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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체가 태양풍에 거칠게 흔들리며 표준 각도에서 오른쪽으로 기운다. 경고 알림이 울리지 않았으니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고, 자동 항행 장치도 금새 작동하여 선체 각도를 바로 잡았으니 큰 문제야 없겠지만, 오랜만에 한 번 크게 흔들리고 나니 이것저것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먼저 항해 정보 패널을 호출해 태양풍의 정보를 확인하고, 그 다음으로 선체 정보 패널을 들여다본다. 방금 지나간 태양풍은 4.1등급 -선체가 흔들리며, 5분 이상 지속될 경우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강도- 이었고, 선체의 외부 장비와 외벽, 내벽과 내부 순환기는 모두 정상 작동 중이었다. 컨테이너에 선적한 32톤 가량의 지구 바닷물에도 변질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하고 한숨을 내쉬는 순간, 지구 시간으로 2시 55분에 맞추어놓은 일정 알림이 조종석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오늘 오후 3시에는 화성 이주 선단 사령부와 지구 이주민 대표단 간의 최종 협의가 열린다. 이미 모든 선적 작업을 마치고 철수 시점만 기다리고 있는 나로서는 관심을 가질만한 흥미거리다. 나는 계기판의 버튼을 눌러 동화상 패널을 호출한 다음, 조종석 눈높이에 맞추어두고 부엌을 향해 몸을 던졌다.
 
  /...로서 지구민의 이주 사업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부엌의 지지대를 잡고서 몸을 바로 잡고 나니, 동화상 패널에서 총사령부 함선이 송출하는 이주 선단 광고 방송 소리가 들려온다. 이미 수천 번을 들어서 나도 모르게 외우고 있는 광고다.
 
  /화성 정부의 지구인 이주 사업은 7000년에 걸친 대사업이었습니다.
 
 지난 7000년 동안 우리 화성 정부는 약 5천만 명의 지구인을 수송하였으며, 884종에 이르는 지구의 동식물은 물론, 총 1만 톤에 달하는 지구의 유적까지 안전하게 운송하는 훌륭한 업적을 이룩하였습니다- 방송을 따라 중얼거리면서 냉장고에서 슌과 윤을 꺼내어 식료 복원기에 집어 넣고, 버튼을 눌렀다.
 
  /...모쪼록 지구의 마지막을 맞이하여, 이주 사업 선단의 군 공무원 여러분,
 그리고 민간 참여자 여러분은.
 
 7000 여 년에 달하는 지구인 이주 사업을 훌륭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주십시오- 태양풍이 심한 지구성권에서는 화성에서 송출하는 전파를 제대로 수신할 수 없었고, 지구에서 송출하는 지구 방송은 전파 구성과 화상 규격이 화성 방송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강제 수신을 하더라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덕분에 감정 기복을 최소한으로 자극하는, 그런 심심한 방송을 내보내는 총사령부 함선 방송을 수신할 수 밖에 없었는데, 중간 중간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저 광고를 하도 보고 듣다 보니 이제는 내용을 전부 외웠을 뿐만 아니라, 담화문을 낭독하는 총사령관 유유즈무의 억양까지 흉내 낼 수 있을 지경이었다.
 
  /화성 시간으로 37.1초 후, 지구 시간으로 35초 후,
 제3차 화성과 지구간 이주 사업 최종 협의회를 방송하겠습니다.
 
 37.1초- 식료 복원기가 복원 완료 알림을 울린다. 나는 재빨리 슌과 윤을 꺼내 들고서 조종석을 향해 몸을 던졌다.
 
  /본 방송은 화성 헌법, 방송법에 따라 지근 인식 거리 내에서의 실시간 오차를
   2.4초 이내로 제한하고 있으며, 전파의 공공성에 따라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모든 지적 존재에게 무기한 전면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서둘러 조종석에 앉아 패널을 들여다본다. 다행히도 아직은 검은 화면 위로 안내문이 낭독 음성과 함께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또한 본 방송은 화성과 지구간 방송 특별 협의 조약에 따라
   화성 영어와 지구 영어로 동시 통역 방송하며, 통역에 따른
   전달 상의 오류 방지법에 의거하여 원어 동화상과 기록문을
   통신망을 통하여 배포합니다. 해당 협의회는 화성 사실 기록
   공유법에 의거하여 협의 종료 후 233시간 내에 화성 대우주
   외교통상청의 통신 채널에 등록 예정입니다. 그 밖에 화성과
   지구간의 언어별 특징에 대한 자료 역시 화성 대우주 외교 통상청
   통신 채널을 통하여 무료로 배포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길고 긴 안내문이 드디어 끝에 다다른다.
 
  /화성 특별 정치 언론법에 따라 해당 협의회 동화상 데이터의
   악의적 편집 및 변형, 그리고 배포 행위는 엄중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항을 위반할 경우, 화성 평등 위원회에
   회부되어 사형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반대파를 음해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고민하는 지구원론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역시 하는 짓은 똑같은 지구부정주의자도 아니기에, 사형 운운하는 경고를 가볍게 들어 넘기며 동화상 패널의 버튼을 눌러 녹화를 시작했다. 아마도 모교의 동호회 -'우주 전파 역사의 산증인이 되자'는 취지와 목적 하에, '두 손으로 직접 얻어, 직접 저장한 전파 음향 및 동화상 데이터'를 수집하는 우주 비행사 학교의 동호회, '전파 수집단'- 후배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일 것이다. 특히 이번 협의회 동화상은 태양풍이 심한 지구성권에서 송출되는 전파인 만큼, 화성까지 손실 하나 없이 완벽하게 닿기는 어려울 테니, 이 참에 잘 녹화해두었다가 동호회 창설 기념 모임 때 직접 전달해 줄 생각이었다. 무려 화성 역사에 있어 '화성과 지구 간의 마지막 회의’를 지근 거리에서 편집 하나 없이 깨끗하고 온전하게 기록한 동화상 데이터인 만큼, ‘전파 수집단’의 희귀 동화상 데이터 목록에 잘 어울리리라.
 
  /지금부터 화성 지구간 최종 이주 사업 최종 협의회를 방송합니다.
 
 검은 화면이 순간 밝아지면서 패널 위로 총사령부 함선 회의실 화면이 떠오른다. 보조 화면으로는 막 선착장에 도착한 지구 대표 협상단이 갑판으로 내려 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 화성 지구간 이주 사업 최종 협의회의
   화성 대표 참석자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화면 위로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 둘 지나간다.
 
  /이주 항해단 총사령관 유유즈무,
   이주 항해단 부사령관 마난마난,
   화성 정부 대표 사라나난,
   화성 정부 대표 아유사사나무...
 
 뒤를 이어 지구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어서 지구 이주 사업 대표단을 소개토록 하겠습니다.
   지구 이주 협상회의 의장 드웨인 카터...
 
 지구인 특유의 무뚝뚝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슌을 한 모금 들이킨다.
 
  /지구 이주 협상회의 부의장 조셉 카르타지나,
   지구 이주 협상회의 민간대표 류 하인
 
 이주 사업에 민간 비행사로서 참여한 지 벌써 14년이 흘렀고, 그 와중에 겪은 지구인도 수 천명에 달하지만, 지구인 특유의 단조로운 피부색과 탁한 발음의 지구어와 이해할 수 없는 발음 구조의 이름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지구 부정주의자들처럼 지구인들을 저열한 열등분자들이라고 여기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이렇게 지구인들을 대할 때마다 정말로 이들이 우리 화성의 뿌리란 말인가. 정말로 이들이 우리 화성의 아름다운 예술과 합리성과 조직성을 갖춘 사회의 모태란 말인가...하는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번 이주 사업 최종 협의회는
   지구식 예법에 맞추어 이루어집니다.
 
