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분홍색 앱에 알림이 떴다. 새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녀가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한 달 전에 신청한 임신 신청 등록 심사일이 잡혔으니 신분증을 가지고 출석하라는 것이었다. 

두 가지가 이전과는 바뀌어 있었다. 첫째, 그녀는 이제 C 등급이었다. 세 번째 임신 때만 해도 B 등급이 유지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강등이었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았다. 나이 때문이었다. 둘째, 지정 센터가 더 이상 시티 남서부 여성 메디컬 빌딩이 아닌 중앙 CMP 센터였다. 

 

11시까지는 CMP 센터 심사실까지 가야 한다. 지하철을 탔다. 출근 시간이 지나 지하철은 크게 붐비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맞은편 문 위에 달린 스크린을 무심히 보았다. 화면 아래에 ‘국가 주도형 임신 출산과 정부 공공 양육에 대한 논쟁 재점화……’ 라는 자막이 주먹만한 글씨로 느릿느릿 지나가고 있었다. 그 위로 스크린을 메운 것은 그녀와 같은 나이대로 보이는 여자 의사였다. 의사의 얼굴은 화사했고 건강해 보였으며, 자랑스러운 임신한 몸이었다. 의사가 스크린 속에서 말하고 있었다. 

“…… 정부 계획 하에 일어나는, 그, 국가 주도형 임신과 출산 정책이 소위 우생학에 입각한 것이냐, 아니냐는, 그러니까, 이미 한 세대 전에 논의가 끝났고요. 그 때나 지금이나, 그 당면 과제는, 양질의 유전자를, 잘 관리되는 환경 하에 양육하여, 그러니까, 현재도 진행 중인 인구의 양적, 질적 감소를 완화하고, 나아가서는 건실한 인구 회복을 도모하는……”

의사는 미소를 지었다. 국가 정책의 효과에 대한 산 증인이며, 현행 보건 기준을 통과하고도 남는 우수한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미소였다.

 

심사실은 CMP 센터 건물 2층에 있었다. 찌든 표정을 한 초로의 심사관이 회색 의료복을 입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인적사항 확인이 끝났다. 다음 차례는 임신 가능성 여부를 계산할 시간이었다. 심사관은 그녀의 과거 데이터를 모니터 위에 띄워 놓고 체크 박스를 클릭해 가며 진도를 나갔다. 

등록 번호 SA98-DXL:

36세. 노산 연령대.

술 담배 하지 않음. 마약류에 접한 전과 없음. 

범죄 기록 없음. 

유전병이나 가족력으로 내려오는 질병 없음. 

체중 살짝 과체중. 혈압 정상. 혈당 정상. 콜레스테롤 정상 범주이기는 하나 관리가 필요할 수 있음. 

월경 주기가 최근 몇 년 들어 불규칙한 편이나 극단적이지는 않음. 

누적 임신 총 5회. 정상분만 3회. 자연유산 2회. 그 중 하나가 계류유산. 계류유산한 태아를 제거하기 위한 소파 수술 적용됨. 

“C등급 그대로 가겠네. “

심사관은 물건 품평하듯이 결론을 내렸다. 

“네.”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C등급 이하로 내려가면 안 된다. 

“애국자시네. 할당량을 채우고도 하나 더 출산하고 또 임신 신청을 하셨으니. ”

심사관이 덧붙였다. 비아냥거리는 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긴장했으나 심사관의 표정에서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입소하실 거요, 아니면 재택으로 하실 거요?”

그녀는 입소를 택했다. 

 

정부 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생긴 것은 그녀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줄어만 가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최소한 더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 내의 모든 가임기 여성이 정부에 등록되었다. 신체 검사를 통해 가임 등급을 나누고, 일정 기준 이상의 여성은 결혼 여부, 자녀 유무에 상관 없이 아이 둘을 출산해야 했다 (더 낳을 수도 있었다. 셋째부터는 각종 혜택이 주어졌다). 당연히 반발이 거세었다. 인간의 존엄성 침해, 여성의 권리 침해, 모성 보호의 파괴, 그리고 다른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항의를 하고 시위를 했다. 

