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더 원 오렌지







 미가 애들 많이 망쳐놨지빅엘도 안 들어본 놈들이 리얼힙합이니 스웩이니웃기지 않냐?”

 “……취했냐?”


 서준은 느닷없이 언성을 높였다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것을 느끼며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짓도 이제 지긋지긋해나도 돈 안 되는 음악 때려치고 취직이나 할까?”


 그러면서 시선은 위아래로 나를 훑는다배신자’ 그의 본심은 항상 나를 이렇게 불렀을 것이다같이 음악하자면서 취업하니까 좋냐어쩔 수 없었어집안 사정도 안 좋고음악이야 늘 하고 싶었지근데 당장 돈 벌수 있는 게 나 하난데 어떡해현실적인 사정을 고려하기에는 서준은 지나치게 고고했고 그런 그에게 나의 대답은 항상 구차한 변명처럼 들렸을 테니까.


 “옛날 생각 난다그땐 재밌었는데.”


 학창시절만이 그와 나의 유일한 공감대일 것이다멜론 최신 인기가요 대신 비기와 투팍을 듣고낯 간지러운 발라드 대신 808 베이스라인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던 그 시절 우리는 뮤지션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더랬지힙합은 간지나는 것이었고그때는 모든 게 쉬워보였다한 시간에 5만원 받던 신촌 녹음실에서 침 튀겨가며 녹음한 벌스를 힙플 자녹게에 올렸고 악플이 달리면씨바 네가 뭔데 나를 평가해꼭 마이크 들 용기도 없는 좆문가들이 키보드만 잡으면 기가 살아서 REAL을 논한다고 한바탕 키배를 벌이곤 했다.


 “……작업은 잘 되냐?”

 

 빈 술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물었다그는 고개를 비딱하게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술을 받는 얄팍한 손목 아래 빼곡하게 들어찬 타투가 불편했다.


 “그게 뭔 의미가 있냐너 말고 들어줄 사람도 없을 텐데돈 자랑여자 자랑도 안하는데 힙합 딱지 붙이고 팔아봐야 아무도 안 사. 그게 요즘 음악인데 뭘.

 “……지랄하고 있네.”


 술잔을 비운다난 파일노리에서 100원 주고 다운받은 큐베이스로 비트를 찍었고넌 항상 트랩 말고 붐뱁을 원했어인생이 안 담긴 가사는 싫다고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존나 오그라드는 말이지만 그 점에선 우린 취향이 같았지.

기억나우리 둘이 항상 만나서 하던 이야기수능이 끝나고 우리는 30만원에 홍대 어딘가에 있던 조그만 공연장을 빌렸고 전교를 돌면서 표를 팔았지비가 온 탓에 정작 사람은 몇몇 안모였지만 그래도 난 좋았어음악 한다고 주위 사람들한테 티 낼 수 있었으니까.


 “그럼 병신아 너도 쇼미 나가던가.”

 “~까고 있네그이 새끼들은 죄다 랩으로 누굴 밟았네 찢었네음악은 다 갖다 버리고 어떻게든 한탕 해볼라는 양아치들이여.”


 그는 얼굴을 찡그린다.


 “……니 하고 싶은 데로 하세요.”


 우리는 짠했다막잔이었다국물만 남은 오뎅탕 옆에 텅 빈 좋은데이 두 병이 놓였다오후 11시였다취하고 싶었지만 내일은 목요일이었고아침 8시 반까지는 출근을 해야 했다계산을 하기 전에 서류가방을 챙긴다셔츠가 몸을 죄었다.

 











 포차 밖으로 나오니 서준은 담배를 물고 있다.


 “필겨?”


 뿌연 연기를 입으로 뱉으며그는 한 개비를 건넨다.


 “땡큐.”


 필터를 물고 그가 불을 붙여주기를 기다린다한 모금을 깊게 들이 마신다. 칼칼한 연기가 목 안을 감싸는 걸 느낀다.


 “근데 이거 뭔 향이냐캡슐도 아니고…….”


 고개를 들어 도시의 컴컴한 밤하늘을 바라본다별은 하나도 없고 그냥 어둡기만 한 하늘을.


