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재하는 휴지통을 믿었다. 나는 그것이 사이비종교에 불과하다고 욕했다. 휴지통을 믿어서 달라질 게 뭐가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 애의 우울증과 강박증이 많이 나아진 건 틀림없었다. 휴지통에 대고 기도를 하거나 말을 거는 등 이상행동은 추가되었지만.

실종된 날, 마지막으로 찍힌 CCTV 화면 속에서도 재하는 휴지통과 함께 있었다. 지하철역 휴지통이었다. 경찰은 곧장 그곳을 수색했다. 휴지통과 수거해간 쓰레기들까지 뒤졌으나 재하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휴지통에 뭔가를 버린 사람들을 탐색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경찰이 물러간 후 나는 원통형 모양의 휴지통 앞에 서서 그 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비닐을 덧댄 동그란 세계였다. 완벽한 원인지는 몰랐다. 악취가 풍겼다. 나는 주변을 살피지도 않은 채 휴지통 안으로 들어갔다. 164cm, 56kg의 내 몸집에 꼭 맞는 크기였다. 그보다 작은 재하 역시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그 종교에 대해 잘 모른다. 이따금 재하가 하는 이상한 행동들을 그의 일종이라고 추측해볼 따름이었다. 나와 그 애의 몇 안 되는 ‘멀쩡한’ 친구들의 증언에 따라 경찰의 휴지통 종교 조사도 시작되었다. 성과는 없었다. 그들은 휴지통을 믿고 구원을 빌고 전도하는 것을 빼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경찰은 손을 놓았고, 재하는 잊혀갔다. 나만이 그 애를 붙들었다. 아니 붙들었다기보단 그 애가 나를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머릿속 장면으로, 현실의 사물로, 헛것으로 끊임없이 나타났다. 글을 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U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변변찮은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며 소설을 썼다. 나이가 서른을 넘겼지만, 당선은커녕 공모전 본심에도 오르지 못했다. 지금은 도서관 서가 배열 및 장서 점검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다. 재하가 알아봐 준 아르바이트였다. 그 애가 들어갔던 몇 개의 동아리 중 하나였던 독서토론부 친구를 통해서 구했다. 이른바 ‘꿀알바’였다. 일이 어렵지 않았고 동료들도 나이대와 성별이 다양했다. 나는 독서토론부 친구에게도 재하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몰라요. 단 세 음절로 정리될 수 있는 관계의 사람들이 그 애에겐 너무나도 많았다.

혹시 휴지통을 믿으세요?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물었다. 아르바이트 동료들에게도 물론이었다. 그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아 들어본 적 있어요, 사이비 말씀하시는 거죠, 라고 되묻기도 했으며 믿진 않으나 그들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장은 이상한 말 하고 다니지 말라고 내게 주의를 주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동생이 실종되었다고 말했다.

휴지통을 믿는 아이였어요.

사장은 나를 빤히 바라보다 좋은 소설 소재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휴지통의 무엇이 그 애를 매료시켰을까. 믿게 했을까.

 

휴지통 종교의 신은 휴지통이었다. 사람 이름이 아니다. 차라리 휴지통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의 장난이었으면 좋았겠지만……. 휴지를 비롯한 쓰레기들만이 사람과의, 속세와의 연이 끊어진 우주적 물질로 독립하게 되며 그것은 곧 우주를 만든 태초의 신의 유기물질로써 남게 된다는 교리였다. 그걸 담는 휴지통은 곧 신이 인간의 물질로 현현한 것이고. 이렇게 써놔도 무슨 내용인지 나조차 모르겠으니 그걸 이해하고 믿는 이들은 대단한 사람들일 거였다. 재하는 게이였다. 퀴어동아리에 들어갔다가 그 종교를 알게 되고 심취했다고 했다. 그 애에게 전도한 레즈비언 여자애의 증언이었다. 여자애는 지금도 휴지통을 믿었다. 그곳 신 앞엔 성별도 나이도 성 지향성도 성 정체성도 신분과 부도 명예도 직업도 계급도, 그러니까 구분 선 자체가 하나도 없이 모두 평등하고 똑같다고 했다. ‘휴지통’ 안에선 모두가 똑같은 ‘쓰레기’일 뿐이라고. 나는 그러면 무엇이 각 개체의 독립성과 개성을 지키냐고 물었다. 여자애는 그건 신만이 아는 것이라면서 말을 잘랐다.