 한숨이 나온다. 지구식 예법이라고 해봐야, 고작해야 입장 순서와 착석 순서, 그리고 자리 배치 같은 의미 없는 규칙일 뿐이다. 지구인들은 그런 규칙을 품위라고 불렀지만, 글쎄, 평범한 화성인들처럼 나 역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 지구 부정주의자라면, 지구어 사전에서 '품위'의 뜻을 찾아본 다음, 가장 품위 없는 존재는 바로 지구인들이라고 반박했을지도 모른다.
 
  /먼저 지구 지표면 및 대기 상황에 의하여,
   부득이 회의 장소를 화성 함선으로 옮겼으나
   지구성권에 해당하는 만큼, 초대 입장인 지구 대표자
   여러분이 먼저 입장 후 착석하도록 하겠습니다.
 
 윤을 조금 잘라 입에 넣고 씹는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붉은 색 윤은 입 속에서 달콤한 향기와 함께 녹아 든다.
 
  /그럼 지구 이주 협상회 대표자 분들이 입장합니다.
 
 느릿하고 불편한 '품위'를 따져가며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는 회의를 바라보면서, 문득  참을성 없기로 유명한 지구인들이 이런 지리멸렬한 '품위'에 집착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물 선적은 물론이고, 정말이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이주민 탑승까지 그렇게들 서둘면서 말이다.
 
  /안쪽 의자에서부터 차례대로 지구 이주 협상회의 의장 드웨인 카터,
   부의장 조셉 카르타지나, 민간 대표 류 하인 순으로 입장하고 있습니다.
 
 회의실로 지구인들이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딱딱한 표정과 깡마른 체격, 그리고 거친 몸놀림이 딱 지구인답다. 분명히 커다랗고, 뾰족하고, 그리고 탁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를 내겠지.
 
  /다음으로 화성 협상회 대표자들이 입장하겠습니다.
 
 소개와 함께 익숙한 얼굴들이 지구 대표자들 맞은 편 쪽으로 걸어 들어와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모두 조금 긴장한 얼굴이지만, 특히 화성 정부 대표인 아유사사나무 -23.9세의 재색 겸비의 미녀 공무원으로, 나는 지난 몇 년간 그녀의 정계 진출을 응원해왔다- 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 보인다. 아마도 화성 중앙 정부 민생부 장관이 되기 전, 차별 대책 특수 본부청에서 일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차별 대책 특수 본부청은 말이 좋아 차별 대책이지, 결국은 지구 원론주의자들 중에서도 골치 아픈 극렬분자들을 상대하는 관공서였는데, '지구'라는 단어를 위해서라면 폭력도 서슴지 않는 무리들에게 시달렸던 경험 탓인지 토박이 지구인과 마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듯이 보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구 대표자 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넨다. 인사를 건네는 지구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고, 싸움을 거는 것처럼 커다랗고 뾰족한 목소리다. 배우기로는, 지구 환경이 점차 생존하기 힘든 환경으로 변해가면서, 지구인들의 신체 특징이나 품성 역시 험한 방향으로 변했다고 배우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사할 때는 작은 미소라도 지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먼 길 오시느라 많이 힘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표정과 억양 때문에 빈정거리는 것처럼 들리는 지구인의 인사를 들으면서 슌을 쭉 들이킨다. 화면에 보이는 아유사사나무의 얼굴은 이미 반쯤 겁에 질린 듯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참가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하지만, 이주 계획 문제로 극렬분자들에게 몇 번이고 살해 위협까지 겪었던 총사령관 유유즈무는 여유가 있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지구인의 인사에 화답하면서, 자세도 편하게 고쳐 앉는다.
 
  /아시다시피, 지구의 인류 생존 가능 시간이 이제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또한 태양 요동에 따른 변수도
   이주 사업 선단에게도 상당한 부담이기 때문에...
 
 약 9천년 전만 하더라도 모두가 지구인들이 지구에서 2억7백만 3십 년은 더 살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태양계로 날아들어온 해성 -그 유명한 TYT99111- 이 그 계산을 산산조각 내어버렸다. 태양계보다 더 크고 무겁고 뜨거운 행성계에서 태어난 TYT99111은 태양을 향해 내리 꽂히듯 수직선을 그리며 날아와 작렬했고, 학명으로는 ‘태양계 외물질에 의한 대규모 수소 변질 현상’을 일으켜 태양의 부피 증가 속도를 2억년 이상 앞당겼다.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이주민 탑승 작업과
   지구 화물 선적 작업을 마치고 싶습니다만.
 
 태양 부피 증가에 따라 지구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3만 년으로 줄어들었다는 해석 결과에 따라 화성과 지구는 즉시 대규모 이주 사업을 개시했다. 단지 이주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서만 정치와 경제 그리고 이념이 교차하며 몇 천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지구식으로 편하게 말하자면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사업'이었고, 화성식으로 말하자면 '양보와 이해를 모르는 지구의 억지스러운 요청과 지구 이주민들의 폭동으로 얼룩진 사업'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화성과 지구 간에는 오직 이민 사업 만을 위한 수많은 낭비성 법률과 조항이 제정되었고, 역시 낭비일 뿐인 기관과 단체가 설립되었으며, 심지어 소규모 전투로 분류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폭동도 두어 차례 발생했다. 그나마 관련 기술과 산업이 발달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내가 운행하고 있는 민간형 화물 선박 모델명 DU1888-0도 그 와중에 발전한 '생명체 및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물질을 안전하게 장기 보존 및 수납하기 위한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블라디미르 차도프 안건'에 대하여
   양방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년 전, 온 화성을 들쑤셔놓았던 지구인의 이름에 퍼뜩 화면으로 눈길이 간다.
 
  /지구 이주 사업 본부의 입장은 이전과 같습니다.
 블라디미르 차도프씨의 화성 이주를 강력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그 이름이 나오기 무섭게 지구 대표자가 쏘아 붙이듯이 날카롭게 대답한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차도프씨는 지구에서 최후를
   맞이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지 않았습니까? 화성과
   지구 양쪽의 인권법에 따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화성 정부의 입장입니다.
 
 유유즈무 총사령관이 굳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블라디미르 차도프는, 지구에 남아있는 최후의 러시아인이자, 지구를 통째로 화성으로 옮기지 못해 안달이 난 지구 이주 사업 본부단이 반드시 화성으로 이주 시키려 하는 지구인이었다. 다만, 블라디미르 차토프는 화성 정부와 지구 정부에 지구와 함께 최후를 맞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몇 년에 걸친 지구 정부의 집요하고 집요한 설득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블라디미르 차토프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지구 이주 사업 본부단은 3년 전, 무려 개인의 자유 의사를 부정한 '강제 이주' 방침을 화성 정부에 통보해왔다.
 
