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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소설]
Written By K.kun




                              『죽어야 하는가, 언제, 사람은』


  「백영환(白榮歡) 은월호가 떠나야 한다는 말에 눈물을 흘리는 소녀의 등
에 팔을 올려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러자 소녀는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중원 제일 미남자라 불리는 자를 촉촉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백영환이 말했다.

‘내 몸은 비록 이곳을 떠나지만 마음만은 낭자의 곁에 남아있을 것이오.’

‘아아. 월호님. 정녕 가셔야 한단 말입니까? 잊을 수는 없단 말입니까?’

  그의 품에 안겨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소녀의 말에 은월호는 잠시 부
드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그대의 곁에 있고 싶소. 하지만 나에게는 반드시 완수해야하는 천명
(天命)이 있소이다.’

‘천명이 저보다 중요하단 말인가요?’

  그녀가 토라진 목소리로 말하자 은월호는 거침없이 그녀의 입술에 자신
의 입술…….」



“……꿀꺽”

  자색 수련복을 입은 소녀가 침을 꿀꺽 삼키자 낚싯대를 한손으로 붙잡고
흘러가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청색 도포를 입어 얼핏 잘못 보면
도사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할 수도 있는 남자가 피식 웃었다. 그의 이마에
는 [魔]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수놓아져 있다.

“뭐냐? 야한 거라도 나왔냐?”

“……아닙니다.”

  이미 익어버린 홍시처럼 붉어진 소녀의 얼굴은 그녀가 방금 전까지 무엇
을 읽고 있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을 잘 알기에 남자는 낄낄 웃은 다
음 낚싯대를 바닥에 고정시킨 다음 털썩 뒤로 누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가을 햇빛은 나뭇가지에 대부분
이 가려져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덕분에 남자는 눈살을 찌푸릴 만한
일이 없었다.

“저기 사부님.”

“응? 왜 그러냐?”

“이것도 정말 훈련인가요?”

“뭐가?”

“이런…… 서적을 읽는 거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알았기에 남자는 누운 상태에서 씩 웃었다.

“도색서적?”

  간신히 평정을 되찾은 소녀의 얼굴이 다시 확 붉어졌다. 그녀가 사부님이
라 부른 남자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색서적 좀 본다고 눈이 빠지는 것도 아닌데 어때. 너도 좋아서 계속 읽
고 있잖아?”

“사, 사부님!”

  당황한 그녀가 귀여웠는지 그는 낄낄 웃은 다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누구였는지 아느냐?”

  소녀는 당연히 안다는 듯 자신 있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교에서 가장 유명한 살수이시죠.”

“하하하!”

“물론 자칭.”

“…….”

  조금 전 자신을 놀린 걸 복수라도 하듯 그녀는 웃던 사부의 얼굴에 일침
을 가한 다음 강 건너편에서 일하는 어부들을 빤히 쳐다봤다.

‘애가 하는 말에 화를 내야하나…….’

“흠흠. 어쨌든 사람들은 흔히 살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곤 하지. 살수는 감
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맞느냐?”

“예. 제가 걱정하는 것도 그거에요. 저는 정말로 살수가 되기 위한 과정을
‘착실히’ 밟고 있는 건가요?”

“너는 인간이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

“내가 처음에 뭐라고 가르쳤지?”

  그의 말에 소녀는 혀를 삐죽 내민 다음 말했다.

“모르겠다면 ‘모르겠습니다.’라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알겠느냐?”

“…모르겠어요.”

  낚싯대에 반응이 왔다. 그러자 남자가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낚싯대를 붙
잡고 정신을 집중하여 물고기가 물었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신중한 태도로
팔을 움직였다. 조금 강하다 싶으면 힘을 풀었고 조금 느슨하다 싶으면 낚
싯줄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의 힘만 쓰면서 물고기의 힘을 뺐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남자는 낚싯대에 매달린 줄을 수도(手刀)로 끊었다. 빠르고 정
확한 솜씨였다. 표면까지 따라왔던 물고기가 도망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소
녀는 즐겁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사부를 응시했다.

