했다는 걸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소장은 찾아보면 제 2, 3의 박정택이 꽤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용 경장은 그 말이 틀린 게 아니라서 씁쓸했다.

산호는 연로하신 아빠 대신 기골이 장대한 큰형에게 눈물, 콧물이 쏙 빠지도록 혼쭐이 났다. 늦둥이라고 오냐오냐하는 부모님 대신 16살 차이 나는 큰형이 산호의 군기 담당이었다. 그래서 산호는 기골이 장대한 남자를 보면 기가 죽었다. 준익의 그날 라이브방송은 그 당시에는 시청자가 얼마 없었지만, 그 사건이 뉴스에 나오고 라이브방송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대박을 쳤다. 그러나 착실히 대입을 준비하고 있는 줄 알았던 부모님의 강요로 유튜브 계정을 삭제하고 스파르타식 기숙 학원으로 보내졌다. 경은에겐 다행하게도 비와 부들부들 떠는 준익의 손 때문에 화면에 얼굴이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다. 경은은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그날 새벽, 용 경장의 어깨 너머로 엄마가 박정택을 업어치기로 넘기는 모습을 보고, 운동 열심히 해서 엄마 같은 경찰이 되기로 했단다.

그 꿈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는데, 운동하는 동안은 딴 생각 안 할 거 아니야?”

소장은 경은의 그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근데 그 당시에 경은이가 박정택을 어떻게 알았을까? 나중에 물어보니까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네가 봤다는 그 임신부는 또 누구야?”

용 경장의 심장이 덜컹했다. 경은이 그날 장미영 귀신이 씌운 거라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변 팀장은 용 경장이 출근하면 물어볼 게 있다고 했단다.

사실은 귀신이 얘기해 준 거라고 해야 하나?’

용 경장이 귀신 생각을 하고 있는 그때, 갑자기 파출소 문이 벌컥 열리는 바람에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왜 그렇게 놀라?”

용 경장 때문에 소장이 덩달아 놀라 물었다. 용 경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무당할머니의 조카였다. 조카는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다고 했다. 치매노인을 가정에서 돌본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더라고 했다. 무당할머니를 찾아다닌 경험이 있는 직원들 모두 그 말에 수긍했다.

……, 이거 이모가 두 분께 드리래요.”

무당할머니의 조카는 편지봉투 두 개를 소장과 용 경장에게 내밀었다. 내용물을 꺼내 펼쳐 본 둘은 의아해했다.

웬 부적이에요?”

귀신이 들었다 나간 경은과 귀신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 용 경장을 위해 빨리 나쁜 기운이 빠지고 안정을 찾으라고 무당할머니가 직접 쓴 부적이었다. 원래 귀신을 믿지 않았던 용 경장은 얼른 부적을 접어 지갑 안에 고이 넣었다. 소장은 그 때의 상황을 이제야 대충 짐작했다. 그날 저녁부터 경은의 지갑에도 부적이 자리 잡았다. 


용송시에 용이 나타나 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구조했다는 뉴스가 수많은 제보 영상과 함께 며칠 동안 방송됐다. 덕분에 용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이 점점 줄었다. 용은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단체의 이름으로 용이 발견된 곳에 먹을 것을 실어다 놓기 시작했다. 그 기사를 읽은 용 경장은 이제 아버지가 와도 부담이 덜 되겠다고 좋아했다. 사실, 아버지가 있는 며칠 동안 용 경장의 카드가 한도초과의 위기까지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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