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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필립 왕자는 다음날 자신의 방에서 왕궁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힘이 없어 혼자서 걸을 수 없는 왕자를 걱정한 조엘이 시킨 일이었다.

조엘은 초조한 모습으로 의사가 진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마침내 진료가 끝나고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며칠만 쉬시면 괜찮아질 거라는 의사에 말에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의사가 방에서 나간 뒤 조엘은 이제 다른 걱정이 떠올라 왕자에게 숲에서 보았던 도플겡어를 당장 찾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필립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조엘은 분개하며 필립에게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왕자님이 아직 도플겡어에 대해 잘 모르시니까 그러신 모양인데,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도플겡어란 존재는 원래 모습을 베낀 상대를 죽이고 도플겡어 자신이 그 사람의 자리를 뺏어버리는 무서운 괴물입니다. 언제 도플겡어가 나타나 왕자님의 자리를 뺏으려고 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조엘의 말을 들은 필립은 그저 피식 웃으며 묘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래도 조엘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 그는 사람들을 시켜 도플겡어의 행적을 뒤쫓았다.

우선 일명 ‘귀신의 숲’이라고 불리는 그 숲을 중심으로 그 주변 마을에 사람을 보내어 조사를 시켰다. 분명 생긴 모습은 필립 왕자와 같은 모습일 것이기에 필립 왕자의 초상화를 궁중 화가를 시켜 작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이며 이 도플겡어를 본 사람이 있는지 찾았지만, 2주일이 지나도록 도플겡어를 찾았다는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조엘은 더욱 초조해 할 수 밖에 없었다.

8

도플겡어 필립은 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다시 필립 왕자가 되어 있었다. 그가 살고 있는 성 안은 축제 분위기였다. 여왕이 왕좌의 오른 뒤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더니 몇 달 뒤 새로 왕자를 출산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성 안에는 타국에서 여러 선물들로 넘쳐났고, 신하들도 새 왕자를 보기 위해 여왕의 방 앞에 줄을 서 있었다. 필립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동생’을 출산한 것이기에 필립도 여왕의 방으로 찾아갔다.

여왕의 방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벌써 여왕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느라 분주했고, 필립 자신도 그 틈에 들어가 아기를,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여왕의 품에 안긴 아이는 작고 귀여웠다. 하지만 필립은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다.

필립이 방에 들어왔지만 여왕은 본체만체 하면서 마치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대했다. 여왕은 자신의 아이를 보러온 사람들에게 이름이 벤자민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런 저런 말을 하며 신하들이 말하는 입에 발린 칭찬에 기분이 좋아 깔깔대고 웃고 있었지만 필립은 방구석에서 타인처럼, 그 자리에 없는 사람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날 밤. 그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보려고 했지만 여왕이 출산한 아이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에 잠에 들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인기척을 느꼈지만 여전히 눈을 감고 자는 체 하면서 혹시나 해서 며칠 전부터 이불속에 숨겨 두었던 단검 하나를 품에 안았다.

천천히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베란다에서 누군가가 그의 방으로 발소리를 죽이며 걸어 들어오기는 것이 느껴졌다. 점점 다가오는 발소리에 필립은 몰래 침을 꿀꺽 삼키며 품에 안은 단검의 손잡이를 손에 꼭 쥐었다.

마침내 발소리는 필립이 누워있는 침대 곁에서 멈추고, 철끼리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필립은 긴장에 몸을 떨면서도 다시 한 번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을 다잡고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나 칼집에서 단검을 뽑아 소리가 나던 쪽으로 찔렀다.

기분 나쁜 감촉이 단검을 통해 손으로 전해지고 단검에 찔린 당사자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단검에 가슴을 찔린 검은 옷의 남자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지만, 고통을 참아가며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행하기 위해 자신의 칼을 높이 쳐들고는 필립을 향해 휘둘렀다.

