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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꼬리에는 뼈가 있어

2015.01.31 22:3601.31

꼬리에는 뼈가 있어






번호를 불린 그 애는 굳이 뜀틀 앞까지 바퀴를 굴리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깻짓을 보고는 체육도 어깨를 으쓱했다. 그 애는 휠체어 오른쪽에 달린 컨트롤러를 움직여서 다시 운동장 구석으로 돌아갔다. 다음 번호가 불렸다.


“존나 힘들다. 점심시간에 개빡세게 뛰었는데 씨발 바로 체육이냐.”


“대신에 옷 안 갈아입어도 되잖아.”


눈을 흘기며 반장이 한 소리 했다.


“니들 땀 냄새 쩔어.”


나는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소리를 지르면서 반장의 얼굴 쪽으로 체육복을 걷어 올리자 혹시라도 체육복에 얼굴이 묻힐까봐 반장은 비명을 지르며 스탠드에서 일어나 여자애들 쪽으로 달려갔다.


“아, 구명훈 미친놈아!”


반장의 목소리를 들은 체육이 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구명훈? 구명훈 어디 갔어.”


“네에!”


“아까 너 번호 불렀을 땐 어디 갔어.”


“오줌 누러요.”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면 선생님한테 말을 하고 가야 될 거 아냐.”


“조오오오온나 마려웠어요. 말하다 쌀 거 같았어요.”


“빨리 뜀틀이나 뛰어, 임마.”


내가 어기적어기적 도움닫기를 하러 가는 동안 제 차례가 아닌 애들은 그냥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공이나 더 차면 딱 좋겠구만. 뜀틀이고 뒷구르기고 이 따위 걸 교과서에 왜 넣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운동할 애들은 다 잘 하고, 안 할 애들은 다 못 한다. 나는 쿵쿵쿵쿵, 뛰어서 가볍게 뜀틀을 뛰어넘었다.


“올. 명훈이 존나 멀리 뛰었어.”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돌아보자, 종석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나는 종석을 향해 허리를 흔드는 춤을 추어 보이고는(물론 그 사이에 지숙이가 구명훈 또 더러운 춤 춰 라고 소리를 치기는 했으나) 걸어가서 손바닥을 마주쳤다.


“당빠 아입니까.”


운동이라고는 다 못 하는 애들한테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나는 체육이 놀라고 풀어주자마자 공을 차기 시작했다. 운동을 못하는 그 애는 묵묵히 운동장 한 구석에 있었다. 아니 있었을 거다. 나는 그 애가 거기에 있건 말건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 애가 내 시야에 들어온 건 그 날 수업이 끝나고, 청소시간까지도 다 끝나고 나서였다. 내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멘 채 탕 소리가 나게 교실 문을 닫고 나서자, 이상하리만치 또렷한 목소리가 귓전에 꽂혔다.


“구명훈.”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멍하니 그 애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이예린이었다.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너 운동 잘 하지?”


“……어.”


하던 버릇대로 ‘너보다는’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아 넘겼다.


“나 수행평가 좀 도와줘.”


“뭐?”


“체육, 체육 수행평가 연습하는 것 좀 도와달라고.”


이번 체육 수행평가는 분명히 오늘 한 뜀틀과 턱걸이였다.


“너는 안 해도 되잖아.”


이예린은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가느다란 갈색 머리카락이 사르륵 어깨로 흘러내렸다.


“뜀틀은 못 하니까 그렇다고 쳐도, 턱걸이는 할 수 있을 거 아니야. 연습하면. 옷도 다 갈아입었어.”


지금 자세히 보니 체육복 차림이었다. 체육 끝나고 분명 교복으로 갈아입혀줬을 텐데. 나는 고개를 정면으로 들었다. 이예린의 인간형 활동보조 로봇이 휠체어 위에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서 있었다.


이예린이 왕따라는 건 너무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우리 반 애들이 마치 장애가 있는 애를 괴롭히는 못된 아이들 같은데, 그런 건 결코 아니다. 이예린이 왕따를 당하는 건 장애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성격이 이상하기 때문이다. 정정해야겠다. 이상하다고 말을 한 것도 내가 이예린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말을 함부로 못 하기 때문이다. 이예린은 성격이 이상한 게 아니라 ‘못됐다’.


과학 시간에 물을 전기분해 할 때도, 미술 시간에 물감을 불어 그림을 만드는 공동작업을 할 때도, 조원이 있으면 이예린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애들이 저렇게 굴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예린이 다리가 불편하니까 그렇겠거니, 정신없이 움직이면서 이예린을 보조했다. 분명히 팔까지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도, 이예린은 묵묵히 돌아다니는 애들을 보고 있었다. 심지어 물감을 불 때는 옆에 있던 여자애한테 이쪽도 좀 불어보라는 둥, 담배 피우느냐, 폐활량이 왜 그 모양이냐, 그것밖에 못 부느냐 어처구니가 없는 헛소리를 해댔다.


평소 수업 시간에는 애들이 한참 필기를 하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는 활동보조 로봇한테 녹음을 시켜서 죄다 프린트해서 받는다. 조용히 입력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팔은 멀쩡하니 다른 애들처럼 필기를 할 수도 있을텐데, 굳이 노골적으로 입을 열어서 로봇을 부른다. 이름이 뭐였더라. 플라…… 뭐였는데. 어쨌든 또박또박 로봇을 불러서, 녹음해, 인쇄해, 하고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인 채 뚱한 표정으로 교단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것이다. 멀쩡한 손가락으로 딱딱딱 책상을 두드려가면서.


물론 항상 아무 것도 안 하는 건 아니다. 이예린이 해야 할 일 대부분을 저 활동보조 로봇이 대신하고 있지만, 가끔 이예린이 직접 휠체어를 움직여서 앞으로 나갈 때도 있다. 오늘 체육시간처럼 약한 척을 반드시 해야 할 때면 어김없이 휠체어를 굳이 끌고 앞으로 나가서 ‘네가 어디 감히 나를 불러서 일을 시키려고 하느냐’는 눈으로 선생님들을 쳐다보는 것이다.


이 수많은 사건들에도 어쨌든 한 명씩 이예린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은 있었는데(그 놈의 다리 때문이겠지만) 아무도 이예린에게 말을 걸지 않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얼굴에 피부트러블이 유난히 심한 윤정이가 이예린의 짝이 되었을 때부터였다.


“너 얼굴 되게 더러워보여. 좀 떨어져 앉아.”


물론 워낙에 마음이 약한 윤정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설상가상으로 3학년 윤정이 오빠가 내려와서 이예린에게 삿대질까지 했지만 이예린은 약간 얼굴을 찡그려보이고는 곧장 활동보조 로봇과 함께 하교해 버렸다. 윤정이 오빠는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감히 누가 누구한테 더럽다는 거야, 이 방사능 년아!”


이예린은 다음 날 바로 인권위원회에 피폭 피해자 차별 행위로 윤정이 오빠를 진정했고, 윤정이 오빠는 한 학기 정학이라는 꽤 중징계를 받았다.


대충 둘러대고 도망치려다가 윤정이 오빠에 생각이 닿은 순간, 나는 다 마시고 나서 우유의 유통기한이 3개월 넘게 지난 걸 확인한 기분이 들었다. 망했네, 망했어. 혼자 알아서 하라고 하고 이 자리를 도망치면 이 미친년은 내가 엄청나게 심각하게 자신을 배제한 것 마냥 소설을 써서 인권위원회에 제출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정학이건 뭐건 받아서 곤란을 겪겠지.


“그래서 나보고 뭘 도와달라는 건데.”


“턱걸이 하는 요령같은 게 있지 않아?”


“그냥 하면 되는 거지 그걸 뭐…….”


