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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액운을 배달해드립니다

2020.08.12 15:0208.12

“어이, 김덕출.”

 

늦었다. 상자 몇 개만 더 받고 다시 밖으로 나가려했던 덕출의 어깨가 들썩였다. 상사 지원우가 다가오자 컨베이어 벨트 주변에 서 있던 동료들이 눈치를 보며 빠르게 흩어졌다. 바퀴벌레 같은 움직임에 사사삿 하는 발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네.”

 

손에 들고 있던 장부와 붓을 갈무리해 검은색 조끼에 집어넣은 덕출이 어깨를 펴고 바로 섰다. 원우는 상대방이 실수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이 이유 없이 자신의 앞에서 주눅들어 있는 건 더 싫어했다.

 

“너 어떻게 된 거야. 반송률이 왜 이렇게 높아.”

“죄송합니다. 고객을 못 찾아서요.”

 

변명을 하는 덕출의 시선이 자연스레 발끝을 향했다. 주눅 든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부하들을 혼낼 때의 원우의 표정은 무시무시해서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나한테 죄송할 일이 아냐. 네 인사고과에 들어가는 거라고.”

 

원우가 거칠게 덕출의 조끼에 들어있던 장부를 꺼내 펼쳤다. 덕출의 손에 들려있을 땐 꽤 커보였던 수첩이 원우의 손에 들어가니 엽서만해졌다. 슬쩍 원우의 얼굴을 올려다본 덕출이 진지한 표정으로 책장을 뒤적이는 모습에 찔끔해 다시 시선을 떨어뜨렸다.

 

“이사한 사람도 있고 여행을 간 사람도 있어서 그렇습니다...”

 

변명하듯 웅얼거리며 덧붙였지만 원우에게 그런 변명이 통할 리 없었다. 책장을 넘기며 덕출이 하는 말을 들은 원우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 갖다 주고 와. 알았어?”

“네.”

 

훑어본 장부를 건네자 덕출이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크게 혼날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별 말없이 돌아서는 원우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는데 원우가 홱 돌아서서 덕출을 손으로 가리켰다.

 

“직접 갖다 줘라. 직접.”

 

내뱉던 한숨을 힉, 하고 다시 들이킨 덕출이 고장난 흔들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원우가 사라지고 나서야 덕출이 못다 뱉은 한숨을 마저 내뱉었다. 원우가 사라지자 홍해처럼 갈라졌던 직원들이 다시 컨베이어벨트 주위로 돌아왔다.

 

“뭐래? 실적 안 좋다고 막 쪼지?”

 

명애가 덕출의 곁에 참새처럼 포르르 달려와 물었다. 덕출이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우리한테 이런 일을 시키는 것부터가 웃기다니까. 우린 저승사자잖아. 왜 액운배달까지 우릴 시키냐고. 사람이 그렇게 없어? 맨날 사람이 얼마나 죽어나는데. 그 사람들 데려다가 한명에 하나씩만 배달시켜도 널널하겠구만.”

“회사에 뭘 바라냐. 물류창고 하나 내준것만 해도 감지덕지 여기라는데.”

 

박스를 들어 자신의 차에 나르던 춘배가 한마디 얹었다. 액운이 제법 큰지 어깨에 얹고 낑낑대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춘배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처음 액운택배회사 ㈜액운통운이 시작한 곳은 인적 드문 어느 산 중턱이었다. 말 그대로 어제까지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하던 저승사자들이 일하다 말고 끌려온 곳이었다. 장마철에 반쯤 민둥산이 된 산이라 검은 도포자락에 흙이 튀고 물 먹은 옷이 척척하게 몸에 감겼다. 인간들의 물류터널 중 구석진 곳 한 자리를 얻고, 유니폼을 검은색 메쉬 소재의 조끼로 바꾼 데에는 총책임자인 원우의 공이 컸다. 직원들이 쉽게 액운을 운반할 수 있도록 검은색 배달트럭을 얻어낸 것도 원우였다.

