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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자 언니가 내게 말을 건 것은 정임 언니가 죽은 지 삼 개월 만이었다. 2주 간의 동계 방학이 시작되어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는 소란한 복도에서였다.
     “얘, 순임아. 부탁이 있어서 왔어. 나 졸업식 다음 날 결혼을 한단다.”
     “들었어요, 언니. 축하해요.”
     “고맙다. 결혼식은 학교 장미원에서 하게 될 거야. 서양식으로 말이야. 그때 내 신부 들러리를 해주지 않으련?”
     나는 고개를 숙였다. 경자 언니가 방긋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언제나 꼭 붙어 다니던 짝꿍이 이제 없는데도 그렇게 행복할까?
     “미안해요, 경자 언니. 상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머니가 안 좋아하실 거에요.”
     “내 결혼식에는 정임이가 들러리를 해주기로 했었어. 그 애가 이제 없으니까 슬퍼져서……. 동생인 네가 대신 해주었으면 하고 생각했거든.”
     상급생 언니들이 까만 통치마와 하얀 저고리의 소녀들을 헤치며 다가와 경자 언니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 틈을 타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재빨리 물러났다.
     바람이 매섭게 차가웠다. 꽁꽁 얼어붙은 흙 길에 고무신이 미끄러웠다. 나는 솜이 두둑이 든 겉저고리를 꼭꼭 여미고 빠르게 발을 놀렸다.
     여학원이 있는 시내를 빠져 나온 후 발을 멈추었다. 망설였다. 언덕을 넘어 가는 빠른 길과 논길을 빙 돌아서 가는 길 중 어느 쪽으로 갈까. 논길 쪽으로 몇 발짝 걷다가 되돌아왔다. 최근에는 통 지나지 않은 언덕 길로 들어섰다.
     언덕을 넘어 우리 집이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곳에 사시사철 잎 하나 달리지 않는 커다란 나무가 있다. 죽어버린 나무라고 했다. 그 나무 아래에는 언니가 서 있다. 내게 하나뿐인 자매였던 정임 언니가.
     나는 나무 아래 놓인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위도 바람만큼 차가워 엉덩이가 시렸다. 솜을 잔뜩 넣은 고쟁이도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언니는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 같은 건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뭘 그리 바보처럼 학교 가는 길만 멍하니 보고 있어?”
     할 수 있는 한 가장 퉁명스럽게 말을 뱉어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곳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언니는 계속 그랬다.
     언니는 바로 이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나무 아래에 멍청하니 서 있다. 하얀 저고리에 까만 통치마 차림의 교복을 입고 머리를 하나로 땋아 짧은 댕기를 드린, 죽었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장례를 치른 후 처음 언니를 다시 보았을 때는 나까지 죽어버릴 정도로 놀랐었다. 내 얘기를 들은 엄마가 버선발로 나무 밑까지 달려왔지만 언니의 모습은 보질 못했다. 손가락으로 가리켜줘도 통 알아보질 못했다. 이상하게도 언니는 내 눈에만 보이는 거였다.
     엄마가 흙 바닥에 주저앉아 어려 죽은 불쌍한 년이 귀신이 되었구나 하고 통곡을 할 때도 언니는 돌아보지 않았었다. 언니가 귀신이 된 것이 아니라, 내가 미쳐서 헛것을 보는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 같은 것보다 몇 배나 효심이 깊은 언니가 엄마가 우는 걸 그냥 모르는 척 할 리 없었으니까.
     한숨을 쉬자 부연 입김이 길게 흘러나왔다. 엉덩이랑 무릎이 시려서 더 앉아있기 싫었다. 나는 바위에서 일어나 치마 자락을 털며 말했다.
     “이 길로 안 오려다가 왔어. 이건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경자 언니 시집간대. 졸업식 다음 날에.”
