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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수구에는 악어가

2017.01.22 00:2001.22



<하수구에는 악어가>

Crocodile in a sewer -


 


* * * * * *

 

 

 악어는 질기고 억센 가죽을 가지고 있다. 잘 말려서 에나멜로 광택을 내면 빤들빤들하니 정말 끝내주는 지갑 재료가 된다. 무엇보다 비싸다. 마리당 30kg 이상 얻을 수 있는 살코기는 돼지고기나 닭고기와 비교했을 때 지방은 더 적고 단백질은 더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야식으로 시킨 치킨 한 마리에 빌빌대는 나의 얄팍한 잇속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만큼이나 유용한 동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단 한 가지, 찾기가 좀 어렵다는 단점만 빼고.




- - - -




 내 인생이 늘 그렇듯 무익하고 지루하기만 한 하루다.


 오전 11시.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잠에서 깨어난다. 오늘은 일요일, 알바가 있는 날이다. 손으로 눈곱을 긁어 떼고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린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카카오톡을 확인한다. 라면 봉지를 뜯어 내용물을 팔팔 끓는 물속에 집어넣는다. 계란을 잊어먹을 뻔 했다. 입김을 불면서 라면을 먹는다.


 오후 12시.


 과제가 잔뜩 밀려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아래아 한글을 켠다. 하얀 백지를 마주한 채 한참을 멍하니 공상에 잠긴다.


 십 분을 넘게 화면을 쏘아보다 잡념을 털어버리기 위해 종이 한 쪽 구석에 학번과 이름을 타이핑한다. 물론 그런다고 텅 빈 머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아니다.


 오후 1시 십분 전.


 인터넷에 들어가 무의미한 클릭질을 시작한다.


 아이돌 누구의 연애소식, 스포츠 스타의 사생활, 정치인들의 새로운 비리에 대해 관심 있는 척 가면을 쓰며 인터넷 기자들의 싸구려 떡밥에 걸려 파닥거린다.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어떤 글이 올라왔는지, 류현진이 어제 얼마나 공을 잘 던졌는지, 빅뱅의 신곡에 대한 해외반응이 대체 어떤지에 대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들.


 오후 2시.


 컴퓨터 게임을 키고 정신없이 빠져든다.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는 임무를 실패해도, 말실수를 해도, 심지어 잘못된 선택이 겹쳐 죽어버리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 이전의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모든 것이 한 번 뿐이다. 한 번 망하면 돌이킬 수 없다. 그저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것 밖에 선택지가 없는 우리네 세상은 그래서 재미가 없다.


 오후 7시 십분 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컴퓨터를 끄고 대충 세면을 한다. 이제 편의점에 가야 한다. 어제 입고 벗어둔 티와 바지를 주섬주섬 걸쳐 입는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얼굴을 찌푸린다.


 거의 빈 페브리즈를 몸에 대고 뿌린다. 머리가 제멋대로 뻗쳐 있다. 감기는 귀찮고, 모자를 아무렇게나 눌러쓰고 거리로 나선다.


 오후 7시 반.


 편의점에 도착해 유니폼을 입는다. 피곤에 절은 얼굴의 오후 타임 아줌마와 교대해 업무를 보기 시작한다.


 손님 안녕하세요. 아 그 행사는 어제 끝났어요. 손님 민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버스카드 충전은 3000원 이상만 가능하세요. 손님 저희가 이벤트 중이거든요. 샌드위치 사셨으니 700원만 더 내시면 바나나우유 가져가실 수 있으세요.


 오후 11시.


 손님이 뜸해지기 시작한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때운다. 야구 게임, 농구 게임, 아케이드 게임, 액션 게임, 카톡질, 페북질, 디시질…….


 스마트폰은 우리 시대 최고의 발명품이다. 이거 없던 시절에 편돌이들은 심심해서 어떻게 버텼을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12시까지만 참자.


 오전 12시.


 날짜가 지난 도시락을 꺼내 먹는다. 내일은 또 학교에 가야 할 텐데.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확 군대나 가버릴까. 내가 어디 사라져버린다고 해서 슬퍼해줄 사람이 있을까.


 아니 가끔, 어느 때라도 괜찮으니 어쩌다 한 번씩이라도 나를 기억이라도 해 줄 사람이 있을까.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차갑게 식은 도시락을 뒤적이며 헛웃음을 흘린다.


 오전 1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재수 때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했었더라면, 고등학교를 다른 곳을 선택했더라면, 초등학교 때 전학을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그랬다면 나는 행복했을까. 새벽 감성에 젖어 카톡 프로필을 썼다 고쳤다 반복한다. 그러다가 결국 관두고 길게 한숨을 내쉰다.


 오전 2시.


