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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안녕히 가십시오

2015.01.31 22:1901.31

안녕히 가십시오

 

 

1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택시에 올라탔다.

“제주도 가려고요. 월정리 바닷가요.”

“네.”

손님은 말이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움직이지도 않았다. 가끔 차창 밖을 내다보았지만, 그 시간은 참 짧았다. 세게 콧바람을 내뿜으며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울 수도 없는 슬픔이 있다. 우는 것조차 너무 미안해서, 슬퍼하는 것조차 너무 미안해서, 힘겹게 꾹꾹 억누르는 슬픔이 있다. 가령,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리고 살기는 했지만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아니, 손님은 말이 없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기도하듯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그렇게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면, 쉴 새 없이 빌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기라도 하듯이. 마치 숨 쉬듯 중얼거리면 조금씩 조금씩, 그래서 언젠가는 아주 조금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기라도 하듯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도대체 몇 번을 말하면 아주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니다. 몇 번이 아니다.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 말해야 아주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버선발로 바위 위에서 춤을 춘다. 버선발로 바위 위에서 빙글빙글 돈다. 그렇게 버선발로 빙글빙글 돌다보면, 언젠가 바위가 아주 조금 닳아 없어진다. 1겁의 시간이었던가, 2겁의 시간이었던가, 바위가 조금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 그건 시간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냥 영원이다. 영원히 빙글빙글 돌아야 한다.

손님은 지금 버선발로 바위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듯하다. 아주 조금이라도 용서받기 위해 영원히 중얼거릴 기세다.

끼어들고 싶다. 제발 그만 하라고. 중얼거리는 걸 멈추라고. 언제까지 그렇게 중얼거리기만 할 거냐고. 당신은 그토록 용서를 받고 싶은 거냐고. 그럼 왜, 대체 왜 그런 거냐고. 힘든 건 마찬가지면서 왜 그런 거냐고. 바보같이. 바보같이.

손님이 고개를 들었다. 나를 노려보고 있다. 택시 운전사인 나를.

“얼마나 더 가야 하지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묻는다.

화를 낼 줄 알았다.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기에, 앙칼지게 쏘아붙일 줄 알았다. 난 지금 용서를 비는 게 아니야! 내가 용서를 비는 게 아니라고! 알아? 내가 아니야!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용서를 비는 거라고! 그 사람이 나한테 용서를 비는 거라고! 용서를 해도 용서를 비는 거라고! 그러니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이렇게 쏘아붙일 줄 알았다. 손님은 나한테 이렇게 쏘아붙여야 했다. 그래야 내가 다음 말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거짓말 하지 마세요. 손님이 용서를 비는 거잖아요. 손님이 그 사람한테 지금 용서를 비는 거잖아요.’

“아직 한참 가야 할 거 같으면, 잠깐 내려서 쉬고 싶어요. 속이 좀 안 좋아서요.”

“네.”

원래는 손님이 택시에서 내리면 안 된다. 규정에 어긋난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목적지를 떠나 그곳에 갈 때까지 손님은 택시에서 내릴 수 없다. 목적지를 떠나 손님이 내려야 할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내리면 안 된다. 내려야 할 그곳에서만 딱 한 번 내려야 한다. 그런 다음엔 이제 이 택시를 탈 수도 없다.

그런데 나는 그만 ‘네’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손님이 쏘아붙이지 않는 바람에.

나는 번번이 이런 실수를 한다. 규정을 너무 자주 어긴다.

그러고 보니 손님, 중얼거림이 멈췄군요.

나는 기쁜 마음으로 뒷좌석 문열림 버튼을 눌렀다.

“맞네요. 여기였어요. 그이와 가다가 잠깐 차를 멈춘 곳이요. 그때도 속이 좀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그이더러 아직 한참 더 가야 할 것 같으면 잠깐 차 좀 세워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같이 차에서 내렸죠. 괜찮으시다면, 잠깐 저랑 같이 내려주실래요?”

그이라면 당연히 남편을 말하는 것이겠지. 규정을 어긴 적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직접 차에서 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건 규정 위반에 대한 문책 내지는 일시 자격 정지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영원히 자격을 박탈당할지도 모른다. 이 택시를 몰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 회사에 찾아갔을 때, 사장은 딱 한 가지만 명심하라고 말한 뒤 사르륵 사라졌다.

택시에서 내리지 마라.

그럼 손님의 동요는 더 커진다. 가야 할 그곳으로 데려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 저는 택시에서 내릴 수 없습니다. 규정 위반입니다.”

