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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미남해적전 - 십육미남병풍

 


1.
신라 장보고(張保皐)가 망하고 20년 쯤이 지난 무렵, 임관(臨關) 지방(지금의 울산 근방을 말함)에 배 한 척을 갖고 이곳저곳을 왕래하며 물건을 파고 사는 집안이 있었다.

이 집에서 딸이 태어 났으니 그 이름을 도아(渡娥)라고 했다. 본시 도아의 집은 대대로 여러 척의 배를 거느리고 장사를 크게 하여 재물이 넉넉하였다. 그러나 해적을 물리쳐 주던 장보고가 망한 후, 남해 서해 동해 세 바다에 해적들이 가득하게 되어 점차 뱃길로 장사를 하는 것이 어려워진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도아의 아버지 대에 이르러서는 점차 재물이 집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다 도아가 나이가 들 때 즈음이 되자 집안에 내려 오던 산과 논밭을 모두 팔게 되고 배도 한 척 두 척 팔게 되었으며 결국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그런 시절에 하루는 도아가 그 아버지와 아버지의 부하들이 배에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한탄했다.

“지금 항간에 떠도는 말로 ‘재주가 있는 자라면 곧 해적이 되는 것이 길이다’라고 하니, 다들 해적이 두려워 먼 바다를 오갈 줄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배들이 모두 가까운 육지 근처만을 오가고 있으니 오히려 해적들도 가까운 바다의 배들을 노리고 가까운 바다로 모여 들고 있지 않습니까? 이럴 때 일 수록, 멀리 발해와 왜국섬까지 배를 띄우면 오히려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그 말을 듣고 도아의 아버지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내가 망해 가기로 소니, 어찌 너 같은 어린 것에게 장사를 이리하라 저리하라 하는 말을 듣게 되었는가? 배를 띄워 장사를 하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울 줄 아느냐? 배에 물건을 싣고 먼 바다 다른 나라로 싣고 가서 파는 일에 고민하고 헤아려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멋 모르니 남이 하는 일은 쉬운 줄 알고, 이렇게 일을 해야 한다, 저렇게 일을 해야 한다, 말만 그렇게 쉽게 하는 것이냐? 그렇게 재물 버는 일이 쉬워 보이면, 어디 네가 한 번 장사를 맡아 해 보거라.”

그 말을 듣고 도아는 그러면 정말로 자신이 장사를 맡아서 해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세상의 운수는 알 수 없는 것인지라, 도아가 시키는대로 장사를 하기 시작하니 괴이하게도 점차 재물을 많이 벌어들이게 되었다. 아버지는 도아가 장사를 하는 것을 처음에는 장난처럼 여겼지만 점점 재물이 많이 모이니 나중에는 감탄하게 되었다. 마침내 도아의 장사는 크게 번창하여 몇 년이 지나자 집안의 빚을 모두 갚고, 팔았던 땅을 다시 샀으며, 막대한 보물을 모아 백 척의 배를 거느린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고맙다. 도아야. 네가 우리 집안의 부처님이다. 고맙다. 고맙다.”

도아의 아버지는 하루에 한 번 씩 도아의 손을 붙잡고 그와 같이 말했으므로, 고맙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 질릴 정도였다. 도아는 같이 장사를 하는 부하들에게 “아무리 고마운 일이 있어도 내가 듣는 자리에서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명을 내릴 정도였다.

마침내 조상의 무덤이 있던 산까지 다시 사게 되자, 도아의 아버지는 크게 감동하여 눈물을 철철 흘렸다. 그리고 도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고맙게도 천하의 보배와 같은 고마운 딸을 얻어, 항상 고마워 하던 조상이 저승에서 쉴 곳까지 다시 찾게 되었으니, 이 같이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고맙고도 고맙도다. 내가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더 해야 고마운 이 마음을 정말로 고마운 만큼 전할 수 있을까? 이제 내가 세상 고마운 일은 거의 다 얻었으니, 내가 딱 한 가지 더 고마운 일이 있을 수 있다면 이제 네가 혼인을 하여 네 스스로 남편과 자식을 얻는 것이다. 혼인만 해준다면, 더 이상 고마운 일이 또 무엇이 있어 내가 고맙다, 고맙다, 말할 일이 있으리오?”

도아는 가슴을 쿵쿵 치더니, 이렇게 답했다.

“아버지께서는 제발 고맙다는 말 좀 그만하시오. 고맙다는 말만 그만하기로 맹세하면 곧 걸맞는 남자를 찾아 혼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도아는 부하 뱃사람들 중에 영특하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만 특별히 골라서 불러 들이더니 며칠 동안 누구와 혼인을 할 지 깊이 의논하였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후에 그 뜻을 정하여, 도아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천하 제일의 미남을 찾아 혼인할 것이다.”

도아의 부하 중에 가장 재주가 좋고 믿음직한 사람은 맥희(貊姬)였는데, 도아의 그 말을 듣고 맥희가 물었다.

“부부란 평생을 함께 살기로 맹세하는 사이인데, 어찌 다른 것은 따지지 않고 잘 생긴 것만 따지려고 하십니까?”

도아가 대답했다.

“내가 천하의 바다를 다니며 온갖 남자들을 다 만나며 따져 본 결과가 그러하며, 긴 시간 스스로 연구하고 또 연구한 결과가 곧 그러하니라. 무릇 재물이 많은 남자는 그 재물만큼 세상이 자신을 우러러 보기를 바라니 그 꼴은 우스꽝스러울 뿐이며, 학식이 높은 남자는 말이 많고 고민이 많기 마련이니 만사를 피곤하게 할 뿐이다. 그나마 마음이 착한 남자는 나쁠 것은 없으나 본시 세상 사람들은 다 자신은 더 없이 착하고 남들만 나쁘다고 여기고 살고 있으므로 착한 남자다, 착한 남자다 하는 사람일지라도 악한 남자인 때가 많고도 많으니 어디 착한 남자를 찾기가 쉽단 말인가? 맥희야, 내 말이 틀렸느냐?”
“듣고 보니, 그와 같이 옳은 말씀이 또 없습니다.”
“그런데 미남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고, 생각을 하고 있으면 배가 부르고, 같이 누워 시시덕거리며 세상 쓸데 없는 농담만 나누고 있어도 만사가 보람차게 느껴지니, 어찌 세상에 미남만큼 좋은 것이 있겠느냐? 그런 즉, 나는 천하제일의 미남을 찾아 혼인하도록 할 것이다.”

이후 도아의 말에 따라 그 부하들이 미남을 찾기 시작하여 일을 벌이니, 바다 뱃길을 따라 금새 그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소문을 찾아 사람들이 모여 들었는데, 모여든 사람 중에는 시정의 중매쟁이들부터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산 속에 들어 갔다가 문득 다른 깨달음을 얻어 금강산에서 15년간 미남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도를 닦았다는 수려거사(秀麗居士)라 하는 인물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윽고 도아의 부하들은 온 세상의 미남들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 다녔다. 그러면서 미남을 크게 네 가지 종류로 나누고 여섯 단계에 거쳐 엄격히 따져서 미남 중의 미남을 가리기 위해 애를 썼다. 이 때문에 도아의 뱃사람들은 망망대해를 건너 뜨거운 인도까지 미남을 찾아 헤메고 다녔으며, 도아의 짐꾼들은 멀리 대식국(大食國)의 사막과 북륙의 얼음밭까지 미남을 뒤지고 다녔다.

이때 명주(溟州) 지방(지금의 강릉 근방을 말함)에 김영진(金英珍)이라는 남자가 있었는데, 진골의 고귀한 가문 출생으로 군왕(郡王)의 작위를 갖고 있어서 근처에 큰 성과 넓과 땅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김영진은 그 얼굴까지 제법 잘 생겼으므로 근방에서 그를 흠모하는 이들이 무척 많았다. 김영진은 도아가 미남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리 도아라 하더라도 나를 보고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자신만만히 생각하며 부하들을 가느리고 도아를 찾아 갔다.

그런데 막상 도아를 찾아 가니, 이미 도아가 사는 집 앞에는 미남을 엄격히 가리는 도아의 부하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겨우 그곳을 통과해서 들어 가 보니, 호화로운 집 속에는 다른 미남들이 이미 여럿 있었다. 김영진이 그 미남들을 보니, 자기가 보기에도 그 미남들이 훨씬 더 잘 생겨 오히려 자신은 누추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나서 돌이켜 보니 너무나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옛날 영랑(永郎), 술랑(述郎)과 같은 이름 높은 화랑들이라 할 지라도 저렇게 잘 생겼겠는가?”

김영진은 도아가 자신을 만나도 하찮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망하여 슬금슬금 도망쳤다. 그러고 보니, 도아가 갑자기 밉다는 생각이 들어서 김영진은 도아를 괴롭히고 싶어졌다.

이때 신라의 국법은 모든 백성들을 귀함과 천함에 따라 골품으로 나누어 두고, 골품이 높지 않으면 집을 치장하거나 옷을 꾸미는 것까지도 아름답게 하지 못하도록 갖가지 금지하는 것이 무척 많았다. 이것을 어기는 사람들은 흔한 편이었으나, 김영진은 도아가 집을 꾸민 것이 골품에 맞지 않도록 지나치게 화려하다고 하여 죄를 묻고자 했다.

“나를 수치스럽게 한 도아에게 반드시 죄를 주고 벌을 내려 망신스럽게 하겠다.”

김영진은 자신의 가문에서 거느리고 있던 관리인 아슬생(阿瑟生)을 도아에게 보내어 고발 당한 것을 알리고자 하였다.

그런데, 막상 아슬생이 도아의 집이 있는 곳으로 가 보니, 기이하게도 도아의 집이 움직이면서 멀어지려고 했다.

“어떻게 집이 움직여 도망칠 수 있는가?”

아슬생은 놀랐는데, 자세히 보니, 도아의 집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은 바닷가에 세워져 있던 커다란 배였다. 돛을 펼친 커다란 배가 움직이고 있으니 온갖 아름다운 것으로 장식된 배의 모습은 극히 사치스러웠다.

멀어지는 도아의 집에서 작은 배를 타고 맥희가 나오더니 아슬생에게 말했다.

“집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금하는 법을 어겼다고 하여 저희를 관가에서 벌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그런데 보시다시피 이곳은 집이 아니라 배이니, 저희는 국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전해 주시오.”

맥희는 그렇게 아슬생을 돌려 보냈다. 또한 한편으로는 삼각산 가오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부탁하여 김영진을 구슬려 달래도록 했다.

삼각산 가오리를 김영진에게 보내기 전에 도아가 맥희에게 물었다.

“삼각산 가오리라는 자가 믿을만 한가?”
“조금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니, 가오리는 온갖 거짓말과 속임수에 아주 능한 놈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놈이므로 얕은 말로 김영진을 구슬리고 적당히 뇌물을 줘서 달래는 역할을 하기에는 적합한 놈이라고 하겠습니다.”
“과연 그만한 솜씨가 있는 놈이겠느냐?”
“삼각산 가오리는 금입택 요리사가 고기 요리를 하고 버린 곰 머리뼈를 구해서 그것이 바로 원효대사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우침을 얻었다던 바로 그 해골이라고 속여서 비싼 값에 팔아 먹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 놈입니다. 잘난 척 하러 왔다가 망신 당해 약 오른 진골 남자 따위는 파리 쫓 듯 떼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도아는 기뻐하며 웃었다.

“원효대사 해골물을 속여서 팔아 먹은 놈이라면 솜씨는 믿을만 하겠구나.”
“다만, 그 별명이 가오리라고 하면서, 자신을 삼각산 가오리라고 일컬으니 그것은 무척 이상합니다. 어찌 가오리가 바다에 산다고 하지 않고 산에서 산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도아는 더욱 웃으며 맥희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답해 주었다.

“그러니 과연 기막힌 거짓말쟁이 아니겠느냐?”

맥희의 부탁으로 삼각산 가오리가 김영진을 찾아 가서 귀한 술 몇 병을 꺼내며 하룻 저녁 이야기를 하니, 김영진은 더 이상 도아를 괴롭힐 생각을 멈추고 다시 명주의 고향으로 돌아 갔다.

그러나 김영진이 고향으로 돌아 갔다고 해도 아슬생은 멈출 수가 없었다.

“배를 집처럼 사용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집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국법을 어긴 것인데, 국법을 어겼으면 그에 대해 판결을 받아야 할 것이지 어찌 도중에 적당히 재물을 받고 멈출 수 있단 말인가? 비록 군왕께서는 돌아 가셨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불의를 보고 내가 어찌 돌아갈 수 있겠는가? 반드시 내가 도아를 직접 만나 죄를 묻고 관청에 불러 말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아슬생은 적당한 배를 구하여 도아의 배를 좇아 가고자 하였다.

한편 도아의 호화로운 배는 바닷가 곳곳을 다니며 미남이 있는 나루터라면 어디든 찾아 다녔다. 사람들은 도아의 배를 미남선(美男船)이라고 불렀으며, 특별히 선발 되어 항상 도아의 배에 타고 있는 여섯 명의 훌륭한 남자를 미남선(美男船) 육대미남(六大美男)이라고 부르며 칭송했다.

아슬생은 어떻게든 미남선에 몰래 올라타 도아를 만나려 하였으나, 미남선을 지키고 있는 칼잡이와 활잡이들이 솜씨가 뛰어난 지라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슬생은 계속해서 미남선을 따라 갈 뿐이었다.

미남선은 남해 곳곳을 거쳐 가더니 결국 서해에 도착했다. 옛 청해진 터 근처에 온 미남선은 그곳에서 매일 잔치를 열고 즐겁게 놀면서 며칠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곳에서 한 동안 고심한 아슬생은 미남선에 들어 가려면 자신도 미남이 되어 도아에게 뽑히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미남이 되고자 했다.

아슬생은 얼굴을 꾸미는 법을 알려 주거나, 마음에 두고 있는 낭자를 유혹하는 법을 알려 준다는 사람들을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그런데, 그러다 미남이 되는 법을 알려 준다면서 마치 점을 치는 사람처럼 행세하고 있는 삼각산 가오리를 만나게 되었다. 삼각산 가오리는 긴 수염을 그럴듯하게 붙이고 굵고 커다란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으면서 마치 오랫 동안 도를 닦은 사람처럼 행세하고 있었다.

아슬생은 삼각산 가오리가 누구인 줄도 모르고, 그저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이겠거니 생각하고 물었다.

“거사님께서 알려 주시는대로 하면, 저도 미남이 되어 미남선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물론이다. 미남선 육대미남만한 미남이 될 수야 없겠지만, 미남선 안에 겨우 들어갈 만한 미남이 되어 짐짓 거리의 낭자들이 한번씩 쳐다 볼 정도의 경지가 되는 것은 할 수 있다.”

삼각산 가오리는 그렇게 말하고 그런 비법을 알려 주는 값으로 아슬생에게 많은 재물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슬생은 가난한 형편이었으므로 그런 높은 값을 치를 수가 없었다.

아슬생이 말했다.

“거사님, 저는 골품이 낮고 한미한 관리로 그만한 재물은 없습니다. 다만 검법을 익혀 칼을 쓰는 것을 할 수 있으며,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은 할 수 있으니, 거사님께서 이번 한 번만 저를 도와 주신다면 반드시 제 목숨을 다해서라도 거사님을 위해 칼을 써서 싸우는 일을 해 드려서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그리고 아슬생은 가오리에게 엎드려 절을 하더니,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천하에는 사악한 무리가 가득하며 사해에는 해적들이 들끓고 있으니 신라 조정의 천년 종묘사직조차도 위태로운 시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뜻 있는 자라면 가슴 답답해 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디 제가 국법을 바로 세워 천하사해와 조정에 조금이라도 공을 더할 수 있도록, 반드시 미남이 되게 해 주십시오.”