 그래, 원래부터 쭉 그랬어. 내 인생은 늘 실패의 연속이다. 뭘 해도 잘 되는 일이 없고 시험을 보면 한 번도 붙은 적이 없다. 운전면허만 해도 브레이크랑 엑셀을 헷갈려 남들은 한 번 만에 끝낸 실기를 세 번이나 보았다.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되고 싶은 직업은 없다. 닮고 싶은 연예인은 있어도 롤모델이니 멘토니 자랑스레 얘기할 만한 사람은 없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맨날 TV에서만 나오던 그 말을 나는 결국 재수를 실패하고 난 다음에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독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난 데 없이 성격이 원만한 것도 아니다. 딱히 앞서서 남들을 이끌 능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구석에 찌그러져서 고개만 끄덕거리는 것도 싫다. 언제나 너그러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가끔은 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치사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나는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네이버에 내 이름을 쳐도 나오는 것은 복싱선수와 대학 교수 둘 밖에 없다. 아마 내 이름이 그런 데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원히. 미래를 그릴 때 가장 절망적인 것은 십년 뒤의 나나 지금의 나나 별 차이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전 4시.


 우리말이 서투른 날카로운 눈매의 조선족 아저씨와 교대한다. 차가운 새벽바람을 맞으며 자취방으로 돌아간다. 몸이 무겁다. 쓰러지듯 잠자리에 눕는다. 내일은 월요일. 1교시 수업이 있으니 잠깐 눈만 붙인다고 생각하자.


 입 안을 쓰게 채우는 절망감.




- - - -




 이번에도 불발이 뻔하다.


 늘 녀석이 그랬던 대로, 아니 사실 우리가 해왔던 모든 것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 역시 실패할 게 뻔하다.


 악어가죽이 그렇게 비싸다며? 라면을 먹으며 진일은 무심결에 나온 이야기인 것처럼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빈둥거렸더니 별로 배도 고프지 않아 젓가락으로 먹을 생각도 없는 노른자를 후비는 중이었다.


 녀석의 눈은 방학 전날의 초등학생처럼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나는 허리를 문지르며 딴청을 피웠다.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야, 우리 악어 잡으러 안 갈래?


 “악어가 어디 있는데?”


 누런 라면국물이 지저분하게 흩어진 접시를 싱크대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고 물었다. 며칠 동안 설거지를 안 했더라? 저걸 다 닦으려면 반나절은 투자해야 할 것이다. 속이 더부룩하다. 콜라라도 한 잔 마셔야겠다. 냉장고를 열었다.


 “이 아래!”


 진일은 바닥을 가리켰다. 냉장고 안에는 쓰레기 밖에 없었다. 사러 나갈까 하다가 관뒀다. 지갑 안에는 천 원짜리 두어 장이랑 이세종이 석 장. 월급날이 언제더라? 대충 잡아도 보름은 더 버텨야 하는데.


 “내 말 듣고 있냐?”

 “응.”


 소파에 드러눕고 눈을 감았다. 피곤하다. 이대로 아무 걱정 않고 푹 자면 어떨까.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레포트도 밀렸고, 떠밀리다시피 조장을 맡은 조별과제도 있다. 저녁에 아르바이트도 가야 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지겹고 징그럽기만 한 일상들. 벌린 일은 많지만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 바쁘기만 하고 남는 건 하나도 없는 한심한 인생.


 “거기 아래가 어딘데?”

 “……음, 하수도.”

 “지랄.”

 “못 믿을 줄 알고 준비해왔지.”


 자일리톨 껌 통을 잡고 흔들어본다. 비었다. 그렇다고 양치질을 하긴 귀찮다. 입 안이 텁텁하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진일은 나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신문의 짤막한 해외 토픽이다. 하수도……, 악어……, 생포 후 사건 일단락……. 어쩌면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신문이라고 곧이곧대로 다 믿으면 안 된다고 하던데.


 “그런데 악어는 보통, 그, 정글에 살지 않냐?”

 “하수구에서도 살아.”


 당연하다는 어조의 대답이 돌아왔다.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나이를 헛먹은 기분이다. 여태까지 하수구는 쓰레기들 버리는 곳인 줄만 알았는데. 누군가가 나한테 매일 밤마다 볼륨을 있는 대로 키우고 야동을 보는 옆집 사람이 알고 보니 요번에 무슨 자사고니 특목고니 하는 명문 고등학교 입학했다던 그 집 귀한 딸내미였더라고, 나 말고는 이웃들 모두 알면서도 쉬쉬하고 있는 거라고 귀띔해준다면 느낌이 이럴까. 머리를 스친 공상에 피식 웃음을 흘린다.


 “요새 애완동물로 파충류 많이 기르잖아. 근데 애들이 하나같이 크면 징그럽다고 다 버리거든. 버리는데 어떻게 버리겠어? 그래도 같이 살던 정이 있는데 쉽게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변기에 넣고 레버를 누르면……이렇게!”


 진일은 신이 났는지 장황한 설명을 덧붙여 가며 변기 물 내리는 소리를 흉내냈다.


 “걔네들은 뭘 먹고 사는데?”

 “……이건 비밀인데, 조직이 있대.”

 “무슨 조직?”


 녀석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놈들을 양식하는 조직이지.”

 “악어를 기른다고?”

 “그럼, 악어 한 마리가 얼마나 비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하다. 몇 주 전에도 인조 가죽으로 만든 짝퉁 악어지갑을 통해 수십억 원을 벌어들인 사기꾼들이 잡히지 않았던가. 신문에도 두 면에 걸쳐 장황하게 소개될 만큼 크게 히트 친 사건이었다. 비싸긴 무지하게 비싼 모양이다.