 

“이왕 바꾸는 거 장부도 전자식으로 하면 좀 좋아. 인간들처럼. 붓이랑 종이가 뭐냐. 맵시 안 살게.”

“왜, 좋잖아. 요즘엔 이게 또 멋이야. 레트로 몰라? 복고?”

 

명애의 투덜거림에 연도가 장부를 체크하며 낄낄댔다.

 

“넌 웃음이 나와서 좋겠다. 뼈가 부서져라 일하는데 어째 줄지는 않고 나날이 물량이 늘기만 하냐.”

“그건 그래.”

 

명애가 한숨을 푹푹 내쉬자 덕출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들어 물량이 확실히 늘기는 했다. 인간들의 택배는 주문하는 사람이 있으니 물량이 결정된다지만 액운을 누가 주문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요즘 들어 물량이 폭증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액운은 포장된 채로 물류창고에 흘러들어오기 때문에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상자에 이름이 쓰인 받는 사람만이 열수 있고 여는 즉시 택배를 받은 순간의 기억을 잃은 뒤 상자도 안의 내용물도 사라진다. 요컨대 액운은 형체를 가진 물건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미래에 작용하는 어떤 ‘효과’인 것이다. 그런데 제각각 박스의 크기와 무게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일한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덕출에게는 아직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인간들은 배달하는 건당 돈이라도 받지. 우린 이게 뭐냐. 아, 보람 없다. 사자 일 하면서 실수 좀 했기로서니 이래도 되는 거냐? 노예도 아니고.”

“노예지. 노예. 저승의 공복 아니냐. 명애 넌 오늘 물건 안 갖고 가?”

 

다시 컨베이어벨트 앞에 돌아와 땀을 닦은 춘배가 물었다.

 

“너보다 훨씬 일찍 와서 아까 끝냈거든.”

 

명애가 손에 든 커피믹스를 홀짝이고는 작게 혀를 내밀어보였다. 늘 다람쥐처럼 재빠른 명애였다.

 

“아아, 일하기 싫다.”

“사자 일 하다 좌천 돼서 온 놈이 여기서도 일 하기 싫어?”

 

연도가 명애를 보며 낄낄댔다.

 

“여기서도 일을 안 하면 어디로 끌려가나? 불지옥?”

“불지옥보다 더 할걸. 지원우 얼굴 좀 봐. 그 인간한테 잔소리 듣는 것보다 지옥 가는 게 마음은 더 편할 거다.”

 

춘배가 얼굴 옆에 손바닥을 대고 도깨비 흉내를 내보였다. 익살맞은 몸짓에 작업장에 웃음이 퍼졌다.

 

“근데 덕출이 너 뭣 때문에 여기 왔다고 했지?”

 

웃음소리가 가라앉자 명애가 종이컵에 남은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으며 덕출에게 물었다.

 

한 달간 일하면서 이름도 얼굴도 알고 서로 얘기도 많이 나눈 동료들이었지만 자신의 배경에 대해 얘기한 적은 없었다. 동료들이 자신을 주목하는 것이 느껴지자 덕출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너희들 빨리 안 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원우의 벼락같은 고함이 떨어졌다. 감전 당한 듯 놀란 직원들이 비 맞은 개미들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첫 고객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구축 아파트라 단지 내에 주차하기 쉬워 다행이었다. 수레에 박스를 내린 덕출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 박스는 크기가 꽤 커서 덕출의 몸 반만 했다. 짐과 함께 작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니 크기가 꼭 맞았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었다. 한 명만 더 탔더라도 엘리베이터가 좁아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뻔 했다.

 

“1202호...1202호...”

 

12층에 내려 복도 중앙에 서서 중얼대던 덕출이 방향을 잡았다. 복도식 아파트에 덕출의 낡은 손수레 바퀴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1202호의 문은 열려있었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방안에는 누가 있는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문이 열려있다고는 하지만 남의 집에 무작정 고개를 들이밀 수도 없는 노릇이라 문간에 선 덕출이 나지막이 고객의 이름을 불렀다.

 

“이성원 씨, 이성원 씨 계세요?”

