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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zyjam 꽃의 도시에서

2015.04.01 00:0104.01

꽃의 도시에서.

 

 

 

 

꽃의 콜로니.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제17콜로니의 별명이었다.

지구의 유통 화훼 20%와 문시티의 화훼 60%를 공급하는 화훼 생산 전문의 콜로니. 숨이 막힐 정도의 향기와 화려한 색채의 꽃이 가득한 곳. 지구 주위에 건설된 34개 콜로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관광객들도, 우주항의 화물선 선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한다.

외지인들은 제17콜로니의 여자들 모두를 꽃의 여인이라 불렀다. 무슨 여행 프로그램에서 한 가득 꽃을 안은 채 웃으며 거리를 걷는 소녀들의 모습을 방송한 이후부터다.

나는 그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싫었다. 나는 화훼 농장이 아니라 아버지의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꽃을 만지는 일이라고는 아침마다 도착하는 꽃을 받아 커피숍 안을 장식하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꽃의 여인이라니.

17콜로니는 대안식료품으로 꾸준히 주목 받았지만 꾸준히 사람들의 식탁에서 외면 받았던 녹조류를 생산하기 위해 건설된 곳이었다. 녹조류 대량 생산을 위한 장비를 그대로 살려 화훼 산업으로 전향한 지 이제 6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 같은 건 모두 외면하고 있다. 어릴 적에는 길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온 몸이 지저분한 녹색으로 물들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길의 쓰레기마저도 떨어진 꽃잎이 대부분이다. 그 사실이 외지인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외지인들은 모른다. 17콜로니는 꽃이 가득한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꽃 밖에는 없는 곳이다. 이 곳에 사는 여자아이 대부분은 이 곳을 떠나고 싶어했다. 자력으로 지구나 문시티로 달아나지 못한 소녀들은 이 쇠락해가는 좁은 세계에서 데리고 나가 줄 사람이 찾아오기를, 그런 사람을 붙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곳에 나타나는 외지인이라고는 드물게 찾아오는 관광객과 우주항을 오가는 화물선 선원들뿐이었다. 지구나 문시티에서 온 관광객들은 콜로니의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화물선 선원들은 대개가 셀 수 없이 많은 이착륙을 반복하는 동안 감압과 가압으로 인해 치아가 모두 망가져버린 늙다리 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그런, 꽃의 콜로니였다.

 

 

 

 

 

 콜로니에 문신사가 왔어.

그 정보를 제일 먼저 가져온 것은 마리나였다. 우리는 콜로니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초급학교를 함께 다녔다. 우리의 졸업과 동시에 초급학교는 폐쇄되었고, 이후는 지구에서 보내지는 통신교육으로 공부해야 했다. 그러니까 마리나와 나는 이 콜로니에서 동창생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최후의 몇 명에 속해 있는 사이였다.

카운터에 앉은 마리나는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살짝 셔츠를 들어올리며 등을 내보였다. 허리 위쪽으로 선명한 자주색 꽃무리가 피어 있었다.

 “부겐빌리아?”

 “정열의 꽃이지. 어때?”

마리나는 소리를 낮추어 소근거렸다. 정말 예쁘다,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었지만 마리나는 내 반응이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 꽃이 요즘 지구에서 인기래. 이 문신 말이지, 다른 각도에서 보면 꽃이 피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다른 손님들이 있으니까 보여줄 수는 없지만 말이야.”

그거 정말 멋지겠다거나, 색이 정말 선명해서 진짜 꽃처럼 보인다거나 하는 칭찬을 몇 마디 더 듣고 나서야 마리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는 동안 몇 명의 여자아이들과 많은 수의 화물선원들에게서 이전에 없었던 낯선 문신을 보았다. 커피숍의 단골인 늙은 파일럿 하나는 이두근에 새긴 문신을 아버지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마리나가 들려준 이야기처럼, 인어의 그림은 파일럿의 탄력 없는 피부 위에서 생생하게 꼬리를 흔들고 금빛 머리카락을 쓸어 내렸다. 렌티큘러라는 기법을 쓴 문신이라는 이야기도 그 선원에게 들었다.

선원이 돌아간 후,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물었다.

 “요즘은 부근 여자아이들 사이에도 유행인 모양이더구나. 너도 문신에 흥미가 있는 거냐?”

 “그런 건 관심 없어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진심이었다. 화려한 색으로 피어 오르는 꽃이나 꼬리를 흔드는 금발의 인어 같은 그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마리나가 부겐빌리아 문신을 보여준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문시티의 기업 연합이 첫 목성 개척선 계획을 발표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문시티에 본거지를 둔 거대 콘체른의 회장은 지구 연합 정부에서 주도하는 개척 계획보다 8년이나 늦어졌지만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는 발표를 하며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그날, 나는 문신사를 만났다. 커피숍에 들어서는 그 여자는 검은 가죽 자켓 차림에, 손에는 묵직해 보이는 은빛 금속 케이스를 들었다.