     고개를 들자 언니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아주 잠시였다. 언니의 고개는 다시 언덕길로 향했다. 하지만 그 잠깐이라도 충분했다. 아이구야, 이게 바로 귀신이랑 눈 마주친다는 거구나. 숨이 막히고 몸이 와들와들 떨리는데 이제 춥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달음박질 쳤다. 집 문 기둥에 손이 닿을 때까지 몇 번이나 꼬꾸라질 뻔 하면서.
   
   
     정임 언니는 아주 예뻤다. 엄마는 언니가 소문난 미남이었던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고 했다. 내가 젖먹이였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나는 하얀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언니의 얼굴을 보며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었다.
     언니는 얼굴만 예뻤을 뿐만 아니라 머리도 좋고 배짱도 두둑했다. 저것이 사내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 고. 엄마는 종종 한숨과 웃음을 반씩 섞어 중얼거리곤 했다.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내곤 했었다. 시내에 서양인이 세운 여학원이 생겼다는 말을 듣자마자 며칠이나 엄마를 졸라 입학금을 받아내기도 했었다.
     한복 집 딸내미가 공부를 해서 뭣 하려고 그러냐?
     엄마의 물음에 언니는 박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주 멋지게 살 거요. 우등 졸업해서 큰 은행에 취직하고 돈을 많이 벌 거요. 그래서 우리 엄마랑 순임이 비단 옷만 입히고 좋은 것만 먹이며 호강시킬 거요.
     언니는 나 역시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었다. 엄마는 계집애를 둘이나 공부시키는 건 남우세스럽다고 생각했었다. 엄마가 내놓은 핑계는 두 명 분의 월사금을 마련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언니는 이것도 시원스럽게 해결해버렸다. 여학원의 이사장인 월튼 여사를 면담하고 장학 지원을 받아낸 것이었다.
     남 부끄러울 것이 무에 있소? 십 년만 지나면 다들 엄마를 부러워할 거요. 이제는 여자들도 교육이 중요한 시대가 된 거요.
     언니는 엄마에게 큰 소리를 떵떵 치기도 했었다. 나는 동급생들보다 잘 하는 거라고는 재봉뿐이었지만, 언니 덕택에 저고리 앞 섶에 달게 된 손톱만한 교표가 너무나 기뻤고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랑스러웠던 것은 언니였다. 언제나 1등을 놓치지 않고, 모든 선생들이 칭찬하는 정임 언니. 이따금 하교 길에 양식 차림새를 한 여성들을 보게 되면, 그 모습에 미래의 언니를 살그머니 겹쳐보기도 했었다. 동그랗게 만 단발 머리에 뾰족구두와 투피스를 걸치고 입술연지를 바른 언니는 누구보다도 예쁘고 멋진 신여성일 것이었다.
     이제는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언니는 죽었다. 집과 학교를 잇는 언덕길의 나무에 목을 매어 죽어버렸다. 순사들이 언니의 시체를 가져갔다가 꼬박 하루가 지난 후에야 돌려주었다. 시체를 가져왔던 일본인 순사는 언니 뱃속에 애가 있었다고 했다. 일본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 지 몰라, 나는 울고 말았었다.
     침모(針母) 아주머니 한 분이 밀어 준 저고리가 무릎에 닿아, 멍하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엄마의 한복집 뒷방에서 침모들과 함께 바느질을 돕는 중이었었다.
     설빔 준비 때문에 주문이 밀려, 동계 방학 내내 가게 일을 돕기로 했었다. 일본인들은 양력 설을 쇠라고 권유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음력 설을 쇠는 사람도 꽤 많았다. 그런 음력 설을 앞둔 동계 방학은 설빔 한복을 눈코 뜰 새 없이 지어야 하는 바쁜 시기였다. 비뚤어지지 않게 바느질을 할 수 있게 된 나이부터 매년 해온 일이었다.
     나는 급히 바늘을 고쳐 잡고 저고리에 옷고름을 대어 꿰매기 시작했다.
     “순임이는 참 착하기도 하지. 힘든 어머니 일도 도울 줄 알고.”
