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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또르 니까그다네브일롭스끼 지음
정보라 옮김


 


    1.
    필립 안드레예비치 니체버네즈나일로프의 16대조 할아버지는 유대인이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의 가족들은 모두들 쉬쉬했지만, 또한 모두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18세가 되어 쏘비에뜨 연방 최고의 교육기관인 모스끄바 국립대학에 당당하게 지원했다가 역시 당당하게 낙방했을 때, 어린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자신의 혈관 속에 흐르는 유대인의 피가 어떤 의미인지, 아니, 유대인의 피가 단 한 방울만 섞여 있어도 그 어떤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는 러시아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뿌리 깊고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마음 속 깊이 절감했다.
    그리하여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상처 입은 가슴을 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스끄바를 떠나 시베리아 한복판에 자리 잡은 야만의 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로 갔다. 황량한 툰드라의 허허벌판 한가운데 대학 건물만 하나 서 있는 그 곳은 여름에도 새벽이면 얼음이 얼고, 아침에 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에 가끔 멧돼지가 나타나 사투를 벌이기도 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다가 시베리아 늑대와 눈싸움도 해야 하는 거친 곳이었다. 스스로 택한 유형지에 고립되어 청춘의 *5년간을 보내면서 [러시아의 정규 대학은 본래 5년제이며, 졸업하면 학사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석사에 해당하는 학위가 수여된다. 현재는 부분적이나마 미국식으로 제도가 바뀌어서 학사 학위를 수여하는 4년제 대학도 많이 생겼다 - 역주]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바흐찐이 그러했듯이 [미하일 바흐찐: 1895-1975, 러시아의 문학 이론가, 철학자 - 역주], 세상의 6분의 1인 대 쏘비에뜨 연방을 뒤흔들고, 나아가 냉전의 운명을 결정짓고 세계 전체를 놀라게 할 학위 논문을 써서 제출한 뒤에 쏘비에뜨 연방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에서 수여하는 학위를 점잖게, 그러나 뼈 있는 한 마디 논평과 함께 거절하는 날을 꿈꾸며 마음 속에서 칼을 갈았다.
   
    2.
    대학 생활은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예상했던 대로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구술시험을 마치고 나서 [구 공산권의 학교들에서는 졸업 시험이나 학기말 고사 등 중요한 시험은 대부분 필기가 아닌 구술시험으로 시행하는 것이 관례이다 - 역주] 5년을 함께 추위에 떨고 눈 속에서 얼면서 그럭저럭 정이 들었던 친구들과 일주일간 보드까에 취했다가 기숙사 방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어보니 수위가 서 있었다. 수위는 아무 말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서류봉투를 불쑥 내밀었다. 무심코 봉투를 열었더니 안에서 서류 두 장이 뚝 떨어졌다. 한 장은 성적표, 다른 한 장은 니체버네즈나일로프의 이름으로 된 학위 증명서였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봉투를 건네주자마자 수위는 휙 돌아서서 뚜벅뚜벅 가 버렸다.
    오전 내내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고심했다. 단지 유대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모스끄바에서 쫓아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학위 따위를 수여하는 걸로 일을 무마하려는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에게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었다. 학위 증명서를 얌전히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권위와 자신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해줄 수는 절대로 없었다. 얼떨결에 수령해버린 학위 증명서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 했다. 기숙사 마당에서 태워 버려야 할까? 갈기갈기 찢어서 도로 국립 중앙 교육위원회로 반송해 버릴까?
    그러나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오랫동안 고민할 수 없었다. 다시 문을 뚝뚝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보니 이번에도 수위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문이 열리자마자 수위는 말했다.
    “전화요.”
    그리고 수위는 휙 돌아서서 이번에도 말없이 뚜벅뚜벅 가 버렸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서둘러 복도 끝에 있는 공중전화로 갔다. 전화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권이었을 뿐더러, 오로지 학식과 진리의 탐구에만 몰두해온 지난 5년간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화려하고 영광스러웠던 수도 모스끄바에서의 생활을 떠올리지 않기 위하여, 그곳을 떠나 노보시비르스크로 올 때 가족과도, 이전의 친구들과도 모두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했었다. 누군가 그에게 전화를 해 온 것은 5년 만에 처음이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나, 아까끼 브세그다르가쩰스끼 교수일세.”
    수화기 저편에서 굵고 낮은 목소리가 말했다.
    “지금 당장 내 연구실로 와 주게.”
    그는 되물었다.
    “예? 무슨 일입니까?”
    그러나 ‘-입니까?’라는 의문형을 다 마치기도 전에 교수는 전화를 끊었다.
   
