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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빈 상사곡(相思曲)

2009.08.28 23:5308.28

  세상의 종말까지 한 시간 남았다. 달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고요하기만 했다. C는 다 식은 커피를 마시려다 그만두고 일어나 앉았다. 한 십 분가량, 그녀는 마룻바닥에 엎드려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뉴스 끝물 즈음 일기예보에서 우주가 이제 한 시간 이후 끝나리라는 보도를 들었다. 리포터는 무척이나 무덤덤하게 그 소식을 전했고, 그런 어조 때문인지 종말 예고가 그냥 농담인 줄 착각할 뻔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연합 대통령이 등장해서 공식으로 성명까지 내며 천명관의 농담에 장단 맞추어줄 이유는 없다. 세상은 이제 끝나려는 것이다.
  그러나 왜?
  세상 일에 반드시 이유가 필요한 경우는 사실 따지고 보면 드물다. C는 고개를 뒤로 한껏 젖혀 투명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돔 너머로 까만 우주와 무수한 빛이 보였다. 위성과 셔틀과 정거장과 메신저 봇들이 있었다. 지구와 화성, 목성을 잇는 수많은 끈. 오가는 소식과 목소리와 모습과 기억들. C는 눈을 감고 검은 우주 공간에 퍼져 나간 수많은 실타래를 상상해 보았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실, 무거운 세상의 베틀, 검은 가위. 그녀는 그대로 길게 드러누웠다.
  ”여러분, 다시 알려 드리는 바입니다. 세상의 종말까지 한 시간, 한 시간입니다. 현재 천명관에서 공식 성명을 내놓은 지 삼십 분이 흘렀습니다. 연합 정부에서도 현재 공식 성명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다시, 배종욱 기자!”
  인류가 지구를 넘어선 지 어느덧 백 년이다. 사람들은 달에도 가고 화성에도 가고 목성에도 갔다. 지구는 육지뿐만이 아니라 바다와 허공까지 사람들로 가득했고, 화성은 연구, 생산기지로서 매일같이 물자를 지구와 목성으로 실어 날랐다. 목성은 팔자 좋은 사람들이 가서 평생 하는 일 없이 돈 쓰며 사는 곳이다. 달에는 정류장과 약간의 관광시설, 그리고 도서관이 있을 뿐이다. C는 대학을 졸업하고서 줄곧 달에 와서 살았다. 정보관리사로서 하는 일은 주로 정보의 정리와 기록이다. 이를테면 기사와 뉴스, 이달의 주목할 만한 책, 그런 것들을 추려내어 스캔하고 정리하고 요약을 첨부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는 일이다. 그뿐이면 쉽겠지만, 그뿐이 아니라 천문학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광고와 프로모션들을 업계별로 구분해서 또 따로 저장해야 했고, 하다못해 행성들 사이를 오가는 개인적인 대화까지 일일이 캡쳐해서 주제별로 나누어 기록해야 했다. 물론 직접적인 작업은 컴퓨터가 다 알아서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점검하고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았다. 그녀는 눈을 뜨고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세상의 끝까지 한 시간인데 여전히 작업은 진행 중이다. 기계들은 꾸준히 일한다.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 오래 전의 역사를 공부해 보면, 그런 식의 불안감이 다소 과장되어 표출되었던 시절이 있다. 이를테면 서기 1800…. 아니, 2000이었나, 그녀는 언제나 연대를 혼동했다. 그 시대 조상님들은 기계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시나리오를 꽤 자주 쓰고 만들고 소비했다. 훨씬 더 전에 사셨던 조상님들은 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천사들이 정말로 있었다고 믿기도 했다. 신은 말할 것도 없고. 그만큼 오래전의 세상이라면 어땠을까. 천장 위 투명한 돔 위로 택시 한 대가 급히 지나갔다. 그늘이 잠시 리본처럼 C 위로 드리웠다. 과거의 세상은 아마도 훨씬 젊었고, 훨씬 많이 웅크려 있지 않았을까. 막 피어나려는 연꽃처럼.
  천명관에서 다시 뭔가 발표하려는 모양이었다.
  “네, 지금 천명관에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현장을 연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천홍 기자!”
  “연명환입니다. 현재 사천홍 기자님께서 보좌관 한 분과 대화 중이신 관계로 제가 대신 현장 상황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네, 현재 이곳은 천명관으로, 본래 외부에 절대 공개하는 법이 없는 C-201 기획실 안입니다….”
