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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울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

2019.03.01 00:0003.01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

심너울

 


주 너울로지스틱스 국내물류부의 강태영 부장은 오늘도 회사에 오후 10시까지 남아 일했다. 사실 그는 다섯 시 쯤에 업무를 이미 다 끝냈다. 여섯 시 땡 쳤을 때 그가 슬슬 밖으로 나가 줬으면 아래 사람들도 별 눈치 없이 퇴근할 수 있어 모두 기뻤겟으나, 사무실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는 강태영의 눈치를 보면서 오후 7시는 돼서야 나갔다.

강태영은 회사에서 밤까지 나른히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이 넓은 세계에서 그를 품어주는 안온한 공간은 너울재단 4층 빌딩의 너울로지스틱스 국내물류부 사무실 뿐이었다. 40대 후반의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충분히 관심을 받고, 비록 꾸며진 것일지언정 적당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회사에 박혀 있는 것 빼고는 없었다. 직원들이 자기 눈치를 보면서 퇴근을 늦추는 걸 보면서, 강태영은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즐거웠다.

이왕이면 회사에서 잠도 자고 씻기도 하고 싶다는 것이 강태영의 바람이었으나, 너울로지스틱스는 밤 10시 이후까지 남아 근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천근만근 무거운 발을 간신히 옮겨 차에 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한때 강태영은 고급 브랜드 아파트에 살았지만, 이제 그가 사는 집은 평수도 가격도 훨씬 줄어든 오피스텔이었다. 대문을 끼익 열고 들어가자 퀴퀴한 냄새와 차가운 공기가 그의 전신에 확 끼쳤다. 강태영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피스텔은 세 개의 방과 하나의 화장실로 된 구조였는데, 대문으로 들어가면 작은 부엌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싱크대에는 언제부터 쌓였을지 모를 설거지거리가 쌓여서 진득히 썩어가고 있었다. 인스턴트 음식들의 포장이 찢겨서 그 국물이 하얗던 싱크대를 적셨다. 배달 음식들을 포장 상자가 여러 개 놓여있는 식탁을 지나치면 가죽 소파와 커다란 벽걸이 TV가 보였다. 몇 년 전만 해도 강태영이 어마어마한 돈을 부었던 오디오 시스템도 있었다. 다들 이제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강태영은 침실로 들어갔다. 이불이 어지러이 펼쳐져 있는 침대는 그가 집에서 쓰는 몇 안되는 가구였다. 그는 옷을 벗어 옷걸이에 대충 걸어놓고 침대에 누웠다.

3년 전부터 강태영에게 집은 결코 평온한 공간일 수 없었다. 이혼 이후로 그의 일상은 급격한 속도로 망가졌다. 그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집안일을 주도적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라면도 끓일 줄 몰랐고, 옷을 세탁 후 말린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혼 관계를 끝장내고 혼자 살게 된 지 3주 정도 됐던 한 여름날 카페에서, 강태영은 대학 시절부터 쭉 혼자 살아온 친구 문성혁에게 한탄했다.

“아니,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데 왜 자꾸 더러워지는지 모르겠어.”

“락스랑 솔로 안 닦는다고?”

“어차피 샤워하면서 샤워기로 다 씻잖아. 물이 계속 나오는데 왜 그래야 해?”

오랫동안 사흘에 한 번은 반드시 화장실을 닦는 버릇을 들였던 성혁에게는 이만한 별세상 이야기도 드물었다. 그는 약간 말을 더듬었다.

“그러면... 물때가, 물때가 끼잖아.”

“물때?”

“어, 변기나 싱크대에 빨갛거나 까맣게 끼는 거 모르냐?”

“그게 물때야? 물에 때가 왜 있어?”

“아니, 물에도 여러 성분이 있잖아... 증류수도 아니고. 그게 계속 쌓여서 끼는 거지.”

“흠.”

“50 가까이 나이를 처먹고 물때가 뭔지도 모르냐, 너는?”

강태영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럼 청소를 안 하고 살아?”

“그야 와이프가 해 줬지...”

문성혁은 별 말을 하지 않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짧은 대화 후로는 강태영도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그가 했던 집안일이라고 해봐야 분리수거 정도가 다였지만 이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스스로 해야 했다. 집을 훨씬 넓은 아파트에서 오피스텔로 옮긴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일단 설거지를 하고, 어떻게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고, 일주일에 한 번 세탁기를 돌렸다.

