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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의 종



 

 

내가 돌아오자 진돗개가 몸을 부르르 털며 일어났다. 돼지뼈 한 조각을 내밀었지만 진돗개는 괜찮다고 말하곤 다른 동족들 두엇과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갔다. 돼지뼈는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아이들을 품느라 꽤 지친 모양이었다. 그녀가 좀 쉬었으면 해서 아이들을 물어 굴 밖으로 옮겼다. 코로 아이들을 밀어 데굴데굴 굴리자 약이 오른 아이들이 폴짝거리며 달려와 내 꼬리를 깨물었다. 생각보다 아팠다. 버려진 과자 봉지를 뒤집어쓰며 놀던 아이들이 가만히 잠에 빠져 있던 동족의 엉덩이를 치며 지나갔다. 아이들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지만 몸집은 아이들보다 아주 약간 큰 동족이었다. 그 동족이 끙 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눈치를 주자 굴 안쪽에서 돼지뼈를 갉아먹던 그녀가 큰 소리로 아이들을 꾸짖었다. 아이들은 풀이 죽어서 슬그머니 내 뒤로 숨었다. 마른 나뭇잎과 과자 봉지와 흙먼지를 날리며 찬바람이 불어왔다. 곧 겨울이 올 것이었다. 겨울. 동족들과 처음 맞이하는 겨울.

 

-나가. 이 개 같은 년아.

그렇게 말하며 네 애비가 현관문을 열었다. 개 같은 년아, 하는 소리가 아파트 복도에서 울렸다. 네 애비의 이마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건 네 애미가 던졌던 컵 때문이었다. 네 애미는 네 애비에게 수차례 뺨을 맞고 쓰러졌던 몸을 일으키려 엉금엉금 기는 중이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네 애비는 네 애미를 보고 있었고 네 애미는 문을 보고 있었고 너는 우물쭈물하게 소파에 앉아 자신의 부모가 서로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똑똑히 눈에 담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열린 문으로 뛰었다.

-, ! 안 돼, 밍키!

뒤에서 나를 그렇게 부른 건 너였다. 네 애비가 나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미 네 애미의 얼굴을 갈기느라 온 힘을 쏟았기 때문인지, 네 애비는 둔한 움직임으로 헛손질을 하는 바람에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는 나를 멍청히 바라보게 되었고 덕분에 나는 너희의 집, 305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리가 짧아 계단을 내려가다 앞으로 고꾸라질 듯 위태로웠지만, 다행스럽게도 발을 헛디디는 일 없이 1층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아파트 밖으로 나서자 눈앞을 가리는 주차된 차들과 그 뒤로 높게 세워진 아파트들이 보였다. 그건 너희들이 산책을 시켜준답시고 나를 데리고 나갈 때마다 보던 풍경일 뿐이었다. 뒤따라오는 네 발소리가 쿵쿵 울렸다. 주차된 차들 사이로 피했다.

거기서 방향을 잃고 말았다. 주차된 줄 알았던 자동차 몇 대가 요란한 시동 소리를 내며 지나다녔는데 그걸 피하다 보니 내가 어떤 아파트에서 나왔는지조차 모르게 된 거였다. 산책 때문에 종종 오간 길이었는데도 그랬다. 사실 너희의 산책이 도움될 리 없었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이곳저곳을 한참 돌아다녔던, 영문도 모른 채 끌려다니다 어느 아파트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열면 그게 너희의 집 305호였던, 그 기이한 시간이 너희가 내게 시켜주는 산책이었으니까.

나는 냄새를 맡아 길을 찾기로 했다. 시간이 좀 걸렸는데, 305호에서 지내게 된 이후로 냄새를 유심히 맡지 않는 습관이 생긴 탓이었다. 그곳의 모든 냄새는 너희의 체취였다. 벽과 바닥, 소파와 침대, 옷장과 네 애비가 아끼는 화초는 물론, 네 방이나 네 애미의 방이나 네 애비의 방이나 거실이나 화장실 신발장 모든 곳에서 같은 냄새가 났고 미세한 농도의 차이만 있어 냄새로 느끼는 너희의 집은 공간감 없이 납작했고 그 납작함은 내게 기괴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저 볼 뿐이라면 너희의 집이 기괴해지는 일은 없었다.

-, 쟤 밍킨데!

서서히 드러나는 동족들의 오줌 냄새를 찾아 거리를 가늠하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아이가 나를 알아보곤 말을 걸었다. 304호의 아이였다. 304호 아이가 나를 가리키자 같이 다니던 아이의 어미와 다른 아이들까지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알아본 아이의 어미가 놀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둘러 자리를 떴다.

 

영역 밖으로 멀리 다녀야 할 때는 적당한 거리마다 오줌을 누어 흔적을 남겨야 돼. 그 전에 먼저 냄새에 대해서 꼭 알아 두도록 하고. 어떤 냄새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면, 제대로 된 흔적도 못 남기고, 길을 잃은 채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어머니는 절의 기둥마다 오줌을 누고 나와 형제자매들이 맡게 하여 각각의 의미를 맞추도록 했다. 어머니는 영역 표시나 경고와 같은 기본적인 냄새들을 남겼다. 우리가 어느 정도 냄새를 구분하게 되었을 무렵, 어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산속을 오갔다. 산에선 마당보다 더 진하고 습한 풀냄새와 흙냄새가 났고 거기에 다른 종들의 체취와 배설물 냄새까지 뒤섞여 어수선했다. 거기서 어머니는 길목마다 냄새를 남긴 뒤 당신이 의도한 곳까지 우리가 향하도록 했다.

간혹 냄새를 놓치거나 잘못 읽어내 길을 잃어버리곤 당혹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때는 제자리에 오줌을 누고서 가만히 기다렸다. 어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미리 당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곧 어머니가 달려왔다. 우리를 한껏 핥으며 진정시킨 뒤, 어머니는 우리의 오줌 냄새를 맡게 했다. 그것이 도움을 요청하는 의미라고 했다.

이 냄새를 꼭 기억해. 가장 진한 냄새니까.”

 

쓰레기장 근처에서 멈췄다. 냄새가 달라져 있었다. 다른 동족이 그 위에다 자신의 오줌을 누어 냄새를 덧씌운 모양이었다. 안전한 길임을 뜻하던, 내가 따랐던 냄새 위에 위험하다는 냄새가 있었다. 조금 더 걷자 다시 냄새가 달라졌고, 그 달라진 냄새에서 또 냄새가 달라졌다.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같은 위치에서 위험하다는 냄새와 안전하다는 냄새가 공존했고 어느 곳에서는 위험하다는 냄새 위에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냄새를 덧씌워져 있었다. 온전히 이어진 냄새가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냄새를 간섭하여 냄새길을 짧게 자른 채였다. 거기엔 어떤 맥락도 느껴지지 않았다. 악의를 가지고 서로를 방해하는 게 아닐까 했지만 거기엔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나의 냄새만 믿어야 한다는 결론뿐이었다.