화훼 농장의 작업복을 입은 남자 두 명과 함께 들어선 그녀는 관광객으로도, 선원으로도 보이지 않는 차림새였다. 검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리고 서늘한 눈매를 한 그녀는 이 콜로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색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콜로니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활에서 나오는 냄새라는 것을 갖지 못한 사람이었다.

여자는 앉자마자 자켓을 벗었다. 검은 가죽 자켓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자 온갖 색으로 물든 화려한 문신이 드러났다. 눈 덮인 산, 구름, 파도, , 바위, 물고기이곳 콜로니에 없는 수많은 것들이 어지럽게 얽힌 채 그녀의 양 어깨와 팔에 들어앉아 있었다.

주문을 받으러 갔을 때, 그녀는 화훼 농장의 직원들에게 문신의 견본 그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남자는 구식 태블릿 단말기에서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그림들을 넘겨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앞으로 새길 문신 도안을 고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컵과 메뉴판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자 문신사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검정이네?”

그녀는 가느다랗고 긴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카락과 내 머리카락을 번갈아 가리켜 보였다.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있자 그녀는 시원스럽게 씩 웃었다.

 “검정은 여기서는 굉장히 귀한 색이지. 안 그래?”

 “…그런가요?”

 “이 콜로니는 24시간 해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움직이니까 밤의 어둠이 없잖아? 빨강, 노랑, 분홍, 보라색은 넘쳐나지만 검정은 귀하지.”

확실히 그렇다. 이 곳 제17콜로니에서 온전히 어둠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집안에서도 지하에 위치한 수면실뿐이다. 작은 콜로니에서도 가장 태양과 멀리 떨어진 장소. 햇빛이 새어 들어오지 않는 유일한 곳. 이전까지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이 콜로니는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었고, 나는 이 세계밖에는 몰랐으니까.

마리나나 다른 친구들처럼 화사하지 않은 내 머리색은 늘 불만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귀하다는 표현에 놀랐고,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에게 마주 미소를 지어주고 물러나려는데, 농장 직원들이 보고 있던 문신 견본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지구. 천천히 회전하는 지구의 그림이었다. 순간 당황해서 들고 있던 트레이를 놓칠 뻔 했다.

농장 직원들의 손놀림에 홀로그램 영상이 머리가 셋 달린 뱀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동시에 문신사 여자의 질문이 날아왔다.

 “마음에 드니? 조금 전의 그 지구 그림. 내 오리지널 디자인인데.”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 문신을 가진 남자를 알고 있다거나?”

동요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소용은 없었던 것 같다. 그녀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문신사 여자는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너,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그녀의 가느다랗고 하얀 손가락은 뜻밖에 힘이 세었다. 족쇄처럼 손목을 움켜쥔 그녀의 손을 풀 수가 없었다.

 

 

 

 

 

내가 약속을 어긴다 해도 그녀는 나를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 누구와도 다른, 서늘한 분위기의 그녀는 그냥 그대로 입꼬리를 올려 씩 웃고 말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도망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신사는 우주항 근처 술집 하나에 방을 빌려 일하고 있다고 했다. 술집들이 모인 우주항 부근의 거리는 제17콜로니에서 가장 많은 젊은 여자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화훼 농장의 여직원들 외에, 또 다른 꽃의 여인들이 사는 거리였다.

이제껏 한 번도 발을 들여놓은 적 없는 거리에서, 나는 더듬듯이 뒷문을 찾고 겨우 문신사가 빌린 방을 찾아낼 수 있었다.

반쯤 열린 문 안쪽에 늘어뜨려진 지저분한 커튼을 젖히고 들여다보았다. 상의를 어깨 위로 끌어올린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겨우 어깨 끝에 걸쳐진 낡고 헐렁한 상의는 등을 거의 드러내고 있었다. 그 등에 덩굴장미가 어지럽게 새겨져 있었다. 가시가 선명한 장미 덩굴이 낡은 옷으로 감추어진 몸 전체를 휘감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살짝 몸이 떨렸다.

문신사는 덩굴장미의 여자에게 문신이 안정될 때까지 주의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덩굴장미의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아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두 살인가 세 살인가 많았던 초급학교의 선배였다. 그녀 역시 나를 알아본 듯 했지만 얼굴을 찡그리고는 무시한 채 나가버렸다.

문신사는 탱크탑 차림으로 양 어깨와 팔에 화려한 문신을 드러낸 채였다. 그녀는 나에게 손짓으로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방 안은 좁았다. 가구라고는 낡은 간이침대 하나와 문신사가 앉아있는 의자, 문신사의 금속 케이스가 올려져 있는 낮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였다. 나는 망설이다가 간이침대에 겨우 엉덩이를 걸쳤다.