삼각산 가오리는 국법을 바로 세우는 것이나 조정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아슬생의 이런 모습이 매우 귀찮았다. 가오리는 아슬생을 피하기 위해 몇 차례 애를 썼으나, 아슬생은 끈질기게 따라 붙으며 “미남이 되는 법을 알려 주십시오.”라면서 달라 붙었다.

그러던 어느 밤, 가오리가 머물던 암자에 도끼, 철퇴, 창을 든 남녀 여럿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네 다섯명 쯤 되는가 싶어 가오리는 적당히 피해서 도망치려 하였다.

그러나 암자 밖으로 나와 보니 온 산에 수십, 수백명의 해적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려 들어 가오리를 둘러 싸고 있었고, 결국 가오리와 아슬생은 줄에 묶인 채 붙잡혀 가게 되었다.

끌려 가 보니, 그곳에는 잘 생긴 남자로 비단 옷을 차려 입고 있는데 어울리지 않게 빛나는 철 투구를 머리에 쓰고 있는 해적이 가운데에 있었다. 그 해적은 양 손에 네 개의 가지가 달린 창을 하나 씩 들고 있었다. 주위의 부하 해적들이 그를 일컫기를 황제문어라고 불렀다.

가오리가 말했다.

“황제문어 폐하께 아룁니다. 소생은 그저 미남 되는 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황제문어 폐하와는 조금의 원한도 없는데, 왜 저를 이렇게 붙잡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 말을 듣자 황제문어는 이상한 웃음을 웃더니 창으로 가오리를 몇 번 찔러 피를 나게 하였다. 가오리가 괴로워 하자, 황제문어는 다시 웃음을 웃었다. 황제문어가 말했다.

“네가 삼각산 가오리인 것을 짐이 모를 줄 아느냐? 썩은 곰 뼈를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신 해골이라고 해서 막대한 옥구슬을 받아 먹고 짐에게 팔아 치운 것이 기억나지 않느냐? 그 일이 억울하여 짐은 며칠 동안이나 밤마다 해골만 남은 곰이 짐을 비웃는 꿈을 꾸었는데, 어찌 원한이 없다고 하느냐?”

삼각산 가오리와 함께 묶여 있던 아슬생은 그제서야 미남 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는 가오리가 속임수를 쓰는 거짓말쟁이이며, 황제문어는 그 원수임을 알게 되었다. 아슬생이 옆에 묶여 있던 가오리에게 물었다.

“자네 또한 국법을 어긴 죄도의 무리인 듯 하나, 자네를 죽이려고 하는 이 자들은 더욱 큰 죄를 지으려고 하고 있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여기서 자네를 살려 주려고 하네. 대신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미남 되는 법은 꼭 알려 주어야 하네.”

아슬생이 묻는 말에 가오리는 상처가 아파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아슬생이 몇 번 더 묻는 사이에, 황제문어가 다시 소리쳤다.

“짐이 삼각산 가오리 너를 지금부터 꽁꽁 높이 매달아서, 차가운 바람을 쏘이고 뜨거운 횃불에 그슬리기를 몇 번이고 거듭하여,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널려 있게 할 것이니 그러면 너는 곧 빼빼 마르고 피부 가죽 곳곳이 모두 상해 온몸의 안팎이 모두 아파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짐이 문어발창으로 너를 직접 마른 가오리처럼 쪽쪽 찢어서 죽여 주겠다.”

그리고 나서 다시 황제문어는 우렁 차게 웃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아슬생이 팔을 비틀어 묶인 것을 풀고 뛰쳐 나오더니 이렇게 외쳤다.

“해적질은 국법으로 엄히 금하는 것인데, 어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이오? 부디 무기를 던져 버리고 고향 마을로 각자 돌아가 관가에 스스로 죄를 고하고 벌을 받으시오.”

그러더니 아슬생은 가오리가 제 모습을 꾸미기 위해 들고 다니던 큰 지팡이가 있는 것을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몽둥이처럼 휘둘러 주위의 해적들 몇을 쓰러뜨렸다. 아슬생은 곧 한 손으로 가오리를 안고 뛰더니 암자 뒤의 비탈로 뛰어 내려 갔다.

다친 가오리는 아슬생에게 안겨 가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나를 잡아 죽이려던 사람들만 세상에 가득했는데, 자네는 나를 살려 주었네. 내가 비록 속임수로 먹고 사는 삼각산 가오리라고 하지만 자네에게만은 앞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네.”

새벽이 밝아 올 무렵까지 산 속에 숨어 있던 두 사람은 새벽이 밝을 때 즈음이 되어서야 마을로 내려 왔다. 가오리는 눈치로 마을에 있는 한 집을 찾았다.

“장보고가 역적으로 몰려 망한 것이 수십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몰래 마음 속으로는 장보고를 영웅호걸이라고 여기며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네. 저 집의 주인이 행색을 보니 장보고를 그리워 하는 자인 것 같으니, 내가 장보고의 이름을 다시 빛나게 하고 장보고의 옛 원수를 갚기 위해서 큰 일을 하려 하다가 관군에게 쫓기던 중 다쳤다고 하면 반드시 우리를 숨겨 줄 것일세.”

과연 가오리의 꾀는 맞아 떨어져서, 아슬생과 가오리는 해적 떼를 피해 한 동안 그 집에 숨어 있게 되었다.

가오리는 몸이 아파 마침 도망 가기도 힘들어 아슬생과 함께 계속 숨어 지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아슬생이 가오리에게 몇 차례 계속 미남이 되는 법을 알려 달라고 보채니, 가오리는 자신은 거짓말하는 재주 밖에 없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겠냐고 했다. 그리고 가오리는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미남은 미남으로 태어나야 미남인 것이지, 또 무슨 미남이 되는 법이 있는가?”

그 말에 아슬생이 실망하여 하루를 꼬박 괴로워 하였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삼각산 가오리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본시 미남으로 태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나, 세상에 바람이 불고 이상한 흥이 생기면, 무릇 그 시절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양이 생겨나는 것이네. 그리하여 때마다 ‘이런 사람이 미남이다’라는 이야기가 돌아서 다들 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별로 미남이 아닌 자라 하더라도 그런 바람과 흥에 맞춰 적당히 꾸미기만 하면 미남 흉내를 낼 수 있을 것이고, 미남 흉내를 내는 가운데 주위에서 ‘미남이다’ ‘미남이다’ 이야기를 해 주다 보면 저절로 미남 비슷하게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슬생은 이해하지 못해서 말 뜻을 다시 물었다. 가오리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지금 도아와 그 무리들이 미남선을 타고 이곳 서해 끝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인 줄 아는가?”
“무엇인가?”
“도아는 바로 해적들 사이에서 세 바다를 통틀어 제일의 미남이라고 하는 미남적을 찾기 위해서 해적들이 많은 이곳에 온 것이네.”

아슬생은 미남적이라는 이름을 듣자 어쩐지 중요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남적이 누구인가?”
“미남적이란 해적 중 한 사람인데, 얼굴이 대단히 잘 생겼다는 사람일세. 미남적이 어찌나 잘 생겼는 지 한번만 그 얼굴을 보면 백년을 잊지 못한다는 노래가 있을 정도네.”
“해적인데 얼굴이 그렇게나 잘 생겼단 말인가?”
“미남적은 해적질을 할 때에도 칼이나 창으로 사람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하네. 미남적은 어느날 그저 부유한 집의 아녀자가 사는 집 처마 밑에 깊은 밤 홀로 나타나 낮은 목소리로 가만히 노래를 부른다고 하네.”
“그 노래에 사악한 주술이 있어서 노래를 들으면 죽거나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네.”
“그런 것이 아니면, 그 노래에 무슨 힘이 있길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해적질을 할 수 있는가?”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에 취하게 되는 것이라네.”
“아름다움에 취한다?”

아슬생은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하였다. 가오리는 아슬생의 어깨를 두 번 툭툭 쳤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미남적이 외로이 처마 밑에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 노래를 듣는 동안 벌써 절반 쯤 미남적에게 반하게 된다는 말일세. 그리고 나서 미남적의 얼굴을 보면 이미 미남적에게 정을 품게 되니, 그 때 미남적이 그저 좋은 목소리로 ‘내가 어쩔 수 없어서 그러니, 금이나 은이 있으면 주고 싶은 만큼만 주시오’라고 한 마디만 부탁하면, 홀린 듯이 손에 잡히는대로 금가락지든 은비녀는 다 뽑아서 미남적에게 준다는 말일세.”

그 말을 듣고 아슬생은 말을 한 동안 하지 못했다. 아슬생이 한참 만에 다시 삼각산 가오리에게 물었다.

“아무리 미남이라도 그렇지, 그렇게 도적질을 하는 해적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가오리가 대답했다.

“그러나 그런 미남적이 있다는 이야기는 널리 퍼져 있으니, 미남적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지금 무주(武州), 전주(全州), 강주(康州)에 (각각 지금의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지역과 비슷함) 가득하여 한 둘이 아니네. 그러니 미남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면 과연 정말 미남적이 있는지, 미남적이 어떻게 생겼는 지 알고 싶지 않겠는가? 도아와 육대미남이 미남선을 타고 이곳에 온 것도 또한 바로 그 미남적을 보기 위해서라는 이야기일세.”

아슬생은 가오리의 이야기에 감탄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도아는 미남적을 만나기 위해 어떻게 일을 꾸미려 하는가?”

가오리가 다시 대답했다.

“도아는 대단한 보물을 갖고 있다고 소문을 내고는 일부러 방비를 느슨하게 하는 날이 있는 것을 알릴 것일세. 그러면 도아의 보물을 빼앗기 위해 미남적이 나타날 것이지 않겠는가? 내 생각에 도아는 그 때 미남적을 붙잡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도아를 만날 수 있겠는가?”

그 말에 가오리는 싱글싱글 웃으며 매우 기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오리가 말했다.

“큰 속임수를 꾸미고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기뻐 흥에 취하는구나. 우리가 바로 미남적인 척 꾸미고 도아를 찾아갈 것이네.”

아슬생을 가오리의 말을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그러나 가오리의 말을 듣고 아슬생이 바닷가로 나가서 술판, 춤판, 노름판이 벌어진 곳 몇 곳을 살펴 보니 과연 도아에 대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그 중에 어느 술판이 벌어진 곳을 지날 때에 아슬생이 보니, 호화롭게 꾸미기가 한이 없는 차림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치스럽기가 마치 진골의 공주나 왕비와 같아 보일 정도였다. 그 자태 또한 매우 아름다워 보여서, 아슬생은 한참 넋이 빠질 정도였는데, 다름 아닌 도아의 부하 맥희였다.

도아의 지시를 받고 부하들을 이끌고 소문을 퍼뜨리기 위해 나타난 맥희는 다음과 같은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장보고가 망할 때에 청해진에 있던 수많은 보물들을 그 부하들이 다 빼돌리지 못해 바다 이곳저곳에 숨겨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보물들은 바다 깊은 곳에 묻힌 것이 많습니다. 예로부터, 동해를 다스리는 용왕이 흘린 침은 대단히 좋은 약이라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해서 대단한 보물이라고 했으며, 남해를 다스리는 용왕이 흘린 침 또한 놀라운 약이라서 늙은 사람을 다시 젊어지게 할 수 있는 보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서해를 다스리는 용왕이 흘린 침 역시 대단히 귀한 약이라고 했으니 이것은 사람을 미남 미녀로 만들어 주는 보물이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 소문에 대해 술 취한 뱃사람들이 서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지금 도아가 바다 속에서 한 보물 상자를 건졌더니 그곳에 은으로 만들어진 병이 있는데 병 속에 든 것이 바로 서해를 다스리는 용왕의 침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아슬생은 들은 것을 가오리에게 전했다. 그러면서도 아슬생은 맥희의 모습이 계속 마음 속에 떠올랐다.

몸이 어느 정도 나은 삼각산 가오리는 도아를 속일 생각에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조금 더 소문을 들어 보니, 가오리가 생각했던 대로, 도아는 일부러 미남선을 지키는 것이 소홀할 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같이 퍼뜨리고 있었다.

“도아의 미남선은 보름달이 뜰 때 마다 육대미남들이 달의 기운을 받아들여 온 몸을 더욱 아름답게 하기 위해 굿을 하며 제사를 지내므로, 이 때는 부정을 타지 않도록 배를 지키는 칼잡이들을 모두 육지에 내려 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보름달이 뜰 때 마다 미남선을 지키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보름달이 뜰 때 미남선에 물건을 훔치러 달려든 몇몇 해적들이 이상한 우연으로 미남선에 오르지 못하고 도적질이 실패했다고 했다. 그것을 듣고 가오리는 도아가 몰래 칼잡이들을 숨기고 있어 미남적이 아닌 해적이 나타나면 슬며시 물리쳐 버린다고 짐작했다.

가오리는 곧 보름달이 뜨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았다. 가오리는 아슬생에게 미남적 흉내를 낼 수 있도록 이것저것을 가르치고 여러 가지 옷과 장신구를 구해 밤에 언뜻 잘못 보면 제법 미남으로 보이도록 아슬생을 꾸몄다.

“나는 국법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인데, 이런 짓으로 도아를 만날 수 있겠는가?”
“자네는 지금 도아에게 ‘자네가 국법을 어겼으니 언제까지 관가로 나와 해명하시오’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것 아닌가? 그 말 한 마디를 할 기회를 얻고자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네.”
“그러면 이렇게 해서 얻을 수 있으니 나를 믿게.”
“믿을 만 하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거짓말을 잘하는 삼각산 가오리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자네 말고 누가 있겠는가.”

가오리와 함께 한껏 멋지게 꾸민 아슬생은 보름달이 뜬 밤, 은밀히 미남선에 다가 갔다.

가오리가 시키는대로 미남선에 숨어들어 보니, 미남선은 소문대로 귀한 물건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재물을 탐내는 가오리는 눈을 돌릴 때 마다 감탄하였다.

이윽고 배의 한쪽 켠에 붙어 선 아슬생은 가오리가 가르쳐 준 대로 미남적이 부를 법한 노래를 은은히 불렀다. 그런데 노래를 한참 부르는 중에도 아무도 나타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노래를 길게 부르다 보니 아슬생은 그만 가사를 잊고 말았다. 가오리가 아무 노래라도 계속 부르라고 손짓하자, 아슬생은 생각나는 노래가 없어 옛날 화랑들이 전쟁터에서 행군할 때 부르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후 사방이 환히 밝아졌다.

배에 있는 방 가운데에는 잘 꾸며진 의자가 있었는데 그 의자에는 도아가 비단 끈으로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맥희가 서 있었다. 아슬생은 뭐라 말을 할 줄은 몰랐으나 맥희를 보자 너무나 반가웠다. 맥희 또한 아슬생의 그 얼굴빛을 알아 보았다. 그러나 맥희는 아슬생을 다만 굳은 표정으로 노려 볼 뿐이었다.

그때 가운데 의자에 묶여 있던 도아가 말했다.

“너희들은 미남적이 아니다. 미남적은 커녕 미남도 아니로구나. 비롯 어슴프레한 밤 달빛에 옆 모습이 잘못 비치면 문득 조금 잘 생겨 보이는 것 같이 몸놀림을 보이는 재주를 익히기는 했으나, 천하의 미남들을 수없이 보아 온 내 눈을 어찌 속이겠는가? 비록 화랑도 노래를 부르는 그대는 생긴 것이 보통 보다는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천하제일의 미남적은 커녕, 미남선의 육대미남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구나.”

뒤이어 도아는 맥희에게 말했다.

“저런 자를 미남적일지도 모르겠다고 배 안으로 들어 오게 하다니, 너의 미남 보는 눈은 아직 모자라구나.”
“사죄 드립니다.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흘깃흘깃 살필 뿐이니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맥희가 대답했다.