그걸 알면 내가 신이겠죠.

여자애가 말했다.

집에 휴지통이 몇 개예요?

나는 그녀의 집안 가득 넘쳐나는 휴지통들을 상상하며 물었다.

하나요. 혼자 사는데, 많이 필요한가요?

거기에 뭘 버리나요?

콘돔, 코 푼 휴지, 죽은 벌레, 과자 봉지, 치킨 뼈. 그런 것들요.

여자애는 가버렸다. 내 예상보다 휴지통 신은 많은 걸 포용했다. 콘돔과 치킨 뼈라니. 그러니 동성애자도 포용할 수 있는 거겠지.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재혼하기 전 그녀를 따라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다. 교회에서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했고, 동성애자는 사탄의 현현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고, 그건 아마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재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애는 나한테 같은 반 남자애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걸까. 그는 자신이 사탄인 것 같다고, 꽤 멋지지 않냐고 말을 꺼냈다.

사탄은 악마 중에 짱이잖아. 그러니까 멋지지. 예수님이나 하나님하고도 맞짱 뜰 수 있어.

그래, 참 멋지다. 엄마한텐 말하지 말고.

나는 건성으로 대꾸했다. 제빵공장에서 기계에 몸이 껴 사고로 아빠가 죽은 후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된 엄마는 뭐만 하면 사탄이 들렸다며, 악마의 속삭임이라며 우리를 겁주고 때렸다. 그녀에게 동생이 같은 남자애를 좋아한대요, 라고 말하는 건 재하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 애를 좋아했다. 사랑까진 아니어도, 잘생기고 똑똑한 애였다. 나중에 휴지통 따위를 믿다가 사라질 줄은 몰랐지만.

동생이 실종된 지 두 달이 지났다. 응모한 신춘문예 두 곳에서 모두 심사평 이름 언급도 없이 떨어졌다. 그날 나는 그 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P 작가를 대두로 요즘 유행하는 퀴어 소설이었다. 그 애는 이성애자인 내게도 남자나 연애 고민을 많이 털어놓곤 했다. 나는 서른 이때껏 남자친구도 세 명밖에 사귀지 못했고, 다양한 섹스 경험도 없었다. 그저 피상적인 위로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그 애는 고맙다고, 도움이 된다며 좋아했다.

나는 어떤 누나였을까, 문득 그게 궁금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이따금 그 애와의 지난 카카오톡 내용을 살피기도 한다. 우울증과 강박증을 앓던 그 애는 자신은 쓰레기라고 자학하고 자해하기 일쑤였다. 재하의 강박은 다양했다. 그는 완벽한 도덕성에 집착했다. 길 가다 쓰레기를 버린 것도 그게 누군가를 죽게 하는 데 일조하진 않았을까, 라며 과대망상에 시달렸다. 나는 아무도 그런 걱정하지 않는다고, 강박이니 의사의 말대로 인지훈련을 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대부분의 대화 내용이 그러했다. 나는 어쩌면 그 애가 항상 똑같은 내 말에, 답이 보이지 않는 망상에 시달리다 죽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망상에 빠졌다. 그래서 재하가 휴지통 따위에 집착하게 된 건지도. 그럴 때면 나는 울적해져 아무 사람과 만나 두서없이 신세 한탄을 하고 싶어진다. 행동에 옮긴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 애가 사라진 이후로 집안의 휴지통을 모두 없앴다. 안방과 내 방의 휴지통, 작은 베란다의 분리수거통을 비롯한 모든 휴지통을. 엄마는 새 아빠와 싸우는 날이 잦아지며 원래 살던 우리 집으로 오는 날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술에 취해 울며 왜 여기엔 좆같은 휴지통 하나 없냐고 신경질을 부렸다. 나는 그때마다 똑같은 대답을 했다.

