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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 82저승택배82 남바완

amrita

“어젯밤에 우리 애가 꿈에 보여서요….”

눈 밑이 퀭한 초췌한 기색의 중년 부인이 새벽부터 보따리를 감싸안고서 사무실 문앞 계단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김사장은 서둘러 츄리닝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아니 날도 아직 찬데 언제부터 기다리셨어요?”

“추운지도 모르겠네요, 애가 워낙 약과를 좋아해서 좀 많이 튀겼는데, 빨리 보내주실 수 있죠?”

“그럼요.”

“동네 할머니가 이 집이 젤로 빨리 잘한다고 해서…. 이런 택배는 여자 사장님을 믿어야 한다구요. 에그머니나.”

김사장은 사무실 탁자에 배를 까고 떡 하니 드러누워 자는 흑룡이를 쓰레빠 꿰어 찬 발등으로 두두두 밀어 떨궜다.

“얘 동자야!”

“네 넷 네네네 가요!”

사무실 안쪽에 붙은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머리를 양쪽으로 8자로 땋아묶은 아이가 폴짝 뛰어나왔다. 머리끈에 달린 은방울이 짤랑짤랑 경쾌한 소리를 냈다.

김사장은 소파를 뒤덮은 신문과 핸드폰 충전줄과 담뱃갑을 한쪽 구석으로 쓸어 몰아놓고 천장의 등에 달라붙어 잠든 백룡과 책상 의자에 쪼그려 잠든 황룡을 하나씩 걷어내어 창가에 대충 얹었다.

동자는 손님에게서 보따리를 사뿐히 받아 탁자에 놓았다.

“녹차 드릴까요 아니면 보리차 드릴까요? 커피도 있어요!”

“아, 전, 보리차… 로 부탁해요.”

김사장은 서랍에서 타블렛을 꺼내 손님에게 건넸다.

“작성해 주시고요, 히터를 켰으니 곧 따뜻해질 겁니다.”

그는 같은 서랍에서 이불과 쿠션 두 개도 꺼내서 가져다 주었다.

“그때까지 이거라도 덮고 등에 대고 계세요.”

“아, 네. 고마워요.”

동자는 바삐 쟁반에 보리차를 내왔고 소파 구석에 몰린 물건이며 책상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 사장님?”

“네.”

“꼭 실명을 써야 하나요?”

“아뇨 편한 대로 쓰시면 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송인 란에 새봄이 엄마 라고 터치해 넣었다. 손가락 끝이 조금 떨렸다.

배송인: 새봄이 엄마

수신인/수신처: 정새봄

물품 내역: 수제 약과

배송 기간 (희망시간,예약희망시점 등): 최대한 빨리

기타 메시지: 우리 딸 잘 있니, 이거 엄마가 직접 튀겨서 할머니네 농장 꿀에 담근 거니까 두고두고 먹어 알았지?

결제는 여기를 누르세요.

그는 손등으로 눈가를 꾹 눌렀다. 마침 보리차 머그컵 옆에 티슈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사장은 서류와 계산기를 꺼내놓고 뭔가 계산 중이었고, 동자는 물을 마시고 있었다.

“저, 이거 다 썼는데요. 어디에….”

“앗 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자가 도도도 달려와 타블렛을 받아 갔다. 김사장은 동자에게서 타블렛을 받아 훑어보고는 몇 번 터치하더니 바로 몸을 일으켰다.

“오늘 안에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마침 스케쥴이 비어서 좋은 날에 오셨어요. 심상 할머니는 잘 계시죠?”

“네, 항상 밝고… 좋은 분이세요.”

새봄 엄마는 여러 번 보리차를 마시려다 마시려다 끝내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고 잘 부탁드린다는 말만 여러 번 반복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사장과 동자는 문앞까지 나가서 손님을 배웅하고 들어왔다.

닫히는 문 틈새로 밀려드는 바람이 아직은 싸늘했다.

김사장은 분홍색 약과 보따리를 특수 랩으로 진공포장한 뒤 서랍에서 가죽 자켓과 장검을 뽑아 들었다.

“동자야?”

“네!”

“내 오도바이 키 못 봤니? 어제 짜장 시켜먹고 여기 어디다 던져뒀던 거 같은데.”

“넵!”

동자는 황룡이 배 아래서 키를 꺼내 벌써 뒷문에 반쯤 걸쳐 선 김사장 쪽으로 던졌다. 그 바람에 황룡이가 기댄 화분이 살짝 떨렸고, 그때까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자스민 두엇 송이가 후둑 졌다. 김사장은 키를 받아채고 자켓을 입고서 칼을 검집째 등에 돌려 맸다. 퀵 오도바이의 짐칸에는 약과 보따리가 버블랩에 둘둘 말려 들어간 후 로프로 여러 번 묶여 고정되었고, 그는 마침내 출발하기 전 마지막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 소리가 날카로웠다.

“더러운 세상이지. 맑으면 오래 살기도 힘든.”

“문 닫고 펴요!”

김사장은 아차 하는 얼굴로 뒷문을 얼른 닫았다.

“다녀올게! 청정기 켜라!”

“언제는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잔소리하더니!”

“올 때 석류 사올게! 많이!”

동자는 부릉거리는 소리가 멀어지고 나서도 한참을 꿍얼꿍얼거리며 사무실을 정리하고 청소했다. 흑룡과 백룡과 황룡이는 햇살 들어오는 창가에서 계속 졸았고, 공기가 고요히 가라앉는 가운데 동자의 투덜거림과 빗자루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퍼질 뿐이었다.

동자는 바닥 청소까지 마무리한 후 공기청정기를 켰다. 마지막으로 보리차 쟁반을 들어올렸다.

차가 넘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그는 천천히 싱크대 쪽으로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찻물이 찰랑찰랑 일렁였다. 찻물 위로 고층 아파트와 핸드폰을 쥔 흰 손과 흩날리는 머리칼, 그리고 폰 스크린 속으로 단체카톡방이 쏜살같이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칼은 또 들고나갔구먼.”

아무튼 일은 끊이지가 않어. 중얼거리며 동자는 보리차를 싱크대에 쏟아 버리고 빠르게 씻어서 건조대에 올려 두었다. 그런 다음 책상으로 가서 우편물을 하나씩 뜯기 시작했다. 광고는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고, 구독 잡지나 음식점 전단지는 책상 위 한구석에 차곡히 쌓였다. 백룡이는 잠시 일어나더니 정수기로 파드득 날아가서 앞발로 버튼을 누르고 물을 마셨다.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특급 저승택배 사무실의 아침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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