가오리가 가만 보니, 만약 진짜 미남적이 나타나면 도아가 미남적에 홀려서 엉뚱한 일을 할 수도 있으므로 도아는 자신의 몸을 의자에 꽁꽁 묶어 두고 모든 일을 맥희에게 맡긴 것 같았다. 대신 맥희는 미남적을 절대로 똑바로 쳐다 봐서는 안 되며, 다만 도아가 의자에 묶인 채로 마음껏 미남적의 얼굴을 보겠다는 계획인 듯 싶었다.

가오리는 아슬생에게 얼른 도아 앞으로 나아 가서 국법을 어긴 것에 대해 따져 물으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맥희가 소리를 치니, 곧 좌우에서 육대미남이 나타났다.

육대미남은 모두 활과 칼을 다루는 재주가 자뭇 뛰어난 자들이었다. 육대미남은 달의 기운을 받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슬생과 가오리는 붙잡혀 끌려가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곧이어 가깝고 먼 곳곳에서 북치는 소리와 함성 소리가 들렸다. 맥희가 바깥을 보니, 바다 위에 반짝이는 불빛들이 둥둥 떠 있었다. 미남선 주위에 많은 배가 여러 척 나타난 듯 싶었다.

이윽고, 한 빠른 배가 물살을 가르며 나타나 미남선을 들이 받았다. 그 때문에 아슬생과 가오리는 나자빠졌다. 다시 고쳐 앉은 아슬생이 미남선을 들이 받은 배를 보니, 그 배는 “천적계(千賊契)”라는 깃발을 걸고 있었으며 배 맨 앞에는 바로 황제문어가 우뚝하니 서 있었다.

황제문어가 소리쳤다.

“참으로 오래 간만에 큰 보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짐이 천 명의 해적들을 모두 모아 천적계를 만들어 맹세를 하게 했으니, 이 해적 천 명이 짐이 이끄는 대로 한 무리를 이루어 보물을 차지하려 하노라. 지금 당장 짐의 배 위에 서해를 다스리는 용왕의 침을 바치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붙잡아서 잘근잘근 채를 썰어 생선 밥으로 만들어 바다에 뿌리도록 하겠다.”

말을 마친 황제문어가 부하들과 함께 미남선으로 건너 오려고 했다. 그러자 맥희는 칼을 뽑아 들고 그것을 막고자 했다. 황제문어는 맥희의 칼 쓰는 것이 제법 뛰어난 것을 보고 그것을 살짝 피했다. 또 미남선에는 저절로 화살이 나가는 쇠뇌도 달려 있었으니, 거기서 나오는 화살 때문에 황제문어는 조금 더 뒤로 물러 서야 했다.

그 틈에 도아가 황제문어를 향해 말했다.

“그대는 얼굴이 괜찮은 편이며 신체가 크고 또한 팔다리가 탄탄하니 그만하면 미남이 될 자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짝거리는 투구를 쓴 모양이 너무나 흉칙하고 표정을 짓는 모양이 너무나 추잡스러우니, 세력이 강성한 해적이라고는 할 지언정, 어찌 미남적이라 할 것인가? 너는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이만하면 못 생긴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에 어느 여자가 너를 좋아 하겠느냐? 아, 너의 어머니는 너를 좋아할 터이니, 어머니를 찾아 가 효도나 열심히 하는 것이 어떤가?”

모여 있는 여러 다른 해적들 앞에서 그 말을 듣고 황제문어는 크게 화를 내며, 온갖 욕을 하면서 반드시 도아와 그 무리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주위의 많은 해적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곧 미남선의 돛이 오르고 빠르게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황제문어의 배와 미남선은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바닷가에서도 한참을 멀어져서 망망한 먼 바다로 나왔나 싶을 때 즈음이 되었다. 아슬생과 가오리는 잠시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멀리서도 해적들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하여 맥희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남선 바닥의 창고 쪽에서 한 남자의 나지막한 노래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처음 들어 보는 노래였는데, 그 목소리가 듣기 좋고 노래 부르는 것이 깊이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서 노래가 끝날 때 까지 배 안에 있는 사람은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으려고 참으면서 그 노래 한 마디 한 마디를 마음에 새기며 들었다.

그 노래 가사는 이러하였다.

“처음 정을 준 당신은 그때부터 계속 잊을 수 없어,
지금도 온 세상 바다가 어디서인가 파도를 한 번 칠 때마다 한 번씩 당신을 생각합니다.
흉년 두 번에 먹을 것이 없어 빚을 지고
내 몸을 노비로 팔고는 당신과 헤어지게 되었고,
악한 주인을 만나 두들겨 맞으며 지내다 도망쳐서 지금 이 신세지만,
긴 세월 흐르도록 틈이 날 때마다 생각나고 또 생각이 나는 것은
그 옛날 당신이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부끄러워 하던 목소리”

맥희는 도아에게 지시 받은대로 노래가 들리는 곳을 쳐다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노래 소리만 들어도 저절로 눈물이 글썽이는 것을 느꼈다. 노래소리는 계속 되었다.

“비루한 처지를 견디다 못해 바다로 도망쳐서 떠도는 도적이 되었으니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당신은 가끔 밤잠이 오지 않을 때면
내 생각을 잠깐이라도 할 때가 있는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같은 시간 서로를 떠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항상 당신을 생각하고 있으니.”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달빛 그림자에 한 사람 형체가 조금 나타났다. 그것을 보자 마자 도아가 말했다.

“진짜 미남적이다.”

그 말을 듣고 널브러져 있던 아슬생과 가오리도 몸을 꿈틀 거려 나타나는 사람 형테를 보았다.

아슬생이 보니 과연 나타난 사람은 어처구니 없이 잘 생긴 미남이었다.

깊은 밤 캄캄한 곳인데도 그 얼굴이 이상하게 눈부신 듯한 느낌이 들어 쳐다 보려고만 해도 무엇인가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미남적의 얼굴을 볼 때에는 값을 치르지 않고 너무나 좋은 물건을 공짜로 집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러면서도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어서 다른 잡다한 생각은 저절로 사라지는 듯 하였다.

미남적은 달빛에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도아를 향해 말했다.

“이러한 처지 때문에 저는 재물을 얻으러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습니다. 부디 갖고 계신 것 중에 저에게 나누어 주고 싶으신 것이 있으시면 나누어 주십시오. 저에게 적게 주시고 싶으시면 적게 주시고, 많이 주시고 싶으시면 많이 주십시오. 그저 주시고 싶은대로만 나누어 주십시오. 불쑥 나타나 놀라게 한 것은 깊이 사죄하고자 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 마자 도아는 미남적에게 대답했다.

“사죄는 무슨 사죄란 말이오? 앞으로도 계속 자주 자주 놀라게 해 주시오. 여봐라, 너희들은 지금 서 계신 저 분께 작은 배에 나누어 실을 수 있을만큼 모든 금은과 비단을 나누어 드리고, 내 도장을 찍은 문서를 써 주어, 언제든지 그 문서를 내 밀면 내 재산이 모두 바닥 날 때까지 어느 곳에서든 재물을 빌릴 수 있도록 허락하도록 하라. 당장 시행하라!”

그러나 맥희가 도아를 막아 섰다. 맥희는 여전히 고개를 돌려 미남적을 보지 않고 있었다.

“지금 선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서는 안 된다. 선주님께서는 이러실 줄 알고, 미남적을 만나기 전에 자기 몸을 스스로 묶어 두고 자신의 말씀을 듣지 말고 대신 내가 하는 지시를 따르라고 하셨다. 미남적이야말로 선주님께서 찾던 보물이니, 너희들은 미남적을 사로 잡도록 하라.”

맥희가 외치자 미남선의 육대미남은 미남적을 붙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아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이 놈들, 어디 귀한 분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려고 하느냐. 함부로 저 분의 일을 가로 막으면 내가 너희들을 용서하겠는가?”

일이 그렇게 되자, 육대미남은 맥희의 말 대로 미남적을 붙잡아야 하는 지, 아니면 도아의 말대로 미남적에게 많은 보물을 주어야 하는 지,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마침 그 모습을 보고 묶여 있던 가오리가 말하기로,

“결국은 맥희가 아니라 도아가 이 배의 주인 아닌가? 도아가 다시 이 배를 다스리게 되는 날이 곧 올 것인데 그 때가 되더라도 미남적을 좋아하는 마음이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미남적을 나쁘게 대했던 사람을 도아는 싫어할 것이다. 그러니 도아의 말대로 미남적에게 보물을 주는 것이 옳다.”

고 했다. 한 편 그 말을 듣자 같이 묶여 있던 아슬생은 말하기로,

“애초에 자기 말을 듣지 말고 맥희의 말을 들으라는 법을 만든 것이 도아 아닌가? 지금 잠시 마음이 변해 미남적에게 보물을 주라고 하지만 바로 그렇게 마음이 변할 것을 생각하고 처음 법을 만들었던 것이니, 어떻게 그 법을 어긴단 말인가? 진실로 도아의 말을 따르고 싶다면 처음 도아가 만든 법을 잘 지켜 따르는 것이 옳다.”

라고 했다. 그러니 육대미남들은 더욱 뜻을 정하지 못하고 오락가락 할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바다 멀리서 보이던 불빛이 점점 가까워 오게 되었다.

얼마간 시간이 더 흐르자, 멀리 흩어져서 오고 있었던 해적 떼들의 배 몇몇이 미남선을 찾아서 다가 왔다. 해적들은 불빛을 깜빡히며 빠르게 서로 신호를 보냈고, 그에 맞추어 해적의 무리는 미남선을 한쪽으로 계속 몰았다.

그러는 사이 미남선은 다시 황제문어의 배에 따라 잡히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 보니 그 주변에도 다른 해적의 배들이 가득하여 빠져 나가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황제 문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짐에게 보물을 바치면 목숨을 살려 주려 하였으나, 너희들은 짐을 속이고 도망치려 하였으니 이제 목숨을 살려 줄 수 없다. 지금 당장 보물을 바치면 단칼에 너희들을 죽일 것이고, 만약 당장 보물을 바치지 않으면 너희들을 괴롭히며 죽인 뒤에 너희의 가족들까지 찾아 다 죽이겠다.”

황제문어가 뒤이어 온갖 잔혹하고 무서운 말들을 늘어 놓자, 아슬생은 탄식하였다.

“저 해적은 정말로 서해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의 침 같은 것이 이 배에 있다고 믿는 것인가?”

도아가 그 말을 듣고 대답했다.

“황제문어는 그런 어마어마한 보물이 있다고 정말로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유로 천 명의 해적들을 자기 부하로 거느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해적들을 모아 나를 붙잡고 내 재물을 빼앗으면 보물이 있건 없건 많은 재물을 가질 수는 있지 않겠느냐?”

도아는 그리고 맥희와 육대미남에게 다시 지시하여 미남선을 잘 움직여 해적선 사이를 뚫고 나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황제문어는 그렇게 두려고 하지 않았다. 황제문어는 다른 부하들을 시켜서 화살을 쏘도록하고 자신의 문어발창을 도아 쪽을 향해 던졌다. 그 창이 날아 가는 기세는 극히 맹렬했으니, 맥희와 아슬생은 대단히 두려워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선주님, 위험합니다!”

문어발창이 날아 오는 것을 보고 맥희는 그것을 자신의 검을 던져 막으려 했다. 그 덕택에 맥희는 창을 피했다.

그러나 창이 미남적 쪽으로 가게 되었다. 맥희는 미남적 쪽으로도 신호를 했으므로 미남적도 창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 그만 잘못하여 바다로 빠지고 말았다.

“조심하시오!”

맥희가 보니 미남적은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곧 맥희는 미남적을 바다에서 건져 내기 위해 그 뒤를 따라 바다로 뛰어 들었다.

황제문어의 배는 다시 미남선에 부딛혔다. 황제문어가 미남선에 오르려고 하니, 육대미남이 도아 앞에 나란히 섰다.

“선주님은 걱정 마십시오. 저희들을 지금까지 잘 대해 주신 은혜를 어찌 잊고 살겠습니까? 저희들이 온 힘을 다해 해적들을 막아 볼 터이니, 저희들을 믿으십시오.”

그 말을 듣고 도아가 웃었다.

“너희들의 무예가 뛰어 나다고는 하지만, 천 명의 해적들을 어찌 당해내겠느냐? 하물며 맥희라도 곁에 있었으면 그래도 도망쳐 볼 생각을 하겠지만, 지금은 맥희도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 어디로 갔는 지 알 수가 없고, 곁에 있는 다른 사람이라고는 묶여 있는 얼간이 한 명과 거짓말쟁이 한 명 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도아는 아슬생과 삼각산 가오리를 풀어 주도록 하였다.

도아가 다시 육대미남에게 말했다.

“너희들의 충직한 마음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 결코 죽을 때까지 싸우지는 말거라. 내가 천하제일의 미남을 보고 싶어 위험한 일을 벌였다가 바다 한 가운데에서 이렇게 죽게 되었으므로,  결국 내가 스스로 벌인 일의 끝인 셈이다. 하물며 잠깐이나마 미남적을 보았으니, 무엇이 아쉽겠느냐?”

도아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말했다.

“다만 한 가지 미남적을 보고 궁금한 것이 있으니.”

도아는 멀리에서 불빛 하나가 치솟는 것 같은 모습을 보았다.

“본시 잘생긴 남자가 있으면 영리하고 용감한 여자가 주위에서 그것을 그냥 두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이다. 그런데 미남적 곁에 여자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지 않았느냐?”

도아가 그 말을 하는 동안, 다시 불빛이 곳곳에서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주위를 보니 바닷물 위로 문득 불덩이가 타오르는 것이 보이는가 싶더니, 또 어디에서인가 시뻘겋게 빛나는 불화살이 날아 와 해적들의 배 이곳저곳에 꽂혔다.

“불이다!”
“배에 불이 붙었다!”

해적들이 허둥거리고 놀라는데, 문득 바다 한쪽에서 번개가 내려치는 것처럼 빛이 내려치며 큰 소리가 울려퍼졌다.

“불상어가 바다 위로 올라 간다. 타 죽기 싫은 자는 모두 도망치도록 하라.”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쥐불을 빙빙돌리면서 불화살을 어깨에 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불빛에 갈색 머리칼이 번쩍거리고 있었는데, 얼핏보면 온통 머리카락이 불꽃이 되어 타오르는 것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겁을 먹은 해적들 중에는 슬금슬금 도망치는 자도 있었다.

불상어는 도망치는 해적들 사이로 나타나 미남선에 다가 왔다. 가오리가 보니 불상어는 미남적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가오리가 아슬생에게 말해 주었다.

“미남적이 보물을 구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미남적과 함께 일하는 저 불상어가 배를 타고 나타나 데려 가는 것이 저들의 수법이었던 같네.”

황제문어는 갑자기 나타난 불상어에게 우선은 해적들 간에 나누는 인사를 건넸다.

“장보고는 개밥과 같고”
“그 자식들도 개같이 생겼다.”

불상어도 황제문어에게 인사로 대답했다. 황제문어가 불상어에게 물었다.

“짐이 천적계를 이끌고 큰 보물을 얻으러 나섰는데, 경은 무슨 뜻으로 앞길을 막고 있는가? 경은 짐에게 원한이 없을 것이고, 또한 먼저 얻으려고 하는 보물을 나중에 가로채는 것은 해적들 사이의 예절이 아닐진데, 그저 좋은 달빛을 즐기며 뱃놀이나 하며 지나가면 좋을 것이다.”

불상어가 대답했다.