 

덕출의 부름을 듣지 못했는지 이따금 묵직한 슥슥 소리만 들릴 뿐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이성원 씨.”

“아이구, 나 죽네.”

 

오늘도 허탕인가. 아냐. 무조건 배달해야 해. 입술을 꾹 깨물고 마음이 약해지려는 자신을 다잡는데 안에서 헉헉대는 소리와 함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아픈 것 같은 소리였다. 다시 안을 들여다보니 현관 앞에 서랍장과 함께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괜찮으세요?”

 

놀란 덕출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일으키자 땀을 비 오듯이 흘리는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덕출과 눈이 마주치자 마치 구원의 빛을 본 듯 할머니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퍼졌다.

 

“아, 옆집 학생이구만. 고마워. 마침 잘 왔어.”

 

눈이 안 좋으신지 아니면 집안이 어두워서인지 덕출을 다른 사람과 착각한 것 같았다. 아니라고, 그냥 택배회사 직원이라고 말하려는데 할머니가 덕출의 손을 잡아끌었다.

 

“들어와. 들어와.”

“네?”

 

할머니가 좁은 부엌을 지나 4평 정도의 방으로 덕출을 이끌었다. 침실이자 거실로 쓰이고 있는 듯한 방은 침대와, 테이블, 의자, 행거와 자질구레한 짐들이 방 중앙에 모여 엉켜있었다.

 

“내가 가구를 옮기고 있는데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난 그냥 액운만 전해주러 온 건데. 매몰차게 거절하고 돌아설까 했지만 어차피 액운을 받을 사람인데 좀 도와주면 어떠랴 싶기도 했다. 내가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서가 아냐. 할머니가 불쌍하니까 도와드리는 거야. 애써 자신에게 변명을 해가며 덕출이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를 방의 왼쪽 구석에서 빛이 들어오는 큰 창문 곁으로 옮기고(철제프레임이 꽤 무거워서 등에서 땀이 뻘뻘 났다) 서랍장은 베드 테이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침대 옆에 둔 뒤 행거는 작은 방으로 빼내고 테이블을 벽에 붙여 식탁 겸 책상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고, 다 됐다.”

 

허리를 편 할머니가 그제야 이마의 땀을 닦았다. 얼마 품을 들인 것 같지 않은데도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하지만 방의 인상이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어서 이야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커튼을 걷으니 큰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처음엔 낡고 오래되었다고만 생각했던 물건들이 하나하나 빛을 받아 고풍스럽게 반짝거렸다.

 

“그런 거까지 치울 필요 없어. 앉아, 앉아.”

 

덕출이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우려 하자 할머니가 손을 내저었다. 차라도 한 잔 대접하겠다는 할머니의 말에 아니라고, 가야 한다고 말리려 했지만 할머니는 이미 부엌으로 사라진 뒤였다. 하늘색 꽃무늬 티셔츠 등에 남은 둥그런 땀자국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힘들었지? 미안해. 아무래도 내가 혼자 하기엔 힘들더라구.”

 

부엌에서 돌아온 할머니가 냉커피와 삶은 옥수수를 쟁반에 담아 내왔다. 마침 허기가 시기 시작하던 터라 덕출은 염치불구하고 옥수수를 베어 물었다. 달달하고 쫄깃한 것이 천상의 맛이었다. 와구와구 씹어대느라 턱이 아팠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옥수수였다.

 

“갑자기 왜 가구를 옮기려고 하신 거예요?”

 

옥수수 한 개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커피로 목을 축인 덕출이 물었다. 덕출의 잘 먹는 모습을 보자 할머니의 눈가에 자연스럽게 잔주름이 잡혔다.

 

“원래는 봄에 대청소를 한 번 할까 했지. 근데 같이 살던 영감이 죽어버려서 봄은 그냥 어영부영 보내버렸어. 정신 차리니까 여름도 거의 지나갔더라구. 이대로 두면 영영 못하겠구나 싶어서 오늘 아침부터 시작한 거야.”

 

할머니는 담담하게 일상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그 아래 깔린 무게감이 느껴졌다.