    3.
    그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교수는 소리쳤다.
    “문 닫아!”
    그래서 그는 등 뒤로 문을 닫았다. 크고 휑뎅그렁하고 얼어붙을 듯이 추운 연구실 구석에 놓인, 안간힘을 쓰며 얼마 안 되는 열기를 뿜어내는 자그마한 석유난로 앞에서, 모피 코트를 입은 교수가 난로를 껴안다시피 하고 앉아서 그에게 말했다.
    “너무 가까이 오지 말게, 자네 몸에서 바깥의 냉기가 전해져 오지 않나!”
    그래서 그는 연구실 문 앞에 적당히 서 있었다. 교수가 여전히 석유난로 앞에 웅크린 채로 말했다.
    “자네, 내 밑에서 박사 논문 한 번 써 볼 생각 없나?”
    “예?”
    그는 되물었다. 교수가 얼른 모피 코트 아래 파묻혔던 한 손을 들어 입술에 갖다 댔다.
    “쉿! 너무 큰 소리로 말하지 말게. 할 생각 있나, 없나?”
    “그, 그런 주, 중대한 결정은….”
    그는 더듬더듬 대답하기 시작했다. 교수가 말을 막았다.
    “국립 중교위에서 내려온 이번 장학금 예산은 딱 한 사람 분밖에 되지 않아. 게다가 박사생 추천은 오늘이 마감이란 말일세. 자, 어쩔 건가? 할 건가, 말 건가?”
    “하겠습니다.”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대답했다.
    “잘 됐군.”
    교수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모피코트 아래에서 한 손을 뽑아 들고 책상 위에 지저분하게 흩어진 이런저런 잡동사니 아래에서 구겨지고 여기저기 찢어진 서류 봉투를 하나 꺼내어 그에게 던졌다.
    “신청 서류일세. 마감은 오늘 오후 네 시니까 그 때까지 서무과로 접수하게.”
    그는 서류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꺼내 훑어보았다.
    “이, 이걸, 저, 제가 접수합니까? 교수님 서명은….”
    “적당히 알아서 해. 내 서명 본 적 있잖아?”
    교수가 말했다. 그리고 귀찮다는 듯이 나가라고 손짓했다. 그가 인사하고 문을 열자마자 교수가 다시 소리쳤다.
    “문 닫아!”
    그래서 그는 연구실을 나와서 등 뒤로 문을 닫았다.
   
    4.
    박사과정 입학 서류와 장학금 허가 서류를 마감 당일에, 그것도 동시에 접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학업 계획서와 자기 소개서를 서둘러 휘갈겨 써서 방금 받은 학위 증명서와 성적표와 함께 황급히 서무과로 가져가 보니 벌써 이런저런 서류들을 접수하러 온 사람들이 건물 밖까지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마감 시간을 몇 시간 남겨두고 여유 있게 접수하러 왔지만, 두 시간 반이나 기다린 끝에 간신히 창구에 가서 서류 다발을 들이밀자 신경질적으로 생긴 여직원은 긴 손톱으로 서류를 차르륵 넘겨보더니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학위 증명서와 성적 증명서는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어야 한다, 출생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다, 장학금 허가 확인서의 교수 서명이 성적 증명서의 교수 서명과 다르다….
    이럴 때는 싸워봤자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쏘비에뜨 연방에서 단 1년이라도 지내 본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고분고분 도로 뛰어가서 필요한 서류의 사본을 해다가 출생증명서까지 첨부하여 다시 서무과로 돌아왔을 때 시각은 네 시 삼 분이었다. 서류를 들이밀려는 그의 눈앞에서 여직원은 창구 문을 탁, 하고 닫았다. 다음 날 아침에 보드까 두 병을 뇌물로 주고서야 그는 뒤늦게 서류를 접수할 수 있었다.
   
    어쨌든 필립 안드레예비치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가문의 역사상 처음으로 쏘비에뜨 연방 국립 노보시비르스크 대학 박사 과정의 전액 장학생이 되었다. 비록 모스끄바 국립 대학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고, 혈통이나 출신과는 관계없이 자신을 실력만으로 인정해주었다는 사실이 그는 기뻤다.
   