돌아보니 지나쳤던 304호 아이와 아이들과 아이의 어미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미는 나를 바라보며 전화기를 귀에 댄 채였고, 아이들은 나를 향해 부채꼴로 서서 마치 놀이를 하듯 장난기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얌전히 그들에게로 향했다. 경계심을 숨기곤 천천히 다가가자 멍청한 아이 하나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틈새를 향해 달려가 아이들과 어미를 따돌렸다.

-어머, 어떡해!

아이의 어미가 소리쳤다. 멍청한 아이의 멍청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멀어졌다. 그들의 시야에 잡히지 않도록 아파트를 끼고 돌았다. 거기에 전화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네가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네가 내 쪽으로 달려오며 손을 뻗었다. 겨우 몸을 틀어 손을 피했다. 네가 내 뒤를 따라 달리며 소리를 질렀다.

-밍키야! 밍키! 밍키!

네 목소리가 아파트단지에서 메아리쳤다. 밍키! 밍키!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났는데 그건 마치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던 누군가가 비웃으며 네 목소리를 따라하는 것만 같았다. 네 목소리는 간절하기 짝이 없었고 그래서 슬펐고 우스우면서 짜증이 났다. 짜증이 났다, 고 생각할 때 주차된 차 뒤편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나를 낚아챘다. 경비였다. 뒤늦게 달려온 너는 경비에게서 나를 받아 안았다. 너는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목줄을 하고 다녔어야지.

경비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가슴께가 쓰렸다. 경비의 손톱에 긁힌 모양이었다. 네 울음소리는 줄어들지 않았고 아파트 사방에서 누군가가 네 울음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네 품에 안긴 나는 네 울음소리를 듣고 나타난 304호 아이와 아이들과 아이의 어미가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나와 네 모습을 보며 다행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게 육 년 전 일이라는 건 취한 네 중얼거림을 듣다가 알았다.

 

나와 형제자매들은 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절에서 살았다고 했다. 어떻게 절에 다다랐는지에 대해선 듣지 못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역시. 들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네 애미애비만 없었다면.

절은 산 깊은 곳에 있어서 오가는 발길이 드물다 했다. 우린 절 마당에서 어머니의 젖과 중들이 주는 것으로 배불리 먹었다. 마당에서 서로 깨물고 쫓고 쫓기면서 뒹굴었다. 어머니에게 말과 냄새의 의미를 배웠다. 밤에는 절에서 새나오는 불빛을 뒤로한 채 어머니의 품에 모여 절에서 흘러나온 옅은 향냄새와 바람에 섞여온 산 냄새를 맡았다. 우리가 조잘대면 어머니는 대꾸했다. 우리가 졸려 몸을 비비면 어머니는 코를 들이밀어 우리의 몸 구석구석의 냄새를 맡았다. 어머니가 웃었다. 우리 중 하나가 졸린 눈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왜 웃어요?”

어머니는 대답 대신 우리의 귀나 목덜미를 간지럽게 깨물며 웃었고 우리는 영문을 몰랐지만 어머니가 웃었기에 따라 웃었다. 그러다 잠에 들었다.

마당으로 차 한 대가 들어섰고 둘이 차에서 내렸다. 그게 네 애미애비였다. 드나드는 이가 드문 절이라곤 했지만 아예 발길이 끊어진 것도 아니니 네 애미애비가 왔다고 해도 절을 찾는 발길이 드물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거였다. 중 하나가 네 애미애비를 맞으러 나갔고 어머니도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네 애미애비 쪽으로 향했다. 그때 우리는 햇볕 아래서 배를 까거나 서로의 몸에 머리를 받치거나 모로 누워 낮잠을 자던 중이었다. 나는 배를 까고 누웠던 쪽이었는데, 햇볕을 바로 맞는 바람에 눈이 부셔 잠깐 깼었다. 애써 눈을 감고 잠에 빠지길 기다리는데, 어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 벌린 아가리가 햇볕을 뚫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네 애미의 손이었다. 뒷덜미를 잡혀 허공에 들려진 나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어머니가 애타게 네 애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걸 본 네 애미가 어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머니가 얌전히 앉아 네 애미를 올려다보았다. 중이 말했다.

-얘가 어미입니다.

-정말요. 어떡하니

네 애미는 나를 품에 안은 뒤 어머니 앞에 쭈그려 앉아 어머니와 눈을 맞추려 했다. 네 애미가 앉았는데도 어머니보다 시선이 높았다. 네 애미가 목을 아래로 길게 빼고 나서야 눈높이가 비슷해졌다.

-걱정 마렴. 내가 정말 예쁘게 잘 키울게.

그때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한다. 어머니의 얼굴에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마치 햇볕에 말라 죽은 지렁이를 보는 것 같았으니까. 네 애미가 나를 자동차에 태운 뒤, 그제야 잠에서 깬 형제자매들이 울면서 달려오고 내가 열린 창문으로 몸을 내밀어 울었을 때까지도 어머니는 터덜대는 걸음으로 자동차를 따라오며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네가 군대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네 애미와 네 애비는 이혼했다. 모두 305호를 떠나기로 했고 너는 나를 원룸으로 데려왔다. 305호에 있던 너의 방보다 약간 넓은 곳이었다.

-차라리 잘 된거야.

이사를 마친 뒤, 내 목에다 선물인 양 사온 새 목줄을 걸면서 네가 말했다. 네 얼굴은 마치 오래전 보았던 어머니의 얼굴과 비슷했다. 사체가 되어 바닥에 떨어진 날벌레의 눈알 같은 얼굴. 너는 그런 얼굴로 내 목에 걸린 새 목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는 그렇게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305호에서 수시로 일어났던 네 애미와 네 애비의 싸움질 때문이라고, 네 애미애비가 서로를 씨발년과 씨발놈으로 만들어 서로를 접시처럼 깨부수려 하고 각자의 친척을 불러 도저히 못 살겠다 외쳤던 시간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네 귀에다 악을 지르고 싶었다. 네가 군대에 있을 무렵 305호에서 일어났던 일들, 방에서 어떤 남자와 교미하던 네 애미가 신음소리를 내며 그 남자에게 매달리듯 끌어안았던 순간이나 네 애비가 거실 소파에 누운 어떤 여자와 겹쳐 누워 서로의 생식기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내던 순간들에 대해 네게 씹어대고 싶었다. 전부 내 눈앞에서 일어났다고, 네 애미애비는 거실에 걸어둔 가족사진을 잠시 치웠어도 내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고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녔다고, 그래서 질리도록 여러 번 봤다고, 보지 않으려 해도 들렸고, 듣지 않으려 해도 느껴졌다고, 길어지는 시간만큼 집 안에 짙어지던 지린내가 생생하다고. 제발 거짓말이길 바라며 네 얼굴에 묻어나는 절망과 수치를 지켜보고 싶었다. 그러나 네겐 멍멍 컹컹 웡웡 끼잉끼잉 정도나 들리겠지.