정부는 국민들의 항의에 아랑곳없이 다음 단계를 진행했다. 새로운 정책의 적용 하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일괄적으로 국가가 수용하여 공동 양육하겠다는 플랜이었다. 아무리 각 가정에 지원금을 풀어 출산을 유도한다고 해도 애 낳고 애 기르는 건 각 가정에 부담이 어차피 되는 거고, 정부에서 훈련받아 엄선된 육아 전문가들처럼 아이들을 잘 기를 수 있는 소양이 되는 부모가 일반 가정에 얼마나 되겠느냐 하는 지적도 있었다. 한 마디로 너희들은 낳기만 해라, 나머지는 국가가 책임지마, 그런 취지였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격렬한 싸움에서 이긴 것은 정부였다. 사람들은 결국 새 정책에 굴복했고 금세 적응했다. 정책 시행 후 몇 년이 지났고 정부 시설에서 양육되는 신생아들이 방송에 나왔다. 깔끔한 제복을 차려입은 상냥한 보모들이 아기들을 돌보았고 아기들은 편안해 보였다. 아기들의 얼굴이 사라지자 도표와 그래프가 화면에 나타났다. 신생아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유의미하게 낮게 유지된다는, 다시 말해 아기들은 정부 보육하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자란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이터였다. 

 

그녀가 첫 신체검사를 받은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검사 장소는 남서부 여성 메디컬 빌딩이었다. 정책이 시행된 지 10년도 지나지 않았을 때라 아직 모든 것이 법대로 돌아갔다. 의사 한 사람과 간호사 한 명이 배정된 검사실에 혼자 들어가, 세심한 배려하에 탈의를 하고 산부인과 검사를 받았다. 의사와 간호사는 친절했다. 그녀는 A 등급을 받았다. 임신 및 출산을 하기에 최적의 신체 상태였다. 

첫 임신은 아직 A 등급이었을 때,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했다. 세 학기의 휴학을 신청했고, 인가가 났다. 그 때도 센터에 입소할 것인지, 집에서 산전 관리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심사관은 은근히 센터 입소를 유도했고 그녀는 그렇게 했다. 

센터의 공동 숙소 내 작은 1인용 침실이 주어졌다. 생리 주기를 체크한 후. 테스트 키트로 배란기를 잡았다. 수정 날짜와 시간이 잡혔다. 수정 시간은 그녀의 배란에 맞추어 밤 열 시 반이었다. 

24시간 운영되는 수정실 (입소 및 재택 산전관리하는 여자들의 배란일이 제각각이라 일정 시간 동안만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은 검사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당하는 일도 비슷했다. 하의를 모두 벗고, 검사 의자 위에 올라앉아 의자 끝 받침대에 두 다리를 활짝 벌려 걸치고 누웠다. 의사 혹은 간호사가 끝이 둥글고 바늘이 없는 주사기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주사기 겉면에 윤활제가 발리고, 그녀의 몸 속에 품질 테스트를 통과한 정자 샘플이 주입되었다. 걱정했던 것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주사기가 차가웠고, 벌린 다리 사이로 느껴지는 이물감이 불편할 뿐이었다. 

수정은 사흘 연속으로 24시간 간격을 두고 진행되었다. 수정 이후에는 나흘간의 안정기가 주어졌다. 안정기에는 격렬한 운동을 삼가고 가능하면 누워서 지내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그녀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임신이 확인되고, 입덧을 시작했다가 끝내고, 배가 불러 오고, 분만을 했다. 태어난 아기는 탯줄을 자르자마자 간호사가 강보에 싸서 안고 나갔다. 아기를 안아 보기는 커녕 얼굴도 볼 수 없었다. 보지 않는 게 좋다는 지침이 있었다. 

산욕기 동안 그녀는 모유를 유축기로 짜면서 시간을 보냈다. 짜낸 모유는 간호사가 거둬 갔다. 출산 후 8주 후에 퇴소했다. 그 다음 학기에 복학했다. 

 

두 번째 임신은 첫번 때보다 여건이 안 좋았다. 졸업하고 취직을 한 지 1년 반 정도 지나자 정부에서 두 번째 임신 독촉장이 날아왔다. 상사에게 독촉장을 보이는 그녀의 속마음은 불편했다. 아니나다를까 회사는 그녀의 임신 출산 동안의 공백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국가 존속을 위한 숭고한 행위라고 정부에서는 아직도 선전하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생기는 모든 상황을 정부에서 책임지지는 않았다. 상사는 개인적으로 충고했다. 어차피 회사에서 자리는 보장 못 하니 적당히 챙길 것 챙겨서 이참에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개인 사정으로 이러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나라에서 하라는 건데.

-결국은 개인 사정이기도 해. 

다른 수가 없었다. 사직서를 냈다. 두 번째 임신과 출산을 또 남서부 여성 메디컬 빌딩에서 했다. 중간에 한 번 유산했다.

