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우주가 아무리 비어 있어도 사람이 바라보는 우주는 별빛으로 가득 차 있다. 텅 빈 우주는 텅 비어 있어서 멀리 있는 별의 빛을 가로막지 않는다. 광대한 우주는 그걸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수많은 별빛으로 수놓아진 경이로움지만 그걸 항해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끝도 없이 텅 빈 지루함에 불과하다.

 

천억 개의 별이 있는 은하계 내부도 대부분의 공간은 항성계과 항성계 사이를 채우고 있는 성간 물질이다. 물론 항성계 내부도 대부분 비어 있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크고 작은 행성과 소형 천체들의 위치와 거리가 실시간으로 변하는 걸 보고 있는 게 조금은 도움이 된다. 가끔 거대한 행성에 근접할 때는 하나의 점에서 시작해 점점 확대되면서도 끊임없이 세세한 디테일이 더해지는 조밀한 표면을 보며 감탄한다. 그 작은 점 안에 거대한 분화구와 울퉁불퉁한 언덕과 얼음으로 뒤덮혀 날카롭게 항성의 빛을 반사하는 표면과 소용돌이치는 색색의 가스가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걸 상상하면 새삼스레 가슴이 두근대기도 한다.

 

하지만 항성계를 벗어나 성간 물질의 바다로 들어가면 그런 사소한 즐거움도 이내 바닥이 나 버린다. 눈에 보이는 건 고장난 텔레비전의 정지 화면처럼 굳어 있는 별들과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변하지 않는 숫자 뿐이다. 유진은 자신이 년 단위의 항해로 항성계 사이를 오가던 아광속 시대의 우주항해사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유진은 공간 도약을 이용한 초광속 항해를 시작하기 위해 계기판 중앙을 주시했다. 초광속 항해 가능 조건을 나타내는 버튼이 하나씩 밝아졌다. 중력장 제한 통과, 성간 물질 밀도 통과, 선체 속도 통과, 선체 기밀도 통과, 선체 표면 온도 통과, 목적지 설정 통과. 그 외에도 모두 열 다섯개의 버튼이 밝아졌다. 유진은 왼쪽 끝에 위치한 레버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도약 시작해..."

 

"공간 도약 시작합니다. 선체 번호 WASP3716-DL512. 출발 항성계 엡실론 에리다니. 도착 항성계 글리제 876. 현재 시각 은하 표준시 2326년 4월 1일 06시 27분. 예상 항해 시간은 7시간 39분입니다."

 

유진의 옆에서 흘러나온 나이 든 항해사의 굵은 목소리가 유진의 말을 덮었다. 목소리는 너무 엄숙해서 가슴이 간지러워질 정도였다. 수현. 두 명 밖에 타지 않는 물품 수송용 소형 우주선을 유진과 함께 몰고 있는 항해사였다. 수현은 오른쪽 끝에 위치한 레버에 손을 올리고는 유진을 돌아보았다. 유진은 일부러 과도하게 비장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항해사 생체 신호 버튼에 마지막으로 불이 들어오고 레버의 락이 풀렸다.

 

두 사람이 동시에 레버를 아래로 내리자 묵직한 전자음과 함께 초광속 항해를 나타내는 커다란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전면의 디스플레이에 두 사람의 우주선이 에리다니와 글리제 사이의 공간 도약 대기열에 등록되었다는 안내가 표시되었다. 기다리고 있는 우주선은 세 대. 대략 십오 분이 조금 더 걸릴 예정이었다.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이제 글리제 항성계에 도착할 때까지 사람이 할 일은 없었다.

 

"아저씨. 긴장 풀어요. 이런 형식적인 절차를 뭘 매번 그렇게 거창하게. 우주선 안에 사람 두 명이 타고 있는 것만 확인되면 통과잖아요. 편하게 하시죠. 편하게."

 

이 우주선은 유진의 소유였고 수현은 유진이 고용한 항해사였다. 목적지만 설정해 두면 인공 지능이 대부분의 항해를 대신해 주는 요즘의 우주선에서 사실 항해사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초광속 도약 만큼은 반드시 사람이 직접해야 했고 한 명도 아닌 두 명 이상의 항해사가 탑승한 상태에서 도약을 시작하도록 우주항해법에 규정되어 있었다. 작은 우주선을 밑천으로 소품종 고속 배달이라는 틈새 시장을 노리고 있는 유진으로서는 항해사를 한 명 더 고용해야 하는 게 여간 부담되는 일이 아니었다.

 

항해 기술은 필요 없었다. 그저 우주항해사 면허만 있으면 충분했다. 조금이라도 주급이 낮은 사람을 찾고 찾다가 만난 게 수현이었다. 유난히 과묵해 보이는 수현이 내건 조건은 단 하나였다.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의 초광속 항해를 할 것. 그것도 에리다니 - 글리제 구간에서. 한 때 번성했었던 글리제 항성계는 광물 자원의 고갈과 함께 쇠락하여 최근에는 물품 수송량이 많지 않았다. 유진처럼 작은 우주선으로 개척하기에 딱 좋은 루트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수현과 항해를 시작하면서 유진은 수현의 과묵함을 가볍게 넘긴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초광속 도약 기술로 항성계 간의 성간 여행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아광속 항해로 5시간 정도가 걸리는 항성계 내에서의 항해 시간을 합하면 꼬박 20시간 가까이를 좁은 우주선 안에서 두 사람이 함께 보내야 했다. 수현은 가볍게 던지는 유진의 질문들을 단답형으로 짧게 끊었다. 농담을 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이해를 거부하는 건지 반응이 없었다. 지루한 항해 동안 수현이 가장 길게 말하는 건 바로 초광속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보고하도록 매뉴얼에 명시되어 있는 그 문구. 지금은 아무도 그대로 하지 않고 약식으로 넘겨버리는 그 보고 문구였다.

