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벨벳거미와 뻐꾸기

2017.01.27 22:1601.27

 

흑단같이 검은 하늘에 별들이 가득 차 있었다. 지상의 혼돈을 관조하는 만신들의 안광처럼 무심하고 차갑게 빛나는 별들은, 최송희의 시야가 미치는 어디에나 흩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먼 공간에 홀로 각기 외롭게 존재하는 것이었다.

 

찬바람이 불어왔다. 송희는 하늘을 올려다보던 자세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별빛마저 흔들리게 만드는 냉랭한 북풍은 송희의 살갗을 통해 파고 들어와 피와 마음을 식혔다. 세상천지에 혼자만이 남은 것 같은 무시무시한 고독감이 공포로 승화되었고, 송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그들이 나타났다. 별이 가득 찬 하늘에 뒤틀린 윤곽을 가진 그늘을 드리운 채 송희를 내려다보는 세 형체는,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괴이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인식하기도 전에 송희의 무의식이 맹렬하게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병든 인간들의 정신 속에서 수만 차례의 계대배양을 통해 더욱 끔찍한 형태로 완성시킨 것만 같은 형상들이 거기 있었다. 맹독이 가득 찬 성단과도 같은 인상을 주는 반투명한 원형질의 암녹색 몸과, 대왕오징어의 해부된 눈을 연상시키는 접시만한 광학기관, 온 몸에서 흘러내리는 점액과 촉수들이 그 괴물들을 구성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이었다.

그 순간 송희의 머리에 강렬한 통증이 일고 눈앞이 일순간 번쩍거렸다. 그리고 송희는 꿈에서 깨어났다.

 

<97일 월요일, 최송희의 집>

일어나니 아침의 햇빛이 커튼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악몽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송희는 침대에 누워 눈만 뜬 자세로 몇 분인가를 흘려보냈다. 곧 아침 일곱 시 반으로 맞춰 둔 알람이 머리맡에서 울렸다.

송희는 눈곱 낀 눈을 비비며 방의 커튼을 열었다. 하품을 한 차례 하고 창문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여느 때와 같은 뒷마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야 한편에는 지하실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다. 언제나 굳게 잠겨 있는 문이었다.

송희는 자기 방을 나왔다. 또 그 꿈이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만 수차례 반복해서 꾼 꿈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 꿈은 단속적으로 송희를 찾아왔다. 하지만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는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도 알아낼 수 없었다.

 

도중에 지나친 언니의 방문도 지하실과 마찬가지로 단단히 닫혀 있었다. 일층으로 내려왔을 때, 주방 쪽에서 무언가 둔탁한 것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나처럼 엄마가 아침을 준비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평소와는 어쩐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에 불길해하면서 송희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때 송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주방 바닥에 쓰러져 경련하고 있는 엄마였다. 입가와 주변 바닥에 거품으로 장식된 분홍색 토혈이 칠해져 있었다.

엄마?! 엄마!!”

송희는 울부짖으며 곧바로 엄마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참혹했다. 그런 문제는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간 학생이 다룰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 있는 것이었다. 송희는 발작하는 환자에 대해 주워들은 풍월에 따라 행주를 입에 물려 혀를 깨무는 것을 방지하고, 엄마의 머리를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아 고정시킨 다음 119에 전화를 걸었다. 불가항력적으로 끼어드는 흐느낌 때문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사태를 설명하는 데에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했다.

! 계속 경련을 하는데, 피도 토했고요. 지금 몇 분 정도 지났는데 멈추지를 않아요. 제발 빨리 와주세요!”

송희는 곧바로 직장에 나가 있을 아빠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송흰데. 지금 엄마랑 주방에 있거든? 지금 엄마가 막 경련하고, 피도 토하고. 일단 구급차 불렀는데

알았어. 아빠가 금방 갈게. 걱정하지 말고 침착하게 있어, 송희야.”

 

/////

 

아빠는 정말로 금방 왔다. 심지어 구급차보다 빠르게 말이다.

구급차 아직 안 왔어?”

아빠는 말 그대로 주방으로 들이닥치며 외쳤다.

, 아빠. 엄마 어떻게 해?”

아빠는 재빠르게 엄마의 상태를 살피고는 판단을 내렸다.

더 늦기 전에 내가 직접 응급실로 데려가야겠다. 송희야, 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라. 무슨 일 있으면 곧바로 전화할게.”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송희가 이렇게 물었지만 아빠는 대꾸하지 않고 경련하는 엄마를 안아든 채 쏜살같이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송희는 집 앞을 통해 난 창문을 통해 아빠가 엄마를 차에 태운 다음 급가속해서 시야에서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봤다.

얼마 후 119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골목을 미끄러져 들어왔다. 송희는 난처한 마음에 집 바깥까지 나가 구급차를 맞이했고, 구급요원들에게 정황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

 

집에 혼자 남겨진 송희는 한 동안 불안 속에서 고민하다가 만약을 위해 학교에 결석하겠다는 전화를 걸었다.

, 집에 일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알려야 될 것 같다는 생각에 2층으로 올라가 잠긴 방문 너머의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엄마가 아픈 것 같아. 지금 아빠랑 같이 병원에 갔어.”

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곧이어 힘이 없고 가래 끓는 소리가 잔뜩 석인, 병든 사람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많이아프대?”

잘 몰라.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아빠가 전화 준다고 했어. 전화 오면 알려줄게.”

, 알았어.”

 

/////

 

송희는 점심때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지금 병원이며, 차도가 좋다고 대답했다. 쇠약과 스트레스 때문에 심인성 비간질성 발작이 일어난 것이었고, 피를 토한 것은 경련 시에 혀를 조금 깨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빠는 혹시 몰라 검사를 이것저것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문제가 있다는 소견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부연했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상이 없다는 말에 송희는 안도했다. 여태까지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던지 온몸이 저릴 지경이었다. 송희는 언니에게 희보를 전해주려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에 다리에 쥐가 나서 한 동안 주저앉아 있어야 했다.

언니, 엄마 괜찮대. 병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스트레스가

송희는 아차 싶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얼버무릴 말을 고르고 있는데, 그 사이 언니가 힘없이 대꾸했다.

다행이네.”

 

/////

 

엄마는 오후 늦게 아빠와 같이 돌아왔다. 여전히 기운 없고 마른 모습이었지만 적어도 아침과 같이 위급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 평소와 같은 엄마였다.

송희는 울먹거리며 엄마에게로 뛰어가 양팔로 목을 껴안았다.

엄마, 사랑해. 아프지 마.”

엄마의 눈가에도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나도 사랑한다, 송희야.”

 

<98일 화요일, 애슐리, 패밀리 레스토랑>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유성이의, 생일 축하합니다!”