 

두 번째 출산까지 끝내고 다른 곳에 취직을 했다. 경력 단절 때문에 새 직장은 예전 직장만 못했지만 그래도 다닐 만 했다. 이제 정부에 빚진 것이 없어 홀가분해졌다. 앞으로 열심히 잘 살기만 하면 되었다. 실제로 몇 년 간 열심히 살았다. 그녀는 직장 생활도 잘 했고, 애인도 생겼다. 

그녀의 애인은 가진 유전자가 보건 기준선 바로 위쪽이라 불임 수술을 받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히려 국가는 그의 정자를 정기적으로 원했다. 국가 주도형 남성 유전자 관리법은 그녀가 두 번째 출산으로 바빴던 때 슬그머니 도입되었고, 그 이후의 몇 년 동안 별다른 저항도 없이 정착되었다. 남자들 역시 국가를 위해 분류되어 몸을 바치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인생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라는 것을 해 보았다. 그에게 몸을 내어 주는 것은 임신만을 위해 메디컬 센터의 검사대 위에서 다리를 벌리는 것과는 달랐다.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피임만은 반드시 신경 썼다. 정부 등록 없이 임신을 먼저 할 수는 없었다. 

우리 결혼할까? 애인이 물었다. 그는 그녀의 벗은 등을 커다란 손으로 쓸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와 통화하는 것을 들을 생각이 없었는데 들었다. 커다란 목소리가 전화기를 우악스럽게 타고 넘어 들려왔다. 

아무리 정부 정책이라지만 누구 씨인지도 모르는 애를 둘이나 낳은 여자애를 어떻게 우리 집 며느리로 들이냐! 

그가 항의하는 소리도 들렸다. 엄마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그 사람만 그런 거 아니잖아! 

하여간에 난 그 아이 허락 못 한다. 너 정도면 정식 결혼에서 네 자식을 볼 수도 있잖니. 뭐하러 굳이 하자 있는 애하고. 

엄마! 그의 목에 오른 핏대를 그녀는 보았다. 지금 내 능력으로! 내 자식이 생겨도 나는 못 길러! 

 

애인과의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녀는 그와 헤어졌다. 여러 가지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그 때의 전화 통화도…… 이유이긴 했다. 

결국은 개인 사정이야. 그 사람이나 나나. 

 

여동생이 만나자고 했다. 주말이었다. 

여동생은 카페의 한 구석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는 데 바빠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여동생은 긴히 의논할 일이 있다고 했다. 

여동생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 둘은 결혼도 하고 싶어했고, 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들도 갖고 싶어했으며, 낳은 아이들을 국가 보육원에 넘기지 않고 개인 양육을 하고 싶어했다. 

그게 가능하니? 그녀가 좀 놀라서 물었다. 

응, 가능해졌어. 정부에 우리 부부가 양육 능력이 있다는 증명을 하고, 특별 세금을 납부하면 된대. 

여동생이 그녀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특별 세금 쪽이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아이를 하나 더 낳으면, 그녀 본인에게 세 번째 출산이기 때문에 본인이나 가족에게 혜택이 생기는데, 그 중 하나가 개인 양육시 부과되는 특별세의 면제였다. 한 마디로 말해 자기 아이를 기를 권리를 정부에게서 되사는 것이었다. 

그녀는 여동생의 말을 들으며 커피를 넘겼다. 여동생의 표정은 절박하면서도 하나뿐인 언니에게 모든 희망을 거는 얼굴이었다. 여동생은 한 번의 정부 출산 경험이 있었고, 아이를 국가 보육원에 넘긴 후 몹시 힘들어했다. 여동생이 산후 부기가 빠지지 않은 몸으로 그녀를 붙잡고 엉엉 울면서 말한 적이 있었다. 우리 애기 보고 싶어. 애기 보고 싶어. 그녀는 여동생을 안아 주었지만 그 이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여동생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여동생 본인이 감세 혜택을 받으려면 아이를 하나 더 낳아서 국가에 바쳐야 한다. 여동생에게는 그게 너무도 큰 고통이었고, 그녀에게는 감내할 정도의 일인 것이다. 더군다나 여동생의 남편 자리는 그녀의 전 남자친구와는 달랐다. 결혼도, 아이 양육도 미래의 아내와 함께 하기를 원했다. 그녀나 여동생 혼자서는 못 하겠지만 피를 나는 자매끼리 도우면 될 수도 있는 목표였다. 

그녀는 며칠 후 여동생에게 도와 주겠다고 했다. 

