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미래전쟁 (6)

2010.08.13 19:2508.13

#5

군용전략고글 X-II의 능력은 우리가 접속을 인지했을 때에만 사용할 수 있다. 플라스틱이 아닌 수정과 유사한 광물을 가공해서 만든 이것은 가령 얼굴에 착용을 해도 뇌와 연결을 차단하면 단순하게 피탄으로부터 안면을 보호하는 것 외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그러나 뇌와 연결하면, 최초의 짜릿한 즉석만남이 있고나서부터는 뇌가 곤죽이 될 때까지 접속이 유지된다. 그리고 사용자가 원할 때에는 일명 가사상태로 빠져 재부팅을 하지 않는 이상 단순한 고글이 된다.

군용전략고글 X-II의 사용법에 의하면 고글의 기능은 대체로 5가지로 나눠진다. 첫째, 통신수단으로 이용된다. 개인과 개인의 통신은 물론, 분대, 소대 단위의 통신도 가능하다. 그 이상의 통신을 하려면 상관의 접속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둘째, 정보의 확인이 가능하다. 가령 내가 앨런이 있는 위치를 알고 싶어 한다면 고글은 화면에 그녀가 있는 위치와 함께 최단 거리로 주파할 수 있는 코스를 소개해준다. 그리고 도달할 수 있는 시간 및 가능성(%)도 함께 표시해준다. 셋째, 전투복 강화슈트와 연동이 된다. 강화슈트는 우리를 숙소로 안내했던 병사가 착용하고 있었던 옷을 의미한다. 강화슈트는 신체의 능력을 보조할 뿐만 아니라 카무플라주의 기능도 갖추고 있고, 극한의 상황에서도 체온을 유지시키며, 광활한 우주에 노출이 되어도 고글과 연동되어 최대 24시간까지 생존을 보장하는 생명유지장치(Vital Safe)는 물론, 상황에 따라 형태가 변형되도록 설계된 S. E. P. 의 최신예 전투복이다. 실제로 이 전투복이 도입된 이후부터 전투에 의한 사망자가 현저하게 급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대규모 폭발의 중심에 있다면 그건 전투복을 입으나마나 여전히 살 가망은 제로에 가깝다. 강화슈트는 신체능력을 일시적으로 강화시킨다. 어떤 기술이 작용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서의 말에 따르면 아마도 아드레날린, 엔도르핀과 같은 호르몬을 분출하는 걸 조절하는 것이라 한다. 그는 많이 사용하면 좋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설명서에서도 3회로 제한되어 있었다. 신체의 능력을 활성화시키는 가속(acceleration)은 근육과 시력에 주로 작용한다. 그걸로 인해 인간은 잠깐 동안 인간의 범위에서 낼 수 있는 힘을 초월하기도 하고, 날아오는 총알을 보고 피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와 반대의 기능을 발휘하는 게 실드(Shield)다. 실드는 육체에 전해지는 통증을 완화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피부와 강화슈트의 성분을 변화시켜 외부로부터 오는 충격도 변화시킨다. 이 모든 조작이 바로 고글을 통해서 가능하다. 고글이 없다면 강화슈트의 세련된 기능들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이니, 정말 중요한 물건임이 틀림없다. 넷째, 고글은 다목적 시각기능을 제공한다. 야간 투시경이나, 열의 감지, 또는 음파를 이용한 물체의 감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처음 이 기능은 인간의 육체에 적용시키려 했으나 안구의 개발은 인공물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내려져 고글에 그 기능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는 부가적인 설명이 더해져있었다. 마지막으로 고글은 학습을 도와준다. 이건 군인을 1회용 총알받이로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군 상층부의 의지가 담겨있는 말이었다. 단순한 소비용에서 벗어나 누구나 생각하는 군인으로서(물론 여기에도 상명하복이 군인본분이라는 가치관이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상황에 따라 알맞은 대처를 할 수 있도록 전술전략 및 우주에서 생존하는 방법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원할 때마다 불러오기가 가능한 저장장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에 집중하지 않는 한, 별의별 생각들을 다한다. 만약 상관과 대화를 하고 있는 도중에 그녀(혹은 그)의 모습이 정말 멋져서 온갖 망상을 할 수도 있다. 나와 상관의 회선이 연결되어있다면, 그것은 고스란히 상관에게 전달된다. 아마 군사재판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다. 바싹 구워서 블랙홀에 던져버리지 않으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라.(이것 또한 고글 사용 시 주의사항으로 분류된 문장이다.)

어디에도 시계가 부착되지 않았기에 하루가 지났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고글이 알려줬기 때문이다. 고글은 비스마르크 호의 활동주기에 맞춰 알람을 울렸다. 오, 이런 세상에. 정말 군인의 신분으로 돌아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07시 정각에 맞춰 울린 알람 때문이었다. 여자친구와의 이별과 재입대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문장이 나온다면 여지없이 전자를 선택한다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 예비역의 입장에서 보자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알람을 듣고 일어났을 때, 나는 사자의 갈기처럼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일어선 아서의 옆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방에서 침대를 선정할 때는 모두의 의견을 참고했는데,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이라는 앨런의 주장보다 여자는 2층, 남자는 1층이라는 마리아의 주장이 마음을 움직였다. 이 의견은 앨런도 적극 찬성했는데, 그 이유는 남자가 음흉한 생각을 품고 2층으로 슬금슬금 올라오면 발로 걷어찰 수 있다는 게 무척 매력적인 사항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머리맡에 벗어놓은 고글을 착용한 다음 머릿속에서 울리는 알람을 종료시켰다. 신병훈련소로 향하는 기간은 1주일이라고 한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고글과 뇌의 접속을 끊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적응기간이라 하여 신체적 훈련을 받기 전에 일종의 정신교육을 받는 것과 같았다.

