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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난간 위로 걸어 가기





제2 한강 인도교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난간 위로 올라 서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제2 한강 인도교의 위치가 문제였다고 말한다. 그 다리는 다리를 걸어 가며 강변 풍경을 보기에 좋은 곳이었다. 해가 질 때 빌딩의 윤곽이 금색으로 빛나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 보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있었다. 그런 풍경을 보기에 특히 좋은 몇몇 자리들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 다리에 찾아 가는 사람들이 많았졌고, 그러다보니 삶을 포기하기 위해 그 난간 위에 올라 서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 갔다.


신체 자유법이 통과 되고, 대법원에서 신체 자유법에 대한 공격적인 해석들이 인정이 된 후에 그런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그전 만해도 난간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면, 경찰이 그 사람들을 제지했다. 두 시간마다 맥박이 있는지 일부러 확인을 해야 될만큼 생기 없게 빈둥거리던 그곳의 공익 근무 요원들도, 다리의 난간 위로 누군가 기어 오르려고 하면 호루라기를 불며 정신 없이 달려가 그들을 말렸다. 그렇지만 신체 자유법 이후로는 그런 사람들을 막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막는 것으로 간주 되었다. 누군가 난간 위로 올라 가도, 경찰과 공익 근무 요원들은 막지 못했다. 고작 방송으로 내려 오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고 “추천”해 주는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냥 그렇게 말로만 외쳤다. 그러다가 시에서   2억2천만원의 용역 연구비를 주고 연구 결과로 추천 받은 “긍정적인 생각을 불러 오는 음악”을 배경에 깔아서 스피커로 틀어 주며 내려 오라는 나래이션을 들려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경치 구경을 하러 다리에 온 사람들이 갑자기 난간 위에 올라 선 사람들에게 불평을 늘어 놓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느긋하게 강물을 배경으로 해 지는 것을 보며 과도 하지 않은 쓸쓸함을 즐기고 싶은 정도였는데, 갑자기 불쑥 뛰어 나와 난간 위로 올라 가는 사람을 보고, 너무 놀랐고, 끔찍했다고 욕을 해 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자신에게 평생 흉터처럼 남는 충격을 준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규정을 만들기를 요구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자 난간 위로 오르는 사람들은 그 눈길을 피해서 새벽 시간이나 밤 시간,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을 때 그 다리를 찾게 되었다. 곧 불평하는 사람들은 잦아 들었다.


구급대원들이나 한강 구조대가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신체 자유법을 지지하는 단체들은 자기네들의 기금을 만들었다. 신체 자유법 지지 단체들은 한강 오염을 막는 일에 들어 가는 비용은 그 기금에서 대신 내 줄테니까, 그 사람들을 막지 말아 달라고 했다. 국토교통부의 담당 공무원 하나가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서 난간을 좀더 뾰족하게 만들어 올라가기 어려운 모양으로 개조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자 난간 위에 올라서면 균형을 잃고 바로 떨어지기  쉬워졌다. 아예 난간 위로 올라가는데 실패하는 사람들이 생긴 만큼, 난간 위에 올라서서 갈등 하다가 다시 내려 오는 사람도 확 줄어 들어 버렸다.


그렇다고 난간 위로 올라 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결코 줄어들지 않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난간 위로 올라 서는 사람들이 줄어 들 때도 있었다. 겨울이었다. 겨울이 되어 한강이 얼어 붙었고, 높은 곳에서 한강으로 떨어진 것의 모습이 결코 보기 좋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다리의 난간 위로 올라 서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 상금을 걸었다.


제2 한강 인도교 다리 난간 위를 맨발로 걸어서 건너가면 10억원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100미터를 건널 때마다 상금이 2배로 오른다는 조건이었다. 다리를 끝까지 건너면 상금은 10억원 정도가 되도록 액수가 맞추어져 있었다. 한 번 도전한 사람은 다시 도전할 수는 없었고, 도중에 자발적으로 포기하면 상금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일단 처음 100미터를 넘기고 어쩔 수 없이 실패해서 추락한다면, 지정해 놓은 유산 상속자에게 상금은 준다고 밝히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난 밤에 사랑하는 여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 어느 술 취한 남자가 다리 난간에 올라가 떨어진 후, 사람들은 생각이 바뀌었다. 남자는 술 취한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속이 거북해 보이는 사람이었고,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 역시 바람 피우는 현장을 목격 당하는 상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색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남자의 균형 감각은 흔한 것이 아니었다. 전자제품 부품 만드는 회사의 총무과 직원이었던 남자에게 균형 감각은 쓸모 없는 재능이었다. 심지어 남자 스스로도 그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 가끔 심하게 흔들리는 버스를 서서 타고 갈 때에 유난히 자기는 잘 안 넘어지는 편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를 생각하며 난간 위로 올라 설 때도 자신의 균형 감각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균형 감각 덕택에 술 취한 남자는 171미터나 걸어 가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기우뚱거리다가 추락했다. 몇 사람이 보고 있었고, 공익근무요원들이 관리하고 있는 감독 카메라에도 그 영상은 찍혔다.