“네가 말한대로 나는 너에게는 볼 일이 없다. 다만 나는 이곳에서 미남적을 데려가게 되었으므로 미남적을 찾고 있을 뿐이다. 만약 너희들이 미남적을 붙잡고 있다면 당장 풀어 주도록 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톱만한 부싯돌 두 개만 있어도 온 바다를 모두 불태운다는 불상어의 솜씨로 너희들을 모두 숯덩이로 만들겠다.”

그것을 보고 있던 가오리는 미남선의 반대쪽 끝으로 몰래 기어 갔다. 그리고 문득 바다 먼 곳을 보며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그 소리치는 목소리가 매우 안타깝고 구슬프게 들렸다.

“아, 미남적이 바다에 빠지더니 마침내 다시 올라오지 못하고 물에 빠져 죽고야 말았구나. 미남적이 물에 빠져 죽었구나.”

그 말을 듣더니 불상어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불상어가 가오리에게 화살 끝을 들이대고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미남적은 수영을 잘 할 줄 모르므로 스스로 바다에 들어 가고자 하는 일이 없다.”
“저 황제문어가 던진 창을 피하려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져 죽은 것이오. 나는 죄가 없소. 황제문어가 미남적을 죽인거요. 황제문어가 미남적을 물에 빠져 죽게 했소.”

그렇게 말하며 가오리는 황제문어를 가리켰다. 불상어는 황제문어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보더니, 즉시 들고 있던 불덩이를 던졌다.

황제문어와 그 부하들은 다급하게 외쳤다.

“배를 물려라! 불상어에게 다가가지 말아! 불이 붙은 것을 꺼라!”

그러나 불상어는 무슨 수를 쓰는지 끝도 없이 불화살을 쏘아 대는 것 같았다.

뱃전마다 불이 붙어 연기가 솟고 돛마다 불꽃이 퍼져 빛을 밝혔다. 까만 밤 바다 위에 일렁거리는 불이 비치니 곧 바다가 통째로 불 타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이 되었으며, 사방에 열기가 가득하고 매캐한 연기에 콜록거리며 욕을 하는 사람들의 소리도 울려퍼졌다.

한편 이때 미남적은 맥희가 구해 주었으므로, 둘은 조금 떨어진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맥희는 갑자기 불빛이 환해지는 것을 보고 큰 싸움이 난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맥희는 다급히 미남적에게 말했다.

“나는 선주님을 구하러 가야 하오. 혼자서 물에 떠 있을 수 있겠소?”

맥희는 도아의 말을 따르기 위해 그때까지도 미남적을 쳐다 보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미남적이 대답했다.

“다친 곳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수영은 잘 하지 못하나 혼자서 한 번 살 길을 찾아 보겠습니다.”

맥희는 미남적의 팔 다리가 움직이는 것만 살펴 보았다. 그것이 미덥지 않아, 맥희는 옷을 찢어 물에 잘 뜨는 주머니 모양을 급히 만들어서 그것을 미남적에게 안겨 주었다.

“이것을 잘 붙잡고 있으면 물에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오. 내가 다시 돌아와 구해 줄 때까지 기다리시오. 아니면 다른 배가 지나갈 때 소리를 질러 살려 달라고 하시오.”

맥희는 그리고 다시 불상어와 황제문어가 싸우고 있는 곳으로 헤엄쳐 가려 했다. 그런데, 미남적이 가는 맥희를 불렀다.

“제 목숨을 구해 주신 분인데, 얼굴조차 뵙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오늘 이 망망한 바다에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 뵈올 줄 모를텐데, 고개를 돌려 얼굴만 볼 수 있도록 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러나 맥희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대답했다.

“선주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보지 말라고 명을 내리셨으니, 나는 거기에 따라야 하오.”

그러자 미남적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한 번만 이쪽으로 돌려 주십시오. 그것은 해 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국 맥희는 미남적을 향해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미남적은 맥희의 눈 감은 모습을 달빛 아래에서 보았다. 이때 맥희는 눈을 감아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미남적이 얼마나 잘 생겼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곧이어 맥희가 미남적과 헤어져 도아가 있는 쪽으로 한참을 헤엄쳐 가 보았다. 그곳의 모습은 지극히 혼란스러운 광경이었다.

곳곳에 불꽃과 연기가 가득한데, 미남선을 향해 몰려 드려고 하는 해적들이 부서진 배와 출렁이는 파도와 뒤엉켜 악을 쓰는 소리를 지르고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불상어가 사방에 질러 대는 불길을 피해 어떻게든 그곳을 빠져 나와 도망쳐 가려고 하는 해적들도 여러 무리가 있어 곳곳으로 가려고 하는 배들이 엉망으로 섞여 있었다. 그런 배들이 바람이 불어 바다가 출렁일 때마다 이리저리 부딛히며 문득문득 뒤집히기도 했으므로, 욕을 하는 소리, 저주를 하는 소리, 살려 달라고 비는 소리가 시커먼 밤하늘로 쉴 새 없이 퍼져 나갔다.

그 가운데, 황제문어는 한 쪽에서 문어발창을 휘두르며 소리지르기를,

“황제의 명을 어기고 싸움터에서 도망치는 자는 사형이니라. 황제의 명을 어기면 사형이니라.”

라고 하면서, 물러 서는 자기편 해적들을 향해 찌르고 베려고 했다. 그러자 바닷물 위에 피가 튀어 뿌려지는 것과 파도가 부서져 물이 튀는 것이 어둠 속에 섞여 마치 바다가 핏물로 넘실거리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사이를 헤쳐 맥희는 가까스로 미남선에 달라 붙었다. 배 위를 올려 다보니 연기가 피어오르는 배 뒤 편으로 여섯 명의 미남들이 보였다. 육대미남은 칼에 베인 상처, 창에 찔린 상처, 화살이 스친 상처로 온 몸 곳곳에 피를 흘리면서도 떨어지지 않고 모여 그 등 뒤에 도아를 숨긴 채 지키려고 하고 있었다.

맥희는 육대미남 뒤에 언뜻 보이는 도아를 보고 안타까워 멀리서부터 몇 번이고 소리쳤다.

“선주님, 선주님은 겁을 내지 마시고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맥희가 여기 다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맥희는 서둘러 배 위로 기어올라가려 했다. 그런데 배 위로 올라 가다 보니, 배 속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들여다 보니, 그것은 용케 배 안의 창고로 숨어 든 삼각산 가오리와 아슬생이었다.

가오리와 아슬생이 하는 말을 들어 보니 다음과 같았다.

“여기에 조그마한 조각배가 두 척이 있으니, 이 배가 불 타고 박살이 나더라도 이 조각배만 잘 집어 타고 도망치면 살 수가 있을 것이네. 나는 기막히게 죽은 척을 할 줄 아는 재주가 있으니, 내가 지금 그 수법을 자네에게 가르쳐 주겠네. 그렇게 해서 죽은 척을 한 채로 가만히 숨어서 이 멍청한 놈들끼리 서로 싸우니, 죽이니 하는 것이 한 바탕 끝나고 나면 우리는 이 조각배를 타고 도망치면 되는 것일세.”

맥희는 곧 칼을 뽑아 꺼내 들고 두 사람이 숨어 든 창고 속으로 들어 갔다.

맥희가 아슬생과 가오리에게 말했다.

“내가 배를 띄우라고 말을 하기 전에 그대들끼리만 도망치면 내가 반드시 그대들 중 하나는 죽일 것이오. 아무리 죽은 척을 한다고 해도 소용없소. 그대들 둘 중에 얼간이 한 놈은 속일 줄 아는 재주가 없으니 내가 소리만 지르면 이 많은 해적 중에 너를 죽일 놈이 한 둘을 있을 것이고, 그대들 둘 중에 거짓말쟁이 한 놈은 무예가 보잘 것 없으니 내가 직접 머리통에 이 칼을 던져 죽일 수 있을 것이오. 그대가 아무리 죽은 척을 잘 한다고 할 지라도, 나는 불에 바싹 탄 새카만 시체의 잿더미에도 칼을 던질 생각이니 피할 수 있겠소?”

맥희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그렇게 말을 하고 창고 바깥 배 위로 올라갔다. 가오리는 그만 그 기에 눌려 뭐라고 대답도 하지 못했다.

배 위로 올라 오니 화살과 비수, 돌멩이 따위가 어지럽게 날아 들었다. 게다가 연기가 너무 심하여 맥희는 코와 입을 가려야 했다. 소리를 지르며 달려 드는 해적 몇을 쓰러뜨리고 가 보니, 연기 속에서 여러 적들에게 둘러 쌓여 힘겹게 싸우고 있는 육대미남이 보였다. 불상어도 어느새 점차 밀려서 육대미남 가까이에 와 있었다.

“선주님은 두려워 하지 마시고 조금만 참으십시오!”

맥희는 그렇게 소리지르고 돛대 위로 기어 올라간 후 밧줄에 매달린 채 육대미남과 도아가 있는 방향으로 뛰어 내렸다. 그런데 공중에서 황제문어가 던진 문어발창이 날아 왔으므로 맥희는 도중에 손을 놓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 배에 무기가 더 없느냐?”

맥희가 떨어진 곳 옆에서 그렇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맥희가 바라 보니, 거기에는 몸 곳곳을 다친 불상어가 서 있었다. 불상어의 몸은 이미 곳곳이 그을려 있었는데, 불상어는 계속 여기저기에 불을 지르려고만 하고 있었다. 아무리 불상어가 싸우는 재주가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천 명의 해적이 달려드는 데야 버텨낼 수가 없어 보였다.

맥희가 대답했다.

“이 배는 선주님께서 쉬시고 노는 배로,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라 칼잡이들마저 다른 곳으로 보내 버렸으니 무기라고는 없소.”
“그러면 이 커다란 배의 창고에 도대체 무슨 물건을 실었단 말이냐? 참으로 서해를 다스리는 용이 흘린 침이 실려 있느냐? 그러면 그 용은 매양 침을 질질 흘리며 살아서 침이 천석만석이나 되는 것이냐?”
“배에는 다만 갖가지 다양한 술과 안주들이 실려 있을 뿐이오.”

그 말을 듣더니 불상어의 표정이 이상하게 바뀌었다. 맥희가 보기에는 마치 불상어의 눈동자 모양이 바뀌는 듯 보였다.

불상어가 대답했다.

“너희들은 원수의 적이니 살 기회는 주겠다. 당장 바다로 뛰어들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불상어는 배 바닥의 창고로 뛰어 들어 가니, 맥희가 더 말을 나눌 기회도 없었다.

불상어는 창고에서 술이 실려 있는 항아리를 찾아냈다. 불상어는 그 중 한 항아리를 집어 들더니 그 술 맛을 보았다. 그러는 동안 해적 하나가 창고 안으로 달려 들자, 불상어는 항아리를 해적의 머리로 던져 쓰러뜨렸다.

“이만하면 쓸만한 술이다.”

불상어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술 담긴 항아리를 실린 곳에서 하나 둘 꺼내기 시작하는데, 그러는 동안 갑자기 즐거워서 신이 난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창고 구석에서 그 모습을 몰래 보고 있던 가오리와 아슬생은 불상어의 그 얼굴이 무서워 문득 몸을 떨 정도였다.

그 때 배 위에서 맥희가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배를 꺼내라! 배를 꺼내서 띄워라!”

가오리와 아슬생을 그 말을 듣고 뜯어 내고 있던 배 옆을 부수고 작은 조각배 두 척을 차례로 바다 위로 떨어뜨렸다.

곧이어 불상어가 웃으며 밤하늘을 향해 소리 질렀다.

“너희들 천 명을 하나 하나 붙잡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하나하나 불태워 없애기를 천 번을 거듭한다 하면 미남적이 살아 돌아 온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너희들을 내가 모두 붙잡아 일일히 다 태워 줄텐데. 그러나 온 세상을 다 불태워 없애도 다시 미남적이 돌아 오지는 않을 것이므로, 나는 그것이 원통하여 그저 후련하게 한번 다 터뜨리고 엉엉 울어 보는 것이다.”

가오리와 아슬생은 허겁지겁 바다 위에 띄워 놓은 조각배 위로 뛰어 내렸다. 그리고 뛰어 내리자 마자 불상어는 술 항아리의 술에 불을 붙여 온통 다 내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마치 커다란 용이 배를 부수고 튀어 오르는 것처럼, 불꽃의 아가리가 근방을 모두 헤집어 엎었다.


2.
날이 밝아 올 때 즈음이 되자, 그 소란스럽던 바다는 그저 고요해졌다. 소리지르고 울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불에 탄 새카만 나무토막들만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가오리와 아슬생이 띄운 두 척의 조각배는 그 커다란 화재를 다행히 빠져 나와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그저 물을 따라 흘러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배에 떨어졌는데, 가오리가 탄 배로 육대미남과 도아가 뛰어내렸고, 아슬생이 탄 배로 맥희가 뛰어내렸다.

도아가 몸을 추스리고 살펴 보니, 배에는 사람만 여덟명이 타고 있었을 뿐이지 먹을 것도 물도 없었다. 심지어 변변히 노를 저을 만한 물건 조차 없었다.

여섯 미남들은 저마다 바다 저편을 보며 슬퍼하며 중얼거리기로,

“그 아름답던 미남선이 잿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어졌구나.”

라고 하니, 개 중에는 문득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도 있었다.

그것을 보고, 도아가 육대미남을 향해 말했다.

“그대들은 슬퍼하지 말라. 여기 도아가 선주로 앉아 있고, 도아 곁에 미남들이 같이 타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미남선이다. 비록 지금 마실 술과 맛 볼 안주가 없으며 노래할 악기도 없고 갖고 놀 주사위도 없으나, 아름다운 그대들 여섯 사람이 있는데 세 바다의 하고 많은 배 중에서 미남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배가 이 배 말고 또 어느 곳이 있겠는가? 여기가 바로 새로운 미남선이다.”

그리고 도아는 삼각산 가오리에게 몰래 속삭였다.

“지금 우리가 살아날 수가 많지 않아 보이니, 분명히 저들은 겁을 먹을 것이다. 그러니, 거짓말을 잘 하는 네가 그럴듯한 말로 꾸며서 우리가 반드시 곧 살아날 거라고 저들을 속이도록 하라. 저들이 겁을 먹고 난리를 피우면 이 좁은 배 위에서 우리 모두가 위험해진다.”

그 말을 듣고 가오리가 도아에게 되물었다.

“저 또한 살아날 수가 없어 보여 겁을 먹기는 매 한 가지입니다. 제가 어찌 그런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도아가 대답했다.

“왜냐하면, 네가 만약 거짓말을 잘 하여 혹시라도 우리가 여기서 살아 나간다면 내가 너에게 황금 한 근을 줄 것으로 약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네 성정이 황금을 탐내는 것이 심하니, 어차피 죽으면 죽을 판에, 죽을 걱정을 잠시 잊고 황금을 바라면서 거짓말이나 마지막으로 열심히 해 보는 것이 어떠하냐?”

그 말을 듣고 삼각산 가오리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지금 새벽 하늘의 별을 보고, 바람이 부는 방향을 보니, 이것은 우리가 남남동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인다. 그런 즉,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탐라국으로 닿게 될 것이 분명하다.”

가오리의 말에 육대미남 중 하나가 되물었다.

“탐라국?”
“그렇다. 탐라국에는 나무 마다 달고 시원한 귤이라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고, 1년 사시사철이 따뜻하며, 이틀에 한 번 씩 깨끗한 비가 하늘에서 내려 목을 시원하게 축일 수 있으니, 우리는 탐라국에서 푹 쉴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말을 듣고 다른 미남 한 명이 가오리에게 물었다.

“정말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탐라국 방향이오?”
“그렇다네. 내가 몇 년 전 탐라국의 사슴뿔을 몰래 사다가 서라벌의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했을 때, 나는 항상 이런 작은 배에 몸을 숨기고 몰래 하늘의 별과 바람에만 의지하여 바다를 다녔으니, 이 바닷길을 다니는 것은 너무나 친근하다네.”