촛불이 꺼지자 폭죽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파티의 주인공인 하유성은 몸을 꼬며 쑥스러워하기는 했지만, 상기된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곧 만찬과 수다가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치원 때부터의 친구인 유성이의 생일이었기에 최송희도 선물을 들고 참석했다. 바깥출입을 일절 하지 않는 언니와 집에 단둘이만 있을 엄마가 걱정되었지만, 남의 생일파티 장소에서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고 싶지는 않아 애써 쾌활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다.

 

유성아, 네 이름은 무슨 한자 써?”

식사 도중 전학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소유연이라는 아이가 유성이에게 물어왔다. 아무래도 하유성이라는 이름이 남자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인지 이름의 유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었다. 하유성은 최송희가 이미 유치원 시절에 처음 들었던 내용을 반복했다.

한자 이름이 아니라 한글 이름이야. 그런데 의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으로 지었대.”

, 특이하네? 그런데 예쁘다. 그럼 유성처럼 빛나라는 뜻인 거야?”

그런 것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태어날 때 우리 엄마가 새벽에 갑자기 진통이 왔대. 그래서 아빠가 엄마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가려고 하는데, 우리 동네에 뒷산 있지? 거기서 유성이 떨어지더라는 거야. 그거에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딸 이름으로 짓자고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고 들었어.”

, 그래?”

유연이는 입을 헤 벌리고서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원래는 나리라는 이름으로 지으려고 했다는데, 근데 난 나리보다는 유성이 더 나은 것 같아서, 다행이지 뭐.”

확실히 유성이 더 예뻐. 아버님이 그 유성을 보신 게 다행이었네.”

아빠 말로는 엄청 크고 밝은 유성이었대. 그냥 하늘에 선하나 그어지고 사라지는 유성이 아니라, 진짜 크고 오래 반짝였다고 하더라고. 감동받았다는 표현까지 썼었어.”

 

얼마 후 배부르게 먹은 여자애들은 노래방에 가서 칼로리를 소모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평소라면 최송희도 따라갔겠지만, 어제 일어난 일이 마음에 걸려 빠지기로 결정하고 슬그머니 하유성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최송희가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레스토랑을 빠져나오자 하유성이 배웅을 나왔다.

괜찮아, 송희야? 아까부터 좀 걱정 있는 표정이던데.”

티 났어?”

최송희는 진심으로 놀라 되물었다. 하유성은 근심하는 눈길로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사실, 엄마 건강이 안 좋아서. 어제 쓰러지셔서 병원도 갔다 왔어. 그래서 옆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저런. 그럼 그렇게 무리해서 생일파티에 안 와도 되는데, 말을 하지 그랬어.”

아냐, 파티는 오고 싶어서 온 걸. 그리고 병원에서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랬어. 몸에 병이 있는 건 아니고 스트레스성이라는데, 그래서 그냥 가볍게 집안일 도와드리는 정도로 챙겨드리면 될 것 같아. 무리해서 온 건 아니야.”

둘 사이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최송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먼저 가서 미안. 이제 들어가 봐. 생일 축하해!”

, 고마워.”

둘은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

 

집까지는 가까운 거리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는 버스를 타는 게 신상에 조금 더 이로웠다. 30분 정도 걸려 집에 도착해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뜻밖에도 일찍 집에 들어온 아빠가 엄마에게 한창 언성을 높이고 있는 광경이 최송희의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거실에 놓인 식탁 의자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고, 아빠는 냉장고 곁에서 팔짱을 끼고 엄마를 위압하려는 것 같은 태도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계속 그러면 당신 죽을 수도 있어!”

죽는다.’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자 최송희는 대화의 내용이 뭔지 이해하기도 전에 방아쇠가 당겨진 총알처럼 부모님 곁으로 달려갔다.

죽는다는 게 무슨 말이야?”

엄마와 아빠 둘 다 최송희를 쳐다보았다. 흘깃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곧 안색을 가다듬은 아빠가 송희에게로 다가섰다.

네 엄마가 요즘 좀 무리를 하고 있다. 아빠가 잘 얘기해서 쉬게 할 테니까 송희는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있어라.”

그렇게 말하는 아빠의 뒤로, 앉아있던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난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잔뜩 위축되어 어깨를 움츠리고 있으니 가뜩이나 말라버린 몸이 송희의 눈에는 마치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가늘어 보였다.

 

송희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엎어졌다. 정돈되지 않은 생각들이 걱정이라는 수괴(水塊) 에서 제멋대로 떠올랐다 다시 가라앉았다. 엄마와 아빠는 한 동안 아래층에서 말다툼을 이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송희의 귀에 누군가가 현관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들렸다. 송희는 아마 아빠일 것이라 생각했다.

부엌에 남겨져 있을 엄마와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 송희는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도중에 곁을 지나칠 수밖에 없는 언니의 방을 보았다. 방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

 

사실, 송희의 마음속에서는 엄마가 저렇게 되어버린 원인이 대부분 언니에게 있다는 생각이 떨쳐 낼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언니는 항상 건강이 나빴다. 최송희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과거부터, 언니는 이미 집밖에 나가지 못하게 되어버린 몸이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지금처럼 완전한 방구석외톨이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자기 방 안에 틀어박혀서 글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기는 했지만, 필요할 때는 방을 나와서 집안을 돌아다녔고, 밥도 식탁에서 같이 먹었었다.

과거의 또 다른 면면을 살펴보면, 언니는 늘 최송희에게 쌀쌀맞았다. 대놓고 괴롭히거나 나쁜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최송희는 어린아이 특유의 민감한 감각으로 언니가 자신을, 송희로서는 알 수 없었던 어떠한 이유로 원망하고 있다는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송희는 언니의 그런 태도 때문에 반대급부로 자라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언니와 친해지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언제나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을 걸었고, 대부분 거절당하는 선물을 지치지도 않고 공여했다. 부모님도 둘을 화해시키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봤지만 뾰족한 성과는 없었다. 결국 부모님은 화해보다는 둘에게 각각 공평하게 사랑을 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송희도 느리지만 꾸준히 지쳐갔다. 그런 삶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언니는 문을 잠그고 자기 방에 틀어박혔다. 지금 시점으로부터 거의 한달 가까이 지난 일이었다. 송희는 그 전날 밤에 독서실에서 돌아와 거실에서 울고 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위로하고 있던 아빠를 봤었다. 그 후로, 송희는 언니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엄마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변해버린 언니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탓인지 하루가 다르게 몸이 말라가고 안색이 나빠져만 갔다. 그렇게 오늘에 이르렀다.

 

언니.”

송희는 닫힌 문에 대고 언니를 불렀다.

.”

언니는 예의 기운 없는 목소리로 응답했다.

엄마가 몸이 안 좋아. 간식거리라도 만들려고 하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한 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없어.”

알았어.”

 

<99일 수요일, 소담고등학교 1학년 2>

학교에 가니 송희의 친구인 유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늘 궁금한 것이 많은 소유연이 유림이 본인에게 그 점에 대해서 물었다.

동생 때문에 걱정이야.”

동생이 있어?”