     “손도 빠르고 바느질도 고우니 학교 같은 건 그만두고 이대로 일이나 도우면 좀 좋겠니?”
     “계집애가 공부 해 봤자 헛바람밖에 더 들겠나? 순임이 너는 맘 단단히 먹고 살아야 한다. 느이 언니처럼 되면 안 되는 거라.”
     엄마의 한복집을 돕는 침모 아주머니 두 사람은 들으라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쁘고 영리하던 이 집 큰 딸은 처녀가 애를 배고 목을 매었다네. 다들 뒤에서 수군거리고 앞에서는 충고랍시고 함부로 말을 한다. 부아가 치밀었지만 엄마는 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늘땀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나는 언덕길 나무 아래 서 있을 언니의 귀신을 향해 속으로 욕을 퍼 부었다. 언니 때문에, 엄마랑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네. 언니는 그걸 알기나 하나?
     침모 아주머니들의 수다는 이내 다른 사람의 뒷이야기로 옮겨갔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바늘처럼 입도 쉬지 않는 꼴이다. 기세를 보아하니 온 마을 사람을 다 한 번씩 들었다 놓을 모양이었다.
     옷고름을 네 개째 달았을 때, 툇마루 쪽 문이 벌컥 열렸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수고가 많으십니다.”
     문 밖의 차가운 바람과 함께 활기찬 인사가 방 안을 채웠다. 침모 아주머니들이 반색을 했다.
     “이게 누구야? 진주댁네 큰 아들 한식이 아니야?”
     “백화점서 일한다더니 아주 신수가 훤해졌네 그래! 길에서 만나면 못 알아보겠어.”
     “집에 온 모양이구먼! 이럴게 아니라, 어서 들어와. 추운데 몸 좀 녹이고 가.”
     아주머니들의 열띤 환영에도 한식은 양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아닙니다. 2년 만에 휴가를 받아 쉬러 온 차에 여기저기 인사나 드리러 다니는 중인데요. 이제 가봐야지요.”
     한식은 하이칼라 양복을 입고 머리를 짧게 자른 지금에도 아이고 아이고 하는 말버릇은 못 고친 모양이었다. 툇마루에 겨우 무릎만 붙이고 몇 번이나 고개를 꾸벅이던 그는 가겠다며 문을 닫기 전에 나를 한참이나 지켜보다가 문을 닫았다. 그렇구나. 그도 언니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슬프고 조금은 화가 났다.
     아주머니들은 한식의 갑작스러운 출현 때문에 또 화제가 바뀐 모양이었다. 한식의 아버지가 아들 셋을 꼭 낳기로 결심하고 한식 두식 삼식이라고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들 이름을 지어놨었다는 이야기, 소아마비인가 하는 병으로 두 돌도 못 채우고 죽어버렸던 둘째 아들 두식이 이야기, 애 엄마가 한창 진통을 하고 있는 와중에 아들이라는 점쟁이 말만 믿고 호적에 미리 올려 버려 삼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한식이네 누이동생 이야기……. 이 마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들인데도 아주머니들은 신나게 떠들어댔다.
     언젠가 침모 아주머니들의 이야기에 말대답을 하고 따졌다는 이유로 언니는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었다. 언니는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에게 큰 소리를 쳤었다.
     나는 저렇게는 못 살겠소. 세상 물정도 모르고 소문에만 귀가 밝은 여자로는 안 살 거요. 남들 얘기를 입에 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으로 살 거요.
     이제는 언니 소원대로 되었구려. 온 마을 사람들, 온 학교 학생들이 다 언니 얘기로 떠들썩했었으니 말이오. 침모 아주머니들에게 들키지 않게 한숨을 살살 내쉬면서, 나는 또 언덕길 나무 아래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서 있을 언니의 귀신에게 들리지도 않을 한탄을 했다.