엄마, 벌써 잊었어? 재하가 사라졌잖아. 휴지통 때문에. 그런데 계속 놔둘 수야 없지.

썅년, 그럼 쓰레기는 얻다 버리고 사니?

엄마는 그렇게 외치곤 킬킬거리다 소파에 엎드려 뻗었다. 이불을 덮어주는 건 늘 재하 몫이어서, 지금도 재하 몫으로 놔두었다. 엄마는 잠꼬대가 심했다. 오들오들 겨울바람에 떨며 악몽을 꾸는 듯했다.

나는 뭘 버릴 일을 만들지 않았다. 모두 밖에서 해결했다. 가방에 버릴 쓰레기를 챙겨 글을 쓰는 카페 휴지통에 몰래 투기했고, 공용화장실 휴지통을 빌려 처리했다. 그럴 때면 늘 작게 기도를 함께 외었다. 혹시나 정말로 그게 ‘신’일까 싶어서, 재하가 듣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속삭이는 내용은 늘 같았다.

재하야, 거긴 살만해?

대답은 없었다.

그 종교의 기도회에 간 적도 있었다. 재하에게 전도한 학교 퀴어동아리의 한 아이를 따라서였다. 그 아이는 자신도 재하가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다며, 어서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할 뿐이었다. 종교와는 관련이 일절 없다고 못을 박아두면서.

기도회는 평범했다. 모두가 다 같이 하나의 휴지통을 앞에 두거나 끌어안은 채 그 안에 대고 고해성사를 하거나 기도를 하고, 돈이나 현물을 바치는 등 다양한 행동을 했다. 나는 아무나 붙잡고 물었다. 당신도 성 소수자냐고. 붙들린 사람은 굳었던 표정도 금방 풀며 온화한 미소로 이렇게 말했다.

이 통 앞에선 모두가 쓰레기지요. 쓰레기는 똑같습니다. 우리 모두 버려진 존재로서요. 그러나 이 통은 우릴 버리지 않습니다. 버려진 존재들을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안는 분이 바로 신입니다.

나는 수긍하며 그의 말대로 하려고 했다. 그러나 휴지통이 너무 더러웠다.

재하가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한 건 실종되기 두 달 전, 대학교 2학년으로 올라간 해였다. 하늘이 높고 맑은 날이었다. 그날 재하는 정신이 멀쩡했다.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지 담배 냄새만이 그 애 몸에 짙게 배었을 따름이었다.

엄마가 집에 오기 전이었다. 나는 페브리즈를 살충제 마냥 그 애한테 뿌리며 냄새난다고, 집 밖에서 환기하고 오라고 소리쳤다. 하나 그 애는 말을 듣지 않았다. 재하가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은 고민이라고 생각하며 환기하고 오는 조건으로 들어주기로 했다.

이제 됐지? 냄새 안 나잖아. 참나, 내가 쓰레기라도 돼?

그 애가 집을 나갔다 다시 들어오며 말했다. 나는 작은 베란다에서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다. 그 애의 방 휴지통도 이미 비운 뒤였다. 재하는 그걸 확인하고는 비명을 지르며 난리를 피웠다. 왜 마음대로, 허락도 없이 남의 휴지통을 건드리냐고. 나는 휴지통에 쓰레기가 가득해 냄새가 풍기니 그럴 수밖에 더 있냐고 맞받아쳤다. 재하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누나, 나한텐 그게 전부야. 전부라고.

나는 어이가 없어 미친 게 틀림없다고 중얼거렸다. 그 애는 한동안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며 훌쩍거리다 고민이 있다고 재차 말했다. 화제도 돌릴 겸 얘기나 들어보자며 재하를 식탁에 앉혔다. 재하는 머뭇거리더니 엄마한테 자신이 게이라는 걸 알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참 동안 그 애를 바라다보았다. 귀엽고 잘생긴 내 동생, 이 사탄아.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왜 엄마한테?

나는 그렇게 되물었다. 재하 역시 비슷한 말로 반문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니까.