“한 개도 못 한단 말이야, 나는.”


이예린은 휠체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자, 운동장.”


집에 가서 간만에 게임을 하려던 탁월한 계획이 이예린의 휠체어 바퀴소리에 매달려서 멀어져갔다.


철봉 앞에 서서, 나는 무릎을 굽혔다가 몸을 튕겨 올리며 제일 높은 철봉에 덥썩 매달렸다. 그리고 팔에 힘을 줘서 몸을 위로 끌어 올렸다.


“이렇게.”


손을 놓고 툭 철봉에서 떨어지는 나를 멍하니 보고 있다가, 이예린이 철봉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이렇게라니. 난 너처럼 점프를 못 하잖아.”


이렇게라고 한다고 점프하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멍청이인지 나한테 괜히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려고 자기가 점프를 못한다고 강조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누가 뛰랬냐? 팔이 닿기만 하면 됨. 턱걸이는 점프하는 것까지 턱걸이가 아니라 턱을 걸어서 몸을 지탱하기만 하면 된다고.”


“그럼 어떡해?”


“아 시발, 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물어 봐. 너 일부러 그러는 거냐?”


이예린은 입을 다물고는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씨발.


“너 여기에서 팔 닿는 철봉 없어? 설마 저건 닿을 거 아냐.”


내 윗배 정도에 걸리는 철봉이었다. 이예린은 휠체어를 끌고 철봉까지 가더니 손을 뻗었다. 어정쩡하게 머리 위, 딱 턱걸이하기 좋은 위치에 철봉이 잡혔다. 시비도 가지가지로 거는 애였다. 운동 잘 하는 애라면 나 말고도 많은데 왜 하필 나한테 와서 이러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 그렇게 잡고.”


나는 이예린의 바로 옆에 있는 철봉을 잡고 다시 매달렸다.


“이렇게 올라가라고.”


이예린은 양손으로 철봉을 잡았지만 몸을 끌어당기기는 커녕 멍하니 철봉만 쥐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팔에 힘을 줘서 몸을 끌어 당겨야 할 거 아니야. 이렇게!”


이예린의 팔이 굽혀지는가 싶더니만 순간 휠체어 바퀴가 뒤로 굴러가며 이예린의 몸이 풀썩 모래밭 위로 떨어졌다. 휠체어가 굴러가는 동시에 팔에 힘이 빠진 모양이었다. 이예린의 활동보조 로봇이 이예린의 몸통을 잡고 끌어 당겼다.


작고 가느다란 이예린의 어깨가 끌려 올라오는 동안 나는 매우 생소한 광경에 넋을 놓았다.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예린의 다리는 항상 가려져 있어서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걷지를 못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슬개골이 없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슬개골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예린의 무릎은 사람의 무릎이 꺾여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양쪽 무릎을 반대로 접은 채 보조 로봇에게 들려 있는 이예린의 다리는 바람에 펄럭거리는 천 같기도 했고 관절이 망가진 인형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제일 비슷한 건, 저건 마치……


“꼬리자루야.”


“어?”


생각을 읽히기라도 한 것 같아 나는 소리를 지르듯이 대답했다.


“뭘 그렇게 신기하게 보고 있어. 너 내 다리 왜 이런지 몰라?”


실수했다. 너무 빤하게 본 모양이었다. 이래서야 정말로 피폭피해자를 정신적으로 가해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괴롭히려는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상대는 이예린이고, 나는 불안하게 머뭇거렸다.


“미안, 나는 저…… 내가 그걸 뭐라고 하려고 한 건 절대로 아니고…… 미안한데…….”


“무슨 소리야. 나 인어잖아.”


네?


“꼬리자루라고. 너 인어 몰라?”


인어라는 단어를 모를 리가 있습니까. 어류의 꼬리가 달려있고 인간의 상반신을 하고 있는 그거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가슴에는 조개가 달려 있고 긴 머리카락과 아름다운 목소리……가 내 눈 앞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번에는 또 무슨 헛소린가.


“진짜 인어를 말하는 거야?”


“그럼 가짜 인어를 말할까.”


다리가 아프다보면 별 헛소리를 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내 다리가 이렇다는 걸 납득할 수 없어서 인어공주 같은 동화를 보면서 다리가 이렇지 않았으면 목소리를 잃었을 거야, 같은 식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고.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내가 넌 인어가 아니라 방사능 피폭을 당한 인간이라고 괜히 떠들었다가 이 아이의 망상병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정학을 당할지 어떻게 알 일이란 말인가. 체육 턱걸이 수행평가까지는 기껏해야 이 주 남짓 남아 있었다. 이 주만 어떻게 잘 버티면 그냥 이예린 같은 건 신경도 안 쓰고 살 수 있다.


“다시 매달릴 수 있겠어?”


이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팔짱을 끼고 이예린의 뒤에 섰다. 이예린이 팔에 힘을 줬다가 한 번 더 바닥에 고꾸라지는 동안 체육복 아래로 빙어처럼 꺼떡거리는 종아리를 보면서, 나는 내년에는 얘랑 제발 같은 반이 안 되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자 스타워즈의 C3P0를 닮은 활동보조 로봇의 텅 빈 동공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가지가지로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가게에 잠깐 들렀다. 엄마가 꼼장어를 한 마리 꺼내서 도마에 메치고 있었다. 꼼장어가 그야말로 화려하게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나는 너무 놀라서 바닥에 거의 넘어질 뻔 했다.


“야가 와 이래 놀라노. 꼼장어 처음 보나.”


“아니 사람이 들어왔는데 생선을 치고 있으면 어쩌라고. 당연히 놀라지.”


“아이고 미칬다. 꼼장어집 아새끼가 생선을 보고 놀라가지고 이 험한 세상 우얘 사노. 심장마비로 뒤져뿔겠네.”


“나 오늘 진짜 이상한 생선 봤단 말이야.”


“뭔데.”


“아, 그런 게 있어.”


“학교에서 오늘은 와 이래 늦게 오노?”


“아, 뭐.”


이예린에 대해 굳이 설명하는 것도 귀찮아서 대충 손사래를 치고 발걸음을 돌렸다. 나가면서 내가 수조를 툭툭 치자, 엄마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니 그거 괜히 건들지 마라. 오늘 부산 쪽에서 막 올라온 기다.”


“하이고, ‘부산에서 꼼장어 받습니다~’ 써 붙여 놓고 팔제 아주.”


“조용히 몬 하나!”


엄마는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눈을 흘기더니만, 코를 찡그리며 늘 하던 소리를 또 했다.


“뱃속에 드르가믄 다 똑같다.”


나는 손을 휘휘 흔들며 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좀 늦어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오늘 하기로 한 게임은 해야 할 일이었다. 내일이 되어 버리면 오늘 게임할 시간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으니까.




이예린은 전날보다 조금 더 오래 버텼다. 턱걸이라기보다는 매달리기 수준이었고, 굳이 이 매달리기가 몇 초냐고 묻는다면 0초라고 해야겠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조금 더 오래 버텼다. 대체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예린은 곧잘 운동장에 엎어져가면서도 열심이었다. 지금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스탠드에 서서 수군대는 같은 반 놈들이었다.


메시지가 날아왔다.


[미침?]


[갑자기 도와달래서 어쩔 수 없었음 ㅡㅡ]


[헐, ㅇㅇㄹ이?]


