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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않는 어떤 것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라고는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은, 3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가 회사의 신입 여직원과 모텔에 드나들다가 내 친구에게 딱 걸린 그 날의 일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라는 말에, 지난 3년이 아까워서 한 번만 용서해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게 한 번이 아니라는 것은 며칠 뒤 그 신입 여직원이 내게 보낸 메일을 받고 알았다.

이런 메일을 왜 보낸 걸까, 아니, 내 메일 주소는 어떻게 알아본 걸까. 한참 생각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서로 뜸을 들이고 망설이다가,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 새끼 페이스북에서 내 흔적을 찾아봤다고 했다.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로 여자친구가 있는 줄은 몰랐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 보았다가 누군가의 충고대로 둘이 나누었던 카카오톡 채팅창을 캡처해서 보내긴 했다지만, 정말로 남의 남자를 빼앗을 만한 깡도 없는, 그냥 서투른 여자애였다. 차라리 나쁜 년이었다면 화라도 제대로 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남자친구가 나보다 한참은 어린 애와 놀아났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내가, 꼬임에 넘어간 건지 먼저 꼬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튼 내 남자친구였던 개새끼와 놀아난 새파랗게 어린 여자애를 먼저 달래주고 위로까지 해 주는 불상사는 없었겠지. 나는, 그냥 그 아가씨에게 말했다. 그건 그냥 실수야. 인생은 길어. 그쪽도 나도, 그냥 발정난 개새끼한테 잘못 물린 걸로 치자. 그런데 그녀는 그 발정난 개새끼에게 잘못 휘말렸다 치고, 나는 무얼까. 그게 개인지 사람인지도 모르고 3년을 넘게 사귀다 못해, 결혼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세우고 있던 나는.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예정대로 결혼하자고 싹싹 비는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매몰차게 거절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치졸하며,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상대에게 마주 진상을 부려대는 한심한 인간인지 알았다. 그때 그 여자애하고나 잘 해보라고 했더니, 걔는 모아놓은 돈도 없고 철도 없어서 안 된다는 소리나 하고 앉았다. 미친 새끼. 나는 더치페이도 잘 하는 개념녀이니, 결혼은 나 같은 여자와 해야 한다는 칭찬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갑자기 내 인생이 쓰레기같이 느껴졌다. 아니, 쓰레기는 이 자식이지. 누굴 호구로 알아도 분수가 있지. 나는 그 새끼의 따귀를 딱 소리가 나게 올려붙이고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 게시판에 그 새끼가 한 짓들을 한 톨도 빼놓지 않고 올려버렸다.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 여자애는 결국 어떻게 했을까.

그 새끼와 헤어졌을까. 아니면, 잘못했다고 싹싹 비니까 그냥 받아주었을까. 그 캡처를 보낸 것은 나보고 그와 헤어져달라는 뜻이었을까, 그렇지 않았으면 자신을 대신해 응징해달라는 뜻이었을까. 어느 쪽이라도, 가장 못난 것은 나였을 거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세상에 확실한 것 따위 아무 데도 없다. 나는, 방을 정리하고 그가 사준 물건들을 모조리 눈에 띄지도 않게 치워버리고, 침대 시트도 마트에서 적당히 싼 것을 두어 장 사들고 돌아왔다. 그가 누웠던 시트는 걷어서 의류 분리수거함에 밀어넣었다. 지긋지긋했다. 속옷바람에 침대에 누워 있다가, 문득 몸을 일으켜 거울을 보았다. 군살이 붙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바다는커녕 수영장도 제대로 가지 못해서 그저 희멀겋기만 한 몸이 거울에 비쳤다. 속옷까지 벗자, 여기저기 나이를 먹고 처진 흔적들이 감출수도 없이 눈에 들어왔다.

짜증이 났다. 가장 예쁘고 자신있던 순간들을 그런 놈과 보내느라 다 날려버리고, 이제는 축축 쳐지기 시작한 가슴과 물렁물렁한 옆구리를 한탄할 나이가 되어 버렸다니. 이런 억울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담. 나는 가르시니아인지 뭔지가 들어있는 무슨 살 빠지는 약을 사고, 홧김에 헬스장도 3개월치를 한 번에 등록해버렸다.