하지만 그것도 딱 일주일이었다. 집안일을 시작한 강태영은 자신이 유기체임을 그 어느때보다 절실히 깨달았다. 사람의 몸에서는 끝없이 먼지와 분비물이 발생했다. 해도해도 끝나지 않고 새로운 일이 밀려들어오는 집안일은 그 자체로 일종의 실존적 고뇌를 불러오는 특성이 있었다. 그는 한 번의 주말을 보낸 다음 전략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 전략은 회사에 하루종일 박혀 있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그가 청소기를 돌릴 필요도 없었고, 화장실을 쓰고 난 다음에 뭐라도 닦고 나오지 않아도 됐으며, 구내식당 메뉴도 매일매일 바뀌었고 훨씬 맛있었다. 설거지도 당연히 하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회사만이 그가 유일하게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다른 직원들이 마음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든 강 부장을 대놓고 욕하지는 못 했다. 회사 건물은 항상 따뜻했다. 강태영은 주말이 미워졌다.

회사에 하루종일 있고 집안일은 신경을 끄는 생활이 지속되니 집은 갈 수록 사람 사는 곳과 대단히 거리가 멀어졌다. 주말의 식사는 배달 음식으로 때우고 청소는 달 단위로 한 번씩 가사 도우미를 부르고 말았다. 그런 꼴이 된 집에는 더더욱 돌아가기 싫었다. 집안일을 포기한 후로, 강태영은 주말만 되면 일단 집 밖으로 튀어나갔다.

목적은 어떻게든 여자를 만나 보는 것이었다. 그는 나이가 좀 들어서도 관리를 꽤 괜찮게 해낸 문성혁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문성혁은 그와 달리 결혼은 실패했으나 연애는 곧잘 유지했다. 하지만 강태영은 이전 아내 이후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계속 실패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답이 없었다. 20대 후반부터 강태영의 머리카락은 허리케인에 휩쓸려나가는 옥수수들처럼 속절없이 빠지기 시작해 이제는 드문드문하다는 단어를 제하면 딱히 그의 두발 상태를 표현할 말이 없었다. 배달 음식의 집중 포화를 받은 몸통에는 군살이라고 하기에는 과도히 출렁이는 지방이 잔뜩 입주했다. 향수 향으로 감춰지지 않는 구질구질한 냄새가 그의 주변에 떠돌았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물류 관리 일만 해오고 문화에 별반 관심이 없던 그는 좋은 대화 상대도 되어주지 못했다. 강태영이 오디오 장비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긴 했지만, 그 취미는 음악을 즐긴다기보다는 “내가 이렇게 비싼 장비를 살 여력이 있다”를 웅변하는 공작의 깃털 가꾸기에 가까운 활동이었다.

공작의 깃털은 아름다우나, 음악만 들려주면 “소리가 왜 이래, 이건 장비의 질이...”라는 말부터 먼저 튀어나오는 그의 수집벽은 아름답지 않았다. 일요일 밤마다 그는 외로움에 푹 절고 술에 잔뜩 취한 채로 퀴퀴한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근처의 사람들에게는 성격 차이로 둘러대곤 했으나, 20년 넘게 이어진 강태영의 결혼 생활이 파탄난 이유는 섹스 문제였다. 강태영은 분명히 어디선가 남자의 성욕은 20대 때 그 절정을 찍고 빠르게 감소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섹스에 대한 집착은 어째 그의 머리카락 수에 반비례하여 올랐다. 이혼 전에, 강태영은 퇴근하고 나면 소파에 누워 꼼지락대면서 거의 매일 아내에게 갈망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결혼 이후 쭉 가정 주부로 살아온 강태영의 아내는 인질로 잡힌 셈이었다. 강태영이 욕망에 버금가는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재미없고 피곤하고 끈적한 섹스를 천 단위로 하고 나서야 그는 이 모든 짓거리에 넌더리가 났다. 수많은 말싸움 끝에 그는 강태영을 떠났고, 합의 이혼이 완료된 후에는 연락처도 바꿨다.

강태영은 이혼과 관련된 모든 서류에 서명을 할 때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대기업인 너울 그룹에서 능력 있는 남자라는 평을 받고 있었고, 자산도 꽤 모아 두었다. 그는 자신의 옛 아내가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꼴을 보고 싶었다. 몇 개월 후에야 강태영은 그럴 일 없음을 절절히 깨달았다.

옛 아내가 이혼 뜻을 밝힌 뒤로 지금까지 강태영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잠들기 전에 한 번은 꼭 자위를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몇 분 안에 일을 끝마친 그는 휴지를 변기통에다 버리고, 물밀듯이 몰려오는 씁쓸함을 견디며 잠들었다.

아침 6시 20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강태영은 눈을 떴다. 그는 조금 더 잘까 잠시 고민했다. 빨리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수면욕을 이겼다. 강태영은 화장실로 들어가 턱의 맨 살을 면도기로 벅벅 문지르고, 비누를 샤워 타올에다 박박 비벼 거품을 냈다. 강태영은 비누 거품을 머리를 포함한 전신에 바르고 따뜻한 물로 온 몸을 씻었다. 샤워를 끝마치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강태영이 회사에 도착하자 일곱 시 반이었고,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제일 빨리 도착한 것이었다. 그는 자기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우선 강태영은 스포츠 뉴스란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받는 야구 선수의 어제 활약상을 확인했다. 그 다음에 강태영은 뉴스 속보란을 한 번 훑어보았다. 수많은 기자들이 작고 불확실한 정보를 이리 부풀리고 저리 찌그러뜨려 전시하고 있었다. 그 중 한 기사가 그의 눈을 이끌었다.