그렇게 말하고 가오리는 탐라국에 대해 자신이 들은 이야기에 지어낸 이야기를 섞어 끝도 없이 주절주절 말을 하니, 좁은 배에 다닥다닥 기대 누워 있는 사람들은 어느 새 그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가오리가 하는 이야기 중에는 도대체 터무니가 없는 것도 있었으므로, 이야기를 듣던 중에 어느새 도아조차도 쿡쿡 웃을 정도였다.

한편 아슬생이 탄 배는 또한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물 위를 떠 가고 있었으나, 가오리가 탄 배와는 한참 떨어져 있었다. 맥희는 아무 말이 없었으므로 아슬생은 어색하여 몇 마디 말을 붙여 보았으나 말을 주고 받는 것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슬생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 무예를 갈고 닦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몇 가지 이야기가 그나마 지루하지 않게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맥희와 아슬생은 바다 위에 떠서 떠내려 가고 있던 미남적을 보게 되었다.

“저것은 살아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니 구해야 하오.”

맥희는 그렇게 말했다. 곧 두 사람은 맨 손으로 물을 젓고 바다 속에서 헤엄치며 조각배를 밀어서 미남적 곁으로 갔다.

가까스로 다가 가 보니, 추위 때문에 입술이 파래져서 거의 다 죽게 된 미남적이 반쯤 정신을 잃고 맥희가 만들어 준 물건을 꼭 붙잡고 떠내려 가고 있었다.

맥희가 미남적을 건져 올릴 때에, 미남적은 희미하게 눈을 떴다. 미남적은 맥희를 알아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대는 제 목숨을 달이 뜬 밤에도 구해 주시더니, 해가 뜬 낮에도 또 구해 주시고 있습니다.”

세 사람이 떠 내려 가고 있는 방향은 부서진 미남선의 조각조각이 흘러 가는 방향과 비슷한 방향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가끔 물에 떠내려 가는 나무 조각을 건질 때도 있었고, 옷가지나 음식 상자를 건질 때도 있었다. 그것을 부지런 하게 모아, 미남적을 따뜻하게 덮어 주고 물과 음식을 먹여 주었더니 얼마 후 미남적은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주변을 떠다니는 물건은 드물어졌으며 방향을 가늠하기도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세 사람은 그대로 바다 위에서 죽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맥희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아슬생은 덜컥 겁이 났다.

그 모습을 보고 미남적이 말했다.

“여러분은 너무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사람은 태어나면 곧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모여 바다가 되고, 흙 한 줌씩이 솟아나는 것이 쌓여 육지가 되는 것 같은 긴긴 세월에 비하면 한 사람의 삶이란 짧게 끊어지든, 길게 장수하든 결국 잠깐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 어떤 사람들은 무서운 병에 걸려 온몸이 아파 긴 시간 앓고 괴로워 하다가 떠나게 되기도 하면, 악한의 칼날에 찔려 치욕을 당하다가 삶을 마치는 수도 있으며, 오래 산다고 하더라도 쓸모 없는 늙은이가 얼른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만 머물며 외롭게 사라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미남적은 아슬생과 맥희를 쳐다 보고는 또 웃는 얼굴을 했다. 맥희는 다시 고개를 돌려 보는 것을 피했다. 미남적이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만큼 비참한 것은 아닙니다. 비록 목이 마르고 햇빛이 뜨거워 괴로워하게 된다고 하지만, 그렇게 비참하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원수의 목을 조르며 소리지르다 죽는 것이 아니라 맺힌 것 없는 사람들끼리 조용히 모여 있으니, 이만하면 삶의 끝으로 나쁜 편이 아닙니다.”

그리고 미남적은 무서움을 잊게 하고자 다시 노래를 불렀다. 나머지 둘은 한 동안 그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노래가 끝나니, 아슬생은 따지기로,

“죽는데 좋은 것이 무엇이 있소? 내가 비록 골품이 미천하여 다들 화랑이라 부르는 화랑은 되지는 못하였으나, 본래 화랑은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는 법입니다. 이렇게 하다 죽으나 저렇게 하다 죽으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면, 저는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몫을 끝까지 톡톡히 해 보고 싶으니, 무슨 수로든 살아 보고자 싸우다가 죽을 것입니다.”

두 척의 조각배에 탄 이 두 무리의 사람들이 살아 남기 위해 겪은 일들과 그 후에 이어진 많은 어려움과 힘든 사연과 곡절을 다 밝히자면 또 얼마나 긴 이야기가 있을 것인가?

두 무리의 사람들은 겨우 살아 남아 마침내 탐라국에 딸린 작은 섬에서 만나고 또 헤어지다가 결국 탐라국 임금의 궁궐 앞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있었던 많은 일들을 이 짧은 글에서 세세히 다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도아가 아슬생을 다시 만났을 때, 도아는 아슬생에게 “너는 내가 집을 치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법을 어겼다고 그것을 따져 묻고 싶었다고 하는데, 이제 옛날 미남선은 불타서 물 위로 흩어졌으니, 어디에 치장한 집이 있느냐?”라고 말하며 웃었을 때 아슬생이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했다는 이야기만은 해 두고자 한다.

한편 이때, 황제문어 또한 도아를 붙잡고자 탐라국으로 찾아 왔다. 그리고 황제문어는 탐라국의 관리에게 부하를 보내서 이렇게 전했다.

“도아라는 임관의 부자와 그 무리를 찾아 내어 탐라국에서 쫓아 내어 바다로 나오게만 해 준다면, 우리는 탐라국에는 아무 해를 끼치지 않고 물러 나겠소. 또한 도아의 무리들 또한 해적들이 섞여 있는 무리이니, 탐라국에서 쫓아 내는 것은 어차피 당연한 일 아니오? 반대로 만약 탐라국이 도아와 그 부하들을 숨겨 준다면 황제문어와 1천명의 해적들이 뱃길을 막고 행패를 부릴 것이오. 무엇이 좋은 일인지를 알겠으면, 좋을 대로 하시오.”

황제문어의 부하가 돌아 가자, 탐라국 관리들은 서로 의논하였다.

“천하가 어지러워도 오랫 동안 탐라국은 바다 한 가운데 떨어져 있어 걱정을 모르고 태평하게 지냈건만, 하필 우리가 벼슬길을 살고 있을 때 이런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단 말인가?”
“천 명의 해적들을 몰아 내는 것은 매우 힘들고 귀찮은 일이네. 그러니, 적당히 일을 처리하여 다시 바다로 물러 나게 하고 해적들이 떠나면 잊어 버리고 마는 것이 가장 좋은 수네.”
“내가 아는 뱃사람 몇이 도아의 무리들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 자들은 고분고분한 편이어서 특별히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네.”
“그런 자들을 해적들에게 붙잡히도록 쫓아 내야 하는가?”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런 고분고분한 자들이라면 우리가 쫓아 내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일세. 우리가 병졸 몇몇을 보내어 칼을 들고 탐라국의 국법을 어겼으니 당장 바다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면 떠나지 않겠는가?”
“그런데 무슨 국법을 어겼다고 한단 말인가?”

누군가 하나가 그렇게 물으니, 그 말에 관리들 중에 가장 지혜로운 자가 대답하였다.

“먼 옛날 삼성(三姓)의 시조들이 이 땅에 터를 잡으시고 탐라국을 세운 이후, 관리들이 바뀌고 임금이 바뀔 때 마다 좋은 제도를 만들겠다고 새로 법을 만든 것이 쌓이고 또 쌓이지 않았는가? 그리고 옛날 백제가 망하기 전에 백제에 조공을 바치는 동안에는 백제의 임금이 바뀔 때 마다 더 좋은 제도를 꾸미겠다고 백제에서 내려 준 법과 제도들이 또 그 위에 쌓였고, 다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신라에 조공을 바치고 있으니 신라 임금이 바뀔 때 마다 법과 제도를 내려 주어 다시 또 여러 가지 법이 쌓여 있지 않았는가? 하물며, 백제와 신라가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고, 신라와 당나라가 한 편이었다가 서로 싸우다가 다시 한 편이 되는 사이에, 우리의 선배 벼슬아치들이 여러 나라에서 내려 준 법과 제도 중에 어떤 것이 맞는 것이고 어떤 것이 틀린 것인지 따지며 이리저리 고치느라 다시 쌓아 둔 법들이 그위에 다시 높이 쌓여 있으니, 탐라국이 생긴 후에 쌓이고 쌓인 온갖 자잘한 국법과 명령을 모두 한데 모으면 그 높이는 한라산 꼭대기 보다 낮지는 않을 것일세. 그러니, 탐라국 안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가 되었든 붙잡고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무거운 죄냐 가벼운 죄냐의 문제이지, 결국 그 많은 국법 중에 어느 한 곳을 어긴 것은 나오기 마련일세.”

그러자 관리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감격하였다.

“참으로 지혜로운 관리로다! 지혜로운 관리로다!”

다시 관리들은 의논하기로,

“도아의 무리들 중에 해적이 섞여 있다 하니, 그 자들을 내쫓으면서 해적들을 몰아 냈다고 하면, 우리는 해적을 물리친 공으로 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하더니, 모두 기뻐하며 즐겁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곧 탐라국의 관리들 사이에 도아의 무리들을 모두 쫓아 내라는 명이 돌게 되었다.

그때 탐라국의 바다를 지키는 병졸 중에 양랑(良郞)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 양랑이 마침 도아가 묵고 있는 곳을 찾아 내어 도아에게 갔다.

“당신들은 지금 국법을 어긴 죄인으로 모두 그 죄의 값을 치러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우리 탐라국 국왕 전하께서 인자한 덕을 베푸시어 지금 당장 바다 바깥으로 나간다고 하면 목숨은 살려 줄 거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당장 이곳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고 아슬생이 가장 먼저 따졌다.

“우리는 배를 잃어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한 나그네들일 뿐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다고 타고 갈 배도 없는데 당장 바다로 쫓아 내려 하십니까?”

아슬생이 말하는 것을 양랑이 본 즉, 아슬생은 제법 좋아 보이는 칼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양랑은 아슬생이 과연 무예를 익힌 해적이라고 짐작하였다. 양랑이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따졌다.

“당신들이 국법을 어겼으므로 그것을 벌하라고 하는 것은 관가에서 내려온 엄한 분부입니다. 이제 목숨을 구할 길을 알려 주었으니 그대로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고 피해가 없을 것인데, 왜 떠나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만약 끝까지 이곳에서 버티신다면, 저 또한 목숨을 걸고 칼을 뽑아 들고 싸워서 쫓아 내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더니 삼각산 가오리가 웃었다.

“지금 급히 배를 탈 수 있는 곳이라면 곳곳 마다 황제문어의 부하 해적들이 지키고 있어서, 우리를 죽이려고 들 터인데 무슨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수 있겠소? 탐라국 바깥까지 헤엄을 쳐서 가란 말이오? 지금 당신은 칼 한 자루를 든 병졸 한 사람일 뿐이니, 황제문어와 천 명의 해적들과 싸우는 것 보다는 차라리 당신과 싸우는 것이 쉬워 보이오. 당신이 비록 검법 연습을 아침 마다 열심히 해 온 병사라고 하여도, 여기 있는 아슬생은 무예의 경지가 극히 오묘하므로 당신을 한 손만 쓰고도 맨주먹으로 상대할 수 있을 것이오. 게다가 만약 저기 서 있는 맥희라는 분께서는 당신과 싸운다고 하시면 눈에 힘을 주어 당신을 노려 보기만 해도 당신은 죽어버릴 것이 분명하오.”

가오리가 겁을 주어 쫓아 내려 하자 양랑은 주춤하였다. 그러나 양랑은 곧 다시 고쳐 서서 말했다.

“탐라국이 힘 없는 작은 나라라고 한들, 어찌 국법을 집행하는 병사가 그와 같이 해적의 겁 주는 말에 두려워 도망치겠습니까? 제가 비록 오늘 겁 없이 싸우다가 죽는다고 하여도, 저는 내려온 명령을 따르고 죽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몸이 아파 누워 있던 미남적이 말했다.

“저 병사와 싸우지 말도록 하면 안 되겠습니까? 저 병사가 무슨 죄가 있어서 우리가 싸워야 합니까? 차라리 힘들더라도 우리가 물러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가오리가 따졌다.

“자네는 그 잘생긴 얼굴로 웃으면서 ‘좀 도와 달라’고 하면 먹고 잘 걱정은 없는 사람이므로 그렇게 말을 쉽게 하는 것일세. 그러나 도대체 지금 당장 우리가 타고 갈 배를 어디서 구해서 바다로 다시 나아간단 말인가?”

그런 말들을 듣는 사이에 도아는 한 가지 수를 떠올렸으니, 도아는 육대미남을 거느리고 한라산 기슭에 커다란 집을 짓고 사는 부장자(夫長者)라는 사람을 찾아 갔다.

부장자는 본시 도아의 아버지에게 높은 이자로 빚을 빌려 준 사람이었다. 그런데 도아가 장사에 크게 성공하여 그 빚과 이자를 모두 다 갚아 주었으므로 그 때문에 부장자는 더욱 더 큰 부자가 되었다.

그렇게 많은 재물을 모은 후에 부장자는,

“이제 세상에 좋은 것은 다 얻었으니 다만 조용한 곳에서 늙지 않고 오래오래 살고 싶을 뿐이다.”

라고 하여, 신선이 살고 있다는 탐라국의 한라산 기슭으로 가서 살고 있었다.

도아가 부장자에게 말했다.

“제가 부장자 어르신께 옛날 제 아버지가 진 빚을 갚아 드린 덕택에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에서 이렇게 즐겁게 살고 계시니, 저 또한 작은 공이 없다고는 못할 것입니다.”

도아가 뭐라고 더 말을 하려고 하는데, 부장자가 그 말을 끊었다. 그리고 부장자가 말했다.

“빚을 빌리려 왔는가?”

도아가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부장자가 다시 말했다.

“본시 빚을 갚으러 온 사람이라면 빨리 돈만 갚고 가는 법이네. 그러나 빚을 빌리려 오는 사람은 말을 길게 하기 마련일세. 아무리 웃으면서 여유로운 얼굴로 말을 한다고 해도, 그 말하는 투를 잠깐 들어 보기만 하면 나는 빚을 빌리려고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언제나 알아 볼 수 있다네.”

도아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리고 부장자에게 부탁했다.

“제가 지금 처지가 위급하니, 열 사람 쯤이 탈 수 있는 빠르고 튼튼한 배 한 척만 빌려 주십시오. 임관으로 제가 돌아 가게 되면, 배는 그대로 갚겠거니와 배를 빌린 값도 따로 쳐서 드리겠습니다. 또한 그때까지 제가 담보로 몇 가지 쇠붙이와 장신구 또한 맡기겠습니다. 어르신과 저는 제 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서로 돕고 지내는 사이이니, 이럴 때 그저 모른 채 하신다면 어찌 남쪽 바다에서 덕망이 높다 하는 부장자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도아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것 중에 가장 값진 보석과 금은붙이, 입고 있던 옷 중에 가장 아름다운 수가 놓인 것들을 함에 담아 내밀었다.

부장자는 그것을 보고 곰곰히 생각하는 듯 보였다.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바로 답을 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더니, 차를 다 마신 다음에야 다음과 같이 물었다.

“듣자 하니, 자네에게는 서해 바다, 남해 바다, 동해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의 침을 갖고 있어서 그것 중에는 늙은 사람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약이 되는 것도 있다고 들었네. 게다가 세 가지를 함께 먹이고 산삼, 영지와 흰 사슴의 뿔을 같이 먹이면 죽은 사람도 다시 되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그것이 참말인가?”