 

아직도 지정 센터는 남서부 여성 메디컬 센터였지만 그녀의 등급은 하나 내려가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자의 신체는 나이를 먹을수록 등급이 내려가고, 시작은 A로 창대하지만 그 끝은 D로 미약해져 버린다. D등급은 나라에서 임신 출산을 해 봐야 소용 없다는 확인을 받는 등급이었다. B 등급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이번 임신에서 그녀는 재택 산전 관리를 신청했다. 직장은 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임신과 달라서 이번 경우는 순전히 개인적인 선택이었으므로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유산을 한 번 더 했다. 태아 심장이 뛰지 않는다고 했다. 수술을 받았다. 

수정을 한 번 더 했다. 다행히 문제가 없었다. 

그녀의 분만 예정일과 여동생의 결혼 날짜는 겹쳤다. 그녀는 아이를 낳느라 여동생의 결혼식에 가지 못했다. 

정부에서는 약속을 지켰다. 세 번째 아기를 받아 가고 그녀에게 감세 혜택 증명서를 내주었다. 증명서는 여동생의 계정으로 전달되었다. 

여동생은 그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 그녀는 여동생과 제부가 잘 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 다 정부 보건 기준을 통과한 유전자 보유자에, 여동생은 A등급이기까지 했으니 아이도 문제 없이 낳고 살 것이다. 다만 여동생 부부에게 돈이 충분히 없었을 뿐이었고, 그녀는 자기가 도움이 된 것이 기쁘다고 생각했다. 

 

직장에서 경력을 쌓을 만하면 임신으로 퇴사하기를 두 번, 임신, 유산, 출산, 산후 조리 등을 거치면서, 근무 여건 좋고 전공을 살리고 봉급이 좋은 직장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멀어져 올라갔다. 그녀는 박봉에 일이 힘든 직장을 전전했다. 사귀는 사람도 없었다. 애인과 헤어진 후는 새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웠다. 세 번째 임신에서 받은 혜택은 여동생에게 건네주었다. 그녀의 손에는 남은 것이 별로 없었다. 인생을 야무지게 설계 못 한 대가였다. 지금이라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녀는 네 번째 임신에 어떤 혜택이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좋은 혜택이 있었다. 금액이 넉넉한 종신 연금. 한편 시중에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의무로서 강화되며 따라서 혜택은 깎인다는 풍문이었다. 그 말인즉슨, 아직 혜택이 남아 있을 때 한 번 더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CMP 센터 뒤쪽으로 높이 솟은 낡은 회색 건물이 C 등급 여성들을 위한 산전 관리소였다. 그녀는 군대 생활관처럼 양 갈래로 늘어진 침상 한쪽 구석에 배정되었다. 그녀가 머무는 방은 다른 여자들로 꽉 차 있었다. 전부 나이 들고 찌든 표정, 어딘지 겁먹은 얼굴들이었다. 

단체로 잠에서 깨어나고, 단체로 식사를 하고, 단체로 잠을 자고, 단체로 배란 테스트를 받았다. 배란기가 된 여자들은 따로 모아졌다. 의료복을 입은 간호사 두 사람이 들어와 여자들에게 칙칙한 분홍색 가운을 나눠 주었다. 갈아입으라고 했다. 여자들은 시키는 대로 옷들을 벗고 알몸에 가운만 입은 후, 일렬로 복도를 지나 수정실로 들어갔다. 

커다랗고 창문 없는 수정실에는 네 개의 검사대가 있었고 그 앞에 간호사가 한 사람씩 앉아 있었다. 간호사들 옆의 탁자에는 기계 장치와 불빛 흐르는 단추가 달린 상자에 담긴 주사기가 수십 개 꽂혀 있었다. 여자들이 가축처럼 몰리며 검사대 앞에 네 줄로 맞추어 섰다. 한 사람씩 검사대 위에 올라가 수정받을 자세를 잡았다. 간호사들은 기계 같은 손놀림으로 주사기 속의 정자 샘플을 여자들의 벌려진 자궁 속에 주입했다. 다음! 다음이요! 간호사들이 로봇 같은 말투로 말했다. 그녀의 차례가 되었고, 그녀는 정자를 받았다. 간호사의 손놀림은 무성의했고 거칠었다. 주사기에 찔릴 때 통증이 심했지만 그녀의 앗 하는 비명에 간호사는 미간조차 찌푸리지 않았다. 주사기가 그녀의 몸에서 나가고, 간호사는 그녀에게 빨리 내려가라고 했다. 그녀는 어기적거리며 다른 여자들이 누워 있는 옆방으로 향했다. 거기서 15분 정도, 일어나라고 할 때까지 누워 있었다. 