‘여성가족부, 중장년층 남성 1인 가구 상대 간담회 개최 발표’

강태영은 기사를 클릭했다. 현대에 늘어나는 1인가구 수에 발맞춰서 여성가족부 장관이 여러 1인 가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간담회를 연다고 했다. 첫 타자는 중장년층 남성 1인 가구였는데, 자격에 맞는 30~40대 남성이 신청을 하면 그 중 한 명을 추첨해 몇 주 뒤에 간담회를 연다고 했다.

여성가족부라니! 여가부에 대한 강태영의 인식은 동년배 남성들의 인식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까 여성가족부는 세금 도둑 중에서도 가장 그 규모가 커다란 악랄한 관료 집단으로, 한국에 끼치는 득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해를 끼치기만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었다.

“여성부가 드디어 일을 하네.”

강태영은 낮게 혼잣말을 했다. 그는 그의 비참한 하루하루를 생각했다. 최소한의 집안 정리도 보살펴 줄 사람이 없는 삶. 강태영은 삶에서 이렇게 집에 돌아가기 싫었던 적이 없었다. 중고등학생 때 별반 의미 없는 반항심 때문에 그런 적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집이 혐오스럽고 배타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강태영은 그가 모범적으로 살아왔다고 확신했다. 중산층의 자녀로 태어났으나 상류층이 아닌 그로서 공짜로 얻은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 내의 괜찮은 대학교에 입학했으며, 경제 위기를 맞고 국가가 자반 뒤집기를 하는 와중에도 열심히 노력해서 다들 그 이름은 들어본 너울 그룹에다가 단박에 취업했다. 그가 그렇게 더러운 집에서 매일 밤 혼자 정액을 뿜으며 사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었다. 그의 가슴 속에 깊이 울컥 하는 기분이 치달아 올랐다.

동갑내기 여자의 1인 가구라면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생활력이 있을 테였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면 자식과 노인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있겠지. 20대 1인 가구는 아직 앞날이 창창하고 가능성이 넘쳐나니까 굳이 정부에서 무얼 해 줄 이유가 있겠나, 나이가 가장 큰 자산인데. 강태영은 살짝 감격했다. 마침내 정부가 가장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평생 접속할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여성가족부 사이트에 접속했다. 켜켜이 쌓여 있는 공지사항의 지층 사이에서 강태영은 간담회 신청 방법을 발견했다. 강태영은 자기 신상정보와 현재 상황을 써 넣었다. 꼭 됐으면 좋겠다. 나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다 알려줘야지.

그때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강태영은 칸막이 너머로 빼꼼히 고개를 들었다. 사무실의 몇 안되는 임유정 대리였다. 강태영은 기침 소리를 한 번 냈다. 임 대리는 그를 보고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어, 그래. 식사는 했고?”

“예...”

임 대리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30대 초반의 임유정은 강태영이 이혼한 직후 그의 레이더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강태영은 능력 있는 부장으로서의 카리스마는 과시하면 사회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가 곧바로 자신에게 넘어오리라고 생각했다.

강태영이 생각한 카리스마란 타인들을 자신에게 굴종하도록 만드는 능력이었다. 회의에서 소리를 지르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는 임유정이 뭔가 말을 할 때는 최대한 웃는 모습을 보이고 조곤조곤한 대답을 들려주면 임 대리가 자신에게 넘어오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강태영은 임 대리가 갈수록 말이 없어지는 것을 알았다.

강태영은 임 대리가 자신의 권위에 사랑보다는 경의를 느낀다는 결론을 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동경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임 대리는 그런 유형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임 대리를 놓아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후로도 임 대리는 계속 조용했지만.

그리고 며칠 뒤에, 강태영은 여성가족부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그가 1인 가구 간담회에 초대받았다고 했다.

 


어디 정부청사서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간담회는 서울의 북쪽에 있는 한 공동주택에서 개최되었다. 강태영은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장소에는 여러 공무원들이 행사를 준비한다고 분주했다. 그는 안내받은 장소에 멍청히 앉아 여성가족부 공무원도 남자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시간이 가까워오자 여러 사람들이 황급히 주택을 찾았다. 강태영은 그 사람들이 정해진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자기랑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사는 중년 남자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관리가 안되는 모습이었다. 아, 역시 나는 소외 받은 계층에 있구나. 강태영의 가슴이 다시 한 번 뜨거워졌다.