유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송희가 아는 바로는 유림에겐 동훈이라는 이름의 남동생 한 명 동주라는 이름의 여동생 한 명이 있었고, 둘 다 앳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걔네가 왜?”

역시 송희의 친구인 희정이가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희정이는 유림이네 집에 자주 놀러가서 유림의 여동생 쪽과 관계가 각별했다.

동훈이가. 요새 초딩들이 자꾸 뒷산에 올라가는 거 알아?”

다들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짚이는 데는 있었다. 유림이가 이어서 해준 얘기에 따르면, 근래 들어 초등학교에 일종의 도시전설 같은 게 돌아서, 잔인하고 무서운 걸 좋아하는 그 나잇대 남자애들이 자꾸만 괴담의 무대가 되는 뒷산 공터로 놀러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공터 알지? 식물이 하나도 자라지 않는 데 말이야.”

그런 데가 있어?”

유연이가 호기심어린 태도로 되물었다. 하유성이 말을 받았다.

뒷산에 올라가서 원래 길에서 좀 한참 벗어나면 있어. 꽤 넓은 공터인데, 말은 공터지만 그냥 산 한복판이야. 그런데 있던 나무도 다 고사했고, 주변에 식물이 자라지를 않아서 공터처럼 보이게 된 거래.”

뭔가 이유가 있어?”

유성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송희가 부연했다. 그 공터에 대해서라면 동네에 은근히 소문이 도는 편이라 송희도 한두 개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누가 산업폐기물을 거기에 대량으로 매설했다는 소문도 있던데, 확실한 건 아무도 모른대. 애초에 제대로 된 길이 난 곳도 아니어서 구태여 가는 사람도 드물거든.”

신기하다. 정확히 왜 그러는지에 대해서는 알아보려고 한 사람이 없는 거야?”

글쎄. 거기 땅 주인이 궁금하면 언젠간 조사해보려고 하지 않을까?”

그때 시계를 보고 수업 시작까지 오 분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유성이가 급하게 끼어들어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동훈이가 어쨌는데?”

이 질문에 유림은 깊은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애들이랑 거기 자꾸 올라가잖아. 인적도 드문데 말이야. 거기에 동주도 자기 오빠가 올라가니까 자꾸 쫓아가려고 하고, 동훈이는 그걸 또 데려가고.”

유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사래를 쳤다.

아무리 얘기를 하고 혼을 내도 안 들어. 애들 사이에서 무슨 경쟁 같은 게 붙어버린 모양인데, 그러다가 무슨 사고라도 날까봐 걱정이야.”

거기 뭐가 있다고 그렇게 기어 올라간대? 그냥 아무 것도 없는 공터잖아. 왜 올라가는 지라도 알아서 그걸 없애버리면 시큰둥해지지 않을까?”

유성이가 팔짱을 끼고 진지한 태도로 의견을 제시했다. 유림도 이 말을 그럴듯하다고 받아들였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몇 분 뒤, 명확히 짚이는 것이 없다는 듯이 근심스런 얼굴로 말을 이었다.

딱히. 동훈이 말로는 무슨 공기에 선? 선이 보이는 곳이 있다고 하던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그거 크크큭, 선이 보인다.’ 아냐?”

유연이 잘 모르는 소리를 하며 끼어들었다.

그게 뭐야?”

나스 키노코라는 일본 작가가 있는데 말이야.”

유연이 막 들떠서 설명을 시작하려는데, 수업종이 울렸다. 송희의 친구들은 할 수 없이 서로 인사를 하고는 뿔뿔이 자기 반과 자리로 흩어졌다.

 

/////

 

독서실에 가기 전에 엄마 상태나 보고 가고 싶은 마음에, 송희는 학교가 파하자 곧장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 가까이 가니 현관 쪽에서 낯선 남자 어른의 목소리가 섞인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열린 현관 앞에 서 있는, 쾌활해 보이는 중년 남자 한 명과 엄마, 그리고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세 명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사교를 위한 것으로 짐작되는 대화를 나누다가 대문이 열리는 소리에 일제히 말을 멈추고 송희를 돌아보았다. 송희를 목격한 낯선 아저씨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고개를 모로 눕히고 송희를 살펴봤다.

송희입니다. 제 둘째 딸이요.”

아빠가 낯선 남자에게 송희를 소개했다. 그 말을 들은 남자의 얼굴에 돌연히 함박웃음이 걸렸다.

! 송희! 그때 그 갓난 애기! 처음 봤을 때는 쪼끄맸는데 언제 저렇게 컸대?”

송희는 낯선 아저씨가 파안하며 자신을 반기는 것이 어색했다. 그래서 그 심정 그대로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걸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 그래그래. 학교에서 이제 돌아왔나 보네. ~ 이제 고등학생?”

고등학교 1학년이요.”

어이구!”

중년 남자는 감탄사를 연발하더니 뭐가 웃긴지 하하하거리며 웃었다.

시간 참 빠르지, 빨라. 아이고, 난 이제 가 봐야겠네. 마누라 약 지어주러 약국 가는 김에 아픈 사람이 또 있대서 들렸어.”

남자가 말했다.

사모님은 괜찮으세요?”

엄마가 남자에게 물었다.

, 그냥 감긴 거 같아. 별 거 아니고 너무 걱정하지 마.”

남자는 손을 휘휘 저으며 서 있던 현관에서 몸을 돌려 대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송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와 가까이 마주했을 때 남자의 입가에서 풍겨오는 연한 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우리 송희, 아저씨가 용돈 좀 줄게.”

남자는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힌 오만 원짜리를 두 장 꺼냈다. 송희도, 엄마 아빠도 난처해하며 사양했지만 남자는 껄껄 웃으며 송희의 손에 돈을 쥐어줬다.

학용품도 사고, 여고생이니까 요새는 화장품도 사야지. 이걸로 되려나.”

이것도 너무 많아요. 감사합니다.”

남자는 연신 하하하하고 웃으며 대문 앞에까지 가서 다시 한 번 몸을 돌려 송희 가족을 한 차례 일별했다. 그리고 송희의 아빠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 집구하러 왔을 때는 외국에서 왔다고 말투도 어눌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얘기해보니까 완전히 한국사람 다 됐어. 그냥 토종 한국인이야!”

송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 말에 파안대소했다. 하지만 송희는 외국에서 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멀뚱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 가져다 준 약은 밥 먹고, 한 봉씩 뜯어서 먹으면 된대.”

,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남자는 마지막으로 손을 한 번 흔들고는, 잡고 있던 대문을 닫고 송희의 집을 떠났다.

 

외국에서 왔다는 게 무슨 말이야? 우리 옛날에 외국에서 살았어?”

송희는 새로 알게 된 그 사실이 특히 궁금해서, 아빠가 일하는 시간에 왜 집에 있냐는 질문보다 먼저 그 점에 대해 물어봤다. 아빠가 엄마를 부축해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며 대답했다.

. 원래 엄마랑 아빠는 영국에서 살았었어. 그런데 사정이 생겨서 한국으로 들어온 거지. 송희가 한 살 겨우 넘었을 때의 일이야.”