 

"난 이게 편해요."

 

수현의 대답은 그게 끝이었다. 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항상 하던대로 요즘 에리다니 항성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알리체라는 스트리머의 채널을 보기 위해 개인 패널을 터치했다. 초광속 항해 중에는 통신이 두절되기 때문에 유진은 해당 채널의 다운로드 패키지를 정기적으로 구독하고 있었다. 패널을 뒤적이던 유진은 이번 달의 최신화 스트리밍이 다운로드 되어 있지 않은 걸 발견했다. 원인은 용량 부족이었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용량은 확보해 놨는데!"

 

유진의 우주선은 WASP 타입 중에서도 구형 모델이었지만 항해 성능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신형에 비해 운전석의 가죽 시트 재질이라던지 헤드레스트에 장착된 근거리 스피커의 음질 같은 사소한 부분들이 뒤떨어졌다. 유진이 가장 불편해하는 건 중앙 제어 시스템의 커스터마이징 영역 용량이었다. 사제로 칩 하나만 달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였지만 사고 시 보험 처리에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유진은 스트리밍의 다운로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저장된 스트리밍들을 지워 주는 불편함을 감수했다.

 

혹시나 삭제하는 걸 까먹었나 확인해 보았지만 새 스트리밍을 다운받을 수 있을 정도는 충분히 삭제되어 있었다. 한참을 뒤지던 유진은 전에는 없던 앱 하나가 저장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초광속 항해 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우주선 전체를 수동 조종할 수 있도록 제어 프리셋을 제공해 주는 앱이었다. 전면 디스플레이를 모두 활용하여 조종 환경을 강화해 주는 최신 기능이 들어있어 용량이 컸다.

 

"이게 대체 뭐야? 누가 이런 앱을 깔아 놨어?"

 

"나요."

 

수현이었다. 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화를 버럭 냈다.

 

"왜 함부로 제어 시스템을 만져요? 이런 걸 물어 보지도 않고 막 깔아 놓으면 어떻게 하냐구요!"

 

"항해 시 조종 환경을 구성하는 건 항해사의 권리요. 용량 확인하고 깔았습니다만."

 

그것 때문에 알리체의 최신 스트리밍이 다운로드 되지 않았잖아요. 라고 항의할 수는 없었다. 무려 항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데 그깟 스트리밍 하나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방방 뛰는 걸 이해해 줄 수현이 아니었다. 이미 초광속 항해 대기를 걸어 놓은 상태에서 저장 공간을 비우고 스트리밍을 다시 다운 받을 수도 없었다. 성간 항해에 소요되는 반나절의 시간 동안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가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유진은 아예 이 기회에 수현과의 대화를 터 보자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몇 살이에요?"

 

아직까지 유진은 수현에게 나이를 물어 본 적이 없었다. 대뜸 나이를 물어 보는 게 불쾌할 지도 모르겠지만 알리체의 스트리밍을 보지 못해 심사가 뒤틀린 유진은 왠지 그 정도는 비뚤어져야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대로 묵묵히 몇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는 차라리 말다툼이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마흔 다섯."

 

"네? 마흔 다섯이요? 제가 열 살인데 아저씨가 마흔 다섯이라고요?"

 

의외로 수현은 순순히 대답했지만 불러 준 나이는 어이가 없었다. 마흔 다섯이라니. 그렇게 까지 나이가 많을 리는 없었다. 에리다니인의 평균 수명이 40살 정도였다. 이제 갓 중년이 된 정도로 보이는 외모인데. 많아야 스무 살 정도 되려나. 어리둥절해 하던 유진은 수현이 은하 표준시를 기준으로 나이를 말해 줬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도약 보고를 할 때도 은하 표준시로 날짜를 말했었다.

 

"아저씨 그거 은하 표준 나이죠? 요즘에 누가 그걸로 나이를 계산해요. 가만 있자. 은하 표준시로 2.8년이 여기 기준으로 1년이니까... 대충 열 여섯 정도 되는 거네요. 그렇죠?"

 

수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은하 표준시로 나이를 계산하는 수현의 심리를 유진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옛 종교를 믿는 신도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수현이 초광속 항해에 임하는 자세는 일종의 의식같은 측면이 있었다. 항해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는 매뉴얼에 나온 형식 그대로 정확하게 보고하고 항해 도중에도 하나도 변하지 않는 우주 공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별의 수를 하나 둘 세고 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수천 개의 별을 다 세고 나면 다시 처음 부터 하나 둘.

 

"그런데 왜 굳이 은하 표준시를 쓰세요? 뭐 다른 항성계 사람들 하고 얘기할 때야 어쩔 수 없이 그래야 겠지만 우리끼리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이유가 있어요? 혹시 무슨 종교 같은 거 믿으세요?"

 

엡실론 에리다니 항성계에서 사람들은 세 번째 궤도를 도는 행성에 모여 살았다. 행성의 은하 표준 명칭은 엡실론 에리다니 감마였지만 사람들은 그냥 다이크라고 불렀다. 다이크의 하루는 20시간이었고 은하 표준 시간으로 따지면 20.37 시간이었다. 그러니 시간까지는 다이크 시간이든 은하 표준 시간이든 큰 차이가 없었다.