사람들은 모인 채로 각자 작은 이야기 한 번 하지 않고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게임을 하고 있었고, 뭔가 계속 휴대폰을 스와이프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강태영은 그게 정확히 뭐하는 짓인지 보려고 선 채로 멀뚱멀뚱 그 곳을 쳐다보았다. 자세히 바라보니 그 사람의 휴대폰 화면에는 계속 새로운 여자 사진이 떴는데, 그는 사진을 자세히 확인하지도 않고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했다. 텐더였다.

전세계적인 소개팅 어플리케이션인 텐더라면 강태영도 물론 해 본 적이 있었다. 문성혁이 텐더로 애인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은 돌아와 그것만 켠 채로, 여성들이 나오는 족족 좋아요 신호를 보냈다. 정말로 단 한 번도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처음에 그는 무슨 기괴한 버그라도 걸린 것 아닐까 의심했다. 사흘 동안 끝없이 실패한 뒤에 강태영은 앱을 지웠다. 아무래도 외적인 면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니까.

강태영은 부질없는 스와이프를 지속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 또한 태영과 다름없이 머리가 반질반질 빛나고 있었고 이목구비는 태영 생각에는 자신보다 훨씬 못했다.

“찌질이 새끼.”

강태영은 아무도 듣지 못하게 조용히 읊조렸다.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여자들이 들어와 장관이 입장한다고 알렸다. 모두 자리에 앉았다. 뉴스에서만 보던 장관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강태영은 장관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희끗희끗한 머리로 단발을 하고 있는 장관은 방송에서 볼 때보다 더 작아 보였다. 강태영은 그가 우리 같은 남자들을 지원해줄 생각을 하다니, 참 기특도 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 장관은 지리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말했다. 현대 가정의 변화에 대한 인구통계학적인 내용과, 왜 이 자리를 마련해야 했는지 –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1인 가구로 살아가시는 사회의 구성원 분들을 한 분씩 만나보고, 여러 의견과 현재 처한 고충을 청취해 다 함께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간담회를...” 강태영은 다리를 꼬았다.

곧 줄지어 앉은 남자들을 위한 발언 시간이 왔다. 강태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은 사람은 방금 전에 텐더에서 공허하고 부질없는 스와이프를 하던 남자였다. 그는 발언 시간 차례가 되자마자 거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

“역시 밥을 먹을 때가 가장 외로운 것 같습니다.”

“밥이요?”

장관이 되묻자 텐더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혼자 밥 먹으러 식당에 가면 식당에서 자리를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다고 우리들이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5년 전에 이혼했는데, 그 이후로도 집안일이 잘 손에 안 익어요.”

줄지어 앉은 남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장관은 수첩에다 무언가를 써넣었다. 방금 전에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던 남자가 끼어들었다.

“맞아요. 저는 그래도 가끔 집에서 요리를 해 먹으려고 하는데, 이게 양파나 마늘 같은 건 한 묶음으로 팔아서 한 번 사면 반은 싹이 나서 버리게 된다니깐은.”

“그래요. 그리고 우리 남자들이 평생 요리를 배울 기회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텐더남은 신이 난 채로 말했다. “여자들은 그래도 집안일을 할 줄 아니까 차곡차곡 하고 그러죠. 우리는 그런 게 하나도 안 되거든요.”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누군가 돌봐줘야 살 수 있는데 그런 게 없으니까 삶에 어려움이 크죠.”

모바일 게임남이 다시 나섰다. 강태영은 속이 다 시원했다. 방금 전에는 그냥 다 찌질한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들어보니까 다들 맞는 말만 하는 사람들 아닌가. 모바일 게임남이 발언을 마치자 강태영은 번개같이 끼어들었다.

“공동체 밖에 있는 남자들의 슬픔과 외로움이 얼마나 큽니까? 또 남자들의 생리적인 문제도 있잖습니까? 그 도봉산에 보면 얼마나 산객들이 많습니까, 그런데 거기 끼는 남자들 99%는 여자 만나러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강태영이 이야기하자 같이 앉아있던 남자들이 모두 깔깔 하고 웃었다.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은 무서울 정도의 무표정을 유지했으나, 강태영은 사람들의 호응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다들 웃으시지만 이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남자한테 그런 근본적인 외로움이 있다는 거 말입니다. 돌봄 문제도 문제지만 정부에서 그런 거에 대한 지원을 좀 해야 하지 않나, 남자가 여자들을 떳떳하게 만날 수 있는 그런 행사라든지, 아니면 그런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 차원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나 해요.”