그런데 얼마 후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에게 남자가 딴 상금이라며 2만 몇천원 인가 하는 돈이 지급되었다. 돈을 준 사람은 상금을 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었다. 100미터를 걸어 간 값으로 책정되어 있는 금액이라고 했다. 상금의 수령인이 여자로 결정된 것은 남자가 다리를 건너 가면서,


“난 너에게 내 모든 걸 바쳐.”


하고 소리친 것이 근거라고 했다. 그리고 30미터만 더 걸어 가서 200미터까지 걸어 갔다면 그 두 배를 주었을 텐데, 안타깝다는 말도 전달 되었다.


상금은 진짜였다. 상금을 규정해 놓은 문서와 조건은 모두 합법적이었다. 선거와 겹친 지난 번 경제 위기 때에, 정치인들의 상상력은 어느 때 보다 빈약했고, 돈을 버는 방법으로 다들 도박과 카지노만 떠드는 시기가 있었다. 시군 마다 시도 마다 다들 도박을 합법화하면, “도박이나 좋아하는 나쁜 사람들” 돈이 착한 지역 주민들과 정부의 세금으로 돌아 온다고들 선전했다. 그러고 났더니 제한적인 도박 합법화 법령은 이곳에도 적용 되고 있었고, 상금을 건 사람은 이 법을 잘 이용해서 자신이 제시하고 있는 조건이 진지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시 다리 난간 위로 올라 서기 시작했다. 상금이 없었더라도 애초에 난간 위에 올라갔을 슬픈 사람들은 조금 더 빨리 난간 위에 올라 갔다. 북한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일하던 누구처럼, 병든 아내의 치료비로 돈을 다 쓰다가 알거지가 된 뒤에 더 이상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혹시나 해서 난간 위로 올라 가는 사람도 있었다.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거지로 사는 대신에 한강 복판의 얼음판에 금이라도 한 번 내 보고 가는 것이고, 만에 하나 떨어지지 않는다면 돈을 챙겨서 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은 고작 몇 만원도 받지 못했고 100미터를 채 걷지 못하고 추락했다. “생명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피부가 무시무시하게 깨끗한 중년 여자 한 명은, 이것이 모두 악마 같은 사악한 사람의 속임수라고 주장했다. 중년 여자는 상금을 걸어 놓은 그 악마 같은 사람은 사람을 끌어 들이기 위해 이런 조건을 걸어 놓고, 사람들이 잘 떨어지라고 난간에 미끄러운 기름을 칠해 두기도 하고, 갑자기 멀리서 강풍을 불게 해서 휘청거리게 만들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프로축구 보러 가서 행패를 부리는 게 재밌었던 얼간이 하나가 하는 소리를 어디서 주워 듣고, 그 중년 여자는 그 사악한 인간은 레이저 포인터로 멀리서 눈을 비추어 난간 위를 걷는 사람을 방해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 중년 여자의 주장과는 다르게 난간 위를 걷는 것은 공정한 편이었다. 강풍을 불게하는 장치나, 레이저 포인터를 준비해 두고 숨어 있는 사악한 조직의 부하 같은 사람은 없었다. 난간에는 누가 기름을 바르는 것 따위도 없었다. 오히려 중년 여자와 “생명을 사랑하는 모임” 사람들이 난간 위로 사람들이 못 올라가게 한다면서 난간 위에 뾰족뾰족한 쇳조각 같은 것을 올려 놓다가 쫓겨 나기도 했다.


한 은퇴한 체조 선수는 꽤 긴 거리를 걸어 간 뒤에 추락해서 그 유가족이 많은 돈을 챙기기도 했다. 체조 선수는 원래 체조 경기에서 은퇴한 뒤에 특이한 헬스 클럽을 차리려고 사업을 일으켰다.


“성공하려면 크게 모든 걸 다 걸고 일해야돼요. 그만큼 절박하게 일해야만 성공하는 거에요. 선생님처럼 이미 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신 분들은 그런, 여기에서 내가 성공 안하면 안된다, 끝난다라는 그런 절박함이 없으셔서 일에 완전히 몰두하시지를 못하거든요. 그러면 무조건 망해요. 성공 못해요. 모든 걸 바치셔야 성공하시는 거에요.”


라면서 사람을 부추기던 운동기구 판매 업자의 말을 믿고 체조 선수는 헬스 클럽에 가진 돈을 다 털어 넣었다. 체조 선수는 분명히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절박하게 일했지만 성공 못하고 망했다. 망한 것 뿐만 아니라 가족들 이름으로 빚을 얻은 것들마저 잔뜩 생겼다.


체조 선수는 이제 와서 해 볼만한 것은 난간 위를 걷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체조 선수는 결국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상금으로 급한 빚을 갚는데 성공했다.