필립은 피한다고 몸을 날렸지만 그의 칼에 어깨를 베이고 말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려 저버렸다. 칼에 베인 고통보단 칼에 찔리고도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는 검은 옷에 남자에게 겁을 먹고는 그만 그 자리에 굳어버렸고, 검은 옷의 남자는 몸놀림이 느려지긴 했지만, 천천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필립에게 다가왔다.

그 남자는 다시 필립을 향해 칼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갑자기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 쓰러져버렸다. 그제야 병사들이 필립의 방으로 들어왔고, 시녀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필립을 부축했다. 여왕도 소식을 듣고 잠옷 차림으로 그의 방으로 찾아왔지만 무표정한 얼굴 속에 왠지 아쉬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필립은 여왕의 얼굴을 보고 시녀들에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면서 생각했다. 이제는 검술을 배워야 할 때라고.. 그렇게 해서 필립은 선왕이 살아 있을 때부터 충성심이 강했던 기사 조엘에게 검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조엘은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이 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검술의 대가였고, 충성심으로도 제일가는 자였기에 필립도 믿고 그에게 검술을 배웠다.

조엘은 필립에게 검술을 배우는 동안 왕궁 기사단이 필립의 침실에 자객을 보낸 자가 누군지 조사를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또 며칠이 안 되어 흐지부지 되어버려 그래서 결코 누가 필립을 죽이려고 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필립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검술을 연마해 살아야 했다. 하지만 검술을 배우는 과정은 험난했다. 조엘은 필립을 왕자라고 봐주지 않고 강하게 훈련시켰고, 검술 대련할 때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날도, 필립은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이번엔 진검으로 하는 대련에 필립은 지쳐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조엘은 계속 필립을 다그쳤다.

“왕자님. 아직 멀었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조엘에 말에 지칠대로 지친 필립이 조엘에게 말했다.

“더 이상 힘들어서..”

필립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말했지만 조엘은 그래도 봐줄 생각은 없는 모양으로 필립에게 말했다.

“그 정도로 힘들어하시면 어떡합니까! 나중엔 장차 나라를 이끄실 분이 겨우 이 정도 힘드시다고 하시면..”

조엘에 말에 필립은 발끈하고는 소리쳤다.

“그 정도라고! 매일 매일 낮에는 검술 훈련 아니면 정치 공부, 그리고 밤이 되면 언제 암살당할지 몰라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있는데 그 정도라고! 네가 내가 얼마만큼 힘들어하는지 알기나해!”

필립에 말에 조엘은 작은 한숨을 쉬며 필립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제 필립은 다 싫었다. 다 싫어서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저리가! 오지 말라고! 너도 그 여자랑 한패 아니야?! 그래서 날 이렇게 괴롭히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조엘은 다가오던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러다 결국 필립이 휘두르는 칼에 팔을 베이고 말았다. 상처가 깊었는지 조엘의 소매는 금세 붉게 물들었고 필립은 깜짝 놀라며 그대로 칼을 옆으로 집어던지고는 조엘에게 달려갔다.

“조.. 조엘 괜찮아?! 내가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올게!”

성으로 달려가려고 하는 필립의 팔을 붙잡으며 조엘이 말했다.

“왕자님.. 제가 어떻게 왕자님이 힘들어 한다는 것을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조엘은 필립의 두 손을 붙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왕자님은 그러니 더욱 강해지셔야 합니다. 어떤 시련에도 물러서면 안 됩니다. 왕자님은 꼭 훌륭한 왕이 되실 분입니다. 그러니 강해지십시오. 분명 힘들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왕자님. 이것만을 기억해 주십시오. 왕자님 곁에는 제가 있습니다. 왕자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조엘에 말에 필립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눈물을 참았다. 눈물을 참으며 억지로 미소를 지
어보이며 조엘에게 말했다.

“고마워.. 조엘..”

도플겡어 필립은, 그 꿈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늦은 밤이었고, 옆 침대에선 잭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필립은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려고 하는데 얼굴에 무언가가 주르륵 하고 흘러내려 놀란 필립이 만져보니,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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