.”

송희로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더 자세하게 얘기해줄게.”

지금 얘기해 주면 안 돼?”

아빠 일 나가야 해서 그래.”

 

/////

 

밤이 깊었지만, 늦게까지 숙제와 복습을 병행하던 송희는 막 침대에 누워 겨우 선잠에 든 상태였다. 누군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와서 송희는 살짝 든 잠에서 깼다. 아마 아빠일 것이라 생각했다.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가끔 깊은 밤에 차를 타고 혼자 어디로 나가고는 했다. 이미 최송희는 이 사실을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물어보지는 않았다. 건강했던 시절의 엄마가 그런 아빠를 마중 나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막연히 일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송희는 누운 자리에서 뒤척였다. 아까 낮에 들었던, 외국에서 살다왔다는 얘기도 그렇고, 송희는 자신이 가족에 대해 모르는 점에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했다. 사실 송희는 아빠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모른다. 아빠가 회사에 다닌다.’라고는 말했지만 근무시간이 상상 이상으로 탄력적이라는 점을 보자면 아무래도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내면화하기에는 미심쩍은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옆 동네에 놀러간 반 친구가, 최송희의 아빠가 폐냉장고를 트럭에 싣고 운전하는 것을 봤다고 한 적이 있었다. 송희가 알기로 아빠는 트럭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언제나 승용차를 타고 집을 나섰고, 같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한 걸까. 무언가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닐까. ‘회사라고 지칭될 수 있는 업종은 송희의 생각 이상으로 많을 것이고, 그중에는 송희가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 태반일 것이다. 트럭은 회사 차일 수도 있고, 냉장고를 옮기기에 이른 정황은 생각하기에 따라 수백 종류의 합당한 이야기를 상정할 수 있다. 밤에 나가는 것은 야근이 많다던가, 그런 게 아닐까.

이처럼 혼자서는 결론을 낼 수 없는 시끄러운 생각에 시달리던 송희는 새벽 3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910일 목요일, 소담고등학교 1학년 2>

송희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등교에 성공했다. 수업 시작 직전인 교실에 들어가서 곧바로 자기 자리를 찾아 않았는데 짝꿍인 차현진이 울상이었다. 물어보지 않으면 결례라고 생각될 정도로 노골적인 태도였다.

무슨 일 있어?”

현진은 송희를 흘긋 보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아니, 어젯밤에 놀러갔다 오다가 휴대폰 잃어버렸어.”

휴대폰? 어쩌다가?”

몰라. 같이 있던 애들은 못 봤다고 하고, 아마 택시에서 잃어버린 것 같은데 위치 추적도 안 되고.”

현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다시 한 번 깊이 한숨을 쉬었다. 현진의 휴대폰이라면 송희도 기억하고 있다. 산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폰이었고, 특히 분홍색 케이스 뒷면에 남자친구랑 찍은 사진을 스티커처럼 붙인 것도 아니고 아예 인쇄를 해 놨기에 인상에 강하게 남은 것이다.

택시기사 중에는 손님이 놓고 간 휴대폰을 경찰서에 맡겨주는 친절한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않고 거래하는 불법 중개업자들에게 팔아치우는 사람도 있다. 특히나 분실한 휴대폰이 아이폰이라면, 얼마 안 있어 중국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컸다. 그런 생각이 송희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말해서 부스럼만 생기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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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교시 즈음해서 유성이가 수학 숙제를 해 왔냐고 물어서 가방을 뒤지던 송희는, 자신이 숙제를 집에 놓고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제 밤늦게까지 애써서 끝내 놓고는 오늘 아침에 서두른다고 고스란히 책상에 두고 나온 것이었다.

어떻게 하지. 그거 내신에 들어가잖아.”

성적은 송희가 크게 관심을 두는 분야 중 하나였다. 학교 내에서 송희의 성적은 상위권이었고, 성실한 성격이 교사들 사이에서 좋게 평가받아 평판도 괜찮았다.

수학한테 얘기해서 좀 늦춰달라고 하면 안 되나?”

유성이가 말했다.

안 될걸. 이런 걸로 괜히 문제 생기는 걸 바랄 사람이 아냐.”

가방을 세 번씩이나 뒤졌는데도 역시 숙제는 없었다. 집에 두고 온 것이 확실했다. 엄마가 운전을 할 수 있으니 여차하면 엄마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송희의 생각이었다.

점심시간 때 집에 갖다 와야겠어.”

. 그럼 지금 매점 갈래? 갔다 오면 점심시간 끝날 텐데 도중에 뭐라도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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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동네는 한적했다. 송희는 그런 분위기에서 연유하는 한가하고 낯선 느낌을 즐기며, 적막한 동네를 걸어 자기 집 현관 앞에 도착했다. 송희의 집도 마찬가지로 괴괴한 공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런 고독한 환경에 아픈 엄마 혼자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 송희의 마음을 따갑게 했다.

송희는 초인종을 누르고 얌전히 기다렸지만 집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불안한 생각이 든 송희는 초인종을 다시 누르는 대신 가방에 든 집 열쇠를 현관문 열쇠구멍에 꽂고 돌렸다. 하지만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송희는 현관문을 잡아 열고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엄마!”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막상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주방까지 들어가 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모님 방을 열어봐도 사람의 모습은 없었다.

송희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현관 근처에 세워 놓은 괘종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제 시간에 맞춰 학교로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송희는 자기 숙제도 챙기고, 2층도 수색해볼 겸 계단을 올라갔다. 2층 복도도 한산했다. 하지만 한 가지 평소와 달라진 점이 있었는데, 언니의 방문이 살짝 열려있다는 것이었다.

송희는 자기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가 언니 방 안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이 들었다. 송희는 방문 앞에서 언니에게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다가서자 방문이 열려진 틈을 통해 곧장 언니가 사용하는 침대가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누워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송희는 걸음을 멈췄다.

그것은 분명 장난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침대에는 비닐과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암녹색 덩어리처럼 보이는 괴물이 누워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점액 끊는 소리가 섞인 규칙적인 호흡과, 맥동하는 몸의 일부분이 그것이 명백히 살아있는 존재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었다.

송희는 그 끔찍한 괴물의 시야 밖에 있는 부분까지 머릿속에서 그려낼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의 꿈에서 주기적으로 등장했던, 밤하늘을 가리는 괴물의 형상이 그대로 현실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송희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대로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오리걸음으로 겨우겨우 1층으로 내려왔다. 어느 순간부터 막혀버린 호흡에 괴로워하면서 송희는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굴러 내려와 흙바닥에 엎어졌다.

 

거기서부터 호흡이 다시 고르게 되는데 몇 분정도가 흘렀다. 그때 집 뒤편에서 지하실로 이어지는 철제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송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심코 반대편 모퉁이로 몸을 숨겼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 같다는 죄책감이 무의식적으로 이끌어낸 행동이었다.