너는 네가 무너졌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전화를 할 때나 원룸을 찾은 친구와의 대화에서 항상 그랬고 실제로 삶의 어느 부분이 무너진 사람처럼 굴었다. 너는 이혼 때문에 무너진 게 아니라고 말했다. 물론 부모의 이혼이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건 갑작스런 짜증과 불편함 정도로 끝날 수도 있었던 문제라고 했다. 그건 제대하고서 복학 전까지 집에서 푹 쉬었으면 좋겠다는 네 바람이 꼬인 거였고, 청소나 설거지 빨래를 모두 직접 하고 밥을 차려먹을 생각에 급격히 피곤한 거였고, 좁은 방에서 살아야 하는 거였고, 305호에선 잘 보이지 않던 바퀴벌레 따위가 나옴에 신경이 쓰이는, 고작 그 정도의 문제일 뿐이라고 했다.

네 말대로, 너를 무너뜨린 것은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네 애미애비의 습관적인 전화 때문이었다. 네 안부를 묻는다는 핑계로 걸려오던 전화는 네 애미애비의 하소연으로 변해갔다. 내가 잘못 살아서! 어미가 잘못 살아가지고! 하는 네 애미의 울음소리가 내게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너는 이부자리 위에 구부정한 자세로 앉은 채 대답도 않고 한참을 가만히 들기만 했다. 네 애비는 김주희를 만난 적 있느냐, 연락은 하느냐, 웬만하면 연락을 하지 말아라, 믿을 수 없는 년이다, 따위의 말을 해댔고 점점 당연한 듯 술에 취한 채였다. 전화는 한밤중이나 이른 아침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울렸다. 나중엔 외가친척들에게서도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네 애미가 전화기를 꺼둔 채 사라지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너는 점점 바쁘거나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전화를 피했다. 하지만 모든 전화를 피할 순 없었고 네 애미애비는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 죄송해요, 바빠서 그랬어요, 제가 어제 심하게 체해서, 아니에요 제가 왜 아빠 전화를 피해요, 엄마 너무 그러지 말고 이모랑 얘기 한번 해보는 거 어때요, 저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밍키 잘 지내고 있구요그러던 너는 항우울제를 처방받아왔고, 결국 자존심 때문에 경비라도 하며 살겠다는 네 애비의 취한 목소리를 듣다 소리를 질렀다.

-아니, 제발 그만 좀 하면 안 돼요? 시도 때도 없이지금 내 인생 갉아먹고 계신 거 아세요? 아시냐고요! 덕분에 나 지금 정신과에서 우울증 약 먹고 있거든요? ?

그 이후 약속이라도 한 듯 네 애미애비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욕지거리를 해대거나 얼굴을 심하게 구기거나 짜증 섞인 한숨을 토해내던 네 습관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걸려온 전화들이 네 애미애비의 것은 아니었으니 너는 조금씩 약을 줄여갈 수 있어 보였다.

그러나 너는 여전히 항우울제를 먹었다. 알약의 개수가 더 늘었고, 잠에 들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밤마다 소주까지 꺼내 마셨다. 그러곤 너는 정말로 잠에 들거나, 약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에 취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사는 게 너무 좆같다서영식이나 김주희나 전부씨발 새끼들

네가 여전히, 오히려 더 악화된 이유는 네 애미애비가 전화를 걸지 않는 대신, 각자 서너 달에 한 번씩 원룸을 찾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들, 집에 있니?

-나다. 문 좀 열어 봐.

네 애미는 반찬을 싸들고 왔고 네 애비는 외식을 하자며 너를 끌고 나갔다가 음식냄새를 풍기며 돌아왔다. 네 애미는 괜찮다는 네 말을 무시하며 냉장고 정리를 하거나 방바닥을 닦았고 네 애비는 선풍기 날개나 에어컨 필터 청소를 하거나 방충망을 떼어내 물로 씻고 창틀 사이사이에 쌓인 먼지와 죽은 벌레와 담뱃재들을 전부 닦아냈다. 네가 정말로 집을 비웠거나 혹은 없는 체하면 네 애미애비는 그때부터 문을 두드리거나 네게 어디냐고 전화나 문자를 해댔다. 끝까지 네가 오지 않거나 없는 체하면, 네 애미는 반찬을 맡아달라며 옆집 문을 두드렸고, 네 애비는 종일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옆집 등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결국 너는 열쇠를 복사한 뒤 어디에 열쇠를 숨겼는지 네 애미애비에게 일러주었다.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지만, 네 애미애비는 반드시 네 허락을 맡은 뒤 들어가려 했다. 그렇게 네 허락을 맡고 원룸 문을 열고 들어온 네 애미애비는 나를 매우 반기며 내게 챙겨온 간식을 꺼내 주었다.

 

*

 

엄마, 그런데 왜 그건 얘기 안 해요? 그때 엄마 아주 좋았잖아요. 기뻤잖아요. 아저씨나 아줌마가 올 때마다 엉덩이를 막 흔들고 끙끙거리면서 두 분을 반겼잖아요. 뒷발로 일어서면서까지 반겼잖아요. 엉엉 울듯이 반겼잖아요? 아저씨가 오리고기 육포를 가지고 와서 엄마한테 내밀었을 때 엄마는 아저씨가 말 안 해도 아저씨 앞에 예쁘게 앉아서 아저씨의 허락을 기다렸잖아요? 아니라고 말 못하잖아요? 아저씨가 먹어! 해야 먹었잖아요. 그때 엄마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고 두 분이 되게 예전에 엄마한테 지어 주었던 사랑스러운 미소를 엄마는 기억해냈잖아요? 305호 거실에서 아저씨랑 술래잡기 했던 거 떠올렸잖아요? 커튼 뒤에 숨어있던 아줌마를 찾아낸 게 신나서 막 소리 지르고 했던 거 떠올렸잖아요? 엄마는 모두를 좋아하잖아요! 오빠까지도.

왜냐면 따뜻하고 배불렀으니까요. 엄마는 305호에서 진짜 나쁘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으니까요. 할머니랑 이모랑 삼촌이 떠오르던 밤은 그립고 쓸쓸했지만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너무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오빠가 엄마의 양 볼을 쭈욱 잡아당기면서 머리에 입을 쪽 맞추는 아침이 있었고 그 즈음엔 다 까먹고 끝났죠. 가족들을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날 수도 있을 거야. 만나게 해 주겠지. 하는 생각이나 했고요.