 

월 부터는 문제가 생겼다. 은하 표준시의 월은 30일 또는 31일이고 가끔은 28일이나 29일이기도 하다. 그런 월이 12개가 모여 년이 된다. 1년은 365일 또는 366일이다. 도대체가 납득이 가지 않는 계산법이었다. 그걸 직접 계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저 컴퓨터에서 계산되어 공지되는 날짜를 확인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에 비해 다이크의 1년은 10월이고 1달은 100일이다. 더 이상 깔끔할 수가 없었다.

 

"종교는 없어요. 그저 오랜 습관일 뿐이지. 모든 인간의 고향은 지구니까."

 

수현이 대답했다. 오랜 습관. 게다가 지구라니. 인간의 고향이 지구라는 건 역사책에나 나오는 말이었다. 태양이라는 항성의 세 번째 행성인 지구. 다이크와 마찬가지로 세 번째 행성이라는데서 약간의 친밀감이 느껴지기는 했다. 지금 지구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인간이 지구에 살았던 흔적은 서로 다른 항성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날 때나 얼핏 내비칠 뿐이었다. 서로 싸우지 않으려면 공통의 기준이 필요하니까. 은하 표준시처럼.

 

은하 표준시는 지구와 지구의 위성이었던 달의 주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랬다고 한다. 지금 지구에는 사람이 살지 않을 뿐더러 현재 지구와 달의 주기는 은하 표준시를 계산하는 주기와는 다르다. 그러니까 은하 표준시의 기준이 되는 근거는 이제 우주 어디에도 없는 셈이다. 은하 표준시는 펄서의 맥동 주기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 단위와 복잡한 공식으로 이루어진 계산법으로만 존재한다. 아니 그건 그냥 컴퓨터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어떤 숫자일 뿐이다. 우리의 시간을 입력하면 알 수 없는 과정을 거쳐 되돌려 주는 어떤 숫자.

 

"습관이라니. 지구가 망한 지가 언젠데. 아저씨가 무슨 천 년 묵은 안드로이드예요?"

 

"내 습관이 아뇨.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습관이지."

 

"이해가 안 가네요. 들쭉날쭉해서 컴퓨터가 아니면 제대로 계산하지도 못하는 날짜가 어떻게 사람 몸 속에 새겨져요? 은하 표준시의 년 월 일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길래 그게 유전자에 새겨져요?"

 

"세상의 모든 일에는 주기가 있다는 믿음이요. 비슷한 날에는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는 믿음. 옛날 지구에서는 월과 일에 따라 천체들의 배치가 주기적으로 변했으니까."

 

다이크가 에리다니를 한 바퀴 도는데는 100.84년이 걸린다. 소숫점 앞의 100이라는 숫자는 멋진 우연이지만 그 뒤의 84는 현실이다. 행성의 자전 주기를 기준으로 계산한 하루와 공전 주기를 기준으로 계산한 년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건 당연하다. 옛날 지구인들은 공전 주기를 1년이라고 선언한 후에 그 억지를 끼워 맞추기 위해 달과 일을 제멋대로 늘이고 줄였다.

 

에리다니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하루를 기준으로 20시간을 나눈 후에 월과 년은 그냥 10의 배수로 정의했다. 물론 그건 다이크에는 자연적인 위성이 없고 공전 주기가 사람의 일생보다 길어 그 주기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 사람은 공전 궤도의 삼분의 일 정도만 경험할 수 있었고 거기에는 어떤 주기도 없었다.

 

"세상에. 천체들의 배치에 따라 무슨 일이 벌어지는 데요? 내가 사는 행성이 항성을 정확히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왔다고 해서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어요? 아니 엄밀히 따지면 제자리도 아니죠. 항성도 은하 중심을 공전하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우주를 날아가고 있으니까."

 

에리다니 사람들은 다이크의 공전 주기에 관심이 없었다. 다이크에서 백 년이 흐르면 에리다니를 대략 한 바퀴 돌지만 정확히 한 바퀴는 아니다. 그래도 문제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이크가 백 년 동안 에리다니를 한 바퀴 돌았다고 해서 백 년 전과 비슷한 일이 벌어져야 하는 이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에리다니에서의 년 월 일은 그저 시간의 흐름이었다. 돌고 도는 주기가 아니었다.

 

"믿음이라고 했어요. 매년 같은 날을 기념하는 믿음. 믿음이 우주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사람은 바꾸지. 그래서 은하 표준시로 살아가던 지구인들이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던 거요."

 

"글쎄요. 잘 이해가 안 가네요. 뭐 일 년이 지날 때마다 내 몸도 순환해서 다시 젊어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좋겠지만. 근데 아니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몸이 늙어가는 것처럼 시간도 그저 앞으로 흘러가는 거죠. 매년 같은 날을 기념한다고요? 그런 걸 일일이 기념한다고 해서 어떻게 사람이 행복해지죠?"

 

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우주로 눈을 돌렸다. 유진은 겨우 이어지던 대화가 끊길까 아쉬워 얼른 말을 붙였다.

 

"아까 오늘이 은하 표준시로 어떻게 된다고 했죠? 4월 1일이었나요? 그럼 4월 1일은 무슨 날이에요? 지구인들은 4월 1일에 뭘 기념했죠?"

 

"...4월 1일은. 만우절이요. 사람들이 서로 거짓말을 하는 날이지."

 

"푸하하하."

 

유진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서로 거짓말을 하면서 행복해지다니. 그러니 지구가 망했겠지. 그런 유진을 보며 수현은 굳은 얼굴로 디스플레이를 확인했다. 마침 막 차례가 되어 초광속 항해에 진입하려는 참이었다.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유진은 밀려나 있던 엉덩이를 끌어 올려 의자에 바짝 붙였다.

