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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경 라스트 아담

2019.04.01 00:0004.01

라스트 아담

윤여경

물건들이 사라졌다. 하나씩, 하나씩. 어쩔 땐 둘이 사이좋게 사라졌다. 세수할 때는 비누가 보이지 않았고 고개를 돌려 수건을 집으려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건걸이에 매달려있던 수건이 없어졌다. 필요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밤을 새고 기사작성을 한 현은 커피 한잔이 간절했다. 졸린 눈으로 작동시킨 에스프레소머신에서는 맹물만 나왔다. 기자가 한숨을 쉬며 잔을 내려놓은 순간 투명한 맹물이 검게 변했다. 사라진 에스프레소액이 잔 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끄레마거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잠시 기다려보다가 아쉬운 대로 거품이 없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TV를 켰다. 그는 현재를 항상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불편함에도 점차 익숙해졌다. 사라졌던 물건은 언젠가는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현관 벨이 울렸다. ‘새벽부터 누구야.’ 짜증을 내며 인터폰을 들었던 그는 모니터를 보고 기절할 뻔했다. 일 년 전에 죽은 여자 친구가 현관밖에 서있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한 달 전이었다.

2057년 가을,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가 보유한 모든 핵폭탄들이 하늘로 발사됐다. 수백 개의 폭탄이 지구의 곳곳을 향했다. 주요미디어들이 이 사실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폭탄은 은빛으로 번쩍거리며 대기권 위를 유성처럼 비행하다가 지구를 향해 날아 내려오기 시작했다. 단지 몇 초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핵폭탄들이 공중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 후 폭탄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대신 불안이 지구에 내려앉았다. 사뿐히.

컴퓨터 오류로 핵폭탄을 쏘아 올렸다고 주장하는 지도층의 말은 두고두고 회자되었지만 핵폭탄이 사라진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실한 답을 내놓는 이가 없었다. 그들이 임시방편으로 폭탄을 구름 뒤에 숨겨놓고 있으며 곧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퍼졌지만 증거가 없었다.

하늘에 투명상자가 있어서 그 안에 핵폭탄이 들어있는 셈이었다. 상자가 열려서 폭탄이 나타난다면 죽음이었고. 상자가 영원히 닫혀있다면 삶이었다. 하지만 가장 믿기 어려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핵폭탄은 이미 터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지구상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으며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은 더 이상 삼차원의 삶이 아니라 죽음 저편의 시간과 공간의 법칙이 자율적인 사차원의 세상이라고. 단지 사람들이 일상을 산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삼차원 삶의 습관이 지속되고 있을 뿐이라는 소문이었다. 어쨌든.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의 아들딸을 만져볼 수 있었고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하늘의 노을을 볼 수 있었으므로 그런 소문은 가라앉았다.

인터넷과 뉴스 신문 등 미디어매체들에서는 아침마다 새로운 가설들을 선보였다. 그들은 법정싸움의 흉내도 내었는데 일련의 증발사건들이 어느 특정기관이 잘못이라고 미루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자원관리공사는 대체에너지 개발에 예산을 덜 써서 생긴 일이라고 했고 대기업들이 환경친화용품을 사용하지 않아서 라고도 했다.

미디어는 그 죄의 중함과 가벼움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시민들은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었다. 회사에서 식당에서 당구장에서도 화제의 중심이었다.

이천년 전 콜로세움에서 만 명의 관람자 앞에서 서로를 죽였던 글래디에이터들에게 그랬듯이 환성을 보내며 싸움질을 부추겼다. 글래디에이터들에게 동정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경기의 목적은 동정이 아니라 승리자를 보는 것이었다.

결국 환경친화용품을 쓰지 않은 대다수 시민 소비자들에게 죄목이 지어졌고 패자인 소비자들은 말을 잃었다. 정부는 재빠르게 환경친화 용품만 쓰도록 법령을 제정했다. 이래서 문제는 일단락 지어졌지만 사람들은 혼란함을 느꼈다. 덕분에 교회나 절에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무당과 점쟁이들, 종말론자, 과학자, 기후전문가, 산에서 수십 년 동안 머리를 기른 사람들, 이만 명을 수용하는 큰 교회 . 점이라는 깃발을 걸어놓은 집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혼란함이 늘어날수록 답도 점점 늘어났다.