꾸준히 무엇을 하는 데, 연애가 끝난 시점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트레이너의 지시대로 몸을 움직였다. 내 또래라는 트레이너의 탄탄한 몸을 보면서, 나는 내가 인생을 한참 잘못 살았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가, 트레이너가 운동만 하는 사이에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고 한참 자위하기를 반복했다. 어쨌든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옛날 사람들의 헛소리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시간이 넘게 힘들여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슬픔이건 쓸쓸함이건 분노건 고통이건 떠올릴 새도 없이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정신없이 잠들 수 있었으니까. 패션잡지 같은 곳의 인생상담란에 실려 마땅한 말투로 말하자면, 탄탄한 복근과 늘씬한 옆구리는 덤일 뿐이었다. 운동에도 점점 익숙해지고, 트레이너와도 제법 친해진 어느 날, 나는 샤워를 마치고 나오다가 트레이너의 옆구리에서 그동안 눈치채지 못한 흉터 하나를 발견했다. 뭔가를 지워낸듯한, 낙서 위에 다시 선을 직직 그어 없앤 듯한 그런 흉터였다.

“아, 별 거 아니에요.”

트레이너는 웃으며 대답하다가, 얼른 덧붙였다.

“어릴 때 문신을 했어요. 요만하게, 작은 걸로.”

그녀는 왜 문신을 하려고 했을까. 그녀는 왜 새겼던 문신을 지웠을까. 저런 흉터를 남기면서까지. 문득, 몸에 새긴 흉터만은 영원히 남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한 언제까지나 함께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무엇을 새기고 싶은지도 정하지 못한 채로,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참동안 인터넷을 뒤지며 문신 후기를 찾아 읽었다. 연예인들의 타투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앞으로 다시 만나게 될 연애라는 것은, 아마도 한참을 재고, 수도 없이 상대방을 떠보며,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오래 갈 것도 없이 결혼을 전제로 서둘러 만나고, 서로 조건이 맞으면 결혼을 하게 되겠지. 그런 점에서, 이제 더 이상의 “연애”라는 것은 있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후의 연애라는 것은 결국 처음부터 결혼시장을 상정하고 만나는 것일 뿐. 나는, 직장생활을 8년쯤 한 지금의 나는, 이미 연애시장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걸 깨닫자마자 당혹스러웠다. 서른 두 살이, 대체 뭐가 그렇게 많은 나이여서.

헤어지고 한 달 반. SNS에서 농담처럼 읽고 낄낄거렸던 찌질한 구남친의 텍스트들이 현실이 되어 내 스마트폰에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 여자애하고는 잘 되지 않았나보다. 고소하게 되었네. 낄낄거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비웃어줄 기력조차 없었다. 아침에 밥을 먹고 회사에 가고, 퇴근해서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는 드라마를 한두 편 보다가 잠이 드는. 그 단순한 생활 속에서 나는 계속 앓았다. 차라리 겉으로 드러나게 어디 아픈 거라면 병원이라도 가 보겠는데, 내가 앓는 것은 그저 시간이었다. 스물 아홉 살, 그를 만난 이후로 그대로 박제되었던 시간이, 3년의 무게를 얹어 뒤늦은 아홉수를 챙기고 들던 그 때.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영원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런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뼛속까지 울리는 듯한 아픔이 마음속에서 파문을 그렸다. 며칠을 더 앓던 어느 날, 드디어 회사 앞으로 그 구질구질한 남자가 찾아왔다.

“보고 싶었어.”

하마터면, 나도 그리웠다고, 보고 싶었다고 대답할 뻔 했다.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르지만, 그건 그냥 실수였어. 그냥 실수라고. 아, 넌 진짜. 그냥 실수 좀 한 것 갖고 쪼잔하게 자꾸 이럴래?”
“나한테 더 안 그러면 되는 거잖아.”
“야, 나도 힘들어.”

힘들다는 말을 감히 내 앞에서 하고 있다. 역겨웠다.