   
   
     한식은 매일 같이 우리 한복집 뒷방, 그러니까 나와 침모 아주머니 두 분이 바느질을 하는 방에 찾아와 꼭꼭 인사를 하고 갔다. 나와 동갑내기인 한식은 어릴 때부터 정임 언니를 무척 잘 따랐다. 기가 드센 언니가 또래뿐만 아니라 몇 살이나 더 많은 이들에게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대들 줄 안다는 것이 멋지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정임 언니도 남동생처럼 한식을 귀여워했다. 덩달아 나도 어릴 때는 어울려 셋이서 종종 놀긴 했지만 이따금 말다툼이라도 일어나면 정임 언니는 내 언니다, 느이 누나가 아니다 하는 소리로 한식을 울리곤 했었다.
     그런 한식이 매일같이 가게 뒷방에 찾아와 인사를 하고 나를 바라보고 가는 것이 점점 불편했다. 언니가 죽은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건가? 아니면 언니의 나쁜 소문을 들어 호기심이 생겨 그러는 건가? 어느 쪽이든 기분 나빴다.
     한식이 바느질 방에 얼굴을 비춘 나흘째 되는 날은 달거리가 시작되어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했던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만 오늘도 수고가 많으십니다 라며 헤헤거리는 한식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찬바람 들어오게 왜 문은 열고 난리람! 뭘 그리 반가운 얼굴이라고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거니?”
     한식은 문을 잡은 채 굳어버렸다. 하지만 열린 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차가운 겨울 바람은 그대로였다.
     “얘가 버릇없이! 오랜만에 보는 소꿉동무에게 무슨 소리를 하누?”
     마침 어머니가 가게로 이어진 문을 열고 새로 지을 한복 감을 바느질 방으로 들여놓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꾸중이 이어지길 기다리며 고개를 숙였다. 학교에서 선생에게 혼날 때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숨소리를 헤아렸지만 꾸중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미안하다, 한식아. 우리 순임이가 너무 지쳐서 그러는 모양이다. 한식이 네가 얘 바람이라도 좀 쐬게 데리고 나가 주련?”
     “엄마는! 이 추운데 무슨 바람을 쐬러 가라는 거요?”
     나는 엉겁결에 엄마한테도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침모 아주머니들이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하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순임이 저거 부끄러워하는 걸 보게.”
     싫다고 온갖 생떼를 썼지만 엄마는 억지로 나에게 두꺼운 솜 두루마기를 입혔다. 그리고 토끼털이 달린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토끼털 목도리는 언젠가 언니가 엄마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언니는 방과 후에 이사장의 서류 정리를 도우며 일해서 받은 돈으로 산 거라고 했었다. 엄마는 토끼털 목도리를 무척이나 아끼고 아꼈었다.
     엄마는 목도리를 여며주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엄마는 한식이가 참 아들 같고 그렇다. 저 애도 정임이를 그렇게 잘 따랐는데 얼마나 속이 상하겠니. 우리 걱정되어 매일 들여다봐주고 하니 고맙기도 하고.”
     가게 앞에서 만난 한식은 앞서 걷기 시작했다. 종종 뒤를 따라 걸으면서 나는 날씨가 추워 사람들이 밖에 안 나다니기를 빌었다. 철이 든 이후로 남자와 둘이 길을 걷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어릴 때 함께 놀던 친구 사이라고 해도 키도 훌쩍 커버리고 어깨도 넓어진 지금의 한식은 천상 남자였다.
     한참 만에 앞서 걷던 한식이 입을 열었다.
     “정임이 누나는…….”
     “죽었어. 목 매서.”
     나도 모르게 한식의 말을 잘라버렸다. 한식의 뒤통수 양쪽으로 입김이 흘러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게, 저기……. 들은 얘긴데…….”
     “애를 뱄다는 얘기?”
     안 그래야지 생각했는데도 또 말을 끊고 말았다. 한식이 우뚝 멈춰서더니 돌아섰다.
     “그 사람 애야?”
     “그 사람이라는 게 누구야?”