체조 선수는 난간 위를 오르기 전에 그를 말리는 사람에게 말했다. 여기에 상금 건 그 사람이 사람 목숨 우습게 아는 엄청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고, 사람 목숨에 돈 걸고 장난 하는 놈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자기 상황에서는 그 상금 건 사람이야 말로 자기 남은 가족을 살게 해 주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상금 건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 누구 하나 절박한 자기 빚을 갚을 돈을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 않지 않냐고 말했다. 어쨌거나 돈을 꺼내서 빚을 갚아 주는 사람이고, 자기는 여기에 상금 건 사람이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


체조 선수 역시 완주에는 실패했지만, 그것 만으로도 사람들을 더 많이 난간 위로 모여 들게 할 수 있었다.


반대하는 사람도 계속 나타나긴 했다. 자선 사업을 하는 한 늙은이가, 난간 앞에 서서 사연을 말하면 자신이 돈을 줄테니 이런 난간 위에 올라 가서 비열한 놈의 놀음거리가 되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늙은이의 돈은 한계가 있었고, 사람들이 바라는 돈은 끝이 없었다. 적당한 눈물 연기와 타고난 피폐한 표정을 이용해서 그럴듯하게 인생 망한 사람인척 연기를 하고 늙은이에게 돈을 받아서 속으로 낄낄거리며 돌아 가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늙은이는 텔레비전에서 “비정한 세상과 맞서 싸우는 양심”으로 부추겨 주며 몇 시간 보여 주고 나자 너무 들뜬 나머지 모든 재산과 빚까지 얻어서 돈을 써 없애면서 난간 위에 올라 서는 사람들을 막으려고 했다.


결국 망한 늙은이는 결국 자기 스스로 난간 위로 올라 갔다. 늙은이는 다리를 건너 갈 생각 자체가 없어서였는지, 너무 관절이 약해서 였는지, 5미터를 채 건너지 못하고 추락했다.


난간 위를 걷는 사람들은 언제나 볼 수 있는 구경거리가 되어 갔다. 100미터, 200미터를 넘게 걸어 가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쓰레기 같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중계해 주는 어느 텔레비전의 방송사들이 나타나 생중계를 해 주었다. 그런 중계는 가끔씩 인기를 끌기도 했다. 바람이 불 때 마다 천사의 날개처럼 펄럭이는 치마를 입었던 기막힌 각선미를 가진 젊은 여자가 난간 위에 올라 갔을 때라든가, 불치병에 걸려 어차피 죽을 마당에 마지막으로 재미거리가 되려고 올라 왔다는 한물 간 코미디언이 나섰을 때 등등은 며칠씩 반복해서 보도될 정도였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으니, 점잔을 빼고 있던 다른 방송국들도 생중계에 나서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번에는 누군가 얼마나 많이 건너갈까, 기대하며 난간 위를 걷는 사람들을 보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난간 위를 건너 가는데 성공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보다는 영원히 이 난간을 건너가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기도 했다. 이 다리의 난간은 결코 지나갈 수 없는 것이라는 느낌을 주며, 인간을 압도적으로 넘어 서는 힘으로 언제나 굳건히 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면서 거기에 계속 부딛혀 실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 조마조마하게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을 응원하다가도, 한발 두발 걸은 걸음이 꽤 많이 나가게 되면, 부도덕한 도전에 참여한 사람에 대한 양심인지, 그가 얻는 돈과 명예에 대한 질투심인지, 왜인지 그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움트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난간 위의 사람을 응원하다가도 내심 난간을 응원하기도 했다.


추락하는 사람을 보면 그래서 몰래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도전자의 모습에 깊이 안타까움과 동정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에 도전자를 측은한 마음을 더 마음껏 더 강하게 표현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볼 거리가 되는 것은 사람이 엉망이 된 표정으로 덜덜 떨며 다리 위를 걷는  모습이 아니라고 했다. 사실 얼빠진 놈 중에는 그러면 멋있어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지, 자기는 겁을 내지 않는다면 여유로운 척하며 히죽거리면서 다리 위를 걷다가 떨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건 비참해 보였고, 가끔씩은 혐오스럽거나 역겨워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이, 어떤 과거를 가진 사람이 다리의 난간 위로 올라 왔는지 알고 싶어 했다. 인생이 끝난 이야기, 인생이 끝났지만 아직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부질 없이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 멀쩡하게 희망이 있고 기회도 있는데도 모든 게 끝났다고 믿고 있는 바보 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난간 위로 올라 서는 사람들 마다 한 편씩 따라 붙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 나락 아래로 떨어지는 인생의 사연들이야말로 구경거리였다. 절절하면 절절한대로, 한심하고 비웃을만하면 비웃음거리인대로, 삶의 마지막을 다리 위에서 100미터에 두 배라는 약속에 내던지는 이야기가 구경 거리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리 난간을 걷다가 추락했다. 그렇지만 그리고 나서도 세상에 되살릴 수 없는 삶은 얼마든지 있었다. 또 새로운 사람들이 또 계속 다리 난간 위로 올라섰다. 이 내기와 상금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많았고, 상금 지급을 막기 위해 많은 소송들이 걸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상금은 무서움을 잊어 보겠다고 무턱대고 소리를 길게 지르며 난간 위를 뛰어 다니다가 떨어져 버린 아버지가 남긴 돈이었다. 또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 발짝 한 발짝 조금이라도 더 걸어 가려고 발을 내디딘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유산이 그 돈이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상금 지급을 멈추게 하려는 소송들은 떨어진 사람들의 목숨값을 받으려는 간절한 사연들에 항상 패배하였다.