“그런가요. 그이하고는 차에서 내려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냥 돌아갈까?’ ‘돌아가면 견뎌낼 수 있겠어?’ 전 그이를 잘 알아요. 아주 잘 알죠. 당연히 못 견딜 거예요. 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당신은 어떤가요? 스스로 연약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니, 그 전에 이거 먼저 좀 물어볼게요. 당신이 보기에 저는 어떤가요? 연약해 보이나요?”

이 택시를 몰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게 의외로 많다.

감정을 드러내지 마라.

그러니까 손님이 무언가를 물어보면 그냥 짧게 대답하라는 얘기다. 길게 말하면 감정이 드러난다. 아니면 반대로 얘기하던가.

“아니오.”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그것도 반대로.

“대답이 너무 뻔하네요. 그런 것도 뭔가 규정이 있나보죠? ……그러니까 연약해 보인다는 얘기겠죠. 강해 보일 리가 없죠. 아니, 강할 리가 없죠. 그런 사람이었더라면 나중에 이 택시를 탈 일도 없을 테니까요. 당신은 어때요? 스스로가 연약하다고 생각하세요?”

“모르겠습니다.”

손님이 차 밖으로 나갔다.

울음을 하도 참아서 속이 울렁거리는 걸까. 손님은 눈물 대신 신물을 쏟아냈다. 뱃속에 남아 있는 건 눈물, 아니 신물뿐인 모양이었다. 나가서 등이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비록 신물이지만, 눈물 대신 그거라도 속 시원히 쏟아낼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규정 위반이다. 사장이 직접 언급한 규정 위반. 어기고 싶었다. 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손님의 슬픔을 알기에.

이제는 더 이상 신물을 쏟아낼 기운조차 없는지, 손님은 쭈그려앉은 채 택시 쪽으로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운전석 쪽, 그러니까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나와서 도와주지 않는 거죠?

등이라도 토닥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 슬픔을 아시면서, 어떻게 계속 거기에만 있을 수 있는 거죠?

손님은 나한테 그렇게 묻고 있는 듯했다. 그런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손님의 시선을 피했다. 굳이 피할 이유는 없지만, 그냥 피했다. 타인을 원망할 입장이 아니다. 타인에게 도움을 청할 입장이 아니다. 위로받아서는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그럼 그 슬픔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다. 원망할수록, 도움을 받을수록, 위로받을수록 더 무거워진다. 차라리 지금이 가볍다.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무겁겠지만, 그래도 차라리 지금이 가볍다. 그건 손님도 알 텐데, 분명히 알고는 있을 텐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알지 못한다.

나는 라디오를 켰다.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멜로디가 흥겹다. 볼륨을 키워 입으로 흥얼흥얼 멜로디를 흉내냈다. 하지만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저 가수는 숨도 안 쉬고 노래를 부르는 걸까. 상당히 빠르게 부르는데도 노래가 끊김이 없다. 친구랑 대화할 때도 저렇게 말을 빨리 할까. 그렇지는 않겠지.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더 느리게 말을 할 수도 있겠지. 아니면 말을 할 때 더더더더듬는 버릇이 있을 수도 있겠고. 여행기를 쓰는 작가 중에 의외로 길치가 많다, 이런 얘기도 있으니까. 사물을 제대로 식별할 수조차 없을 만큼 시력이 안 좋은 화가가 자연 풍경을 그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그리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혹시 진화는 무언가가 사라져야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물론 내가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고양이 이름은 몽이다. 지금 집에 혼자 있는데, 엄청 외로울 게 뻔하다. 어떻게 하면 외롭지 않게 해줄 수 있을까. 일할 때 데리고 올 수는 없다. 아니, 그러고 보니까 그런 규정은 없다. ‘일할 때 애완동물을 데리고 오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사장이 직접 언급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데리고 와도 되는 건가. 몽이를 조수석에 태우고 택시 운전을 해도 될까. 불편하지 않은 목줄을 채워서 고리를 차 안 어딘가에 연결해 놓으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화장실용 모레는 어디에 놓지. 그냥 의자 밑에 두면 되려나. 사료하고 물은 또 어디에 놔야 하는지. 걸리는 게 많다. 사장이 굳이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있구나. 원래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외로운 거야. 사람이든 동물이든 다를 게 없지. 몽이도 그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아직 생후 3개월밖에 안 돼서 무리겠지만, 그러니까 지금 당장 깨닫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언젠가는 깨닫기를 바란다. 삶은 외로운 거다. 그걸 인정해야 버틸 수 있다.