  천명관은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기관이다. 그곳에서 우주와 운명과 모든 위대한 비밀들이 예측되고 예보된다. 종교나 정치와 상관없는 교황청인 셈이다. 천명관은 5년에 한 번씩 입관 신청서를 받는데, 1차 서류 심사에서 통과하면 일종의 학생과 비슷한 자격으로 기관에 들어가게 된다. C 역시 과거에 천명관에 서류를 넣은 적이 있었다. 떨어졌지만. 일단 합격하면 천명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무급으로 이론과 실습 교육을 받는데, 2차 시험과 3차 시험까지 통과해서 정식 직원이 되는 데까지 대략 3년이 걸린다. 천명관의 직원은 모두 세계 국적을 받고, 업무 수행 중에는 출신 국가의 법의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 천명관의 본부는 달에 있으며 그 외 지부는 우주 정거장과 지구에 위치한다. 그녀는 중학생 때 한 번 달 본부에 견학을 갔었다. 운 좋게 추첨에 걸린 덕이었다.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 비틀거리며 가방을 챙겨 셔틀 밖으로 한 걸음 내디뎠을 때였다. 딱 한 걸음만이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희뿌옇게 빛나는 푸른 물결을 보았다. 딱 그 순간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스테이션의 바닥과 천장과 기둥과 모든 것이 푸른 얼음처럼 한도 끝도 없이 검은 공허 속으로 뻗어나가는 듯 보였다. 그녀는 난데없이 천국의 입구에 뚝 떨어진 것만 같았다. 달에서 보이는 우주는 비현실적으로 텅 비었고, 지구의 하늘은 거대한 구슬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표면이 살얼음 부서지듯 탁 쏟아져 그대로 우주 멀리 한없이, 모래사장이나 파도나 구름처럼 그렇게 흩어지는 줄로만 알았다. 정신 차리려고 고개 들었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친절하게 웃는 가이드 언니와 푸르고 무덤덤한 벽과 기둥들, 반질반질하지만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는 플로어, 스스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꼭 달에 다시 와야 했다. 천명관에 들어가야 했다. 운명이었다. 천명관이 아니면 다 싫기만 했다. 떨어졌지만. 벌써 5년 전이다.
  “녹차는요, 어떻게 먹는 게 제일 좋은가 하면 말이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을 때였다. 5년 전이었고, 오늘처럼 노을 질펀한 저녁이었다. 스물한 살의 그녀는 천명관에서 막 불합격 통지를 받은 참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6개월이었으며 천명관에 입관 신청서를 넣은 지 6개월 되던 날이었다. 갑자기 옆으로 와서는 종이컵을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그가 했던 소리가 그것이었다, “녹차는요.” 그녀는 하마터면 젓가락으로 이를 칠 뻔했다. 뭐? 천명관이 날 거부했어. 그런데 녹차가 뭐 어쨌다고? 여러모로 좋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라면이나 먹기로 했다. “그냥 먹으면 좀 맛이 없어요, 그렇잖아요? 아실 테지만.” 그 당시의 C는 천명관 말고 다른 길은 찾아본 적도 없었으며,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냥 무작정 달려들어 부딪혀 본 것이고, 그냥 무작정 잘 될 것으로 생각했다. 다소 심하게 절박하게 믿고만 있었는데 2차고 뭐고 없이 그냥 단번에 떨어졌다.
  ”그런데 우연히 알아낸 건데, 꿀을 좀 많이 탄 이후 팍 식혀서, 얼음을 갖다 부어서 마시니까 맛이 좋더라고요. 거기다 매실 액을 소량 첨가해도 좋고 말이죠. 아무튼,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불합격이다. 이가 젓가락을 딱 하고 물었다. 막 삼킨 컵라면 국물이 유난히 시큰했다. 젠장, 뭐 이래. 사는 게 뭐 하나 제대로 되지가 않아. 달에 가고 싶었는데. 가야 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데. 눈가에 휴짓조각이 와 닿았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주책없이 편의점 스탠드에서 컵라면 먹다가 울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녹차남이 휴지를 자신의 눈가에 대고 있었다. 쪽팔리고 서럽고 힘들었다. 남이 울면 그냥 모른 척해줄 것이지 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휴지는 대 주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냥 좀 갔으면, 아니, 그냥 가지 않아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하고 그녀는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눈물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울면서 라면 먹으면 얼굴이 내일 아침에 세 배는 더 부을 걸요.” 이 자식이 지금 날 저주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그 손을 밀어내지 않았다. “게다가 울다 웃기까지 하면 다섯 배. 알아요?”