    5.
    이후로 7년이 더 흘렀다. 열여덟 살에 시작하여 서른 살이 되기까지 도합 12년간,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성년을 맞이한 이후 인생의 전부를 시베리아의 연구실에 묻었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대학원생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학과 잡무 때문에 또 서류 다발을 들고 서무과에 제출하러 가서 창구 앞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리다가 전의 그 신경질적인 여직원에게 트집을 잡히지 않도록 보드까를 또 뇌물로 바쳤는데 어쩌다 보니까 그걸 얼떨결에 함께 마시고 술김에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나서 여직원은 임신을 했다. 그 바람에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내복 바람에 털모자만 챙겨 쓰고 손에 손에 도끼와 산탄총을 들고 달려온 여직원의 아버지와 세 오빠와 두 남동생에게 그대로 토막 살해당할 뻔했다. 그러나 지도교수의 중재로 무사히 살아남은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지도교수란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는 존재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생존을 위하여, 여직원과 함께 결혼 궁전에서 반지를 교환하고 서약서에 서명을 하여 그녀를 죽음만이 그에게서 갈라놓을 수 있는 니체버네즈나일로바로 만들었다. 그리고 일곱 달 뒤에, 역시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썩 바라던 바는 아니었지만, 베드니 필리뽀비치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태어났다.
    아이는 밤낮 없이 울어댔고, 아내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지옥 같은 집구석에서 도피하기 위해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더더욱 많은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내며 더더욱 학문과 지식에 집착했다. 시베리아 한복판에 있는 시골 도시의 그저 그런 대학에서 그저 그런 박사생으로 한 사람 분의 장학금을 셋이 쪼개 입에 풀칠이나 하며 근근이 살아가다 역시 그저 그런 학위를 받고 그저 그런 연구소 따위에 들어가서 청소부와 똑같은 임금을 받으며 한 평생 정부와 당에 아첨하는 논문 따위나 쓰는 것은 그의 인생 목표와는 거리가 멀었다. 반드시 세상을 놀라게 할 박사 논문을 써 내어, 반드시 아내와 아이까지 데리고, 국립 중앙 교육위원회에서 제발 왕림해 달라는 애원을 들으며, 당당하게 모스끄바로 금의환향하리라. 한밤중에 어린 아들의 울음소리에 잠이 깨어, 소리 지르며 악다구니를 하는 아내를 뒤로 하고 휘날리는 눈발을 헤치며 연구실로 향하면서 그는 매번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6년째 되던 해, 그가 박사 논문을 한창 열띠게 집필하고 있었을 때, 지도교수인 아까끼 브세그다르가쩰스끼 교수가 죽었다. 향년 58세였다.
    교수는 연구실에서 다 식어버린 석유난로에 이마를 대고 웅크린 채로 청소부에게 발견되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술에 취해 잠들어버린 사이에 난로가 꺼져서 얼어 죽었다고 했다. 장례식에서 모두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눈물을 훔쳤다. “시베리아의 추위가 그를 앗아갔어. 참 좋은 사람이고 능력 있는 교수였는데.” 그리고 교수의 집에 다 같이 모여 미친 듯이 보드까를 들이켰다.
    술이 깨고 나서, 브세그다르가쩰스끼 교수의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희망을 가졌다. 그는 이미 깐지다뜨 [박사 수료생, 즉 논문 심사를 제외하고 모든 학위 과정을 마친 학생을 이름 ‐ 역주]였고, 브세그다르가쩰스끼 교수의 유일한 지도 학생이자 수석 제자였다. 브세그다르가쩰스끼 교수의 연구도, 강의도, 모두 이어받아서 더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사흘 후에 대학 측에서는 다른 사람을 브세그다르가쩰스끼 교수의 후임으로 임명했다. 미하일 브따로이느이라는, 뻬쩨르부르그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엘리트였다. 성격이 거만하고 말끝마다 뻬쩨르부르그를 그리워하며 노보시비르스크를 경멸해서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새 지도교수는 특히 니체버네즈나일로프의 연구 주제도 방식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심지어는 이미 완성되어가는 논문을 버리고 다른 주제로 새로 쓰라는 폭언까지 서슴없이 해 댔다.
    사람들은 대도시에서 잘 나가던 교수가 이런 시베리아 한복판까지 쫓겨 온 걸 보면 뭔가 큰 사고를 친 게 틀림없다고 수군거렸다. 그리고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박사 학위만 따면, 곧 저 뒤가 구린 브따로이느이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를 위로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교수에게도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악다구니를 하는 아내에게도, 울어대는 아이에게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는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인류의 지성에 기여한다는 숭고한 학문적 도덕적 책임이었고, 동시에 유대인에 대한 러시아 사회의 편견을 깨뜨린다는 사회적이며 민족적인 책임이기도 했다.
   
    6.
    그렇게 7년째를 맞이하여,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학위 논문을 탈고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새 지도교수의 반대에 부딪쳐,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마치 고집을 꺾고 다른 논문 주제를 찾고 있는 척하면서 지도교수의 등 뒤로 논문을 완성했다. 실로 눈물과 피와 땀이 어린 원고였다.
    현실적인 문제는, 학위 논문의 완성본은 어디에 제출하든, 손으로 쓴 원고가 아니라 반드시 타이프라이터로 친 타자본이어야만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이다 ‐ 역주]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타자를 칠 줄 몰랐고, 따로 타자수를 고용하기에는 돈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부탁해야만 했다. 온갖 잔소리와 모욕과 요구 사항을 감내하면서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꾹꾹 참고 원고가 완성될 때까지 아내에게 굽실거렸다. 그렇게 완성된 타자본은 한 장 한 장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으면서 오자와 탈자를 확인했다.
    아내는 비록 성격은 지랄 같았지만 사무직원으로서의 타자 솜씨만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타자본이 오자도 탈자도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서되어 완성된 것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내용도 이 정도라면 쏘비에뜨 연방 학계에 전방위적인 파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을 때,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부푼 마음으로 우체국에 가서 원고를 발송했다.
   
    그것은 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7.
    3주가 지났다.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로부터는 아무런 답변도 없었다.
    그로부터 숨 막히는 3주가 더 지났을 때, 드디어 중교위의 인장이 찍힌 커다랗고 두툼한 봉투가 니체버네즈나일로프 앞으로 도착했다. 봉투를 뜯는 그의 손은 떨렸다.
    봉투에는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보냈던 학위 논문 타자본이 그대로, 표지만 손때가 타서 조금 더러워진 채, 들어 있었다. 논문을 꺼낸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어이가 없어서 서류 봉투를 한 번 더 뒤집어서 흔들어 보았다. 얄팍한 종이가 한 장 떨어졌다. 종이에는, 역시 정성스러운 타자로, 이렇게 찍혀 있었다.
   