다른 모든 남자들이 “맞아, 맞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강태영은 굉장히 뿌듯하고 배쪽이 뻐근한게 오줌이 마려운 느낌이었다. 어쨌든 기분은 상당히 좋았다. 장관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곧 또다른 이야기가 뒤따랐는데 그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강태영에게는 별반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였다. 어쨌든 대기업에서 부장 노릇 하면서 먹고 살고 있는 그에게 경제적인 문제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주인공 노릇을 한 그는 다리를 달달 떨면서 이야기를 흘려들었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가 오고간 뒤에, 어떤 시민단체에서 왔다는 사람이 1인 가구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에서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관은 “잘 들었습니다.”하는 한 마디를 한 다음에 말했다.

“특히 처음에 얘기하신, 강태영 씨의 남성의 근본적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그런 개인의 욕망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민감하고 사적인 문제다 보니까 정부에서 어떻게 지원할 방법이 없었는데, 빠른 시일 내에 해결책을 고안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강태영은 귀를 의심했다. 장관이 그의 이름을 불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야기에 공감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방금 전에 말하면서도 장관이 흘려들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뭐랄까, 짓궂은 청소년 시기에 근처에 여자가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크게 더러운 말을 외치던 그런 장난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행사가 끝나고 편의점에서 맥주 네 캔을 사서 바깥에 파라솔에 앉아 마셨다. 그는 도대체 여가부에서 어떤 지원안을 내놓을지 기대했다. 성매매의 양성화일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아니면 한국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텐더 비슷한 무엇일까? 정부에서 주관하는 데이팅 앱이라니 그것 참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강태영은 자기가 역사를 바꾼 남성 투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태영은 술에 취한 채로 도저히 들어가기 싫은 집에 간신히 돌아갔다. 한 달 넘게 박혀 있던 설거지거리에서 이제 초현실적인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는 그릇들에서 물을 따라내고 새 물을 붓고 침실로 들어갔다. 술에 취한 채였지만 잠들기 전에 항상 하는 일과도 놓치지 않았다. 짧은 오르가즘의 순간에 그는 곧 이제 이런 거 안 해도 된다는 확신에 기뻤다.

그리고 며칠 뒤에 강태영에게 여성가족부에서 새로운 메일이 왔다. 이번에 새로 남성의 생리적 외로움 해결을 위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해보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첨부파일에는 뭔가 복잡한 내용이 있었지만 강태영은 읽지 않았다. 대신 이 모든 믿기지 않는 행운에 쾌재를 부르며, 제의를 수락했다.

이번에 강태영이 불려간 곳은 서울의 한 의대였다. 의대 옆에는 커다란 병원이 있었다. 커다란 강당에 강태영을 포함한 열 명의 남자들이 서 있었다. 다들 어느 정도 결의를 다진 표정이었다. 강태영은 그 중 한 명을 알아보았다. 저번에 본 텐더남이었다. 강태영은 텐더남에게 다가갔다.

“어, 저 아시죠.”

텐더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 우리 영웅이시네. 오실 줄 알았어요.”

“영웅이요?”

“예, 그때 외로움 이야기해서 여가부가 이런 프로젝트도 하고, 영웅이시죠.”

강태영은 어깨를 으쓱 했다.

“영웅일 거 까지야. 모든 남성들을 위해 기꺼이 연대한 거지.”

둘은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강당에 소리가 메아리쳤다. 곧 여러 병원 스태프들이 강당으로 들어왔다. 한 스태프가 강태영에게 다가와 강태영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 네, 안녕하세요.”

“여성부가 이번에 하는 뉴터 포 맨 프로젝트에 참여 의사 밝히셨죠. 그게 간단한 시술이 동반되는 거라서 각 분들마다 상담하고 서명 받아야 하거든요.”

“아, 네.”

“그럼 상담실로 따라오시겠어요?”

“아, 예.”

강태영은 스태프 뒤를 졸졸 따라갔다. 스태프는 강태영을 병원 안으로 안내했다. 곧 그는 4층에 있는 비뇨기과 교수의 사무실에 도달했다. 스태프는 사무실 문을 열고 강태영에게 손짓했다. 강태영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교수가 그를 바라보았다. 교수는 40대의 여자로 보였다.

“아, 국가에서 강화 시술을 다 해주는구나.”

강태영은 혼잣말을 하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생각한 강화 시술은 성기 확장술이었다만, 왠지 입 밖으로 내면 교수에게 성희롱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강화 시술이라는 애매한 단어를 택했다.

“아, 네, 맞아요. 여가부에서 설명은 다 들으셨지요.”

강태영은 여가부에서 보낸 메일에 여러 첨부파일이 있던 것을 떠올렸다. 사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뭐 뻔한 내용 아니겠는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시군요. 이게 대단히 안전한 수술이긴 한데요, 그래도 성기에 하는 거다 보니까 지방 색전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전신 마취도 하고 해서 약간의 위험은 있거든요. 그리고 회복 기간이 3주 정도. 그리고...”