모퉁이에서 고개만 내민 송희가 본 것은, 지하실 쪽에서 돌아 나온 엄마였다. 엄마는 숨어 있는 송희를 눈치 채지 못한 채, 기운 없는 몸짓으로 현관문을 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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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는 머릿속에 갈마드는 수많은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탓에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있었다. 하지만 곧 사태를 파악해야한다는 작심을 짜내고는 엄마와 대면하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가려했다.

하지만 어쩐지 결정적인 부분에서 용단이 서지 못했다. 2층의 언니 방에 있는 괴기스런 존재와 엄마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정황이 갖가지 끔찍한 생각들을 송희의 머릿속에 피워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송희는 지하실을 생각해냈다. 엄마가 왔던 길을 따라가면 지하실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길을 그대로 짚어 갔을 때, 송희는 언제나 잠겨 있던 지하실 문의 자물쇠가 사라져 있는 것을 보았다. 지하에 무언가 이번 일을 정리해줄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송희를 사로잡았다. 송희는 조심스럽게 철제문을 열고 아래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마치 사막에 조난당한 사람이 물을 갈구하는 것처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지의 혼돈 속에서 길을 밝혀줄 정보가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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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은 언제나 송희 곁에 있었지만, 송희는 지하실이 가족에 의해 사용되는 때를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최송희가 지하실에 내려가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하실로 이어지는 철제문에는 언제나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최송희는 그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한 번은 동네에 지독한 약품 냄새가 나서 소방관들이 출동한 일이 있었다. 송희가 어릴 때의 일이었다. 그 날 회사에 나갔던 아빠가 느닷없이 집에 와서 송희를 데리고 뜬금없이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제야 최송희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었다. 송희는 그때부터 자기 집이 무언가 뒤가 구린 일을 하고 있다는 낌새를 느꼈다. 그리고 그런 좋지 않은 예감 때문에 아빠의 직업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의식적으로 꺼려왔던 것이었다.

 

계단 끝은 곧바로 넓게 개방된 공간으로 이어졌다. 계단은 그 사각형 공간의 모퉁이에서 끝났고, 지하실에 들어선 송희는 그 안에 존재하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지하실 내부 공간은 온통 조잡하게 생긴 기기들과 약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기계들은 마감이 형편없어 군데군데 전선이 드러나 있는 것이 기성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누군가 이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들을 이곳저곳에서 유용한 부품을 사용해 직접 조립한 것 같았다. 기계에 대해 완벽한 문외한인 송희가 보기에도, 그 기계들은 엄청나게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졌고 그러면서도 설계자가 가진 고도의 지성을 암시하는 세련성이 면면에서 묻어 나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기계는 작동하고 있었다. 그 거대함에 어울리지 않게도 소음을 거의 내지 않으면서, 마치 혈관이 맥동하는 것처럼 고요하고 꾸준히 말이다.

송희는 넋이 나간 채로 그 기계들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벽면의 선반들과 수납장 등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약품병들이 가득 차 있었다. 시드마-알드리치라고 적혀 있는, 비슷한 디자인의 라벨이 붙은 유리병에 든 종류들이 가장 많았고, 그 외에 작은 병에서 큰 병까지 다양한 약품들이 방의 곳곳에 산재되어 있었다. 삼전이라는 데서 생산했다고 되어 있는, 클로로포름이 담긴 말통을 송희가 실수로 차는 바람에 지하실 안에 한 순간 금속성의 소음이 울려 퍼졌다.

 

방 가운데 놓인, 싱크대가 딸린 실험대 위에는 유리 초자들로 조립된 일종의 반응기가 세워져 있었다. 약품들이 유리관과 플라스크 내부를 움직이며, 끊임없이 끓어오르고, 냉각되어 떨어지고, 섞이고, 색이 변했다. 그 초자기구 근처에는 낱장으로 된 문서들이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다.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화학교과서에서 본 기억 때문에 일견 익숙해 보이기는 하는 원소기호들과 반응식이 빼곡히 적힌 문서들도 있었고, 반면에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이 들게 하는 문자가 가득 수놓아져 있는 종이도 있었다.

전부 엄마의 둥글둥글한 글씨체였다.

 

전체적으로 지하실은 무슨 작업장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인상에 방점을 찍는 것이, 지하실 가장 구석 쪽에 연이어 놓인 스테인리스 스틸 용기였다. 용기들은 투명한 고분자 막에 의해 일괄적으로 덮여져 있었는데, 그 내부에는 노란색 혹은 초록색을 띤 투명한 용액이 담겨 있었고, 용기 바닥에서 회로기판으로 보이는 것들이 거품을 내고 있었다.

 

송희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다 지하실 반대편 모퉁이에 쌓여 있는 분해된 전자제품들을 발견했다. 개중에는 휴대폰 무더기도 있었는데 그중 맨 위에 놓인 휴대폰은 오늘 아침 차현진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택시에서 분실했다는 아이폰이었다. 뒤집힌 케이스에 차현진과 남자친구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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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으로 들어온 최송희에게는 집이 이전과는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따뜻하고, 친숙한 자신의 집이 아니라, 마치 남의 집 같은 낯설음이 집 안을 떠도는 공기 분자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이층에서 엄마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송희는 그 목소리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엄마의 외침은 언니의 방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너 죽으면 나도 죽어버릴 거야!”

그렇게 말하고 엄마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알았어. 알았어, 엄마.”

언니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곧 사위가 고요해졌다. 송희는 천천히 열려 있는 언니의 방으로 다가갔다. 심하게 뛰는 심장 때문에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송희에게는 자신이 이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는 일종의 고집 같은 것이 자라나 있었다.

엄마는 침대 곁에 있었다. 그 괴물도 여전히 침대 위에 있었다. 그리고 언니 목소리를 내는 괴물은 엄마의 몸을 탐욕스럽게 빨아먹고있었다. 언니가 그러는 동안 엄마는 기력이 빠지는지 침대에 상반신을 엎어놓고 괴로운 어조로 연신 끙끙댔다.

아악!”

최송희는 자신도 모르게 짤막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잔뜩 긴장하고 있던 다리의 근육을 사용해 최대한 빠르게 뒷걸음질 쳐 계단을 내려갔다.

누구야!”

엄마가 고통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곧 언니 방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는 동선이 계단에서 곧바로 내려다보인다는 점을 자각한 송희는, 그렇게 움직이는 대신 자기 신발을 손에 들고 곧바로 부모님 방으로 숨었다.

송희는 안방 문틈을 통해 엄마가 비틀거리는 위태로운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엄마가 송희 자신을 인식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일층으로 내려온 엄마는 허리에 한 손을 짚고 다리를 절면서도 현관도 열어보고, 일층 온 곳을 끙끙대며 돌아다녔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서 송희는 자신이 절대로 봐서는 안 될 것을 보았다는, 일종의 강렬한 수치감을 느꼈다. 엄마가 애써 숨기려는 소중한 무언가를 억지로 열어 폭력적으로 소비한 것만 같은, 불가해한 죄의식이 송희의 마음을 채웠기 때문에 송희는 자신이 왜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억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엄마의 시선으로부터 숨으려 했다.