    “친애하는 필립 안드레예비치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
   
    본 위원회는 동무가 보낸 논문 원고를 수령하였으나, 어째서 우리 위원회로 논문을 보냈는지 이해할 수 없어 반송합니다.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논문은, 목적한 학위가 어떤 종류이든, 지도교수 및 부심 교수들로 구성된 해당 대학 해당 학과의 논문 심사 위원회에서 완독한 후 구술시험 형식의 논문 심사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심사가 완료되고 논문이 통과된 이후 학위가 수여되면 본 위원회에서는 수여된 학위의 등록과 이후 학위 증명서 발송 등을 통한 학력 입증 업무를 맡게 됩니다.
    본 위원회는 개인이 보낸 논문을 심사하거나 직접 학위를 수여하지 않습니다. 학위 취득이 목적이라면 당해 대학의 교수진에게 먼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존경의 마음을 담아,
    쏘비에뜨 연방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 위원장
    지나이다 제르깔로바.”
   
    8.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절망했다. 그러나 오래 절망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다시 전의를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아내에게 부탁하여, 그는 손때가 탄 표지를 버리고 더러워진 부분만을 새로 깨끗하게 타자를 쳐서 새 타자본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이번에는 아내에게 부탁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한 글자씩 타자를 쳐서, 첨부해서 발송했다.
   
    “친애하는 지나이다 제르깔로바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 위원장 동무.
   
    저는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필립 안드레예비치 니체버네즈나일로프라고 합니다. (이후 자기소개는 생략) … 이러한 절차로 현재 지도교수님은 사망하신 상태이며, 브세그다르가쩰스끼 교수님만큼 저의 생각을 이해하고 또한 저의 실력과 지성을 인정해주시는 분은 불행히도 노보시비르스크 대학에는 더 이상 없습니다. 제가 학위 논문 원고를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로 보낸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처럼 실력도 없고 신뢰할 수도 없는 교수진에게 앞날을 맡기기보다는 권위 있는 기관에서 직접 심사를 받고 학위 논문을 출판하여 쏘비에뜨 연방 학계에 하루라도 빨리 기여하고 싶은 충정 때문입니다. 그러니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에서 이번 분기에 발행하시는 학술지에 저의 학위 논문을 게재해주실 것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존경의 마음을 담아,
    노보시비르스크 대학교 깐지다뜨
    필립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또 다시 3주가 지난 뒤에,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답장을 받았다. 이번에도 학위 논문에는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더 많은 손때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또 얇은 종이에 타자로 친 편지가 들어 있었다.
   
    “친애하는 필립 안드레예비치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
   
    이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본 위원회는 개인이 보낸 논문을 심사하거나 직접 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학위 취득이 목적이라면 당해 대학의 교수진에게 먼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논문 게재 건에 대하여 현재 박사 학위를 소지하지 않은 대학원생의 경우, 지도 교수의 추천서가 첨부되지 않은 논문은 게재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오니 역시 당해 대학 교수진에게 상담하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본 위원회에서 보내 주신 논문을 면밀히 검토한 바, 논지가 난해하고 논리 전개의 비약이 심하며 핵심 주장이 취약하여, 현 상태라면 괄목할 만한 교정을 거치지 않은 채 본 위원회의 학술지에 그대로 게재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이오니, 지도 교수님의 조언을 구하시는 것이 여러 모로 타당하리라 사료됩니다.
    본 위원회에서 발행하는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 학술지는 쏘비에뜨 연방 전체에서 보내오는 수많은 뛰어난 학술 논문들을 엄정히 심사하여 게재하므로, 다음 기회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다시 한 번 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의 마음을 담아,
    쏘비에뜨 연방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 위원장
    지나이다 제르깔로바.”
   
    9.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이번에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분노했다.
    쏘비에뜨 연방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는 그의 학위 논문을 게재해줄 수 없다는 이유는 단지 지도 교수의 추천서, 혹은 박사 학위 증명서라는 종이쪽지 한 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중교위의 멍청이들이 그의 논문이 가지는 학문적인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교수 추천서? 필요하다면 그까짓 것 만들어 주마. 학위 증명서? 이것도 역시 만들어줄 수 있다. 그는 불타올랐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이번에는 아내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그는 명령했다. 이토록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아내는 뭔가 잔소리를 하려다가, 겁먹은 얼굴로 얌전히 타자기 앞에 앉아서 그가 불러주는 대로 치기 시작했다.
   
    10.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다시 한 번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에서 편지를 받았다. 이번에는 일주일 만이었다.
   
    “친애하는 필립 안드레예비치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
   
    본 위원회에서 확인한 결과, 동무의 지도 교수이신 미하일 뻬뜨로비치 브따로이느이 교수님께서 동무의 논문을 추천하는 내용의 편지를 본 위원회에 보내신 사실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스니다. 또한 추천서를 보내신 부심 교수 옐레나 오블로모바, 혹은 학과장 스쩨빤 곤차로프라는 교수는 노보시비르스크 대학교 교수진 중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았으며, 노보시비르스크 대학교 총장이신 니꼴라이 레오니도비치 우치쩰례프 박사님께서는 동무에게 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하셨습니다.
   