 “운만 좋으면 몇 억도 벌 수 있대.”


 매력적이다.


 그렇게 부자가 되면 등록금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어떻게든 거지같은 학점 잘 받아보려고 아등바등 교수 뒤를 쫓아다니며 꽁무니를 핥아댈 필요도 없을 것이다.


 금전은 많은 문제들을 뒤탈 없이 깔끔하게 해결해준다. 공중파 드라마에 나오듯 돈으로 마음은 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외의 모든 것들을 살 수 있다. 그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장사 아닐까.




- - - -




 거지같은 하루였다.


 오전 7시.


 평소와 같이 기상 후 10분간 세면. 오늘은 월요일이니 9시부터 수업이 있는 날이다. 휴대폰을 꺼내 못 받은 카톡 메시지를 확인. 별 특별한 내용은 없다. 입맛이 없어 아침은 생략하기로 하고 여유롭게 웹툰 사이트에 들어가 만화를 본다.


 오전 8시 반,


 이대로는 지각할 게 뻔하다. 휴대폰을 침대 위에 집어 던지고 잡히는 데로 아무렇게나 옷을 골라 입는다. 까칠까칠한 턱을 문지르며 면도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 시계를 확인하고 그냥 밖을 나선다. 피곤에 절은 얼굴로 왜 일찍 나오지 못했는지 후회하며 버스에 오른다.


 첫 수업.


 진일 옆에 앉아 고개를 꾸벅거리며 열심히 존다. 매일 자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어쨌거나 결국 지키지 못한다. 전필이면 융통성 있게 시간을 잡아야지 대체 왜 오전에 하는 걸까. 교수가 편돌이한테 삥이라도 뜯겼는지 늦게까지 알바하는 애들은 전부 뒈지라는 심보가 틀림없다.


 점심.


 학식으로 나온 돈까스를 뒤적거린다. 소스에 푹 적셔진 튀김옷은 비 맞은 신문지처럼 질척거린다. 그래도 고기가 두툼해 만족스러운 기분이 든다. 요즘 물가를 생각해보면 2500원에 이정도면 꽤 수지맞는 장사가 아닌가. 진일도 내 옆에서 나와 같은 것을 먹는다.


 오후 1시 십 분 전.


 오늘은 조별과제 첫 회의가 있는 날이다. 조원들은 나 말고 다섯 명. 만나기로 한 학교 안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킨다. 구석 자리에 있는 테이블로 가서 앉는다. 멀뚱히 밖만 바라보다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하기 시작. 그렇게 사십분이 흐른다.


 ‘선배님 저 아르바이트ㅜㅜ’

 ‘미안~ 나 오늘 약속이 있어서’

 ‘아 오늘 제사 있어서, 미안하다’


 메시지들이 쌓인다.


 남은 두 명은 잠수. 끄트머리에 누런 커피 얼룩이 배인 일회용 컵을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카페를 나선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오늘은 알바도 없으니 자취방에 좀 일찍 들어가서 열 시간이든 열한 시간이든 푹 자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마음이 약간이나마 편해진다.


 오후 3시.


 커피의 힘으로 졸음을 극복한다. 노트에 이것저것 필기를 해가며 수업을 듣는다. <현대 예술의 이해> 따분하고, 지루하고, 무익한 시간들이다. 잭슨 폴록이 어쩌고 저쩌고 최우람이 누굴 표절했네 어쨌네. 교수는 한국 미술의 떠오르는 젊은 작가들을 한 명씩 도마에 올려 열등감으로 조각을 낸다.


 고평가되어 있다. 주목을 받을 만한 재능이 아니다. 언론에서 띄워 준 거나 다름없다…….휴대폰을 꺼내 페이스북에 접속해 다른 놈들의 시시콜콜한 소식들을 확인한다. 교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작아지고 가늘어졌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어차피 아무도 수업을 듣지 않는다.가끔 이럴 때면 자칭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술을 늦게까지 마신 다음 날에는 꼭 자습을 주시던 고등학교 윤리 선생이 그립다.


 오후 6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간다. 바로 침대에 눕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노트북을 키고 쓰다 만 레포트 파일을 불러 와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이건 그렇다 치고 조별과제는 어떡하지? 울화통이 터진다. 첫 회의부터 이런 식으로 빠져버리면 앞으로 어떨지 눈에 훤하다. 내가 이래서 다시는 조장 안하겠다고 한 건데…….


 ‘오늘 밤이야, 올거지?’

 ‘뭐가?’

 ‘악어!!!’


 녀석의 카톡에 정신이 확 들었다.


 그래 악어! 요전에 우리는 악어를 같이 잡으러 하수구에 가기로 했었다. 그놈의 음흉한 파충류를 잡는데 성공한다면 이 구질구질한 인생도 좀 필 것이다. 시시껄렁한 레포트 따위는 집어치워도 된다.