[ㅇㅇ]


[너님 정학]


[도와줬으니까 괜찮음]


[턱걸이 시키다가 가슴 만져서 정학ㅋㅋㅋ]


[꺼져 씨발앜ㅋㅋㅋㅋ]


[운도 더럽게 없다 우리 축구 차고 있을 거임]


[ㅇㅇ 적당히 애 보내고 나도]


[ㅇㅇㄹ 로봇2랑 축구 안 참]


[꺼지라고]


듣다 듣다 이예린 로봇2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나. 빡이 쳐서 이예린 쪽을 바라보았다. 로봇이 다시 휠체어에 앉혀주자, 이예린은 손바닥을 펴서 쓱쓱 바지에 문질렀다. 이예린의 손바닥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늘 하루 안에 어차피 못 해.”


눈을 치켜뜨는 얼굴을 보자, 볼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매일 30분씩만 해. 괜히 손목 나가면 아무 것도 못하니까.”


“손목까지 나가면 볼만하겠네.”


이예린은 왼쪽 입꼬리만 올려서 코웃음을 쳤다. 저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는 대체 어디에 써 먹으면 좋은 것일까.


“그럼, 그만하라고?”


“어.”


“그래. 내일 해.”


벌써 애들은 축구를 시작했다. 이예린의 활동보조 로봇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인공지능이라는 건 때때로 섬뜩하다고 생각하며 얼떨결에 나도 로봇을 향해 목례를 했다. 몇십 미터를 채 가지 않아, 일 학년 여자애 하나가 학교 쪽으로 우다다 달려가다가 이예린의 휠체어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여자애는 멋쩍은 표정으로 명랑하게 죄송합니다 라고 외쳤다. 이예린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눈 멀었어?”


“아…… 죄송합니다.”


여학생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작아져 있었다.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언젠가 뭐 튀어나온 데 잘못 넘어지면 진짜로 멀겠다. 그치?”


와, 말하는 싸가지. 여자애는 뭐라 말을 더 잇지 못했고 이예린은 자기 갈 길을 다시 가기 시작했다. 나는 스탠드에 가방을 던져놓고(물론 정확한 위치에 안착) 바로 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우리 학년에서는 내가 제일 빨리 달린다. 지들끼리 먼저 시작한다고 엄포를 놓아봤자 내가 뛰기 시작하면 다들 백 배는 더 즐거워할 것이었다.


한참 운동장을 뛰고 나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엄마 가게 근처에서 익숙한 C3P0를 만났다. 이예린의 활동보조 로봇이었다.


“야, C3P0."


C3P0는 텅빈 동공으로 내 쪽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눈동자가 없는데도 ‘의아하다’는 표정이라는 건 충분히 읽혔다. 하여간 로봇 기술이란 신기할 따름이었다.


“너 이예린 활동보조 로봇 맞지?”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C3P0가 아닐텐데, C3P0라는 말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 영화 스타워즈에 대한 정보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바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검색했나?


“너 이름이 뭐였지.”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C3P0는 가슴팍의 화면에 글자를 띄웠다.


[플라운더flounder : 도다리 • 가자미]


“이름이 가자미라고?”


플라운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개인용 로봇을 가지고 있는 돈 많은 애들이나 활동보조 로봇을 가지고 있는 장애학생들을 본 적은 있지만, 로봇 이름을 도다리나 가자미라고 짓는 경우는 듣도 보도 못 했다. 차라리 안 지어주면 또 몰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이름을 지은 거지. 어찌되었든 늘 이 로봇은 불쌍하다고 생각해 온 터였다. 로봇이기는 하지만 인공지능도 있을 텐데, 이예린이 굳이 이 로봇한테만 말을 곱게 할 것도 같지 않았다. 로봇이니까 그런 걸 신경 안 쓸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렇고, 이예린은 어디 가고 혼자 돌아다녀?”


플라운더가 엄마 가게 쪽을 가리켰다. 멀찍이 보이는 엄마 가게에 낯익은 휠체어가 보였다. 굳이 말을 걸 필요는 없겠지. 모른 척 딴 길으로 걸어갈까 하다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눈이 마주치면 어, 정도만 하고 가게로 들어가면 되겠지. 분명 이예린과 나의 거리는 150m 정도 벌어져 있었다. 갑자기 귓전에 때려박는 듯한 노랫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분명 노래는 노랜데 노래 같지 않기도 하고,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이한 노래였다.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맑고 깨끗한 음성이었다. 나는 멍하니 가게 쪽으로 걸어갔다. 이예린은 수조 앞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멍한 상태로 나는 수조를 바라보았다. 수조 안의 꼼장어들은 수조 전면으로 찰싹 달라붙어서 마치 노래에 흡착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얘네가 어제 부산에서 왔다던 꼼장어들인지 아닌지 헷갈려서 혹시 방사능끼리는 서로 반응하나…… 하는 못된 생각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예린이 이렇게 노래를 하는 데도 아무도 여길 신경쓰지 않았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몇 분을 더 노래하던 이예린은 뚝, 노래를 멈췄고 물고기들은 다시 무작위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얘네도 다 자기들 곧 죽을 거 아니까, 너희 어머니 얘네 좀 예뻐하시면 안 되겠냐.”


“어…… 곧 잡을 물고기한테 정 줘도…… 거기다 얘네”


부산에서 올라온 애들인 거 같은데, 라고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그런데…… 어라?


“야, 너 여기가 우리 엄마 가겐 지 어떻게 알아?”


“얘네가 얘기해줘서.”


“뭐?”


이예린은 낮게 한숨을 쉬고 손을 팔락팔락 흔들었다.


“됐다. ……플라운더!”


플라운더가 성큼성큼 이예린 옆에 섰다. 이예린의 뒤로 플라운더가 고개를 돌려 슬그머니 인사를 했다. 나도 얼떨결에 손을 흔들었다. 가자미라니…… 색깔이 금색이라서 가자미인가. 여하튼 저 아이가 가까이 가면 안 될 애라는 건 매우 분명해 보였다. 얼른 체육 수행평가가 끝나야 할텐데.


엄마한테 눈도장을 찍고 집에 와서 인터넷 게시판을 한참 돌아다니다가 웹툰 게시판에서 어이없는 웹툰을 하나 보았다. 인간 왕자가 배를 타고 가다가 바위 위에 앉아 노래하고 있던 섹시한 인어를 만나 한 눈에 반한다. 인간 왕자는 좆이 불끈불끈 서서 인어에게 자기 짝이 되어달라고 하지만, 인어는 자신이 발정기라면서도 ‘우리는 종족이 달라서 안 돼요’ 라며 바다로 돌아가 버린다. 인간 왕자는 마녀를 찾아내 자신을 인어로 만들게 한다. 마녀가 뭔가 경고하려고 하지만, 신이 난 인간 왕자는 뭐 그런 건 들리지도 않는다. 인어에게 다시 청혼을 하고 짝짓기를 시작했는데, 시작하고 보니 인어는 생식기 부분이 생선이라 알을 낳고 그 위에 정액을 뿌리는 체외수정을 하게 되어 있어서 망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낄낄 소리를 내서 웃었다. 미친년, 알도 못 낳을 거면서.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았다. 불을 다 끄고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나는 주섬주섬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굳이 컴퓨터를 다시 켜서 야동을 보는 것도 귀찮았다. 대충 눈을 감고 최근 제일 꼴렸던 걸 떠올렸다. 텔레비전에 나오던 걸그룹이 엉덩이를 흔드는 춤을 추는 걸 생각하면서 천천히 손을 움직이다가, 작년 방송제에서 그 춤을 추던 3학년 선배 누나들을 생각하니 손놀림이 조금 더 빨라졌다. 쌀 것 같은 느낌에 왼손으로 머리맡을 더듬어 티슈곽을 집어 들었다. 사정 직전에 느닷없이 떠오른 건 이예린의 흐느적거리는 다리였다. 무릎이 반대로 꺾인 하얀 다리를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나는 티슈 위에 사정을 했다. 사정을 하고 나자 기가 막혔다. 쫙 빠진 연예인의 다리도 아니고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자애의 다리도 아니고, 웬, 이예린이란 말인가. 너덜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퍼덕거리는 것 같기도 한 그런 다리를 생각하면서 싸다니.