    존경의 마음을 담아,
    쏘비에뜨 연방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 위원장
    지나이다 제르깔로바.”
   
    이 답장을 받은 다음날,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대학원 징계 위원회에 불려갔다.
    회의실을 나왔을 때,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박사 과정 대학원생도, 깐지다뜨도,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다.
   
    11.
    모든 것을 빼앗긴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혼자서 모스끄바로 갔다. 물론 여행 허가를 얻는 과정 또한 간단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무과 직원을 아내로 둔 덕분에, 그가 처한 상황에 비해서는 비교적 쉽게 여행 허가서와 국내용 여권을 입수할 수 있었다. 기차역으로 가는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손에 이제까지 중교위에서 받은 편지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타자로 쳐서 검은 리본으로 묶은 논문 타자본을 소중하게 넣은 가방 하나만을 들고 있었다.
    쏘비에뜨 연방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는 우치쩰느이 까미쩨뜨 대로 왼편에 높이 솟은 음울한 황토색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확히 몇 층 몇 호에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육중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제복을 입고 허리에 총을 차고 각진 모자를 쓴 경비원들이 고개만 돌려 그를 내려다보았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그 중 인상이 약간 더 순해 보이는 경비원에게 다가섰다. 바로 앞에 가서야, 그냥 사설 경비원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군인이라는 것을, 제복을 좀 더 자세히 보고야 알 수 있었다.
    군인은 말없이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지나이다 제르깔로바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 위원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서류.”
    군인이 짧게 말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가방을 열었다. 이제까지 중교위에서 받은 편지를 전부 꺼내 보여주었다.
    군인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군인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벽에 조그맣게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너무 작아서 바로 앞에 다가가서야 읽을 수 있었다.
    “쏘비에뜨 연방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에 볼일이 있는 시민은 사안을 상세히 적은 신청서와 확인서를 제출한 후 중교위에서 접수 처리하여 발송한 접수증과 허가서, 상기 제반 서류에 대한 공증서, 그리고 본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과 출생증명서 및 소속 학교의 학생증 혹은 교직원증을 소지하여야 한다. 학생증 혹은 교직원증을 소지하지 않은 경우, 소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경위서와 본인이 어떠한 사유로 교육에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하는 해명서, 그리고 신원을 보증할 수 있는 자 2인의 신원 보증서를 첨부할 것.”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안내문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은 후, 다시 군인에게 다가갔다.
    “신청서와 확인서 양식은 어디 가면 얻을 수 있습니까?”
    군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말없이 내려다볼 뿐이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다시 물었다.
    “신청서와 확인서 말입니다. 어디 가서 얻을 수 있냐구요?”
    군인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군인의 통나무 같은 팔이 그를 막았다. 그리고 군인은 말없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이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 건물을 나왔다.
   
    12.
    숙소로 잡은 노동자 공동 숙박소에서 이리저리 물어본 끝에, 뜻밖에도 우체국에 가면 신청서와 확인서 양식을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우체국에 가서 일반 창구 앞에서 한 시간 사십 분간 줄을 서 있다가, 창구 직원으로부터 서류 양식은 전담 창구가 따로 있다는 말을 듣고 우체국 안쪽에 있는 서류 전담 창구를 간신히 찾아 갔다가, 마침 창구 직원이 차 마시는 시간이라 45분간 휴식이라서 그대로 앉아서 기다렸다가, 돌아온 직원을 붙잡고 사정을 이야기하자 직원이 책상에 산더미같이 쌓인 서류를 느릿느릿 뒤져서 찾아낸 것이 쏘비에뜨 연방 건설 위원회 신청서였고, 이 신청서가 아니라고 말하는 도중에 창구 직원은 점심시간이 되었다며 나가 버렸고, 그리하여 한 시간 십오 분을 더 기다려 직원이 돌아온 뒤에 또다시 느릿느릿 서류 더미를 뒤져서, 국립 곤충학회 학술대회 참가 신청서와 작가협회의 중앙아시아 단체여행 신청서를 잘못 받았다 돌려주고, 그런 과정에서 두 시간을 더 소모한 후에야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 상담 신청서와 신청 확인서를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지루하므로 자세히 쓰지 않겠다.
    창구 직원이 또 다시 오후의 차 시간을 즐기러 나가 버린 동안,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펜을 들고 우체국에 앉아서 자신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요약해 보았다. 객관적이고 건조하게 서술해야 할까? 아니면 주관적이고 감정적으로,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리도록 써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마침내 종이에 펜을 대고 사각사각 움직이기 시작했다.
   