“물속에서 숨 안 쉬고 몇 분이나 버틸 수 있으세요?”

손님이 택시 안으로 들어온 줄도 몰랐다.

“모르겠습니다.”

“보통은 2, 3분 정도가 한계겠죠. 아마 5분을 넘기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넘겨봐야 뭐하겠어요. 그만큼 더 괴롭기만 할 뿐이죠.”

“출발해도 될까요?”

“네, 이제 출발하셔도 돼요. ……저기, 그런데, 기사님은 혹시 결혼하셨어요?”

“안 했습니다.”

“그럼 부모님하고 같이 사시나요? 아니지, 독립해서 사실 수도 있겠네요.”

“네, 독립했습니다. 고양이랑 둘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고양이는 지금 집에서 혼자 있겠네요.”

“네.”

“외롭겠어요. 지금 몇 살이나 됐나요?”

“태어난 지 3개월쨉니다.”

“외로움 많이 탈 때겠네요. 주인이 옆에 있어주면 좋을 텐데요. 어미랑 같이 있으면 더 좋고요. 그래야 마음껏 뛰어놀거든요. 혼자 있으면 그냥 잠만 잘 뿐이죠. 고양이 생각 많이 나시겠어요.”

“네.”

“결혼은 왜 아직 안 하셨어요?”

“할 생각이 없습니다.”

“평생 안 하실 생각이세요?”

“네.”

“혹시 잊지 못하고 있는 여자 분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아닙니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날은 화창한데, 줄곧 화창한 날씨였고, 지금도 화창한데, 갑자기 비가 투두둑 떨어진다. 시야를 방해해서 서둘러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와이퍼의 움직임을 최대치로 해도 여전히 빗줄기가 시야를 방해한다. 손님의 안전을 위해 차의 속도를 줄였다.

“이거 받으세요. 눈물을 닦으셔야지, 차 앞유리를 닦으시면 뭐해요.”

아, 눈물이었나. 어제 샤워하려고 욕실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물이 흘러내려서 멍청하게 샤워기만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그러다 이상하게 다리에 힘이 없어서 그냥 주저앉았었는데, 그제도, 그그제도, 그그그제도, 그그그그제도, 그랬었는데, 눈물이었나.

“원래는 제주도에 어제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제 갑자기 날이 추웠잖아요. 한여름인데도 체감 온도는 거의 영하 수준이었, 아, 어제 날씨가 어땠나요? 추웠던 거 맞나요?”

“아니오. 오늘처럼 따뜻했습니다.”

“그랬군요. 전 정말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줄 알았어요. 한여름인데 기온이 영하라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뭔가 섭리에 어긋나는 현상이잖아요. 뭐, 제가 섭리 운운할 입장은 아니지만요. 어쨌든 지구 멸망도 얼마 안 남았구나, 그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뭐, 그것도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기는 하지만요. 지구가 멸망하든 말든 저랑은 상관없죠. 제주도에 어제 가려고 했어요. 월정리 바닷가에요. 그런데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 그런데 기사님, 혹시 지금 에어컨 트셨어요?”

“네.”

“죄송하지만 꺼주시겠어요? 춥네요. 냉동고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에요. 제가 춥다고 하니까 좀 이상하죠? 아마 사람들도 저를 보면 한기를 느낄 거예요. 호호.”

“아닙니다. 이상하지 않습니다.”

나는 에어컨을 껐다. 택시 안에서는 손님이 주인이다. 주인이 끄라고 하면 꺼야 한다. 비록 한창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무더위는 아니지만, 해변에서 뛰어놀기에 안성맞춤일 정도는 된다. 바다 수영하기에 딱 좋은 날씨이기도 하다. 게다가 에어컨 안 틀고 창문까지 닫은 채로 달린다면, 자동차 내부 온도는 조만간 50도에 육박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에어컨은 꺼야 한다.

하마터면 또 와이퍼를 작동시킬 뻔했다. 이번에는 눈물이 아니라 이마에서 흐르는 땀 때문에 착각했다.

J는 사진작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핸드백 안에는 산 지 10년은 넘었을 법한 낡고 오래되고 작은 필름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게 편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J는 대구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카메라 보는 눈이 없어서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 걸지도 모른다. 당시 J가 갖고 다니던 카메라는 꽤 유명한 제품일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엔 그저 낡고 오래되고 작고 불편한 필름 카메라일 뿐이었지만.