 

가속은 느껴지지 않았다. 조종석 밖으로 보이는 우주의 모습도 특별히 달라지지 않았다. 초광속 여행은 물질이 속도를 올려 공간을 진행하는게 아니라 공간을 잘라 붙여 물질이 점프하는 방식이었다. 학교에서 초광속 이동은 물질을 복사하고 원본을 지워버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배운 기억이 났다. 그 이상의 복잡한 용어들은 기억나지 않았다. 우주항해사인 유진이 알아야 할 건 레버를 당기면 초광속 모드에 진입하고 몇 시간이 지나면 목적지인 다른 항성계에 도착한다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 레버를 당길 때는 반드시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 전에 없이 긴 대화를 나누었던 수현은 다시 예전처럼 묵묵히 우주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초광속 항해를 할 때는 반드시 다정한 항해사를 동료로 고르세요. 학교에서는 그런 걸 가르쳐야 했다. 이해도 되지 않는 초광속 항해의 원리를 가르칠 게 아니라.

 

디스플레이에는 목적지인 글리제 876 항성계까지의 거리와 남은 시간이 표시되고 있었다. 표시되는 시간은 세 가지였다. 에리다니 시간과 글리제 시간. 그리고 은하 표준시의 시간. 숫자는 달랐지만 하나는 같았다. 세 가지 숫자 모두 지독히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 유진의 엉덩이는 다시 앞으로 밀려나가 거의 조종석에 반쯤 누운 자세가 되어 버렸다.

 

"그럼 우리도 그 습관을 따라보죠. 만우절. 우리도 옛날 지구인들 처럼 서로 거짓말을 하고 행복해져 보자고요."

 

유진이 다시 수현에게 말을 걸었다. 우스운 습관이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몇 시간을 버티는 것보단 낫겠지. 지구인을 따라해 보자는 거라면 저 무뚝뚝한 아저씨도 호응해 줄 지도 모르고. 수현이 유진을 돌아보았다.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 왠지 입가에 약간 미소가 비친 것 같기도 했다.

 

"글쎄. 당신이 잘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는데."

 

"무슨 소리예요. 거짓말이 뭐 어려울 게 있다고. 예를 들면 뭐 이런 거죠. 저 사실 아저씨가 마음에 들어요. 제 이상형이거든요. 푸하하하."

 

"그렇게 하는 게 아뇨. 거짓말을 하되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거지. 아니면 정말 그 성의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공들인 거짓말을 하거나."

 

"참 내. 까다롭네요. 아저씨는 그런 걸 어떻게 다 알고 있어요?"

 

"책에서 읽었지."

 

"거짓말이죠?"

 

"글쎄."

 

"아항."

 

유진은 엉덩이를 끌어 올려 조종석에 똑바로 앉았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놀이 거리였다. 아니면 극도의 무료함에 떠밀려 이런 거라도 재밌다고 느끼는 걸 지도. 어쨌거나 수현이 어깨를 으쓱하거나 고개를 끄덕거리는 대신 말로 대답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었다. 알리체의 스트리밍을 보며 낄낄거리는 것 보다야 못하겠지만.

 

"아. 출발하기 전에 연료 채우는 거 깜박했다."

 

"아까 초광속 항해 체크할 때 연료량 확인등 떴어요."

 

"이번에 배송할 짐이 초인기 아이돌 그룹인 데메테르의 1/10 피규어 오십 상자 맞죠?"

 

"에리다니 산 포도주 스무 상자고 적재 확인했어요."

 

"참. 이거 미리 말씀 드렸어야 했는데. 우리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지난 번 우주선 정기 점검 때 추진체 배출량 환경 기준에 걸려서 수리비하고 벌금이 나왔거든요. 그래서 통장 잔고가 바닥 났지 뭐예요. 죄송하지만 이번 주 주급은 제 날짜에 못 드릴 거 같아요."

 

"상관 없어요. 지체되면 이자 붙고 이자 포함해서 삼 개월 안에 지급 안 되면 보험에서 나오니까. 당신은 감옥에 가고. 몇 달 주급 못 받아도 생활에 지장 없을 정도의 잔고는 있어요."

 

"미안. 방귀 뀌었어요. 초광속 항해 중에는 환기 안 되는 거 알죠?"

 

"냄새만 안 나면 상관 없어요. 안 나네."

 

"아저씨 좀 재수 없는 거 알아요?"

 

"이번 건 괜찮네."

 

"거짓말 아닌데?"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아. 이런 거구나. 만우절."

 

거짓말을 하는 날.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그런 쓸데 없는 날이 있나 싶었다. 지구인은 역시 망할 만 했다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거짓말은 그냥 거짓말이 아니었다. 거짓말이 반드시 거짓말이라면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뒤집으면 진실이니까. 거짓말은 거짓말이기도 하고 거짓말이 아니기도 해야 거짓말이었다.

 

말에는 진실의 무게가 실린다. 입 밖에 나오는 순간 말은 무언가를 규정하고 나머지를 배제한다. 모든 말이 진실은 아니지만 진실이든 아니든 무게는 실린다. 그걸 지켜야 할 의무가 생기고 거짓일 때 짊어져야 할 책임이 생긴다.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진실이라고 가정하는 건 생각해보면 좀 피곤한 일이다.