아니, 아니야. 이예린을 생각하면서 싼 게 아니다. 나는 연예인도 생각하고 다른 여자애들도 생각했다. 절대로 이예린을 생각한 게 아니다. 하지만 사정하는 순간에 느닷없이 이예린이 떠오른 건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나는 매우 화가 치밀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금딸’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씨발, 어떻게든 빨리 만나지를 말아야지. 나는 분노 때문에 오히려 잠이 안 와서 몇십 분을 더 이불 속에서 뒤척여야만 했다.


방과 후마다 이예린과 만나던 며칠이 더 지나고, 어느 날 이예린은 운동장으로 내려가던 도중에 불쑥 손을 내밀었다. 설마 지금 손을 잡자는 건 아니겠지. 여기에서 이예린 손이라도 잡았다가는 백만 년을 두고 놀림 받을 것이었다. 아니, 이예린이 손잡자고 청했다는 것만 들켜도 난 끝장이었다. 나는 서둘러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최대한 무심한 척 짜증을 내면서 내뱉었다.


“뭐, 어쩌라고.”


“손.”


“손 뭐?”


“보라고.”


“손이 왜.”


이예린의 손바닥은 작고 말랑말랑해 보였다. 엄지손가락 아래의 튀어나온 부분이 하얗고 통통해서, 꼭 막 구워낸 식빵 같았다. 이예린은 더 내 눈앞으로 손을 들이밀었다. 손…… 검지에서 새끼까지 손가락과 손바닥의 연결부위에 이상한 것들이 발견되었다. 다른 부분들이 하얗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언덕이라면, 마치 뾰족한 설산 같이 딱딱해 보이는 것들. 하얗게 색이 변해있고, 옹골차게 뾰족해진 굳은살들이었다. 양손 모두 마찬가지였다. 손바닥 위쪽의 굳은살들을 이예린은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요즘 나 안 떨어지지 않아?”


그러고 보니 분명 그랬다. 처음에는 웬만큼 버티다가도 결국 견디지 못하고 굴러 떨어지곤 했는데, 요즘의 이예린은 목 위로 몸을 끌어올리지는 못 하지만, 어떻게든 대롱대롱 철봉에 매달려 있곤 했던 것이다. 떨어지지도 않은 상태로 몇 번씩이고 몸을 끌어올려보려고 시도를 반복하곤 했다. 나는 그런 이예린의 옆에서 한두 번 ‘아, 이렇게. 이거 안 돼? 이렇게 하라고.’ 정도의 말을 했을 뿐, 그다지 성실하게 조언을 하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성실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다. 운동은 운동신경도 있지만 근성도 적당히 따라줘야 하는 것이었다. 더럽게 축구에 대한 센스가 없는 애도, 근성 있게 하다보면 심폐지구력이라도 느는 게 아니겠는가. 다리가 있었으면 생각보다 운동을 잘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다, 아, 이예린은 다리가 있지, 라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었다. 저 놈의 인어 소리에 세뇌라도 당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이예린은 며칠 간의 특훈에도 여전히 몸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기사 평소에 이예린의 운동량을 생각해 보면 필기도 안 하는 수준이 아닌가. 갑자기 근육을 단련시키려고 해도 될 리가 없었다. 손바닥의 굳은살이야 말랑말랑한 살을 자극하니까 쉽게 생긴다고 쳐도, 몸을 끌어올리는 것은 결국 근육이 아닌가. 나는 안간힘을 쓰는 이예린의 뒷모습을 훑어보다가 엉덩이에 눈이 머물고는 화가 치밀어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아, 진짜. 이예린 생각하면서 딸친 거 아니라고. 아무도 모르는 건 천만다행이었지만 어디에다가든 억울해서 항의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좆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안 되어서 좆같다고 한다지만, 이건 좀 심하게 좆같은 일이었다.


아무도 모른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여전히 나는 반쯤 놀림거리였다. 애들과 VR방(* )에 와서 한참 몹을 잡다가 한 명이 불쑥 말을 건넸다.


[구, 이예린이랑 사귐?]


가오 쩌는 새끼. 자기 원래 목소리톤보다 훨씬 낮춘 톤으로 설정해 둔 모양이었다. 저 새끼는 뭐 받기만 하면 방어구에만 처바르는 거 같았다. 키도 실제보다 크게 하고. 분명 운동능력도 더 좋게 설정했을 것이다. 게임 존나 재미없게 하는 새끼였다.


[미쳤냐, 씨발아.]


[존나 붙어다니더만.]


[그게 붙어다니는 거면 너랑 나는 샴쌍둥이다. 개새끼야.]


몹 하나를 더 잡고 나서 다들 힐을 거는 동안, 나는 그냥 앉아 있었다. 나는 굳이 신체 능력을 과장해서 캐릭터를 만드는 것보다 내 몸과 흡사한 캐릭터인 쪽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VR 속 전자 호수에 내 얼굴이 비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내 근육량과 비슷한 몸을 가지고 흉측한 몹들을 때려잡는 건 또 그 나름으로 상쾌한 점이 있다. 가끔 씹돼지들이 게임 캐릭터는 현실부정을 하듯 꾸미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언제나 초반의 바디스캐닝에서 크게 캐릭터를 바꾸지 않는 편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힐을 걸던 애들이 또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 새끼 오늘 나한테 반장 좋아한다고 함.]


[헐, 구도 반장 좋아하지 않음?]


[아니야, 미친놈아.]


[구 반장 안 좋아해? 나도 구 반장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놀리기가 좋아서 그냥 놀리는 거임.]


[존나 쎈 척하네.]


[아 진짜라고.]


[어쨌든 이예린은 너를 사랑하고 있겠지.]


[씨발아, 고글 벗고 현실 PK 당해볼래.]


그 사이에 여기저기 모여 앉은 녀석들은 관심 있는 여자애가 누군지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지숙이.]


[쑥?]


[어. 쑥.]


[쑥 예쁘지.]


[난 쬐끄만 앤 별로.]


[근데 쑥네 집 되게 힘들다 그러던데.]


[그런데도 명랑하잖아.]


지숙이를 좋아한다고 밝힌 종석은 VR에까지 연결될 만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녀석이 손에 든 도리깨 비스름한 무기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더럽게 안 어울려서 나는 폭소를 터뜨렸다.


[웃지 마, 이예린 남친.]


[아니라고!]


[그럼 누구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애 없어.]


[구라까지 마. 진짜 이예린이냐?]


[아, 쫌.]


진심으로 신경질을 낼 분위기를 보이자, 녀석들은 낄낄대며 말을 멈췄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몹을 향해 돌진했다.


점심시간, 여자애들끼리 모여서 교복에 새로 생기게 된 가디건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원래 우리 학교는 남자와 여자가 같은 니트 조끼를 와이셔츠 위에 입게 되어 있는데, 여자애들을 위해서 가디건을 이번에 새로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가디건 진짜 예쁘더라. 언제부터 살 수 있대?”


“예쁜 것도 예쁜 건데 긴 팔이잖아, 일단.”


“그치, 조끼 너무 추워!”


지숙이가 깔깔대며 말을 받았다.


“아, 쫌. 꽁짜로 주든가. 가디건 입고 싶어지잖아!”


“비싸대?”


“어…… 십 원이 아닌 이상 우리 엄마는 그런 것을 나에게 사 주지 않아.”