  알긴 뭘 알아. 그때 알람 소리가 울렸고, 둘이 서 있던 편의점 부스가 공중으로 10미터 가량 더 떠올랐다. 아래로 택시 한 대가 지나갔다. 그녀는 무심코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투명한 부스 바닥 너머로 노란 택시가 물결처럼 잠시 번졌다 사라졌다. 예의 그 녹차남은 팬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팬더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다가, 녹차남의 발가락이 움직이자 방싯 웃었다.
  “거봐, 웃으니까 훨씬 이쁘잖아요.”
  젠장.
  C는 소리 내어 “젠장,” 했다. 그리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난 그때 그놈이 내 운명인 줄 알았어.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C는 다시 “젠장,” 했다, 내가 옛날에 태어났으면 분명히 열정적인 종교 신봉자가 됐을 거야. 그걸 옛날 식으로 광신도라고 했던가? 툭하면 운명이래? “젠장.” 직업도 그렇고, 연애도 그렇고 완전 드라마퀸으로 살았잖아? 물론 C는 아는 친구의 언니의 조카처럼 가겠다는 남자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길가에서 클래시컬 뮤직비디오를 찍지는 않았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사랑을 잃은 여자는 젖은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무너지듯 주저앉고, 그런 여자를 남자가 비극적인 눈으로 바라보다가 음악이 절정으로 치닫음과 함께 둘의 행복했던 한때가 흑백으로 깔리고, 여자의 손이 남자에게서 떨어지고. 그래도 인류는 과거와는 달라서, 다음 생에서 만나요, 같은 말은 더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낯 간지러운 말은 장르 물에서나 쓰는 법이다. 그 아는 친구의 언니의 조카는 비애 장르 물 광신도…, 아니지, 광팬이었다. C는 그때 팬더 슬리퍼 밖으로 빼꼼 나와 있던 그놈의 새끼발가락을 또렷이 기억했다. 토 링을 끼고 있었다. 대나무 잎 모양의. “그 풀 쪼가리는 뭐야?” 하고 물었더니 한다는 말이 “팬더가 배고플까 봐서,” 였다. 하는 짓이 하나같이 그 모양으로 귀여웠다, 그놈은. 
  “종말까지 이제 사십 분이 남았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연락하세요. 마지막 순간을….”
  C는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어느 때든 화면 밑바닥 부분을 차지했던 줄 광고들이 온데간데없다. 하긴 초 단위로 계산되는 광고비를 이제 세상이 끝장나는 판에 계속 낼 이유가 없지.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내지 못할 것도 없다. 어차피 다 끝인데 돈 아껴서 뭐해. 의미가 없지. 인류는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때로는 간단한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줄 광고 타임 프레임을 그냥 초 단위로 끊으면 되지 굳이 나노세컨드 단위로 나눌 필요는 없다. 감정의 문제도 그렇다. 누군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면 그냥 연락하면 되는 것이다. 시시콜콜한 과거사를 죄다 기억해가며 그땐 어땠지, 저땐 저땠지, 혼자 되새겨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C는 자신이 어떻게든 생각을 길게 늘이려는 것을 잘 알았다. 어떻게든 저기 널브러진 전화기를 집어드는 순간을 미루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녀를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사랑해왔다. 그러면 된 것이 아닐까, 설령 이제 우주가 끝난다 해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사랑이라니. "젠장."
  전화가 울렸다. 한참 동안 울릴 만큼 울리다가 조용해졌다. C는 마룻바닥에 이마를 대고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숨까지 멈추고서.
  너 가끔 숨을 안 쉬는데, 그거 안 좋은 버릇이야. 좀 의식적으로 숨을 규칙적으로 쉬라고.
  그렇게 말하던 그 사람인가, 아닌가. 왜 하필 지금 전화가 울려야 하는 거지. 나더러 도대체 어쩌라고. 지가 좋다면서 휘적휘적 화성으로 유학이나 가버린 주제에. 관광 기획과 외행성 개발을 접목시켜 보고 싶다고 했으면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서는, 그렇게 폭탄 발언만 떨구면 단가. C는 계속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머리가 멍해질 때까지 말들을 반복해서 회전시켰다. 그리고…….