물론 언제나 좋은 건 아니었겠죠. 그분들과 엄마 사이엔 어떤 벽이 있었으니까요. 너무 두껍고 높아 상상만 해도 엄마가 하찮아지는 벽이요. 엄마도 그걸 느끼긴 했잖아요? 출근이니 등교니 하면서 매일 엄마를 혼자 두고 떠나는 그분들이 엄마에게 건넸던 끔찍하게 밝은 인사 같은 것, 그렇게 혼자 남겨졌을 때 집에서 사방이 막힌 공간으로 변하던 305호 같은 것, 엄마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엄마를 인형처럼 쓰다듬고 끌어안던 손길 같은 것, 엄마가 원할 때가 아니라 그분들에게 짬이 날 때만 나갈 수 있던 산책 같은 것, 엄마의 울적함을 느껴서 낑낑거릴 때마다 그분들이 무슨 만능약처럼 건네던 육포 같은, 바로 그런 것들이었잖아요? 하지만 엄마는 그 모든 걸 참고 넘기면 언젠가 잘 될 일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엄마 자신도 305호 식구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요. 정말 아주 가끔, 모두와 함께 아저씨가 운전하는 차에 타 바람을 맞으면서 어딘가로 멀리멀리 나들이 갔던 그런 날들을 떠올리면서 말이에요. 그래서요, 제가 지금 조잘거리고 있는 거예요.

아줌마가 엄마의 중성화수술을 예약했다는 걸 알았을 때, 엄마는 직감적으로 중성화수술이라는 게 무슨 짓인지 알아챘어요. 놀랍게도 엄마는 중성화의 뜻을 알았고 수술의 뜻도 알았으니까요. 엄마는 정말로 그 수술이라는 걸 원하지 않았어요.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짓이었으니까요. 아줌마는 그 수술이 엄마가 모두와 더 오래오래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지만, 엄마는 다른 걸 떠올렸어요. 바로 몇 달마다 엄마를 찾아오던 월경이었죠. 엄마가 지나간 길마다 떨어지던 핏자국과 그걸 닦아대던 모두의 얼굴도 함께요.

엄마는 어떻게든 싫다고 말하려 했어요. 수시로 방문을 긁고 아줌마한테 가서 얘기 좀 들어달라고 울어대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너무 격해진 나머지 아줌마한테 이런 씨발년아! 하고 욕도 해 버렸죠) 어떻게 몸짓으로라도 얘기를 해보려 했었죠. 그렇지만 결국 엄마는 병원으로 향하는 아저씨 차에 태워지고야 말았어요. 엄마가 진짜 미친 듯 싫다고 말했지만 아줌마는 묵묵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얘 오늘따라 왜 이러지? 할 뿐이었고요. 병원에 다다랐을 때, 엄마는 제발, 제발요, 하면서 아줌마 어깨에 매달렸어요. 그래서 아줌마가 알아줬나요? 아줌마 어깨에 상처를 냈다고 아저씨한테 콧등을 맞는 게 전부였잖아요. 결국 아줌마는 의사에게 엄마를 넘겨주었잖아요. 아저씨 아줌마는 아침마다 엄마를 혼자 두고 떠날 때처럼 손을 흔들며 떠났고요. 그때 엄마는 믿을 수 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무언가가 원망스러웠잖아요.

근데 그게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을까요?

우리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배운 적 없는데도 어떻게 알아들을까요? 생각해보면 엄마는 절의 중들이 할머니에게 했던 말을 전부 알아들었어요. 할머니는 물론이었고 이모나 삼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럼 할머니는 원래 알았던 걸까요? 몰랐다가 배웠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 그런데 결국엔 누가 알려줘야 배우는 거 아니에요? 그럼 할머니는 누구에게 배운 걸까요? 그럼 그 누구는 누구에게 배운 걸까요? 다 그렇다 쳐요. 그럼 우리는 걔네 말을 잘 알아먹는데, 걔네는 왜 우리말을 전혀 못 알아먹죠?

사실 그런 건 이미 엄마가 해봤던 생각들이었어요. 언제나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생각들이었죠. 하지만 엄마는 그때가 돼서야 그 개미떼 같은 생각을 줄줄이 늘어놓았어요. 의사가 내려다보는 수술대 위에 배를 깔고 누워서 공포심에 똥오줌을 지리면서 어느 순간에 맞았던 마취주사의 약기운이 엄마를 잠재우기 직전까지요.

눈을 떴을 때, 엄마는 몸 하나로 꽉 차는 병원 철창에서 깨어났어요. 마취가 덜 풀려서인지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고, 눈도 종일 흐릿하면서 아팠죠. 밤에도 쉬지 않고 제멋대로 쿵쿵쿵 뛰는 심장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배를 묶어놓은 시커먼 실밥은 또 얼마나 끔찍했는데요. 마치 엄마를 파먹다 잠든 기생충처럼 보였죠. 그걸 배에서 뜯어내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어요. 우스꽝스런 깔때기를 목에 두르고 있었으니까요. 시간이 꽤 지나도 눈은 계속 풀리고 심장이 가슴 속에서 미친 두꺼비처럼 폴짝거렸어요. 시커먼 기생충은 잠에서 깨어 엄마의 배를 갉아먹기 시작했고요.

305호로 돌아왔을 때 다들 엄마를 한껏 반겨주었어요. 목에 둘러진 깔때기나 배에 길게 이어진 새까만 실밥을 보면서 안타까워도 했고요. 하지만 엄마는 전부 싫었어요. 그저 조용히 쉬고 싶었죠. 아무리 모른 척 하려고 해도 그때만은 그분들에게 살갑게 대할 수 없었어요. 그걸 알았는지 아줌마 아저씨는 빳빳한 새 이불을 덮어 주었죠. 하지만 거기까지였어요. 곧 오빠가 핸드폰으로 엄마의 사진을 찍어댔거든요. 오빠는 사진을 보며 웃었고 아줌마 아저씨도 오빠가 찍은 사진을 보며 빙긋 웃었어요. 그때 엄마 얼굴은 정말로 축 쳐지고 우울했는데 다들 그걸 보고 귀엽다고 했어요. 근데요, 엄마도 그때 찍혔던 사진을 봤죠? 귀엽긴 정말 귀여웠어요!

다들 티브이를 켜거나 컴퓨터 앞에 앉거나 밖으로 나갔을 때, 그제야 엄마는 조용히 쉴 수 있었어요. 한참을 쉬다가, 엄마는 생각했어요. 아니, 저에게 말을 걸었어요.