  /블라디미르 차코프씨는 현재 지구 역사를 보존하는데 있어 매우 귀중한
 존재입니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법을 초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지구 이주 사업 본부가 '지구 역사의 보존과 연장을 위해서' 블라디미르 차도프의 자유 의사를 무시하겠다고 통보해 왔을 때, 화성 전체가 논란에 휩싸였다. 화성 정부의 헌법으로서는 절대 가치인 '인권’을 무시하는 그런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고, 따라서 당연히 지구 이주 사업 본부의 요구를 거부하려 했다. 하지만, 지구 이주 사업 본부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라는 지구 근본주의자들의 격렬한 항의와 반론에 의하여, 과연 화성 정부의 헌법을 지구 정부에 적용할 수 있는가, 지구 정부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화성의 '인권'을 다른 별인 지구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가… 와 같은 가치 판단과 권리 행사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화성 정부로서는 '인권'을 절대 가치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블라디미르 차코프씨의 강제 이주에는 협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반년 간의 논쟁 끝에 화성 정부는 ‘인권’을 전 우주 공통의 절대 가치로 규정하고, 지구 이민 사업 본부의 요청을 거부하기로 결론 내렸다. 이 결론을 발표하고 나서 제 3 번 채널 뉴스 프로그램 인터뷰에 응한 화성 의회 부의장 아마즈즈로 -은근한 지구 부정주의자로 유명하다.- 의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어째서 이렇게나 당연한 결론을 내기 위해 반년씩이나 시간을
 들여가며 협상을 하고, 또 회의를 해야 했는지 모르겠군요.'
 
 화성인으로서 내가 지구에 대해 늘 느끼는 의문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일을 뒤집으려 드는 이유를, 이미 아니라고 대답이 나온 일을 다시 처음부터 반복하려 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유를 모르겠군요. 블라디미르 차코프씨의 신병은
   지구 이민 사업 본부 관리하에 있습니다. 화성법을 적용할
   근거는 없을 텐데요.
 
 지구인 대표가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큰 목소리를 더욱 크게 높인다. 나도 모르게 화면을 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뾰족하게 찢어지는 목소리였다.
 
  /화성 정부는 혹시 사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이주 사업은 이번 횡단으로 끝입니다. 지구의 역사를 보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말입니다.
 
 차라리 전쟁을 선포한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성량과 억양으로, 지구인 대표는 계속해서 발언을 이어갔다.
 
  /외람된 말씀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유유즈무 총사령관은
   지구에 대한 애정을 갖고 계시는지요? 지구는 화성 인류의
   근본입니다. 그에 대한 경애와 애정이 있으시다면...
 
 나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나머지 볼륨을 줄이고, 패널을 감췄다. 지구에 대한 경애와 애정- 그 표현이 등장한 이상 이 회의는 아무런 결론이 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지구인들은 늘 이 모양이다. 이해를 할 줄도 모르고, 양보를 할 줄도 모른다. 지구에 대한 경애와 애정이라니! 나는 남은 윤을 모두 입에 털어 넣고 씹은 다음, 슌을 들이켰다. 도리어 지구인들이야 말로 정치와 경제면에서 막대한 손해를 입어가며 이주를 도와주는 화성인들에게 경애와 애정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블라디… 지구의… 러시아는…
 
 줄인 볼륨으로도 들릴 만큼, 큰 소리를 내는 지구인 대표의 목소리가 신경이 쓰인다. 동호회 후배들에게 줄 선물이라지만, 과연 이 데이터가 기분 좋은 선물일는지 의심이 든다. 나는 지구인 대표의 목소리를 피하기 위해 조종석에서 일어나 측면에 위치한 작은 창을 향해 몸을 던졌다. 작은 창 밖에는 수많은 함선과 일반 선박에 둘러 쌓인 지구가 보였다. 생존 한계에 다다른 탓에 푸르던 모습은 이제 얼마 남아있지 않았지만, 자욱하게 깔린 흰구름 아래로 바다가 보였다. 화성에는 없는 넓고 깊은 바다다. 창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어루만져 본다. 몇 천 년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아마도 나는 저 바다 속으로 휴가를 왔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구 이주 사업에 참여한 이유를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1.
  나를 지구로 향하게 만든 이유는, 화성 대학 정보 열람실 구석에 아무렇게나 꽂혀있던 a.dde.r.qpbq1.990a.1101-1.a번 데이터 칩 속에 들어 있었다.
 
  ‘지구 관련 동화상 데이터, 지구, 영국, CCD, 바다, 생물, ‘고래’, 미 편집분.’
 
 화물 운송선 비행사 자격 시험 자료를 찾기 위해 정보 열람실에 들렀던 나는 혹시 지구 관련 문제가 나올까 싶어 지구관에 들렀다가 하얗게 먼지가 쌓인 데이터 칩을 발견했다. 일련 번호를 확인해보니 오래 전 지구의 다큐멘터리인 듯싶었고, 중요성과 요구성도 매우 낮아서 혹시 일반 지구 상식 교과를 위해 본다고 해도 그다지 연관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동 청소기가 닿지 않을 만큼 구석진 곳에 처량하게 꽂혀있는 그 모습이 어쩐지 자꾸 눈길을 끌었고, 결국 나도 모르게 데이터 회선을 연결해 휴대 패널에 복사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자격 시험 공부 중에 머리도 쉴 겸 잠깐씩 볼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한 번 보기 시작한 뒤로는 오히려 공부에 방해가 될 만큼 푹 빠지고 말았다.
 
  -바다다, 이것이 차지한다, 지구 면적의 7할을. 그것은 파랗게 차가우며…
 
 a.dde.r.qpbq1.990a.1101-1.a칩의 동화상 데이터에는 지구의 바다 속에서 살아가는 ‘고래’라는 생물의 일생을 쫓는 다큐멘터리가 들어 있었다. 중요성도 떨어지고, 요구성도 적은 지구 관련 데이터인 탓에 단순 1단 음성 번역 -검수 없음, 언어 데이터의 고속 번역과 동시 화성어 변경 녹음- 으로 재 녹음한 다큐멘터리였지만, 화면과 대상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화성의 바다보다 몇 십 배는 크고 깊고, 색도 푸르른 지구의 바다가 마음에 들었고, 그 커다란 공간을 헤엄치는 커다란 생물 ‘고래’도 마음에 들었다.
 
  -고래는 이동한다, 적다, 플랑크톤의 숫자가, 차가운 바다이기 때문이다…
 
 복사해온 다큐멘터리는 미 편집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3054시간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나는 비행사 학교와 학습실을 오가면서, 하루에 몇 시간씩, 그 출렁이는 푸른 우주와 살아 숨쉬는 화물선을 바라보고는 했다. 길고 긴 여행길, 화면에는 잘 나오지도 않는 -당시 지구의 영상 기술의 한계 덕분이겠지만- 조그만 먹이를 먹기 위해 그 커다란 몸을 쉬지 않고 놀리는 모습이나, 그 넓은 바다에서 용케도 짝을 만나 짝짓기하는 모습이나, 그리고 아기를 낳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경이로웠다. 고래를 한 번만 만져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이 헤엄쳐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차라리 우주가 지구 바다와 같은 색이라면, 그리고 그 속으로 고래가 헤엄쳐 다닌다면, 그 옆으로 내가 운송선을 몰 수 있다면, 그렇다면 항해가 얼마나 즐거울까! 학습 도중 ‘지구’라는 단어를 볼 때 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곤 했다.
 
  -느꼈다, 이상한 조짐. 사흘째 하지 않는다, 꼬마가 노래를.
 
 그리고, 다큐멘터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앞뒤가 뒤엉킨 번역 음성이 불길한 내용을 읊조렸다. 꼬마- 긴 시간을 함께 해 온 어미 고래의 이름이었다.
 