커피가 사라지거나 문서가 장난을 치는 정도의 사소한 일 이외 큰 사건은 전혀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핵 실종 사건 전에도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로 가득했으니까.

세계 어떤 주요미디어에서도 기사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특기할만한 사건이 며칠 전에 일어났다.

공장을 운영하는 다국적기업이 쉬쉬하는 이 사실의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동남아시아에 있는 이 다국적기업의 제조공장에서 나사들이 전부 사라지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상하게도 기계는 이상 없이 작동했다. 호기심이 많고 용감무쌍한 한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나사가 사라진 부분에 손을 넣어봤지만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사는 마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듯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그 즈음 태평양의 한 섬에서는 기러기 떼처럼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나사 떼를 발견했다는 사진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사들은 공중에서 회전을 하며 묘기를 부리는 중에도 질서를 지키며 중앙에서 선두로 날아가는 볼트를 따라서 브이자로 비행하고 있다고 했다.

수많은 제보 중에서 이메일 메시지 하나가 현의 휴지통에 버려졌다. 괌에 살고 있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열 살 소년이 보낸 이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게 모두 제 잘못인 것 같아요. 어떡하죠? 지난주에 차고에서 자동차를 수리하는 아빠를 도왔어요. 아빠가 나사를 달라고 해서 찾아보았지만 없었어요. 덕분에 그걸 찾느라 저는 그날 해변축제에서 불꽃놀이를 하기로 했는데 못 갔죠. 다음날 내내 나사생각만 했어요. 그게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고요.

정말 제 잘못이 확실한 이유는요. 제가 그런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고 있는데 나사들이 떼로 날아오는 거예요. 나사들은 저를 알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제가 있는 곳을 향해 90도로 공중낙하를 했어요. 그래서 저는 안 돼! 하고 소리쳤죠. 순간 그것들이 사라졌어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요. 어떡하죠? 전 초능력이 있는지도 몰라요. 제가 핵폭탄을 상상해서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게 도와주세요.

물론 현은 외계인과 가십전문의 삼류타블로이드기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제보는 무시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는 원칙을 따랐고 소년의 제보는 컴퓨터하드의 휴지통에 하룻동안 보관되었다가 다음날 영구삭제되었다.

현이 늘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다는 것에 기자실의 누구나 동의했다. 혹시나 특종을 놓치게 된 걸 나중에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현은 어깨를 으쓱할 뿐 잊어버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매우 긍정적인 사람일 테니까.

현은 꿈꾸지 않고 편안한 잠에 들었다. 불황과 칩 혼란기를 버틴 세대였다. 얼어붙은 경제 밑에서 이상도 이데올로기도 갈 길을 잃은 답 없는 혼란한 환경은 현의 DNA에 새겨졌다. 적응법이라면 본능의 날을 세워 춤추듯 스케이팅을 하며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아오는 방법뿐이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넘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식량 테러로 한 도시가 무너지고 경제부도로 여러 국가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고 자연재해로 세계인의 휴양지가 황폐해지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에 폭탄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현이 절대로 읽지 않을 삼류신문 토픽란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따르면 물건들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례가 있다고 했다. 휴거설이 떠돌아 사람들을 공포에 빠지고 있으며 죽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고 했다.

어쨌든 이런 기사를 읽지 못한 현은 죽은 여자 친구가 현관밖에 서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란 상태였다. 그가 손을 떠는 사이, 삐오삐오, 현관락이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가 신발을 벗는 소리가 들렸다. 현은 떨리는 다리를 옮겨서 현관으로 다가갔다.

“집 좀 치우고 살아.”

그녀가 아무렇게나 벗은 구두가 현관에서 굴렀다. 상쾌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잔소리를 하며 그녀가 터키샌드위치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일 년 전, 그대로였다. 현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서 눈을 가늘게 떴다.