차라리 잘 된 걸지도 몰라. 나는 더 나은 세계를 보여줄 자신이 없거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줄 자신도, 방법도. 네 앞에서 저들에게 꼬리를 흔들며 배를 까 누워 복종한 날의 밤, 불 꺼진 거실에서 내 품속에 웅크린 너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듯 이렇게 되뇌었을지도 몰라. 미안하구나미안하구나너는 태어나서는 안 됐고, 널 낳아서는 안 됐다. 널 낳은 내가 태어나서도 안 됐고, 날 낳은 내 어미가 태어나서도 안 됐었다. 우린 본래 살았으면 안 됐을지도 모르겠구나

엄마! 엄마! 엄마! 너무 웃겨요! 엄마가 그런 말을 해도 돼는 거예요? 엄마는 305호에서 뛰쳐나왔을 때를 아주 잘 기억하잖아요? 그거 중성화수술이 싫어서 나간 거였잖아요? 그런데 나가서 뭘 했었죠? 저에게 거짓말을 할 생각이에요? 오줌 냄새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탓하려고요? 엄마는 망설였던 거잖아요? 엄마는 무서웠던 거잖아요? 시원한 수돗물, 선풍기 바람과 따뜻한 마루와 그 위에 돌아다니는 육포와 개껌과 장난감, 푹신한 솜이불과 배부른 밤이런 것들과 떨어질 수 없었던 거잖아요? 그걸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엄마는요, 엄마 스스로 할머니에게 배운 것들을 전부 쓸모없는 걸로 만들어버린 거예요. 할머니의 엄마아빠, 할머니의 엄마아빠의 할머니할아버지, 또 그 엄마아빠의 할머니할아버지의 엄마아빠들로 쌓인 언덕의 맨 위에서 엄마는 똥이나 누고 내려온 셈이었으니까요. 어쩌면 엄마는 새로운 언덕이 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그러면 뭐 해요? 엄마의 언덕은 엄마가 처음이고 엄마가 마지막인 거잖아요.

더는 없는 거잖아요.

 

*

 

너는 집에 데려온 친구와 큰 소리로 다퉜다. 스스로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쉬지 않고 떠들던 너에게, 친구가 어지간히 하라고 말한 게 이유였다. 옆집 여자가 문을 쿵쿵 두드리며 제발 조용히 해달라며 짜증을 냈다. 너는 문을 벌컥 열며 여자에게 어떻게 말도 못하게 하냐며 화를 냈지만 친구가 여자에게 고개를 연신 숙이며 사과를 한 덕에 상황은 진정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차를 타고 집에 가겠다던 친구는 네게 인사도 없이 나가고 말았다.

다른 친구들과도 비슷한 일이 두어 번 있었다. 그 후로 넌 더 이상 집에 친구를 들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전화하지도 않았다. 누구도 너와 연락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넌 여전히 취했고 뭔가를 계속 말하려 했다. 아무도 네 얘길 듣지 않게 되자, 곧 너는 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네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원룸이었다. 너를 괴롭히는 장면과 말, 감정 등의 순간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이야기를 흘려들어도 목소리와 말투, 표정을 통해 네가 얼마나 엉망인지 알 수 있었다.

-전부 기억나. 언젠가 아빠가 다 같이 죽자고 했었어. 술에 취한 채였지. 엄마는 소리를 질렀고 아빠는 울면서 방바닥에 칼을 박았어. 영화처럼 푹 세워져서 박히더라. 엄마는 나를 보면서 자꾸 아빠를 떠올렸던 거 같아. 내가 말이 많으면 시끄럽다고, 남자가 뭘 그렇게 떠벌떠벌대냐며 짜증을 냈어. 아빠는 우는 나한테 너는 그게 약점이야라는 말이나 해댔고 담배는 아빠가 식탁에서 친척들이 엄마였고 너희 가족이 나한테는 네가 있어서 행복하고 밍키, 사랑해 그때부터 무릎을 암이었대 사랑이 사진을 느꼈어 끔찍해 안 될거야 똑같더라 병원에서 리모컨이 밤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닮았대 그니까 여기가 밍키, 누가 먼저 때렸냐? 이모가 가만히 있으면 거실이 웃는데 혼자 먹는 걸 못 참아 화목을 아빠는 여행이 때렸어 결혼기념일 자꾸 찾아와 할머니가 글씨체부터 머리통으로 밤마다 싸우는 거 아니야컵을 얼굴에 던지고, 아 너도 봤었지, 차라리 보일러를 튼다고 음식 냄새가 꼬투리를 발로 친척이 혈액형 다른 여자 검사라면서 친할아버지가 취했지 바퀴를 산후 닮아서 거짓말 부서지고 퍽 퍽 잘 될거야 사내새끼 운전하다가 젖지 않도록 할 말이 똑같대 귀여웠고 이사를 밍키, 식탁은 부러웠어 끌어안는데 온 몸에 대화를 생각해보면 늘어놓았거든 사과를 했는데 생일이었어 방문을 온가족이 바짓단도 모여서 친구들이 끔찍해 가짜로 돌아가시고 듬직했대 키스가 꿇고 도망쳤어 선물이었지

어느 날부터 배가 묵직했다. 배고픔이나 배변감과는 상관없이 항상 그랬다. 아침에 눈을 떠도 몸을 움직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거미줄에 걸린 벌레라도 된 듯이, 나는 전날 밤에 누웠던 자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그래서 아침을 먹거나 먹지 않은 채 가방을 매고 밖으로 나가는 네 모습을 누워서만 바라보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도 이상한 낌새를 느낀 모양이었다. 너는 바지를 입다가 내 앞에 앉아 물었다.

-왜 그래,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너는 내 이곳저곳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나를 만지던 손이 배에서 머물렀다. 불룩하게 튀어나온 뱃속에서 출렁임이 느껴졌다. 너는 배를 한참 바라보았다.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다 너는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나는 앉았다.

-괜찮지, 밍키?

나는 겨우 두어 걸음을 걸은 뒤 물그릇에 담긴 물을 마셨다. 혓바닥으로 물을 퍼 올리는 소리가 대답 대신 맴돌았다.

배에 복수가 찼다는 걸 알아낸 것은 네 애미였다. 뚜껑을 열자마자 쉰내가 퍼지던 깻잎절임을 버리며 네가 오기를 기다리던 네 애미는 설거지를 마친 후 내 이곳저곳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내 배를 만졌다. 네 애미는 곧바로 나를 안아들고 원룸 밖으로 나섰다. 나는 네 애미에게 안긴 채로 바깥 공기를 마셨다.

상쾌했다.

원룸에 온 뒤로 유난히 그랬다.

그때까지 열댓 번 정도나 나갔었나.

너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갈 상태가 아니었다.