 

말을 안 하면 되지만 어떤 말들은 튀어 나가고 터져 나가야 했다. 아니면 흘리고 다니기라도 해야 했다. 내뱉지 않고 품고 다니면 몸과 마음을 썩혀 버릴 것 같은 그런 말들이 있었다. 유진이 졸업한 학교에서는 우주항해사 면허를 따고 첫 솔로 항해를 할 때 우주 한가운데에서 잠시 모든 통신을 끄는 관례가 있었다. 그때 유진은 무언가를 미친듯이 외쳤었다. 뭘 외쳤는지는 모두 까먹었지만 정거장으로 돌아올 때 한없이 가벼웠던 기억은 선명했다.

 

거짓말을 해도 되는 날. 진실의 무게감이 없어지는 날. 그렇게 무언가를 뱉어낼 수 있는 하루. 뭐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매일 그렇게 살 순 없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저 사실 아버지를 죽였어요."

 

수현이 유진을 돌아봤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시선을 먼 우주로 돌리며 말했다.

 

"그것 참 우연이군요. 나도 아버지를 죽였는데."

 

"조만간 다이크를 뜰 거에요. 다른 항성계로. 돈만 모이면. 갈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멀리 떠날 거에요."

 

"나와는 반대네요. 난 아버지를 우주에서 죽였거든. 그래서 자꾸 다시 우주로 나오는 거지."

 

"진짜예요?"

 

"진짜지."

 

"아항."

 

유진은 패널을 눌러 조종석 전면 디스플레이에 표시되고 있는 모든 정보들을 껐다. 디스플레이에는 광활한 우주만이 펼쳐졌다. 아무것도 없는 성간 우주. 그 우주를 깜박이며 점프해 가는 유진과 수현. 초광속 항해는 물질을 복사하고 원본을 지우는 거나 마찬가지라지. 어쩌면 지금 유진도 끊임없이 지워지는 건지도 몰랐다. 그저 이전의 기억이 복사될 뿐. 그 복사에 약간의 오류가 생겨 유진의 죄책감을 성간 우주에 버리고 올 순 없을까. 적어도 지금 내뱉는 말들은 버리고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우절이니까. 유진과 함께 잠시 말을 멈춘 채 우주를 바라보던 수현이 말했다.

 

"바로 여기였어요. 엡실론 에리다니와 글리제 876 사이의 성간 우주."

 

"그래서 이 구간의 초광속 항해를 조건으로 건 거였어요?"

 

"그렇지."

 

"근데 좀 이상하네요. 아버지를 우주에서 죽였는데 왜 다시 우주로 나와요? 아니 그보다. 초광속 항해를 하고 있는 우주선 안에서 왜 아버지를 죽여요?"

 

"내가 죽였다고 했었나요?"

 

"거짓말이었어요?"

 

"글쎄."

 

수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패널을 조작해서 앱을 하나 실행시켰다. 알리체의 스트리밍이 다운로드 될 공간을 잡아 먹었던 바로 그 앱이었다. 초광속 항해 시의 수동 운전을 도와주는 앱.

 

"어어. 아무리 만우절이라도 그런 장난은 안 돼요!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걱정 말아요. 비상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수동 운전으로 전환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이걸 보여 주려고."

 

수현이 앱을 실행시키자 디스플레이에 다시 복잡한 정보들이 표시되기 시작했다. 화면의 중앙에는 모든 시스템이 정상 작동 중이라는 문구가 깜박였다. 수현은 패널을 몇 번 클릭하여 증강 화면 테스트라는 메뉴를 찾아 들어갔다. 화면에 보이는 건 우주의 실제 모습이 아니며 비상 상황에서의 수동 운전을 가상으로 체험하는 용도로만 활용하라는 경고 문구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내 우주선 밖의 우주가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뭐예요? 제 우주선에 무슨 짓을 한 거죠?"

 

"증강 화면이에요. 바깥에 보이는 우주에 필터를 넣어서 성간 물질들이 잘 보이게 바꿔 주는 거죠.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그건 거짓말 아니겠죠."

 

"이런. 들켰네요."

 

우주선 밖으로 구름 같은 성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점점 짙어지는 성운들에는 갖가지 색이 입혀졌다. 정지 화면 같던 우주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우주와 함께 정지해 있는 것 같던 우주선이 성운들 사이를 천천히 헤쳐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 장면은 아름다웠다.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유진을 보며 수현이 조금 웃었다.

 

"이 증강 화면을 보려고 앱을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니 사실 대부분이 그렇다고 봐야죠. 초광속 항해 중에 비상 상황이 생기면 수동 운전이고 뭐고 그냥 끝장이니까. 초광속으로 점프를 하며 이 성운들 사이를 수동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항해사가 몇이나 되겠어요. 점점 속도를 잃다가 결국에는 연료가 바닥나고 성간 우주에 갇혀 버리게 되겠죠."

 

"그러니까. 내말이. 초광속 항해의 수동 모드 운전은 항해사 시험에서도 빠진 지 오래라고요. 비상 상황이 생기면 쓸데 없이 수동 운전을 하겠다고 연료를 낭비하지 말고 그냥 구조 신호만 켜고 기다리라는 게 매뉴얼이에요."

 

"아예 시험에서도 빠졌어요? 그래도 나 때는 시험은 봤었는데. 그러니 아무나 항해사 면허를 따겠다고 그 난리군요. 항해사가 쏟아지니 주급은 떨어지고. 진짜 항해사들은 일자리를 잃고. 자기 우주선이 없는 항해사들은 다들 백수가 됐죠. 저처럼."