“물 좀 줘.”

그녀는 밤새 클럽이라도 뛰고 왔는지 피곤한 표정이었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그녀가 아끼던 고양이 컵에 따라 줬다.

“장난해? 얼음 넣어서 줘.”

다미는 컵을 식탁에 툭툭 쳤다. 현은 컵을 들고 얼음을 넣으러 갔다. 한물 간 아이돌가수 다미와 시니컬한 통신사 기자의 만남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물을 다 마신 그녀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컵을 내려놓는 것을 현은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네가 환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봐.”

현이 말했다.

“또 시작이네. 하여튼, 누가 기자 아니랄까봐 말싸움은 정말 좋아해.”

다미는 더운지 머리를 묶어서 뒤로 넘겼다. 머리칼이 찰랑거릴 때마다 그녀가 썼던 익숙한 샴푸향이 몰려왔다. 외출할 때 뿌리는 향수에 감춰지기 전에 그녀의 맨 살에서 났던 원초적인 향기였다. 현은 침을 삼켰다.

“우선, 당신이 환상이 아니라는 걸 나한테 증명해보시지.”

다미가 진지해졌다.

“무슨 소리야? 난...넌........”

현은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래 난 죽었어. 일 년 전에. 교통사고로. 그럼 당신은? 핵이 폭발했잖아. 왜 살아있다고 착각하는 건데?”

“핵은 폭발하지 않았어. 그냥 실종 됐지.”

“설마 그걸 믿는 거야? 당신이라면 다를 줄 알았는데.”

다미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했다.

“실종됐으면 찾아야지. 왜 아무도 핵을 찾지 않을까?”

다미가 물었다. 현은 멍하니 서있었다.

“진실을 알려줄게.”

다미가 초코우유를 마시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어있던 물 컵에 난데없이 초코우유가 채워져 있었다. 현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개인전용 우주선 이브호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오면 사정이 달랐다. 우주선 안은 딱 화장실 만 했고 자기 손바닥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우주선 안에서 가장 끝내주는 것은 조망이었다. 창밖으로 지구(그 안의 육십억 인류와 백화점과 레스토랑과 귀여운 흰 푸들 등을 포함해서)가 활활 타고 있는 광경이 라이브로 펼쳐졌다.

2057년 가을, 어느 날. 핵폭탄들이 지구를 덮쳤다.

핵폭탄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다고 주장했던 과학자들은 모두 죽었다. 핵폭탄이 해킹에 노출되어 위험하다고 주장했던 과학자 한명도 같이 죽었다. 과학자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다른 직업군들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도 백수도 노점상도 국회의원도. 모두 평등하게 같이 갔다. 직업군만 아니라 동식물 종에도 차별이 없었다. 종지구상의 인간과 식물과 동물들이 거의 전멸했기 때문이었다. 거의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담’와 ‘이브’ 때문이다.

우주선 메인컴퓨터인 지로가 보기에 지구를 대표로 해서 그 두 명의 인간이 살아남은 것은 행운이었다.

건강함을 말해주는 완벽한 몸매와 얼굴, 적당한 지능, 짝짓기에 유리한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분위기. 이런 구분은 인류 마지막 생존자를 선정할 때나 아이돌 가수를 선정할 때의 공통점이었다. 둘은, 실제 아이돌가수이자 젊은 나이에 사고로 죽은 다미와 엑스를 복제한 복제인간이어서 이 구분에 잘 맞았다.

이 우주선의 주인인, 미치고 돈 많은 노인에게는 해당사항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인지 노인은 우주선에 올라타기 전에 하늘에 무수히 뜬 핵을 보고 심장발작으로 죽었다.

핵이 하늘을 뒤덮었던 순간, 비상시에 자동이륙하기로 되어있는 우주선은 노인을 남겨두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달 뒤에서 지구의 궤도를 돌기 시작했다. 지로는 일 년 뒤로 회항일정을 잡았다. 연료가 그때까지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핵의 피해가 그나마 적은 남극 근처를 회항지로 삼았다. 일년 뒤에는 지구에 착륙해 살아야했다.