 -이상하다, 꼬마가, 그녀가, 이상하다.
 
 한 번도 사람의 모습을, 사람의 육성을 담지 않았던 화면에 갑작스레 여러 명의 지구인들이 나타났다. 잠수복을 입고서, 꼬마가 이상하다고 연신 중얼거리는 지구인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지금보다는 조금 투박해도, 훨씬 감정이 풍부하고 심지어 유순하게까지 보이는 지구인들이 흔들리는 배위를 이리저리 바쁘게 오갔다.
 
 -좋은 것과 같다, 지켜보는 24시간을 오늘부터.
 
 화면 구석에 멍하니 앉아있는 잠수부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상하다, 꼬마가.
 
 잠수부는 같은 말을 되뇄다. 꼬마가 이상해. 꼬마가 이상해. 카메라는 다른 잠수부의 손에 들려, 차가운 밤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화면에 나타난 꼬마는, 확실히 어딘가 이상했다. 움직임도 둔했고, 울음 소리는 작고 이어지는 법이 없었다. 꼬마의 딸, ‘3월’은 불안한 듯이 그리고 거들듯이 어미의 몸에 딱 달라붙은 체로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슌을 내려놓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힘없이 눈을 깜빡이는 꼬마를 바라보면서 내가 떠올릴 수 있었던 생각은, 꼬마가 이상해, 지구인 잠수부가 되뇌던 그 한 마디뿐이었다.
 그 후로 카메라는 잠수 교대와 필름을 교환 할 때를 제외하고, 꼬마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화면을 꺼버릴 용기조차 잃어버린 내가 차라리 다큐멘터리가 여기서 끝나기를 바라던 순간, 꼬마가 긴 한숨 같은 울음을 흘렸다. 잦아드는 울음인데도, 듣는 사람을 흔들어 놓는 힘을 가진 울음 소리였다.
 
 -드으드드,드,드,드,드.
 
 꼬마는 헤엄을 멈추고, 아래를 향해 가라앉기 시작했다. ‘3월’이 당황한 듯 떼쓰는 울음 소리를 내며 꼬마를 있는 힘껏 떠받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3월’이 울면서 꼬마를 따라 잠수했고, 카메라 역시 급한 공기 방울을 내뱉으며 꼬마를 따라 잠수했다.
  두우- 꼬마를 따라 겨우 2분 정도 잠수를 했을까. 꼬마가 아주 살짝 몸을 돌리면서 그렇게 울었다. 짧고 나지막하고, 그리고 조금은 편안한 느낌의 작별 인사였다. 두우- 결국 숨을 참지 못한 ‘3월’이 몸을 돌려 수면 위를 향했다. 카메라는 가라앉는 꼬마를 쫓아 몇 초간 더 잠수했지만, 점점 더 빠르게 가라 앉는 꼬마를 따라 잡을 수는 없었다. 결국 카메라는 시야에서 꼬마가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꼬마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이나 어둔 바다를 비추다가 바다 위를 향했다.
  배 위로 돌아온 카메라는 힘없이 바닥에 놓였다. 지구인들은 한 곳에 모여있었고, 돌아온 잠수부를 얼싸 안고서 모두 함께 울었다. 나는 얼싸 안을 사람도 없이, 취침 패드의 베개를 부여잡고 엎드려 울다가 잠이 들었다. 다큐멘터리는 그 뒤로도 몇 시간 정도 남아있었지만, 더 이상 볼 자신이 없어 그냥 지워버렸다.
 몇 달 후, 무사히 비행사 자격 시험에 합격해 학교를 졸업한 나는 전망이 좋다는 목성 화물 사업단이 아닌, 지구 이주 사업단에 지원했다. 언젠가는 고래를 나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물론, 꼬마의 딸 ‘3월’은 까마득한 과거에 이미 죽고 없겠지만, 꼬마와 이별하고, ‘3월’과 이별하고, 그렇게 이별을 반복하면서, 쉬지 않고 헤엄치고 있을 그 고래를 직접 화성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 지구의 고래는 화성으로 미리 옮겨놓은 일곱 쌍을 제외하면, 이미 지나친 오염으로 멸종한 뒤였기에 내 손으로 고래를 나르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남아있는 작업은 고작해야 화성으로 옮겨다 놓은 고래와 다른 지구 바다 생물들을 위해 바닷물을 나르는 작업뿐이었다. 아쉽긴 했지만, 나는 열심히 지구의 바닷물을 날랐다. 한 번에 좀 더 많은 바닷물을 나르기 위해서 우주선을 몇 번이나 바꾸어가며, 수만 톤의 바닷물을 날랐다. 화성으로 돌아온 다음 날에는 반드시 국립 생물 연구소에 들러 고래들을 만났다. 화성의 작은 도시와 비슷한 크기로 건설했지만, 지구의 바다에 비하면 여전히 형편없이 작고 얕은 그 탱크 속에서 고래들은 천천히 헤엄치고 있었다.
 
 2.
  내가 그만 화면을 닫아버리고 말았던 최종 이주 협의회는 결국 지구 대표자들이 항의 의사로서 회의실을 퇴장하면서 일시 중지 국면에 접어 들었다. 항의성 퇴장이야 지구인들과 회의를 하면 보통 서너 번은 일어나기 마련이었고, 길게는 하루나 이틀 정도 이어지기 마련이었지만, 이번에는 블라디미르 차코프씨가 죽음을 택하면서 무척 짧게 끝나고 말았다. 지구 이민 협의회의 집요한 이민 요청에 지친 블라디미르 차코프씨가 최종 이주 회의를 시청하다가 고층 빌딩에서 몸을 던졌다는 뉴스가 돌더니, 고작 7시간 만에 최종 이주 협의회가 다시 재개되었다. 7시간 만에 회의실로 돌아온 지구 대표자들의 얼굴은 충격에 젖어 있었다. 나는 당연히 지구 대표자들이 블라디미르 차코프씨의 죽음을 화성의 무성의한 대응 탓으로 돌리며 공격하리라 생각했지만, 지구 대표자들은 그저 무뚝뚝하게 협의 사항을 확인하며, 묵묵하게 최종 이주 협의 회의를 처리해나갈 뿐이었다.
 
 /그럼 이로써 최종 이주의 모든 협의 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선포토록 하겠습니다.
 
 회의가 재개된 지 겨우 5시간 만에 협의회는 끝을 맞이했다. 협의회의 끝자락에서 기운을 차린 지구 대표자들이 앞서 합의한 내용을 몇 군데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어려운 요구가 아니었는지, 아니면 충격을 받은 지구 대표자들을 위한 배려였는지 유유즈무 총사령관은 선선히 그 요청을 받아 들였다. 그렇게 화성 역사상 지구인들과의 최단 시간 협상 타결 기록을 세우면서, 최종 이주 협의회가 끝났다. 생각지도 못한 사건과 대기록을 달성한 협의회의 동화상 데이터를, 그것도 오차 0.0403초 범위 내로 취득 했다는 기쁜 마음을 안고서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으려니, 군사령부로부터의 공문이 날아 들었다.
 
  -이주 선단 최후미 선박 차출 요청서.
 
 일정 변경 알림인가 싶어 통신 패널을 호출해보니, 비밀 유지 계약과 보안 암호를 적용한 공문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난생 처음 보는 종류의 공문이었다. 계약 코드를 입력하고, 이어서 민간 참여자 코드를 입력하고 나서야 공문 내용을 정보 패널 위로 띄워 올릴 수 있었다.
 