 

"세상이 변한 거죠. 인공 지능이 사람보다 항해를 더 잘하는 데 누가 사람에게 항해를 맡기겠어요? 그나마 이 초광속 성간 항해 때문에 우리가 먹고 사는 거죠."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둘 사이에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아직 글리제에 도착하려면 멀었다. 증강 화면으로 성간 물질들의 파도를 볼 수 있다고 해도 그것만 보고 가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남아 있었다. 만우절 거짓말을 하겠다고 해놓고는 너무 진지하게 몰아 붙였나 싶어 후회하고 있을 때 수현이 다시 말했다.

 

"그거 알아요? 초광속 항해에는 왜 꼭 사람이 있어야 하는지. 그것도 두 명이나."

 

"왜긴요. 항해사 노조가 관철시킨 거잖아요. 인공 지능에 일자리를 다 뺏기게 생겼으니까. 두 명인 이유는 선주가 아닌 항해사들에게도 기회를 주려는 거고. 뭐 이유야 비상 상황에서의 안전 확보라는데. 말이 안 되죠. 애초에 사람이 타지 않는 것 보다 더 안전한 게 있겠어요?"

 

"보기보다 순진하네. 법이 왜 노조 편을 들어주겠어요? 이유는 단순해요. 그게 더 안전하니까. 비상 운전 뭐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에요. 초광속 항해를 하는 우주선에는 사람이 타야 사고가 나지 않아요. 그것도 두 명 이상이. 공간 도약을 연구한 초기 논문들을 보면 실험 결과가 다 나와 있어요. 물론 원인을 밝혀 내진 못했죠. 무인 운전 시의 사고율을 낮추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했어요. 결국 해결책은 그냥 사람을 태우는 거였죠. 두 명 이상이 타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고에 대한 모든 기록들은 삭제해 버렸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초광속 항해를 실용화 해야 했으니까."

 

"그건 좀 심하다. 거짓말인 걸 눈치 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면서요. 아니면 성의라도 있던가. 아니 노력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적당히 말은 돼야죠. 사람이 타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니. 우주가 사람을 알아 봐요? 사람이라고 해봐야 그냥 적당히 뭉쳐진 유기물일 뿐이잖아요. 말이 돼야죠."

 

"거짓말이 아니에요. 다 실험을 해 봤으니까. 심지어 죽은 시체를 태우고 항해를 해보기도 했어요. 결과는 실패였죠. 살아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꼭 항해사일 필요는 없어요. 그저 사람이 조종석에 앉아서 숨만 쉬고 있어도 사고는 나지 않으니까. 그러니 적당히 뭉쳐진 유기물로는 안되고 생명 활동이 있어야 한단 얘기죠.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도 안 돼요. 백 마리까지 태워 봤지만 결과는 실패였죠. 성간 우주 어딘가에는 지금도 수십 마리의 동물들이 탄 우주선들이 떠돌고 있어요. 이런 실험 결과들을 사람들에게 공개할 순 없었겠죠."

 

"말도 안 돼. 아니 뭐 된다고 쳐도. 아저씨는 그럼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는데요? 극비라면서요."

 

"그 실험을 한 게 저니까요."

 

"거짓말이죠?"

 

"그리고 제 아버지하고."

 

"거짓말이잖아요."

 

"글쎄요."

 

유진은 슬슬 지루해졌다. 만우절 거짓말이라는 게 결국에는 이렇게 어이 없는 허풍이 되어 버리는 거라면 괜히 시작했다 싶었다. 성간 항해는 아직 절반도 더 남아 있었다.

 

"제 이론이 하나 있긴 해요. 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번 거짓말은 좀 그럴 듯 했으면 좋겠어요."

 

"공간 도약이라는 게 물질을 복사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건 알고 있죠?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 복사의 성공률을 높이려면 원본이 있는 공간과 사본이 새겨질 공간의 상태가 최대한 비슷해야 해요. 공간에 원자들이 떠다니고 있다면 서로 다른 공간의 상태가 비슷하기는 힘들겠죠. 그래서 이렇게 비어 있는 성간 우주에서만 초광속 항해가 가능한 거고."

 

"이번 건 조금 괜찮네요."

 

"이건 교과서에도 나오는 거니까요. 대체 면허 시험이 얼마나 쉬워진 거요?"

 

"사실 저희 아버지가 면허 시험 출제자였어요. 문제를 빼돌려 줬죠. 평생 거짓말 한 번 안 해 보고 사신 분이셨는데. 저를 위해서 죄를 지으신 거죠. 근데 들켰어요. 내사가 시작되자 아버지는 결국 자살하셨죠. 그걸로 내사는 종결되고 제가 연루되었다는 것까지는 밝혀지지 않았어요. 자살도 저를 위해서 하신 거죠. 그래서 제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한 거예요."

 

"그럴 듯 하네요."

 

"자 그러니까 이제 아저씨도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해 봐요."

 

"문제는 사본이 새겨진 뒤 원본이 지워지는 시간 간격이에요. 두 공간에 존재하는 미세한 차이에 의해 그 간격에 오류가 생기고 그게 누적되면 결국 공간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죠. 단순히 물질을 복사하게 되면 오류의 누적량을 연결이 견뎌내질 못해요. 그런데 그 복사 대상에 사람이 끼면 달라지죠."

 

"어째서요?"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으니까."

 

"잘 나가다가 망했네요."

 

"농담이 아니에요. 영혼도 일종의 물질이라는 게 제 이론이에요. 다만 다른 차원. 더 높은 차원의 물질이죠. 그래서 그런 고차원의 물질이 공간을 복사할 때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거에요. 거기에 필요한 게 대략 한 사람 분의 영혼이에요. 한 사람으로는 가끔 위험해서 안전하게 하려면 두 사람 분이 있어야 했고요. 동물들도 영혼이 있기는 하지만 인간에 비해서는 그 영혼량이 너무 적어요. 그래서 백 마리가 있어도 충분한 연결 강도가 나오지 않는 거죠."