“넌 뭐, 운동도 다니고 뭐 배우러도 다니고 잘 나가나 본데, 나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넌 나 안 보고 싶었어?”
“애초에 네가 자초한 거잖아. 누가 바람 피우래?”
“지금 바람이 문제야? 너, 인터넷에 글 올리고 그건 또 뭐야.”
“내가 인터넷에 글을 올리건 뭘 하건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네가 올린 거 맞지? 오늘 팀장이 나 불러서 묻잖아. 우리 회사 사람 이야기라는데, 그거 나 아니냐고.”
“그거 너 맞아.”
“야, 우리 고과도 있고...... 그렇게 인터넷으로 시끄러운 소문 나면 권고사직 당하고 그런단 말야. 오늘 팀장이, 회식 있으니까 여친 데려오라고 그랬어. 좀 같이 가 줘라.”
“내가 왜, 너랑 거기 같이 가야 하는데?”
“여친이랑 헤어졌다고 하면 빼도박도 못하고 찍힐 거 아냐. 야, 사람 좀 살려 줘라. 어차피 너, 그 나이에 딴 남자 누가 너 받아 줄 것 같아? 너 잠깐 삐진 걸로 그러는 거 아니다. 내가 너 힘들게 한 거 다 알았으니까, 가자. 좀 가자고. 야.”

손목을 낚아채어 힘으로 끌고가려는 것에, 화가 치밀었다. 지금까지도, 나한테 미안한 게 아니라 그저 회사에 소문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꼴사나웠다. 매고 있는 넥타이로 목이라도 졸라버리고 싶었다. 그러는 대신 나는 소리를 질렀다. 도와주세요, 사람 살려요. 소리를 지르며 왼손에 든 가방으로 그 녀석의 얼굴을 때렸다. 우리 회사 사람 한둘이 달려와 그녀석의 팔을 비틀었다. 누군가 경찰에 신고해 준 모양이다. 곧 경찰차도 왔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 녀석이 정말로 치한인 게 아니면 도와준 우리 회사 사람들이 엉뚱하게도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말에 동행할 수 밖에 없었다. 죽고 싶었다.
 
 
 
 
“아, 나 얘 남친이라니까요? 결혼할 사이에요.”
“지금은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볼 장 다 본 사이에 치한이라니 무슨 헛소리야.”
“헤어져 놓고는 밤마다 문자 보내서 귀찮게 굴고, 이젠 회사 앞까지 와서 사람을 끌고 가려고 하는데 그게 스토커고 치한이 아니면 뭐야?”

경찰서에서 목청을 높여 싸우면서도, 나는 우리 회사 사람들이 이 일을 회사에 소문낼까, 그것 하나가 걱정이었다.

“신입 여직원이랑 모텔에서 기어나와 놓고는, 뭐? 이제와서 너네 팀장이 오해하면 안 되니까 따라오라고? 넌 대체 내가 뭘로 보이니?”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넌 내가 회사에서 고과 불이익 먹어도 상관없어?”
“아주 짤렸으면 좋겠다, 이 나...... 나쁜놈아!”

나쁜새끼, 개새끼, 죽어버리라고 말하려다가, 나는 저쪽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우리 회사 사람들을 흘끔 쳐다보았다.

“인터넷에 올린 거, 그거나 당장 내려. 너 때문에 내가 되는 일이 없잖아!”
“거기 이름도 주소도 회사 이름도 하나 안 썼거든? 그게 너처럼 보인다면 네가 평소에 행실을 그따위로 하고 다닌 거겠지.”
“아우, 이 썅년이 진짜.”