충격받을 거야. 너도 알잖아.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재하는 안다면서, 그렇지만 자신은 휴지통을 믿으니 해 될 건 없다고 했다. 걱정되는 건 엄마의 마음이라고. 이 와중에 자신이 다칠 건 생각 안 하고 상처받을 엄마의 마음을 걱정하다니, 귀엽고 잘생긴 내 동생, 이 사탄 같은 자식. 나는 그래도 안 된다고 답했다.

언젠가는 알 거 아냐. 죽을 때까지 숨길 수도 없어.

엄마는 병이라고 생각할 거야. 아니면 네 강박증 때문이라고 생각할 거라고.

아닌 거 알잖아. 누나는.

내가 엄마니? 그럼 나한테 또 말하든가, 엄마 말고.

안 돼, 엄마한테 말해야 해.

나는 강박이라고, 인지훈련을 하라고 했다.

그 말 좀 그만해, 이건 그거하고 상관없어.

재하가 짜증을 냈다.

아니야, 네가 엄마한테 커밍아웃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거라고…….

아니라니까.

그 애는 힘주어 대답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하면 뭐 좋은 일이라도 생기냐고 했다.

휴지통 하나에 벌벌 떠는 애가 엄마한테 무슨 일을 당하려고?

그러니까 하는 거야. 휴지통을 믿으니까. 이참에 엄마한테 개종하라고도 말할 생각이야.

나는 왁자하게 웃었다. 참으로 멋진 꿈이라면서, 부디 이루길 바란다고 비꼬았다.

엄마는 미용실 영업이 끝난 지 한참 지난 뒤에 돌아왔다. 그녀는 술에 취하지도 않고 말짱한 정신으로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왜 이렇게 늦었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녀가 미용실 손님들에게 들은, 또는 떠도는 소문들을 떠벌렸다. 재하는 거실 소파에 앉아 가만히 TV 뉴스를 보고 있었다. 헌법재판소에서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해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가 돌아간 사이, 엄마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재하 너, 요즘도 휴지통 못 건드리게 하니? 여자친구를 안 사귀니까 방 휴지통에 휴지만 가득한 거 아니야. 좀 사귀어봐. 너 정도면 엄마 닮아 예쁘장하니, 여자애들이 환장하게 생겼잖아.

나 여자친구 안 사귈 거야.

재하가 아까와 같이 말을 힘주어 발음했다. 나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 애를 돌아보았다.

왜? 너 고자야?

엄마가 깔깔거렸다. 재하의 말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나 게이야. 동성애자라고. 남자 좋아해, 나.

 

카페 직원이 다가왔다. 나는 휴지를 버리다 멈칫한다. 무언가를 들킨 사람처럼. 하지만 직원은 그냥 나를 지나쳐 화장실로 향한다. 괜한 오해였다. 나는 이내 양 주머니에 쑤셔 넣은 생활 쓰레기를 꺼내 휴지통에 버렸다.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화장실에 다녀온 직원이 넘쳐 흐르는 쓰레기통을 보며 무어라고 작게 중얼거린다. 욕이 아닐까, 내심 긴장한 채로 주위를 살피는 직원의 시선을 피한다. 노트북을 열어 쓰던 소설을 쓴다. 소설 속 내용은 언제나 비슷하다. 동성애자인 누군가가 동성애자인 누군가와 만나고, 연애하고, 헤어진다. 그 순서가 뒤바뀌거나 몇 개가 삭제되는 것을 제외하면 이야기는 늘 같다.

동생의 연애사 중에 기억이 남는 건 휴지통을 선물한 애인 이야기였다. 그것도 다이소에서 파는 싸구려 플라스틱 초록색 휴지통 말이다. 동생은 그걸 말하며 자신이 휴지통을 믿긴 하지만, 그건 좀 그랬다고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눈물 나게 킥킥 웃어댔다. 그 애를 앞에 두고 눈물을 보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휴지통 앞에선 만인이 평등하고 똑같지 않냐고 그 애의 신이라도 된 양 호통쳤다.

그렇지만, 사귀는 사이잖아. 심지어 그날이 첫날 밤이었다고.

재하가 쑥스러운 듯 앞머리를 연신 매만졌다.

아직 속세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구나, 네 이놈!