너는 네 애미가 받아온 가루약을 사료에 뿌렸다. 배에 찬 복수를 빼는 이뇨제다, 수술이 위험하다고 해서 약만 처방받았다, 심장도 좋지 않다더라, 배를 자주 확인하고 변하지 않으면 병원에 다시 가야 한다, 하고 네 애미가 네게 말했다. 너는 나가기 전에 약을 사료에 뿌렸다. 나흘 쯤 지나자 다행히 배가 가벼워졌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움직이는 게 훨씬 좋아졌다. 나는 그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어김없이 술이나 약에 취한 네가 내게 뭔가를 떠들어대던 밤이었다. 옆집 여자가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났다. 네가 비틀대며 일어나 문을 활짝 열고, 여자에게 개 같은 년이 자꾸 시비야! 하고 소리쳤다. 나는 그때 이불 속에서 뛰쳐나왔다. 찬 공기와 바닥이 느껴졌다.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렀지만 너는 휘청거리며 여자에게 헛손질을 하다 엉덩방아를 찧느라 나를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몸을 일으켰을 때 여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여자는 네게 말해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시커먼 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켜진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 불빛만 따라 달렸다.

 

추웠다. 주차된 차 아래에서 눈을 떴다. 바닥은 전혀 따뜻해지지 않았다. 몸을 떨면서도 이렇게까지 추운 것 같진 않은데, 하고 생각하다 네 애비가 나를 쓰다듬으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얘도 이제 늙었다고 털도 듬성듬성해.

차 아래에서 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계단에서 굴렀을 때 다리를 삔 모양이었다. 겨우 나오니 아파트단지만큼 빽빽하게 모인 주택들이 보였다. 비슷한 높이와 비슷한 철문에 대체로 회색이거나 다갈색의 벽돌로 이루어진 주택들이었다.

일단은 어디로든 가 보기로 했고 그전에 근처 전봇대에다 오줌을 누었다. 돌아올 곳은 있어야 했다.

자동차를 주의하며 벽을 낀 채로 다니면서, 혼자 이렇게 멀리 떠난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머니와 산을 다녔을 때도 너무 어릴 때라 그리 멀리 나가진 못했으니, 정말로 처음 멀리 떠나본 거였다. 밤새 달렸으니까. 네가 따라올 수 없게 쭉 달렸으니까.

그러나 전봇대나 벽에 오줌을 누면서, 여기가 정말 네 원룸에서 먼 곳일까 하는 의문이 점점 커졌다. 무엇보다도 여기는 네 원룸이 있던 곳과 너무 비슷했다. 낮은 건물들, 전봇대와 그 앞에 버려진 쓰레기들, 그런 골목골목에서 튀어나오는 가방을 메고 다니는 네 동족들, 어디서 흘러나온 TV소리와 음식과 담배의 냄새, 참새가 우는 소리가 나고 간간히 서 있는 나무들과 무신경하게 돌아다니는 비둘기, 여전히 새카만 차도와 엇비슷한 회색의 땅바닥어디서든 네가 나타나도 놀랍지 않을 것만 같았고 나는 조금 더 멀리 갔어야 했을까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시야 멀리에 아파트단지가 보였는데 마치 산과 같은 모양새였다. 애써봐야 저곳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차를 탈 수 있었다면, 하고 생각했다가 그만두었다. ‘편의점이라는 글자가 쓰인 건물 앞에 놓인 의자 아래에 떨어진 김밥 몇 개가 있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걸 먹었다.

해가 벌써 지고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했다. 이곳의 동족들 역시 맥락 없이 서로의 냄새를 끊어대고 있어서 어두워지면 돌아갈 때 난처할 수가 있었다.

예상대로 내 냄새길 역시 끊어져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돌아와 보니 곳곳에 동족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자 차 뒤에서 나보다 몸집이 서너 배는 큰 동족이 나타났다. 동족은 내게 다가와 코를 들이밀어 이곳저곳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도망칠까 생각했지만 삔 다리 때문에 따돌릴 자신이 없었다. 동족의 코가 네가 걸어둔 목줄에 멈춰 한참 머물렀다. 킁킁대길 멈춘 동족이 말했다.

썚꿁촾 뿌쬶.”

나는 동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말인가. 이런 건 평생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잘못 들은 것일까 해서 가만히 동족을 바라보자 동족은 다시 비슷한 소리를 냈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동족을 다시 뜯어보았다. 나와 성별이 달랐고 털은 희었고 나보다 몸집이 컸다. 귀가 반듯하게 서 있고 입이 적당히 길고 꼬리가 위로 둥글게 말려져 있었다. 네가 보던 티브이에서 이런 모습의 동족들을 진돗개라 불렀다는 것도 떠올렸다. 분명히 그는 진돗개거나 아주 진돗개를 닮았고, 동족이었다. 그런데 그의 말은 내가 알고 있는 동족의 말이 아니었다. 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동족진돗개는 몸을 돌려 몇 걸음 갔다가 다시 내 쪽을 바라봤다. 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다가왔다가 멀어졌다가 다가왔다가 멀어졌다가 했다. 진돗개는 계속 그 몸짓을 반복했고 그제야 나는 진돗개의 뒤를 따라 보기로 했다. 진돗개가 보폭을 유지하며 앞섰다. 따라도 되는 것 같았다.

뒤를 따르며, 진돗개가 내게 보인 몸짓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종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몸짓. 사마귀가 두 앞발을 좌우로 번쩍 들어 보이는 것과 같은.

진돗개는 산으로 향했다. 고향과 달리 낮고 산책로가 나 오가는 발길이 많은, 동네 뒷산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곳이었다. 진돗개는 너희 동족들이 만든 나무계단이나 푯말 따위가 있는 입구 대신, 거기서 빙 돌아가면 나오는 산을 둘러싼 녹색 철창의 아래 틈으로 들어갔다. 철창 근처에서부터 전봇대나 건물 벽 등에 동족들의 오줌 냄새가 묻어 있었다. 산 곳곳의 나무 밑동에서도 그랬다. 놀랍게도 그 냄새들은 전부 일관된 냄새였다. 모든 냄새가 진돗개가 가는 방향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도착한 곳엔 낮은 언덕이 있었다. 언덕에는 사선으로 뿌리와 몸통을 드러낸 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에 굴이 파져 있었다. 나무뿌리를 지붕으로 삼은 굴이었다. 거기서 어린 아이들 여럿이 입이 짧고 몸이 굵은 동족의 품에서 몸을 부비고 있었다. 그녀가 어미일까 생각했지만 아이들과 그녀의 생김새는 많이 달랐다. 진돗개가 다가가자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진돗개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곤 내게 다가와,

뭀웳.”