앞으로 일 년 동안 지로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 이브와의 친분을 쌓기로 했다. 멸망한 지구로 돌아가면 우주선 따위 필요 없어서 내던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우정을 탄탄히 쌓아야 만수무강할 수 있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조명을 끈 우주선 실내에는 캡슐 두 구만 불을 빛내고 있었다. 하나는 눈처럼 흰 빛 다른 하나는 핏빛. 두 색깔의 의미는 기억의 차이를 말했다. 복제인간인 엑스에게는 아무런 기억도 없으므로 경고등이 켜질 이유가 없었지만 이브는 달랐다. 지로의 탓이 컸다. 지로는 멸망한 전 세계 수억 인간들의 기억들을 모두 그녀의 뇌에 저장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인간의 뇌는 어떤 전자 칩보다 저장용량이 컸기 때문이었다.

메모리 뱅크에 업로드 된 수억 명의 기억을 그녀의 뇌에 다운로드하는 건 기술적으로는 매우 쉬운 일이었지만 단 한 가지 문제가 있긴 했다. 수억의 기억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살면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녀의 의식은 잠들어 있으면서도 항상 위험했다. 그녀의 무의식속에서 기억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자면서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웃거나 하는 그녀였다. 그녀의 심리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경고등이 계속 켜져서 지로는 분주했다. 설마 정신을 놓치는 않겠지. 인류의 기억 데이터를 모두 지워버리면 위험은 없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로는 그 많은 데이터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항상 경고등이 켜지는 빨간 캡슐 옆의 흰 캡슐안의 엑스는 상대적으로 편해 보였다. 그는 거의 무표정이었다. 죽은 사람 같이 보이지만 사실 새로 태어난 아기나 다름없었다. 수십억의 기억을 머리에 달고 다니는 그녀와 달리 그는 기억이 없었다. 가끔 찡그릴 때도 있지만 그건 DNA에 남아있는 원시적 본능의 기억들이었다. 그가 꾸는 꿈은 두, 세살의 어린아이들을 닮았다. 맹수들이 공격하고 도망 다니는 꿈.

지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호감을 사기 위해서였다. 인류 최후의 남자에게 어떤 기억을 심을지는 이제 그녀의 마음대로였다.

기억은 중요했다. 황무지에 가까운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생존기술과 의지, 여러 경험들이 필요했다. 원래는 우주선주인인 미친 노인이 자신의 기억을 엑스에게 심기로 했었다. 이십대로 다시 태어나 이십대 여자 친구와 알콩달콩 사는 꿈을 꾼 사람은 그 노인 말고도 수없이 많았다. 이뤄지지 못한 꿈들이었다. 인류의 희망과 꿈을 돕도록 태어나고 프로그램 된 지로는 인류의 명복을 빌었다.

엑스의 몸 주인의 기억을 심는 게 가장 생체학적으로 적당했지만 불가능했다. 엑스는 자살했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의도한 자들은 생존의지가 적었다. 이식을 한다고 해도 제대로 생착 되기가 어려웠다.

한때 잘 나가던 아이돌가수였던 엑스는 아무도 모르는 이유로 욕조에서 동맥을 끊었다. 소속사에서는 손실을 막기 위해 회고앨범과 인간 복제권을 팔아서 다른 프로젝트 그룹의 투자비를 마련했다. 첫 번째 데뷔 스테이지에서 그 그룹은 팬들의 환호대신에 핵폭탄을 맞았다. 그와 동시에 스테이지와 그들의 몸. 꿈도 함께 날아갔다. 지로는 그들의 명복도 빌었다.