  -화성군 이주 사업 사령부 직속, 항해 전략 전술 참모부.
 
 요청 공문의 첫 머리부터 무척 생소한 발신처가 적혀 있었다. 사령부 직속 부서라니!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공문을 읽어 내렸다. 이주 사업 선단의 예정 철수 시각 뒤로도 약 336시간 동안은 지구에서 탈출이 가능한 만큼, 지구에서 최후를 맞이하기로 결정한 지구인들 중 혹시 마음이 변한 사람이 있다면 최후의 한 사람까지 구하고 싶다는 지구 대표단의 추가 요청이 있었으며, 군사령부가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 추가 내용을 받아들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추가 탈출의 구조 임무는 일정과 절차에 따라 제약을 받는 군선보다는 운신의 여유가 있는 민간선에 더 적합하리라는 참모부의 판단에 따라, 현재 참여 중인 민간 선박들 중에서 가장 최신형 선박인 내 DU1888-0를 사용하고 싶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모쪼록 귀하의 협조를 부탁 드립니다.
 
 차출에 대한 보상 항목에는 위험 부담에 따른 추가 급여와 의료비, 그리고 통신 장비와 관련 데이터의 제공이 적혀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차출 보상에 이끌려 계약 체결 코드를 입력하고 회신 버튼을 눌렀다. 사실 그 동안 몇 차례나 우주선을 최신형으로 교체하느라 사정이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탓이기도 했고, 이제 곧 쓸모가 없어진다고는 해도 민간인으로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군용 지구 전파 수신기도 탐이 났기 때문이었다.
 체결 코드를 전송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총사령부 함선으로부터의 착함 명령이 도착했다. 나는 조용히 선박을 몰아 총사령관 함선을 향했다. 거대한 총사령부 함선의 활주로는 수많은 선박과 컨테이너로 엉망인 상태였다. 유도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신호를 받고, 오랜만에 진땀을 빼며 수동으로 착함을 마치고 나니 곧바로 활주로 저편으로부터 두터운 우주 활동복을 입은 군인들이 달려왔다. 통신 패널로 조금 지친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협조에 감사 드립니다. 지금부터 외부 기능 조작 권한을 66776번 파형과
   0.47774 강도에 맞추어 개방 해주십시오. 작업 후, 권한을 반환 하겠습니다.
 내부 작업 요원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선박 입구도 열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지친듯해도 군인답게 발음은 정확했고, 말에도 막힘이 없었다. 나는 군인의 지시에 따라 선박의 외부 기능 조작 권한을 군에 맡기고, 입구를 열었다. 커다란 짐을 들고 온 군인 한 사람이 남은 몇 명에게 손짓을 하고는 곧바로 선박 안으로 들어왔다. 짐을 든 군인은 나조차도 가끔 헷갈리는 복잡한 선박 내부 통로를 한 번 망설이는 법 없이 가로지르더니, 금새 통합 운영 및 주거 공간 문 앞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스마나다씨. 화성군 중장거리 항해 선단 총사령부 제 3 참모부
   소속 항해 전략 전술 담당의 유마다즈 중위입니다.”
 
 군인다운 말투로 신분을 밝힌 군인은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안으로 들어와 짐을 내려놓고는, 곧게 편 오른손을 왼손 가슴에 얹어 경례 자세를 취했다. 절도 있는 움직임이었지만, 활동복 헬멧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활동 지속제’ 특유의 보랏빛이 돌고 있었다. 지옥처럼 바쁘다는 목성 위성 탄광에서도 아주 드물게 사용한다는 ‘활동 지속제’를 투여 받고 있는 걸 보면, 어지간히 바쁜 모양이었다.
 
  “먼저 항해 전략 전술 참모부를 대표하여 인사 드리겠습니다.
 이번 임무에 협조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역시 절도 있는 동작으로 경례를 마친 유마다즈 중위는 커다란 짐을 열어 데이터 블록을 두 개 꺼내 들어,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지금부터 필요한 데이터를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외부에 지구 전파 대응
   수신기가 장착 되면 시스템 전원을 잠시 내린 후에 특수 데이터를 몇 가지
   설치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그 밖에도 지심 사항 데이터를 포함라면
 최소 12만 블록이 필요합니다.”
  “괜찮습니다. 아직 35만 블록 정도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나는 유마다즈 중위를 조종석으로 인도했다.
 
  “죄송하지만, 내부 시스템 권한을 열어 주시겠습니까?”
 
 유다마즈 중위는 군인답게 능숙하고 기민한 동작으로 조종석의 데이터 컨테이너를 열고 커다란 데이터 블록을 통신 슬롯에 밀어 넣었다. 나는 중위의 말에 따라 정보 패널을 호출하여 모든 제어 권한을 열었다.
 
  “화성군 조작 패널을 호출 하겠습니다. 7763번 화성 파형의 수신 및
 간섭 허가 요청이 들어오면 수락해주세요.”
 
 중위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화성군 간섭 요청이 들어왔고, 요청을 수락하자 데이터 컨테이너의 옆에 앉은 유다마즈 중위 곁으로 붉은 색조의 패널이 떠올랐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군대의 조작 패널은 화성군 마크가 선명하게 수 놓여 있었고, 보통의 패널보다 서너 배 정도의 크기에 수많은 조작 버튼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어떻게 조작해야 할 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패널을 유다마즈 중위는 기민한 손놀림으로 조작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필요 데이터를 전달하겠습니다. 지구 전파 수신 조절 및 해독 기능,
   지구 현황 기록 데이터 중에서 비상 탈출 발사대 위치 및 현황 기록, 지구 전파
   발신소의 위치 및 현황 기록을 전달합니다.”
 
 유다마즈 중위의 조작에 따라 통신 슬롯에 들어간 커다란 데이터 블록이 빛을 낸다.
 
  “지구성권 항해에 따른 지침, 인명 탈출 포드의 회수 지침, 인명 탈출 포드의
   보존 지침을 전달합니다. 마지막으로 최종 계약 안내 데이터를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철수 시간 이전에 숙지하신 다음, 최종 계약 수락 데이터를 작성하여 저에게 송신해
   주시면 됩니다.”
 
 도저히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속도로 패널 조작을 마친 유다마즈 중위가 시스템 전원을 내린다.
 
  “2분이면 끝날 겁니다.”
 
 데이터 컨테이너에서 데이터 블록을 꺼내든 유다마즈 중위가 내가 들고 있는 또 다른 데이터 블록을 가리키며 웃는다.
 
  “그건 힘든 임무를 맡아주신 스마나다씨에 대한 개인적인 호의입니다.
   부담 없이 받아주셨으면 좋겠군요.”
  “호의..요?”
 
 나는 내가 들고 있는 데이터 블록과 유다마즈 중위를 번갈아 바라보며 되물었다.
 
  “겨우 336시간 정도지만, 그래도 보고 즐길 거리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나는 유다마즈 중위에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시스템 부팅 종료를 알리는 알림과 함께 선박 조작 패널이 기본 위치인 조종석 왼편으로 떠올랐다.
 