 

“고마워. 이사 오고 나서 한 번도 인사 못했는데 이렇게라도 얼굴 보니 좋네.”

“아녜요...”

 

지금이라도 그냥 택배기사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갈까. 덕출이 아직 문밖에 그대로 서 있을 상자를 떠올렸다. 하지만 저 정도 액운이면 어쩌면 할머니가 돌아가실 수도 있어. 액운이 어떻게 효과를 발휘하는지 한 번도 지켜본 적은 없지만 액운이 일으킬 다양한 사고들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길을 건너다 차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물에 젖은 계단에서 미끄러질 수도 있다. 골목길 모퉁이에서 미처 할머니를 발견하지 못한 자전거와 부딪힐 수도 있다. 아니면 오랜만에 비친 햇살이 좋아 이웃이 내놓은 화분에 머리를 맞을 수도 있지 않은가. 머릿속에서 마구 튀어 올라오는 영상에 덕출이 신 복숭아를 씹은 듯 몸서리쳤다.

 

“아이씨, 누가 복도에...”

 

그럴 순 없다며 고개를 흔드는데 누군가 밖에서 상자와 부딪힌 듯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퍼뜩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덕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 제가 좀 바빠서요.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그래? 좀 더 먹고 가지. 옥수수 싸줄까?”

 

할머니가 따라 일어나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덕출이 손을 내저었다.

 

“아녜요. 배불러요. 잘 먹었습니다.”

“그래. 오늘 고마워. 또 놀러오구.”

“네. 안녕히 계세요.”

 

할머니에게 꾸벅 인사한 덕출이 수레를 애써 등 뒤로 숨겼다.

 

결국 마수걸이부터 액운 배달에 실패했다. 덕출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래. 다음 사람에겐 무조건 전해주는 거야. 꺼냈던 박스를 다시 짐칸에 밀어 넣은 덕출이 주먹을 꼭 쥐었다.

 

 

필로티 구조의 주택가가 들어선 골목에 주차한 덕출이 품안에 들어오는 상자를 꺼냈다. 그래. 이거면 됐다. 작은 무게 치고 제법 묵직하긴 했지만 재빨리 건네주고 오면 되겠지. 주말이고 아직 점심시간이 되기 전이니 평일보다는 집에 있을 확률이 높을 터였다. 덕출이 빌라 입구의 인터폰을 누르려 하자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곁에 기대있던 여자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린빌 201호의 유현지. 송장을 확인한 덕출이 번호를 누르려는데 순간 입구가 열리며 여자가 뛰어나왔다.

 

“왤케 늦어. 기다리다 목 빠지겠다.”

 

공동현관 입구에서 기다리던 여자가 계단을 내려온 여자를 보고 투덜댔다.

 

“미안해. 늦잠 자서 그래.”

 

늦은 여자가 등을 두들기며 사과하자 기다리던 여자가 얄밉다는 듯 눈을 흘기며 걸음을 옮겼다.

 

“얼른 가자. 거기 갔다가 밥 먹으려면 지금 가야 돼.”

“응.”

 

서로 투닥대며 걸음을 옮기는 여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계단을 올라가려던 덕출의 뒤통수를 잡아끈 건 밖에서 기다리던 여자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유현지 지각쟁이인 건 하여간 알아줘야 돼.”

 

방금 빌라에서 뛰어나온 여자가 유현지인 모양이었다. 일정이 바쁜 게 사실이었는지 아차 하는 사이 여자들은 어느새 멀어져 있었다. 덕출이 여자들 뒤를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겼지만 여자들은 이미 언덕 아래를 거의 내려가고 있었다.

 

“잠깐만요!”

“제주도 갈치가 세 마리 만원, 세 마리 만원...”

 

덕출이 멀어져가는 여자들의 뒤에 대고 소리를 질렀지만 마침 언덕을 따라 올라오는 갈치트럭 때문에 덕출의 다급한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여자들은 이미 큰길가로 내려가서 택시를 잡는 중이었다. 손에 든 택배상자는 무겁기만 했다.