 컴퓨터를 끄고 언제 버려도 상관없는 목 늘어난 티셔츠와 꼬질꼬질한 바지를 입었다. 매끼 라면이나 끓여 먹는 주인을 만나 구석에서 신세 한탄만 하던 식칼을 품속에 숨겨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




 24시간 언제 어느 때나 와도 붐비는 시내를 걷다 보면 왜인지도 모르게 쓸쓸해진다.


 재수하던 때의 기억이 나서 그런가.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시험 준비한다는 이들, 컵밥인지 뭔지 먹고 주변 구경도 할 겸 왔다는 연인들, 그 외의 별 어중이떠중이들 틈바구니에 끼어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노량진을 배회하다 보면 그 처절함에, 그 극명한 비교에, 그들이 한심하다 느끼는 내 저열함에 나는 너무나 서럽곤 했다.


 나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각기 방향이 다른, 생긴 것만큼이나 인생을 보는 가치관 자체가 서로 다른 이들을 왜 오로지 한 종류의 그물망으로만 걸러 내려 하는지에 대해. 순식간에 어느 한 쪽은 패배자가 되고, 다른 한 쪽은 우월감에 날뛰는 승리자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기묘한 단두대에 대해.


 삼각함수 공식과 같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가 되지 않아 차라리 외워버리는 게 속편한 그런 것들. 이제는 나와 너무나도 먼 세계에 있지만.


 눈길을 바닥에 고정한 채 걸었다. 녀석이 있는 곳은 2A-15. 맨홀에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22살이 되어서야 처음 알았다. 2A-1, 2A-2, 2A-3……. 우리 삶의 많은 것들도 그럴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감정 없이 그동안 지나쳐 왔던 모든 것들에게 묵념.


 2A-4, 2A-5, 2A-6…….


 근데 악어가 있을까? 악어를 본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동물원에 놀러갔을 때가 전부였다. 실제로 본 악어는 주말마다 케이블 방송에서 나오던 다큐멘터리랑은 다르게 작고 굼뜬 파충류에 불과했다. 그렇다면야 전혀 겁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A-7, 2A-8, 2A-9…….


 하수구 속에서 얼마나 지독한 냄새가 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지금 중요한 건 돈이다. 그 놈만 잡을 수 있다면 한동안 알바를 뛸 이유는 없어질 게 틀림없고 그러기만 한다면 밀린 과제에도 약간이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다. 여자를 만날 만큼 여유가 생길지도 또 모르지.


 2A-10, 2A-11, 2A-12…….


 나만 여유가 없는 걸까. 나만 급한 걸까. 가끔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애들은 놀면서도 편하게 과제 할 거 다 하고 알바도 다 하고 그러던데. 잠이라도 좀 줄여볼까. 쥐도 새도 모르게 온 봄날은 벌써 다 저물었다.


 나도 여자 친구도 만들고 싶고 좋은 학점 따서 장학금도 받아보고 싶고 동기들이랑도 좀 친하게 지내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제자리걸음뿐이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억울할 것도 없다. 나는 원래 늘 그랬으니까.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야! 여기야.“


 진일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녀석은 형광색 우비에 고글을 낀 이상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그제야 지금부터 우리가 하려는 이 미친 짓이 실감이 났다.


 그동안 녀석과 함께 했던 수많은 정신 나간 짓들 중 단연코 첫 번째에 꼽힐 만한 일이 아닐까.


 이런 곳을 정말 용케도 찾았다.


 몰래 사람 한 명 납치해서 인육을 팔던 장기를 팔던 소문 하나 안 날 듯한 으슥한 골목이었다. 게다가 항상 닫혀 있던 육중한 맨홀뚜껑도 열려 있었다. 숨기고픈 도시의 지하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줄 구멍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근데 진짜 우리 이거 할 거야? 아직 안 늦었는데 그냥 어디 가서 홍합탕에 소주나 한 잔 할래? 이 근처에 아는 포차 좋은 데 있는데. 녀석은 씩 웃고 있었다. 눈에서는 익히 아는 광기가 번득이고 있었다. 말문이 막혀 녀석을 바라보았다.


 늘 그랬다. 


 내가 호루스라면 진일은 세트였고 내가 코스모스라면 녀석은 카오스였다. 단지 아무것도 없이 늘 현실적이고 이해타산만을 따지는 나는 진일의 감정적인 모습, 즉 광기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견딜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런 게 나는 항상 부러웠을 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그런 힘이 없었으니까. 실낱같은 가능성에 온 인생을 걸어 직구를 날리는 무식함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재수를 망쳤어? 나만 망한 건 아니다. 녀석이나 나나 의지가 부족했을 뿐이었다.


 웃기는 소리.


 “들어가자!”


 맨홀 속을 들여다보았다. 현기증이 났다. 사다리라고 할 것도 없다. 가냘픈 철제 디귿자 모양의 막대가 줄줄이 박혀 마치 벨제붑의 아가리마냥 시커먼 속을 장식하고 있었다.


 위압적인 비주얼에 압도되어 있었을 때 녀석이 먼저 몸을 굽혀 하수구로 가는 사다리에 발을 걸쳤다. 녀석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벌써부터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지만 녀석을 따라하는 수밖에 없었다.


 돈만 생각하자. 몇 억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만 생각하자.