송희는 엄마가 곧 자신이 숨어있는 안방으로 올 것이라는 점을 생각했다. 그래서 서둘러 옷장 문을 열고, 가방에 신발을 넣어 품에 안은 뒤 옷장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예상대로 엄마는 안방으로 왔다. 발자국 소리와, 통증에 시달리느라 통제할 수 없이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렸다. 엄마는 그대로 방 안을 한차례 순회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다. 송희는 참고 있던 숨을 내쉬고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옷장 문을 단박에 열고는 옷장 바깥으로 쓰러졌다.

그 와중에 옷장 구석에 옷으로 덮여져 있던, 나무로 된 바구니가 송희의 발에 차여 함께 딸려 나왔다. 안에 천이 덧대진, 낡고 오래되고 자그만 아기바구니였다. 그 또한 송희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바구니 안에 편지지가 한 번 접혀진 채로 놓여있었다. 송희가 그 편지지를 집어 펼쳐보니 노랗게 바래버린 바탕에 떨리는 필체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너를 버려서 미안해. 용서해주렴. 하지만 난 너무 힘들었어.’ 운운하는 투로, 절절하게 사죄하는 내용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담겨져 있는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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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는 언니의 방으로 올라갔다. 여태까지의 정황으로 보았을 때, 언니는 일종의 기생괴물인 것이 틀림없었다. 어디선가 주워져온 기원을 알 수 없는 괴물이 우리 집을 차지하고 엄마에게서 양분을 빨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송희는 어린 시절부터 언니에게 과도하게 쏠리는 애정이 불만스러웠다. 언니가 자신에게 올 애정을 훔쳐가고 있다고 내내 느껴왔다. 그런데 자신의 애정을 도둑질한 것이 진짜 인간도 아닌 저런 괴물이었다는 점에 송희는 강렬한 분노를 느꼈다. 거기에 이제 와서는 엄마라는 존재 자체를 자신에게서 갈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바깥에서 유래해 자신이 차지한 장소를 온통 뒤흔들어 놓고, 숙주의 양분을 갈취해가 결국 죽게 만드는 저런 생물을 병원성 기생충 외의 어떤 표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침대 위의 괴물은 방으로 들어서는 송희를 보고서 오징어의 눈을 닮은 소름끼치는 광학기관을 팽대시켰지만 그 외의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송희는 책상 한편에 아주 두꺼운 양장본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표제에 최신 신경해부학이라고 쓰여 있는 낡은 책이었다. 송희가 책을 들어 올리자 책 아래에 깔려 있던 종이들이 정전기 때문에 딸려 나오다 곧 펄럭거리며 떨어졌다. 그 노랗게 빛바랜 종이에는 인간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과 뇌의 시상단면이 스케치되어 있었다. 다양한 각도로 뇌가 해부된 아이의 모습이 다른 종이에도 잔뜩 그려져 있었다. 이 끔찍한 괴물이 인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슨 음모를 꾸미는 것이 틀림없었다.

가족을 위해, 그리고 혹시 모를 다른 희생자를 위해 송희 자신이 이 순간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괴물은 여전히 같은 자세로 침대에 누워 역겨운 광학기관으로 최송희의 움직임을 쫓으며 점액이 끓는 것 같은 정체불명의 소음을 내고 있었다. 송희는 무거운 책을 두 손으로 들고 괴물의 머리로 생각되는 부분을 내려쳤다. 계속해서, 버둥대는 괴물의 움직임이 멎고, 그 형체가 2차원으로 확장될 때까지. 자신이 고함을 지르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고,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기생충이 충분히 구제되었다고 생각될 때까지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는, 모든 것이 마무리되자 책을 내던지고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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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는 그대로 독서실로 향했다. 거기서는 문을 닫고 조용한 가운데 혼자 있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독서실로 가는 길 위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송희를 흘긋거렸다. 군데군데 초록색 점액이 묻어 있고, 미친 것 같은 눈을 하고 있는 교복 입은 여학생을 보고, 그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상상한 것일까?

 

<911일 금요일, 좋은독서실>

해가 넘어가고 날짜가 바뀌었지만, 송희는 여전히 독서실 안에 숨어있었다. 책상 아래에 몸을 웅크리고 같은 자세로 열세시간 가까이 있으니 온 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송희는 그런 고통을 잠을 자며 듣는 작은 말소리처럼 흘려보냈다. 머리는 멍했고, 감정은 마비되어 있었다. 육지의 해면처럼 바닷물 대신 공기를 들이마시고 걸러내기만 하는, 뇌라는 것이 없는 하등한 동물이 된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전날 오후 2시쯤부터 친구들의 전화가 잔뜩 걸려왔지만 하나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걸려온 것은 아빠의 전화였다. 송희는 구겨진 관절을 억지로 비틀면서 독서실을 나섰다. 시간은 새벽에 가까웠지만, 몇몇 방에는 여전히 전등이 켜져 있었다.

 

심야의 거리는 한산했다. 행인은 물론이고 차도 제대로 다니지 않아 마치 멸망해버린 세계에 덩그러니 놓여버린 인상이 들었다. 송희는 전화를 받았다.

송희니!? 송희야?”

분명 아빠의 목소리였다.

, 아빠.”

너 괜찮니? 지금 어디니?”

아빠, . 언니를 죽인 것 같아.”

송희는 울기 시작했다. 전화기 너머의 아빠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근데 언니가. 진짜 언니가 아니야. 사실은 괴물 같은 거라서, 엄마를 잡아먹으려고 해서, 그래서 죽인 거야.”

송희야.”

엄마는 괜찮아?”

송희야, 지금 어디니. 아빠가 금방 데리러 갈게.”

나 독서실이야.”

 

십 분 정도가 지나자 아빠의 승용차가 굉음을 내며 독서실 앞에 급정차했다. 아빠는 헐레벌떡 운전석에서 내려 송희에게 다가와 송희를 껴안았다. 다시 울음이 터졌다. 송희는 마음속에 침전된 공포와 고통,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을 일시에 토해내려는 것처럼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

 

잠깐 나랑 같이 가 볼 데가 있다.”

아빠가 조수석에 앉은 송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어때?”

송희가 물어왔지만 아빠는 대답할 말을 고르지 못하는 것처럼 연신 침만 삼켰다.

두 사람을 태운 차는 인적 없는 길을 빠른 속도로 달렸다. 곧 뒷산 약수터로 이어지는 등산로 초입에 접어들었다. 차가 다니도록 되어 있는 길이 아니었지만, 아빠는 무리를 하며 포장되지 않은 산길을 따라 차를 끌고 올라갔다.

 

그렇게 한계까지 차를 몰고 도착한 곳이 등산로 중간의 널찍한 공터였다. 한편에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비치되어 있고, 다른 편에는 널찍한 평상이 놓여 있어서 등산하는 사람들이 쉬거나 운동을 하도록 조성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내리자.”