강태영은 교수가 무슨 어려운 말을 하는 동안 정력남이 된 자기 모습을 상상했다. 곧 교수가 책상 위로 수술 동의서를 내밀었다. 강태영은 웃으면서 곧바로 서명했다.

“고질라를 잡으려면 고질라 굴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바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웃긴 말을 떠올렸으나 교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곧바로 진행하는 걸로. 마침 딱 예약이 없어서 지금.”

강태영은 빙그레 웃었다.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입원 수속 등을 끝마친 강태영은 몇 분 뒤에 수술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몸에는 여러 환자감시장치들이 덕지덕지 붙은 채였다. 여러 금액은 여성가족부에서 완전히 지원한다고 했다. 그는 정말 오랜만에 자신이 낸 세금이 잘 쓰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성기 확장술을 받으면 없던 자존감도 다시 생겨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원래 거기가 큰 사람들이 자신감도 커다랗지 않은가? 강태영 근처로 여러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방금전에 본 비뇨기과 교수도 있었고 마취의도 있었다. 비뇨기과 의사는 말했다.

“정말 괜찮으신 거죠?”

아, 이게 마지막 관문이구나. 강태영은 “예!”하고 크게 말했다. 곧 어떤 사람의 그의 입에 커다란 마스크를 씌웠다.

“심호흡하세요. 강태영 씨. 강태영 ㅆ...”

강태영은 순식간에 정신을 잃었다. 그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완전한 무의식 속으로 빠졌다.

강태영은 몇 시간 뒤에 정신을 차렸다. 눈부신 빛이 눈꺼풀 틈으로 쏟아졌다. 몸을 움직여 아래를 만져보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빛 다음으로 찾아온 것은 고통이었다. 아랫배에 끔찍한 격통이 찾아왔는데, 고환을 강타당했을 때 느끼는 아픔과 정확하게 똑같았다. 누가 배의 장기를 하나씩 꺼내 불로 지지는 고통이었다. 강태영은 “끄으으...”하는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고통 다음으로 찾아온 것은 소리였다. 그는 자기 말고 또다른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텐더남의 목소리였다. 텐더남이 먼저 그의 목소리를 알아챘다. 텐더남이 그에게 물었다.

“으어어... 깼어요...?”

“악... 예...”

“으... 내가 좀 더 빨리 깼네... 씨발 뭐가 이렇게 아파... ”

“서...성기 확장술이니까 아프겠죠...”

“예? 확...억...장술이요?”

텐더남이 되물었다.

“네. 크...기 늘려주는 거 아니었어요?”

강태영이 말하자 텐더남은 침묵했다.

곧 간호사들이 방으로 들어와 뭔가 만지작거렸다. 아랫배의 화끈한 통증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텐더남의 신음도 같이 줄어들었다. 강태영은 텐더남에게 “자요?” “저기요?” 하고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랫도리랑 귀 만지시면 안되고요, 소변줄이 연결되어 있으니까 볼일은 그냥 보시면 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강태영은 다시 잠들었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강태영의 배가 아프지 않았다. 일어나서 느낀 것은 찝찝함과 가려움이었다. 특히 사타구니랑 왼쪽 귀가 굉장히 근질거렸는데 긁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는 텐더남이 부스럭대는 소리를 듣고 소리쳤다.

“깨 있어요?”

“예.”

단조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귀신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침묵이 흘렀다. 그때 텐더남의 목소리가 강태영에게 들려왔다.

“그런데 이걸 성기 확장술인 줄 알았다고요?”

“예, 아니예요? 그럼 뭐 정력 강화 시술 이런 건가?”

다시 몇 초 간의 버퍼링 후에 텐더남이 말했다.

“무슨 말이예요, 이거 중성화 수술이잖아요.”

“예?”

“거세라고요, 거세. 메일에 다 적혀 있었잖아요.”

“뭐라고?”

강태영은 가슴이 덜컹 하는 기분을 받았다. 텐더남은 그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눈치채고 조용조용 말했다.

“의사가 말 안 해줬어요?”

“그... 그랬나?”

“말해줬겠지. 그런데 정부에서 남자의 생리적 외로움을 해결해준다고 하면 대충 뭔지 뻔하지 않아요?”

“아니, 어떻게 거세가...”

“에이,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인 거 알잖아요. 쓸데없는 욕망을 완전히 지워주고 얼마나 좋아요. 저도 소개팅 같은 데에 쓸데없이 집착했었는데, 정부 덕분에...”

강태영은 더이상 텐더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손을 움직여 사타구니 쪽으로 갖다댔다. 압박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그는 그 붕대 위로 살짝 힘을 주어 보았다.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음경 자체는 남아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남성호르몬과 정자를 생성하는 두 개의 작고 동그란 내장이 담긴 쭈글쭈글한 주머니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귀를 만지지 말라던 간호사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양 손을 각 방향의 귀에 다급히 갖다댔다. 왼쪽 귀의 윗부분이 잘려나가 있었다.