 

“택시! 택시!”

 

결국 여자들을 놓친 덕출이 다행히 뒤따라오는 택시를 잡아탔다. 앞에 가는 택시를 뒤따라가달라고 하는 덕출이 의심스러웠을 법도 한데 택시기사 아저씨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현금이 얼마나 되는지 머릿속으로 가늠할 무렵 여자들이 택시에서 내렸다. 천만다행이었다.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챙긴 덕출이 여자들의 뒤를 따랐다.

 

택시가 멈춘 곳은 다행히 트럭을 세워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번화가였다. 청춘남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길거리를 메우고 웃고 떠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덕출이 발걸음을 재게 놀려도 사람들 사이로 여자들의 머리꼭지가 보일락말락했다.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가는 인파 때문에 그들을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저기요...”

 

겨우 따라 잡았나 할 무렵 여자들이 어느 건물로 쏙 들어갔다. 술래잡기도 이런 술래잡기가 없었다. 이렇게 애 먹을 줄 알았다면 원우가 직접 갖다 주고 오라고 했어도 그냥 집 앞에 두고 올 걸. 투덜대는 소리가 절로 입술을 비집고 나왔지만 원우의 무시무시한 얼굴을 떠올리자 다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 더 호통을 들었다가는 그야말로 가루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 아직 놓친 건 아니니까 따라가면 잡을 수 있을 거야. 건네주고 오기만 하면 돼. 엘리베이터 위의 숫자를 확인한 덕출이 계단을 올랐다.

 

“어서 오세요.”

 

4층을 단숨에 뛰어오르겠다는 마음과는 달리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데다 한 층 한 층 오를수록 어깨 위에 짊어진 상자는 점점 무거워지기만 해서 실제로 여자들이 들어간 4층에 도착한 건 한참 뒤였다. 엘리베이터가 늦게 올까봐 계단으로 올라왔던 건데.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 걸 그랬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이럴 땐 어수룩한 자신이 싫었다.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은 채 무릎 위에 손을 얹은 덕출이 훅훅 숨을 내쉬었다. 목덜미에 끼치는 에어컨 바람이 서늘했다.

 

“헌혈하러 오셨나요?”

 

차트를 품에 안은 간호사가 땀을 흘리는 덕출을 보며 물었다. 겨우 고개를 든 덕출이 그제야 상황파악을 했다. 헌혈카페구나. 자신이 올 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주춤주춤 물러섰다.

 

“아, 그게 아니고. 택배 때문에요...”

“택배요?”

 

택배 받을 사람이 없는데, 하듯이 고개를 갸웃한 간호사가 쪼그려 앉아 상자 위의 송장을 살폈다. 주소도 다른데다 헌혈카페에 근무하는 사람 중에 유현지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요.”

“아, 그게 아니라...”

 

택배 받을 사람을 쫓아서 여기까지 왔어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 말을 입밖에 내뱉었다가는 이상한 놈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검은색 야구모자에 검은색 조끼와 장갑, 검은색 운동화와 운동복 차림으로도 이미 충분히 수상해보이지 않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덕출이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헌혈은 오래 걸리나요?”

 

덕출이 말을 돌리기 위해 사람들이 누워있는 듯한 칸막이 너머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떤 헌혈 하실거냐에 따라 다르지만, 문진도 하시고 검사도 하셔야 해서 1시간 정도는 걸리세요. 그 이상 걸리실 수도 있고요. 게다가 오늘은 기다리는 분이 많으셔서요.”

“원래도 사람이 이렇게 많나요?”

“아뇨. 혈액 보유량이 부족하다고 하니까 달려와 주신 분들이에요.”

 

그런 거였어? 좋은 마음으로 헌혈하러 온 사람에게 액운을 가져다주려 하다니. 덕출은 자신이 천하의 나쁜 놈처럼 느껴졌다.

 

“헌혈하실 거면 신분증 주세요.”