 

"너무 나갔다. 갑자기 그렇게 초자연 현상으로 떠 버리면 허무하잖아요. 아무리 거짓말이라도."

 

"좀 너무 했나?"

 

"너무 했어요."

 

유진은 우주로 눈을 돌렸다. 아까 수현이 실행시켜 놓은 증강 화면 앱이 여전히 디스플레이에 화려한 영상들을 뿌려주고 있었다. 꿈틀거리며 일렁이던 성간 물질들 가운데서 갑자기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깜짝 놀란 유진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얼굴은 이내 뭉그러지며 주위로 퍼져 나갔다. 우연의 일치였다. 불특정한 패턴에서 사람의 얼굴을 찾아 내는 건 뇌의 특기였다. 유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현은 아마도 저런 영상들을 보다가 영혼 어쩌고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떠올린 것 아닐까.

 

"그럼 실험 얘기를 다시 할게요."

 

끝난 줄 알았던 수현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졌다.

 

"아무도 제 이론을 믿어 주지 않았어요. 지금 유진 씨처럼. 심지어 제 아버지도 못 믿었죠. 아버지는 제게 기대가 컸어요. 어릴 때 부터 자신의 뒤를 이을 천재로 키우겠다고 입버릇 처럼 말하고 다니셨으니까. 저도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아들이 갑자기 영혼 얘기를 하니 실망이 크셨겠죠. 저는 저 나름대로 충격이 컸어요. 아버지가 절 믿어 주지 않았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전 좀 절박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해서든 제 이론을 증명해야 했거든요.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서."

 

"몇 살 때였어요?"

 

"열 여덟 살."

 

"우리 나이로. 좀. 은하 표준 나이 말고요."

 

"여섯 살 때네요."

 

"뭐 그 나이면 그런 생각 할 만 하죠. 개연성 있어요. 계속 해 봐요."

 

"그래서 증명하려고 했죠."

 

"어떻게요?"

 

"우리가 개발한 공간 도약 알고리즘을 버텨내려면 대략 두 사람 분의 영혼이 필요하다는 게 제 계산이었어요. 두 공간의 차이가 크면 클 수록 더 많은 영혼이 필요하겠죠. 만일 공간의 차이를 점점 늘려가다가 두 사람 분의 영혼이 버틸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해서 그 상태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한다면 그걸 인간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혼이 떨어져 나가려는 그 느낌을요."

 

"설마."

 

"그래요. 아버지를 우주선에 태우고 그 실험을 했죠."

 

"개연성이 떨어지고 있어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유진은 그래도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어쨌든 결론은 들어 봐야 하니까. 말과는 달리 여전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유진을 본 수현이 가느다란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그렇게 미세하게 공간의 차이를 조절하려면 방법은 수동 운전 밖에 없었어요. 증강 화면을 이용해서요. 지금 이거랑 비슷하지만 성능이 많이 떨어졌죠. 흑백이었고. 그래도 실험용이라서 비상 시에만 수동으로 전환되는 안전 장치 같은 건 달려 있지 않았어요. 전 자신있었어요. 아버지가 반대하는 걸 무릅쓰고. 사실 아버지를 의자에 묶어 놨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쳐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정신이면 그럴 리 없었겠죠."

 

"그래서 아버지가 죽은 거예요? 우주에서?"

 

"이론은 맞았어요. 맞았다고 믿어요. 영혼이 떨어져 나가려는 그 느낌을 전 느꼈으니까. 그건 뭐랄까. 죽음을 슬쩍 훔쳐 보고 온 느낌이었어요. 유체 이탈 같은 것하고는 조금 달랐어요. 몸에서 빠져 나가 제 몸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저 빠져 나가기만 하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아무 것도 없는 어둠으로. 미칠 듯한 공포를 느끼고 전 다시 자동 운전 모드로 전환했어요. 하지만 너무 늦었죠. 이미 아버지의 영혼은 떨어져 나간 후였어요."

 

유진은 조금 몸을 떨었다.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왠지 오싹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저씨 은근히 거짓말 잘 하시네요. 엄청 공들인 거짓말이라는 건 인정해야 겠어요."

 

"거짓말 아닌데."

 

"그렇다고 치죠."

 

수현은 증강 화면의 강도를 최대로 높였다. 필터를 통해 보여지는 성간 물질들이 더욱 선명하고 생생해졌다. 수현은 유진을 돌아보며 웃었다.

 

"거짓말 아니라니까."

 

"왜 그래요? 그런 표정으로. 좀 소름끼치려고 한다."

 

"내가 왜 다시 우주로 나오려고 하겠어요?"

 

"모르죠 전."

 

"이 근방이었어요. 아버지의 영혼을 놓친 게. 어쩌면 아직도 아버지의 영혼은 성간 우주를 떠돌고 있을 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영혼이 떨어져 나갈 수 있다면 다시 붙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수현의 표정을 보며 유진은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어쩌면 수현의 영혼도 그때 약간 떨어져 나간 건 아닐까. 턱이 덜덜 떨렸다. 수현이 기괴하게 웃으며 말했다.

 

"수동 운전을 하면 돼요. 수동 운전으로 공간의 연결이 끊어질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성간 우주를 헤매다가 아버지의 영혼을 만나면. 그러면 그 영혼을 다시 붙잡을 수 있을 지도 몰라요."