막말이 나왔다. 우리 회사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경찰은 그가 나를 향해 손을 들어올리려 하는 것을 바로 제지하고, 여경을 불러주었다. 전화번호 바꾸세요. 이사를 하시거나 방범창도 꼭 새로 다세요. 자꾸 연락하면 그때마다 다 캡처해서 신고해세요. 경찰에서 몇 번 전화 가면 어지간한 남자들은 겁먹고 떨어지니까.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조금은 지겹다는 듯한 태도였지만, 그녀는 내게 필요한 것들을 죽 적어서 건네주었다. 인터넷에 올린 건 괜찮나요?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실명이나 회사를 언급한 것도 아니니 큰 문제 없을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나왔다. 나의, 한때 남자친구였다고 말하는 것도 짜증나고 쪽팔리는 저 한심한 작자는 경찰 앞에서도 그 여자가 그럴 줄 몰랐다, 개념녀인 줄 알았는데 그냥 쌍년이라고, 자기야말로 3년동안 꽃뱀에게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헛소리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확, 저 녀석네 팀장에게 전화라도 걸어서 “댁네 부하 직원, 지금 스토커 혐의로 경찰서에 있어요.”하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나는 나를 도와준 회사 사람들을 모시고 나가, 사무실에서 나눠 드시라고 크리스피크림 도넛과 커피를 인원수만큼 사서 안겨드렸다. 창피한 것은 창피한 것이고, 그때 이 분들이 안 도와주셨으면 정말로 저 새끼에게 끌려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스토커가 회사까지 따라와서 경찰에서 조사받고 왔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었고, 상사가 면담을 요구했다. 나는 바람피운 전 남친이 혼자 그러는 것이고, 회사 앞까지 와서 끌고가려고 했다고 짧게 설명했다. 상사는 앞으로 회사 일에 지장 없게 하라고 주의를 주고, 오늘은 들어가서 쉬라고 배려해 주었다. 감사할 일이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나는 집에 웅크려 있기도 싫어, 헬스장에 나갔다.

“정말 나쁜 새끼네요.”

누구에게든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트레이너는 다행히도 시간이 빈다고 했고, 나는 몇 시간 일찍 오늘의 운동을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며 나는, 트레이너에게 오늘 겪은 일들을 이야기했다. 이것도 업무의 일부라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여자로서 어느정도 공감해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쪽이라도 그녀는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었다. 입과 손으로는 내 어깨와 허벅지에 적당한 부하를 주는 운동을 계속 지시하면서. 나는, 그녀의 탱크탑과 요가팬츠의 허리밴드 사이, 나와는 달리 탄력있는 그 옆구리에 희미하게 남은 문신의 흔적, 정확히는 문신을 지우느라 생긴 흉터를 바라보다가 문득 중얼거렸다.

“나도 문신이나 할까......”
“문신요?”
“예.”
“그거, 한번 하면 안 지워져요. 지우려고 하면 흉 지고.”
“알아요.”
“갑자기 문신은 왜요. 그거 하면, 며칠 운동 나오기 힘들텐데.”

글쎄, 내가 왜 문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녀의 옆구리에 남은 문신이, 마치 한때 사랑이라고 믿었던 무언가처럼 지우려고 애써도 지워지지 않고 흉으로 남은 것을 보면서도. 왜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이 망가져버리기 직전인 지금까지도 영원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일까. 어차피, 몸에 새긴다고 해서 영원이라 부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거, 아무데서나 받으면 불법이에요.”
“알아요. 근데 받으셨잖아요.”
“이걸 어쩌나......”

트레이너는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곧 엄격하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도 문신이나 할까, 그런 생각으로 하면 100% 후회해요. 나도 그랬으니까. 대체 뭐라고 새길 건데 그래요?”
“나도 모르겠어요.”
“모른다고요?”
“몰라요. 다만,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한 언제까지 변하지 않을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그것뿐이어도 상관없잖아요.”

트레이너는 대답 대신, 내 동작에 대해 다시 구령을 붙였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의사 표시였지만, 그녀에게는 나를 붙잡아 말릴 권리가 없었고, 나 역시 그녀의 말에 있는 그대로 따라야 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먼저 해보았던 사람으로서, 했던 것을 굳이 다시 지워야 했던 사람으로서, 내게 그만큼의 충고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시술 후기를 찾아보고, 뭘 새기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트레이닝을 쉬는 것은 아무래도 아까웠으므로, 나는 할 땐 하더라도 트레이닝이나 끝난 다음에 시술을 받아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석 달의 여정이 지나고, 개인 트레이닝을 받던 마지막 날, 트레이너는 운동이 끝나고 샤워실에 들어가며 문득 내가 처음 왔던 날의 이야기를 꺼냈다.