J는 원래 말수가 적다. 나도 별로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지만, J는 나보다 더 말이 없다. 심지어 섹스할 때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나는 J의 이름과 나이만 알 뿐이다. 그 외에는 모른다. 2년 동안 같이 살면서 J는 자신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다. 가령 집은 어디냐고 물어도 J는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나는 J의 직업도 모른다. 직업이 사진작가가 아닌 것만 알 뿐이었다.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 사진작가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할 때 J의 표정은 슬펐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J는 정말로 사진작가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는 걸. 그런데 그게 쉽지만은 않은가 보다. 지금 처한 현실이 힘든가 보다. 꿈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 때도 있는가 보다.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꿈을 얘기할 때 J는 슬펐다.

J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도 알지 못했다. 직장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남들처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은 하지 않았다. J는 가끔 열흘 이상씩 집에 안 들어왔다. 그런 때는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물론 내게 전화를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열흘이 지나 집에 올 때면, J의 모습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 힘들어서 지친 모습, 잠을 못 자서 피곤한 모습, 밥을 못 먹어 허기진 모습, 그런 게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에 초점이 흐릿한 듯 멍한 눈, 관절이 빠진 것처럼 제멋대로 휘청거리는 팔, 그리고 알 듯 모를 듯한 비릿한 냄새. 그럴 때면 J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술 취한 사람이 구토를 하듯 우웩거렸다. 속에 걸 다 게워내듯, 내장까지도 모조리 끄집어내듯 우웩거렸다. 적어도 30번 이상은 우웩거렸다. 세다가 귀찮아서 포기할 만큼 끝없이 우웩거렸다. 그 소리를 듣는 내 심장이 알 수 없는 슬픔과 분노로 폭발하기 일보직전까지 우웩거렸다. 그만 해! 그만 해! 제발 그만 좀 해! 속으로 미친 듯이 울부짖듯이 외치다가, 정말로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까지 우웩거렸다. 그러고는 몇 시간이고 샤워기 물을 틀어놓고 몸을 씻었다. 아니, 몸을 씻지는 않았다. 샤워기 물을 틀어놓고 몸을 웅크린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양 무릎을 구부려 얼굴을 그 사이에 파묻은 채 가만히 있었다. 아니,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깨가 심하게 들썩일 만큼 울고 있었다. 몇 시간이고 그러고 있었다. 그러면 나도 방에 웅크리고 앉아 J가 나올 때가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J가 스스로 나온 적은 없었다. 그냥 두면, 마치 영원히 화장실에서 안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J랑 같이 살게 된 뒤, J가 열흘이 지나서야 집에 들어와서는 곧장 화장실로 갔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 들어간 지 세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오지를 않아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영원히 안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데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왜 그리 슬펐는지는 모른다. 굉장히 슬펐다. J도 죽이고 나도 죽고 싶을 만큼 슬펐다. 내 손으로 J를 죽이고 나서 나도 목숨을 끊고 싶을 만큼 슬펐다. 벌컥 화장실 문을 열었다. 다행히 J는 화장실 문을 잠그지 않았다. 아마 잠글 기운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J는 그렇게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어깨를 심하게 들썩이면서 웅크리고 있었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서 웅크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 너보다 더 불쌍한 영혼은 없을 거야. J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샤워기 물을 잠그고 J를 안았다.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몸,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리고 가만히 침대 위에 눕히듯 내려놓았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J의 들썩임은 멈췄다. 그리고 마치 새끼고양이가 웅크리고 잠을 자듯 새근거리며 몸을 옆으로 동그랗게 말았다. 깊이 잠에 빠져들었다.

“어디 갔다온 거야?” “뭐 하다 온 거야?” “왜 전화를 안 받아?” “왜 연락 안 한 거야?” 그 어떤 물음에도 J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 나가.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영화도 보자. 나 영화관 가고 싶어.” 기운을 차린 J는 늘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J는 음식을 맛있게 먹지 않았다. 먹고 싶어 하는 음식도 없었다. 내가 “돈가스 먹을까?” 하고 물으면, “응.” “탕수육 먹을까?” “응.” “스파게티 먹을까?” “응.” “냉면 먹을까?” “응.” 그렇게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시킨 음식도 J는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맛이 없어?” “아니, 맛있어.” “그런데 왜 안 먹어?” “먹고 있어.” “안 먹고 있잖아.” “먹고 있어.” “며칠 전에는 어디 갔다온 거야?” “아니야, 먹고 있어.” “일어날까?” “응.”