 

임신 테스트를 받았다. 임신이 되지 않았다. 배란 테스트를 다시 받았고, 다시 수정실로 가서 같은 절차를 되풀이했다. 

그 다음 임신 테스트에서 양성이 떴다. 그녀의 등록 번호 SA98-DXL에 연결된 정보가 업데이트되었다. 그녀는 여섯 번째 임신을 했다.  

 

산전 관리소의 복도를 지나갔다. 점심 시간 이후의 오후였다. 간호사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멀리서 들려왔다. C 등급 여자들은 정부가 주는 혜택에 눈이 벌개서 임신에만 목 맨다는 수군거림이었다. 간호사들은 C 등급 여자들이 염치도 없고, 뻔뻔하고, 정부 세금만 축낸다고 했다. A 등급 여자들이 많아야 한다고 했다. A 등급 여자들은 그런데 약아서 어떻게 해서든 남편감들을 만나고, 자기 애들을 자기가 거둬가고, 아이 둘 이상으로는 칼같이 단산한다는 것이었다. 여자들은 등급에 관계없이 이기적이야. 등급이 높을 때 애들을 많이 낳아서 정부에 바쳐야지 뭐하는 거야.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자기 한 몸 희생할 생각들은 안하고 정부 보상에만 눈들이 벌개 가지고. 

벽에 걸린 텔레비전 화면이 바뀌었다. 장관 한 명이 A 등급을 받은 그의 젊은 딸을 최소 3회 이상의 정부 출산을 시키겠노라고 공언하고 있었다. 아직 앳된 모습이 가시지 않은 장관의 딸이 어색하게 웃으며 아버지 옆에 서 있었다. 회색 의료복을 입고 수다를 떨던 한 명이 텔레비전을 쳐다보며 말했다. 야 저 인간 대통령 후보 나오려고 벌써부터 밑밥 까네. 

복도를 칙칙한 분홍 가운을 입은 만삭의 여자들 몇몇이 줄을 서서 가고 있었다. 여자들이 걸어가는 복도 끝이 왼쪽으로 꺾여 있었고 거기서 진통 때문에 지르는 비명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여자들이 걸어 들어가는 반대 방향으로 간호사들이 갓난아기들을 천에 싸서 데리고 나왔다. 아기 하나가 응애 하고 울었다. 덩달아 다른 아기들도 울었다. 아기들은 사이렌 소리처럼 울어대며 멀어졌다. 

중년 여자 한 명이 복도에서 엉엉 울며 간호사의 부축을 받아 나갔다. 복도가 술렁였다. 아기가 죽어서 나왔다고 했다. 여자의 울음은 아기가 죽어서만은 아닐 것이었다. 남은 기회를 다 써 버리고 D 등급으로 밀려날 것이 너무도 확실해서 그럴 거였다. 

 

밤이 되었다. 다른 여자들은 자고 있었다. 

이른 오후에 검사를 받았었다. 임신 중기이고, 태아 상태도 괜찮고, 모든 것이 안정적이라고 했다. 기쁜 일이긴 한데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  밤은 깊어 가는데 의식은 점점 선명해졌다. 

고요한 어둠 속, 다른 여자들의 고른 숨소리만이 낮게 깔리는 속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그녀가 예전에 낳은 아이들을 생각해 보았다. 낳기만 했지 얼굴도 제대로 못 본 세 명의 아기들. 아기들은 잘 자랐을까? 도중에 아프거나 해서 문제가 되진 않았을까? 잘 자랐다면 다들 훌쩍 컸겠지. 어떻게들 살고 있을까. 어떤 등급을 받았을까. 

갑자기 형체는 모호한데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그녀에게 밀려들었다. 터져 나올 것 같은 흐느낌을 그녀는 이를 악물어 막았다.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리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을 다독이듯 그걸 천천히 닦아 냈다. 

괜찮아. 괜찮아.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다.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내가 낳았던 아이들은 모두 좋은 품질의 정자로 수정이 되었을 거고, 출산 때도 아무 일 없었잖아. 다들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을 테지. 정부에서 엄선한 좋은 육아 도우미들이 잘들 돌봐 주셨을 거고. 분명히,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야. 내 아이들은. 지금 내 뱃속의 아이도 그렇게 잘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아갈 거야.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그녀는 마침내 잠이 들 때까지 몇 번이고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연L

느리고 조용한 글들, 마침내 태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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