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3

성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노인의 뒤를 따라 오솔길을 한참 걸었다. 둘은 걸으면서 대화를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노인은 뭐가 그렇게 흥겨운지 노래를 불렀고, 도플겡어는 처음 보는 밤하늘 보고 걷느라 그렇게 지루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마을 하나가 나타났고, 늦은 밤이라 그런지 불이 켜진 집은 하나 없었다. 마을은 대체로 고요했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로 더 들어가 상 중턱에 자리 잡은 작은 집이 노인이 살고 있는 집이였다. 노인은 먼저 집으로 들어갔고, 도플겡어도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니 노인이 방을 둘러보면서 말한다.

“응? 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딜 나간거지? 아 자넨 거기에 잠깐 앉아 있게.”

도플겡어는 노인의 말대로 식탁 의자에 앉았다. 노인도 의자에 털썩 앉았고, 술병에 술을 연신 들이켰다. 도플겡어는 하릴없이 집안을 둘러봤다. 집은 나름 깔끔했다. 식탁 위에는 작은 꽃병에 들꽃이 꽃혀 있었고, 아직 싱싱해 보였다. 방은 2개인 듯 싶었고, 가구는 그렇게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있어야할 것들은 있었다.

도플겡어가 방을 둘러보는 사이 집밖에선 다시 비가 내리는지 빗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뒤, 누군가가 집 문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도플겡어가 돌아보니 문 앞에 갈색의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자가 비에 젖은 머리를 털고 있었다. 그러고는 잠시 도플겡어를 보고 놀란 표정이었지만 곳 노인에게 시선을 옮기고는 소리쳤다.

“아빠! 어딜 갔다 오시는 거예요!‘
“너야 말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딜 갔다 오는 게냐.”

노인은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이제 술병이 비였는지 아쉽다는 듯이 술병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한숨을 쉬며 노인에게 말했다.

“당연히 아빠 찾으러 다녔죠!”

노인은 이제야 술병을 내려놓고 여자의 말에 그랬냐며 껄껄 웃기만 했다. 여자도 더 이상 말을 해봤자 자기 입만 아프다는 식으로 한숨을 푹 쉬더니 도플겡어를 가리키며 노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에요?
“아까 성에서 만난 사람인데, 오늘 갈대가 없다고 해서.”

노인의 말에 여자는 다시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하아.. 그렇다고 해서 시도 때도 없이 이렇게 불쑥불쑥 아무나 데리고 오시면 어떻게
요.. 그러다 정말 나쁜 사람이라도 데려오면 어쩌시려고..”

이렇게 사람을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 한 두 번 있었던 일은 아닌지 여자는 도플겡어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걱정하지마라.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 만은 아직 멀쩡하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여자는 아직 불만인 모양으로 뿌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여자의 불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플겡어에게 자신의 소개와 더불어 여자를 딸이라며 소개했다.

“내 이름은 잭이고, 여기는 내 딸. 레이첼이네.”

레이첼은 노인의 소개에 여전히 뿌루퉁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살짝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시늉을 하며 집까지 데려오면서 자기 이름도 안 가르쳐줬냐고 투덜거렸다. 잭은 레이첼이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도플겡어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또 레이첼은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집에 데려오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런 레이첼을 보자 도플겡어도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름.. 백년 가까이 살면서 아직까지 이름이 없던 도플겡어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머릿속 기억을 뒤지며 적당한 이름을 찾았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그러다 문뜩 떠오른 이름을 댄다.

“필립.. 필립이에요.”

잭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레이첼에게 말한다.

“레이첼. 난 이제 잘껀데. 네가 필립 좀 잘 해줘라. 그럼..”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거실에는 둘만 남겨졌고, 레이첼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필립도 레이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선뜻 뭐라고 말을 걸 수 없었다. 한참 뒤 레이첼은 한숨을 푹 쉬더니 방으로 들어가더니 작은 상자를 가지고 왔다.

“하아. 왜 그렇게 다쳤어요?”

레이첼은 그렇게 말하며 필립 맞은 편 의자에 앉았고 상자에서 붕대와 치료 도구를 꺼내며 일어서더니 필립에게 다가갔다.