나는 J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액션 영화! 공포 영화! 사랑 이야기! 아니면 고리타분한 예술 영화! 모른다. 우린 늘 가던 영화관으로 간다. 그리고 상영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영화를 고른다. 어떤 장르의 영화인지, 누가 나오는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우린 영화를 보러 온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관에 왔을 뿐이다. J는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될 동안의 어둠을 좋아한다. 스크린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몸을 옆으로 기대 무릎을 끌어안고 잔뜩 웅크려 앉는다. 잠자는 새끼고양이처럼. 그리고 나 역시 스크린은 쳐다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J를 바라볼 뿐이다.

다음 날 J는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숨도 안 쉬고 불러야 할 것만 같은 아주 빠른 멜로디의 노래를. 그러면서 짐을 싼다.

“이번엔 어디로 가려고?”

“인도. 차도 말고 인도. 히힛, 농담이야.”

평소 J답지 않게 썰렁한 농담도 한다.

“얼마나 있다가 올 건데?”

“글쎄, 일단 잡은 건 한 달이야. 하지만 그 전에 올 수도 있고, 아니면 더 있다가 올 수도 있고.”

여행을 떠나기 전의 J는 내가 묻는 것에 척척 대답을 해준다. 늘 이러면 좋을 텐데.

“일정 같은 건 다 짰어? 숙소나 여행지 뭐 그런 거.”

“아니, 나 그런 거 짤 줄 모르잖아. 그냥 가는 거야. 가면 다 해결 돼. 그게 여행이야.”

돌아오기 싫은 여행. 그래서 J는 늘 여행 일정을 짜지 않는다. 돌아오기는 싫지만, 결국은 돌아와야 한다. 그 날짜를 정하기가 싫은 것이다.

10년은 넘었을 법한 낡은 필름 카메라를 챙긴 뒤 가방을 맸다.

“갈게.”

“응, 잘 갔다와.”

“뭐야, 안 안아줘?”

왜 J는 매번 이 순간에 안아달라고 하는 걸까. J를 끌어안았다.

돌아오지 마. 돌아올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래도 돌아오지 마. 네 생활로 돌아오지 마. 그냥 그곳에 있어. 그냥 그곳에서 살아. 그러려고 떠나는 거잖아. 그런데 왜 자꾸 돌아오는 거야. 왜 자꾸 나를 괴롭히는 거야.

넌 도대체 열흘 동안 뭘 하다 오는 거니? 모르긴 해도 아마 그 열흘은 죽음보다 끔찍할 것 같아. 정말 끔찍해. 네가 화장실로 들어가기 전에, 내가 먼저 달려가서 네 가는 목을 움켜쥐고 싶을 정도야. 그 정도로 끔찍해.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모습 같아서 끔찍해. 도대체 그 열흘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넌 죽음을 부탁하는 듯한 모습을 하는 거니? 왜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니? 너 정말 잔인해. 정말이야. 정말, 참기 힘들어.

J를 끌어안았다.

내가 더 잔인한 건가.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일 때는 죽일 수가 없었다. 참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죽일 수는 없었다. J는 곧 행복한 표정을 지을 테니까. 여행을 떠나게 될 테니까. 그래서 J는 그 열흘을 버텼을 테니까.

죽일 수 없었다.

J를 끌어안았다. 왜 매번 안아달라고 하는 거니. 궁금했지만 물어본 적은 없었다. 왜 물어볼 생각을 안 했을까.

“왜 매번 여행 떠나기 전에 안아달라고 하는 거야?”

“이제야 물어보는구나. 먼 길 떠날 텐데 안아달라고 하는 거 당연하잖아. 날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고. 갈게. 안녕.”

J는 몸을 돌려 내게 등을 보였고, 나는 J에게 다가가 두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불편했다. 뒤에서 목을 조르는 동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상태로는 J를 죽이지도 못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손에서 힘을 뺐고, J는 그 틈에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웃으면서. 그리고 나는 엄지로 J의 경동맥을 세게 눌렀다. 으아아아아악! 괴물처럼 고함을 지르면서.

축 쳐진 J의 몸은 무거웠다. 영혼이 빠져나가 깃털처럼 가벼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죽어서야 J는 제 몸의 무게를 되찾은 걸지도 모른다.

“지금 같은 한여름에도 바닷속은 추울까요? 그러니까 물고기들 말고요, 사람이 바다에 들어가면요.”

“네, 추울 겁니다.”

“그렇겠죠.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전에도 몇 번 여름휴가로 제주도에 온 적이 있었어요. 남편이랑 같이 월정리 바닷가에서 일광욕도 즐기고 수영도 했죠. 햇빛이 꽤 강렬했는데도 바닷속에서 오랫동안 있지는 못했어요. 생각보다 꽤 춥더라고요. 혹시 제주도에 놀러와 본 적 있으세요?”