“법으로 금지해야돼. 경찰들을 깔아서 하여간 다리 난간 위로 못 올라가게 해야 한다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것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단체들도 있었다.


“세상이 법 있고, 제도 있다고, 꼭 그것 때문에, 뭘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고 정해지는 건 아니거든. 높은 사람들이 허락해 줄만하다 하는 의지가 있으면 법이 아니라도 다들 그렇게 하게 할 수 있고, 누가 시책으로 그건 단속하라고 하면 근거가 있든 없든 막을 수 있는 게 세상이잖아. 막말로 이거 경범죄로라도 단속 못하겠어? 미풍양속을 해치는 일이잖아. 그러면 막으면 되는 거 아니야. 하다 못해 방송이나 통신이랑 상관 있는 위원회에서 내부적으로 결정하면 방송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떠들어 대는 사람들은 늘어 나는 것 같았지만, 결국 같은 주장은 시간이 지나면 인기를 잃고 힘을 잃었다.


“상금 건 사람이 분명히 위쪽이랑 끈이 닿아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저걸 저렇게 하도록 그냥 계속 놔두지.”


다리 난간에 걸린 상금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어떤 식으로든지 사회의 상층부와 엮여 있는 음모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패배는 야비한 힘있는 자들에게 당한 거룩한 희생이라고 포장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위태로운 다리의 난간과 상금을 위해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계속 보고 싶어 했다.


그 즈음 되었을 때, 이게 상금을 건 그 사람에게 모두가 조롱 당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잠깐 주목을 받았다. 심장이 두근거려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을 것 같은데 마비된 것 같은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다리의 난간 위로 올라 서는 사람과, 그 사람을 아슬아슬하게 지켜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상금을 건 그 사람은 배를 잡고 웃고 있을 거라고 했다. 자신이 걸어 놓은 몇 푼 안되는 돈으로 어떻게 사람의 인생을 보잘것 없게 만들 수 있는지, 자신의 힘을 마음껏 즐기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동안에도 어떤 사람들은 구경꾼이 되어 나타나 생생하게 긴장한 난간 위 사람의 표정을 보려고 오기도 했다. 자기 아들이 난간 위에 올라 갔다가 떨어졌다는 한 여자가 나타나 반 미치광이처럼 씩씩거리며 달려가 난간 위에 막 올라간 다른 사람을 밀쳐 버리고 살인죄를 일부러 덮어 쓰는 사람도 있었다. 난간 위를 걷는 사람에게 소리를 질러 놀래키려고 하거나 돌을 던지는 따위의 짓거리를 하는 사람들도 언제나 있었다.


날마다 다리 난간 앞에 찾아와 구경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가장 열심히 구경하러 찾아 오는 사람들은 누군가 반드시 다리를 건너는데 성공해서 상금을 건 사람을 이겨야 한다고 애절하게 기원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만만하게 자기야 말로 다리를 건너는데 성공하고 살아 남아 보이겠다고 호기를 부리는 자들이 그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저는 지금 제 삶에 만족하고 있고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정말 도전을 위해서, 정말 우리가 이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난간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말한 사람은 고작 80미터 밖에 걷지 못하고 떨어졌다. 아무도 그 사람이 행복한 상태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정말 행복했다고 그 사람의 친지들이 울면서 주장해도 믿어 주는 사람은 적었다.


행복한 사람들이건, 유명해지기 위해서라면 좀 죽어도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건, 다리 난간을 완주해서 상금을 건 그 사람을 이겨 보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중에는 정말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여자는 자기는 반드시 성공하겠다면서 오랫동안 연습하고 준비했다고 설명까지 길게 했다. 학자였던 그 사람은 다리 난간의 모양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촬영했고 똑같은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고 했다. 그 학자는 근처 실내체육관에서 그 모형으로 끊임 없이 다리 난간 위를 걸어 가는 연습을 했다. 몰아치는 강바람과 갑작스런 돌풍, 다리의 예기치 않은 진동 때문에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서, 가끔씩 돌발적으로 난간이 흔들리도록 자동 장치를 만들어 두고 컴퓨터로 조정해 가며 정교하게 연습하기도 했다.


마침내 학자는 많은 관심을 받으며, 정말로 다리의 난간 위로 올라 섰다. 학자는 기뻤다. 정말로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학자를 영웅으로 여기며 응원하는 말을 써서 직접 다리 앞으로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학자는 자신감이 있었다.


