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미래전쟁 (9)

2010.08.16 21:2808.16


“물론입니다. 자, 그럼 시간이 많지 않으니 상담을 시작하죠.”

상담?

“신체검사를 할 줄 알았는데.”

“신체검사요? 당신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그 몸은 우리가 만들어준 거니, 완벽합니다. 육체의 나이는 20살 전후로 고정되어있고 근육 또한 고르게 발달시켰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을 찌지 않고 지금 당장은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은 깨끗한 몸이죠. 그러니 우리가 담당할 건 정신적인 것뿐입니다. 그 몸에 대한 사용법은 이곳에 있는 동안 더 배우게 될 겁니다. 그리고 신병교육대에서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게 되겠죠.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당신 말고 또 만나야할 사람이 3천명이나 더 남았으니까요.”

“뭘 시작하자는 겁니까?”

여기에 없다고 생각하니 무슨 짓을 해도 될 것만 같아서, 나는 그가 앉으라고 말한 의자 대신 문 옆에 쪼그려 앉았다. 곤란하다는 표정을 잠깐 지었지만 닥터 존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대답했다.

“말했다시피 나는 당신의 정신적인 부분을 담당합니다. 일단 당신이 궁금해할만한 걸 들어보도록 하죠. 예를 들어 지구는 어떻게 멸망했느냐, 혹은― 당신 가족은 어떻게 죽었느냐, 라던가.”

폐로 들어간 숨이 나올 방법을 까맣게 잊어버렸는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닥터 존이 여기 없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고 짜증났다. 지금 당장 저 주둥이 안에 있는 강냉이를 하나씩 털어버리면 술술 노래를 부를 텐데. 내 표정이 제법 즐거운 지, 그는 미소를 지으며 깍지 낀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물론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되살아났는지가 가장 궁금하실 거라 믿습니다. 우선 그것부터 설명하도록 하죠.”

바닥에 떨어졌던 펜처럼 그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신 거기에는 내 얼굴이 있었다. 창백한 게 꼭 죽은 것처럼 보인다.

“이건 당신이 죽은 당일 찍은 사진입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꼭 나를 닮은 녀석의 머리에 봉합자국이 있었다.

“혹시 과학 좋아하십니까?”

“공상과학영화는 즐겨 보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쉽게 받아드릴 수 있겠군요.”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바보 취급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내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미안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함부로 시체를 훼손시킨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해야하니까요. 그런 것에 민감한 사람도 가끔 있거든요.”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설명을 계속한다.

“2010년 8월에 우리는 하진우 씨의 사망을 공식으로 확인한 다음, 시신을 서울 외각에 있는 저희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거기서 당신의 뇌를 적출했으며, 나머지는 곧장 소각시켰습니다. 그럼 당신의 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 나는 팔짱을 끼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가족의 동의도 없이 그런 짓을 해도 되냐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싶지는 않았다.

“답은 바로 뉴트리노입니다.”

뭔가 생각하다가 아는 척 했다가는 망신을 당할 거 같아서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저 인간의 이공계 개그가 터지려면 여기에 내가 아닌 앨런이 있어야 했는데. 그녀가 아니라면 적어도 아서가 있으면 맞장구라도 쳤겠지.

“음, 과학시간이 아니니 세부적인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죠. 우리는 뉴트리노를 이용해 당신의 뇌에 담긴 정보들을 담았습니다. 죽기 전까지 당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기억들, 좋아하는 음식, 자주 듣는 노래, 감명 깊게 봤던 영화들, 아내의 생일, 그녀가 좋아하는 꽃이라던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한 횟수…… 이런 모든 게 뉴트리노에 담겨 지금까지 보존되었던 겁니다. 물론 하진우 씨 당신의 정보만 기록한 건 아닙니다. 오늘 궤도정거장에서 본 모든 사람의 정보가 지금 보시는 원통에 담겨있었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이 원통이 시간여행을 했다는 것 정도입니다.”

……음, 끼어들 타이밍을 도통 모르겠다.

“사실 시간여행의 원리는 저도 잘 모릅니다. 일단 저는 과학자가 아닌 의사니까요.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것을 이용해 당신들의 메모리를 우리에게 전송합니다. 그럼 우리는 그 정보를 기초로 신체를 설계합니다. 참고로 그 시설은 궤도정거장에 있습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을 곳이로군요.”

나는 거기에 남기로 결정했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렇군. 정말로 다시 보려면 우주 너머의 하늘로 가야한다는 건가.

“그럼 두 번째 의문을 해결해 드려야겠군요. 지구가 어떻게 멸망했는지에 대해 말입니다.”

다시 의자에 앉은 닥터 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의 왼쪽, 내가 보는 방향에서는 오른쪽에 지구의 모형이 짠하고 등장한다. 우리가 봤던 칙칙한 회색빛이 아닌, 녹색과 푸른색, 갈색과 흰색이 적절하게 조합된 행성의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을 뻔 했다.

“이건 2012년 4월 5일의 지구입니다. 그리고 이건― 2012년 4월 6일, 7일, 8일…….”

그가 시간의 경과를 보여줄 때마다 점점 생각이 없어졌다. 나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4월 6일로 돌아가자는 말을 했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지구의 표면에 있는 거대한 옅은 검은색이 거슬렸다. 저게 뭐냐고 묻자 그는 내 관찰력을 칭찬했다.