문신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문신을 새기는데 사용하는 장비들을 하나 하나 점검하며 금속 케이스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느긋하고 익숙한 동작처럼 느긋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지구 문신을 가진 남자애쉬를 알고 있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신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마도 문신을 새길 때 사용하는 바늘인 듯한 작은 장비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그녀가 내 긍정의 표시를 보았는지 알 수 없었다.

문신사는 바늘을 흰 천으로 문질러 닦고 조심스럽게 케이스에 넣은 후 돌아보았다.

 “잤니?”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웃음기 섞인 목소리와 웃고 있는 눈이 던지고 있었다. 나는 마주 웃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의 눈길을 피하지 않을 만큼은 버티었다.

 “왜 그런걸 묻죠?”

 “뭘 어쩌자는 건 아니야. 애쉬가 몇 달 전까지 이 곳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어. 그냥 잘 지내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을 뿐이야.”

문신사는 또 다른 바늘을 집어 들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면서 느긋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사람 아내였어. 3개월뿐이었지만.”

 “…헤어졌어요?”

 “이혼했지. 그 사람, 목성에 가고 싶어했거든. 애초에 목성 개척선에 합류할 수 있게 될 때까지만 유지하기로 한 결혼이었어. 그런데 고작 3개월만에 목성 3차 개척 계획이 발표된 거야. , 3차 개척 계획은 결국 중단되었지만. 웃기는 얘기지.”

목성 개척 계획, 정확히는 목성의 위성 개척 계획. 개척선에 탑승할 수 있는 자는 결혼 상태가 아닌 인물로 한정되어 있었다. 후발 개척선이 도착할 때까지 유지되었어야 할 자급자족 시스템의 밸런스 실패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1차 개척선 사건 때문이었다. 보상금 문제가 복잡해지자, 지구 연합 정부는 추후 개척선 탑승자는 결혼 상태가 아닌 사람으로 한정한다는 법안을 제정해 발표했었다.

나는 문신사의 어깨와 양 팔에 복잡하게 얽혀 매달려있는 그림들을 보았다. 그 사람과 그녀가 온 지구에만 있는 아름다운 것들. 그리고 나는 그 남자의 몸에 있던 문신들을 떠올렸다. 문신사가 사랑한 남자는 왼쪽 가슴에 자전하는 푸른 지구의 문신을 가진 남자였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 사람은 파일럿 라이선스 유지를 위해 규정 비행시간을 채워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정규 화물선 라인에서 일한다고요. 1년 단위 계약이 끝나자 바로 떠났다고 들었어요. 나는 그것밖에 몰라요.”

나는 빠르게 이야기하고 일어났다. 더러운 커튼을 젖히고 잠시 돌아보았다. 문신사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오늘 문시티에서 개척선 계획을 발표했어요. 그 사람은 문시티에 있을지도 몰라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는 달리듯 밖으로 나왔다.

술집 거리에는 여자들이 늘어나 있었다. 지구로 꽃을 운송하려는 화물선들이 줄줄이 입항할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화물선들이 입항하면 선원과 파일럿들이 꽃들을 선적하는 동안 거리로 쏟아져나올 것이다. 꽃의 여인들을 찾으러 나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버지의 커피숍도 손님으로 가득 찰 것이다. 서둘러 돌아가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내 발은 우주항을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커피숍에 처음 그가 들어섰을 때를 기억한다.

나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들었던 이야기 만으로도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화물선의 선원들 중에 그나마 젊은 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남자라도 있으면 콜로니의 여자아이들은 뜨거운 시선을 보내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확실히 젊은 남자, 그리고 꽤 준수한 외모를 가진 파일럿이 지구와 콜로니를 오가는 정규 화물선 라인에 배속되었다는 소식은 소녀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했었다.

나는 그가 구석 자리에 앉을 때도, 커피를 주문할 때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일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실력이 뛰어난 파일럿이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인물이라면 지구와 콜로니를 오갈 뿐인 화물선 라인에서 늙은이들과 함께 일하고 있을 리가 없다. 콜로니의 소녀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껏 우쭐해 있을 뿐일 남자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버지가 내린 커피를 트레이에 담아 가져가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도 나는 그를 외면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조용히 눈총을 주었을 정도로 내 태도는 꽤 험악했다. 실은 계속 그의 시선이 느껴져서 도저히 돌아볼 수가 없었다.

기억난다. 그는 낮은 소리로 웃었다.

 “드물게 맹수 같은 아가씨가 있었네. 아니, 아직은 검은 고양이 정도인가?”

그만 그를 돌아보고 말았다. 바보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가장 질색하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에는 안심하면서.