하고 말하곤 다시 굴로 들어갔다. 굴에서 깡충거리며 나온 아이들이 내 주위로 모였다. 아이들은 내게 무언가 잔뜩 재잘댔지만 내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알아챘는지 곧 저들끼리 몸을 굴리며 요란스럽게 놀았다. 그 모습이 형제자매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모두 고향에서 늙었을지 궁금했다. 아마 아닐 것 같았다. 어쩌면 나만 남았을지도 몰랐다.

해가 지고 완전히 어두워지자 동족들이 모여들었다. 굴에는 아이들과 입이 짧은 동족, 그리고 나보다도 몸집이 작은 동족만 들어갔다. 나머지는 그 주위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 그들이 하나 둘 잠드는 동안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그건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낮게 깔린 긴장감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평소에 자던 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잠을 청하려 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두워진 산 아래에서는 낮은 건물들의 불빛들과 그 사이사이를 지나는 자동차의 붉은 빛이 선명했다. 아마 한창의 밤일 거였다. 한창의 밤. 어미와 아비가 집에 있고 아이들이 학원에서 다녀와 컴퓨터를 켜고 늦은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보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을 시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얼핏 고향의 밤과 비슷하기도 했다. 어둠 아래로 떠다니는 동족들의 살 냄새와 체온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건 내가 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염없이 그 불빛들을 보았다. 모든 불빛이 꺼진 건물이 늘어날 무렵, 졸음이 밀려왔다.

 

눈을 뜨자 동족들이 각자 흩어져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눈이 푸른 동족이 굴에서 아이들을 품고 있었다. 검고 흰 색깔의 털이 따뜻해 보였다. 나는 누군가가 계속 몸을 흔들며 깨워서 겨우 눈을 뜬 거였는데, 나를 깨운 건 어제 굴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입이 짧은 동족이었다. 그녀는 내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지 계속 내게 무어라 말을 걸었다.

다들 어디로 가나요.”

답답함에 내가 묻자, 그녀의 귀가 아래로 쳐졌다. 마찬가지로 내 말은 그녀에게 말이 못 된 채 닿는 것 같았다. 그녀가 말없이 앞섰고, 나는 뒤를 따랐다. 그녀는 진돗개와는 다른 곳으로 산에서 빠져나왔다. 마찬가지로 주택이 밀집된 곳이었고 너의 동족들이 바쁜 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큰 길로 나가는 대신 골목들을 지나며 다녔는데,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계속 음식 냄새를 풍겼다.

그녀가 다다른 곳은 바로 시장길이었다. 음식 냄새는 여기서 나고 있었다. 바싹 마른 콩나물이나 배추 등의 채소 찌꺼기와 흙, 그리고 신문지 조각들로 길은 지저분했고, 바닥에서는 짜고 비린 냄새가 났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건물들 대개는 아직 닫혀 있었다. 두엇 정도의 건물만 이미 불이 켜진 채였다. 그녀를 따라 국밥’, ‘해장국’, ‘선지등의 글자들이 난잡하게 적힌 건물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고기와 뼈, 국물에 만 밥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먼저 먹던 그녀는 절반 정도를 남긴 뒤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살코기가 두껍게 붙은 뼈 하나를 입에 문 채였다. 산에 가져가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남긴 절반을 먹었다. 거기선 305호에서 지낼 때 네가 몰래 식탁 아래로 내게 흘려준 음식들과 비슷한, 코를 찌르는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났다. 네가 몰래 음식을 주던 걸 네 애미에게 들켰을 때 네 애미는 너를 그렇게 꾸짖곤 했다.

-사람 먹는 걸 자꾸 주면 밍키한테 안 좋다고 했잖아, 밍키가 아팠으면 좋겠니?

내일부터라도 혼자서 시장을 좀 더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것을 나누어먹었음에 불편한 마음이 들어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먹어서는 너무 부족했다. 산에서 머무는 동안 스스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야 했다. 나는 산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굳이 떠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내치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그곳에서 지낼 생각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그들과 지낼 나날을 상상해보았다.

 

그녀 너머로 시장 길목을 막은 자동차 한 대가 보였다. 차와 길목 사이의 좁은 틈새로 너의 동족들이 짜증 섞인 목소리를 흘리며 한 줄로 지나다녔다. 건물에서 나온 남자가 차 앞부분을 두들겨댔다.

-여기 들어오는 데 아니야. 차 빼요, 차 빼!

신경질적인 남자의 목소리와 차 두들기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자동차는 어영부영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만히 앉았다. 차가 빠지기를 기다릴 모양이었다.

-저 양반 운전 깝깝하게 하네. 후딱 좀 빠져요!

한참을 기다리던 남자가 삿대질까지 하며 재촉했을 때였다. 뒤로 빠지던 자동차가 갑자기 멈췄고 시동이 꺼지는 소리가 났다. 가만히 쳐다보던 남자가 자동차로 다가갔는데, 남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자동차의 양쪽 앞문이 벌컥 열렸다. 거기서 너의 동족이 하나씩 튀어나왔다. 그들은 남자를 옆으로 밀치면서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몸을 돌려 도망쳤지만 빠르게 달릴 수가 없었다. 어제 삔 다리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 옆을 지나 순식간에 멀어졌다. 나는 그들 중 하나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나를 붙잡은 그들은 그녀에겐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날 붙잡은, 그녀와 다른 종족이 날 들어올렸다.

나는 안긴 채로 오줌을 누었다. 어머니에게 배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가장 진한 오줌. 멀찍한 곳에서 그녀가 뒤돌아보고 있었다. 음식 냄새가 나는 거리에서 내 오줌 냄새가 천천히 퍼지고 있었지만 벌써 냄새가 그녀에게 닿았을 리는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고기를 입에 문 채였고 그래서인지 좌우로 넓은 입가로 침이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그녀가 어떤 표정인지도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할지 더듬을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콧잔등을 구기지 않은 채 날 볼 뿐이었다. 혹시 늦게나마 내 오줌 냄새를 맡고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리는 없었다.

괜찮았다. 괜찮지 않았지만 어차피 더 일어날 일은 없었다. 그러니 괜찮았다. 그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나 형제자매는 죽어가거나 죽었을 테지만 그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다행인가, 다행이었다. 다행이라 하는 게 나았다. 그거라도 봤으니 다행이었다. 그녀는 골목으로 사라졌다. 산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기를 물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사라지지 마난 너밖에 없어

날 안은 그녀와 다른 종족, 그러니까 너는 그렇게 말하며 울었다. 내 오줌이 네 허벅지를 적셨지만 너는 나를 한껏 끌어안아 주었다. 너는 계속 울었다. 창피하게 울었고, 한심하게 울었고, 우습게 울었고, 슬프게도 울었다. 네 애비가 널 일으켜 차에 태울 때까지.