강태영은 천장을 보고 길게 울부짖었다.

 


강태영은 한 달의 병가를 냈다. 첫 2주 간 침대에 걸터앉아 그는 말도 못하게 공허했다. 머릿속에 욕망이 갑작스럽게 지워졌고, 그 커다란 빈 구멍을 잠시동안 아무것도 채우지 못했다. 그는 원래라면 섹스 생각을 했을 순간순간에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태영은 그냥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텐더남은 놀랍게도 그 상황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그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다고 했다. 그는 간담회에서도 말했지만, 자기가 지나친 욕망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고 선선히 말했다.

“여자만 보면 자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드는데, 이게 진짜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죠. 세상의 반이 여잔데 그 사람들 보면서 침 질질 흘리는 거 밖에 못 하면 진짜 사람답게 사는 건가 싶더라고요. 그럴 때 딱 여가부가 좋은 제안해준 거죠. 강 선생님이 그때 나서서 말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는데. 부끄럽잖아요.”

“아니, 내가 말한 건, 그게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태영은 자신보다는 텐더남이 그나마 고귀한 인간이라고 마음 깊은 곳으로는 인정했다. 강태영은 이제 다시는 느낄 수 없을, 사정 후의 어마어마하게 씁쓸한 순간을 기억했다. 중성화되기 전에는 필연적으로 괴로울 것을 알면서도 그 사정의 순간을 끝없이 쫓았다. 차라리 거기서 풀려나기로 한 텐더남은 의지가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강태영은 그럴 의지가 없었다.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갑자기 왈칵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그러면 강태영은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몇 시간이고 줄줄 울기만 했다. 강태영은 이상할 정도로 단 것이 땡겨서 매일매일 초코파이를 두 박스씩 먹어치우곤 했다. 하지만 초코파이와 우유로도 채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그의 마음 속에 뚫렸다. 다시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다시는 이전과 같을 수 없게 되었지만, 퇴원하기 일주일 전부터 그의 정신은 조금씩 나아졌다. 중성화 수술을 집도한 비뇨기과 교수는, 강태영은 못 들었지만 미리 고지한 대로 정자를 채취해 얼려 두었다고 말했다. 강태영은 여전히 마음 속 한 구석이 빈 느낌이긴 했지만 이전에는 몰랐던 평화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남근의 숙주로 살지 않는 데 대한 야릇한 해방감이었다. 강태영은 회복실에서 천천히 나아가며 인터넷에 거세 관련 키워드를 닥치는 대로 찾아보았다. 몇 가지 좋은 소식이 있었다. 거세한 수컷은 평균 수명이 길다는 말도 있었다. 고기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는데 이것은 몸에서 아저씨 냄새가 나지 않는 거랑 같은 말 아닌가 하고 해석할 수도 있었다.

또 밤마다 자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강태영에게는 색다른 충격이었다. 그는 회복기간 동안 몸에 이전과는 다른 활기가 찾아오는 것도 느꼈다. 물론 적당한 횟수의 섹스가 육체 건강에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는 자위는 결코 건강에 좋지 않았던 것이었다.

퇴원한 뒤로 그는 이런저런 취미를 찾아다녔다. 성욕이 없으니 그 빈 시간을 더 재미있는 활동으로 보내려고 할 유인이 생겼다. 항상 잠만 자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강태영은 테니스 동아리 하나에 가입했고, 아주 옛날에 언뜻 관심이 있었지만 도통 읽을 용기를 내지 못했던 고전 문학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청소와 설거지도 마침내 제대로 하게 되어 집이 수 년 만에 사람 사는 곳 모양이 되었다. 거기다 머리카락도 조금씩 재생됐다.

시민 모두에게 열린 동아리였지만 테니스 동아리 사람들은 웬 머리 벗겨진 아저씨가 들어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만은 않았다. 외관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된다지만 사람들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편견 혹은 경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코트에 나왔을 때 여자들은 그의 왼쪽 귀 위쪽이 잘려나가 있다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강태영이 퇴원하고 나서 정부에서 왼쪽 귀가 잘려나간 것이 무슨 뜻인지 대대적으로 광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중성화 후에 귀를 굳이 잘라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표했다. 정부는 중성화 프로젝트를 대중에 공개하고 난 뒤로, 피시술자에게 귀를 조금 잘라낼지 보존할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그 길을 택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냥 왼쪽 귀를 조금 잘라내는 안을 택했다. 왼쪽 귀의 윗쪽이 조금 잘려나갔다는 것은 확실한 안전의 표식이었다. 귀 잘린 남자들은 자기만 웃긴 성희롱을 하지 않았으며, 놀랍게도 섹스가 아닌 다른 것에도 풍부한 관심이 있는 재미있는 사람들이었던 데다가, 자기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개새끼도 아니었다. 사실 고환만 거세당한 상태라 섹스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했던 데다가 정자를 따로 채취해 얼려두었으니 번식도 가능했다. 2~3주 간의 어마어마한 공허감만 참아내면 남자와 그 근처 사람들 모두가 행복했다. 향후에 귀만 잘라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악당들이 사회 문제가 되었으나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병가를 끝낸 강태영은 조용히 너울 로지스틱스를 계속 다녔다. 그는 예전 버릇이 남아 있어 빨리 출근했으나, 이제 취미 덕에 오후 여섯 시에 칼같이 퇴근했다.