도아는 잠깐 생각해 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 입으로 무엇이라고 제가 가진 물건을 자랑하겠습니까?”

부장자는 얼굴이 잠깐 밝아지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만약 빚을 갚지 못하면 나에게 자네가 갖고 있는 그 침을 주겠다고 문서를 써 주게.”

도아는 그 말을 듣고 일부러 무척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차를 한 잔 다 마시는 동안 그렇다 아니다 답을 하지 않고 한참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가, 겨우 마지 못하는 듯이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제 침을 어르신께 드리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도아는 부장자가 내어주는 배 한 척을 얻어 그곳에 양식과 물을 싣고 깃발과 천으로 장식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다시 바다에 나아갔다.

배가 육지를 떠날 때에 도아는 배에 탄 무리들에게 소리쳤다.

“다시 이렇게 좋은 배를 얻어 넓은 바다로 나가게 되니, 이 배를 신미남선(新美男船)이라고 부르리라.”

그런데 도아의 무리가 배를 타고 나가는 것을 양랑은 따라 가며 살펴 보고 있었다. 양랑이 도아의 무리가 신미남선을 타고 바다를 떠날 것이라고 관가에 알리자, 황제문어가 보낸 그 부하 또한 그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황제문어는 즉시 신미남선을 찾아 좇아 가고자 하였다.

황제문어와 해적떼들은 한 곳으로 모여들어 바다 위를 새까맣게 덮었다. 그 풍경 또한 대단한 구경거리였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양랑 또한 그 모습을 보았다. 양랑은 해적떼들이 가득 모인 모양을 신기하게 여겨 사람들에게 물었다.

“저 많은 해적들이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죽었던 사람도 살린다는 대단한 보물을 갖고 있는 도아를 붙잡아 그 물건을 빼앗고 또한 도아를 죽이겠다고 도아의 집안 이야기하여 그 몸값까지 받아 내려고 저러는 것입니다.”

양랑이 몇 마디 말을 나누는 사이에 가만 사정을 들어 보면서 생각해 보니, 바로 자신이 도아에게 떠나라고 했으며 도아가 어디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을 알렸기 때문에 해적들이 도아를 찾게 된 셈이었다.

양랑은 머리가 어지러워 잠시 앉아 있다가, 마침내 탄식하기를,

“내가 의로운 일을 하겠노라고 칼을 들고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저 사람들을 천 명의 해적들에게 붙잡혀 죽게 만들었구나.”

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양랑의 위에 있는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저 자들은 국법을 어겨서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나가게 된 것이고, 바다에서 해적들을 만나는 것은 저 자들의 운이고 원한이다. 그런 것까지 네가 스스로 탓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 이제 해적들도 떠나고, 부자도 떠났으니, 다시 우리는 원래 하던 일을 하며 다 잊고 지내면 되지 않겠느냐?”

그러나 양랑은 도아가 해적들에게 붙잡혀 죽는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저 때문에 잡혀 죽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고, 본 것을 어찌 잊고 지낼 수 있겠습니까?”

마침내 양랑은 도아를 돕고자 자신도 해적들 사이에 몰래 섞여 그 뒤를 따라 나섰다.

양랑이 해적들의 형편을 보니 황제문어에게 충성이 깊은 자들이 결코 많지는 않았다.

비록 옛날 미남선이 불에 타 부서질 때에 미남선의 장식과 금은을 제법 건져 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천 명의 해적에게 나누어 줄 만한 양에 턱 없이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황제문어는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의 보물을 차지 하겠다고 떠들어 댔는데, 그런 보물은 한 번 눈에 뜨인 적도 없었으므로, 해적들 중에는 불만이 있는 자도 있었고 굶주릴 것을 걱정하는 자도 있었다.

그런 눈치를 황제문어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황제문어는 더욱 엄히 배반자를 다스리겠다고 했고, 해적들의 작은 잘못에도 벌을 심하게 주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재물을 제법 모아 둔 세력이 있고 이름이 있는 해적들 중에서도 황제문어의 배반자로 몰려 처형 당하고 그 동안 모아 놓은 모든 재물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해적들 중에 신라 대신으로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의 부인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날씨를 잘 알아 맞혀서 그 별명이 바람고기라고 했다.

바람고기는 양랑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황제문어가 천적계를 만들고 천 명의 해적을 모아 용왕의 보물을 얻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것은 그냥 내세우는 말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네. 그것이 아니라, 천적계를 자기가 이끌면서 자기 이름을 높이고 세력을 과시하면서, 그 힘으로 자기 곁에 모인 해적들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을 배반자로 몰아 죽여 없애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이네. 그런 즉, 황제문어는 용왕의 보물을 빼앗는데는 관심이 없으며, 다만 그것을 빌미로 다른 해적들을 배반자라고 하면서 죽여 없애고 그 해적들의 보물을 자기가 빼앗으려고 한다는 것이라네.”

그런 이야기가 천적계의 해적들에게 점차 퍼져 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황제문어에게 이러한 문제를 조심스럽게 따지고 드는 해적까지 하나 둘 나타났다.

못이 가득 박힌 곤봉을 잘 휘둘러 별명을 철성게라고 하는 어린 해적 한 사람은 싸우는 솜씨가 매우 뛰어 났다. 철성게는 장난을 거는 척 하면서 황제문어를 해치려 하였다. 그런데 황제문어가 문어발창을 휘두르는 것은 더욱 훌륭하여 철성게조차도 당해 내지 못했다. 그러므로, 철성게는 황제문어를 해치는 것을 포기하고 계속 복속하겠다고 하였다. 철성게조차 황제문어를 당해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자, 해적들은 결국 계속 황제문어를 따르는 수 밖에 없었다. 양랑은 철성게와 황제문어의 무예에 감탄하였으며, 한편으로는 더욱 두려워하였다.

황제문어는 철성게를 이기고 나서, 해적들 앞에서 말했다.

“경들은 짐의 큰 뜻을 모르는가? 짐이 보물을 모두 얻어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게 되면, 짐은 그 보물을 다른 나라의 임금에게 팔고 그 값으로 성과 땅을 얻으리라. 짐은 예전부터 세력을 얻으면 뿌리를 내릴 성과 땅을 얻는 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과 땅에서 얻은 군사로 가난하고 굶주려 힘이 없는 이웃 나라들을 쓰러뜨리고 차지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커다란 궁전을 짓고 높은 옥좌에 앉게 된다. 그 때 경들은 모두 개국공신이 될터이니 바로 경들이 바로 짐의 땅에서는 진골이 된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듣고 해적들은 “황제 만세”라고 거듭 외쳤다. 황제문어가 이어서 이야기했다.

“그러한 큰 뜻이 있으니, 내가 어찌 용왕의 보물을 잊고 지내겠는가? 반드시 내가 도아를 붙잡을 터이니, 경들은 오늘부터 도아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철저히 바다를 지키도록 하라.”

그렇게 해서, 황제문어의 많은 배들이 도아에게 따라 붙기 위해 계속 덤벼들었으니, 아무리 배를 움직이는 것에 밝은 도아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모두 뿌리치고 도망쳐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임관으로 돌아 가거나, 사람이 많은 금관경(金官京) 같은 큰 성(지금의 김해 지역을 말함)으로 들어 가면, 아무리 천적계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덤벼들지 못할 것인데, 황제문어도 그것을 알고 있어서 도무지 육지로 가까이 갈 틈을 내어 주지 않고 따라 붙는구나.”

그러던 가운데 몇 차례의 어려운 일을 거쳐 도아의 신미남선은 남해를 지나 동해로 접어 들게 되었고, 동해에서 어떻게든 임관으로 들어 가려 했으나 해적들을 피하는 가운데 결국 기회를 놓치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흘러 가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북쪽으로 나아가 도아의 무리들은 모래가 곱게 펼쳐진 한 외딴 바닷가 마을에 접어 들어 서야 간신히 육지에 배를 댈 수가 있게 되었다.

“물이 부족하니, 우선 물과 양식부터 빨리 구해 싣도록 하라.”

도아의 지시에 따라 육대미남과 맥희, 아슬생과 가오리, 미남적등은 급히 움직였다. 그런데 그곳 마을 사람들은 겁이 많고 낯선 사람을 두려워 하는 것이 심하여 도아의 무리에게 양식을 팔거나 도와 주기를 꺼렸다.

한 마을 사람이 말하기로,

“요즘 세상이 어지러우니 삼국통일 전에 나타났다던 불귀신이 바닷가 마을마다 돌아 다니며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있을 지경 입니다. 어찌 밤길에 나타난 낯선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인심이 이러할 수 밖에 없는 시절이니 나그네께서는 너그러이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고 문을 닫았다. 그러므로, 다만 미남적이 직접 마을의 아녀자들에게 부탁을 하여 우물이 있는 곳과 냇물이 흐르는 곳을 알아 내어 물을 얻을 수 있었을 뿐이다.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은 우선 물이라도 열심히 길어서 배에 실으려 했다. 그런데 그 물을 얼마 싣지도 못했을 때 다시 황제문어와 해적들이 나타났다.

도아는 다시 배를 띄워 도망쳐야 했다.

“안타깝구나. 옛날 내가 만든 미남선이 그대로 있었다면, 한참을 더 시간을 보내도 저 배들에게 따라잡힐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인데.”

신미남선은 긴박히 움직였다. 그런데도 가까이서 다가 오는 해적의 배에 거의 붙잡힐 뻔 하다가 겨우 피할 수가 있었다.

이때, 멀리 떨어진 한 해적의 배 한 곳에서 옆에 있는 다른 배로 화살 한 대를 쏘는 것이 보였다. 그러더니 그 배에 있던 해적은 그 화살을 집어 다가 다시 옆에 있는 또 다른 배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그러면 화살이 날아든 배의 해적은 그 화살을 집어 다가 다시 또 다른 해적의 배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이것을 반복하여, 마침내 도망치던 신미남선에도 화살이 날아 들었다.

날아 든 화살을 집어 들어 보니, 그곳에는 편지가 하나 묶여 있었다.

“역적들은 황제의 칙령을 받으라.”

편지의 겉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고 가오리가 비웃었다.

“황제문어가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로구나.”

편지의 내용을 펼쳐 보자, 그 내용은 이러했다.

“너희들은 짐의 명을 거스르고 도망치고 있으며 짐에게 바쳐야할 보물을 너희 것처럼 숨기고 있다. 그 죄는 너무나 심한 것이니, 죄가 너희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돕고 너희가 머무는 곳 또한 죄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내일까지 짐에게 스스로 나타나지 않으면, 짐은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모조리 다 죽이도록 하겠다. 또한 이 곳은 외딴 작은 마을이니 길목을 모두 짐의 충신들이 지키고 있을 것이고, 바다로 빠져 나가는 길 또한 모두 짐의 충복들이 지키고 있을 것이라서, 도망칠 수도 없을 것이다. 이 마을 사람들이 살아 나는 길은 너희들이 짐 앞에 직접 나타나 응당 받아야 할 벌을 받는 것 뿐이다. 그리고 만약 스스로 나타나 보물을 바치고 죄를 빈다면 짐 또한 넓은 은혜를 베풀어 너희들 중 절반은 살려 주도록 하리라.”

그것을 보고 아슬생이 말했다.

“아무 죄도 없는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해치겠다니 황제문어도 너무 하지 않은가?”

도아는 근심에 빠진 듯이 보였다. 그러자 맥희가 도아에게 말했다.

“황제문어가 허풍을 치는 것입니다. 이곳은 바닷가의 작은 마을일 뿐입니다. 해적들이 마을 사람들의 재물을 모조리 다 빼앗는다고 해도 얼마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를 붙잡지 못한다면 황제문어가 쓸데 없이 힘을 들여 원한도 없는 마을 사람들을 해칠 이유가 없습니다. 아직 해적들의 배가 우리를 꼼꼼히 둘러치기 전이니 우리가 재빨리 움직여 다시 한번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도망친다면 황제문어는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기 보다는 우리를 좇아 올 것입니다. 한번 얼굴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이 마을 사람들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약해지셔서는 안 됩니다. 선주님의 귀한 몸을 아껴 여기서 나가고자 하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도아는 미남적을 쳐다 보았다. 미남적이 도아에게 말했다.

“그 말씀이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황제문어는 천 명의 도적떼를 모으고도 변변한 큰 일을 이루지 못했으니 지금 분한 마음에 갑자기 무슨 일을 저지를 지는 모릅니다.”

미남적은 잠깐 마음을 멈추며 도아를 쳐다 보았다. 도아는 자신의 가만히 바라 보는 미남적의 얼굴을 한없이 쳐다 보았다. 미남적이 계속 이야기했다.

“다만 선주님께서는 저희들을 도적떼로부터 살리기 위해 애를 많이 쓰셨고 또한 막대한 빚까지 지셨으니, 이제 선주님께서는 떠나시기 바랍니다. 적당히 보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으면 제가 홀로 그것을 들고 황제문어를 찾아 가 보겠습니다. 제가 별 재주는 없으나, 그래도 이름은 알려진 해적이지 않습니까? 제가 찾아 가면 황제문어가 만나 주기는 할 것이고, 마을 사람들의 목숨은 해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하면 그 정도는 들어 줄 것입니다.”

근심하고 한탄하는 대화가 또 이어졌으나 좋은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한참 이야기가 이어지고 나서야, 도아는 결국 이렇게 그 이야기를 끝냈다.

“황제문어 때문에 내가 미남선을 잃었으니, 그러한 황제문어는 나의 원수이며, 그런 원수에게 값도 받지 않고 또 굴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뜻이다. 곧 나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여기 있는 누구를 내 대신 황제문어에게 보내지도 않겠다.”

도아는 맥희와 아슬생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무예가 가장 뛰어난 사람은 그대들 둘이다. 그대들은 지금 같이 육지로 내려 가서는 어떻게든 길을 뚫고 나아가 할 수 있는 한 빨리 병졸이든 뱃사람이든 도와 줄 무리를 찾아 보라. 저 해적들 중에 무예가 뛰어난 자가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너희들 둘이 힘을 합치면 길을 뚫고 나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을 만났을 때 임관의 갑부 도아가 집안 뒤뜰 땅 밑에 묻어 둔 금덩이를 모두 값으로 쳐서 갚아주겠다고 이야기하면 나서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느냐?”

그 후 도아는 반대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곱 미남과 삼각산 가오리는 나와 함께 어떻게든 시간을 끌면서 도와줄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 황제문어를 버텨 보도록 하자.”

도아는 말을 마쳤는데, 가오리가 계속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도아가 가오리에게 물었다.

“가오리는 할 말이 있느냐?”

가오리는 잠시 딴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기왕에 말씀을 하실 것, 그냥 다 같이 여덟 미남이라고 불러주면 안 되는 겁니까? 육대미남과 미남적을 묶어 일곱 미남이라고 하셨으면서, 굳이 나는 따로 일곱 미남과 삼각산 가오리라고 나누어 부르십니까?”

곧 맥희와 도아가 바닷물 속에 뛰어 들어 길을 떠났는데, 맥희는 도아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고 하여 가지 않으려는 것을 몇 번이고 말을 달리하여 설득해야 했다. 또한 가오리 역시 아슬생에게 “자네는 너무 순박한 것이 탈이니 살아 남기 위해 내 말 몇 가지를 잘 듣게”라고 하면서 몇 가지 당부를 해 주었다.

맥희와 아슬생이 떠나 가자, 도아는 신미남선을 제자리에서 빙빙 돌게 하였다. 시간이 흐르자 점차 주위에 해적의 배들이 모여들며 가까이 오는 것이 보였다. 얼마지나지 않아 하나 둘 해적의 배가 신미남선에 부딛혀 닿아 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마침내 신미남선 주위로 크고 작은 배들이 겹겹히 몰려 들어 배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 같은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배 마다 창칼을 든 해적들이 수북수북 서 있으니, 그 형상이 마치 작은 섬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로 빛나는 철 투구를 쓴 황제문어가 나타났다.