- - - -




 “됐다. 집에나 가자.”


 일확천금이라는 말은 허황된 꿈이다. 눈먼 돈은 맹목적인 자본가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늘 같은 수법에 속아 넘어가곤 한다.


 나는 저 밖.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달리고 웃고 울고 있을 도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캄캄한 점토 덩어리 같은 어둠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 저 많은 맨홀들 가운데 하나에 우리들의 출구가 있을 터였다. 어서 빨리 이 미친 곳에서 나갔으면. 손톱만한 자취방이 이렇게 그리워지기는 또 처음이었다.


 이 꼴이 되도록 나를 꼬드긴 녀석이 밉지만 이깟 얄팍한 수작에 넘어가 한바탕 광대놀음을 한 나도 잘한 거 하나 없다. 길게 한숨을 쉬었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데로 무언가를 집어 있는 힘껏 저 깊이를 알 수 없는 터널 속을 향해 던졌다. 물주머니 같은 것이 터지는 소리. 둔탁한 것에 맞아 울리는 소리가 났다.


 저게 뭐지? 호기심이 동한 녀석이 먼저 움직였다.


 “아 끈적해. 잠깐만, 이거 콘돔인데?”


 진일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공기가 빠진 고무풍선처럼 축 늘어진 그것을 하수로에 던졌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자괴감 때문인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한참동안이나 낄낄거리던 내게 녀석은 굳은 얼굴로 돌아왔다.


 “야 잠깐 이리로 와 봐.”

 “왜, 또 뭐 좋은 거 찾았어?”

 “그런 거 아냐.”


 녀석의 표정은 눈에 띄게 진지했다. 나는 미소를 거뒀다. 언제나 유쾌하고 익살맞은 진일이 심각해질 때는 일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거나 남이 자기한테 정색할 때 뿐이었다. 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나는 그가 이끄는 방향을 따라 축축한 발걸음을 옮긴다.


 시체였다.


 “이게 증거야.”

 “무슨 증거?”

 “하수구에는 악어가 산다는 증거라고!”

 “이게 악어 이빨 자국이라도 된다는 거야?”

 “당연하지.”


 입꼬리를 올리는 진일의 눈동자에는 다시 광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놈을 잡을 수 있을까?”

 “나 태권도 3단이야.”


 악어랑 태권도랑은 별개 아니냐고 되물으려다 그만두었다. 녀석을 말로 설득하는 일은 포기한 지 오래다. 그냥 나가는 맨홀이나 빨리 찾아서 나중에 다시 오자고 꼬드기면 되겠지. 지금은 그게 가장 중요하다.


 발에 잡힌 물집이 쓰렸다. 악어든 출구든 빨리 나타났으면 좋겠다. 학교도 가야 하는데 꼼짝없이 밤 새게 생겼다. 다시 생기를 되찾은 진일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




 들숨, 날숨. 들숨 날숨.


 목구멍을 긁어서 나오는 허스키한 짐승의 숨소리. 이빨과 이빨의 틈 사이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축축한 바람. 무게감 있는 발소리. 울퉁불퉁한 비늘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 긴 꼬리가 찰박거리는 소리.


 그것이 다가오고 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윤기가 흐르는 털이 아름다운 암사자의 앞에 선 스프링복, 별 하나 없는 밤의 보름달처럼 선명한 재규어의 노란 눈을 마주한 페커리. 먹고 먹히는 포식자의 관계에서 오는 매너리즘적인 두려움. 거대한 파충류의 유연하고 강한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본능적인 강한 거부감.


 “여보세요?”

 

 수능이 끝난 뒤 했던 그 수많은 어른 놀이 중 하나, 같은 반 친구들이랑 보았던 뮤지컬이 떠올랐다. 그만큼 중저음 톤의 목소리는 퇴물들의 소리를 뚫고 귀로 또렷하게 들렸다. 육중한 형체가 녀석이 쥔 흐릿한 손전등 빛에 그 실루엣을 드러냈다. 지옥과도 같은 이 도시의 밥통, 폐기물이 잔치를 벌이는 하수구에 드디어 벨제붑이 강림하셨다.


 악어였다.


 대략 6,7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녀석이였다. 하수구가 좁아 보이기까지 했다. 거대한 아가리가 씩 웃는 것처럼 활짝 벌어져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소유욕이 떨어지는 비주얼이었다. 파충류 특유의 물기에 젖어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우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고보니 저건 고딩 때 우리 학주 눈깔인데.


 그런데 어떻게 말을 하지?


 상황이 하도 막장이니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럽기도 하다. 신문이라도 읽고 배운 게 아닐까. 아주 하수구에서 용 났다. 나는 녀석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제 우린 다 뒈졌네. 떠오르는 건 엄마 아빠 얼굴보다 못 받은 이번 달 월급이다. 한 열흘 정도는 그래도 착실하게 일했는데. 그것만 따로 떼서 가불로 계좌에 쏴달라고 하면 너무 치사해 보이려나.


 “정말 반갑습니다, 사람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몰라요.”