  달의 바다에서 장미가 피었다. 그 팬더남이 유학 선언을 하던 날이었다. 그 둘은 C가 취직해서 달로 이주한 이후 줄곧 달 기지에서 살았다. 조용하게, 심심하게, 별일 없이.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그는 그날 반바지에 오렌지 프린트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리고 맨발이었다. 그는 C의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으로 들어와서는 일단 조명 전원과 사방의 투명도 설정을 바꿨다. 불이 꺼지고 벽이 사라지고 텅 빈 달의 바다가- 언제나처럼 그렇게, 공허하고 메마른- 그 둘 앞에 펼쳐졌다. 그는 투명도만 조정한 것이 아니라 배경 설정 자체를 건드려서 아예 홀로그램을 띄웠다.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움직이는 벽지, 생동하는 인테리어 컨셉의 동영상이 투명해진 벽을 타고 흘렀다. 색깔과 색깔의 흐름과 움직임, 움직임의 환상, 고요한 물결 소리, 서늘히 가라앉는 우주. 처음 유행할 때에는 유치하다며 그렇게 치를 떨며 마룻바닥을 구르더니, 인제 와서 이게 웬일인가 하고 생각하는 C였다. 그리고 장미가 피었다. 붉고 희고 눈부신 꽃이 달 바다의 공허를 채우고 아주 천천히, 입맞춤처럼 환해졌다. 화려한 꽃이 왜 아름다운지, 그 선과 색 때문인지, 아니면 그 자체로 빛나기 때문인지, 아니면 춥고 외로운 달의 바다에 지나치게 화사하게 나타나서 그 대조가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인지, C는 한편으로는 유치하다고 생각했고 또 도대체 이 사람이 왜 이러나, 궁금했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검고 무채색이고 무덤덤하고 썰렁하던 세상이 껍질로나마 피어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슴이 아팠다. 어째서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랬다. 세상에 차마 존재할 수 없는 꽃이 불가능하게 피어나서 그랬을 수도 있다. 자신이 작업실에 틀어박혀 일하는 동안 혼자 기지를 맥없이 돌아다니거나 멍하니 바깥을 구경하거나 하던 그가, 그동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혼자 했을까 생각하면 또 그랬다. C는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세상이 완전히 뒤집혔다고 믿었다. 이제부터 많은 일이 화려하게 또 정신없이 그리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지어 지구로 쏟아지는 별처럼, 자신과 그를 맞이할 것만 같았다. 감정이 날뛰고 심장이 그렇게 뛰는데 세상이 멀겋게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사랑일지도 모르는데, 사랑인데, 운명적인 사랑인데- 시간은 아무렇잖게 흐르고 세상은 덤덤했다. C와 그는 때로 먹고사는 문제로 걱정을 하기도 했다. 서로에게 시를 읽어주다가 끌어안으면 숨이 멈춰도 좋았다. 이렇게 할 거라는, 혹은 저렇게 될 거라는 말이 귓가에 꿀처럼 달았다. 밤이 지나가고 새벽에 간신히 헤어지려면 간장이 다 녹았다.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떠나는 일이 아예 없게끔 함께 떠나자, 그렇게 속삭였었다. 답답한 지구 너머 달로, 희고 고요한 달로 가서 평화롭게 행복하자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세상은 점점 환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어두워졌다. 막상 달에 가니 별일이 없었다. 둘은 처음에는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또 어느 정도 실천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작은 정원을 마련하는 일이라든지, 서재를 꾸미는 일 등이 그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둘 다 조금씩 지쳐 갔다. C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잠에서 깨고, 일을 끝내고서는 차를 한 잔 마신 후 말없이 저녁을 흘려보냈다. 그는 그래도 꽤 끈질기게 분주히 움직였는데 갈수록 말이 줄었다. 나중에는 둘이 마주 앉아도 사방이 고요했다. 평화로운 고요가 아니라 말하기가 귀찮은 침묵이었다. 그냥 이렇게 계속 이냥 저냥 시간을 흘려보내도 몹시 나쁘지는 않은 일 아닌가, 싶은 타협이기도 했다. 이윽고 둘은 목숨을 걸고 지켰던 기념일과 온갖 특별한 날에도 무감각해졌다.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달라질 것도, 달라져야 할 것도 없었다. 그냥 지루하고 건조할 뿐. 복작거리는 지구나 치열한 화성, 여유로운 목성이 이 메마른 달보다야 훨씬 나을 것 같다고 둘은 자주 생각했다. 생각한 바를 둘 다 굳이 서로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장미라니, C는 숨을 짧게 끊어 쉬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투명도가 한껏 올라간 벽에 이마를 댄 채 그녀는 오랫동안 꽃이 피는 모습을 보았다. 꽃은 매우 오래 피었고, 그녀는 매우 오래 보았다. 그는 다른 것을 보고 있음을 C는 알고 있었다. 어쩌면 서로 말하기를 그쳤을 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침묵이 일어났다. 마치 물결 일어나듯, 세상이 끝나듯. C는 등 뒤로 울리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만난 이방인의 목소리를 듣듯이.