내 말에 우리는 웃었다. 남은 다리 한쪽은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먹기로 했다. 재하가 졌다. 그 휴지통은 재하가 실종된 후 엄마가 새아빠네 집에서 쓰겠다며 가져간 후였다.

경찰에게서 연락이 온 건 이제 막 소설 두 쪽을 넘겼을 때였다. 남자는 자신의 신분과 이름을 밝혔다.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재하 실종 사건의 담당 형사였다. 그는 요즘 난리인 그 일을 아느냐고 대뜸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다.

휴지통 도난 사건 말입니다. 음식점이나 영화관, 서점 등 상가 가게들의 휴지통들이 도난당하고 있어요. 저희는 그게 그 사이비종교와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게 하재하 씨와도 관련이 있을 거라고 보고 있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네이버 앱을 켜 검색해보았다. 휴지통 도난. 기사들을 최신순으로 정렬했다. 몇 개의 언론에서 공용 휴지통이 일제히 도난당했다며 사이비종교 얘기를 운운했다. 형사의 말이 다시금 들렸다.

종교 본거지를 찾아 압수수색을 진행할 겁니다.

그게 말처럼 쉽게 되나요?

나는 걱정하듯 물었다.

아무래도 성인 실종 사건이라 아동 실종 사건보다야 쉽지 않겠지만, 해보겠습니다.

남자는 당찬 포부를 밝히는 신임 형사처럼 말했다. 나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야 다행이고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통화를 끊었다. 노트북과 짐을 챙겨 카페에서 나왔다. 눈에 들어오는 인근 상가로 무작정 들어가 화장실을 찾았다. 대개 비밀번호 잠금이 되어있었다. 일단 잠기지 않은 화장실을 찾았다. 가는 길에 보이는 휴지통도 놓치지 않고 붙들어 안을 뒤졌다. 온통 쓰레기뿐이었다. 재하의 흔적은 눈에 띄지도 않았다. 나는 허망한 심정으로 그 짓을 계속 반복하다 제풀에 지쳐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을 열기 전, 일순 숨을 멈추었다.

안에 뭐라도 있는 것처럼.

재하가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문을 열었다. 집은 고요했다. 문틈으로 들이치는 바람에 중심을 잃은 적막만이 쏟아졌다.

나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두 팔에 얼굴을 묻었다.

 

대기표를 뽑는다. 우체국엔 사람이 많았다. 나는 문구센터에 가서 레이저프린터로 정성스레 인쇄한 소설을 넣은 봉투를 들고 기다렸다. 한 문예지에 응모할 작품이었다. 오늘이 마감일이었다. 마감일 소인까지 유효했다. 밤샌 탓에 정신이 말끔하지 않았다. 내내 카페인이 잔뜩 든 아메리카노를 속에 들이부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42번 고객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희부연 무언가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것을 만졌다. 바스락거렸다. 비닐이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크기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비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콧방울이 움찔거렸다. 이상한 냄새가 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묘한 악취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곳이 휴지통 안임을. 주변에 산적한 휴지와 빈 음료수 캔, 과자 봉지, 찢어진 종이, 구겨진 테이프 등이 차례로 시야를 점거했다. 내가 휴지만 해진 건지, 아니면 휴지가 나만 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팔을 뻗으며 온몸을 버르적거려도 휴지통 입구에 닿지 않았다. 소리를 질렀지만 대답하거나 들여다보는 이라곤 없었다.

재하에 대한 벌을 받은 거야.

그 생각뿐이었다. 재하를 찾지 못한 데 대한 벌이라고 여겼다. 아니면, 재하도 어딘가에 나처럼 이렇게 갇힌 걸까. 죄책감이 가슴으로 스몄다. 엄마 따라 술에 취해 재하에게 게이, 호모 새끼라고 욕한 것, 어쩌면 ‘그렇게’ 된 게 엄마 탓은 아닐까, 엄마를 저주한 것, 재하의 정신이 약해빠져서 그런 거라고 합리화하던 것이나, 고등학생 때 재하가 게이라고 소문나 학교폭력을 당했을 때 아무 도움도 주지 않고 그저 피해 다녔던 것이 떠올랐다.