 악어는 계속해서 말했다. 울고 싶었다. 왜 내 주변에는 미친놈들 밖에 없는 걸까. 어쩌면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몰라. 눈을 뜨면 다시 자취방의 누리끼리한 형광등이 나를 반기고 있을지도 모르지.


 악어는 계속해서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집에 가고 싶었다. 나는 3B-11 이라고 써인 사다리를 꼭 붙잡고 악어를 노려보았다.여차하면 위로 튈 준비를 해 가면서.


 “당신들도 알다시피 이 아래는 저처럼 교양 있는 친구들이 없거든요.”


 확실히 그런 것 같았다.


 무기로 쓸 만한 것을 필사적으로 찾아보았다. 주먹? 자살할 일 있나. 식칼? 애초에 가죽을 뚫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너덜너덜한 콘돔? 확실히 이런 금수가 또 태어나는 것은 전 지구적인 재앙이겠지만…….


 “긴장 푸세요, 좋게 좋게 이야기합시다.”


 악어는 사람 좋아 보이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린아이 팔뚝만한 이빨이 번득거렸다. 수작 부리지 말고 빨리 한 많은 인생 끝내주소.


 네가 무슨 교양은 겉만 그럴듯하게 꾸민 깡패새끼가 금융이 어쩌고 환율이 어쩌고 하는 개수작 같으니까 집어치고 빨리 동물의 왕국으로 돌아가라. 아가리도 큰데 그냥 원 샷 해라.


 “저기요.”


 진일이 입을 열었다. 신기하게도 아까 그렇게 소음에 묻혀 안 들리던 목소리가 긴장한 탓인지 똑똑하게 들렸다. 악어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녀석에게 눈알을 돌렸다.


 "길을 헤매고 있었는데, 2A-15가 어디 있는 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유~ 진작 말하시지. 그럼, 반가운 손님인데 제가 퍼뜩 안내를 해드려야죠.”


 언제부터 봤다고 아주 살갑게 대답한다. 생각보다 괜찮은 놈인데? 어쩌면 그 할리우드 영화, 이름이 뭐였더라? 쫄쫄이 입은 애들 여러 명 나오는 거. 아무튼 거기의 헐크랑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자기는 착한데 하도 외양이 흉측해 애들이 왕따시키는 그런 애.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생각해보니 그럴 리가 없다. 아까 그 시체에는 분명히 악어 이빨자국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큰 악어. 딱 잘라 말해 지금 저기서 가식 떨고 있는 저 친구 같은.


 “그런데 맨입으로 알려주긴 좀 그렇고~.”


 녀석은 장난스럽게 운을 뗐다. 진일과 나는 입을 딱 벌린 채 놈을 바라보았다. 그냥 니들을 먹고 싶다고 말하던가. 그래도 결국 목숨은 아깝다. 학교 다니기 싫었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지고 알바 사장 그 도둑놈도 천사처럼 느껴진다.


 “저는 배운 게 없는 놈입니다. 그래서 당신들 같은 학생들을 보면 약간 배알이 꼴리면서도 굉장히 동경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에요. 비록 없이 자랐지만, 그래도 부족하게나마 인간 세상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게 있습니다.”


 악어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정치라도 할 생각인가. 아마존인지 어딘지 있을 놈의 가족은 녀석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생각할까. 두 말 할 거 없이 냅다 호적에서 파버리지 않을까.


 “그것은 복리라는 개념입니다. 돈이 돈을 낳고, 거기서 낳은 돈은 또 새끼를 쳐서 돈을 낳는다. 이 얼마나 참신한 아이디어입니까? 저는 이것을 그놈의 조직원들에게 들었죠.”


 악어는 벌벌 떠는 우리를 앞에 두고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조직들이 넣어주는 닭고기에도 이제 싫증이 났습니다. 한 번 사람 고기를 먹고 나니까…….”


 분명히 놈은 입맛을 다셨다. 식은땀이 흘렀다.


 “……도저히 그깟 생닭 따위에 마음이 가지 않더라고요. 비교가 안 되거든요. 사실 지금도 당신들을 당장 한 입에 물어뜯고 싶은 본능과 싸우는 중입니다. 이렇게 말하긴 조금 그렇지만, 당신들처럼 제 발로 하수구에 들어오는 사람은 흔하지 않거든요.”


 그것 참 희망적인 소리다. 조선시대 사극을 보면 혀 깨물어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어떻게 하는 거지? 악어한테 물려죽는 것보다야 자살이 나을 것이다. 진작 배워둘 걸 그랬다.


 “그래도 저는 배운 악어 아닙니까? 멋진 방법을 생각해냈죠. 당신들을 살려 보내주겠습니다. 그놈의2A-15가 어디 있는 지도 흔쾌히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맥북, 새로 나온 게임기, 멋진 고급 승용차…….캬, 지갑에 든 건 없고 당장 하고 싶은 건 많은 가난한 대학생들에겐 생각만 해도 끝내주는 것들이지요. 물론 우리 애들한테 말하기만 하면 어디서든 구해다 줄 겁니다. 대신…….”


 악어의 노란 눈이 음흉하게 반짝거렸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러분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저에게 이자를 주시면 됩니다.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한 명씩.”


 잠시 말을 음미하던 악어는 다시 아가리를 열었다.