학자는 자기처럼 미리 연습을 많이 하고 이곳에 온 사람들이 정말로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에 신경이 흐트러지는 일이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 중에는 연습 상태에서는 얼마든지 다리를 다 건널 수 있는 실력을 키우고도, 실제로는 겁을 먹고 실력 발휘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막상 정말로 물결치는 한강 위 높은 곳에 서면 자칫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정은 자꾸만 막막해지고 다리는 계속 떨리고 발바닥에는 미끄럽게 땀이 흐른다. 그러다가 그냥 그만두고 돌아갈까, 돈이 다 무슨 소용인가, 유명해지는 게 뭐가 중요한가, 내려갈까, 고민하다가 잠깐 감각이 둔하진 사이에 멍청하게 추락하거나, 더 멍청해 보인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포기하고 제 발로 난간 아래로 내려와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는 사람들. 학자는 그런 사람들을 여럿 본 적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학자는 자신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자는 친분이 있는 의사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약물을 모았다. 마음에 절대적인 안정을 주는 약, 절대 흥분하는 일을 없게 만드는 약이 필요했다. 학자는 수천만명이 지켜 보는 앞에서 다리 난간 위를 걷겠다는 목표에 꿈처럼 매달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의사들은 그것이야말로 불안하고 흥분해서 미친 것 같다고 생각해서 약을 처방해 주었다. 학자는 다리의 난간 위로 오르기 한참 전에 약을 삼켰고, 당장 누가 권총으로 심장을 쏘아도 웃으면서 왜그러시냐고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여유 있게 손까지 흔들어 보이고 다리의 난간 위로 올라선 학자는 과연 500미터 이상을 걸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학자는 거기에서 실패했다. 원인은 균형 감각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고, 감정이 동요한 것도 아니었다. 학자는 한강 바람을 맞는 추운 날씨를 생각하지 못했다. 맨발로 한 겨울 다리 위 난간을 걷고 있자니 발이 너무 시려웠다. 그 덕분에 발의 감각이 점점 무뎌졌다. 사실 470미터쯤 지났을 때 발에 감각이 없어지자 겁이 왈칵 나서 그만 두고 내려왔어야만 할 상황이었는데, 너무 용감하고 초연했던 학자는 몇 십 미터를 더 걸은 뒤 얼음 떠 있는 물 위로 박히는 미래를 택했다.


치밀하게 준비했던 학자는 실패했지만 기록은 오래도록 깨어지지 않았다. 학자의 기록을 깬 사람은 평생 줄타기 놀음을 익힌 줄타기꾼 노인이었다.


별 인기도 없는 곡예단에서 배운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가끔 시골 어디 군청에서 전통놀이 마당을 한다고 행사라도 벌이면 찾아가서 펼치면 짭짤한 수입이 되는 것이 줄타기였다. 그러고보면 몇 십년 전에 익힌 줄타는 재주를 그 몇 십년 동안 별로 바뀐 것도 없는 모양으로 이 동네 저 동네, 이 행사, 저 행사에서 보여 주는 것이 줄타기꾼의 한 평생이었다. 그는 그래도 처음에는 자기가 흥행일에 재주가 있다고 생각해서, 젊은 시절에는 연예인이 되어 보겠다고 행사장에서 사회를 보거나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방송국을 따라 다니며 조금 더 유명한 코미디언들 잔심부름을 하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 번, 두 번쯤 조금 잘 풀릴 뻔한 적이 있었을까, 결국 노인이 되도록 줄타기꾼의 삶은 거기에 멈추어 있었다. 조선시대 시장터 풍경을 재현하는 사극 촬영을 따라 다니면서, 줄타기 모습을 보여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면서 영화판에서 한 번 잘 풀릴 뻔 한 적이 있었다. 다른 한 번은 전통 곡예로 인간문화재로 인정을 받아, 대가 대접을 받으면서 나라 세금을 받아 먹으며 사는 길을 뚫을 뻔 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영화판에서는 얼굴이 밋밋하게 생긴 까닭에 좀 더 악당처럼 생긴 다른 줄타기꾼에게 일을 빼앗겼고, 인간문화재 심사에서는 스승 없이 대충 보고 배운 줄타기꾼 기술이라고하여 오래전부터 계승해 온 가치가 없다고 해서 탈락했다.


그리고나서 그렇게 비루먹은 가짜 “전통 장터”만 돌아 다니며 연명해 온 것이 몇 십년. 줄타기꾼은 이것이야말로 마지막으로 한 번 흥행해 볼 기회라고 생각했다. 균형을 잡으며 재주를 부리면서 걸어 가면, 드디어 모두들 지켜보며 환호하는 자리에 서는 그 꿈,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줄타기꾼은 자신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상금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다른 어떤 복잡한 심경이나 인생에 대한 회의 때문에 난간 위에 올라 서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줄타기꾼은 자기는 평생 줄을 타고 높은 곳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이었으며, 그것이 자신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번에 다리 위 난간에 올라 섰다고 말했다.


