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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도플겡어 필립은 잠이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꿈을 꿨다. 커다란 성에서 살고 있는 꿈을. 꿈속에선 모두가 그를 ‘필립 왕자’라고 불렀다. 꿈속에서 그는 8살쯤 대 보이는 어린애였다. 그는 어떤 화려한 방 안에 있었다. 방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모두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 또한 슬픈 감정을 느꼈다.

“필립.. 필립 어딨느냐..”

누군가의 부름에 필립은 조심스럽게 방 한 가운데 있던 침대로 걸어갔다. 침대에는 화려한 잠옷을 입은 남자가 누워있었다. 화려한 옷과 어울리지 않게 그의 얼굴과 팔 다리는 야위어있었고, 힘겹게 숨을 쉬는 듯 했다. 필립이 침대 곁에 서서는 그 남자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네.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제 가야할 때가 된 것 같구나..”

필립은 밀려오는 슬픔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는 계속 말했다.

“이제 네가 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나라를 통치해야 하지만.. 네가 너무 어려 걱정이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가에서 눈물이 고였다. 그 모습을 보고 필립도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꾹 참으며 아버지의 손을 꼭잡아주었다.

“그래서.. 너희 어머니에게 부탁했단다..”

필립은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여자는 친 어머니가 아니었다. 필립의 친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그만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몇 년 뒤 새로 아버지의 부인의 된 여자였다. 필립은 이 여자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는 게 싫었다.

그 여자는 필립에게 겉으로는 친아들처럼 따듯하게 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가 자신을 싫어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는 침대 옆에 서서는 연신 눈가를 손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네가 17살이 될 때까지.. 대신 왕위를 맡아달라고 말이야.”

필립은 그 말에 놀랐지만 겉으로 내색 할 수가 없어 그저 고개만 숙였다.

“그럼.. 왕비.. 필립을 부탁하겠소..”

그 말을 남기고.. 필립의 아버지이자 한 나라의 왕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특히 왕비이자.. 필립의 새 어머니인 침대에 엎드려 큰소리로 오열했다. 하지만 필립은 울 수가 없었다.

침대에 엎드려 큰 소리로 오열 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서 살짝 띤 미소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가 끝난 뒤, 왕비는 필립을 대신에 왕위에 올랐다. 필립이 17살이 될 때까지라는 조건을 내걸고..

그녀가 여왕이 된 지 며칠 뒤, 그녀가 자신의 방으로 필립을 불렀다. 그 방은 예전보다 더욱 화려해져있었다. 방은 온통 붉은 색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실크로 된 커튼부터, 바닥에 깔린 카펫까지 온통 붉은 색이었다.

탁자나 장식장 위에는 온통 보석으로 만든 세공품들이 잔뜩 놓여있었다. 그녀 또한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온몸에 무거워 보석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그리고 화장으로 얼굴에 주름을 가리고 있었지만 너무 진해 창백해 보였고, 붉은색으로 칠한 입술이 그녀의 얼굴에 이질감을 한층 더 높여 주었다.

그녀는 방 한 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앞 탁자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 두 잔이 놓여있었다. 그 잔 중 한잔을 들어 그녀가 한 모금 마셨다가 다시 탁자에 내려놓고는 그를 보고는 과장된 말투로 말했다.

“오 왔구나. 필립. 여기에 앉으렴.”

필립이 앉자 그녀는 탁자위에 있던 차를 한잔을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타국에서 선물로 보내온 차란다. 향이 아주 좋아. 한번 마셔보렴.”

필립이 찻잔을 들어 향기를 맡아보았다. 처음 맡아보는 향기였지만 향이 좋았다. 그는 찻잔을 입술에 대고 한 모금 마시는 시늉을 하며 몰래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필립이 얼른 그 차를 한 모금 마시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는 차를 마시지 않고 다시 탁자에 올려놓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절 부르셨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이런저런 쓸 대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부른 것이었다. 아니.. 정말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왕비가 이런 저런 말을 하며 다른 곳을 볼 때 필립은 미리 준비해둔 은수저를 꺼내 찻잔에 담갔다.

그리고 수저를 빼보자 은수저는 보라색으로 변해있었다. 이제 확신이 선 필립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녀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왕비님. 갑자기 볼일이 생각나서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뒤돌아서 방을 걸어 나갔다. 걸어가는 동안 뒤에서 작은 소리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6

새 소리에 도플겡어 필립이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났찌만 어잿밤 꾸었던 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참을 그대로 누워 어젯밤 꿈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 침대를 보니 잭은 이미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집 안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짐 밖으로 나가보니 저기에서 레이첼이 무거워 보이는 짚단을 메고 낑낑대며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필립은 얼른 레이첼에게 다가가 레이첼에 메고 있는 짚단을 대신 들어주었다. 그제야 필립이 다가온 것을 깨달은 레이첼이 그에게 말했다.

“이제야 일어났어요? 지금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

레이첼에 말에 필립이 하늘을 쳐다보자 맑은 하늘에 해가 머리위에 있었다. 그러자 필립은 민망함을 느끼고 레이첼에게 말했다.

“아.. 정말이군요.. 처음이라.. 늦잠을 자고 말았네요.”

‘처음’이라는 말에 레이첼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필립은 얼렁뚱땅 화제를 다른곳으로 돌렸다.

“그런데. 잭은 어디갔나요?”

잭이란 말에 레이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나도 모르죠. 매일 새벽부터 나가서 밤이나 돼야 돌아오시니.. 그래서 늘 나 혼자 일하죠.”

그렇게 말하며 밭을 가리켰는데 혼자서 일을 하기엔 너무 넓어보였다. 하지만 레이첼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는지 담담한 태도였다. 이번엔 레이첼이 화제를 바꾸며 필립에게 말했다.

“이제 가보셔야죠.”
“가다니.. 어딜..”

필립이 영문을 몰라 그렇게 물었지만 어젯밤 둘이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도로 말을 고치며 말했다.

“아.. 그렇죠.. 가야죠..”

하지만 필립은 생각했다.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원래는 가족도 없고 집도 없는 그에게 돌아갈 곳은 없었다. 그렇다면.. 한가지 뿐.. 필립이 조용히 아무말도 안하고 생각하고 있자 레이첼이 다시 말했다.

“왜 그래요. 가족이 기다리는 집이 있을거 아니에요.”

레이첼에 말에 필립은 웃으며 대답했다.

“없습니다. 가족 같은거..”

필립에 말에 레이첼은 미안함을 느끼며 또 말했다.

“그럼 집이라도..”

이번엔 필립은 대답하지 않고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미안해요..”

레이첼이 미안한 마음에 그렇게 말해도 역시 필립은 미소만 지었고 둘은 말 없이 한참을 그렇게 걸었다. 그렇게 한 참을 말없이 걷다 밭에 도착하자 그 때까지 생각에 빠져있던 레이첼은 소리쳤다.

“알았어요! 오늘 하루만 더 우리 집에서 보내요. 대신 오늘 밥값으로 엄청 부려먹을 거니까 각오해요!”

예상치 못한 레이첼의 말에 필립은 놀라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곳 고마움에 미소를 짓고 레이첼을 따라 밭일을 도왔다. 처음 하는 밭일에 엉성하고 실수도 많이 했지만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 나무 아래에 그 모습을 잭이 바라보고 있었다. 잭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술병에 술을 마시려고 하다가 술이 비어있자 자리에서 일어나 또 다시 술을 찾아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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