    13.
    아수라장 같은 노동자 공동 숙박소에서 일주일을 버티면서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기다렸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그가 받은 것은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 1층으로 오라는 아주 짧고 무뚝뚝한 편지였다. 그래도 희망에 차서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다시 한 번 우치쩰느이 까미쩨뜨 대로의 음울한 황토색 건물을 찾아갔다.
    1층에서 그는 또 다시 이전의 무표정한 군인과 마주쳤다. 다시 한 번 통나무 같은 팔이 앞을 막자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자랑스럽게 편지를 제시했다. 그러자 군인은 한 옆에 있는 책상으로 가더니 뭔가를 꺼내서 니체버네즈나일로프에게 내밀었다. 작고 얄팍한 봉투였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주는 대로 받아 들었다. 군인의 눈치를 보다가 봉투를 뜯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친애하는 필립 안드레예비치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
   
    검토 결과, 동무가 신청한 사안은 본 위원회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존경의 마음을 담아,
    쏘비에뜨 연방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 위원장
    지나이다 제르깔로바.”
   
    14.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군인은 입구 바로 앞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달려갔다. 군인 둘이 막아섰다. 그는 외쳤다.
    “들어가게 해 줘요.”
    그는 온 힘을 다해 고함쳤다.
    “내 인생이 걸린 문제야! 냉전의 운명이, 전 쏘비에뜨 연방 학계의 앞날이 걸린 문제라고! 들여보내 줘!”
    군인들에게 붙잡혀 끌려 나오면서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계속해서 고함쳤다.
    “당신들 지금 크게 잘못하는 거야! 들여보내 줘! 위원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15.
    노동자 공동 숙박소로 돌아온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밤이 될 때까지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해가 지고 나자 문득 일어섰다. 그리고 숙박소 사무실로 가서 종이와 펜을 얻어다가,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16.
    사흘 후, 모스끄바에서 발행되는 쏘비에뜨 연방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 산하 ‘교육 신문’의 독자 투고란에 이런 글이 실렸다.
   
    “저는 얼마 전까지도 노보시비르스크 대학에서 박사 과정에 재학하여 깐지다뜨 과정까지 수료한 필립 안드레예비치 니체버네즈나일로프라고 합니다. (상세한 자기 소개는 생략) … 이리하여 본인은 몸담고 있던 학교에서도 쫓겨나, 제 인생의 12년을 바쳐 이룩한 연구 업적과 앞으로의 학문적 가능성을 모두 빼앗기고, 아내와 어린 아들까지 데리고 갈 곳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에 전 쏘비에뜨 연방 시민들 앞에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를 고발하는 바입니다.
    애초에 모스끄바 국립대학에 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던 본인을, 단지 유대인의 혈통을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유형이나 다름없는 시베리아 한복판의 노보시비르스크까지 쫓아 보낸 것도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의 판단 착오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모든 정열을 쏟아 완성한 논문의 창의적인 연구 주제와 뛰어난 학문적 수준을 인정하지 않고, 박사 학위가 없다, 혹은 지도교수의 추천서가 없다는 등, 학문적 근거 없이 복잡한 행정상의 절차를 이유로 몇 번이나 되풀이해 거부하여 결국 본인을 몸담고 있던 대학에서도 쫓겨나게 만든 것 또한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의 소행입니다. 앞날이 촉망되는 실력 있는 학자를 지원하고 양성하지는 못할망정 연구를 좌절시키고 소속 대학에서 쫓아내는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의 행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벼랑 끝에 몰린 저는 대 쏘비에뜨 연방 시민 여러분의 정의감에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직접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니체버네즈나일로프의 학위논문을 요약한 초록(抄錄)이 첨부되었다.
   
    17.
    니체버네즈나일로프의 투고는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교육 신문’의 귀중한 지면이 교육계 소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개 시민의 신세 한탄으로 낭비되었다는 불만부터 학위 논문 초록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논평을 거쳐 심각한 사안이니 국립 중교위에 정식으로 감사를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언제나 조용했던 ‘교육 신문’ 편집실에 기록적인 양의 독자 편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편집진은 그 편지들을 모두 읽고 지면에 게재할 내용과 하지 않을 내용을 가리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사흘 뒤에 ‘교육 신문’에는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 명의로 된 해명 기사가 실렸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본 위원회는 필립 안드레예비치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의 항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우선,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께서 언급하신 입학 혹은 학위 수여 관련 사안들은 모두 당해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관할하여 판정하는 사안들로서, 본 위원회에서 직접적으로 처리하거나 지시하지 않는 분야임을 명백히 밝히는 바입니다.
   
    1. 모스끄바 국립대학 입학신청 거절 건
    모스끄바 국립대학에 문의한 결과, 필립 안드레예비치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는 성적 미달로 입학 신청이 거절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고등학교 성적 증명서 첨부)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의 16대 조상 중에 유대인이 섞여 있었다는 사실은 입학 사정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음을 명시하는 바입니다. 위대한 쏘비에뜨 연방에는 인종 차별이 없습니다.
   