 

신분증이라니. 그런 거 없는데요. 저승사자에게 호패는 있어도 신분증이 있을 리가 없다. 당황한 덕출이 허리춤에 찬 나무조각을 의식하며 머뭇거리는데 마침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업무용 휴대전화였다. 마침 타이밍이 좋아 열린 자동문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덕출은 자연스럽게 상자를 가지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네. 김덕출입니다.”

“4444 차주 맞지? 아니 이 좁은 골목길에 차를 이따위로 주차해두면 어떻게 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차 앞쪽 유리창 안에 적어둔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한 모양이었다. 화가 난 아저씨의 목소리가 쨍쨍 울려서 수화기를 약간 떼야 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아아, 허탕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쉬움에 닫힌 자동문 너머를 넘겨보던 덕출이 눈물을 머금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아, 안 돼...”

 

다시 택시를 타고 트럭으로 돌아오니 화를 내는 아저씨 대신 주차 위반 경고 딱지가 붙어있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화를 내주는 쪽이 나은데. 웬만하면 인간 눈에 띄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지원우였기에 주차 위반 딱지가 떼었다는 걸 알면 불같이 화를 낼 게 뻔했다.

 

오늘 배달해야 할 물량을 하나도 배달하지 못한 데다 주차 딱지까지 붙은 게 원우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이 짓도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 명애의 말대로 좌천당해 끌려온 곳이 여기인데 이 아래에는 불지옥이 있을지 없을지 알게 뭐란 말인가. 하나라도 완수해야 한다. 하나라도. 조수석에 상자를 던져 넣은 덕출이 차에 올라타 비장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검도장에 도착하자 이미 점심때는 훌쩍 지나 있었다. 꼬르륵대는 배를 움켜쥐고 차에서 내린 덕출이 장부를 꺼내 읽고 상자를 찾았다. 트럭 가장 안쪽의 제일 큰 박스였다. 검도장이 외진 곳에 있는데다 제일 큰 상자라 안쪽에 밀어 넣어 두었던 것인데 지금 배달하게 될 줄은 몰랐다. 꽤 오래 묵은 데다 크기도 크니 이 정도를 배달하면 원우에게도 면이 설 것이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덕출이 짐칸에 올라서 상자 귀퉁이를 붙잡았다.

 

“아이고, 나 죽네.”

 

크기도 큰 데다 무겁기는 어찌나 무거운지. 평소에 배달할 때 상자의 크기와 무게가 꼭 비례하는 건 아니라 방심했던 게 실수였다. 낑낑대며 짐칸 입구까지 상자를 끌어내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대체 뭐가 든 거야? 온 몸의 힘을 실어 미는 바람에 허리까지 삐끗한 것 같았다. 트럭에서 빠져나온 덕출이 허리에 손을 짚고 입구까지 겨우 나온 상자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사람을 여기로 불러서 받게 하는 게 낫겠다. 어차피 열어보면 상자도 사라질 테니까. 서로에게 좋은 거지 뭐. 결심한 덕출이 검도장을 향해 걸어갔다.

 

검도장은 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차장 걱정은 없었다. 다만 교통편이 그다지 좋을 것 같지 않아 장사가 될까 하는 상대방 걱정을 하게 만드는 위치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는지 검도장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활짝 열린 창문 사이로 단체로 기합을 넣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엄마야!”

 

단층으로 지어진 검도장의 입구를 찾아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백구가 한 마리 다가와 덕출의 정강이께에 서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크게 놀란 덕출이 뒤로 넘어졌다. 상체는 반쯤 돌아간 채 한쪽 다리를 들고 넘어진 꼴이 우스꽝스러웠다.

 

“흰둥아, 이리 와.”

 

남색 도복을 입은 남자가 달려와 백구를 안아들었다. 강아지가 덕출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더 놀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이 빨개졌다. 앞다리가 들린 백구는 아까와 같이 헥헥대며 꼬리만 흔들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잠깐 밥 먹인다고 풀어놨더니...”

“예, 괜찮습니다.”