내 위에는 앨런이 있고, 아서의 위에는 마리아가 자고 있다. 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침대에서 일어난 마리아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그녀도 손을 흔들었다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정말 일어나기 싫은 모양이다. 어젯밤 우리는 죽기 전에 있었던 일을 했다. 그런 이야기가 시작된 원인은 분명 나 때문이었다. 고글에 떠오른 나에 관한 신상정보를 확인한 순간 터져 나온 울음과 온갖 서러움들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바닥에 엎드려 울었던 나를 달래준 마리아가 가장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누가 묻지도 않았지만, 그게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침대에 누워 그녀의 말을 조용히 경청했다.

“그러니까 나는 2010년 4월 13일에 죽었어요. 화요일이었죠. 그날은 하늘이 무척 청명했어요. 연구실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은 조물주가 먹다가 떨어트린 솜사탕의 부스러기처럼 느껴졌죠. 난 연구실에 있었고, 어느 때처럼 학생들에게 촘스키 할아버지의 생성 언어학의 생성문법을 가르친 다음, 연구실로 돌아왔던 거 같아요. 그리고 다음 수업 준비를 하고, 그게 끝난 다음에는 논문을 쓰고 있었어요. 논문의 제목은…… 세상에나. 내가 6개월 동안 준비한 논문의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요.”

마리아가 흥분된 어조로 말하자 앨런이 그녀를 진정시켰다.

“아마 죽은 이후 뇌에 산소공급이 차단되자 손상을 입어서 그럴 거예요. 침착하게 다음에 있었던 일을 계속 생각해요.”

“내용은 한국어 음운론에 관한 거였어요.”

침대에 엎드린 그녀가 머리를 바깥으로 내밀어 반대편에 있는 나를 내려다봤다.

“내 아버지는 한국인이었어요. 그래서 난 2개 국어를 할 줄 알았죠. 대학에서 모국어를 전공했지만, 내 피에 흐르는 한국인의 유전자가 한국어를 연구하도록 만들었어요. 촘스키 할아버지의 문법론으로 두 언어를 해부하는 게 주된 일이었죠. 그런 날들이 계속 되었는데, 아마도 심장병이었을 거예요. 가슴이 아팠거든요.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있는 힘껏 연구실 문을 열고, 쿵― 쓰러졌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주변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거든요. 그런 순간이 온 후에야 영화에서 쓰러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줄 때 숨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는 게 거짓이라는 걸 알았죠,”

“자신의 경험을 섣불리 일반화한다는 건 위험한 일인데.”

나를 보고 웃었던 마리아의 표정이 확 변했다. 눈살을 찌푸린 그녀는 자신의 아래층에 누워있는 아서를 쏘아봤다.

“당신의 말투는 꼭 초등학생 선생님 같네요.”

“비슷하지만 내 직업은 더 복잡합니다. 아이와 어른 사이의 과도기적,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는 가장 폭력적인 시절에 투입되어 사회에 어울리는 인물이 되도록 이끌어야하는―”

그의 말을 앨런이 끊었다.

“중학교 교사였군요.”

아서가 검지를 세워 좌우로 흔들었고, 나는 상품에 눈이 먼 참가자처럼 잽싸게 답을 말했다.

“고등학교 교사.”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위에서 매트를 주먹으로 내리친 소리가 들렸다.

“2010년 5월 6일에 죽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칙칙한 날, 학교 업무가 끝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날 덮쳤죠. 몸에 차갑고 날카로운 물건이 쑥 들어오는 느낌은 정말 소름끼치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닭살이 돋을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아마 칼이나 송곳이었을 겁니다. 쓰러지고 나서, 얼마간 정신을 잃고 있지 않았는데 시계를 풀고, 몸을 더듬더니 안주머니에서 지갑도 꺼내가는 게 느껴졌죠.”

“학생일까요?”

앨런의 물음에 그는 고갤 가로저었다.

“설령 그게 진실이어도 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죠?”

“난 학생들에게 물리를 가르쳤지, 도둑질을 가르친 적은 없습니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은 모두 착한 애들이었고, 그 속에 사람을 죽일 정도의 악인은 없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선하든, 혹은 악하든, 그건 별 상관없다. 사실 사람은 환경이 만드는 거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교훈처럼 주변에 존재하는 무엇인가가 사고를 변화시키고, 하나의 인물상을 완성한다. 아무리 낮에 성실한 학생일지라도, 밤에 누군가의 눈을 피해 남의 집 담벼락을 넘는 스릴을 즐긴다면 이미 그 선악이 하나의 인격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자신의 제자는 모두 착하다는 교사의 환상을 깨고 싶지는 않았기에, 모두 그의 의견에 반론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나는 침대 위를 발로 두들겼다.

“앨런은 어땠습니까?”

“내 나이, 얘기하지 말아요.”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모두 자신의 나이를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충 짐작은 갔다. 환상을 가진 교사는 분명 30살 전후일 것이고, 교수가 될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한 마리아는 최소 40살 이후일 거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난 앨런의 나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시원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자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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