“갑자기 운동 시작하면서, 아프다고 아야 소리도 없이 그렇게 초보자에게는 힘든 동작도 이 악물고 하시고, 처음에 열흘 넘게 거의 말씀도 안 하시는 것 보고 감은 잡았어요. 여자도 실연, 파혼, 뭐 그런 일이 생기고 나서, 안 좋은 일들 잊어버리고 싶어서, 떠난 그 사람이 후회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렇게들 오시는 분들도 많으니까.”
“그렇게 오는 사람이 많은가봐요.”
“음, 꽤 많죠. 지난 번에도, 결혼 날짜까지 잡아놓고 파혼을 당한 분이 오셨는데, 거의 한 달 동안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운동만 하셨어요.”

운동이 끝나고 샤워실에서 그녀는 머리의 물기를 털며 말했다.

“예전 남자친구가 타투를 잠시 배운 적이 있어요. 미대 다녔으니까, 그런 것을 배우려고 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의사가 아니면 그런 타투 하는 게 불법이잖아요. 그래서 결국 포기하긴 했어요. 이건 그때 남자친구가 직접 해 준 거예요.”
“아......”
“헤어지게 되니까 이런 흔적도 부담스러워 졌어요. 별 것도 아니고, 그냥 작은 새와 꽃 무늬를 새긴 것 뿐인데도. 그걸 새겨줄 때의 그 애의 마음이 떠올라서 자꾸, 신경이 쓰였죠. 아주 없애려면 피부 이식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일단 레이저로 지워보자고 했는데, 지워도 지워도 흔적은 계속 희미하게 살아더라고요. 어느 순간, 이걸 지워 없앤다고 해서 그 애와 사귀었던 내 모든 순간들이 사라져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건 이미 잉크자국처럼 마음 어딘가에 깊이 흔적을 남긴 거니까.”
 
 
 
 
어떤 것들은 그렇게, 레이저로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의 흔적처럼 영원히 가슴에 남는다. 나는 그 새끼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와 어떻게든 해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그 나쁜 새끼를 사랑했었다고, 어쩌면 이 허둥지둥하는 아주머니와 일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회사 짤리게 생겼어, 제발 어떻게 좀 해 봐. 응?”

저하고는 이제 상관없는 일이에요, 라고 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 상황이 되고서도, 다른 사람에게 착한 여자애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일까. 하긴, 그러니까 돈 모아놓은 개념녀, 요약해서 지갑 소리를 듣도록 그 녀석 곁에 있었겠지. 나는 이 악물고 다시 말했다. 저와는 상관없어요. 걔가 저한테 한 짓이 있는데. 아주머니는 애원하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이별하게 된 것도 결국은 참을성 없는 내 탓이지, 발정난 개처럼 돌아다닌 당신 아드님 탓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 얼굴이었다. 나는 더 이상의 설명도 이해도 납득도 시도하지 않고 돌아섰다. 내 등 뒤에, 저주어린 고함이 날아들어 꽂혔다. 그래서. 그래서요. 이젠 정말 누가 피해자인지, 감도 오지 않네요. 내가 무슨 변명이나 하는 전직 독재자도 아니고, 왜 나만 갖고 그래.

“소개팅이나 하자. 석 달 지났으면 소개팅 할 만 하지. 응?”