  "가야 할 곳이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말이지……." 달의 바다를 메운 꽃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듯 흔들렸다. 이미 피어난 장미 곁으로 또 다른 장미가 피었다. 푸르스름하게 비치는 반사광 너머로, 꽃의 홀로그램이 눈물 닦아주는 휴짓조각처럼 그녀 눈가에 닿았다. 가만가만히. "나, 이번에 화성으로 가게 됐어. 예전부터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 있잖아, 그냥 되든 안 되든 밀어 넣어 봤는데 이번에 됐다고 통보가 왔거든. 그래서 말인데…." 분명히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는데. 숨을 나누며 하고 싶은 말들도 많았는데. 온 우주를 전부 휩쓸고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진짜 꽃이 피어나는 작은 정원에서 함께 별을 바라보자고 했었는데. 피어나는 장미 너머로 C는 우주를 가득 메운 어둠을 보았다. 그리고 마치 난생처음 목격하는 양, 우주를 온통 메우고 빛나는 별들을 보았다. 고요한 달 한구석에서 홀로그램에 휩싸인 채 C는 지나치게 늦게 우주의 하늘을 발견한 기분이었고, 달의 바다는 그대로……. 홀로그램이 끝났다……. 꽃 떠난 자리였다. 어쩌면 C에게도 그에게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때 그 이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C는 그 이후로도 계속 달에 머물렀다. 그가 떠날 때 배웅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가 몇 번이나 연락했을 때, 한두 번 마지못해 응답한 적은 있다. 정말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가 다시 달로 돌아와야 한다고 고집스레 믿기도 했다. 그렇게 흘려보낸 세월도 언젠가 있었고, 그냥 모든 기대를 버리고 그를 잊고서 살아온 세월도 있었다. 아주 가끔 그를 다시 생각하거나, 드물게 예전 일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쨌거나 별들은 어둠 속으로 둥글게 떠 가고, 돌아가고, 꾸준히 자전하며 다시 같은 궤도를 공전했다. C는 그가 저장해 두었던 홀로그램들을 삭제한 지 오래였다. 나중에 보니 여러 홀로그램 중에서 무얼 고를지 꽤 고심했던 듯, 장미부터 연꽃, 벚꽃, 목련, 난꽃, 대나무 숲까지 꽤나 여러 종류가 저장되어 있었다. 그가 떠난 날 C는 홀로그램들을 모두 지웠다. 하나도 열어보지 않고 그냥 지웠지만, 대나무 숲 홀로그램은 지우기 전 잠시 망설인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잠깐이었을 뿐 그것도 곧 지웠다. 다음에는 그가 쓰던 칫솔과 속옷, 슬리퍼를 내다 버렸다. 청소를 끝내고서는 물을 끓여 컵라면과 머그컵에 나누어 붓고 녹차를 우렸다. 컵라면 뚜껑에 접시를 엎어 놓고 버릇처럼 머그컵에 꿀을 흘려 넣고 휘휘 저었다. 그리고 얼음을 많이 부었다. 이것으로 이제 정말로 끝이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접시에 눌린 컵라면 뚜껑이 면이 다 익었다며 알람 소리를 냈다.
  C는 작업 일시 중단 알람에 고개를 들었다. 작업실 한가운데 부유 중인 모니터 다섯 대가 하나같이 푸른 띠를 둘렀다. 천명관의 예보에 따라 차후 삼십 분간 업무를 중단한다는 메시지가 흘렀다.
  "아무튼, 정부들이란 느려 터져서."