분명 웃기는 애매한 이야기인데, 워낙 익살스럽게 말하는 탓에 여자애들 몇 명이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교장이 나한테 거지니까 얼어 죽으라고 하는 거인 듯. 너네 잘 생각해라, 가디건 해 준다고 좋은 게 아냐. 분명 히터 덜 틀려고 할 걸.”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긴 팔이니까 전기 아낀다면서!”


“그렇지, 그리고 너희는 더 추워지고 나는 얼어죽겠지.”


“야, 야, 같이 입어 같이 입어.”


“뭘 같이 입어, 하나 사주시죠? 너네 어머님께 리페어 한 벌 사달라고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리고 날 주면 되지! 참 쉽죠?”


지숙이의 너스레에 결국 다른 여자애 하나가 지숙이 가디건까지 사기로 약속을 하는 순간, 그 뒤에 조용히 앉아 있던 이예린이 입을 열었다.


“너 동정 받는 거 되게 잘한다.”


순식간에 반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너 네가 지금 그러면서 인생 편하게 사는 거 같지?”


“……뭐?”


“사람은 다들 자기 주제를 알고 살아야 돼. 그 가디건 얻어 입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오히려 안 입는 데에 익숙해지는 쪽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엔 더 나을 걸.”


누군가가 너 무슨 말을, 까지 말했을 때 지숙이가 그 짧은 다리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걸어가서 이예린의 뺨을 때렸다. 플라운더도 막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플라운더가 예린의 어깨를 감쌌다.


“너희 집은 어차피 피해자 지원 받겠지. 나도 그런 거 있었으면 이렇게 안 살았어. 우리 같은 사람들 등골 뽑아서 살고 있는 주제에 막말하지 마.”


담임이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온 건 그 때였고, 다들 서둘러 자리로 돌아가는 가운데, 이예린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지숙이의 팔을 잡고 대답을 한 것도 그 때였다.


“어떻게 내가 지원받는 걸 그렇게 얘기해? 난 걷지도 못 해. 내가 이렇게 태어나서 지원을 받는 게 그렇게 억울하고 부당해 보여?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렇게 태어났겠어?”


지숙인은 하얗게 질려서 손목을 잡힌 채 담임 쪽을 돌아보고 이예린을 보길 반복했다.


“아니,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방금 그렇게 말했잖아. 내가 네 등골 뽑아서 살고 있다고.”


“저…….”


지숙이가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사실은 선생님도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잠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지숙과 이예린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숙이, 자리로 들어가서 앉아.”


지숙은 새빨개진 얼굴로 한 번 휘청거려 넘어질 뻔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앉았다. 그리고 선생님은 칠판에 ‘복지 福祉 walfare' 라는 글자를 크게 써 넣었다.


“조금 뒤에 나오는 진도긴 하지만, 오늘은 복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복지 개념에 대해선 들어본 적 있지? 원래 복지는 행복한 삶이라는 뜻이야.”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은 옛날 사람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신에게 잘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멸시하고 피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인류의 중요한 진보라느니, 복지는 우리 모두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고 방사능 피해자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느니, 방사능 피해자들은 자기 잘못으로 피해를 입게 된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므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해댔다. 아마 지숙이도 그걸 몰라서 저렇게 말한 것은 아닐 거라고, 나는 창밖으로 철봉을 보면서 생각했다. 선생님이 말하는 사회적 안전망은 이예린에게만 있고 지숙이한테는 없으니까.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방사능 피해자를 멸시하고 피하지. 작년이었나. 버스에 방사능 피해 청소년이 탔다가 모든 사람들이 승차를 거부했던 뉴스 기억나니? 결국 그 버스에는 방사능 피해 청소년 혼자만 타고 갔어야 했지.”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기 전 10분을 남겨두고 지숙이에게 말을 붙였다.


“지숙아, 장애가 있어서 지원금을 받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지원금을 받는 친구에게 ‘등골 뽑아 먹고 산다’고 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야. 부끄러워하고 다신 그런 말을 하지 않도록 하렴. 잘못된 일은 다시 잘못되지 않게 잘 하면 돼.”


수업이 끝나자 지숙이는 자리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여느 때처럼 이예린은 교실 뒤쪽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날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이예린의 휠체어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스쳐지나갔다. 플라운더에게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이예린의 시선과 플라운더의 시선이 함께 내 등으로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내 뒤쪽에서 여자애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구명훈, 멋있다!”


“반하겠다!”


저 환호에 대답하고 싶지는 또 않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쭉 걸어나갔다. 계단을 내려가기 직전, 잠깐 고개를 돌리자 여자애들은 반대쪽 계단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이예린은 교실 뒤에 미동도 없이 그냥 앉아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복도에 가득했다. 햇빛을 반사하는 새하얀 체육복 때문인지 이예린의 어깨는 유난히 더 가늘어보였다. 철봉 같은 데는 매달리지도 못할 것처럼.


애들과 VR방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길, 가게 앞에 익숙한 휠체어와 로봇이 있었다. 나는 걸음을 빨리 하기 시작했지만, 날 따라와서 붙잡은 건 이예린의 느려터진 휠체어가 아니라 플라운더였다.


이예린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담임한테 내가 먼저 못되게 굴었다고 말할 거야?”


이 와중에 그게 걱정되냐.


“아니.”


나는 플라운더의 손을 뿌리치고 몇 걸음 더 걷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너 쑥한테 한 말 진심이야?”


이예린은 나를 보지 않았다. 내리깐 갈색의 긴 속눈썹이 약간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예린은 웃는 것처럼 우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진심이야. 사람은 자기 주제를 알고 살아야 돼. 나도 마찬가지고.”


그때 곰 같은 덩치의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예린아!”


이예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가게 앞에 물을 버리러 나온 엄마를 보고 남자는 반색했다.


“아이고,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장사는 잘 되시죠?”


“예, 마 그럭저럭은…….”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네…….”


남자는 이예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린아, 여기 아버지가 자주 가는 식당이야. 다음에 우리 같이 와서 꼼장어 먹자.”


“나 꼼장어 싫어.”


남자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엄마 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어린애들은 원.”


이예린은 휠체어를 움직였고, 남자는 이예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예린은 어깨를 돌려 아버지의 손을 뿌리쳤고, 아버지는 이번엔 휠체어 등받이에 손을 얹었다. 놀라울 정도로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 뭐라고 한참 수다를 떨면서(정확히는 아버지 혼자 주절거리면서) 부녀와 로봇 하나가 떠나간 자리를 멍하니 보고 있으려니 엄마가 쫓아나왔다.


“이예린 아버지도 기장에서 왔대?”


“기장 봉쇄되었을 때 천신만고로 빠져나왔다 안 카나. 마누라가 그때 죽아삐고 지금은 무슨 피해자 협의회라카는 걸 맹글었다 카든데. 내는 볼 때마다 참 기분이 묘하드라. 거 피해자 협의회라카는 사람들이랑 자주자주 온다. 기장 사람들은 꼼장어를 먹어야 된다 카믄서.”


“그래…….”


엄마는 내 등을 갑자기 후려쳤다.


“야야, 점마 저 딸내미 같은데. 쟈랑 친하나?”


“어? 아, 별로…….”


“아야, 저런 아랑 놀지 마라. 니 전뻔에 여 서서 떠들었다 카는 아도 혹시 쟈가?”


“저번에?”


아. 물고기들이랑 떠든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을 때.


“쟈도 휠체아 타네. 다리가 없나?”


엄마는 이예린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 앤지, 얼마나 못된 앤지, 오늘 지숙이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이예린과 놀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자꾸 얼굴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입술 끝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라서 가라앉지를 않고 있었다.


“그러지 마.”


“어?”


“그러지 말라고.”