임유정 대리는 병가를 끝내고 돌아온 강태의 변화를 순식간에 눈치챘다. 강태영이 병가를 끝내고 출근한 첫 날, 그는 강태영이 출근한 직후에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는 사무실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강태영이 돌아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인간 돌아왔으니 이제 좋았던 때는 끝났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문을 열었고, 평생 처음 기적을 목도했다.

임 대리는 왼쪽 귀가 살짝 잘려 있는 강태영이 사무실을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강태영은 임 대리가 들어온 것을 보고 살짝 목례했다. 임 대리도 “아... 안녕하세요!” 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이후 강 부장이 예전처럼 임 대리에게 눈에 띄는 역겨운 구애를 하거나, 그런 티를 내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너울 로지스틱스의 국내물류부는 훨씬 일하기 좋은 곳이 되었다.

퇴원하고 일주일 뒤에 퇴근하기 직전에 강태영에게 정부에서 또다시 이메일이 왔다. 프로젝트 참여자의 만족도를 조사하는 후속 연구를 위한 사이트 주소가 담겨 있었다.

‘중성화 이후 내 삶은 나아졌다

O O O O O

  1. 아주 그렇지 않다
  2. 그렇지 않다
  3. 보통이다
  4. 그렇다
  5. 아주 그렇다’

강태영은 5번 동그라미를 클릭했다. 따라오는 여러 설문을 끝낸 그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는 입꼬리를 한 쪽만 올리면서 슬쩍 웃었다.

여느 날처럼 오후 여섯 시에 칼같이 회사를 탈출한 강태영은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등에 고등어 같은 검푸른 줄무늬를 가진 그 고양이는 쪼그려 앉은 채로 그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강태영은 그 모습을 보고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 가서 습식 사료캔 하나를 샀다.

그가 사료캔과 젓가락, 종이를 준비해서 나오는 동안에도 그 고양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강태영이 고양이에게 다가가 사료를 준비해 주는 동안에도 고양이는 일절 움직이지 않았다. 사료의 준비가 끝나자 고양이는 차분히 일어나 사료를 핥아 먹었다. 강태영은 기품 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고양이의 왼쪽 귀 윗 부분이 잘려 있었다. 아하, 이게 중성화된 고양이의 상징이었나. 강태영은 자신의 왼쪽 귀를 문득 매만져 보았다. 귀 위쪽이 깔끔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고양이는 사료를 다 먹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태영의 다리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기까지 했다. 강태영은 천천히 자신의 집 쪽으로 걸어갔다. 고양이는 그를 따랐다. 끝까지 따라오면 그는 자신이 간택받은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이게 건강한 접촉을 처음으로 배우는 순간이 될 지도 몰랐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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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여행자 19.03.01 02:01 댓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웃느라 정신이 없네요. 그런데 너무 충격적인 결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 지구여행자님께
    글쓴이 너울 19.03.01 12:01 댓글

    사실 어느 고통이든 글로 쓰면 잘 실감이 안 나는데요. 이것만은 그래도 공감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저는 가볍게 썼는데 충격적이란 이야기가 많았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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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쁘로프박사 19.03.01 09:33 댓글

    반전에 엄청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의문이 드는게 그런 수술이 이루어지면 과연 성욕의 에너지가 긍정적인 욕망으로 고스란히 옮겨 갈까요?

  • 쁘로프박사님께
    글쓴이 너울 19.03.01 12:04 댓글

    성범죄자들에 대한 물리적ㆍ화학적 거세가 대단히 효과가 좋다는 이야기를 인상깊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이 완전히 컷되니 공격적이지 않아지고, 성욕도 사라지고.. 그래서 저는 긍정적인 영향을 크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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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모노 19.03.01 17:42 댓글

    현실에 대한 극사실묘사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감각과 엉뚱하지만 그럴듯한 발상을 능숙하게 이어붙이시는게 너울님의 강점이라고 느꼈습니다. 솔직히 읽으면서 조금 화가나기도 했는데 역시나 재미있네요.

  • 록모노님께
    글쓴이 너울 19.03.01 18:07 댓글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지금까지 다뤘던 인물 중 가장 심각한 인물이라 쓰면서 고민이 있었습니다. 카타르시스가 있었다면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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