네가 누나랍시고 한 게 뭐가 있니. 누나가 맞긴 맞아?

근원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귀에 대고 속삭이듯 들려왔다.

재하는 죽었어. 죽었을 거야.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부풀어 올랐다. 나는 그렇게 돼선 안 된다고 소리치며 발버둥 쳤다. 휴지통 안은 냄새 나고 좁았다. 먹을 것도 없었다. 이대로 갇혀 죽는구나, 하는 순간이었다. 다시금 목소리가 외쳤다.

42번 고객님.

눈을 떴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람들이 바닥에 나동그라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봉투는 내 두 손안에서 구겨진 상태였다. 나는 도망치듯 재빨리 우체국을 나왔다. 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봉투를 떨어뜨렸다. 종이가 비에 젖어 잉크가 번졌다. 나는 그것을 주울 수 없었다. 그건 재하의 이야기였다. 재하의 사랑이, 재하의 삶이, 재하가 담긴 것이었다. 나는 봉투를 갖고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가 문 옆에 놓인 휴지통에 버렸다.

 

도서관 아르바이트는 업무 마감을 사흘 앞두고 있었다. 동료들은 동생의 소식을 궁금해했다. 그들에게 재하의 실종 소식을 전한 적이 있나,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상세히 답해주었다. 아직 진전이 없다고, 다만 곧 진전이 있을 거라는 애매한 투로. 사장은 나더러 열심히 일한다며, 사서 선생님에게 여쭈어보고 가져가고 싶은 폐기 도서가 있으면 가져가라고 말했다.

작가가 꿈이라며. 책 많이 읽어야지, 도연 씨.

나는 감사하다고 대꾸했다. 한 권도 가져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형사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엄마가 집에 다녀가며 사다 둔 닭강정을 전자레인지에 돌리지도 않고 식은 채로 입에 넣어 우물거리는 도중이었다. 사건 수사에 진전이 있다는 형사의 말을 나는 딱딱한 튀긴 닭 껍질과 함께 목구멍 뒤로 삼켰다.

재하 씨가 사라진 지하철역 휴지통 있잖습니까.

재하가 사라진 지하철역이요?

나는 부러 휴지통을 빼먹었다.

그 지하철역 휴지통에서, 피 묻은 흉기가 발견되었습니다. 혈흔을 채취해 감정분석 하는 중인데,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재하의 피라는 말인가요?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재하 씨의 피일 수도, 타인의 것일 수도, 아니면 전혀 상관없는 사건의 단서일 수도 있겠죠.

그걸로 통화는 끝이었다. 나는 핸드폰 화면을 멍하니 응시하다 식탁에 몇 번이고 내려쳤다.

나는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새 아르바이트를 알아봐야 했다. 저번에 응모한 단편소설 공모전 결과가 나왔다. 탈락이었다. 좌절감이 밀려왔다. 아늑한 곳이 필요했다. 침대에 아무리 누워 이불을 덮고 있어도 마음이 허했다. 몸도 허했다. 아무 남자를 만나 아무렇게나 섹스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남자도 찾기 어려웠다. 종일 TV 뉴스만 봤다. 차라리 재하가 죽었길 바랐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울고, 재하야 미안해, 나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사과하길 여러 번이었다.

엄마는 더는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가끔 전화를 걸어 재하를 찾았느냐고 물을 뿐이었다. 재하가 커밍아웃 한 날, 엄마는 벽에 걸린 십자가를 떼어내 집어던졌다. 다소 연극적인 행위였지만 엄마로선 그게 끔찍한 사탄의 속삭임을 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 속죄하는 길이었을 거다. 재하는 그에 맞아 머리에서 다량의 출혈을 일으켰다. 아무도 꼼짝하지 않았다. 나는 겁에 질려 가만히 식탁 의자에 앉아있었고, 엄마는 재하가 비틀거리지도 않을 때까지 십자가에 박힌 못으로 그 애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녀가 어떡하냐며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재하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찰나였다. 나는 재하에게 다가갔다. 몸을 건드렸다. 재하의 몸엔 힘이 없었다. 그대로 영혼이 빠져나간 듯, 널브러져 있었다.