  하지만 만약 천명관의 예보가 틀린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다. C는 손등으로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물론 천명관의 예보가 틀릴 리는 없다. 총리와 통령과 연합지부 수령들의 개인적인 죽음까지 확실히 예보하는 기관이다. 하다못해 일반 시민도 관심과 의지만 있다면 시민증 등록번호를 천명관에 접수해서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아낼 수 있는데, 설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개개인의 생사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온 우주의 종말이 걸린 사안인데.
  모르겠다.
  이제 예고된 끝까지 십삼 분 남았다. 만약 천명관의 예보가 빗나간다면 십칠 분 이후 컴퓨터들은 다시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C는 심호흡 했다. 그나마 자신은 이 시간에 깨어 있지만, 잠들어 있는 사람들은 또 어쩔 것인가. 잠든 사이에 세상이 훅 끝나면 또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말이다. 억울함을 느낄 만한 주체가 죽음 이후에도 존재한다면 말이지만. 멍하니 드러누운 채 이마를 마룻바닥에 대었다 떼었다가, C는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손끝이 잘 닿지 않아 처음에는 전화기를 쥐지 못했다. C는 옆으로 한 바퀴 굴러 다시 전화기를 제대로 쥐었다. "누구 전화야?" 전화기는 친절하게 답했다. "C 님께서 지난달 가입했던 할인 쿠폰 사이트에서 정기 구독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열어드릴까요?"
  "됐어, 지워."
  "네, 알겠습니다. 삭제되었습니다. 복구를 원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C는 푸르게 정지된 작업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영구 삭제해도 돼. 그것 말고…. 아무 거나 좀 괜찮은 다큐 같은 거 찾아볼래? 22세기에 멸종한 팬더에 관한 거. 아니, 21세기였나? 아무튼."
  "잡다한 영상은 작업 스크린에 띄우기 싫어하시잖아요,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그렇지, 뭐. C는 길게 숨을 내쉬고 또 들이마셨다. 도대체 뭘 기대했을라고, 인제 와서 내가. 그녀는 잠시나마 긴장했던 자신이 한심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영 입맛이 씁쓰름했다. C의 어느 정도 좋지 않은 표정 위로 잠깐 검색 리스트가 우르르 지나갔다.


  대왕 팬더: 그 마지막 나날들
  세상과는 상관없이 살다 사라져 간 동물들: 팬더 편
  19세기부터 22세기까지: 멸종의 교향곡
  팬더의 일생, 그 탄생부터 죽음까지
  대나무 숲의 초탈한 도인: 대왕 판다의 환상적인 하루


  C의 전화기가 또 물었다. "그런데 모두 1시간이 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어차피 끝이니까. 내가 지금 움직이기 영 귀찮아서 그런데, 미안하지만 감자튀김에 모짜렐라 치즈 샌드위치 좀 만들어 줄래?"
  "꼭 목요일 오후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런가? 목요일 오후마다 내가 이랬던가. C는 비극적인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다큐멘터리를 무덤덤하니 감상했다. 팬더가 멸종하던 시대에 중심을 맞추어 제작한 영상인 모양이다. 조금 오래된 물건인지 색깔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입체 정도도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것이, 예전에 만들어 놓은 물건을 나중에 손본 듯했다. C는 둥둥 떠서 다가오는 접시로 눈을 돌렸다. 감자튀김에 모짜렐라 치즈 샌드위치가 맞긴 한데.
  "감자가 팬더 모양이야."
  "기왕 팬더를 감상하시는 거."
  "모짜렐라 위에 토마토소스가 팬더 발자국 모양으로 찍혀 있어."
  "그냥 즐기세요."
  "알았어, 주는 대로 먹어야지 뭐…."
  잘 튀긴 감자 팬더의 머리를 베어 무는데 스크린이 온통 대나무 숲이 되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비장하기 그지없는 음악이 울려퍼졌다. C는 천천히 감자를 씹었다. 어떤 백인이 팬더를 발견했다고 알려졌지만, 그것은 백인의 관점에서 쓰인 역사이고……. 팬더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실 C는 팬더나 팬더의 역사나 팬더의 종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가끔 스크린을 꽉 채우는 푸른 대나무 숲이 그녀의 시선을 붙잡았다. 특히 바람이 가득 일어날 때 대나무, 대나무 잎, 숲 전체까지 모조리 물결 치듯 함께 일어나는 모습에 감자를 씹다 대충 삼키고 일어나 앉았다. 오래전의 세상은 저처럼 신비로웠을까. 팬더가 멸종하기 전의 세상은 어땠을까, 만약 내가 그때 태어났다면.