  “작업 완료를 보고 드립니다. 본래는 30시간 이상의 동행 수행이 필요 합니다만,
 현재 이주 사업 진행 관계로 초 단위 작업이 진행 중이라, 군에 여력이 없는 관계로
 지침 데이터 전달로 대체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스마나다씨의 일급 운송 비행사
 자격 소지, 8회 이상의 화성 사업 참여 경력, 9천 시간 이상의 무사고 경력을 신용
 근거로 삼아 7백 시간의 3급 군사 업무 대체 수행 자격을 발급 드리겠습니다.
 그 밖의 문의 사항이나 비상 상황 발생시에는 화성 이주 사업 사령부 산하 민간
 사업부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시스템이 다시 작동하자마자, 유다마즈 중위는 곧바로 우주 활동복의 전원을 올린 뒤 급하게 선박에서 내렸다. 나는 호의로 받은 데이터 블록을 손에 든 채, 창 밖으로 멀어져 가는 군인들의 뒷모습을 다른 선박과 컨테이너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으로 쫓았다.
 
 3.
 지구에서 최후를 맞이하기로 한 지구인의 수는 집계상 48만 5백4명- 대부분 지구 지상주의자들이며, 지구의 3백여 곳에 고루 나뉘어 살고 있다고 했고, 혹시나 최후가 너무나 괴로울 때를 대비해 자살 도구나 마약 종류가 넉넉히 배급되었다고도 했다. 이주 항해 선단은 혹시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는 이민 예비자를 고려하여 예상 철수 시간보다 12시간을 더 대기한 후 마침내 지구성권을 떠나 화성으로 향했다.
 지구성권에 홀로 남은 나는 지구의 탈출 포드 발사대 위치를 따라 천천히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추가 대기를 개시한 지 31시간 후, 넉 대의 지구 탈출 포드가 일제히 우주로 뛰쳐나오는 사건이 있었지만, 모두 생명 반응이 없는 빈 포드였다. 지구를 떠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기 위한 행위였는지, 아니면 최후 선박이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지 못한 사람이 자포자기로 저지른 행위였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텅 빈 포드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만 같았다. 혹시나 싶어 지구 전파 수신기도 작동 시켜놓았지만, 제대로 잡히는 지구 전파는 드물었다. 가끔씩 잡히더라도 통신 요청이 아닌 지구 노래나 방송이었고, 그나마도 지구인의 살아있는 육성이 아닌 데이터 재생음이었다.
  길고 긴 지침 데이터를 확인해가면서 가끔씩 유다마즈 중위의 호의로 받은 동화상 데이터를 시청하기도 했다. 15만 블록의 데이터 블록에는 화성 중앙 방송의 코미디 프로나 드라마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 데이터에 기대어 100시간을 더 대기했지만, 더 이상 탈출 포드가 올라오는 일도 없었고, 지구인의 산 육성을 담은 전파가 날아드는 일도 없었다. 그저 지루한 시간이 멍하니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336시간보다 조금 이른 258시간 후, 지구의 대기 상태는 탈출 포드를 쏘아 올릴 수 없을 만큼 격렬한 회오리로 휩싸여버렸다. 정보 패널의 지구 대기 온도와 구성표도 이미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수준에 도달했음을 표시하고 있었다. 지구 인류가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정보 패널 화면을 보고 있으려니 갑작스레 서글픈 기분이 엄습했다. 멀리 화성에서는 무슨 행사라도 열고 있겠지만- 정작 이곳 지구에서는 지구 인류의 종말, 지구 역사의 끝, 태양계 인류 원점의 소실… 그렇게 수많은 이름과 의미를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애달픈 순간이 선박 한 척의 작은 패널 위에 숫자로 끝나는구나.
 그러고 보면, 홀로 남아서 지구 인류가 끝나는 순간을 지켜보아야 하는 임무를 잘도 받아 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래를 제외하면, 지구에 대해 경애와 애정은 물론 관심도 없는 내가 이렇게까지 코끝이 시큰할 만큼 서글픈 허무감에 사로잡힐 줄은 몰랐다. 아마 조금이라고 지구에게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자아에 큰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의료비- 문득, 요청 공문의 추가 보상 항목에 적혀 있었던 고액의 의료비가 떠올랐다. 그렇구나, 그래서 적혀 있었구나. 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철수 항해 지침을 호출했다. 군사령부에서도 예상하고 있었다면, 더 이상 이성이 영향을 심하게 받기 전에 지구성권에서 떠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철수 지침에 따라 지구 인류 종료 항목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지구 대기의 흐름, 자기장 상황, 온도와 습도… 이미 모든 항목이 충분히 종료 수치에 도달한 상태였고, 지구의 주요 전파 송출 시설에서도 더 이상 전파를 수신할 수 없었다. 나는 확인 항목들에 대한 기록을 전부 기입한 다음, 곧바로 철수 항해 패널을 호출했다.
 
  -지구 방식 3341번 전파를 수신했습니다.
 
 항해 경로를 검색하고 있으려니, 정보 패널 위로 전파 수신 알림 메시지가 떠올랐다. 인명 구조 지침에 적혀 있는 상시 검색 대상 전파 중 하나로, 지구성권의 구조물이 사용하는 충돌 사고 방지용 전파였다. 나는 서둘러 전파 추적을 실행했다. 송신처는 ‘아르볼 델 앙헬’- 250여 년 전, 지구의 에스파냐 연합이 계획한 이주 사업용 궤도 선착장 ‘까사 델 앙헬’의 건축 기지로서 건설한 초대형 궤도 엘리베이터였다.
 탈출 포드의 막대한 발사 비용과 회수의 번거로움을 극복을 목적으로 했던 이주 사업용 궤도 선착장 ‘까사 델 앙헬’은, 이민자들을 엘리베이터로 끌어 올려 선착장에서 바로 화성 군함으로 탑승토록 할 예정이었지만, 3배의 예산과 시간을 들이고서도 겨우 궤도 엘리베이터 ‘아르볼 델 앙헬’을 가완성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이후 수많은 비난을 들어가면서도 선착장 ‘까사 델 앙헬’의 건축에도 착수했지만, 제 887차 태양풍 사고의 발생으로 3할 정도 완성했던 선착장이 대파 당하면서, 결국 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말았기 때문에 지금은 궤도 엘리베이터 ‘아르볼 델 앙헬’만이 남아있다는 듯싶었다.
 나는 송신처를 향해 자동 항해 운전을 실행한 후, 궤도 엘리베이터 ‘아르델 볼 앙헬’의 자료를 호출했다. 비록 가완성으로 끝났다고 하더라도, 제 887차 태양풍 사고에서도 살아남은 ‘아르볼 델 앙헬’은 그 후 간단한 지구성권 사업을 위해 간간히 시설을 가동하곤 했다. 마지막 가동일은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이었고, 엘리베이터 자체는 무사히 동작했고 태양열 발전기도 문제없이 동작하고 있었다. 단지 가완성이고 인간이 아닌 물류 운송을 위해 사용했기 때문에 인류 생존 및 거주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었다. 우주 활동복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며, 장시간 거주는 불가능한 공간- 인류 생존 규격 6 등급 표시를 확인하고 나니, 문득 태양풍의 영향에 의한 단순 오작동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대 근접 거리에 도달하였습니다. 위치 유지 기능을 실행합니다.
 