     “그 왜, 키 크고 볼이 홀쭉하고…… 뺨에 점이 있는 남자. 엄청 세련된 하이칼라던데.”
     한식은 점의 위치를 자신의 얼굴에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언니 친구인 경자 언니 약혼자 말하는 거구나. 한성은행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더라. 동경에 유학도 다녀왔다고 하고.”
     언젠가 만난 적이 있었다. 학교 안에서는 언제나 꼭 붙어 다니던 정임 언니와 경자 언니를 만나 인사를 했더니 좋은 데 가자면서 방과 후에 나를 데리고 갔었다. 그날 경자 언니의 약혼자라는 남자를 소개받았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을 먹어보았었다. 경자 언니는 잘 생긴 약혼자의 옆 자리에서 행복해 보였고, 정임 언니는 코오피 숍이라는 곳에서 나처럼 부끄러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아주 당당하게 행동했었다.
     한식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얼굴이 몹시 불길하게 느껴져 물었다.
     “왜 그래? 뭔가 아는 거라도 있어?”
     “그게…… 아이고,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뭔데 그래?”
     불길함이 짙어졌다. 나는 한식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한식은 고개를 옆으로 꼬고 중얼거리듯 말하기 시작했다.
     “정임이 누나랑 그 남자, 우리 백화점에 자주 왔었어. 둘이서.”
     “뭐?”
     “한 번은 내가 일하는 구두 매장에도 왔었어. 정임이 누나가 무서운 얼굴을 해서 아는 척은 못했지만……. 그 남자가 누나에게 구두를 맞춰주더라.”
     “잘 못 봤겠지. 다른 사람 아니야? 아니면 옆에 경자 언니도 같이 있었던 건 아니야? 경자 언니는 동그란 얼굴에 키가 조그마한 언닌데…….”
     한식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 목을 감고 있는 토끼털 목도리를 가리켰다.
     “그 목도리는 내가 일하는 곳의 옆 매장에서 파는 거야. 그 남자가 정임 누나에게 그 목도리를 사주는 것도 봤었어. 비싼 물건을 자주 사가는 데다, 선남선녀라서 눈에 잘 띄었지. 두 사람은 백화점 내에서도 유명했어.”
     한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목도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어붙은 땅에 내동댕이쳤다.
     “거짓말 하지 마! 언니는 그런 사람 아니야! 언니가 경자 언니의 약혼자랑 바람이 나기라도 했다는 거야? 언니가 그 남자랑 연애라도 했다는 거야? 우리 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야!”
     나는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고무신이 미끄러지고, 눈물이 가득 차 눈 앞이 흐렸지만 용케 넘어지지는 않았다.
   
   
     경자 언니는 정임 언니와 가장 친한 친구였다. 큰 인쇄소를 한다는 경자 언니네 집은 부자였다. 대궐처럼 큰 집에 매일 같이 일본인들이 드나든다고 했다. 세련된 이름에 부자인 경자 언니와, 한복집을 하는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우리 언니는 무척 다른 존재였다. 그럼에도 둘은 여학원 내에 소문난 단짝이었다. 산술을 가르치는 기무라 선생이 이따금 나에게 언니를 빼앗겨서 속상하겠어요 라고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언니가 경자 언니와 친한 건 속상하지 않았다. 그 우정은 언니가 상류 사회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이 여겨졌었다. 손을 잡고 함께 다니는 정임 언니와 경자 언니를 볼 때마다, 우리 언니가 몇 배나 더 예쁘고 키도 크고 날씬하다는 것을 느껴 내심 자랑스러워하기도 했었다. 우리 언니가 훨씬 더 부잣집 아가씨 같다 생각 하면서.
     속상한 건 언니가 죽었다는 사실, 언니가 혼례도 안하고 애를 뱄었다는 사실, 언니가 가장 친한 친구였던 경자 언니를 속이고 그 약혼자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속상한 게 너무 많아서 무엇이 가장 속상한지 고를 수도 없네. 언니는 좋겠소. 죽었으니 아무 걱정도 없겠지?”