지로는 ‘이브와 뗄 수 없는 끈끈한 우정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해 고심 끝에 프로젝트를 하나 만들었다. 인류 최후의 아담 찾기 프로젝트. 복제인간 남자에게 심어줄 진짜 인간의 기억을 같이 찾기로 한 거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녀와 친해지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수십억 명의 기억을 머릿속에 담은 이브는 자신이 뭘 원하는 줄 몰랐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다. 그녀의 이성 취향을 먼저 알아낸 뒤 샘플그룹을 만들면 됐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소개팅을 시킬 차례라는 거였다. 어떻게 라는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링크서비스를 통해서였다. 지구가 멸망할 당시 링크서비스였다. 전 세계인들의 뇌 속에 장착된 손톱만한 칩을 통해 무선으로 다른 이들의 기억에 접근할 수 있었다.

“나이차는 어느 정도면 될까? 위 아래로 열 살 정도?”

“열 살? 더러워.”

그녀는 튜브우유를 마시며 말했다. 창밖으로는 지구(그 안의 백십억 인류와 백화점과 레스토랑과 귀여운 흰 푸들 등을 포함해서)가 활활 타고 있는 광경이 라이브로 펼쳐졌다.

“그럼 다섯 살?”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좋아. 그러면 나이차는 다섯 살까지.

“활달한 성격?”

그녀는 달콤하게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아무 말 없이 한숨을 쉬었다. 좋아. 그러면 조용한 성격으로. 그렇게 지로는 조심스레 목록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샘플그룹이 만들어졌다. 그녀의 머릿속에 살아있는 육십억 인구 중 선택된 스물 네 명의 싱글 남자들. 지로는 그 스물네 가지 변수들에 따르는 스물네 가지 미래들을 예상해보았다. 다 거기서 거기였다. 황무지에서 여자 한 명을 아내로 삼고 펼쳐질 미래라는 게 사실 거기서 거기였다. 먹을 것을 찾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인공지능들을 관리하며 살다가 죽는 그들. 지로는 미리 명복을 빌었다. 고마웠다.

“오래 써도 고장이 안 나는 사람으로?”

“고장이 안 나는 사람은 없어. 인간이란 원래 심하게 고장이 나 있는 종이니까. 유통기한도 짧고.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 그나마 파손이 덜 된 걸로 찾아보자.”

지로가 친절하게 말했다.

갑자기 우주선 안에 음악이 흘렀다. 자동으로 일정시간마다 울리게 해놓았다. 인간이 살아가려면 약간의 소음이 필요했다. 우주선 안에 음악이라고는 캐롤 밖에 없었다. 인류는 멸망했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는 상황에 안 맞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달착지근한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는 이브의 목소리와 잘 어울렸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내 소원은 너를 만나는 것. 그녀가 노래를 불렀다. 아담을 찾는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문제는 그녀의 취향이었다. 아무나. 다. 좋아하다니. 모든 것에서 장점만을 보는 능력이란 짝짓기 과정에서는 정말로 필요 없는 능력이었다.

“가상현실은 곧 무너질 거야. 그 전에 현의 기억을 추출해야 해.”

지로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메디컬의자에 눕혔다.

“네가 할 일은 그를 찾아가서 현관 벨을 누르는 거야. 그 다음에 기억을 추출하는 건 내가 할게.”

지로의 말을 들으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링크서비스에 접속했다. 그녀의 뇌에 저장된 가상현실 안에 수억 명의 인류가 살고 있었다.

몰입도는 좋았다. 시각도 완전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접촉사고를 낸 차량 운전자 둘이 사차선 도로 한복판에서 싸움 중이었다. 비키라고 주위 차량들이 클랙슨을 울렸다. 시끄러웠다. 멸망 전. 사람들의 기억으로 구성된 가상현실이었다. 이런 곳에서 지구멸망 후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지구멸망은 순식간에 이뤄질 거고 아무도 고통스러울 필요가 없었다.

이브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근거렸다. 여기서는 마치 지구가 멸망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몇 십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 이 곳. 집안이 사람들로 북적대는 기분.

그래서 아주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망망대해 같은 우주 안에 떠있는 꼬리 잘린 물고기모양의 우주선과 그 안에 누워있는 인류 마지막 인간. 그녀의 아담을.