“이제야 역적들이 짐 앞에 무릎을 꿇는구나.”

황제문어는 통쾌하게 웃으며 기뻐하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도 황제문어 앞에서 함부로 시끄럽게 구는 사람이 없었다. 황제문어의 그 웃는 소리만 바다 한 가운데에서 한참을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많은 해적들의 창칼이 불빛에 반짝이는 모양을 보고 육대미남 중 하나가 말했다.

“해적들의 무기는 저렇게 날카롭게 벼려져 우뚝하니 서 있는데, 우리 손에는 급하게 갈아 놓은 칼자루 하나 둘 뿐라서 싸우려고 해도 무기다운 무기조차 없구나.”

그 말을 듣고 도아가 말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남적의 이 얼굴이 있지 않은가?”

도아가 손짓을 하니, 가오리는 등불을 미남적의 얼굴 쪽으로 비추었다. 곧이어 미남적은 뱃전의 높은 곳으로 올라 가서는 신미남선을 둘러 싼 천 명의 해적들이 모두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섰다.

“황제문어 폐하께서는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미남적은 도아와 함께 셋이서 미리 상의 해 두었던 대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미남적이 빛 속에서 처음 한 마디 말을 했을 때, 해적들은 일제히 그곳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 보았다. 천 명의 남녀 해적들 사이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진짜 잘생겼다” “정말 미남이다” 같은 말을 하는 자들이 있었다.

미남적은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비록 폐하에 비해서는 재주가 모자라긴 하나, 저 또한 바다에서는 그래도 조금은 별명이 알려진 해적입니다. 바다 위를 떠 다니며 파도가 튄 짭짤한 밥을 먹는 해적들 중에 제가 부르는 서글픈 노래와 제가 도적질을 하기 위해 집 앞을 찾아 가는 수법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해적들 가운데 “그렇지” “그렇긴 하지” 하는 소리가 나왔다. 미남적은 계속 이야기했다.

“그런데 제가 이미 홀로 나타나 훔쳐서 가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신미남선의 보물입니다. 어찌 하여 고귀하신 폐하께서 천 명의 해적들을 이끌고 와서 제가 훔친 신미남선의 보물을 다시 빼앗아 가려고 하십니까? 문어발창을 휘두르시면 바다 위에서 적수가 없다고 하는 폐하의 위엄이 고작 떼거리를 많이 모아 한 사람의 해적을 겁주는 것입니까? 그런 것은 아닐 줄로 압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을 어찌 의리 있는 해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황제문어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황제문어가 외쳤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의로운 것을 찾는 사람이 왜 해적이 되며, 이치에 맞는 것을 찾는 사람이 어떻게 해적질을 하느냐? 해적질로 보물을 차지하는데 무슨 의리를 따지느냐?”

그러나 여기에 대답할 말은 이미 도아가 생각하여 미남적에게 일러 주었다. 미남적이 다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해적들은 여느 도적들과는 다르니, 본시 배를 움직이려면 한 사람은 노를 젓고 한 사람은 돛을 움직여야 하고, 한 사람은 방향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서로 믿고 힘을 합하지 않으면 해적질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창칼을 휘두르며 화살 속에서 싸울 때에, 누가 대신 칼질을 하며 적에게 뛰어 들고, 누가 대신 화살을 막아 줄 지를 믿지 못하면 어떻게 배를 젓고 닻을 올리며 움직이겠습니까? 그러니, 해적들은 해적들 사이에서 믿고 따를 수 있는 의리가 있어야만 힘을 합쳐 같이 배를 움직이면서 해적질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남적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와 같이 이야기 했다. 이야기를 하는 미남적은 이야기를 듣는 해적 몇몇을 돌아 가면서 쳐다 보며 눈을 맞추어 바라 보았다. 그러는 중에 그의 이야기에 혹하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미남적은 다시 황제문어를 바라 보았다.

“폐하, 그러므로 폐하는 의리 있게 싸우시려거든 저희들이 마지막으로 당당하게 폐하와 맞서 싸우게 해 주십시오. 만약 천 명의 해적으로 저희를 애워싸고도 폐하께서 홀 몸으로 저희들 중 가장 솜씨가 뛰어난 사람과 싸워 이기신다면, 저희는 온 바다에 이름이 높으신 폐하의 힘에 감격하여 모든 보물과 저희들의 목숨까지 바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폐하의 위엄을 더욱 높일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미남적은 다시 해적 무리들을 빙 둘러 보았다. 그리고 미남적은 해적들 중에 자신에게 반한 것 같은 사람들을 특별히 찬찬히 들여다 보며 더욱 간곡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저는 도망친 노비의 몸으로 먹고 살 길이 막막해 바다에서 다 죽게 되었는데, 어느 해적 한 사람을 만나 해적질로 먹고 살 길을 찾게 된 사람입니다. 그런 것이 바로 해적들의 의리입니다. 저는 이미 더 이상 오래 사는 일에 미련이 없거니와, 다만 마지막으로 해적으로 바라는 것이 딱 한 가지가 있으니, 의리 있는 가장 용맹하고 훌륭한 해적과 싸우다가 해적답게 삶을 끝낼 수 있게 해 주지 않겠습니까?”

미남적이 말을 마치자, 해적들 중에는 이미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황제라면 황제다운 모습을 보여 줘야지.”
“싸우는 게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하나둘 들려 오는데, 이때 마침 가오리가 해적들을 살펴 보다 보니 그 가운데에 얼굴을 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가 바로 탐라국에서 만났던 양랑이었다.

양랑은 미남적의 말을 듣고 감동하여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가오리는 양랑에게 돌조각을 던져 쳐다 보게 한 뒤에, 눈짓과 손짓으로 자신들을 도와 달라고 뜻을 전했다.

“싸워라!” “싸워라!”

양랑이 먼저 소리를 높여 그렇게 말하며 바람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해적들이 다 싸우라고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황제문어는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맞서 싸울 상대를 한번 훑어 보았다. 그런데 도아의 무리들은 일부러 가오리가 칼을 잡고 있는 모습을 흉내내어 따라하고 있었다. 황제문어가 보기에 도아의 무리가 칼을 든 모습이 싸움을 조금도 할 줄 모르는 한심한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문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가 한 말은 짐이 조금도 맞다고 여기지 않으나, 여기 여러 해적들이 그 동안 고생한 것이 많았으니 짐이 훌륭한 솜씨를 보여 주어 잠시 즐겁게 흥을 돋우어 보겠노라. 그러므로 짐이 제법 볼만한 구경거리를 보여 주기 위해, 짐은 창을 잡지도 않고 맨손으로 너희들을 모두 차례로 이겨 보겠노라.”

그리고 자신의 배로 한 명씩 도아의 무리들을 불러 내어 맞서 싸우자고 하였다.

“그렇다면, 모두 똑똑히 폐하의 무예를 볼 수 있도록 밝게 등불을 내걸고 불을 높이 피우도록 합시다.”

가오리는 그렇게 말하고, 배 주변에 등을 여럿 내걸고 또한 높이 나무를 쌓아 환하고 높은 불꽃이 타오르게 하고 연기가 많이 피어오르도록 했다.

싸움이 시작되자, 맨 먼저 육대미남이 한 명씩 차례로 나아가 황제문어에게 덤비기 시작했다.

육대미남은 긴 칼을 휘두르며 황제문어의 목을 베어 내려 했다. 황제문어는 육대미남의 솜씨가 제법 뛰어난 것을 알고, 일부러 싸움을 잘 할 줄 모르는 척 속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싸움을 구경하는 다른 해적들에게 구구한 말을 늘어 놓고 싶지가 않았으므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계속 싸워 나갔다.

맨 손으로만 싸우는 황제문어에게 칼을 든 육대미남이 덤벼 드니, 황제문어는 말한 것처럼 단숨에 육대미남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휘두르는 칼의 옆면을 손으로 쳐 내고 틈이 보일 때 마다 발길질로 육대미남을 공격하자 육대미남은 당해낼 수가 없을 정도로 황제문어의 실력은 무척 뛰어 났다. 그러므로 싸움은 오래 계속 되었다. 마침내 황제문어가 육대미남이 칼을 놓치게 하고 그 목을 조를 수 있게 되었을 때, 육대미남은 졌노라고 고개를 숙이며 엎드렸다.

“얼마든지 더 덤벼 보거라.”

황제문어는 가쁜 숨을 골랐다.

미남적이 대답했다.

“의리가 없으면 해적이 아닙니다. 재주를 겨루어 보자고 해놓고 어찌 폐하께서 지쳐서 힘이 빠지실 때에 덤비겠습니까. 폐하는 혼자이시고 저희는 여럿이니, 폐하께서는 좀 더 쉬어 힘을 완전히 되찾으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싸우는 것이야 말로 의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황제문어는 쉴 기회가 생겨 반가웠으나 역시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쉬고 싸우기를 반복하니 칼을 든 육대미남 여섯 명이 모두 차례로 황제문어에게 패했다.

“이제 누가 또 덤비겠느냐?”

하는 수 없이 그 다음으로는 삼각산 가오리가 황제문어에게 칼을 들고 덤볐다.

삼각산 가오리는 갖은 비겁한 술수를 사용했으나, 황제문어와 맞서 싸우기에는 턱 없이 재주가 모자랐다. 가오리는 온 몸의 뼈 곳곳이 부러지고 입으로 피를 줄줄 흘리게 되었다. 황제문어가 가오리에게 말했다.

“짐이 너에게 원효대사 해골물을 속아서 산 생각을 하면 아직도 속이 뒤집어 지노라. 급한 일이 끝나면 너의 해골을 머리에서 파 내서 거기에 고인 물을 너의 입에 직접 먹여 주겠노라.”

가오리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지금 쯤이면 맥희와 아슬생이 누군가를 도와 줄 사람들과 함께 돌아 올 만한 때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실은 맥희와 아슬생은 해적들이 길을 막고 있는 곳을 뚫고 나가는 동안 철성게와 싸우느라 시간을 지체하여 아직은 때를 마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어 이제 싸울 사람이 없었으므로 도아가 직접 칼을 손에 쥐고 황제문어 앞에 섰다.

“나 또한 바다에서 험한 일을 당하기로는 누구 못지 않게 겪은 것이 많다. 비록 칼 휘두르는 재주야 익히지 못했지만, 죽고 사는 일로 다투는 것이라면 나도 무엇이든 한 번 해 볼만한 사람 아니겠느냐?”

그렇게 말은 했으나 도아는 짐짓 마음 속으로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칼을 쥐고 있는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미남적이 도아의 앞을 막아 섰다.

“선주님께서는 우리 배의 주인이니 마지막까지 물러서 계십시오. 그래도 제가 해적인데, 어찌 한번 싸워 보지 않겠습니까?”

미남적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이 도아 보다 먼저 황제문어와 싸우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칼을 쥐고 황제문어 앞에 섰으니, 일렁거리는 불빛 속에서 싱긋이 웃는 미남적의 모습을 해적 천 명이 모두 한 마음으로 바라 보았다.

해적들은 저마다 미남적이 곧 황제문어에게 죽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아, 미남적이 칼을 든 모습은 가오리보다도 더 못하고, 도아 보다도 더 못해 보이는구나.”

양랑은 미남적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곧 황제문어는 미남적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미남적은 그것을 피하면서 이리저리 칼을 휘둘러 보았다. 하지만 황제문어에게 날이 가까이 닿는 때조차 없었다. 황제문어는 해적들이 싸움 구경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더 멋지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서 일부러 미남적을 놀리듯이 장난을 치며 미남적의 칼을 피했다.

“너는 정말로 검법을 모르는구나. 그냥 산골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 솜씨인데, 무엇 때문에 해적질을 하겠다고 하느냐?”

황제문어가 그렇게 비웃자, 미남적은 대답 하기를,

“그러게나 말이다.”

라고 하는데, 이때 눈에 살짝 눈물이 글썽였다. 그것을 보고 해적들 사이에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저절로 탄식하는 소리가 나왔다.

황제문어가 미남적을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하자, 미남적은 얻어 맞는 수 밖에 없었다. 한 대, 한 대 씩을 얻어 맞을 때 마다 구경하는 사람들로부터 짧게 소리지르는 소리가 나왔다. 어떤 해적은 맞고 있는 미남적이 너무나 불쌍하여 두 눈에서 눈물을 끝없이 흘렸고 우는 소리를 참기 위해 입을 틀어 막은 채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여러 대를 두들겨 맞아 미남적이 점차 죽어가게 될 지경이 되었는데, 이때 바다 저쪽에서 벼락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무엇인가 환한 것이 밝아 왔다.

“불귀신이 밝혀 놓은 불빛과 연기를 보고 이곳을 찾아 왔구나.”

그 빛을 보고 삼각산 가오리가 기뻐하였다. 곧 짐승이 으르렁대는 것처럼 사람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미남적은 내 배를 타고 돌아갈 것이니, 미남적에 손을 대면 내가 다 태워 죽이겠다!”

돛을 높이 올린 빠른 배를 타고 나타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불상어였다. 불상어는 황제문어를 향해 불화살을 날리고 불을 붙인 기름병을 내던지며 배들이 모여든 가운데로 쳐들어 갔다.

불이 계속 피어 오르는 것을 보며 가오리는 낄낄거리며 기뻐했다.

“불귀신 소문이 도는 것을 듣고 내가 저 사람이 가까이 있을 줄 알았다. “

많은 해적들의 배가 한 가운데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러므로 불길이 치솟는 것은 더욱 요란하였는데, 해적들이 서로 먼저 살겠다고 자기 배를 혼란스럽게 움직이자 그 많은 배들이 부딛혀서 나자빠지고 굴러 떨어지는 사람들은 더욱 더 많아졌다.

그것을 보고 황제문어가 소리 지르기를,

“도아의 배를 도망치게 하지 말라. 미남선을 잡아라.”

라고 하면서, 도망치려는 해적들을 자기 손으로 벌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되자, 황제문어에게 죽기 싫은 해적들이 이번에는 황제문어와 맞서 싸우기 시작했고, 그것을 보고 반대로 황제문어를 도우려는 해적들은 다시 그 해적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니 누가 누구와 싸우는 지도 알 수 없는 모양이 되어 온통 꽥꽥거리는 소리가 귀를 울려 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양랑이 해적들 가운데에서 외쳤다.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의 침을 황제문어는 혼자서 차지하기 위해 우리가 죽는 살든 따지지 않소. 의리 없는 황제문어를 물리쳐야 하지 않겠소?”

양랑이 하는 이야기에 옆에 있던 바람고기까지 합세 하니, 여러 해적들이 황제문어와 맞서 싸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해적들 한 가운데로 쳐들어 온 불상어는 오래간만에 불길 가운데에서 미남적을 다시 만났다. 미남적이 불상어를 쳐다 보니, 불상어는 지난 번 싸움 때 불에 데인 곳이 많아 손과 몸 곳곳에 화상자국이 여럿 있었다.

“내가 도망쳐 갈 곳이 없을 때, 당신이 나에게 살 길을 알려 주어 해적이 될 수가 있었는데, 오늘 내가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을 때 당신이 나타나 나를 다시 살려 주었소. 내가 당신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오?”

미남적이 묻자, 불상어가 대답했다.

“나와 함께 같이 여기서 나가면 되는 것이오. 나 또한 당신 때문에 살고 있지 않겠소?”

그렇게 말하면서 불상어는 웃었으며, 웃으면서 좌우로 불덩어리를 던져 주위의 배들에 불을 더 붙였다.