“뭐라카노. 아야, 아가 저래 태어났는데 아 아버지나 어머니나 정신이 온전하겠나. 저래가꼬는 가정이 온전치도 못한다 카이.”


“나는. 나도 아빠 없잖아.”


“늬 아빠는 죽은 거고.”


“엄마는 이예린 네 엄마에 대해선 뭘 아는데? 이예린에 대해선 뭘 알고. 이예린이 무릎뼈 없이 태어난 게 이예린 잘못이야? 엄마는 아들한테 그런 얘기하면서 부끄럽지도 않아?”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걸 스스로 느끼고는 있었지만 도저히 말이 쏟아져 나오는 게 멈춰지지 않는다.


“엄마는 기장에서 꼼장어 공수해 오잖아.”


엄마의 표정이 핼쓱해지는 게 보였다. 가게 안에 있던 손님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이제 그만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기장 산 꼼장어는 사람들한테 팔아도 되고, 기장 산 사람이랑은 얘기도 하면 안 돼? 방사능이 옮아? 먹는 것도 괜찮은데 뭐가 그렇게 큰 문젠데? 내가 쟤랑 친하게 지내면 뭐가 그렇게 나쁜데? 엄마는 그따위로 살면서 나한테 대체 뭘 가르치는 거야!”


엄마가 손에서 툭, 뜰채를 떨어뜨렸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그리고 쟤는 그런 거 아니야. 인어래.”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엄마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휙 집을 향해 뛰어갔다. 세상에, 제가 지금 무슨 교과서 같은 소리를 한 거죠. 얼굴이 자꾸 홧홧해지는 게 열 받은 게 가라앉지 않아서인지 쪽팔려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거기다가 이예린이 욕 먹지 않게 하려고 인어라는 헛소리까지 했다니. 부끄러워서 지구 맨틀 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오늘 이예린이 지숙이한테 한 짓을 생각했어야 했다.


심지어 사람은 자기 주제를 알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쁜 년이었다.


[구, 이예린 쌩깠다며.]


[어. 미친년이라.]


[걔가 그냥 미친년이냐, 썅년이지.]


[그냥 썅년이 아니고 미친년이야. 지가 인어래.]


[뭐?]


[내가 걔랑 턱걸이 했잖냐. 떨어지면서 다리가 반대로 꺾이길래 개식겁하면서 봤더니 지가 인어라 그러더라고.]


[헐.]


[미친년이네.]


[내 말이.]


[와, 썅년인 줄은 알았는데 그 정도로 미쳤냐.]


[아프다보니까 애가 저렇게라도 생각하고 살아야했나보다 싶어서 불쌍했는데, 오늘 쑥한테 대하는 거 보니까 그냥 미친데다가 성격이 개같더라.]


[와, 씨발.]


한참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종석이가 고개를 위로 쳐들다가 투구가 떨어졌다. 그야말로 박장대소였다.


[인어래 인어!]


[이 게임에 인어 종족 있지 않냐. 거기 있나 한 번 찾아볼까.]


[병신아, 인어 종족 다리 근육 있어야 꼬리 움직이거든. 꼬리에는 뼈가 없냐?]


[아…….]


내가 지옥문을 열었다는 건 게임을 끄고 잠이 든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아침부터 남자애들이 이예린 주변에 모여 서 있었다.


“브라자 하냐고, 안 하냐고.”


“진짜 조개껍데기야? 좀 보자야.”


이예린의 얼굴은 보이질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다가 약간 발을 헛디뎌서 넘어질 뻔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마음이 허둥거렸다. 당연히 아무도 날 보고 있지 않았다. 반 아이들 누구도 무어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


“인어는 원래 노래 잘 하지 않냐. 노래나 한 번 불러주라.”


“야, 얘가 노래 부르면 너 미쳐서 물에 빠짐.”


“아이고, 물이 없네, 물이.”


이예린을 둘러싼 남자애들이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몇몇 여자애들이 말을 거들었다.


“물이 없어서 헤엄치는 걸 볼 수가 없네. 까비.”


“존나 막 펄떡펄떡 활어 돋는 거 아니야?”


웃음.


“야, 꼬리 좀 보자.”


“그때 넌 꼬리를 치며~”


유행가 노래 가사까지 튀어나왔다. 서 있는 아이들의 다리 사이로 필사적으로 다리를 가린 담요를 쥐고 있는 이예린의 작은 손이 보였다. 하얗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플라운더는 지숙의 어깨에 손을 얹고 황망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예린이 나지막하게 플라운더를 불렀다.


“플라운더, 지금 이거…….”


그 순간 내 뒤쪽에서 지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플라운더? 그거 디즈니 인어공주에 나오는 물고기 이름 아니야?”


“헐.”


“진짜 미쳤네?”


“Come in, Come in, My child. 왜 아무 말도 안 하냐? 벌써 목소리 없어짐?”


멍하니 이예린 쪽을 보다가 플라운더와 눈이 마주쳤다. 아마 이예린은 플라운더에게 주변 상황을 녹음시키려고 했을텐데. 플라운더는 날 보더니 순간 매우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입을 달싹였다. 나는 황급히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이예린은 2교시 수업이 끝나자 그대로 휑하니 집을 향해 가 버렸다. 플라운더는 내게 다가와서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이예린이 급하게 휠체어를 움직였고 내가 급하게 화장실에 들어가 버리자 중간에 서서 우왕좌왕 하더니 곧 이예린을 따라갔다. 나는 화장실 문 뒤에 숨어서 상황을 보다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화장실 문이 거세게 열리며 이마를 짓찧었다. 종석을 비롯한 남자애들이 낄낄거리며 화장실에 들어섰다.


“구, 이예린 도망다니냐?”


“이예린 말고 로봇.”


“플라운더?”


다시 한바탕 웃음이 휩쓸었다.


“너네 이예린이 교육부에 진정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야, 우리가 빙신으로 보이냐?”


“걱정하지 마. 쟤는 전학을 보내던가 학교를 관두게 하던가 해야 돼.”


분명 2교시가 끝나고 나갔던 이예린이 3교시 중간쯤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 창가에서 멍하니 이예린과 플라운더의 뒷모습을 보았다. 누가 혹시 이예린을 발견할까봐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서 칠판을 바라보았다. 5교시에는 반 모두가 이예린이 집에 가는 길에 진정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정서를 들고 담임이 올라와서 반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예린은 머리가 나쁘지 않은 애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예린은 반 아이들 전부를 진정한 모양이었다. 담임이 들고 온 진정서에는 반 아이들의 이름이 빽빽하게 출석번호순으로 하나하나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그런 거 아니예요.”


반장이 억울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예린이가 워낙에 우리랑 잘 어울리지를 못 하는 거 아시잖아요. 그런데 명훈이한테 인어공주를 좋아한다고 말했다길래, 남자애들이 친해지고 싶어서 장난 좀 친 거예요.”


종석이 일어나서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그냥 우르술라 흉내 좀 내고 그랬는데.”


순진한 웃음소리가 교실 안을 맴돌았다.


“명훈이?”


담임이 빼곡하게 쓰여진 이름들을 대충 손으로 짚어나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명훈이 이름은 없네.”


“전 아침에 자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담임은 약간 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여기는 너희가 예린이 다리를 가지고 인어니 뭐니 하면서 놀렸다고 되어 있어. 예린이가 오해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오해를 하도록 말한 너희 책임도 없는 건 아니야. 이번 건은 여기에서 내가 끊겠지만, 내일 예린이가 출석하면 다들 제대로 사과해야 된다. 그런 뜻 아니었다고, 똑바로 말해.”


아이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크게 예, 라고 외쳤다. 다음 날 학교에서 이예린은 모든 아이들의 달갑지 않은 사과를 직면했다.