중고등학교 때 부터의 친구들이 소개팅 자리를 주선하는 사이, 나는 운동으로 조금은 날씬해진 몸에 맞게 새로 옷을 사고, 구두도 샀다. 석 달이 지났고, 넉 달이 되어가고,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문신이라고?”
“응.”
“야, 야. 그냥 그 헤나? 헤나나 해. 그거 문신 하고 후회 안 하는 사람 못 봤어.”
“맞아맞아. 연예인도 아니고.”
“사실은 우리 성규 씨도 전에 문신 새기겠다고 그랬다?”
“헐, 그래서? 그러라고 했어?”
“뭐, 발목에 작게 새기고 싶다고 하니까 그 정도야 눈에 띄지도 않고...... 근데 제 풀에 그만두더라.”
“왜?”
“오타 날까봐.”
“뭐?”
“성규 씨는 자기가 쓰는 글에 오타 나는 것도 미친 듯이 싫어하잖아. 그런데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나봐. 팔에 독일어로 문신을 새기는데, 이게 우리말이나 영어가 아니라 헛갈리니까 오타를 새기고도 서로 몰랐다고.”
“아놔. 그거 ‘차카케 살자’급인거잖아.”
“응, 응. 그렇지. 그래서 성규 씨 겁 먹고 안 했어, 결국엔. 아, 맞다. 그렇지. 근데 성규 씨가 문신 하러 간 데, 거기 그 문신 아티스트? 여튼 그 사람이 우리 고등학교 동창이다?”
“어? 누구?”
“우리 반은 아니고, 너희 반이었나? 이과 반에 맨날 혼자 다니던 여자애 있었잖아.”

이름을 듣고, 한참 망설였다.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때 우리 반에서 은따였던 여자애. 늘 혼자 다니고, 혼자 점심을 먹고, 혼자 구석에 앉아서 기묘한 그림을 그리고 있던. 미대에 가고 싶었던 것 같지만, 그런 것도 여건이 맞지 않으면 갈 수가 없었으니까.
은따이긴 했지만, 요새 애들 같지는 않았고, 그래도 주변 여자애들과 아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가끔, 드물게나마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하던 아이들 중에는, 나도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손목에 남았던 자흔들을, 언젠가 뭔가에 홀려 있는 것 같은 그 눈동자를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졸업식 날, 그 애가 내게 했던 말도.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친구가 없는거야, 네가. 그런 말을 하고 서둘러 도망쳤던 것 같다. 그 말이, 그 애에게는 비수처럼 날카롭게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카톡으로 날아온, 그 타투이스트의 예명과 연락처를 들여다보았다. 문득, 옥상에 올라갔다가 들었던 그 말과, 아프고도 날카롭던, 사실은 그건 진짜가 아니라고 믿었던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과, 그 후에도 몇 번인가, 아이러브스쿨과 싸이월드를 거치며 그 애의 흔적을 찾다가, 결국 놓쳐버리고 말았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 모든 순간들을, 지금은 기억 저 편에 그저 닫아둔 채로 살고 있었다는 것도. 영원이라는 것은 없다. 언제까지나 죄책감을 안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원히 죄책감을 간직하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심한 구남친에 대한 증오와 분노조차도 시간이 지나며 점점 흐릿해지듯이. 문득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언제까지나 영원히 나를 따라오진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은, 어쩌면 무뎌진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그건 다행한 일일까, 아니면 슬픈 일일까.
 
 
 
 
“아, 예. 최성규 씨 연락 받았어요.”

일단 타투이스트를 만나보겠다고 하자, 잡지에 칼럼을 쓰는 성규 씨는 자신의 인터뷰이였던 그녀에게 미리 약속을 잡아주었다. 새삼 내년에 성규 씨와 결혼할 것 같다는 친구가 부러웠다. 말수는 적고 글 쓸 때 건드리면 날카로워지는데다 괴짜같은 구석이 있다고 투덜거리기는 해도, 성규 씨는 어디로 보아도 마음씀씀이가 깊은 구석이 있었다.

조금은 예스러운 당초 문양들이 걸려있는, 작고 깨끗한 사무실에서는 희미한 향 냄새가 느껴졌다. 클래식 음악이 구석의 낡은 턴테이블에서 돌아가고 있었고, 입구에는 아마도 그녀의 데생인 듯한 그림 몇 점이 걸려 있었다. 나는 안내를 받아 들어간 사무실 구석의 소파에 앉아, 셔츠 소매를 둘둘 걷어부치고 검은 앞치마를 입은, 드라마나 영화 속의 무슨 화가나 조각가 같은 느낌을 쿨한 풍기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말랐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긴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서 찾아본 많은 타투이스트들과 달리, 그녀는 팔을 문신으로 뒤덮지도, 셔츠 칼라 위로 문신의 흔적을 내보이지도 않았다.