“네, 한두 번 왔었습니다.”

“그러시군요. 저흰 결혼 전부터, 그러니까 연애할 때부터 매년 한두 번씩 왔었어요. 처음에는 외국으로 갔었죠. 유럽도 가고 동남아도 가고. 그러다 생각해 보니까 저희 둘 다 제주도에는 한 번도 안 가본 거예요. 그래서 일본에 가려던 계획을 접고 대신 제주도엘 갔죠.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 밖으로 나왔는데요, 세상에, 날이 그렇게 화창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하늘도 파랗고, 바다 냄새도 솔솔 풍기고, 야자수 비슷한 나무들도 많고. 말 그대로 이국적인 풍경이더라고요. 남태평양 어느 작은 섬 같은. 물론 그런 델 가보지는 않았지만요. 그래서 저희 둘은 ‘멋있다! 멋있다!’ 하고 감탄사를 연발했어요.”

차 안은 푹푹 쪘다. 그런데도 손님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착각에 빠질 것만 같았다.

“우린 자동차 대신 스쿠터를 빌려서 타기로 했어요. 물론 자전거를 빌려서 타면 더 좋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자전거를 못 타요. 그래서 스쿠터를 한 대 빌렸어요. 공항 나오자마자 바로 근처에 스쿠터 빌리는 곳이 있더라고요. 남편이 앞에 타고 제가 뒤에 탔어요. 그러고는 해안도로를 달렸죠. 천천히 달렸어요. 시속 2, 30㎞로요. 제주도 가보셨다고 하셨죠? 혹시 스쿠터도 타보셨어요?”

“아니오, 못 탔습니다.”

“다음에는 꼭 타보세요. 진짜 제주 여행을 맛보실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자전거가 더 좋지만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주 공항 근처에는 스쿠터 빌리는 곳이 없다. 빌리려면 시내로 들어가야 한다. 아니면 스쿠터 대여점에 전화를 해도 되고. 그러면 그곳 주인이 데리러 온다.

“천천히 달렸는데도 체감 속도는 거의 백 키로로 느껴질 정도였어요. 해안도로라 그런지 바닷바람이 굉장히 세더라고요. 그때 저희 둘 다 바람 정말 많이 맞았어요. 스쿠터를 타면 좋은 게 하나 있어요.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눈에 띄면, 바로 스쿠터를 멈추면 돼요. 그리고 스쿠터에서 내려서 구경을 하는 거죠. 근사한 카페가 보이면 내려서 음료 한 잔씩 마실 수도 있고요. 그리고 운이 좋으면 해녀들이 자맥질 하는 것도 구경할 수 있어요. 물론 즉석에서 그분들한테 싱싱한 해산물을 살 수도 있어요. 진짜 운이 좋으면 말이죠. 그런데 해녀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세요? 나중에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제주도에 내려와서 살고 싶다. 햇볕이 따뜻할 땐 한 손엔 간이의자, 한 손엔 책을 들고 해변으로 가는 거죠. 그리고 해변 구석에 의자를 놓고 앉아 책을 읽는 거예요. 그러면 참 행복할 것 같아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이한테 얘기했죠. 그이도 그러면 참 행복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꼭 그렇게 하자고 약속도 했고요. 행복했어요. 생각만 해도 행복하더라고요.”

J는 요즘 늘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현관문을 열면 J는 항상 이제 막 들어온 듯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고 있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그러고는 활짝 웃는다. 정말 활짝. 보는 사람도 저절로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J는 정말 활짝 웃는다.

“어서 와. 나보다 아주아주 조금 늦었네, 힛.”

“응, 다녀왔어. 오늘은 내가 J 너보다 일찍 온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간발의 차이로 늦었구나.”

“응, 오늘도 역시 간발의 차이야, 힛.”

나는 집 현관문을 열 때 아무도 반겨주는 이가 없는 게 싫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집에서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싫다. 딱 이 타이밍이 좋다. 누군가 나보다 아주 조금 먼저 집에 와 있는 게 좋다. J가 그렇게 해주고 있어서 좋다.

“저녁은?”

“안 먹었어. 배고프다.”

“응, 알았어. 조금만 참아. 금방 저녁 차려줄게. 아니면 양치질은 하지 말고 샤워부터 우선 하고 있던가. 아 참, 청하 사왔어? 요리할 때 필요하다고 내가 아침에 부탁했었잖아.”