 

"수동... 운전을 어떻게... 안전 장치가 있잖... 아요!"

 

"비상 상태를 만들면 되죠. 성간 항해 중에 항해사 둘 중 하나가 죽으면 한 사람 밖에 남지 않으니 비상 상태에 들어가게 되겠죠. 영혼을 붙잡을 빈 몸도 하나 생기고. 일석이조죠."

 

수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운전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유진을 향해 다가왔다. 유진은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다가오는 수현을 피해 유진은 우주선 구석으로 달아났다. 유진의 작은 우주선에는 도망쳐 숨을 공간도 없었다.

 

"이 미친 자식!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울부짖는 유진을 보며 수현이 멈춰섰다. 그러더니 갑자기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핫핫핫! 완전히 속았어! 그쵸? 이게 만우절이에요. 이렇게 상대방을 속이고 노는 날. 핫핫핫!"

 

"뭐... 뭐야..."

 

"뭐긴요. 난 거짓말을 하고 유진 씨는 속은 거지. 눈물까지 찔끔 났네요. 핫핫핫."

 

속았다. 이게 지구인들의 놀이였구나. 망할 만 했어. 망해도 싸. 유진은 크게 한숨을 몰아 쉬었다. 그래도 마음 한 켠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살았다. 죽는 줄 알았잖아. 걷잡을 수 없이 뛰던 심장이 조금 가라 앉자 유진은 살짝 오기가 솟았다.

 

"아저씨도 속았어요. 나도 거짓말을 했으니까."

 

"아버지 얘기가 거짓말이었군요. 꽤 그럴 듯 했는데. 솔직히 반 정도는 믿었었어요."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에요. 문제를 훔친 건 사실이니까. 아버지가 아니라 제가 훔쳤어요. 아버지가 눈치 챘죠. 평생 거짓말 한 번 하지 않으셨던 분이라는 건 사실이에요. 저 때문에 처음 거짓말을 하셨죠. 제가 훔친 걸 밝히지 않으셨으니까. 대신 저와의 인연을 끊으셨죠. 그렇게 전 아버지를 잃었어요."

 

"그것도 거짓말이죠? 나한테 속은 거 복수하려면 거짓말 하나로는 부족할 테니까."

 

"들켰네요."

 

"이게 거짓말인가?"

 

"글쎄요."

 

유진은 조종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는 수현이 켠 증강 화면 앱을 꺼버렸다. 우주는 다시 촘촘히 별이 박힌 그림처럼 조용한 우주로 되돌아 왔다. 디스플레이에 남은 시간이 떴다. 글리제 까지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수현이 말했다.

 

"내가 한 말들이 전부 다 거짓말은 아니에요. 아버지가 우주에서 죽은 건 사실이니까. 공간 도약을 실험하다 죽은 것도 사실이고. 사실 제가 말한 거 거의 다 사실이에요. 다만 그 실험을 한 게 내가 아니라 아버지였어요. 의자에 묶여 있던 게 나였고."

 

"진짜 그만 해요. 얼마나 거짓말을 더 하려고."

 

"거짓말 아닌데."

 

"그렇다고 치죠."

 

수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딸각 하고 숫자가 내려갔다. 글리제까지의 남은 시간이 1분 줄어 들었다. 이렇게 몇 백 번만 더 숫자가 바뀌면 글리제에 도착한다. 수현은 왜 에리다니와 글리제 사이의 성간 여행을 조건으로 걸었을까. 수현의 경력에 택도 없이 부족한 주급을 감수할 정도로 그 조건이 중요한 이유는 뭐였을까. 수현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던 걸까.

 

"제일 억울한 게 뭔지 알아요?"

 

수현이 말했다. 유진이 수현을 돌아보았다. 텅 빈 성간 우주를 바라보는 수현의 표정이 묘하게 비어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만나고 싶진 않아요.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그래도 가끔은 아무 말도 안하고 지나치고 싶어요."

 

"잘 됐네요. 한 동안은 이 루트를 다녀야 할 것 같으니까. 큰 돈 벌 욕심만 안 부리면 은근히 짭짤해요."

 

"에리다니를 뜬다면서요. 조만간."

 

"좀 더 있어 보려구요. 당분간은."

 

유진은 습관처럼 패널을 넘기며 저장된 알리체의 스트리밍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모두 이미 본 동영상들이었다. 유진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 앱 당장 지워요. 글리제 도착하자 마자. 아니면 좀 용량이 작은 버전으로 깔던가. 진짜."

 

"선체를 업그레이드 하는 게 어때요? 요즘 누가 이런 고물을 몬다고."

 

"돈이 어딨어요! 진짜."

 

"제가 보탤게요."

 

뜻밖의 말에 유진은 깜짝 놀라며 수현을 쳐다 보았다.

 

"진짜? 진짜 진짜? 아저씨 돈 모아 둔 거 있어요? 동업 괜찮은데. 투자한 만큼 수익 분배하면 되잖아. 아니면 주급을 올려 줄까요? 근데 얼마나 보태줄 건데요? 아예 중형급으로 올릴 돈까지는 안 되겠죠?"

 

"진짜 잘 속네. 거짓말이에요. 돈이 어딨다고."

 

유진은 잠시 동안 멍하니 수현을 바라보다가 결국 조종석을 완전히 제끼고 뒤로 누워 버렸다.

 

"짜증나 진짜. 만우절 따위. 그러니까 지구가 망했지!"

 

글리제까지의 도착 시간이 1분 더 줄어 들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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