“낚시가 그렇게 좋으세요?”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것보단 좋지. 손맛이라는 게 있거든.”

“전 이해를 못하겠어요.”

“하하핫. 하긴 너는 도색서적을 더 좋아하지.”

“사부님!”

  소녀의 살기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것을 본 남자는 배를 붙잡고 풀밭 위
를 뒹굴 거렸다. 그녀가 화를 내봐야 자신에게 아무런 해도 가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한참 후에야 웃음을 멈춘 그는 풀밭 위에 바르게 앉았
다.

“웃고, 울고, 화내고, 실망하고, 투덜대고, 짜증내고, 의심하고, 확신하
고……. 사람에겐 많은 감정이 있고 감정이 없는 건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교주님 딸이 키우는 강아지도 자신을 길러준 주인에겐 애정을 갖는 법인데
더욱 복잡한 사람이 어찌 감정을 없앨 수가 있겠느냐. 살수도 사람인 이상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는 거지.”

  남자는 잠시 말을 끊었다. 자신을 개에 비유했다면서 소녀는 작게 투덜거
렸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강 건너편에서 향긋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
며 눈을 감았다.

“잊지 말아라. 사람은 감정을 조절할 수는 있을지언정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모든 감정을 가슴에 품어라.”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나요?”

“살수가 되지.”

  가슴에 감정을 품는 것만으로 살수가 될 수 있는 거냐고 소녀가 묻자 남자
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을 죽이는 건 감정을 죽이는 거다. 상대가 무슨 감정을 품든 그 감정
을 이미 알아버린 너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상대를 죽일 수 있게 된다.”

“……조금 의심스럽지만 믿어볼게요.”

  나름 진지하게 말했다고 생각한 남자는 실망이 담긴 한숨을 푹 내뱉었지
만 소녀는 끝까지 자신이 내뱉은 말을 바꾸지 않았다.







  노란 봉우리를 활짝 피어오른 국화의 존재가 지금이 겨울이라는 걸 말해
주는 가운데, 눈이 수북이 쌓인 마당에서 자색 수련복을 입은 소녀와 청색
도포를 입은 남자는 손에 검 대신 빗자루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열심히 빗자루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눈을 한쪽으로 쓸어내는 소녀와는 달
리 남자는 그녀를 감독이라도 하듯 엄한 눈으로 주시했다. 그러자 이내 소
녀의 불평이 쏟아졌다.

“도대체 왜 어째서 우리는 하인을 부리지 않는 거죠? 사부님께서 교내에서
지위가 높으시다면 교주님께서 하인 두세 명 붙여주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이것도 훈련이야 훈련.”

“훈련하다가 얼어 죽겠어요!”

  남자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 아침에 뜀뛰기를 몇 개 했더라?”

“…500개요. 팔굽혀펴기는 300개 했어요.”

“횟수를 100개씩 늘리자.”

“사사사사사, 사부님!”

“아아. 시끄럽다. 이것도 기본 근력을 키우기 위한 거야. 잔말 말고 실시해.”

  사실 최근에는 사부 몰래 내공을 운용하기 때문에 100개를 늘린다고 꽁꽁
얼어버린 겨울 절벽을 맨손으로 기어오르는 수련보다는 100배 쉬운 일이었
다. 단지 내공에 대한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녀는 과격한 반응을 했을 뿐
이다.

  일부러 신경질적으로 눈을 쓸어내는 와중에 한 무더기의 눈이 튀어 화단
에 피어있는 국화를 덮어버리자 소녀는 깜짝 놀라며 국화를 뒤덮은 눈을 퍼
냈다. 국화는 그녀의 사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다. 그 이유는…….

“애 좀 봐라. 내가 그걸로 술을 담그기 위해 애지중지 키우고 있다는 걸 알
면서도 대놓고 눈을 덮어버리네.”