“야, 미안해. 난 네가 너 인어라고 생각하는 줄 알고.”


“그니까. 인어라 그랬다길래.”


“나는 나름대로 인어로 대해줄라고 했던 거지.”


“미안하다, 그냥 못 걷는 건데. 그치?”


“야야, 미안미안.”


아이들은 이예린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치며 미안하다고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작고 가느다란 어깨가 미안하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크게 흔들렸다. 이예린을 치지도 않고 사과하지도 않은 채 똑바로 이예린을 노려보다가 자리에 앉는 지숙도 있었지만. 이예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이예린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나는 시간표를 보았다. 5교시 체육, 수행평가 날이었다.


이예린은 점심은 먹지도 않고 운동장에 나가 있었다. 나는 도저히 축구할 기분이 나지 않아 창문 턱에 앉아 멍하니 운동장을 보았다. 체육복을 깨끗이 갈아입은 이예린은 플라운더와 함께 철봉 아래에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철봉에 매달려서 몸을 일으키다가 미끄러지고, 또 몸을 끌어올리다가 미끄러졌다. 이마가 철봉에 닿을락말락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교실에서 쏟아져나오자 이예린은 황급히 철봉에서 한참 떨어진 운동장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나는 괜히 큰 소리로 웃었다.


아이들은 턱걸이를 하거나 못했다. 여자애들은 대부분 못했다. 위쪽에서 매달리기만 해도 잘 한 거라고, 체육선생은 여자애들을 격려했다.


이예린의 차례가 되자, 체육선생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이예린이 휠체어를 밀고 체육선생 쪽으로 가자, 체육선생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예린인 됐고.”


“할 건데요.”


“어?”


이예린은 휠체어를 돌려 철봉 아래로 가져갔다. 체육선생은 안 해도 되는데, 를 웅얼거리며 체크할 준비를 했다. 떠들던 애들이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이예린은 손을 뻗어 철봉을 잡고, 몸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하얀 팔뚝에 탱탱하게 힘이 들어갔다. 휠체어에서 엉덩이가 떨어졌고 팔이 접혔고 철봉이 이예린의 머리를 지나고 이마를 지나고 코를 지나서 입술 근처까지 올라갔다. 자그마한 아래턱에 근육이 가느다랗게 드러났다. 이를 악물고 있었다. 동그란 아랫입술을 지나는 순간, 얼결에 나는 내가 침 삼키는 소리를 너무 크게 들었고 훅 철봉 아래로 이예린이 미끄러졌다.


죽은 생선처럼 이예린의 다리가 반대로 꺾였다.


나는 숨을 훅 들이켰다.


“아쉽네. 잘 했어. 들어가.”


플라운더가 이예린을 일으켜세웠고, 모래 범벅이 된 이예린의 조그마한 엉덩이가 잠깐 보였다. 나는 이예린을 보지 않았던 척 했다. 체육시간이 끝나자, 이예린은 아무렇지 않게 교실로 돌아갔다. 내가 엉덩이를 터는 사이, 옆에서 낮은 금속성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신이 왜 그러는지 알아요. 그런데 알려줄 방법이 없네요.”


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인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그 속삭임을 남기고 플라운더는 서둘러 이예린을 따라갔다. 멍하니 이예린과 플라운더의 뒷모습을 보다가 뭐 하느냐는 반장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요즘 구명훈 이상해. 왜 이렇게 멍해?”


반장은 샐쭉한 표정으로 내 허리를 쿡 찔렀다.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집에 가는 길에 나는 꽤 거리를 두고 천천히 이예린을 따라갔다. 대체 내가 왜 따라 가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안 따라가기도 어려웠다. 분명 이예린은 몰라도 플라운더는 눈치를 채고 있을 것 같았다. 그나마 이예린이 우리 가게 쪽 길로 걷고 있으니 어색해 보이지는 않겠지, 따라간다는 거 알면 화를 내지 않을까.


한참을 그냥 걷던 이예린은 휠체어를 멈추고 180도로 빙글 돌렸다. 정면으로 날 보고 있었다.


“왜.”


나는 잠깐 아무 말도 못 하고 이예린의 보이지 않는 발끝을 바라보았다. 쟤는 아마 발도 작겠지.


“미안.”


“뭘.”


“중간에 턱걸이 안 도와준 거.”


이예린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지더니 한쪽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됐어. 전에도 말했잖아. 사람은 주제를 알아야 한다고.”


갑자기 가슴 안쪽이 울리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이예린은 다시 웃음기를 거둔 채 가던 길을 갔고, 플라운더가 날 마주보며 슬그머니 웃어보였다. 저 멍청한 로봇은 왜 웃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예린에게 못되게 대한 죄로 내가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게 기쁜 건가, 복수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집에 돌아와서는 도무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곧바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학교 운동장 철봉 아래에 있는 커다란 통로를 발견했다. 통로 안으로 미끄러져 내려가자 커다란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안에 있는 초콜릿을 집어먹었다. 그러자 플라운더와 예린이 나타났다. 플라운더는 금속성의 목소리로 저렇게 함부로 물건을 집어먹다니 정말 염치도 없네요, 라고 말했고 이예린은 쟤가 저런 거 지금까지 몰랐느냐고 반문했다. 이예린의 아버지가 나타나서 남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좋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다가 꿈에서 깼다.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서 토악질을 했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입을 헹구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 엄마가 집으로 들어왔다. 새벽 두시 삼십분이었다. 엄마는 많이 술에 취해 있었다.


“야, 구명훈.”


대답 없이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덥썩 내 옷깃을 붙잡았다. 나는 깜짝 놀라 엄마를 붙잡았다. 간신히 엉덩방아를 찧는 건 막을 수 있었다.


“뭔 술을 이렇게 마셨어. 들어가서 자.”


엄마는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서 혀가 꼬인 채 계속 주절거렸다.


“니 때문에 어 단골 손님이 어 다 떨어졌다 이 미친놈아. 내가 저 팔아서 니 무 살리는데 어 좋냐? 어? 좋아?”


나는 한숨을 쉬며 엄마 앞에 앉았다.


“알겠어. 미안해.”


“마, 니가 몰라서 카는데, 기장이 꼼장어가 맛있어…….”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엄마가 트림을 했다. 술 냄새가 역하게 끼쳤다.


“미안타. 내가 못되께 말했다. 그카믄 안 되는데. 니 말이 맞지. 가가 지 잘못으로 그래 된 것도 아이고, 그런데 내가 못되께 말했지. 엄마가 부끄럽지. 잘못한 거지.”


엄마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쿵 머리를 찧고 쓰러졌다. 나는 엄마 머리를 끌어다가 무릎베개를 해 주었다.


“아니야, 엄마. 엄마 말이 맞아. 걔랑 노는 거 별로 안 좋은 거 같아. 걔 되게 못된 애야.”


엄마가 고개를 들어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가에 주름이 선명했다.


“니 뭐라카노. 아야, 엄마가 태 나기는 대구에서 났어도 어릴 때 기장에서 자랐어. 기장 아들이 나쁘지가 않아…… 아픈 거랑 못된 거는 다른기라…….”


엄마는 숨을 고르게 쉬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늘게 코를 골았다. 나는 엄마의 머리 속에 있는 새치 몇 가닥을 보다가 모로 누운 엄마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엄마의 가슴은 퉁퉁하게 부어서 가슴골이 선명하게 들여다보였다. 이예린은 작고 가늘어서 가슴이랄 것도 없겠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이고, 정신 나간 나놈아.