그러나 얼마 후 황제문어가 다시 문어발창을 들고 싸우기 시작하자, 해적들은 곧 황제문어의 기세에 눌렸다.

몇몇 해적들이 끝까지 황제문어와 싸우려고 했지만, 황제문어와 그를 따르는 해적들에게 밀리는 모양이 역력했다. 그런 가운데, 신미남선은 어떻게든 불바다를 빠져 나가려고 애쓰고 있었고, 그 뒤를 좇거나 그 앞길을 막으려고 하는 배들이 밀려 들어 오면서 또한 화살이 바다 위를 뒤덮었다.

“짐의 명을 거역하는 자가 어디에 있느냐. 천적계의 이 많은 해적들이 모두 모여 황제의 뒤를 따르고 있는데, 고작 저 따위 미남미녀들의 놀이 배 하나 따위를 붙잡지 못한단 말이냐?”

점점 더 불길이 치솟고 있는데, 황제문어와 그 해적들은 피가 흐르는 날붙이를 들고 다시 신미남선으로 짓쳐들어 오려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불상어가 미남적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 배를 타고 도망치시오. 나는 다른 배에 불을 붙여 저 가운데로 뛰어 들어서 저것들을 모두 다 불살라 버리겠소.”

그 말에 미남적이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은 나와 같이 돌아 가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나 지금 적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소. 비록 적들의 숫자가 많다고는 하나 저들도 지금은 피곤한 처지니, 내가 황제문어의 앞으로 뛰어 들면 반드시 한동안은 주춤할 수 밖에 없을 것이오.”

불상어는 미남적의 얼굴을 귀에 입을 가까이 하고 분명하게 들리도록 이어서 말하였다.

“그러니, 모아 놓은 재물로 당신은 노비의 몸값을 치르고 노비 신세에서 벗어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 가시오. 지금껏 당신은 재물을 모을 때 마다 당신보다 더 불쌍한 처지의 어린 아이들부터 먼저 빚을 갚아 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노비 몸값을 먼저 치르도록 그 재물을 다 써버렸지 않소? 우리가 지내던 섬으로 돌아 가면, 내가 모아둔 재물이 아직 조금 남아 있소. 내가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하는 부탁이니, 당신은 이제 마지막으로 당신의 노비 몸값을 치르고, 여기에서 떠나 가서 당신이 그렇게 매일 같이 돌아가고 싶어 하던 곳으로 돌아 가도록 하시오.”

그렇게 말하고 불상어는 신미남선에서 뛰어 내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미남적이 붙잡았다.

“당신에게 은혜 갚을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이렇게 도망치게 할 수는 없소.”

두 사람은 어떻게 해야 좋을 줄을 몰라 그저 붙잡고 울고 있고, 그러는 사이에 황제문어의 배들이 점차 가까이 왔다.

그러던 중 갑자기 멀리서 이상한 북소리가 울리는 것이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해적들이 저마다 이상하게 생각 했으나, 그 북소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북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북소리는 점차 가까이 오는 듯 하더니, 어디에서 쑥 튀어나오는 것처럼 갑자기 아주 빠른 배 여러척이 신미남선을 거슬러서 나타나 해적들 쪽으로 덥쳐 왔다.

해적들이 새로 나타난 배들을 보니, 그 배에는 창칼과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타고 있었으며, 배에 높이 걸어 두고 펄럭이는 깃발에는 커다란 글씨로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라고 씌여 있었다. 다른 소리도 없이 다만 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엄히 열을 맞춘 배들이 하나 둘 나타나는 모습이 마치, 바다 안개 속에서 커다란 거인 귀신이 걸어 나오는 것 같았다.

“청해진대사라고 하는 것은 옛날 장보고가 사용하던 깃발 아닌가?”
“장보고다! 장보고가 나타났다!”

어느 해적 하나가 부들부들 떨면서 그렇게 말했다. 누구 하나가 처음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자 삽시간에 모든 해적들은 그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질러댔다. 바람고기는 갑자기 나타난 배를 알아 보았다.

“저 배는 과연 신라 관군의 배가 분명하다. 요즘 신라의 조정은 바다에서 해적 다스리는 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는데, 신라 관군의 배가 해적을 잡으러 나타났다면 이것은 정말로 그 옛날 장보고가 하던 일이지 않는가?”

나중에 사실을 알고 보니, 장보고의 배로 꾸민 배는 바로 명주의 김영진이 거느리고 있는 군사들이었다. 맥희와 아슬생이 김영진을 찾아가 도아를 구해 주기를 부탁한 것이다.

맥희와 아슬생이 마을을 빠져 나왔을 때, 두 사람은 그곳이 김영진이 차지 하고 있는 성에서 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슬생은 자신이 받들어 모시고 있는 김영진을 찾아 가서, 해적들을 물리치고 마을 사람들을 살려 달라고 부탁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 만나 부탁했을 때, 김영진은 그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도아라는 자는 미남을 찾는다 어쩐다 하면서 귀한 사람을 몰라 보고 내가 망신을 당하게 했던 사람 아닌가? 내가 그런 자를 왜 도와 주어야 하는가?”

그리고 맥희와 아슬생은 그냥 쫓겨날 뻔 하였다. 그런데 그때 맥희가 탄식하기로,

“이럴 때 그대의 벗인 삼각산 가오리가 있었더라면 무슨 꾀를 내지 않았겠소.”

라고 하자, 아슬생은 답하기로,

“그대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내가 온 힘을 다해 삼각산 가오리 흉내를 내어 보겠습니다.”

라고 하고는 다시 김영진을 찾아 갔다.

“군왕(郡王) 전하(殿下), 과연 세상에 미남이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잘생긴 천하의 미남이라 하더라도 백 보만 떨어져서 보면 얼마나 잘 생겼는지 알 수가 없는 법입니다. 이 넓디 넓은 세상에서 백 보라 하는 것은 얼마나 작은 거리입니까? 그러므로 얼굴이 잘 생긴 미남이란 고작 그런 작은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어지러운 시국에 세상에 영웅이라 하는 인물로서 백성을 구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 해적들을 깨드린다면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질 것이며 세상 사람들 모두 그 일이 아름답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온 천하에서 그것을 칭송하여 그 영웅의 일을 저마다 아름답다 하여, 천리 바깥의 작은 섬과 만리 바깥의 깊은 산 속 작은 마을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알아 볼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그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의 미남이 아니겠습니까?”

아슬생이 그렇게 말하자, 김영진은 과연 그것이 그럴싸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신라 군사들을 이끌고 신미남선을 구하러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때 맥희가 꾀를 내어 “청해진대사”라는 장보고의 깃발을 급히 써서 내 걸기로 했다고 한다.

장보고가 바다에 나타났다는 말에 해적들은 모두 일제히 배를 돌려 급히 도망가려고 하였다. 그 꼴을 보고 황제문어가 소리쳤다.

“40년 전에 죽은 장보고가 어떻게 여기에 다시 나타난단 말이냐?”

그러자 누군가 소리쳤다.

“도아가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이 흘린 침으로 죽은 장보고를 되살렸다!”
“죽은 장보고가 저승에서 해적들을 죽이겠다고 다시 살아 돌아 왔다!”
“장보고가 염라대왕을 죽이고 살아서 돌아 왔다!”

황제문어는 도망치는 해적들을 말리기 위해 문어발창을 꺼내 들고 죽이겠다고 겁을 주며 배를 돌리라고 했다. 그러자 한 해적이 악을 썼다.

“배를 가지려면 가지시오. 나는 바닷물에 뛰어 들어 헤엄쳐서라도 도망치겠소. 아무리 천 명의 해적이 모여 있다고 한들 어찌 장보고를 당하겠소? 장보고의 손에 직접 머리통이 잘린 해적이 족히 1만명은 될텐데 지금 장보고와 싸우다가 죽어 1만 한 번째 죽은 머리통이 되고 싶거든, 혼자서 그렇게 하시오.”

그렇게 해서 해적들은 모두 흩어지고, 천적계는 깨어지게 되었으며, 황제문어는 완전히 망하고, 신미남선의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김영진은 이때 자신이 해적들을 물리친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래서 자신과 여러 사람들이 해적들과 엉켜 싸우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 이 그림을 사람들은 “십육미남병풍(十六美屛風)”이라고 불렀다. 이 그림의 내용을 나중에도 다시 그린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처음 그림에서는 김영진을 가장 멋지게 그렸다고 하지만, 나중으로 갈 수록 사람들은 미남적과 불상어를 멋지게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김영진은 깨달은 바가 있어 계속해서 백성들을 위해 도적 떼들을 물리치는 일에 애를 썼다. 때문에 그 이름은 나날이 높아졌고 사람들은 영웅호걸로 그를 칭송하였다. 그 아들인 김식희(金式希)는 아버지를 본 받아 그 이름을 더욱 높이고자 힘을 기울였으니, 나중에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나라를 세울 때에 큰 공을 세워 그 작위가 개국부의삼사사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태사(開國府儀三事司 三韓壁上功臣 三重大匡太師)에 올랐으며, 고려 태조가 항상 그 모습을 잊지 않아야 할 공신이라 하여 그림을 그려 두어 남긴 영웅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임관으로 돌아 가는 길에 들어선 도아는 미남적이 재물을 모을 때 마다 다른 노비들의 몸값을 대신 치러 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자 도아는 자신의 모든 재물을 다 털어 미남적이 아는 그 모든 노비들이 다 그 값을 치르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도아는 미남적 스스로도 노비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값을 치러 주기로 했다.

그런데 미남적은 그런데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려 했다. 오히려 몰래, 자신의 얼굴에 칼로 큰 상처를 내려고 했다. 불상어는 그것을 알아 내어 화급히 말렸다. 그리고 왜 그런 짓을 하려고 했는 지 물었더니, 미남적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노비 신세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해적이라는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오. 내 얼굴은 너무나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 이제 고향에 돌아간다고 해도 알아 보는 사람들 마다 해적이라고 말하며 죄인이라고 할 것이 아니오? 그것을 피하자면 이 얼굴을 못 알아 보게 하는 수 밖에 없소.”

그 이야기를 듣고 도아는 기겁을 했다.

“그 얼굴에 어떻게 흠집을 낼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런 짓은 내가 듣던 중 가장 악한 일로, 그런 마음을 품는 것만으로도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리고 도아는 삼각산 가오리를 불러, 어떻게든 미남적의 죄를 씻을 수 있도록 일을 꾸며 보라고 말했다.

가오리는 우선 미남적에게 죽은 척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아슬생에게 부탁하여 미남적을 데리고 김영진을 찾아 가도록 했다.

김영진에게 가오리는 자신이 데려온 것이 미남적의 시체라고 하면서, 판결을 내려 달라고 말했다.

이에 김영진이 말했다.

“해적질, 칼싸움, 방화의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금 이미 죄인은 죽어 있으므로, 어찌 더 가할 형벌이 있겠는가? 더 내릴 형벌은 없는 것으로 한다. 비록 이번 생에서는 죄를 지은 악한 인간으로 살다가 떠나갔지만, 부디 다음 생에서는 착한 사람으로 태어나 자비를 베풀며 살기를 바라느니라.”

가오리는 김영진의 판결을 문서로 받아 두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미남적을 관짝에 넣은 채 장례행렬처럼 꾸미고는 도아, 맥희, 육대미남들과 함께 가오리는 서라벌 도성으로 들어 갔다.

가오리는 먼저 온갖 이국의 이상한 복장을 구해 사람들에게 입혔다. 그렇게 해서 이상하고 신기한 것을 보여 주는 먼 바다에서 온 장사꾼들인 것처럼 꾸몄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미남을 임금에게 보여 주겠다고 말하면서 궁전으로 들어가 옥좌 앞으로 가겠다고 했다.

마침, 이 해는 진성여왕(眞聖女王) 김만(金曼)이 등극하여 옥좌를 차지한 해였다. 진성여왕은 진귀한 볼거리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그 청을 허락하였다. 그렇게 해서 가오리와 그 무리는 죽은 척 하고 있는 미남적을 관짝에 담아 궁궐로 들어 갔다.

“여기에 있는 것이 바로 미남적이라고 하는 인물입니다.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동해에서 해적 천 명과 맞서서 천 대 일로 싸우다가 지금 이렇게 죽어 있게 되었습니다.”

가오리는 그렇게 말하고 관뚜껑을 열어 죽은 척을 하고 있는 미남적을 진성여왕에게 보여 주었다.

진성여왕은 그것을 보고 감탄하였다.

“과연 이만하면 천하제일의 미남이라고 할만하구나. 내가 궁궐 안에서 세상의 온갖 아름답고 좋은 것을 다 본 줄 알았건만, 이 얼굴에 비하면 밋밋한 것들이 대부분이구나. 만일 살아 있는 얼굴을 보았다면 얼마나 더 좋았겠느냐?”

진성여왕은 그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그 말을 듣고, 가오리는 몸을 다시 바닥에 닿게 하여 예의를 표했다. 그리고 진성여왕에게 다시 말했다.

“세상의 진기한 요술 중에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산삼, 영지, 흰 사슴의 뿔에, 서해, 남해, 동해를 다스리는 용왕의 침을 섞여 먹이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산삼, 영지와 흰 사슴의 뿔은 구하여 이미 먹였으나, 서해, 남해, 동해를 다스리는 용왕의 침을 구해 오려 했으나, 해적들을 만나 싸우는 통에 그것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진성여왕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타까운 일이구나.”

가오리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성상(聖上)의 용안(龍顔)을 뵙고 보니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이 나라를 다스리는 분이 누구입니까? 이 나라의 서해, 남해, 동해를 혼자서 다스리는 분은 다름 아닌 성상이시지 않습니까? 그런 즉, 고귀하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후예이신 성상께서 침 한 방울만 주신다면, 여기 이 미남은 되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성여왕은 그 말을 듣고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 말이 우습구나. 그렇다면 내가 어명을 내리니, 여기 죽어 있는 미남은 이제 다시 일어나 즐겁게 살도록 하라.”

그리고 진성여왕은 관 속의 미남적에게 입을 맞추어 주었다.

“미남적은 이제 다시 살아나도록 하라. 어명이오.”

가오리가 그렇게 말하자, 미남은 죽은 척 하는 것을 멈추고 짐짓 다시 되살아난 척을 하였다. 그리고 몇 차례 “성은이 망극합니다”라고 말했다.

가오리와 미남적이 물러나는 길에 진성여왕은 좋은 것을 구경시켜 주었다고 하여 금은을 상으로 내렸다. 그리고 임금이 직접 죽은 사람을 되살린 일이라고 하여 그것을 좋은 비단에 문서로 써서 증명해 주도록 했다.

마침내 미남적은 불상어와도 눈물과 함께 이별을 했으며, 두류산(頭流山)에 있는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고향에 온 미남적은 그 긴 세월 동안에도 언제나 잊지 못하던 옛 정을 주었던 사람을 다시 만났다. 그때 두 사람이 부둥켜 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같이 기쁘게 되어 이틀 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도아와 맥희는 그곳까지 미남적을 바래다 주었는데, 미남적과 헤어져 다시 임관으로 돌아가게 되자, 맥희가 도아에게 물었다.

“선주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겪으며 그 동안 모아 두었던 모든 재산을 다 써 없애시고, 죽을 고비도 몇 차례나 넘기셨습니다. 마음이 아프지 않으십니까? 이 모든 일을 도대체 왜 벌이신 것입니까?”

그러자 도아는 이렇게 대답했으니, 이후로 세상의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래오래 이야기 거리로 삼았다고 한다.

“저기에 저 미남이 저렇게 기뻐하며 웃고 있지 않느냐? 이런 것을 구경하기 위해 치르는 값으로는 아깝지 않은 것이다.”


- 2019년, 선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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