 “저는 그렇게 까다로운 성격이 아닙니다. 고기만 확실하다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지요.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주위 시선만 조심해주시면 됩니다. 어차피 실종자는 가출인지 납치인지 구별도 안 돼서 수사도 잘 않거든요.”


 악어는 자꾸만 뜸을 들였다. 놈은 우리의 생명을 두고 거드럭거리는 중이었다. 너무나 인간스러워서 역겹기까지 한 놈의 행동에 실소가 나왔다.


 “그런데 제가 못 참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약속을 어기는 놈들이지요.”


 악어는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탐욕스러운 눈길이었다.


 “이건 아셔야 해요. 이 밖에 나간다고 해서 저한테서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은 공부만 해서 잘 모를 수도 있어요. 제가 비록 지하에 살지만 손 넓은 거 하난 끝내주거든요.”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헬스장 기물 파손 죄로 지구대에 끌려왔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내가 왜 그랬었지? 코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새벽에 술 마시고 친구랑 같이 입구 유리문을 깨버렸다. 아 그런데 CCTV가 있었다고? 화재경보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 애초에 여러분들에게 선택권은 없지만요. 지금 젊고 미래도 창창하신 분이 벌써 가시려는 건 아닐 테고요. 너무 안 좋게만 생각 마세요. 오히려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죠. 손에 때만 약간 묻히면 맨날 놀고 먹을 수 있는 기회 아닙니까?”


 잠시 정적. 악어는 미동도 하지 않고 진일과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짐승의 얼굴.


 “할게요.”


 진일이 먼저 나섰다. 녀석은 나를 슬쩍 돌아보며 눈짓을 했다. 하라는 뜻이다. 하긴 이 상황에 다른 선택이 있을 리 없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쿡쿡 쑤셨다. 그냥 지금은 집에 가기만 했으면. 포근한 이부자리에 누워서 지금 이 모든 일이 꿈이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잠에 든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저도 하겠습니다.”


 영업용 미소. 악어는 우악스러운 동작으로 그 큰 발을 움직여 어디서 났는지 모를 명함 한 장씩을 손에 쥐어주었다. 놈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빳빳하고 깨끗한 종이 위에는 핸드폰 번호와 함께 ㈜크로커다일 이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앞으로 보지 맙시다. 그게 서로를 위해서 가장 바람직한 일일 겁니다. 그럼 길 안내를 해드릴 테니 따라오세요.”


 악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두툼한 몸집을 돌려 우리가 왔던 반대쪽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놈은 고개를 뒤로 돌려 진일과 나를 쳐다보았다.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놈을 따라 무겁기만 한 발을 떼어 놓았다


. 2A-15는 우습게도 바로 근처에 있었다. 우리는 이제 이 지긋지긋한 하수구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일념 하에 젖먹던 힘까지 써서 사다리를 올랐다.


 악어는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그 커다란 노란 눈을 번들거리며 힘이 풀린 팔다리를 어떻게든 놀려가며 아등바등 사다리를 오르는 우리의 모습을 여유롭게 즐겼다.




- - - -




 악몽을 꾸었다. 오래 전.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와 함께 똥구덩이에서 헤엄치는 꿈. 머리카락을 쓸어 채 마르지 않은 땀을 닦아낸다. 단내가 잔뜩 묻어나는 한숨을 차가운 새벽의 공기 속에 뱉는다.


 오전 7시.


 정시에 맞춰둔 뱅 앤 올룹슨의 알람에 눈을 뜬다. 가운을 걸친 채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이고 저염 파스타가 담긴 통을 열어 아침식사를 만들 준비를 한다.


 익숙한 솜씨로 마늘과 올리브유를 같이 볶아 부드러운 향기의 알리오올리오를 차려낸다. 면이 투명할 정도로 익자 파슬리와 오레가노로 마무리를 한다.


 오전 7시 20분.


 느긋한 아침식사를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즐긴다. 가벼운 샤워를 끝내고 옷장에서 잠시 고민한다. 산뜻한 파랑색 몽클레어를 들고 잠시 고민하다 너무 무거운 느낌이 들 것 같아 포기하고 무난한 브룩스 브라더스를 택한다.


 오전 8시. 아우디를 끌고 도로로 나선다. 하늘이 아주 파랗다. 카오디오로 화려한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튼다. 볼륨을 있는 대로 키운다. 소리가 온 몸을 타고 울린다. 상쾌한 바람이 반쯤 열어둔 차창을 통해 분다. Stairway to heaven. 천국에 있는 듯한 기분이다.


 오전 9시. 첫 수업. 아는 동생에게 대출을 부탁하고 홍대로 향한다. 새끈한 아우디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을 느낀다. 이 맛에 산다. 오늘 오빠 남는 게 시간이다.


 선글라스를 꺼내 끼고 백미러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며 자부심을 느낀다.오늘 핏 좀 사는데? 옛날에 구질구질하게만 다녀서 그렇지 나도 이정도면 어디 가서 꿀리는 얼굴은 아니다.