“타투에 관심이 있으시다고요.”
“......영원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짧게 대답하다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이것이 진심이라 해도, 어쩐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중학생들이나 할 법한 대답같아서.

“결혼까지 생각하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헤어졌거든요.”
“한 순간의 감정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에요.”
“알아요.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그건 너무 쓸쓸하잖아요.”

연한 차를 마시며, 나는 그녀의 작업장을 눈으로 훑었다. 페인트칠을 한 안쪽 벽에는 직접 한 드로잉들이, 직접 그린듯한 복잡한 문양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안쪽에, 커튼으로 반쯤 가려진 곳이 아마도 시술대인지 침대 비슷한 것이 놓여 있는 듯 했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그녀의 예명으로 검색을 했다. 얼굴도 들여다보았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는 걸까? 나는 그녀의 손목 안쪽이 궁금했다. 몇 번인가 그녀는 결석을 했고, 결석한 다음 날이면 으레 손목에 붕대를 감고 나타나곤 했으며, 다시 2주쯤 지나면 그녀의 손목에는 흉한 상처자국이 하나씩 늘어 있었다. 그 손목을 확인하면, 나는 그녀에게 알은 체를 해도 되는 걸까, 아니면 영영 그때 일은 다시 떠올리지 않는 편이 좋은 걸까.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아주 모르는 사이였다면 더 나았을텐데. 아니, 이미 우리는 아주 모르는 사이나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싸이월드는 2003년, 10년 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업데이트같은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싸이월드가 닫힌 이후로 우리는 처음 만난 셈이다. 그 사이, 그녀와 나는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서로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이런 것은, 쓸쓸한 걸까. 나는 고개를 들고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석 달 좀 넘게 지나셨다고.”
“예?”
“들었어요, 최성규 씨 한테. 실례가 될 줄은 알지만, 프리랜서들이 아니라 조직에 속해 있는 분들은, 타투를 새기시고도 곧 후회를 하시거든요.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깊이 나누고, 의논을 하고, 정말로 이 흔적을 돌아가실 때 까지 갖고 갈 수도 있다는 것을 100% 납득하신 뒤에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도, 서두르시죠. 서두르고 후회 많이 하세요. 그러니까, 상대에 대해 조금은 더 알아야 할 거라고, 성규 씨가 말씀해 주셨어요. 불편하신가요.”
“......아뇨.”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혹시 우리가 동창이라는 이야기도 들으셨어요?”
“예.”
“......누군지 기억나요?”
“......예.”

맙소사, 혼자 복잡하게 고민하던 것이 한순간에 허무하게 날아가는 이 느낌이라니.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천천히 돌아섰다.

“고민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인데...... 이제는 만나도 괜찮겠구나 싶었어요.”
“아......”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어디서든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속상한 일이 있었다고 해서 저도 좀 마음이 안좋았어요. 견본을 좀 보시겠어요?”
“저기, 난, 저는......”

이럴 때는 반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존대를 해야 하는 걸까. 그쪽이, 먼저 틈을 보여주지 않으니 밀고 들어갈 수도 없다. 어쩌면 친한 척 먼저 반말을 하더라도, 그쪽은 결코 나에 대해 존대를 풀지 않을 지도 모르고. 그녀는 견본집을 들고와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사진이 가득 든 파일을 손에 든 채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영원 같은 것은, 없어요. 어디에도.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그건 그냥 어렸을 때의 추억일 뿐이고.”
“그 후로 어떻게 지낸 거예요. 대학 가서도...... 연락도 없고 찾을 수도 없어서......”
“그냥, 따분하지 않게.”
“지금도 저기, 그...... 여자 좋아해요?”
“걱정하지 말아요. 안 덮쳐요.”
“그 뜻이 아니라......”
“그때는 그쪽과 단 하루만 데이트를 할 수 있어도 다음날 죽어도 좋을 것 같았는데, 지금이야 취향이 많이 달라지긴 했죠. 설마 실망했어요?”
“그런 건 아니지만, 걱정했어요.”
“역시, 좋은 사람이라니까.”