 

민망해진 덕출이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애써 괜찮은 척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저승사자들이 흰 개를 무서워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강림이때부터였나. 덕출은 너무나 유명해 이미 상부에서 일하는 통에 얼굴도 한번 제대로 본 적 없는 저승사자를 떠올렸다.

 

“그런데 어떻게 오셨죠?”

“택배 기사인데요. 서인홍 씨 계십니까?”

“관장님 지금 수업하고 계세요. 제가 대신 받을게요.”

“직접 받아야 하는 택배라서요. 수업 오래 걸리나요?”

“아뇨. 앞으로 이십분 정도면 끝날 거예요. 기다리실래요?”

“네.”

 

그러면 좀 앉아서 기다리라며 도장 한쪽에 의자를 펴주었다. 이십분이라. 이렇게 여유 부려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원우는 ‘직접’ 고객에게 물건을 배달하라고 했다. 몇 건 못한다 해도 직접 갖다 주라고 했으니까 못 한 거라고 핑계를 대면 된다.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한 덕출이 등 뒤의 벽에 기댔다.

 

밖에서는 매미가 우렁차게 울어대고 있었다. 높게 뚫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모자를 벗고 땀이 난 머릿속을 식히고 싶은 날씨였다. 창밖에서 나뭇가지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며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저희가 개업을 했는데요. 괜찮으시면 좀 드셔보세요.”

 

긴장이 풀어지자 살풋 잠이 들락말락하는데 누군가 옆에 다가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아까의 남자였다. 남자도 그것을 알아챘는지 미안한 얼굴이었다. 개는 어딘가에 다시 매어놓고 왔는지 보이지 않았다. 덕출이 애써 잠에 들지 않은 척 큰 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잠긴 목소리를 억지로 크게 키우니 삑사리가 났다.

 

“잘 먹겠습니다.”

 

팥시루떡이었다. 전자레인지에 갓 데워온 듯 김이 펄펄 났다. 겉이 살짝 녹아 늘어지면서 포크에 감겼다. 마침 점심도 먹지 못해 배가 고프던 차였다. 누군가 먹으라고 차려준 음식을 지나치지 못하는 건 저승사자들의 특징이자 약점이었다. 그렇게 뇌물에 넘어가 데려와야 할 사람을 데려오지 못한 저승사자들이 몇이었던가. 저승명부가 수기로 진행되는 통에 대충 넘어갈 때도 있었지만 결국 들통이 난 사자들은 크게 혼이 나곤 했다.

 

“천천히 드세요. 여기 음료수도 있어요.”

 

남자가 오렌지주스까지 따 주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떡을 씹던 덕출이 채 떡을 삼키지 못한 채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떡을 억지로 앞니로 물어 끊고 가슴을 두드리며 오렌지주스를 마시니 속이 뻥 뚫렸다. 찬 기운이 혈관 구석구석까지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었구나. 그제야 입구 주변에 형광핑크색 리본을 휘날리며 놓여있던 화분들이 이해가 되었다. 관장은 한쪽을 대형거울로 둘러싼 벽 앞에서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마른 체격에 앙다문 턱이 단단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수업이 꽤 오래 진행되었던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관장님은 항상 처음처럼 열심히시라니깐요. 저것도 능력이에요. 초심을 유지하는 거.”

 

덕출의 옆에 앉은 남자도 관장을 쳐다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이 보였다. 저렇게 진심으로 후배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라면 보통 수련을 한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사람에게 냉장고만한 액운이라니. 게다가 먹을 것도 얻어먹었잖아. 그러고도 액운을 넘겨주다니. 파렴치해. 덕출의 약한 마음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잘 먹었습니다.”

“좀 더 드릴까요?”

 

덕출이 빈 접시 위에 주스병과 포크를 가지런히 얹어 내밀자 남자가 얼른 받아들었다.

 

“아니요. 많이 먹었습니다. 저 짐칸을 안 닫아놓고 온 것 같아서...”

 

잠깐 나가봐야 한다는 식으로 덕출이 입구쪽을 가리키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세요. 관장님한테 전해드릴게요.”