줄타기꾼의 그 폼을 잔뜩 잡은 비장해 보이려는 설명은 모두에게 비웃음거리였다. 그렇지만 다리 난간 위에서 걷는 그의 솜씨는 훌륭했다. 그는 줄타기 재주마저 부려가면서 여유롭게 3백미터, 4백미터, 5백미터 지점을 통과했다. 그렇지만 그 다음부터는 눈에 뜨이게 불안해지더니 결국 그도 9백미터를 겨우 넘어서는 추락하고 말았다.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 상금 따려고 목숨 걸고 사람들이 한강 다리의 난간 건너는 일의 전문가라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  줄타기꾼의 늙은 몸이 체력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병 때문에 5백미터 지점 쯤부터 어떤 발작이 일어 났거나, 관절이나 근육에 강한 통증이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아마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그게 농담이라고 생각하면서 낄낄대며 그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난간 위를 걷는 일에 누군가 도전할 때마다 이번에는 꼭 완주하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 났다. 누군가 꼭 이번에는 여유롭게 다리 난간 위를 모두 건너 가서, 상금을 건 그 사람에게 이제 내가 이겼고, 너는 드디어 졌다고 말하게 되기를 빌었다. 다리 난간 위에 오르기 전에 경건한 마음으로 들르는 다리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있는 당산 나무 같은 곳이 유명해지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다리에 오르는 도전을 하기 전에 천천히 발을 씻으며 마음을 다지는 것을 방송 화면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그럴 수록 다리 난간 위를 걷는 도전 자체를 그만두자고 하는 사람들도 더 늘어났다.


“난간 위를 건너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그게 절대 상금을 건 그 사람을 이기는 게 아닙니다. 그만큼 돈이 많은 사람인데 그깟 돈 몇푼 잃었다고 눈 하나 깜짝하겠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그돈 꼴랑 벌었다고 인생의 큰 일을 해낸것처럼 감격하고 기뻐하는 그 사람을 우습게 여길 뿐입니다. 다리를 건너는데 성공한 사람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일이라고 사람들이 요란을 떨면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는 것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 상금 건 사람은 즐거워할 거란 말입니다. 그 사람은 상금을 내는 대신 그 꼴을 보고 정말로 세상 다 자기 손바닥 안에 있다고 생각하며 웃을 거란 말입니다.”


상금을 건 사람을 추적하고, 그 사람을 자기가 “처단”하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상금을 건 사람을 추적하는 일이 진행 되면서, 그 사람이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실제로 다리 위 난간을 건너다가 떨어진 사람들의 유가족들에게 상금은 꼬박꼬박 들어 왔으니, 상금을 주는 누군가가 있는 것은 사실일 터였다. 그렇지만 상금을 걸고 이 이상한 내기를 계속 유지하는 어떤 뒤틀린 심사의 더러운 노인네 같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경찰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었지만, 떠도는 이야기로는 상금을 건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상금을 건 것은 한 명의 사람처럼 위장하고 있는 어떤 단체라고 했다. 그 단체에 가입해서 상금이 될 밑천을 내고 다리 위 난간을 건너는 사람을 지켜 보고 싶어 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 두 명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재력은 어떤 갑부 보다도 강했다. 누가 그 단체에 가입했는지 알려진 것은 없었다. 미치광이 같은 부자 몇 명일 거라고 추측하기도 했지만, 세상 곳곳에 퍼져 있는 백명, 이백명, 혹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깟 미친 짓 목숨 걸고 해내서 상금 따봐야 부질 없다고 만류하는 목소리도 컸고, 그 못지 않게 다음 도전자를 보고 싶어 하는 욕망도 컸던 날 아침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었다. 한강 물은 다시 녹았다. 다리로 오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 나고 있던 날이었다.


저녁이 가까워 오던 시간이었다. 지는 햇살이 바다로 흘러 가는 강에 비치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끝없이 넓게 펼쳐져 있을 것임이 분명한 바다에서부터 햇살은 붉게 녹아들어 강물을 따라 번쩍이고 있었다. 굽이치는 강물은 서쪽의 먼 평야에서 건물과 자동차 도로로 휘감긴 시내로 이어지며 퍼렇게 넘실 거렸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다리 난간 위로 한 사람이 올라섰다. 그는 어린 사람이었다. 갓 열아홉, 스무살쯤 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훨씬 더 어려 보이기도 했다. 열네다섯 정도, 초등학생 같이 정말 아이 같아 보일 때도 했다. 그 얼굴 표정은 아기처럼 보였다. 작은 맨발로 아직은 차가운 난간 위에 발을 디뎠고, 두 팔을 좌우로 펴고 걸음을 딛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겁에 질린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굳이 여유를 과시하려고 웃고 있는 얼굴도 아니었다. 차분해 보였지만 표정은 진지했다. 바람이 몰아칠 때 얼굴을 잠깐씩 바람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눈을 깜빡이는 것 뿐, 말을 하지도 않았고 다른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는 차분히 꾸준히 앞으로 걸어 갔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걸어 가는 속도나 동작에 특이해 보이는 점도 없었다. 발을 놓는 각도가 항상 일정하고 차분했다는 정도가 보통 사람과는 달라 보였다. 얼마전부터 특이한 도전자들은 방송국 취재진이나 응원단을 몇 십명씩이나 몰고 나타나곤 했기 때문에, 그가 난간 위를 걷기 시작할 때 특별히 눈여겨 보는 사람은 없었다. 몇 발자국이나 걷고 떨어질까, 해산물 코너에서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는 해산물 구경이나 하듯이 보는 시선이 몇 있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해서 걸어 갔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주 느린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고 그 주목이 더해갈 동안, 그는 100미터 지점과 200미터 지점을 지나갔다. 그의 태도와 표정은 처음 걷기 시작할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혹시, 혹시. 기대하는 사람들은 늘어 났다. 400미터 지점을 지났을 때, 그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600미터 쯤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아내려는 사람들은 바빠졌다.