  "전화기 씨."
  "네."
  C는 잠시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았다. 다행히도 아까처럼 감정이 격앙되어 있지는 않았다. 평소와 그다지 다를 것 없이 잔잔했다.
  "내가 대나무 숲이 될 수는 없었잖아."
  "저는 가끔 C님이 대체 뭔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해."
  "그러지요."
  "아까 그거 말고 또 연락 온 건 없지?"
  "네, 없습니다. 광고 말고요."
  "그럼 됐어."
  "그리고 이제 십 분 남았습니다."
  "화분들은 어때?"
  "다들 잘 삽니다. 워낙 제가 잘 관리를 하니까요. 이번에 꽃도 피운..."
  "아니, 별로 안 말해줘도 돼."
  이번에는 전화기가 알아서 영상을 일시 중지시켰다. 끝없이 흔들리는 대나무 숲이 다섯 개의 스크린에 온통 퍼져나간 채 딱 굳었다. C에게는 아까운 장면이 나올 때 손가락으로 바닥을 두 번 두드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C는 미간을 찌푸렸다. 열심히 애쓰면 기억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긴장을 풀고 감자튀김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렇지."
  "그렇지요."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것처럼, 그런 거야."
  "그럴까요?"
  "안 그러면 또 어쩔 거야."
  "그렇군요."
  기지 매니지먼트 프로그램, 혹은 전화기와의 알쏭달쏭한 대화 이후 C는 왠지 전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천명관에서 또 발표가 있는데 띄울까요?"
  "아니."
  그냥, 놔둬.
  십 분은 오 분이 되고, 오 분은 일 분이 된다. C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화면 가득한 대나무 숲이 귀여워 보이는 이유를 도대체 알 수 없었다. 아마 이대로 세상이 끝나면- 아마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 종말일 것이다. 자신이 아직 알 수 없는 일들이 많고, 또 스스로에 대해서도 모르는 일들이 널렸지만, 또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어차피 시간은 이제 끝날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대로, 가만가만히. C는 눈을 감았다. 푸르스름한 빛깔이 감기는 눈 틈새로 스며드는 듯했다. 그대로 세상의 시간이 초 단위로 흘렀다. 평온하게 두근 두근거리며 육십 번, 정확히.
  "그럼 이렇게…."
  말이 부서졌다. C는 깜박 생각했다. 아, 달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세상이 끝나는 그런 일에 대해서 누가 알랴마는, C는 두려움 없이 끝을 겪었다. 그녀는 어쩌면 마지막에 눈을 떴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주가 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뒤늦게 그의 이름을 불렀을 수도 있다. 중학생 때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보았던 눈부신 달을 되찾았을 수도 있다,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쩌면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 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일어났을지 모른다. 아마도 대나무 숲의 푸름이 흘러내려 달의 바다를 채웠다. 어쩌면 흐르는 대나무 잎 사이로 장미 몇 송이 피었다. 추측하건대 화성에서 세상의 끝을 보았을 그는 또다시 전화기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화성의 돔 어딘가로 그녀의 이름이 날아가 스러졌을 수도 있다. 우주로 날아가는 팬더 슬리퍼는 22세기 초에 숨을 거둔 마지막 팬더처럼 빙그레 웃었을 것이다. 정원에서 흩어져 나간 장미가 우주의 어둠 속 어딘가를 꾹꾹 눌렀으리라. 온 우주가 끝나는 그 순간에 뒤섞여 달과 화성의 두 인간은 마침내 길고 긴 사랑을 매듭지었을 수도 있다. 혹은, 누가 알랴마는. 별들이 뒤섞여 그리움을 나누고 함께 빛날 때, 우주의 공허 너머로 팬더 한 마리, 장미꽃 어깨에 얹고 화려하게 날아가는 것이다. 그렇듯 온 우주의 그리움이 이날 종말하였다. 모든 별이 모든 곳에서 빛나게 되었다. 가만가만히, 달의 바다에 꽃 차오르듯, 그가 그녀 모르게 손 내밀었던 그날 우주 한가득 별 빛났듯이. 훅 하고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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