“아, 그랬지. 깜빡했다. 내일 사올게. 꼭 사올게.”

“아이 참, 오늘 필요한데 내일 사오겠다고 하면 어떡해. 맛있는 거 해주려고 그랬는데. 지금 나가서 사와. 얼른, 얼른.”

“아, 귀찮은데. 내일 진짜로 사올게. 오늘 내가 너무 피곤해서 말이지.”

“안 돼. 빨리 갖다 와. 안 그러면 저녁 안 해줄 거야. 나가, 나가.”

그러면서 J는 내 등을 떠밀었다. 힘이 센 J. 아, 이럴 때는 정말 귀찮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잠에서 깨야 하는 것 다음으로 귀찮다. 하지만 나가야 한다. 가서 J가 원하는 걸 사와야 한다.

우리는 저녁을 먹는 내내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서로에게 들려준다.

J가 만든 닭고기 카레는 맛있었고, 이야기할 때 J의 표정은 실로 변화무쌍했다. 웃고 찡그리고 눈을 흘기고. 텔레비전은 켜놓았지만, 우리 둘 다 거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음식에 집중하고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피곤한 J를 위해 대신 설거지를 하고, 그러는 동안 J는 간단하게 집안 청소를 한다. 하지 말라고, 그냥 두라고, 내가 하겠다고 해도 소용없다. 밥이랑 빨래, 청소는 꼭 자기가 할 거라면서, 나더러 신경 끄라고 또 한번 눈을 흘긴다. 나는 J가 눈을 흘기는 게 좋다. 앙증맞게 화를 내는 것 같아서 더없이 사랑스럽고 귀엽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 몽이처럼. 몽이는 항상 내가 집 현관문을 열면 그 앞에서 나를 반겨준다. 닭고기를 좋아하는 우리 몽이. 몽이가 기분 좋을 때 하는 한 가지 행동이 있다. 배를 바닥에 착 붙인 채 네 발로 기어다닌다. 덕분에 나는 따로 집안 청소를 할 필요가 없다. 몽이가 알아서 방바닥을 쓸고 닦고 해주니까. 기특하다.

“아, 제주도 하면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어요. 제주 흑돼지 같은 거야 뭐 말할 필요도 없고요, 음, 전복처럼 생긴 그게 뭐죠? 전복보다는 좀 작은데, 음, 기억이 안 나네요.”

“오분자기 말씀이세요?”

“아, 네, 맞아요. 오분자기. 그걸로 끓인 된장찌개도 일품이에요. 그리고 제주도는 가정식 백반집 아무 데나 들어가도 음식이 다 맛있더라고요. 희한하죠. 제주도 여자들은 손맛을 타고나는 것 같아요. 누구한테 들은 얘긴데, 제주도는 남자들이 좀 게으르대요. 대신 여자들은 억척스럽고. 맞는 말 같지 않나요? 제주 해녀 이미지도 좀 억척스러움 같은 게 있잖아요. 그리고 제주 시내 어딘데, 음,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어요. 아무튼 야시장 열리는 곳이 있어요. 꽤 유명해요. 외국인들이 더 많이 찾을 정도니까요. 오후 다섯시부터 열리는데, 상인들은 세시부터 나와서 준비를 하죠. 각종 공예품들부터 시작해서 전통주나 옷, 아이들 장난감, 오래된 책, 직접 그린 글씨나 그림, 길거리 음식까지. 그런데 거기서 파는 길거리 음식들이 정말 다 맛있어요. 한마디로 싸고 맛있어요. 국수, 생선구이, 간이 뷔페, 각종 꼬치구이, 뭐 이런 것들이에요. 다들 천 원이나 이천 원 정도면 사먹을 수 있어요. 둘이서 한 만 원 정도면 정말 배 터지게 먹을 거예요. 이왕 온 김에 야시장에나 들러볼까요? 후후, 그이도 없는데 제가 별소릴 다 하네요.”

제주도에 외국인들이 주로 찾는 야시장 같은 건 없다. 게다가 각종 공예품들이나 천 원, 이천 원 하는 길거리 음식들이라니, 도대체 어느 나라 야시장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목적지가 가까워져서일까, 손님은 말수가 부쩍 많아졌다. 지금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기억, 그걸 정리할 정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가만 놔두면 손님은 혼자 계속 중얼거린다. 초조하고 겁이 나서 뒤죽박죽 되어버린 기억 혹은 추억, 그걸 두서없이 중얼거린다. 그러면 그럴수록 기억 혹은 추억은 더욱 뒤죽박죽이 된다. 하지만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 그건 참을 수 없는 공포, 아니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을 동반하니까. 그때가 되면 통제가 안 된다.