아빠는 운전석에서 내린 뒤 조수석 문을 열어 송희가 제대로 내릴 수 있도록 도왔다.

여기부터는 길이 험하다. 업어 줄게.”

둘은 그렇게 산길을 지나갔다. 송희는 몸도 마음도 지쳤기에, 아빠 등에 업힌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오랜만에 안겨보는 등이 포근하고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

 

다 왔다.”

그곳은 예의 풀이 자라지 않는다는 공터였다. 아빠는 송희를 조심스럽게 흙바닥에 내려놓았다. 땅에 발을 디딘 송희는 잠시 비틀거렸지만 금방 균형을 잡고 스스로 설 수 있었다. 정말로 주변에 식물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말로만 듣다가 실제로 와서 보니 확실히 예상 외로 인상적이었고, 부분적으로는 경이롭게까지 느껴지는 정경이었다.

아빠는 공터의 한 복판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은색으로 빛나고, 노골적으로 미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은 막대기 모양의 기구를 꺼냈다. 아빠가 그것으로 공간을 그으니, 허공에 그려져 있는 뒤틀린 선을 따라 새로운 공간이 열렸다.’ 송희의 인지로는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공간의 복판에는 망가진 비행체가 땅에 박혀 있었다. 아빠는 전혀 거리낌 없다는 태도로 비행체에 다가섰고, 그러자 비행체 아랫부분에서 직사각 형태의 입구가 열렸다.

들어가자.”

아빠는 송희의 손을 잡고 비행체 안으로 들어갔다. 비행체 내부에는 온갖 복잡한 정밀기기들이 눈을 돌아가게 만들 정도로 한가득 차 있었다. 하나같이 지구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이질적이고 기묘한 형상이었다. 그리고 내부의 한편에는 다양한 광채를 내는 금속판과 은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송희는 이제는 반쯤 자포자기 상태로, 이 모든 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 대신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아빠의 입에서 튀어나올 고백을 기다리며 단 한 마디만을 쏘아붙였다.

이게 다 뭐야?”

아빠는 이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다음과 같은 문장을 통해 긴 고백을 시작했다.

 

/////

 

우리는 17년 전 지구에 도착했어.”

아빠의 가족은 17년 전 태양계를 지나던 중 우주선이 기기 결함에 의해 망가지자 지구에 불시착했다고 했다.

 

/////

 

우리는 원래 다른 행성에서 광물을 채굴하거나 운송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었단다. 그러다가 사고가 일어난 거지. 그때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어. 간신히 우주선을 투명화시키고 비상착륙에 성공했지. 목숨은 건졌지만, 우주선은 반파되었고 말이야. 지금의 우주선은 수리를 한 상태야. 아직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처음 지구에 추락했을 당시에는 정말 고철덩어리에 불과했지.

지구는 다행히 부가적인 장치의 도움 없이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허탈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어. 우리 모두 절망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주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야. 처음에는 아기 울음소리가 뭔지도 몰랐어. 다들 겁이 나서 숨고 난리도 아니었지. 그러다 곧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을 찾아보니 어떤 아기가 바구니에 담겨져서 산에 버려져 있지 뭐니.

혹시나 싶어서 우주선에 장착된 간이 진단장치를 사용해보니 치명상을 입고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어. 저기 저 원통형 기계 보이지? 저게 바로 그 장치란다. 그 아기는 머리 절반이 돌에 의해 짓이겨져 죽어가고 있었어. 하지만 어쨌든 숨이 붙어 있었지.

우리 가족은 그 아기를 보고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어. 비록 태어난 행성과 종은 달랐지만, 그 아기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우리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었거든.

그건 부모의 마음이었다고 본다. 방금 태어난 아기를 안고 신이 준 선물이라 생각하며 감사하는 그런 마음이었어. 이 버려진 아이를 이제는 우리 손으로 길러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우리는 이 낯선 행성에서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던 거야.

우리는 잠시 동안 우주선 안에서 생활하면서 지구의 삶에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준비를 했어. 나는 고향에서 기계공학을 배웠었다. 네 엄마는 광물의 전문가였지. 나는 망가진 우주선의 자원을 유용해서 우리의 모습을 인간과 똑같이 보이게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기계를 가지고 틈틈이 마을로 내려와서 인간 사회에 필수적인 지식을 익혔어.

네 언니는 치료사 과정을 진행 중이었단다. 외부 우주를 탐사할 때는 의료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정말로 큰 힘이 되거든. 우리가 인간의 화폐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얼마의 돈을 손에 넣었을 때 네 언니가 처음으로 산 것은 해부학 독본이었어. 그 책을 통해 인간의 몸에 대해 공부했고, 그렇게 얻어낸 지식을 통해 아기의 망가진 두개골과 뇌를 복구했지.

우리 종족은 스스로의 몸을 액화시킨 다음 다른 개체에게 주입해 치유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물론 인간이 신장이식이나 간이식을 하는 것처럼 일단 액화와 주입을 진행한 이후에는 후유증이 상당하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냐. 거기에 그 아기는 세포라고 하는, 우리와는 다른 몸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치유 과정에 예상 외로 실수가 많았단다. 인간의 뇌라는 것은 단순히 세포를 증식시키는 것 외에도 그 세포 간의 연결까지 세밀하게 조절해야 해서 무리를 해버렸던 거지. 네 언니는 이 치유과정 이후에 예상치 못했던 심각한 후유증을 얻어야 했어. 그렇지만 네 언니는 치유사로서 그 사실을 당당하고 어른스럽게 받아들였단다.

우리는 그 이후 인간으로서의 신원을 만들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했다. 일부는 아기가 인간 사이에서 인간처럼 살도록 만들기 위해서였고, 일부는 우리도 숨어 지내는 생활을 슬슬 그만두고 싶었기 때문이었어. 집을 구할 때 고생을 많이 했지. 처음부터 진짜 인간처럼 행동하고 말할 수는 없었거든. 책에서 간접적으로 배운 것과는 셀 수 없이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더구나. 나중에는 여차하면 외국인이라고 둘러댔지.

집을 구했지만 돈은 계속 필요했어. 그래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한 게 도시 광산이라는 업종이었다. 아빠가 차를 타고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금이나, 여러 유용한 금속을 담고 있는 부품을 모을 수 있을 만큼 모아서 집으로 가져왔지. 운이 좋으면 큰 백색가전을 얻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아주 기분이 좋았어. 그런 큰 녀석들은 다른 동네에 마련한 작업장에서 해체해 집으로 운반했지.

이렇게 아빠가 부품들을 모아오면 엄마가 지하실에 있는 작업장에서 금속을 정제했어. 그렇게 나온 것 중에 금 같은 귀금속은 일부를 팔아서 돈으로 바꿨고, 나머지 금속들은 우주선으로 운반해 가공을 했단다. 바로 여기서 말이야. 우주선을 고치기 위해서였어.