 

*

 

누가 보면 큰 용기를 내서 원룸을 나간 줄 알겠어요. 그게 아니었잖아요. 엄마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 나간 거예요. 제 말이 맞죠? 엄마는 무슨 거창한 탈출, 해방 뭐 이런 걸 한 게 아니라요, 그냥 오빠가 사춘기 때 아줌마 아저씨에게 하던 반항이나 떼쓰기 딱 그 수준으로 그러니까 가출, 그저 가출을 한 거예요. 아니라고 할 거예요? 정말요? 대체 엄마한테 믿는 구석이 뭐가 있었냐고 제게 되물을 생각이세요? 진짜로요? 모르는 척 할 거면 제가 대신 말 해 드릴까요?

목줄.

원룸에서 오빠가 엄마한테 채워준 뒤 하루도 벗겨지지 않은 그 목줄이요. 취한 오빠의 중얼거림을 들을 때, 아줌마가 열쇠로 문을 열고 원룸에 들어올 때, 오빠의 친구가 오빠와 말다툼을 할 때, 오빠를 기다리던 아저씨가 담배냄새 나는 입으로 엄마의 입에 뽀뽀를 할 때, 옆집 여자가 신경질을 내고 엄마의 배가 무겁고 잠을 자고 일어나고 사료를 먹고 물을 마시고 하품을 하고 똥오줌을 누고 그랬을 때 언제나 엄마 목에 채워져 있던 그 목줄 말이에요. 엄마도 짐작은 하고 있었잖아요? 이상한 목줄이라고. 원래 목줄은 외출할 때나 하는 거였는데 말이에요. 그렇다고 몇 번 안 되는 산책을 나갔을 때, 전에 쓰던 목줄을 안 매던 것도 아니었죠. 목줄? 아니, 목걸이. 맞아요. 어쩌면 그건 목걸이에 더 가까웠어요. 그중에서도 아줌마가 목에 걸던, 하나의 보석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걸이요. 다른 게 있다면 엄마의 목걸이는 보석 대신 기계를 위한 목걸이였죠. 기계라는 걸 엄마도 알았잖아요? 오빠가 엄마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기 전에 작고 납작한 건전지를 목걸이 아래에다 끼워 넣는 걸 봤으니까요. 그리고 그게 어떤 식으로든 엄마를 오빠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 거라는 것도 알았잖아요. 오빠는 엄마를 한 번 놓쳐본 입장이라 충분히 그런 짓을 할 만한 새끼였으니까요.

원룸을 빠져나왔던 순간은 다급했으니 까먹었을 수도 있었겠죠. 그렇다 쳐요. 하지만 코를 킁킁대며 엄마의 이곳저곳을 맡아보던 진돗개가 목걸이에서 한참 멈췄을 때, 그땐 엄마도 목걸이를 알아차렸잖아요? 그 이후로 목걸이를 잊은 적 없잖아요? 왜냐면 산에서 만난 대부분이 엄마의 목걸이 냄새를 맡아댔으니까요. 하지만 엄마는 목걸이를 어떻게 하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남들이 냄새를 맡으면 긴장이나 해댔죠. 왜냐면 거기 무리에서 버려지거나 누가 달려들 것 같았으니까요. 그게 끝이었어요. 오빠가 어떻게든 쫓아올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아무 것도 안 한 채 시장 국밥이나 먹을 생각만 했죠. ‘정말 산에서 지내게 되는 걸까?’ 따위의 우스꽝스런 생각은 대체 왜 했는지 모르겠어요!

축하해요! 모든 게 엄마의 뜻대로 됐어요! 엄마는 그냥 아무 것도 할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엄마는 어차피 결국엔 오빠한테 돌아갈 거였던 거죠?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좋았을까! 오빠가 울어줘서 얼마나 좋았을까! 아저씨가 차까지 끌고 와서 얼마나 좋았을까! 오랜만에 아저씨 차를 타고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을까!

오빠가 찾아와 줘서 얼마나 좋았을까!

 

*

 

마르지 않은 너의 바지 때문에 차 안은 내 오줌 냄새로 가득했다. 환기를 위해 네 애비가 모든 창문을 열자 바람이 이곳저곳을 훑으며 지나갔다. 도로가 한적한 덕에 자동차는 더 빨리 달렸고 그만큼 들어오는 바람이 세고 쌀쌀해졌다.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흐린 기운 없이 온갖 것들이 환한, 좋은 날씨였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내 몸에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햇볕은 꾸준히 세상을 비췄다. 건물들의 유리면이 햇볕을 받아 반짝거렸고, 자동차들은 날카롭게 빛나면서 눈앞을 지나갔다. 코가 시리고 눈이 뻑뻑하게 말라갔지만 바람을 계속 느끼고 싶어 몸을 내민 채로 눈만 감았다.

지피에스라고 했다. 그것이 내 목에, 정확히는 목줄에 있다고 너는 네 애비에게 설명했다. 나는 지피에스라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 지피에스. 지피에스. 생각해도 소용없었다. 지피에스는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말과도 엮이지 않고 저 혼자 멀리 떠나가는 중이었다. 내 목줄에 대한 설명을 마지막으로, 너와 네 애비는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쩔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목줄에 무언가 있음은 알았다. 그게 지피에스라는 걸 알았다면, 나는 다를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결국 이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게는 손이 없을 뿐이었다.

눈을 뜨니 네 애비가 막 주차를 마친 참이었다. 눈앞에 허름한 회색 건물이 있었는데 바로 네 원룸 건물이었다. 날씨는 여전히 맑았고 네 바지는 축축하게 젖은 그대로였다. 햇볕은 이곳마저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네가 나를 품에 안고 차에서 내렸을 때 어둠 내내 달렸던 거리가 마치 환영이라도 하듯 너무 환하게 빛나서 나는 스스로가 우스워졌다. 네 애비가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너는 건물로 들어섰다.

네 원룸 문을 열자 눅진한 냄새가 몰려왔다. 네 체취와 술 냄새가 섞인 냄새였다. 불투명한 창문을 지나온 햇볕이 네 원룸 안쪽을 비추고 있었다. 그 좁은 공간에 자리한 옷장과 옷들과 책상과 책과 가방과 노트북과 싱크대와 설거지감과 식탁과 남은 음식과 쓰레기통과 쓰레기와 냉장고와 이불과 베개와 술병들과 내 사료 그릇이 하나의 풍경처럼 자연스러웠다. 대충 내 몸을 닦은 네가 나를 내려놓았고 나는 이불 위에서 뒹구는 소주병 사이에 엎드렸다. 너와 네 애비까지 자리에 앉으니 원룸이 가득 차 보였다. 네가 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니까 따뜻하고 좋지. 앞으로 나가면 안 돼. 밍키.

나는 나를 내려다보는 너를 엎드린 자세로 가만히 눈만 치켜떠 바라보았다. 배가 묵직했다.

띠용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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