수학여행 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왔다. 지숙은 도시락을 싸 왔다고 자랑을 하며 설레어서 교실에서부터 버스까지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종석은 그런 지숙이 귀여워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으로 흐뭇하게 지숙만 보고 있었다. 반장은 지숙과 팔짱을 끼고 같이 깔깔거리다 종종 내 쪽을 보고 의아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려보였지만, 반장의 눈을 애써 피했다. 솔직한 말로 누구와도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예린의 자리는 맨 앞좌석이었고, 절전모드로 들어간 플라운더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아무런 표정이 없어 보이는 플라운더를 보며 나는 로봇이란 기이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수학여행 일정표를 들여다보았다. 강릉 해수욕장에 들렀다가 오죽헌을 거쳐서 평창에 있는 숙소로 가고 대관령 양떼목장에 갔다가 무슨 신재생에너지관에 가는 이상한 코스였다. 해수욕장에 갔다가 오죽헌 같은 게 보일 리가 없고, 양떼목장에 갔다가 신재생에너지 같은 게 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뒤에서 여자애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 수영복 가져왔는데.”


“어떡해! 입어!”


“부끄러워, 너무 나대는 거 같잖아-”


“나도 가져왔으면 같이 입을텐데 어떡해-”


“안에 입고 있어, 실은.”


“보여줘, 보여줘!”


깔깔거리는 소리와 의자가 젖혀지는 소리. 휴게소에서 힐끔 보니 이예린은 아무 말 없이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담임은 이예린 바로 뒷자리에서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담임이 눈을 뜬 것은 강릉 해수욕장에 차가 도착하고서도 조금 시간이 지난 후였다. 간신히 아이들 뒤를 따라 나온 담임은 끊임없이 하품을 했다. 눈을 뜰 때마다 눈에서 졸음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바다는 물론 아름다웠다. 이예린은 백사장 바깥에 휠체어를 세워둔 채 꼼짝하지 않았다. 플라운더도 아직 구동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남자애들이 이예린에게로 다가갔다.


“이예린, 같이 놀자!”


“모래 좋잖아, 어? 같이 놀자-”


이예린은 당황했지만, 남자애들은 멋대로 이예린의 휠체어를 조작해서 백사장으로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 마, 뭐하는 거야!”


담임은 하품을 하면서 남자애들 쪽으로 손을 내저었다.


“얘들아- 예린이 위험하잖니-”


옆에 서 있던 반장이 생글거리면서 담임의 손을 붙잡았다.


“선생님, 그런 거 아니예요. 예린이는 다리도 아프니까 바다도 한 번도 제대로 못 봤을 것 같아서 오기 전에 남자애들이 일부러 바다 쪽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어요.”


“응?”


“휠체어에 물 안 들어가게 조심하면서 바닷물도 한 번 들어가 보게 해 주려고 했었거든요.”


“어이구, 그랬어?”


여전히 졸려 죽겠다는 표정으로 담임은 피식 웃었다. 이예린은 아무래도 생쥐 꼴이 되어서 평창으로 가는 버스를 타게 될 모양이었다. 이제 그만 좀 하지.


“그런 생각은 누가 했대?”


“네? 아…… 종석이가요.”


이 새끼가.


“종석이가 예린이랑 친한가보지?”


“아…… 그건 아닌데, 친해지고 싶은가봐요.”


반장의 눈은 강아지처럼 착하게 생겼다. 커다란 눈동자로 함뿍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면 무슨 말을 해도 다 진짜처럼 보인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반장에게 2시간이 지나면 애들을 불러모아 다시 버스에 태우라고 부탁하고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예린과 남자애들 쪽으로 발길을 옮기려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반장이 나를 불러세웠다.


“명훈아, 저기, 저쪽 돌 있는 데 가보지 않을래?”


끝 쪽으로 가면 바다 색깔이 그렇게 예쁘다는 둥, 그런 얘기를 하며 반장은 한참을 더 걸었다. 몇 번 뒤를 돌아보다가 나는 그냥 묵묵히 반장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이예린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결국 다 이예린의 ‘주제’ 문제였다.


“명훈아, 여기에서 저쪽을 보면 진짜 예쁘지 않아?”


반장의 말을 듣고 수평선에서 천천히 고개를 돌리다가 나는 남자애들이 백사장이 아닌 방파제 쪽까지 휠체어를 밀고 나가 있는 것을 보았다. 웃음소리가 들렸고, 한 명이 이예린의 어깨를 가볍게 떠밀었다. 이예린은 거짓말처럼 미끄러져 바다로 곤두박질쳤다.


“야…… 씨발…… 미친놈들아……!”


진짜로 밀 생각은 아니었던 듯 남자애들이 당황하여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늦게서야 구동된 플라운더가 미친 듯이 방파제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 역시 바위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제발, 바다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예린의 그 흐느적거리는 다리로는 물장구를 칠 수 없었다. 녀석들 말대로 꼬리에는 뼈가 있지만 이예린은 무릎에 뼈가 없지 않은가. 갑자기 뭔가 찝찌름한 맛이 느껴졌다. 뛰다가 손을 들어 입가를 닦아냈다. 콧물이 흘러 입에 들어가고 있었다. 씨발, 내가 지금 훌쩍거리면서 울고 있었다.


방파제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바다에 다다랐다. 급하게 옷을 벗은 뒤, 어디로 뛰어내려야 할지 두리번거리다가 나는 이예린의 꼬리를 발견했다. 철썩, 분홍색 비늘이 햇빛에 잠깐 빛나다가 바다 속으로 쓸려내려갔고, 꼬리는 열심히 흔들거리면서 녀석의 하반신을 완성하고 있었다. 불쑥불쑥 새하얀 팔이 허우적거리면서 필사적으로 움직였고, 그 팔은 신기하게도 조류를 거슬러 올라왔다. 나는 물속으로 뛰어드는 대신에 손을 뻗어서 그 팔을 붙잡았다.


예린의 팔은 가늘지만 단단했다. 단단한 근육이 붙은 하얀 팔이 접히면서 쑥, 이예린의 조그마한 머리가 물 속에서 솟아올랐다. 턱걸이를 하듯이 이예린은 내 팔에 의지해 몸을 위로 쑥 일으킨 다음 반대로 접힌 왼다리 위에 아무렇지 않게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주섬주섬 아까 벗어놓은 겉옷을 이예린에게 내밀었다. 예린은 젖은 머리카락을 짠 다음, 내 겉옷을 들고 머리카락을 비벼 말렸다. 훅 소금내가 끼쳐왔다. 완벽한 턱걸이였다.


“너…… 괜찮아?”


“뭐가.”


“헤엄친 거야?”


가까이에서 보니 윗팔 근육은 정말 탄탄했다. 끊임없이 철봉에서 미끄러지던 뒷모습이 겹쳐졌다.


“뭐라는 거야. 나 인어라고 말했었잖아.”


그랬다. 이예린은 자기 주제를 알아야 된다고 말했었다. 플라운더가 달려와 이예린을 들쳐업었고, 이예린이 내 머리 위에 겉옷을 툭 떨어뜨렸다. 머리 위에서 흘러내리는 비린내를 맡으며 나는 내가 첫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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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No Profile
    도망니 15.02.01 13:06 댓글

    엉덩이를 몇 번이나 보는거야 명훈아!! 8ㅁ8

  • 도망니님께
    앤윈 15.02.01 15:45 댓글

    남중생은 저런 거 아닙니까? 저의 편견입니까? (…)

  • No Profile
    임태운 15.02.04 15:42 댓글

    시종일관 느껴지는 감성과 결말의 클라이막스가 무척 훌륭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 임태운님께
    앤윈 15.02.06 09:51 댓글

    감사합니다 :D!

  • No Profile
    lulian 15.02.09 19:38 댓글

    재밌게 보고갑니다!

  • lulian님께
    앤윈 15.03.31 15:21 댓글

    읽어주시고 평까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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