     졸업식 다음 날. 경자 언니의 서양식 혼례가 있는 날은 이상하게도 바람이 차분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른 아침의 바위는 꽤나 차가웠다. 그래도 나는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언덕길 나무 아래, 언니의 귀신은 오늘도 멍하니 학교로 가는 언덕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언니가 보고 있는 방향을 향했다.
     “오늘 학교 가지 말까? 그냥 이대로 학교 그만 둘까나. 나는 이제 경자 언니 얼굴 못 볼 것 같다. 경자 언니는 졸업했으니 학교에서 만날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길에서 마주칠까 무섭다. 창피하고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다.”
     경자 언니는 알고 있었을까? 자기 약혼자랑 우리 언니가 그렇게 연애를 하고 다녔다는 걸. 백화점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다 하니 경자 언니 귀에도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정임 언니가 애를 배었다는 소문은 학교에도 퍼졌으니 경자 언니는 그 애 아버지가 누군지 짐작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대체 왜 그랬어? 그 사람이 그렇게나 좋았나?”
     화가 치밀어 그만 소리를 지르며 귀신 쪽을 돌아보고 말았다. 아이구, 어머니! 그만 또 눈이 마주쳤다. 급히 숨을 들이키다 보니 그만 기침이 터졌다. 한참 콜록콜록 눈물 콧물까지 흘리며 기침을 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언니가, 언니의 귀신이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언니는 살아 있을 때 자주 그랬듯이 박꽃처럼 하얗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여기 있어? 처녀 귀신이 되어 그 사람을 쫓아 다니던지 하면 될 거 아니야? 왜 나 속상하게 귀신 되어서 여기 버티고 서 있어?”
     언니는 대답이 없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답답해서 못 봐주겠네! 나는 학교로 갈 거야. 가서 그 못된 놈이 어떤 낯을 하고 있는지 똑똑히 볼 거야! 불쌍한 경자 언니 예쁘게 꾸민 모습도 실컷 볼 거야!”
     나는 학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열 걸음도 못 가서 발이 멈추었다. 돌아보니 언니 귀신이 나무 밑에 서 있는 것이 너무나 초라하고 불쌍해 보였다.
     “언니도 보고 싶나? 그 사람이 그렇게 보고 싶나?”
     정임 언니의 머리가 희미하게 움직였다. 끄덕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 언덕길로 고개를 돌리고, 뒤 돌아보지 않은 채 언니를 향해 손짓을 했다.
   
   
     장미원은 커다란 온실이었다. 학원의 설립자이자 이사장인 월튼 여사는 교정 한 쪽에 커다란 온실을 짓고 그 안에 가득히 장미를 길렀다. 학생들이 순번을 따라 돌아가며 장미원의 손질을 돕기도 했었다. 한 겨울에도 빨강, 분홍, 하양, 노랑 장미들이 가득히 피어있는 장미원은 학생들 모두에게 꿈과 같은 장소였다. 내 역사 교과서에는 예전 장미원 손질을 하던 날 주운 분홍빛 장미꽃잎 말린 것이 끼워져 있다. 나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장미원에서 주운 장미꽃잎을 소중히 지니고 있을 것이었다.
     오늘 장미원의 장미 화분들은 모두 온실 벽 쪽으로 치워지고, 의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온실 입구 쪽에 하얀 장미 송이들로 장식한 아치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니 월튼 여사가 이 결혼식에 아끼던 장미들을 잔뜩 내주는 큰 선심을 쓰기로 한 모양이었다.
     신부는 장미원 옆에 붙여 세워진 창고에 있었다. 경자 언니는 하얀 서양식 결혼 예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하얀 장미 꽃다발을 손에 쥐고 하얀 장미처럼 새하얀 치마 자락을 넓게 펼치고 앉아, 역시 하얀 양식 예복을 입은 상급생 언니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었다. 신부 들러리를 하는 상급생 언니들이 소근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혼례가 시작되기 전까지 새 신부는 이 곳에서 기다려야 하는 모양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경자 언니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경자 언니는 하얀 예복을 입은 상급생 언니들에게 장미원에 가서 예식 준비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살피라며 내보냈다. 언니들이 웃음소리와 함께 나가자 나와 경자 언니만 남았다.