    2. 노보시비르스크 대학 학위논문 건
    본 위원회에서는 자체 규정에 따라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가 논문 원고에 동봉한 추천서와 총장 명의로 된 학위 증명 서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여, 상기 추천서 (3부) 및 학위 증명 서한 (1부)이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가 직접 작성한 허위 서류임을 발견하고 해당 대학의 관련 교수 및 총장에게 통보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교육 위원회로서 학력을 확인하고 사실을 인증하는 책무를 다한 것입니다. 이후 노보시비르스크 대학에서 결정한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의 징계 건에 본 위원회는 전혀 간여한 바 없음을 이 자리를 빌어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3. 학위논문 게재 건
    상기 언급된 바와 같이,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가 송달한 논문에 첨부된 서류들은 본인이 타인의 명의로 작성한 허위임이 밝혀진 바, 자체 규정에 따라 자격이 미달된 논문으로 처리하여 게재를 거부했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3번에는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이전에 받았던, 논문의 논지 취약성 및 논리 전개의 비약을 지적하는 편지가 첨부되어 있었다.
   
    18.
    이틀 뒤 ‘교육 신문’에는 교육 위원회의 발표문에 항의하는 니체버네즈나일로프의 편지가 실렸다. 교육 위원회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교육 신문’의 소중한 지면을 전면 할애하도록 함으로써 글의 분량으로 일개 독자 투고에 불과한 니체버네즈나일로프 자신의 주장을 압도하려는 권위주의적이며 교활한 중교위의 행태를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하여 또 유례없는 양의 독자 편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 니체버네즈나일로프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교육 신문’ 편집진은 긴 회의 끝에 더 이상 니체버네즈나일로프의 주장을 게재하여 ‘교육 신문’의 지면을 더럽힐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 내용을 완곡하게 요약한 편지를 니체버네즈나일로프에게 보냈다.
   
    19.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교육 신문’에서 보내온 편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편지 말미에는 ‘교육 신문 편집 위원장 지나이다 제르깔로바’라는, 교육 위원회와 같은 서명이 들어 있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입술을 깨물었다.
   
    20.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교육 신문’ 편집진과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에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로서는 마음의 결심을 굳게 하고 쓴 마지막 편지였다.
   
    “(전략) 실력이 있어도 단지 학위 증명서 한 장, 혹은 교수 추천서 한 장이 없기 때문에 뛰어난 연구 업적을 쌓고도 발표를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워 저지른 행동입니다. 어쨌든 적법하지 않은 서류로 인하여 물의를 일으킨 점은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성적 증명서를 포함하여 본인의 모든 개인적인 이력이 신문 지상에 낱낱이 공개되어 버린 현재 상황은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교육 신문’에 보낸 독자 투고를 모두 취소할 테니,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에서도 이전에 게재한, 저에 대한 글을 취소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다음 날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답장을 한 장 받았다. ‘교육 신문’에서 보낸 짤막한 답변이었다.
   
    “친애하는 필립 안드레예비치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
   
    이미 발행한 신문에 게재된 기사는 소급 취소가 불가능합니다.
   
    존경의 마음을 담아,
    ‘교육 신문’ 편집 위원장
    지나이다 제르깔로바.”
   
    21.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교육 신문’ 편집국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22.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알지 못했던 것은, ‘교육 신문’ 편집국이 쏘비에뜨 연방 국립 중앙 교육 위원회와 같은 건물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는 자주 보아서 어느 새 얼굴이 익어버린 군인이 또 다시 무표정하게 앞을 가로막았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뭔가 말하려 했다.
    그 순간, 천정에서 끼릭, 끼리릭,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갑자기 ‘인떼르나찌아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의 마지막
    그리고 결정적인 전투이다
    인떼르나찌아날과 함께
    인류에게 활기를 불러오자…
   
    음악 소리가 들려오자 군인들은 바로 등허리를 곧추세우고 차렷 자세로 섰다. 그리고 이어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비병 동무, 들여보내세요.”
    “예, 위원장님!”
    군인들은 스피커 너머로 들리거나 말거나 동시에 대답했다.
    스피커가 다시 말했다.
    “75층입니다.”
    그리고 스피커는 꺼졌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입구로 들어섰다.
   
    23.
    입구 안쪽은 좁다랗고 한없이 긴 복도였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조심스럽게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복도가 끝나는 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고 눈길로 수많은 버튼 사이를 헤매 다닌 끝에, ‘75’라고 찍힌 버튼을 간신히 찾아내서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덜컹, 하고 한 번 몸을 떨더니, 위이잉, 하는 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24.
    엘리베이터는 올라갈 때처럼 덜컹, 하고 한 번 몸을 떨고 나서 멈추어 섰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승강기 문이 등 뒤에서 소리 없이 닫혔다.
    복도는 길고 좁고 어두웠다. 그리고 그 끝에는 육중한 문이 두 개 있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어, 문을 밀었다. 문은 열렸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안으로 들어섰다.
   