견본집을 넘기는 그녀의 손목 안쪽에, 꽃이 피어나듯 희미하고 붉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목을 손가락으로 건드려 보았다. 그녀는 어깨를 움찔거리다가, 내 얼굴을 바라보고 손목 안쪽을 보여주었다. 가득했던 자흔 위에, 꽃들이 피어 있었다. 크고 작은, 그러나 눈여겨보지 않으면 바로 눈에 띄지는 않는 그런 꽃들이.

“자요.”
“......”
“괜찮아요, 뭐가 궁금한지 짐작 가니까.”
“미안해요.”

영원이란 어떤 것일까. 정말로 영원이라는 것은, 있기는 한 걸까. 이 몸에, 무엇이든 바늘과 잉크로 흔적을 남기면, 그 흔적은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한 언제까지나 함께 갈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남기고 싶었던 걸까. 어떤 이에게 타투란, 신념을 새기는 일과 같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 말을 읽으면서도, 만류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여기까지 와 버렸다. 아직 아무것도, 어떤 결심도 세우지 못한 채로. 나는, 내가 알았던 이가 자신을 가두고 있던 갑갑한 교복같은 껍질을 벗어던지고 날아올라 세운 이 성에, 알몸이 된 기분으로 와서 앉아 있다. 나는 문득, 내가 그 이별을 하고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울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과 함께, 서러움이 목구멍을 밀고 나오려 했다. 나는 애써 입을 다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사랑의 상처는 또 다른 상처로 덮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지금 사람을 소개받는 건, 결국은 결혼 상대를 찾는 거니까요.”
“신중한 건 좋다고 생각해요. 나도, 많이 고민했으니까.”
“결혼...... 했어요?”
“같이 사는 사람은 있어요. 아니, 그 보다는 이 손목.”

그녀는 내가 잘 볼 수 있게 손목을 들어올렸다가, 셔츠 단추를 풀어 소매 끝까지 내린 뒤 다시 잠갔다.

“나는, 어떤 상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흉터는, 어떤 그리움은.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의 상처를 또 다른 사랑으로 덮을 수 있다면, 어떤 흉터는 또 다른 흉터가 꽃이 되어 덮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
“좋아요, 일단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죠. 타투를 새길지, 아니면 선을 봐서 결혼할만한 사람을 찾아볼지, 그도 아니면 언젠가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혼자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질지의 문제는 좀 천천히 생각해도 되니까요. 오늘 오후에 다른 일 있나요?”
“아뇨.”
“없으면 일단, 지나간 이야기부터 다시 해 보죠. 일단은, 고등학교 때의 친구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도 좋고요. 어떤가요?”
“좋아요.”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는 얼른 고쳐 말했다.

“응, 그래.”
“그래. 그나저나 어떤 남자길래, 그 성규 씨가 자세한 말은 할 수 없지만 같은 남자가 봐도 아주 나쁜 새끼라고 몇 번이나 강조를 하고 간 거야?”
“있어, 좀. 그런데 성규 씨 하고는 오래 알았어?”
“알기야 오래 알았지. 재작년인가...... 타투 새기고 싶다고 난리를 치는데, 아무래도 여자친구가 달갑지 않아 할 것 같아서 이 바닥의 도시전설들을 좀 들려주긴 했거든.”
“아, 성규 씨 여자친구도 우리 동창인 거 알아?”
“알아. 말 해본 적은 없는데 얼굴은 생각나. 근데 성규 씨가 소개 안 시켜주더라.”
“왜?”
“왜긴 왜야, 성규 씨 여자 취향이랑 내 취향이 비슷해서 그렇지. 아, 걱정하지 마. 넌 아냐.”
“......이런 말을 듣고 내가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뭐긴 뭐야. 그건 그렇고, 그 나쁜 새끼 이야기 좀 들어 보자. 대체 어떤 놈이면,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평범하고 얌전한 요조숙녀가 문신을 뜨겠다고 날 찾아올 결심을 하는거니,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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