그가 1킬로미터 지점을 지나자 놀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사람들은 들뜨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상금을 모두 따는 사람이 탄생할 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그 상금 따 봐야 그건 전혀 승리가 아니라고 비판하던 사람들조차, 그의 완주에 기대를 품는 자기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 다리 난간의 끝트머리가 방금 부서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냥 낡아서 무너진 것 같다는데, 다리 난간의 마지막 8,9미터 정도가 파손되어 내려 앉아 버렸다는 것이었다. 상금의 조건은 100미터를 더 건널 때 마다 상금이 두 배가 되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원래의 거리를 다 건너지 못하면 상금을 절반 밖에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안타까워 했고, 어떤 사람들은 화를 냈다. 정체 불명의 사람들이 나타나 일부러 다리 난간 끝트머리를 부수고 도망친 것이라는 말도 돌았다. 이 사람이 드디어 다리를 다 건너게 될 것 같으니까, 상금을 아까워한 그 악당이 몰래 다리 난간 끝을 부수어 일부러 길이를 짧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믿을만한 증거는 없었다. 그렇지만 안타까움만큼 다리의 난간 위에 있는 그를 바라 보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그는 마침내 지금까지 가장 많이 건너간 사람의 기록을 깨고, 그 누구도 걸어 본 적이 없는 곳을 걷기 시작했다. 뾰족한 다리 난간의 위태로운 모양 때문에 그의 발바닥에는 선명한 자국이 생기고 상처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그의 걸음은 변화가 없었다. 그는 그대로 걷고 있었다. 무너진 다리 난간의 끝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리로 모여 들어 그를 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가 다리를 건너는 것에 방해가 될까봐 대부분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성격 특이한 인간들 중에는 갑자기 욕을 하거나 엉뚱한 구호를 외치며 소리 지르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그런 갑작스러운 방해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난간의 끝에 거의 도착하고, 무너진 난간을 보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상금을 다 내어 주어야 한다며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제 실제로 이긴 것이나 다름 없으니 그만 내려와서 상금의 반이라도 받으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박수를 치기도 했고, 감격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난간 끝을 얼마 앞두고 멈추어 섰다. 어두워지는 저녁, 거무스름해지는 강변의 건물들이 하나 하나 똑똑 새롭게 무엇이 태어 나듯이 불빛을 켜 올리는데, 그는 가만히 서서 기다리기만 했다. 밤이 다가 오면서 조금씩 더 바람이 부는 것이 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가 기다리는 동안, 한 교통경찰이 나타났다. 그는 사람들을 물러 나게 하더니, 주변에 말했다.


“늦어서 죄송하고요. 응급 보수 공사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교통경찰과 시 공무원 몇이 모여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가지 장비와 물자를 실은 공사 업체 회사 사람들도 나타났다.


“위험하니까요, 원래 이렇게 조치 하게 되어 있거든요.”


귀찮게 모여 드는 기자들에게 설명을 마친 공무원과 회사 사람들은 강철 케이블과 플라스틱 구조물로 난간이 무너진 자리에 임시로 난간 역할을 하는 줄을 치는 작업을 시작했다.


“저것도 난간이다.”
“저것도 난간이다!”


누군가 말하기 시작했다. 무너진 난간 위에 임시로 만든 강철 케이블 난간 또한 이 다리의 난간이므로 그 위를 건너가면 다리 위 난간을 걸어 간 것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한 시청 공무원이 법규와 예시를 뒤졌다. 11년 전에 다리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에서 보험금을 지급할 때, 다리 난간에 들이 받으면 보험금을 더 주는 특약이 있었는데 그때 임시로 설치한 안전 케이블에 부딛힌 것도 난간에 부딛힌 것으로 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멀리서 보면 대머리라는 사실만이 눈에 뜨이는 한 공무원이 나타났다. 그 공무원은 다리에 모여 있던 그 많은 사람들에게, 강철 케이블로 설치한 임시 난간도 시에서 지정하고 시민들이 난간으로 인식하면 다리 난간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규정을 읽어 주었다. 그 말을 듣자, 다리 난간 위에 서 있던 그는 거기에 모여 있던 교통 경찰과 시청 공무원들과 공사 업자들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공사 업자 하나의 표정이 바뀌었다. 웃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공사 업자가 대답했다. 그들은 곧 강철 케이블로 난간을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그 난간을 계속해서 이어 붙여 만들었다.  강철 케이블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공사 업자가 가져온 자재를 다 사용할 무렵, 벌써 다른 공사 업자들이 도착해서 난간을 이어 붙여 더 길게 이어 나가고 있었다.