 

건물 밖으로 나오니 햇빛이 다시 몸을 감쌌다. 구름은 아까와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하늘의 색이 바뀐 것이 오후에서 저녁으로 향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모자를 고쳐 쓴 덕출이 택배 트럭을 향해 다가갔다. 명애가 사람 납치 하는 차 같이 생겼다고 우리도 검은 색 말고 다른 색으로 도색 좀 하자고 항상 투덜대는 차였다. 저승사자라고 검은색만 쓰는 것도 너무 틀에 박힌 거 아니냐고 투덜대는 명애의 목소리가 떠올라 덕출은 피식 웃었다.

 

짐칸은 여전히 잘 닫혀 있었다. 그래, 어쩔 수 없어. 덕출이 마음속의 다짐을 확인하듯 차 벽을 두어번 두드리고 운전석으로 걸어갔다.

 

“김덕출.”

“으악!”

 

운전석에 원우가 타고 있었다. 저승사자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원우를 보고 덕출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저 사람도 저승사자고 나도 저승사자잖아. 내가 무슨 생각을... 간신히 정신을 추스른 덕출이 자신을 달랬다.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덕출을 쳐다보는 원우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냥 무표정이었다.

 

“팀장님, 저 오늘도 배달을 못 했습니다.”

 

딱 걸렸다. 배달도 하지 않고 도망치려던 것을 현장에서 걸린 것이다. 덕출은 괜히 빙빙 둘러가는 대신 솔직하게 이실직고하는 쪽을 택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배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물러빠진 놈. 그 따위로 해서 어떻게 살아남을래?”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한 비난이었다. 덕출이 눈을 꾹 감은 채 원우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이 액운을 받는 건 누구의 탓도 아냐. 액운은 그냥 오는 거고 너는 맡은 일을 하는 것 뿐이란 말야.”

 

더 심한 말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는데 원우의 입에서 의외로 위로의 말이 나오자 놀란 덕출이 조금씩 눈을 떴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자. 수고했어. 그 인간들도 나름대로 액땜을 한 것 같으니까.”

 

원우의 단어선택이 심상치 않았다. 그동안 자신을 계속 따라다닌 것일까.

 

“타.”

“네?”

 

여전히 표정 없이 덕출을 바라보던 원우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조수석을 가리켰다.

 

“타라고.”

 

일단 차에 타면 때리겠다는 건가. 덕출이 침을 삼켰다. 철갑 같은 원우의 표정 아래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지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관장님. 아까 택배가 왔다던데요.”

“택배?”

 

수업이 끝나고 수건으로 땀을 닦는 서 관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윤 사범을 쳐다보았다. 택배가 올 일이 있나? 자신의 기억으로는 인터넷으로 뭘 주문한 적이 없었다. 도장을 열면서 필요한 물품들을 시키기는 했지만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은 이미 지난주에 다 끝났다.

 

“네. 택배기사님이 직접 와서 받아 가셔야 한다고 방금까지 기다리다 가셨어요.”

“그래? 어디 계시는데?”

“아까 잠깐 차 문 닫는다고 나가셨는데...”

 

복도로 나오자 사무실 안에 매어두었던 흰둥이가 자기도 나가고 싶다고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았다, 알았어.”

 

빨간 목줄을 쥔 윤 사범이 개와 관장을 데리고 도장 밖으로 나왔다.

 

“어디 있다는 거야?”

 

주차장에는 관장과 윤 사범의 차, 그리고 원생들을 위한 승합차뿐이었다. 아까 택배 트럭이 있던 자리는 깨끗이 비어있었다.

 

“어, 어디 갔지? 아까까지만 해도 여기 있었는데...그치, 흰둥아?”

 

윤 사범이 당황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관장도 눈썹에 손을 얹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이 근방에 차를 댈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었다.

 

“또 오겠지 뭐.”

“이것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

 

한참 두리번대던 관장이 다음 수업을 위해 뒤돌아서자 윤사범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 번 더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흰둥아, 가자.”

 

하늘이 조금씩 노을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묵묵부답이던 흰 개가 허공에 대고 컹, 컹 두 번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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