어떡해? 어떡하냐고, 엄마. 엄마. 엄마!

엄마는 닥치라며 나를 향해 십자가를 휘두를 것처럼 행동했다. 우리는 침착해야 했다. 엄마는 내게 도와달라고 했다. 때로 화를 내고, 때론 애절한 눈빛을 보내며.

나를 신고할 거니? 그러면 넌 둘 다 잃는 거야. 네 동생도, 엄마도.

나는 그러긴 싫었다. 어린 애처럼 고개를 도리질했다.

그러면 도와줘. 도와달라고.

도와달라는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에 재하의 생전 얼굴과 목소리가 겹쳐졌다. 같은 학교 아이들한테 맞고, 스토킹하던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얻어맞던 재하를 몰래 숨어서 지켜보며 엄마를 따라 속죄하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귀엽고 잘생긴 내 동생, 이 사탄 호모 새끼야. 나는 울면서 그 애의 시체를 처리했다. 엄마의 말대로 거대한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사 왔다. 그 안에 재하를 욱여넣었다. 구부러뜨리고, 구부러뜨리고, 구부러뜨려서 휴지통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알맞게. 엄마는 재하가 돌아가는 거라고 말했다.

그 애는 휴지통을 믿었잖아. 뜻대로 된 거야.

나는 어이가 없어 잠시간 엄마를 쳐다보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바깥으로 나섰다. 바람이 거셌다. 살기(殺氣)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었다. 구름이 잘게 흩어져 하늘을 떠다녔다. 붕어빵을 굽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학교 앞 포장마차였다. 나는 붕어빵 여섯 개를 사 한 번에 해치웠다. 재하도 좋아하던 것이었다.

다 먹은 봉지를 버릴 곳이 필요했다. 휴지통을 찾아 헤맸다. 휴지통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없었고, 없어야 할 곳에도 없었다. 나는 아무나 붙잡고 휴지통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모른다거나 이상하다는 눈길로 훑으며 외면했다. 어느새 나는 휴지통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게 아니라 휴지통을 믿느냐고 묻고 있었다. 사람들은 미친년 보듯 나를 쳐다보고 모세의 기적을 일으키듯 갈라졌다. 나는 허정허정 다리를 놀리며 걸었다. 편의점에 들러 물을 사면서 휴지통을 찾았다. 주인은 휴지통을 믿지 않는다고 했고, 휴지통도 없다고 했다. 무단투기와 도난 사건이 빈번해 치웠다면서.

아가씨, 괜찮아요?

주인 남자가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꾸했다. 편의점을 나왔다.

변의가 느껴졌다. 화장실을 찾았다. 그러나 상가 화장실은 대부분 가게 주인들만이 공유하는 비밀번호로 잠긴 상태였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어떻게든 찾아내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간 감각 없이 걷기를 수십 분, S 백화점을 발견해 무작정 들어갔다. 안온한 공기가 나를 휘감았다. 그대로 쓰러져 눕고만 싶었으나, 변의가 더 강했다. 나는 보안요원을 붙잡고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이내 그가 가리킨 곳으로 달려갔다.

칸을 열어젖힌 뒤 그대로 변기에 주저앉았다. 몸 안의 모든 더러운 걸 쏟아내듯 쏟아냈다. 그러고 나서 휴지를 찾아 밑을 닦았다. 휴지통을 찾았다. 휴지통이 없었다. 나는 그때야 문에 붙은 안내 문구를 발견했다.

이곳에는 휴지통이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나는 휴지를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화장실을 나왔다. 어느덧 칸이 꽉 차 사람들이 줄을 선 채였다. 나는 그들에게 말을 꺼냈다.

휴지통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여기 있는데요.

어떤 여자가 세면대 옆 커다란 휴지통을 가리켰다. 나는 아, 하고 탄식한 뒤 그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듯, 휴지통 안에 몸을 욱여넣었다. 들어갈 때까지 몸을 접고 구겼다. 휴지통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아 금방 내 무게에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나는 엎어진 채로 휴지통 안으로 기어들었다. 악취가 익숙했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재하야. 거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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