지구의 생활에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네 엄마는 자주 고향을 그리워했어. 나도 그랬고 말이야. 고향별에는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계시거든. 옛 친구들도 거기에 있지. 그러니 우주선을 완전히 고쳐서 원래 살던 별과 왕래가 가능해지면 참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언젠가 우리가 데려온 아기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함께 아빠와 엄마의 고향별로 휴가를 떠난다는 계획도 세웠던 기억이 나.

그러다 네 언니에게 문제가 생겼단다. 우주선에 있는 간이 진단기기로는 잡아내지 못했던 문제가 계속 곪아가다가 결국 터져버린 거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살아있을 수 있는 시한이 몇 년 정도로 줄어들었어. 하지만 네 언니는 의연했다. 네 언니는 치유사였고, 우리 종족에게 치유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많은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이야. 그래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지. 하지만 네 엄마는 그러지 못했어. 너도 이해할 수 있겠지.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아는 일이 견디기 힘든 거라는 걸.

네 언니는 스스로를 방에 가둬야 했어. 장치를 통해 신체를 변형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집중력과 체력이 필요하거든. 그리고 네 엄마는 언니에게 스스로의 몸을 먹였다.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지. 하지만 그 때문에 네 엄마는 몸이 점점 약해졌어. 우리는 언젠가 받아들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지켜보기로 했단다.

 

/////

 

엄마는 어디 있어?”

송희는 아빠에게 물었다. 방금 들은 이야기는 한 자리에서 소화하기에는 너무 길고 낯설었다. 그리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아빠는 한 순간 대답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떠오른 감정을 특정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으로 송희를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말을 고르려 했다.

엄마한테 무슨 일 생겼어?”

네 행동은!”

아빠는 터져 나오는 감정을 절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한 발 물러서 침착함을 되찾았다.

충분히 이해받을 수 있다. 넌 우리 가족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거야. 네 엄마도, 네 언니도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저, 우리 가족에게는 부족했었고, 소통이 부족했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잘못이 있다면 네가 아닌 나와 엄마의 잘못이다.”

아빠의 말은 지난해 보였지만, 행간에 묻어 있는 진의는 명백했다. 부정해보려 했으나 결국 그럴 수 없었다. 송희는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면서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내려다본 바닥은 낯설고 이질적인 소재와 색채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현실감은 단단했다. 송희는 견디지 못하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내가!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했던 건데! 엄마가 그렇게 된 게 언니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말도 안 돼!”

송희는 자리에 엎어져 손톱으로 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검지의 손톱이 뒤집어졌지만 송희는 통증을 인식하지 못했다. 아빠가 달려와 송희를 껴안았다. 아빠 또한 울고 있었다.

우리가 네 의사랑 상관없이 너를 살렸고, 너를 거둬 자식으로 삼았다. 그런 너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어. 그랬던 것을 절대 후회하지도 않아. 네가 준 희망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어. 너에게 사실을 알리는 시기를 너무 늦게 잡은 것 같구나. 이제와 보니 우리가 그 점을 잘못 판단했어. 너를 우리의 자식이라고 했으면서 우린 너에게 너무 많은 것을 숨겼어. 그것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거야. 미안하구나.”

엄마는. 엄마는 진짜 죽은 거야?”

엄마는 약해져 있었어. 몸이 약해졌기 때문에. 마음도 버티지 못했던 거야.”

아빠는 곧 그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는 점을 자각했다. 그러나 마음도 버티지 못했다라는 말의 이면에 담긴 무서운 진실을 송희는 그 즉시 이해해버렸다.

송희는 이성을 잃어버렸다. 마구 울부짖고 발버둥 치며 자신을 껴안고 있던 아빠에게서 벗어났다. 그리고 우주선의 문을 열었다. 아빠와 송희가 들어왔던 문은 닫혀져 있었지만, 문의 우측 중간쯤에 유리에 덮여 있는 검은색 사각형이 있었다. 인간 기준으로 문을 여는 스위치로 인식하기에 충분한 위치와 형태였다. 송희가 그 부분을 누르자 정말로 문이 열렸다. 그것은 아빠가 송희가 나중에 고향으로 가는 우주선에 탑승했을 때를 대비해 송희의 지문을 인식하도록 특별히 달아놓은 것이었다.

이제는 우리 둘 뿐이야. 계속해서 가족으로 함께 살아가자!”

아빠는 송희의 뒤에서, 송희를 안기 위에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이렇게 외쳤다. 그러나 그 말의 어조에는 확신이 없었다. 그는 말 그대로 지푸라기를 잡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었다.

 

/////

 

송희는 달렸다. 방향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머릿속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생각이 바람에 날아가 버리기를 바라며 끝없이 달린 것이다. ‘바깥에서 유래해 자신이 차지한 장소를 온통 뒤흔들어 놓고, 숙주의 양분을 갈취해가 결국 죽게 만드는 저런 생물.’

송희는 자신의 언니를 죽이기 위해서 스스로를 정당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정을 극복하고, 심정적으로 친족살해에 해당하는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르기 위해 마련한 기생괴물의 정의는 실제로는 최송희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이었다.

최송희는 이런 모순을 견뎌내지 못했다. 송희는 마음을 할퀴어대는 냉혹한 진실을 품에 안은 채, 원시림 속으로 도망갔다. 그 후로 송희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918일 월요일, 유성채소>

하유성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중간고사 대비를 위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에는 여전히 최송희와 그의 가족들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증발한 사건에 대해 무성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송희와 친하다고 생각한 유성에게는 걱정이 반, 섭섭함이 반이었다. 소문 중에는 제3금융권과 연관된 흉흉한 이야기도 있었다. 유성은 부디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랐다.

유성은 집 앞에 도착해 습관적으로 골목길의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뒷산에서 무언가 반짝거리는 것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빛은 믿기지 않는 속도를 가진 채 지표에서 하늘로, 대체 어디까지 올라갈 생각인지 모를 정도로 끝없이 떠오르다가 한 순간 작열하는 큰 빛으로 화하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유성이 외에도 몇몇 사람들이 그 괴현상을 목격했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중에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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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쓴 이야기입니다. 미스터리물로서의 느낌을 메인으로 삼으면 글이 좋아질까 싶어서 

이것저것 스타일을 바꿔보기는 했는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ㅠㅠ 

어느새 새해네요.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도 잘 쇠시고요!

댓글 2
  • No Profile
    최우환 17.02.03 11:19 댓글 수정 삭제

    잘 봤습니다. 그저 단역인 유성이의 이름이 알고보니 떨어지던 우주선에 유래했다는 게 재밌네요.    

  • 최우환님께
    No Profile
    글쓴이 MadHatter 17.02.04 00:39 댓글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저번 1월 3일에 있었던 사분의자리 유성우 덕분에 떠올린 착상이었죠

    깐에는 복선이랍시고 넣었던 거였는데,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해 준 것 같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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