그리고 소매를 걷어 올린 그의 왼팔 안쪽에서 나는 두 줄의 문신을 보았다. 생년월일과 이름, 사회보장번호, 혈액형, 질병내역을 코드화 하여 두 줄로 새겨 넣은 검은 문자열. 그것은 목성 개척선 탑승 허가를 받은 사람의 표식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더 이상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그가 처음 내 침실에 왔던 날을 기억한다. 어둑한 침실 조명 아래에서 그의 심장이 있는 곳 위에 새겨진 지구가 어두운 푸른빛으로 떠올라 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사람에게 안겨서, 그가 목성 3차 개척선에 탑승할 예정이었던 사람이었음을 들었다. 개척선에서 중대 결함이 발견되면서 건조 과정에서 있었던 부정과 비리가 들통나고, 몇 개의 대기업이 무너졌던 큰 사건이었다.

 “지구로 돌아갈 건가요?”

그의 심장 위치에 그려진 지구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물었었다.

 “이건 그냥 내가 떠나온 것에 대한 추억을 뜻하는 거야. 나는 멀리 가고 싶어.”

그의 대답에 심장이 몹시 심하게 두근거렸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일어나 앉아 그의 왼팔을 잡고 두 줄의 문자열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웃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의 대답을 사랑했다. 하지만…….

우주항 앞은 선적을 위해 화훼농장에서 달려온 수송 트레일러로 가득했다. 선적 시간 동안 잠시 쉬려는 화물선 선원들이 몰려나와 거리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미 선적이 시작되어 트레일러들이 열렸는지 뒤섞인 꽃 향기가 풍겼다.

우주항에 와도 우주는 보이지 않는다. 24시간 태양을 향하도록 건설된 이 콜로니에서 우주를 바라볼 방법은 없다. 이곳을 탈출하지 않는다면 검은 하늘을, 우주를, 별을 볼 방법조차 없다.

뒤섞인 강한 꽃 향기가 어지러웠다. 나는 벽에 기대어 쪼그려 앉았다. 어쩌면 나는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멀리 떠날 수 있다는 그 느낌에 취해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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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No Profile
    약사 15.04.01 05:52 댓글

    재미있습니다. 깨알같은 리얼리티가 숨어있네요. 대안식료품으로 꾸준히 주목받았지만 꾸준히 외면받았던 녹조류 이야기(끌로렐라!)라든지 반복되는 감압과 가압에 퇴물이 되어버리는 화물선 선원들이라든지..

    주인공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이런 기분이 있죠. 저도 시골에서 자랐는데, 그 시절엔 서울에서 누가 전학이라도 오면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말투가 다른 건 좀 어색해도 그냥 그렇구나 싶지만, 사고방식이 미묘하게 다르다든지 시골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을 일상처럼 경험해온 이야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그 친구에게 묻어온 자유와 선진문화(..)의 분위기와 그 느낌을 동경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제로 살아본 서울은 자유와 선진문화 따위 개뿔. 비싼 월세와 미세먼지가 참... 그 좁고 허전한 시골보다 서울이 더 답답하더군요. 야경은 좋지만....음 이야기가 너무 멀리까지 왔네요.


    문장이 좋습니다. 너무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고, 이야기를 섬세히 만지는 게 좋네요. 일본 번역투가 조금 눈에 띄는데-이것도 좀 상관 없는 이야기긴 한데 왜 번역투의 문장이 안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우리말 수호신도 아니고, 좋은 이야기를 잘 전달하면 되는 일인데 말이지요.


    글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로 자꾸 뻗어가서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네요.; 문신사와 애쉬(같은 이름이라선지 바나나 피쉬의 애쉬가 자꾸 떠오르더군요)의 다른 이야기가 더 궁금합니다. 매력적인 문신사 언니는 결국 그를 만나게 될까요? '어떻게' 만나게 될 지가 궁금하군요. 감압과 가압을 반복해 퇴물이 된 애쉬를 만나게 되는 건 너무 진부한 이야기고... 더 써주시면 안 됩니까?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 약사님께
    No Profile
    crazyjam 15.04.02 00:10 댓글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부끄럽네요.
    딱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쓴 거라 이후는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먼 곳으로 떠나버리는 모습이 멋진 기억으로 남는 사람은 안주하는 순간 매력이 급감하는 법이라는 생각은 드네요. 문신사는 애쉬를 만나고 싶어하면서도 그가 안주하지 않기를 바랄테고, 애쉬도 그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심수봉씨 노래도 잘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정말 그렇네요. 절묘하십니다.
  • No Profile
    약사 15.04.01 06:09 댓글

    어딘가 고전적인 느낌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자는 배 남자는 항구'의 우주판이란 느낌인 거였군요.

    모두 함께 심수봉을 들으며 문신사 언니의 기분을 이해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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