“아.. 그게 좀..”

레이첼에 물음에 필립은 얼버무리며 대답했고, 레이첼이 필립의 상처를 말없이 치료해주며 다시 물었다.

“당신 깡패에요?”

필립은 레이첼에 말에 화들짝 놀라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레이첼은 입을 다물고 상처를 치료하는데 에만 집중했다. 그러는 모습을 보고 필립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레이첼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한 거 알면 내일 일찍 나가주세요.”

레이첼이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쌀쌀맞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저 필립은 레이첼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네.. 미안합니다.”

거듭 사죄하는 필립을 보며 레이첼을 피식 웃었다. 한참 뒤 상처를 모두 치료한 레이첼은 다시 상자를 자신의 방으로 가져간 뒤 잭의 방으로 필립의 이부자리를 마련해주려고 들어갔다. 잭은 자신의 침대에서 옷도 재대로 벗지 않고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그렇게 술에 취해 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 레이첼은 한숨을 쉬며, 잭을 침대에 똑바로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방 한편에 필립의 이부자리를 깔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레이첼이 나간 뒤 필립은 이부자리에 누워봤다. 옆에선 잭이 심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필립은 그래서 웃음이 났다.

필립은 처음 자는 것이기에 자신이 잘 수 있을까 걱정하며 누워 눈을 감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필립은 금세 잠이 들어버린다.

4

한편. 도플겡어에게 습격을 받았던 필립 왕자는, 그 뒤로 온몸에 힘이 빠져 걸을 수 조차 없어 조엘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겨우 숲을 빠져나와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밤이 돼서야 겨우 목적지인 수도의 도착할 수 있었다.

수도의 도착하자마자 필립 왕자는 여왕의 부름에 조엘의 부착을 받아 어전으로 향했다. 어전의 들어서자 화려한 장식들과 양탄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원정을 나간사이에 또 장식품들이 늘어 선왕이 있을때 보다 더욱 화려해져 있었다. 여왕은 왕좌의 앉아 있었다. 여왕은 붉은색에 황금색 실로 수를 놓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주름을 가리기 위해 화장을 한 탓에 창백했고,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목과 손가락에는 커다란 보석에 목걸이와 반지를 차고 있었다. 여왕은 무표정한 얼굴로 필립 왕자가 조엘의 부축을 받고 들어오자 말했다.

“어디 다치기라도 한 것이냐. 아니면 처음 하는 긴 원정길에 지친것이냐.”

조엘이 그 말을 듣고 숲에서 있었던 일을 여왕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필립이 말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걸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혼자서 서보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아직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 여왕은 살짝 미소를 지을 뻔했지만 억지로 참아가며 필립이게 말했다.

“그래. 소식 들었다. 졌다면서?”

필립이 대답할 세도 없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간다.

“우리나라 최고의 군대를 데리고 갔었어도, 지고서 돌아오다니 너에게 실망이 크다. 필립 왕자.”

필립은 여왕의 말에 발끈했지만 최대한 감정을 숨기면서 여왕에게 말했다.

“누가 우리의 행군로를 적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지지 않았을 겁니다.”

필립이 그녀를 노려보며 그렇게 말하자 왕비는 잠시 움찔 하나 싶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지금 그 말은 우리 내부에 적의 첩자가 있다는 말이냐? 하아.. 자신의 실수는 생각하지도 않고 남 탓만 하고 있으니.. 그래. 한번 조사는 해보마. 정말 첩자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말이야. 그만 돌아가 보거라.”

옆에 서 있던 조엘은 다시 참지 못하고 필립을 변호하려고 했지만 다시 필립이 말렸고, 어쩔 수 없이 조엘은 필립을 부축하고 그 곳에서 나와 복도를 걸어 필립의 방으로 향했다. 복도를 걸으며 필립이 분해 이를 갈고 있는 게 느껴지자 조엘은 필립이게 말했다.

“왕자님.. 조금만 참으십시오.. 조금만 있으면 곳.. 17번째 생신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필립은 피식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과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필립의 말에 조엘은 뭔가 더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어 조용히 복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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