‘손님을 동요하게 만들지 마라.’ 면허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이론 교육 첫 시간에 강사가 칠판에 쓰면서까지 강조한 말이다. 물론 손님에게 만일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그건 택시 기사 책임이 아니다. 다만 후유증이 크다. 운전대를 잡을 수 없을 만큼 크다.

 

 

2

 

목적지에 다 온 지는 꽤 됐다. 다만 손님에게 알려줄 타이밍을 찾고 있는 중이다.

손님은 여전히 내게 무언가를 들려주고 있다.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해 시동을 끈 상태인데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이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손님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물론 손님은 알고 있다.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택시 기사의 입에서 ‘손님, 다 왔습니다’라는 말이 안 나오기를 빌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마주하는 걸 최대한 늦추고 싶은 것이다. 그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다. 하늘이 무너질 만큼 엄청난 무게를. 그래서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손님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 이제는 춥지 않은 걸까. 더 이상 몸을 떨지는 않고 있다.

나는 앞좌석 창문을 내렸다. 바닷가라서 그런지, 날은 더웠지만 바람은 시원했다. 비로소 살 것 같았다.

월정리 바닷가 근처 어느 절벽. 바다로 뛰어들기 좋은 저 절벽이 보인다.

“이런 날씨에도 바닷속에 오래 있으면 춥겠죠?”

“네, 그럴 겁니다. ……저기, 손님, 다 왔습니다.”

“네, 다 왔네요. 여기가 맞아요. 고마워요, 제가 진정될 때까지 말하지 않고 기다려주셔서.”

그런 뒤 손님은 뒷좌석 문을 열려고 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 멈추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열어달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문의 잠금 버튼을 눌렀다. 이러면 밖에서도 열 수 없지만, 안에서도 열 수 없다. 손님이 아무리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당겨도 소용없다. 내가 잠금 장치를 해제하지 않는 한 문은 안 열린다. 손님은 차에서 내릴 수 없다. 어차피 차의 창문은 10㎝밖에 안 열린다. 그곳으로는 사람이든 귀신이든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 택시는 그렇게 되어 있다. 조금 특별한 택시니까.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

“원래는 같이 뛰어내리기로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남편이 저를 절벽 안쪽으로 밀었어요. 그러고는 혼자 뛰어내렸죠. 저 절벽에서요. 제 이름을 부르면서요. 사랑한다고 외치면서요. 미안하다고 외치면서요. 살라고 외치면서요. ‘J야 사랑해! 미안해! 넌 살아!’ 남편은 저더러 살라고 했어요.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잘 알면서. 누구보다 본인이 더 잘 알면서. 그러면서 저더러는 살라고 했어요. 저를 버리듯이 밀치고 혼자 뛰어내렸어요. ……하지만.”

손님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나는 그저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살라고 했지만, 그래서 살려고 했지만, 살지 못하고 결국 죽은 자. 그 선택을 하기까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위로 같은 건 부질없다. 잘한 선택도 아니고, 잘 못한 선택도 아니다. 잘했다고 할 수도 없고, 잘 못했다고 할 수도 없다. 죽은 자에게는 어떠한 위로도 통하지 않는다.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언제든 손님이 이제 됐다고 하면, 이제 가자고 하면, 그때 가면 된다. 손님이 가야 할 곳, 이승과 저승의 경계, 죽은 자가 가야 할 그곳의 입구까지.

이 택시에 탄 이상, 손님이 내려야 할 곳은 거기뿐이다. 나는 반드시 손님을 모시고 그곳까지 가야 한다. 손님이 동요해서 날뛰기라도 하면 문제가 커진다. 죽은 자는 너무 오랫동안 이승에 머물면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든 산 자에게 해코지를 하게 된다. 그런 유혹에 빠지게 된다. 자칫하면 내가 귀신에 홀릴 수도 있다.

나는 매번 고민에 빠진다. 손님을 모시고 그곳까지 가면, 뭐라고 인사를 하는 게 좋을까.

그냥 “안녕히 가십시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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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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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몬 15.02.01 09:17 댓글

    아이 님, 이번 글 잘 읽고 가요^^ 자유분방하다고 느껴지면서도 뭔가 꽉 찬 기분이 들었습니다. 슬프기도 하고 무언가 무섭기도 하고. 서로 만나선 안 되는 감정이 상충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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