난간 위를 걷던 사람은 이내 강철 케이블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은 그 위에서도 침착했다. 그렇지만 그 앞에 펼쳐진 강철 케이블 난간은 훨씬 더 멀리 이어지고 있었다. 그가 걷는 동안에도 난간은 계속 연장되고 있었다. 백미터, 또 백미터를 걸어도 남은 난간은 줄어 들지 않고 있었다.


그날 저녁, 그곳은 한강에서 가장 긴 다리로 길어져 몇천미터로 연장 되었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그 난간을 다 건너서 내려올 무렵, 시청과 계약한 모든 공사 업체들이 다리 위로 몰려 들었다. “정기 보수 공사”를 한다면서 사람들은 삽시간에 난간을 고치기 시작했다. 같이 모여서 얼마간 일을 하자, 이 다리의 난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점차 모습이 변해갔다. 다리 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공사를 도왔다. 밤이 깊어지면서 다리의 난간은 이 모든 바보짓들보다도 더 바보스러워 보일 만큼 어처구니 없이 두터워 졌고 넓적하게 고쳐졌다. 세상 어느 다리의 난간들 보다도 굵어져 버린 난간은, 속이 답답한 누군가 그 위에 올라가 마음껏 후련히 달려도 될만큼 넓어 보였다.


그리고 그날 밤, 수천명,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어 그 난간 위로 올라가 걸으며 다같이 함께 강을 건넜다.


그 행렬을 구경하느라 강변의 불빛은 밤새도록 꺼지지 않았고, 달과 별의 빛이 다할 때까지 난간 위를 걷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들은 밤새 마음 놓고 줄이어 걸어 갔다. 혹시 내가 너무 들떠서 까불거리며 다리를 움직이느라 설핏 미끄러져 넘어지려 할 때에도, 앞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었다.


- 2015년, 역삼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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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No Profile
    약사 15.03.08 01:45 댓글

    아, 재밌고, 감동적이네요.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은 이런 날에 훈훈한 엔딩 참 좋습니다...

    추측하기에 돈을 건 사람은 떠도는 이야기대로 그런 광경을 지켜보고 싶어 하는 졸부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 카이지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던가요. 부자들이 자신의 안전함과 우월함을 즐기기 위해서 참가자들에게 목숨 걸고 외다리를 건너게 하는 거요.


    결국 건넌 사람이 차분한 소년인 이유가 못내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줄타기 할아버지가 건너길 바랬는데요.(그게 클리셰겠죠) 초연함이 있어야한다는 동양학적인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아기처럼도 젊은이처럼도 보이는 특별한 존재(이를테면 신)가 모두를 구원한다는 종교적인 이야기일까요.(그러고보니 건넌 사람이 남자라는 언급은 없었네요. 이런 성편견적인...) 어떤 쪽이든 그 부분이 좀 아쉬워요. 결국 평범해보이지만 사람이 아닌듯 특별한 존재가 건넜다는 게.

    다음번에 누가 이 다리를 건넌다면 좀더 인간적인 사람이 인간적인 과정으로 건너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것처럼 때론 우연과, 때론 용기와 희망이, 때론 오히려 절망이, 그리고 결국은 초연함이 그 다리를 건너게 해준다면요.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약사 15.03.08 01:46 댓글

    그나저나 제목 참 좋네요. 농담이 아니라 좋습니다.

  • No Profile
    곽재식 15.03.08 16:37 댓글

    차분한 소년은 그냥 난간을 엄청나게 잘 건너는 어떤 사람1 로 썼습니다. 특별한 존재나 하늘이 내린 사람, 그런 쪽은 아니었는데 말씀하신 것 듣고 돌아 보니 좀 그래보여서 저도 아쉬운 생각 듭니다. 그렇습니다만, 어찌됐건 진정한 이야기의 결말은 다리 난간을 넓적하게 고쳐서 누구나 다 건너게 만들어 버리는 부분이므로 여기에 더 초점을 두었습니다.


    여러 좋은 말씀, 읽기 즐거운 감상, 감사합니다.

  • No Profile
    현재 15.03.31 10:10 댓글

    어쩐지 속이 시원해지는 결말이에요..

  • No Profile
    곽재식 15.03.31 19:25 댓글

    감사합니다.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다음번호의 이야기는 결말이 조금 찝찝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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