이브는 현의 집 앞에 도착했다. 다미의 전 연인이었던 통신사 기자 현. 다미와 친했으니 아담으로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벨을 눌렀다. 그리고 그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브는 스스로 문을 열어야 했다. 이브는 최대한 다미인척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난 지금 네 머릿속에 살고 있다는 뜻이야?”

현이 물었다.

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적으로는 그래. 이 집도, 나라도, 저 잠수함도.”

이브가 말했다.

“잠수함?”

현이 물었다. 이브가 창밖을 가리켰다. 잠수함이 하늘에 떠다니고 있었다.

“여기 가상현실은 급속히 무너지고 있어. 몇분 뒷면 무너질 거야. 내 머릿속이 그다지 좋은 저장환경이 안 되나봐.”

이브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물 컵을 부채로 바꿔서 부채질을 했다. 현은 벽면컴퓨터로 현재 뉴스를 검색했다. 온갖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잠수함이 떠다니고, 바다는 무지개색이 되고, 커피는 홍차로 바뀌고, 런던이 파리로 바뀌고, 건물이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나가면 남극에서 너와 나 둘만 살게 된다고?”

현이 물었다.

“응, 메인컴퓨터 지로도 함께. 우린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지. 최후의 아담과 이브지.”

“설마. 넌 그런 걸 원해?”

현이 물었다.

“ 지로와 함께 사는 거? 하긴 나도 싫어. 걘 잔소리가 심하거든. 이브가 대답했다.

“ 아니. 아담과 이브가 돼서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되고 싶냐고.”

현이 말했다.

“ 글쎄.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이브는 잠시 생각해본 후 대답했다.

“ 이제부터 생각해봐.”

인류 최후의 아담과 이브는 식탁에 마주 앉아 자신들의 미래를 고민했다. 그리고 삼분 후 결정을 내렸다.

“맞아. 내가 정신이 나갔나봐. 왜 그런 생고생을 시작하려고 했는지.”

이브가 현의 어깨에 기대어 창밖으로 흐르는 물고기 떼를 구경했다.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로 시스템이 무너지나봐.”

이브가 말했다.

“네가 이별의 인사도 없이 가버렸을 때 나도 함께 죽은 기분이었어. 이제 우리는 함께 죽을 수 있으니 다행인 것 같아.”

마지막이 다가오니 현실적인 그도 감상적이 되는 기분이었다.


이브는 눈을 떴다. 자기가 누군지 여기는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네 이름은 이브야. 지금은 사적인 기억이 없을 거야. 시스템이 무너져서 기억을 지웠거든.”

아담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네 이름은 뭔데?”

“지로.”

“무슨 이름이 그래?”

“네가 바꿔도 돼. 어차피 내 이름을 부를 사람은 너 밖에 없으니까.”

“음. 뭘로 할지 잘 모르겠는데.”

이브는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생각이 날 듯 쉬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눈물이 흘렀다. 기억이 없으니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름 따위 아무렇게나 부르면 어때. 천천히 해. 우리한테 남은 건 시간뿐이니까. 우린 최후의 한 쌍이야.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지.”

“그런데 여기 왜 이렇게 추워?”

이브가 물었다. 우주선 창밖으로는 온통 하얀 눈만 보였다.

“우주선 메인 프로그램이 사라져서 비상프로그램으로 가동시켜놔서 그래. 조금 기다려.”

“메인 프로그램이 사라지다니?”

“내가 메인 프로그램이거든.”

인류의 마지막 아담인 지로가 말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간의 기억을 대체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지만 지로는 해냈다. 자살을 하려고 했던 현과 이브의 기억을 복제인간에게 다운시킬 수는 없었다. 인류는 정신은 자살했지만 그들의 몸은 남았다. 지로는 그 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지로는 이브의 기억을 지우고 아담의 몸에 자신을 다운로드시켰다. 다행히도 성공적이었다.

우주선밖에 펼쳐진 흰 눈의 평야는 넓고 끝이 없었다. 새로운 인류의 시작이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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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술라 19.03.31 22:28 댓글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수명을 다한 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개척할 영토가 남아있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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