 태양풍이 심한 탓인지, 자동 항해 기능은 목표인 ‘아르볼 델 앙헬’에서 무려 5km 떨어진 지점을 안전 거리로 판단하고는 항해를 멈추었다. 나는 일단 항해 화면 패널을 호출해 항해 카메라 전원을 올렸다. 거친 태양풍 탓에 화면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화면 깊숙한 곳에 거대한 궤도 엘리베이터 ‘아르볼 델 앙헬’이 보였다.
 거친 태양풍에 위태롭게 흔들리며 외부 전등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아르볼 델 앙헬’의 격납고에는 한 대의 승강기가 도착한 상태였다. 정말 누군가가 ‘아르볼 델 앙헬’로 올라와 시스템을 가동시켰단 말인가? 나는 항행 모드를 수동으로 전환한 다음, 거친 태양풍에 주의를 기울이며 ‘아르볼 델 앙헬’을 향해 선박을 몰았다. 궤도 엘리베이터 정면으로 접근해 외부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보니, 궤도 엘리베이터의 2층 4구역 통로 창가로 얇은 우주 생활복을 입고 서있는 지구인이 보였다. 창가의 지구인을 중심으로 화면을 확대해보니, 그렇지 않아도 강한 태양풍 노이즈가 더욱 심해졌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지구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친 표정을 짓고 있는 지구인은 꽤 젊은 여자였다. 나는 카메라를 고정한 체로, 더욱 주의를 기울여가며 선박을 창가로 몰았다.
 이동 통로 창가에 멍하니 서있던 지구 여인은 창문으로 다가오는 내 선박을 발견하고는 조금 놀란 듯이 머뭇거리다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인사를 받았지만, 나로서는 답을 할 수단이 없었다. 평범한 선박과는 달리 오로지 견고함과 안전성을 중시하여 건조된 내 DU1888에는 커다란 정면 창문이 없었고, 단지 조종석 왼편과 오른편에 작은 창문이 하나씩 달려 있을 뿐이었고, 단지 얼굴을 보이며 인사를 하기 위해서 지구 여인을 향해 선박 방향을 트는 시도를 하기에는 태양풍이 너무나 거칠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선박 머리를 위아래로 흔드는 방법을 선택했다. 페달을 조심스레 밟아가며 되도록 커다랗게 선박 머리를 흔들어 보이자, 그 의미가 통했는지, 화면 속의 지구 여인이 엷게 웃는 것이 보였다. 딱히 뭐라도 잘라 말할 수 없는 미소였다. 여태까지 보아온 지구인들 중에 저런 미소를 짓는 지구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무뚝뚝하고 날카로운 얼굴로 그런 미소를 지어 보이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 신기한 미소를 보고나니, 문득 잠시 잊고 있었던 고민이 떠올랐다. 정말로 지구인이 궤도 엘리베이터까지 올라왔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무사히 구출할 수 있을까? 일단 안전하고 편리한 구출은 불가능했다. ‘아르볼 델 앙헬’은 어디까지나 궤도 엘리베이터였기 때문에 지구 규격과 화성 규격 양쪽을 모두 지원하는 ‘까사 델 앙헬’과는 달리 철저하게 지구 규격에 맞춘 구조물이었고, 변변한 정박 시설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또한 지구 여인은 어디까지나 구조물 내부 활동에나 이용할 수 있는 얇은 우주 활동복을 입고 있었다. 만약 그런 내부 활동복으로 지금처럼 태양풍이 심한 우주에 나섰다가는 순식간에 생명을 잃을 터였다.
 나는 이쪽을 쭉 바라보고 있는 화면 속의 지구 여인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녀를 구출할 방법이 아주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니, 궤도 엘리베이터의 구조와 상태를 파악하고, 그녀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그래도 정히 다른 수가 없다면, 다소의 파손을 각오하고 궤도 엘리베이터의 견고한 부분에 내 선박을 부딪혀 구멍을 뚫은 다음, 그 구멍에 맞추어 선박 입구를 개방해 그녀를 재빨리 수용하는 것도 나름 훌륭한 대안이었다. 다만, 어떤 방법을 택하더라도 아무 어긋남 없이 손발이 맞아 떨어져야 하건만, 지구 여인과 의견을 주고 받을 수단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런 고민에 빠져 있으려니, 지구 여인이 태양풍에 흔들리는 통로 안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버렸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걱정하는 마음으로 창가를 쭉 바라보고 있으려니, 지구 여인은 한참 만에 커다란 기기를 끌고서 창가로 돌아왔다. 알고 있는 기기는 아니었지만, 모니터와 키보드가 붙어있는 모양을 보니 통신 기기의 일종인 것 같았다. 나는 내 선박에 지구 전파 수신기를, 그것도 군용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서둘러 통신 어플리케이션 데이터를 뒤지기 시작했다. 방대한 어플리케이션들을 이리저리 뒤지면서 화상 패널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창가의 지구 여인이 통신 기기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서둘러 카메라를 지구 여인이 가리키는 지구의 통신 기기의 패널에 맞추어보니, 공용 영어 문장이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이런 기계를 다뤄본 적이 없어서, 통신은 무리지만, 패널에다 문장을 쓰는 정도는
   가능해요. 여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쓸 테니까, 그걸 읽어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혹시 외부 쪽에 패널 출력이 가능하다면, 위치를 조절해서 이쪽으로
   보내주세요. 거기로 메시지를 보내주면, 내가 읽을 수 있을 거에요.
 
 과연! 그런 수가 있었구나! 나는 페달을 밟아 선박 머리를 흔들어 보인 후, 즉시 선박 외부 화면 패널을 호출해 지구 여인이 서있는 창가로 이동 시켰다. 외부 화면 패널은 아슬아슬하게 통로 창문을 통과해 들어가 지구 여인 바로 옆에 도달했다. 지구 여인이 통신 기기로 몸을 돌리고, 새 문장을 써넣었다.
 
  -반가워요, 우주선이 고래처럼 생겼네요. 귀여워요.
 
 고래- 딱히 내 선박의 모양새를 신경 써 본적은 없었지만, 고래를 닮았다는 이야기에 순간 손이 멎었다.
 
  -잘 보이나요?
 
 화면을 보니 통신 기기 앞에 앉은 지구 여인이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패널에 답변을 적어 외부 패널로 송신했다.
 
  -네, 잘 보입니다.
  -혹시 공용 영어가 불편하다면, 화성 영어를 써도 괜찮아요.
 저는 화성에서 일한 적 있으니까요.
 
 한 마디를 건너편 화면으로 확인하고, 한 마디를 다시 다른 화면으로 전송하는 이런 대화는 난생 처음이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이를테면 조금 유치한 연애 드라마였다면 그럭저럭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사가 달린 지금은 한 마디 한 마디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번잡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조금 전부터 이리저리 도와드릴 방법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만,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상황입니다.
 그래도 분명히 다른 방법은 있을 겁니다. 일단 그쪽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요, 화성에 가고 싶어서 올라온 게 아니에요.
 
 자책하는 마음으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지구 여인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을 패널 위에 띄웠다.
 
  -그러면?
  -글쎄요, 그냥, 어쩐지.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죽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올라왔어요.
 
 마지막으로 죽는 사람.
 
  -운이 좋았어요. 궤도 엘리베이터까지 오는 길에 폭풍을 만나지도 않았고
   승강기도 제대로 작동했고, 용케도 궤도 엘리베이터까지 도착했으니까요.
 어쩌면 저 아래 엘리베이터 앞에서 말라 죽었을 수도 있었는데.
 이제 지구 상에 남아있는 생존자는 없을 거에요. 온도도 너무 올라갔고,
 공기도 탁하고… 대부분은 지급 받은 마약 탓에 죽었겠지만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죽는, 운 좋은 사람- 이해를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 놓는 지구 여인의 표정은 담담하고 또 편안한 듯 보였다.
 