     경자 언니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자 언니가 화를 낸다고 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언니를 도둑년이라 욕한다 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기다렸지만 경자 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눈을 들었다. 경자 언니의 시선은 나를 빗겨가고 있었다. 내 몸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보았다. 창고 입구 쪽에 큰 거울이 세워져 있었다. 신부가 식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치장을 점검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인 모양이었다.
     거울에는 서 있는 앉아 있는 경자 언니와 내가 비추고 있었다. 아니, 앉아 있는 경자언니와 서 있는 정임 언니가 비추고 있었다. 내 모습이 비추어야 할 자리에 서 있는 것은 하얗고 날씬하고 예쁜 정임 언니였다.
     거울 속의 경자 언니가 웃었다.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찡그린 채, 입으로는 웃고 있었다.
     “와 주었구나. 네가 와 줘서 너무, 너무 기뻐.”
     “축하해.”
     거울 속 정임 언니의 입술이 움직이고, 내가 대답했다. 정임 언니의 목소리로.
     “울지 마, 경자야. 곱게 한 화장이 지워지겠다.”
     경자 언니가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깜빡여 눈물을 참았다. 눈물은 겨우 참았지만, 경자 언니의 목소리는 울음에 잠겨 있었다.
     “정임아. 나는…… 네가 좋아.”
     “알고 있어.”
     “나는 정임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어. 그리고 그 분도 좋아했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린다면, 내가 두 사람을 세상의 눈에서 감추어주고 싶다고도 생각했어…….”
     거울에 비친 정임 언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나는 너를 배신하고, 네 마음을 이용했어. 나는 너에게 사과하러 온 거야.”
     목소리를 갖지 못한 정임 언니의 환영은 내 입술을 빌어 경자 언니에게 몇 번이고 사과했다. 이번에는 경자 언니가 고개를 저었다.
     “사과하지 마. 나는 네가 이렇게라도 나에게 와 주어서 너무 기뻐. 정임아……. 우리가 다시 예전처럼 셋이 함께 지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밝은 웃음 소리와 달음박질 소리가 들리고 창고의 문이 열렸다. 신부 들러리들이 돌아온 것이었다. 잠시 시선을 빼앗겼던 나는 다시 거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울에 비추고 있는 것은 내 얼굴과 내 몸이었다.
     장미원의 결혼식은 아름다웠다. 월튼 여사가 모셔온 신부님의 지시에 따라 신랑과 신부는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무릎을 꿇고 서약을 하고, 일어나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주었다. 내내 차분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있던 경자 언니는 신랑이 볼에 키스해줄 때 눈물을 보였다. 내 생에 처음으로 보는 양식 혼례는 하얀 장미와 어지러울 정도로 짙은 장미향기로 기억에 남았다.
     두 해가 지나 내가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있던 어느 날, 경자 언니로부터 카드가 날아왔다. 딸 아이의 첫 돌을 축하하러 와 달라는 초대장이었다. 나는 가지 않았다. 그 아기가 정임 언니를 닮았다면 몹시 무서운 기분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아기가 정임 언니를 닮지 않았다면 나는 몹시 슬퍼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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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No Profile
    Iris 09.08.23 13:34 댓글 수정 삭제
    섬세하고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님의 글을 읽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 No Profile
    13 12.05.18 07:18 댓글 수정 삭제
    묘생만경에서 읽고 참 놀랬어요.
    초반,중반을 읽으면서 어떻게 진행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떠올랐는데, 그 생각과 다르게 진행되면서 무척 아름답고 가슴을 찡하게 하는게.
    정말로 마음에 드는 글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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