 “오렌지 향이여.”


 시선을 돌린다그의 손에는 주황색 담뱃갑이 들려 있다더 원 오렌지영어로 쓰인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좆 같은 것도 피네. 이거 피는 새낀 또 처음 본다.”

 “뭘 처피던 내 맘인데 니가 왜 지랄이세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어두운 탓에 잘 보이진 않았으나 그 역시 웃고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본심을 말하자면 나는 네가 계속 힙합을 했으면 좋겠다너나 나나 나이를 먹었고 이제 사람은 흙을 파먹고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인생에는 해야 할 일과 그 시기가 정해져있다고 늘 꼰대들은 말했지이제 나도 그 꼰대 중 한 명이 되어가나 보다다만 그럼에도 돈 안 되는 너를 응원하는 까닭은 내 플레이리스트 첫 번째 줄에 들어 있는 네 목소리 때문이다.

 

 어쩜 난 잘못 태어났네 청춘이 발명된 시대에 / 100에 월15 반지하 원룸에 빚 없는 게 어디야 요즘 세상에


  네 믹스테잎은 네이버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 번째 트랙이 가장 좋다. 이어폰을 꽂노라면 느리고 차분한 드럼 루프가 귀를 두드리고 너는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랩을 시작한다. 나는 눈을 감는다. 하루의 일상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남들은 정신나간 새끼라고 비웃는 모양이지만 난 정장 한 벌 없는 네가 부럽다꿈에 솔직한 네가 부럽다겨우 택시비 받아가며 뛰는 무대 위에서 웃을 수 있는 네가 부럽다예술이 부럽다그러나 결국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난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아니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거겠지무엇보다 이건 오렌지 향도 아니고 그냥 시큼할 뿐인 착향료 냄새니까. 너와 내 차이도 그 어디쯤 있을 것이다, 진짜 오렌지와 겨우 담배에 첨가됐을 합성오렌지향의 사이에.

 입에 머금고 있던 연기를 뿜는다연기가 구름이 되어 눈 앞 어딘가를 흩날리다 조각조각 찢어진다.

 

 “담에 봐.”


 말없이 담배를 태우던 그는 꽁초를 밟아 끄고 나를 본다.


 “그래카톡해앨범내면 시발말 좀 하고 새꺄.”

 “병신…….”


 서준은 밝은 목소리로 웃는다그는 고개를 돌려 어두운 골목으로 향한다어깨를 쫙 펴고 있는 서준의 뒷모습을 보면서 약간이나마 마음이 편해짐을 느낀다나는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그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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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부분은 할 말이 없네요ㅋㅋㅋ 어디서 긁어 올 수도 없고 해서 억지로 쓴 건데 너무 깨는 느낌이에요.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운 작업이였어요, 스토리 구상도 수월했고 쓰는 재미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3
  • No Profile
    엄길윤 17.01.09 02:13 댓글

    제프리킴님 잘 읽었습니다. 먹고 살 걱정 안 들 정도로 돈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쓰고 싶은 글 맘껏 쓸 텐데 말이죠. 

  • 엄길윤님께
    No Profile
    글쓴이 제프리킴 17.01.11 01:49 댓글

    아 너무 반갑네요! ㅎㅎ 유공에서 몇 번 뵈었었어요.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있지만ㅠㅠ 중 장편 작업보다는 이런 단편 쓰는게 좋은 것 같아요. 가볍고 처음에 가졌던 분위기를 끝까지 가져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ㅓㅅ 전 글로 돈 벌긴 틀렸나봐요 흑

  • 제프리킴님께
    No Profile
    엄길윤 17.01.19 02:34 댓글

    기억을 못 할리가요 ㅋㅋㅋㅋ 자주 뵙기도 해서 댓글 남겼습니다. 잘 지내시죠?

    저도 이제서야 장편을 조금 쓰고 있긴 합니다만, 역시 단편 쓰는 게 제일 행복해요. 글로서 돈을 벌려면 요즘 트렌드에 맞춰야 하는데 아직 배가 덜 고팠나 봅니다. 아직 별로 맞추고 싶지는 않은 이 오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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