  -그렇군요.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높은 데서 마지막으로 죽고 나면, 내 시신은 격렬한 대기에 휘말려서
   땅 위로 떨어지는 일 없이 영원히 하늘을 날겠지… 뭐,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그렇군요. 똑같은 대답을 반복 하려다, 이해를 할 수 없는데도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들어 전송을 취소했다.
 
  -많이 바쁜가요?
  -일단 철수 시간까지는 50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그래요, 마침 잘 됐네요. 올라온 뒤에 생각보다 오랫동안 버티게 되면
   뭘 해야 하나 고민했었거든요. 잠시 이야기나 나눌 수 있을까요?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나는 침을 삼켰다. 죽어가는 사람을 뒤로 하고 유유히 화성으로 돌아가는, 그런 끔찍한 트라우마를 만들라는 말인가? 순간 당장 우주선을 돌려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페달을 밟으려는 내 다리를 멈춰 세웠다. 지금 떠나더라도, 한 사람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화면 속의 지구 여인을 바라보았다. 화면 속의 지구 여인은 외부 패널과 내 선박을 천천히 번갈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혹시라도, 그녀가 ‘그냥 가도 괜찮아요.’ 와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 한 마디야 말로 나를 완전히 망가뜨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손을 움직였다.
 
  -네, 그러지요.
 
 다르게 생각하면 좋을 일이다. 한 지구인이, 스스로 지구 인류의 마지막으로서 숨을 거두고, 나는 증인으로서 겸허하게 그 모습을 지켜본다- 화성인 대표로서 그렇게 지구 인류의 마지막을 목격하고, 마음에 새겨 넣어서 지구를 갈무리한다고 생각하자. 우스꽝스러운 짓이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지구를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등 뒤로 하는 것보다야, 차라리 이 편이 조금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렇다.
 
  -고마워요.
 
 지구 여인이 패널 위로 띄운 문장 끝에는 수식 코드가 붙어있었다, ‘:D’. 비행사 학교의 통신 역사학 시간에 배웠던 문자를 이용한 지구식 감정 표현 중 하나였다. 미소나 웃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식 코드- 카메라 너머의 지구 여인의 표정은 크게 변함이 없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지구 여인이 미소를 짓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화성 어디 출신이신가요?
  -이이나라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자라기는 즈즈마누에서 자랐지만요.
  -즈즈나무, 나쁘지 않은 곳이죠.
 
 그녀는 화성의 수도, 나주아추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터널 라이프라는 냉동 수면 보관 사업체였다. 짧게는 몇 백 년, 길게는 몇 만년 후의 세계를 보고 싶어하는 지구인들을 잘 보관해 안전한 화성으로 옮기는 일을 했다. 그 차가운 냉동 캡슐을 화성으로 나르고, 보관하고, 또 점검하는 일을 하다 보니 삶이란 참 덧없다는 생각을 했고, 지구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화성은, 화성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십오 년이라는 화성 체제 기간 동안, 그녀는 화성 이곳 저곳을 여행 다녔다. 이제는 지구에는 없는 지구의 건물이나 유적들을 보고, 화성 도시를 거닐면서 느꼈다고 했다. 화성에 꾸역꾸역 몰려 있는 지구의 모든 것은 화성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화성은 지구의 다음 보금자리가 아닌, 지구와 완전히 다른 무엇이라고. 화성을 부여잡는 건, 부질없는 미련일 뿐이라고.
 
  -지구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구나. 끝났는데 꾸역꾸역 남아 있을 뿐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점점 싯구절처럼, 자기 자신에게 취한 혼잣말처럼 변해가는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달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잠깐만요, 뭔가 좀 이상한데요.
 
 대답할 말을 찾고 있으려니, 지구 여인이 묘한 문장을 패널 위로 띄워 올렸다. 화면을 보니, 카메라에 잡힌 지구 여인이 고개를 통로 안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커다란 소리가 났어요. 거기에서는 뭐가 좀 보이나요?
 
 그녀의 말에 따라 카메라를 돌려본다. 어느 사이, 궤도 엘리베이터의 중심축이 무너져 내려, 앙상한 내부 구조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렇게 심한 태양풍이 계속 몰아 닥친다면, 곧 중심축은 완전히 부서지고, 그녀가 서있는 제 2 구역 통로는 우주로 떨어져 나갈 터였다.
 
  -이제 시간이 다 된 모양이네요.
 
 다시 지구 여인 쪽으로 카메라를 돌린다. 패널 위에는 짧은 문장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긴 위험합니다. 어디로 옮길 수 있다면…
 
 다급한 마음에 외부 패널로 문장을 전송했지만, 지구 여인은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즐거웠어요, 바쁜데 미안했고요.
  -좀 더 이야기하지 않을래요? 난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다른 통로로 옮겨갈 길은 있을 거에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나도 모르게 그녀를 구하고 싶은 충동을 적어 전송했지만, 지구 여인은 다시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마치 작별 인사 같은, 크고 긴 궤적을 그리는 인사였다. 순간, 선박이 커다랗게 흔들렸다. 강력한 태양풍을 알리는 경고음이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 그리고, 궤도 엘리베이터의 중심축이 붕괴하는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아니, 들린 것만 같았다. 카메라 화면 속의 지구 여인이 비틀거리며 통신 기기에 기대어 서자마자, 통로가 요란스럽게 흔들리더니- 마침내, 태양풍에 떠밀려 지구를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어….”
 
 나도 모르게 항해 페달을 밟아 떨어지는 통로를 향해 선박을 몰았다. 중력 경고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중력권 자동 이탈 기능 작동 카운트가 시작되었지만, 그런 위험보다는 어쩐지 지금이라도 그녀를 구조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충동이 자꾸만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혹시 무너진 통로 구조물의 단면으로 몸을 던진다면, 그렇다면, 내 선박으로 받아 올린 다음, 태양풍을 피해서 지구 뒷면으로 이동하면 된다-는 바보 멍청이 같은 생각이 계속해서 그리고 강하게 항해 페달을 밟도록 부추겼다.
 
 “안돼!”
 
 지구의 대기권으로 떨어져 내리며, 마찰열을 받은 통로 구조물은 금세 붉게 달아 올랐다. 어떻게든 다가가기 위해 페달을 더욱 세게 밟으려는 찰나, 비상 경고와 함께 선박이 멈춰서고, 중력권 이탈 시스템에따라 위를 향해 급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뿐이었다.
 
 -드으드드드드드드드.
 
 선박 아래쪽에서 오래 전 들었던 꼬마의 인사가 들려왔다. 단지 커다란 구조물이 대기열과 마찰로 무너지며 뿜어내는 파열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작별을 고하던 꼬마의 인사가 희미한 대기 진동을 타고 내 선박에 와 닿고 있었다. 참고 있었는지 감추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눈물이 결국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안녕.”
 
 나는 예전처럼 껴안을 사람도 없이 홀로 울어야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겨우 남은 기운을 짜내어 들려온 작별 인사에 조그맣게나마 대답할 수 있었다. 그 대답이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죽어간 지구 여인에게 하는 인사말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품어왔던 꼬마에게 하는 인사말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mirror
댓글 2
  • No Profile
    우상희 09.12.21 12:59 댓글 수정 삭제
    지구의 종말이라는 것이 어떠한 재난이나 극도의 공포라기 보다는 감상적으로 그리셨네요. 잘읽었습니다.
  • No Profile
    정대영 10.01.01 16:57 댓글 수정 삭제
    부족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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