 넘치는 자기만족과 우월감에 이가 드러날 만큼 활짝 미소를 짓는다. 거울에 비치는 나도 따라 웃는다. 웃어라, 찌질이같이 항상 죽상일 필요 없다. 웃으면 복이 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돈이 있어야, 마음이 편해야 웃을 수 있으니까.


 오전 11시.


 합정역 근처의 카페에서 친구를 만난다. 변한 내 모습에 당황하던 녀석은 곧 내 얼굴형을 기억해내고 활짝 웃으며 악수를 청한다. 간만에 보는 동창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며 신나게 웃는다. 한참 웃다가 녀석은 진지한 얼굴로 묻는다.


 “야, 근데 너 뭐냐. 복권이라도 당첨 됐냐?”


 유쾌한 기분이 들어 크게 웃는다.


 세상에는 마법의 주문이 있다. 어떤 좆같은 상황에서도 씹던 껌처럼 단물이 빠져버린 분위기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주문.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성격이면 성격 내세울 거 하나 없이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살던 내가 변할 수 있던 계기가 되었던 그 환상적인 주문.


 웃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친구의 눈을 들여다보며 비밀 이야기를 하듯,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레 운을 뗀다.


 “그거 알아? 하수구에는 악어가 있대.”


 좋은 것, 온갖 못된 악당과 거짓들이 판치는 세상에 이만큼이나 수지맞는 장사도 없다. 혼자 살기 아까울 정도로 근사한 오피스텔, 끝내주는 자동차, 보고만 있어도 입에 침이 고이는 명품들. 원하는 건 말만 하시라.


 내가 치러야 할 대가는 전화번호부에서 프로필을 삭제하는 것 말고는 없으니까.


 악어 가라사대, 자본주의여 있으라. 그러니 세상 온 곳에 가면 쓴 늑대가 판을 치더라. 양들은 예리한 늑대 발톱의 위협 속에서 벌벌 떠는데 양치기 혼자 백주대낮에 자빠져서 노상만 까더라. 나중에야 정신을 차리고 머릿수를 세어 봤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더랬지.




- - - -




“그래서 어쩔 거야. 진짜 그 놈 말대로 하게?”


 그 뒤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정확히는 하루 전 날이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지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서로를 부정하면 하수구에서 있었던 일. 비늘투성이 가죽의 악마와 계약을 맺었던 그 날의 잊고 싶은 일들까지 없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놈의 깊고 축축한 아가리에 대한 생각이 도저히 사라지지가 않았다.


 몸통이 반쯤 파 먹힌 시체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마음을 너무 답답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 꼴이 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하수구로 데려가야 한다.


 지겹기만 한 인생이지만,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패배자의 표본이지만 막상 죽음을 떠올리니 두렵기만 하다. 억울해서라도 죽고 싶지 않다. 한 번도 이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간절하기만 하다.


 “그럼 뭐 어쩔 건데. 나보고 죽으라고?”

 “상식적으로 그 똥통 안에 처박혀 있는 놈이 우리가 뭘 하든 무슨 상관이야? 너답지 않게 왜 자꾸 이러는 거야?”

 “뭐가 나다운 건데?”


 손가락에서 땀이 배어 나온다.


 “야 임마. 당연히 상관있지. 그 죽은 놈 못 봤어? 그놈이 진짜 바깥에서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

 “만나서 얘기하자.”


 억눌린 화가 폭발했다.


 다 너 때문이었다. 애초에 너 때문에 거기 들어갔던 거고 놈을 만났던 거다. 이제 와서 마음 편하게 이런 식으로 말해봐야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인생에 하등 보탬이 되지 않는 새끼.


 맞아, 사실 다 너 때문이다. 매일 과제와 알바에 치어 비참하게 사는 것도, 내 인생이 이따위인 것도, 하루하루 버텨내는 게 고작인 것도 다 너 때문이다. 네가 내 재수를 망친 것 때문이다. 너같이 생각 없이 사는 놈은 그렇게 되는 데로 살겠지만 나는 무슨 죄냐.


 대체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는데?


 나는 끓어올랐던 분노를 식히려 심호흡을 했다. 너는 나한테 인생 하나를 빚졌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을 기다렸고 이제 그걸 갚을 때가 왔다. 분명히.


 나는 너를 죽일 것이다.


 아니, 모든 것을 처음으로 바로잡을 것이다. 구질구질한 밑바닥 인생에는 이제 신물이 난다. 너만 없으면 모든 것이 편해진다. 애초에 너와 나는 만난 적이 없었던 게 된다.


 악어는 어디에도 없다. 어둠 속에 숨어 타겟을 찾아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악마는 어쨌거나 동화 속 등장인물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만이 있다. 성공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실패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약속 시간 삼십 분 전에 나는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자취방을 나섰다. 나는 몰래 숨어 정시에 도착한 진일이 휴대폰을 꺼내 내게 전화를 거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 전화기는 꺼져 있다.


 녀석은 한숨을 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아무렇게나 찔러 넣었다. 녀석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천천히 품에 손을 가져갔다.


 낡은 식칼의 까끌까끌한 나무 손잡이가 기분 좋은 무게감으로 손아귀에 잡혔다.




* * * * * *



허접한 솜씨라 죄송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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