    25.
    안은 생각 외로 넓은 방이었다. 창문이 없는 데 비하면 대단히 밝고 환한 방 안에 가구라고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커다란 고급 마호가니 책상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에는 산더미 같은 서류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지 말고 누나 말 좀 들어. 약은 지금 먹어야 한다니까? 너 계속 이러면 주사 놓는다? 주사 놓으면 얼마나 아픈지 알아? 자, 좀 얌전히….”
    “지나이다 제르깔로바!”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목청을 높여 외쳤다. 마호가니 책상 뒤에서 여자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캥, 하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가 한 마리 책상 뒤에서 뛰쳐나와 문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문이 닫혀 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고양이는 문 바로 앞에 버티고 서서 몸의 털을 세우고 발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하아아악, 소리를 냈다.
    “그렇다고 도망을 가면 어떡하니, 정말….”
    끈적해보이는 녹색 액체가 담긴, 바늘이 없는 커다란 주사기를 손에 들고 여자가 투덜거렸다. 여자는 의외로 귀여운 인상에 상당히 어려 보이는, 뚜렷한 검은 눈과 검은 머리카락의 미인이었다. 여자의 검은 눈이 니체버네즈나일로프에게 향했다. 여자가 웃었다.
    “제가 지나이다 제르깔로바입니다. 우리 초면이죠? 편지 왕래는 많이 있었습니다만.”
    그리고 여자는 주사기를 놓고 책상 뒤에서 돌아 나왔다. 몸집도 날렵했지만 자그마했고, 굉장한 미모를 제외하면 어디로 보나 평범한 젊은 여자일 뿐이었다.
    여자가 앞으로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책상 위에 나 같은 사람들이 피땀으로 써서 보낸 논문을 쌓아놓고, 고양이나 데리고 놀고 있는 건가, 당신은?”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으르렁거렸다.
    “학술지에 게재하는 논문은 고양이가 선정하는 건가? 학위 증명서니 교수 추천서니, 당신들 편의대로 정한 서류 몇 장이 빠졌다고 실력 있는 학자를 매장해버린 걸로도 모자라서, 이젠 어용 신문에다 내 개인 정보를 다 까발려? 그러고 이런 건물 구석에, 경비병들 뒤에 숨어 있으면 내가 못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나? 편견으로 가득 찬 비겁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관료주의자에 권위주의자 같으니, 그렇게 마음 편하게 계속 고양이랑 노닥거릴 수 있을 줄 알았어?”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소리치는 내용을 참을성 있게 다 듣고 나서 여자는 상냥하게 웃었다. 그리고 물었다.
    “니체버네즈나일로프 동무. 앎이라는 것과 삶이라는 것,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25.
    일주일 뒤 모스끄바 강 [러시아의 수도 모스끄바를 가로지르는 강 이름도 모스끄바 강이다 ‐ 역주]에 사람의 오른팔이 떠올랐다. 새벽에 인근 골목을 청소하던 청소부가 처음 발견했다.
    경찰은 감식 결과, 팔이 죽은 후에 절단되었다고 결론지었다. 손의 지문을 감식한 결과, 시신의 신원은 노보시비르스크에 거주하는 필립 안드레예비치 니체버네즈나일로프로 밝혀졌다. 시신의 나머지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26.
    팔 하나만을 묻는 니체버네즈나일로프의 장례식에 와서 울어준 것은 7년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던 아내와 어린 아들 뿐이었다.
    대 쏘비에뜨 연방에 살인 등의 강력 범죄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경찰은 니체버네즈나일로프가 본인의 실수로 사망했으리라 추정하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 니체버네즈나일로프의 아내는 어딘가로 불려갔다가 몇 주 뒤에야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후 니체버네즈나일로바는 계속 노보시비르스크 대학 서무과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키웠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남편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심지어 아들에게도,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mirror
댓글 11
  • No Profile
    as 09.08.29 13:39 댓글 수정 삭제
    으음. 이건... 음...
  • No Profile
    보라 09.08.29 13:43 댓글 수정 삭제
    아하하;;; 하;; 하;;;;;;
  • No Profile
    ida 09.08.29 14:53 댓글 수정 삭제
    이토록 강렬하게 다른 나라를 느끼게 해 주신 점이 감탄스럽습니다. 아아, 정말 춥군요. 글에서 한기가 흘러나와서 몸을 움츠렸을 정도. 그리고 시사적인 면도.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에 대해 같은 시기에 쓸 수 있는 작가를 보면 놀랍고 감탄스러워요. :)
  • No Profile
    보라 09.08.29 22:02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
  • No Profile
    우상희 09.09.08 22:18 댓글 수정 삭제
    러시아어가 전공이신가요? 저도 외국소설은 문화차이나 딱딱한 번역체 때문에 몰입을 잘 못하는 편인데... 제대로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우상희 09.09.09 01:22 댓글 수정 삭제
    이글이 공감이 가는 것은, 생각보다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많이 처하기 때문이죠.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그렇고 말이죠. 아무리 논리적으로 맞는 말을해도 사회전체가 들어주질 않는게 참 답답하죠.
  • No Profile
    09.09.09 12:43 댓글 수정 삭제
    좋은 글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24] 부분에 실수가 하나 있네요.
    [승강기 문이 등 뒤에서 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 No Profile
    mirror 09.09.09 13:56 댓글 수정 삭제
    쓺/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 No Profile
    보라 09.09.10 12:23 댓글 수정 삭제
    우상희님 쓺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mirror님 (^^;;;;) 제가 부탁드리기도 전에 수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런 기초적인 실수를;;;;)
  • No Profile
    레이 09.09.13 23:10 댓글 수정 삭제
    헉, 무서운 이야기였군요.
    번역문인데도 딱딱하지 않아 술술 읽었어요. 대단하세요!
  • No Profile
    보라 09.09.14 22:01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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