“훌륭하군요. 보통은 5일 후의 모습에만 집중합니다. 자, 당신은 저 그림자를 만드는 물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니 의사 양반, 우주에서 생활한 지 겨우 하루 밖에 되지 않은 사람에게 무슨 소리요.

“저 그림자, 왠지 삼각형 같지 않습니까?”

삼각형. 나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사일런트 힐」에서 나오는 삼각두 괴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다리털을 밀고 올라오는 개미들이 느껴졌다. 발끝에서 시작된 소름은 곧 목까지 뻗어나가더니, 내려갈 기미가 없다.

“물론 이 우주선은 아닙니다.”

나를 안심시키더니, 방심한 틈을 타서 보디 블로를 날린다. 웃는 걸 보니 꽤 즐거운 모양이다.

“비스마르크 호는 저것을 소형화 시킨 것에 불과하니까요.”

다시 시간이 지난다. 지구의 표면이 번쩍번쩍 붉은 불빛이 이곳저곳에서 생겨나더니, 이내 하늘이 회색빛으로, 새까맣게 변해간다. 조물주가 칠한 색깔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세상을 뒤덮어버린다.

“하진우 씨의 국적은 대한민국이군요. 아주 좋습니다. 신병교육대를 담당하는 교관들은 군필자를 선호한다더군요. 한 가지 묻겠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나라를 사랑합니까?”

“애국심을 말하는 거요? 뭐, 어느 정도는…….”

부자였다면 아주 사랑하는 나라가 되었겠지만, 그저 그런 수준이라 월드컵이나 WBC를 할 때만 열렬히 사랑한다.

“우리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합니다. 적어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요. 그 이유는 바로 북극에 있는 다산과학기지 때문입니다.”

“……노르웨이 섬에 있는 다산기지 말입니까?”

“네, 스피르베리겐 섬에 위치한 기지입니다. 2002년에 완공된 그 기지는 설립연도에 아주 기가 막힌 부유물을 습득하게 됩니다. 첫 발견 당시에는 보트를 타고 있었던 6명의 대원들은 그게 무엇인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어느 기지로 운반되던 짐이 바다로 떨어졌을 거라 추측했다고 하더군요. 북극의 기후와 생물, 중요한 해양 자원을 연구하던 기지에게 정육면체의 검은색 박스는 어느 심심한 외국인이 디자인한 모형물처럼 보였나 봅니다. 그들은 그걸 연구실 구석에 놓아뒀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 물체를 가져온 대원 중 한 명이 감기에 걸린 겁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아무리 과학상식이 부족해도 남극과 북극에서 감기 바이러스가 살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닥터 존은 무슨 생뚱맞은 이야기냐는 눈으로 나를 쏘아봤고 진지한 그의 표정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죄로 나는 입을 다시 다물어야만 했다. 왠지 무릎을 꿇고 손까지 들어야할 것만 같다.

“그런 식으로 내게 따진 사람이 과장을 더 보태서 5만 명은 되는 거 같군요. 하진우 씨의 주장이 틀린 건 아닙니다. 분명 극지에서는 감기 바이러스가 살 수 없는 환경입니다. 그런데 그 대원은 정말 감기가 걸렸고, 이틀 후에 6명 전원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었기에 그건 기록되지도. 한국에 보고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6명 중 한 대원이 감기의 원인을 자신들이 가져온 검은색 부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구실에 있던 어느 누구도, 심지어 주장한 본인도 믿지 않았지만 결국 그들은 보호복을 입고 검은색 큐브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검은색 큐브 외부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발견했습니다. 얼음보다도 차가운 북극 바다 위를 표류하던 물체의 외벽에 붙어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이었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이야기가 왠지 산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대체 지구의 멸망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산기지는 즉시 미국의 기지에 연락을 해서 굉장한 물건이 있으니 보러 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그 물체는 미국으로 이송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그걸 분석한 결과는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첫 번째는 지구에서 발견되지 않은 물질로 만들어졌다는 점. 두 번째는 방사선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치 이것이 외계 어디선가 왔다는 걸 암시라도 하듯이 말이죠. 첫 번째는 신종 물질이라고 생각해도, 두 번째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극지에서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 다는 것처럼, 날아다니는 먼지 한 톨조차도 소량의 방사선이 들어있다는 것 또한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03년, 통칭 ‘블랙 큐브’라 불린 그 물체는 비밀리에 러시아로 이동하게 됩니다. ‘블랙 큐브’를 받은 러시아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프로젝트는 군사프로젝트로, 러시아 대통령에게조차 비밀에 부쳐진 일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이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S. E. P. 라는 겁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껏 설명해왔던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네, 두 번째 지구를 찾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러면 또 하나의 궁금한 게 생기게 되겠죠. 과연 ‘블랙 큐브’에는 뭐가 들어있었는가.”

이제야 이야기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댓글 1
  • No Profile
    익명 10.08.17 01:37 댓글 수정 삭제
    이만한 분량의 글을 쓰는것은 쉽지 않습니다. 작가분의 열정에 우선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그 성실성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많이 보입니다. 꼼꼼한 사전 조사 없이 이 글을 시작 한 것처럼 보이는 것, 중간 중간 글을 읽는데 방해되는 문장, 어설픈 묘사, 극화풍. 너무 제 댓글에 신경 안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은 쓰면서 느는것이니까요. 건필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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