“칫. 실수에요. 쩨쩨하게 남자가…….”

“…….”

  공격의 주도권을 확보했다고 여긴 그녀는 지금 상황에서 치명타를 날려야
겠다고 생각했는지 빗자루에 몸을 지탱한 다음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사부님에게 여자가 안 따르는 거라고요.”

“……뭐? 여, 여기서 왜 그런 말이 나오는 거냐?”

“생각해보세요. 천하제일의 실력을 가진 류혈 교주님은 예전에 결혼을 하셨
고 예쁜 따님까지 낳으셨잖아요. 사부님은 천하제일의 살수라고 해놓고서
아직 결혼은 고사하고 애인도 없으시잖아요. 제 말이 틀렸나요?”

“…….”

  그렇게 생각하니 할 말이 없어진 남자는 오늘따라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비좁게 보이자 심적 괴로움을 느꼈다. 궁지에 몰린 사부를 그냥 둘 제자가
아니었다. 방금 공격은 지금의 공격을 위한 포석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부님도 매일 아침마다 불쌍한 제자나 건들지 말고 연애 좀 하
시란 말이에요.”

  사부는 언제부터 네가 내 앞날을 걱정했냐는 얼굴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
다가 한 마디 내뱉었다.

“……꿇어라.”

“이래서 충신들이 죽어 나간다니까!”

“그건 또 뭔 소리냐?”

“소설에서 보니까 항상 황제가 듣기에 기분 나쁜 말을 한 충신들은 귀향을
가거나 목을 친단 말이에요!”

“아, 그러세요? 어서 꿇어라. 손들고. 옳지. 잘한다.”

  그녀에게 벌을 준 남자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두꺼워 보이는 겉옷을 가져
와 껴입은 다음 화단 옆에 놓인 커다란 바위 위로 몸을 날렸다. 제자를 가소
롭다는 시선으로 내려다본 그는 한숨을 푹 쉰 다음 대답이 뻔한 질문을 던
졌다.

“그래.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원래 충심이 어린 말은 듣기가 싫은…….”

“말은 잘한다. 지금부터 사부가 하는 말을 잊지 말고 가슴에 새겨두어라.”

“들어보고요.”

  딱! 사부는 건방진 제자의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은 다음 근엄한 목소리
로 말했다.

“내가 중원을 한참 돌아다니던 시절 느낀 건데, 연애는 낭비고 사치고 자기
를 기만하는 행위다.”

“왜요?”

딱!

“아앗!”

“그냥 들어. 네가 어떤 남자의 아이를 낳고 싶어질 때 연애를 하는 건 바람
직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연애를 하는 건 낭비고 사치고 자기기만이다. 그
럴 시간에 조금 더 자신에게 신경을 써라.”

“그러니 아직도 여자가…….”

“…….”

딱!







  첫 임무는 생각보다 시시했다.

  교에서 정해준 목표물을 죽인다는 생각을 하자 머릿속이 짜릿하고 심장
이 두근거렸지만 막상 목표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사부의 말처럼 감정
을 조절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목표물의
심장에 차분히 검을 꽂아 넣었다. 그를 죽인 다음 느껴지는 흥분 같은 건 없
었다. 불쌍하다는 동정도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교로 돌아왔을 때 그
녀는 눈물이 핑 돌았다.

  첫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소녀는 침상에 누워있는 사부를 만
났다. 손바닥 정도의 길이를 가진 비수가 꽂힌 사부의 왼쪽 가슴에서는 끊
임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의원이 사부의 상체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
에게 더욱 힘을 주라고 하자 사부님이 비명을 질렀다. 얼핏 그들의 말을 들
어보니 온몸에 독이 퍼지는 중이라 하였다.

  그들 중 누군가가 우리의 작은 집으로 막 돌아온 소녀를 보고 밖으로 나가
있으라 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지금 나가지 않으면 사부님이 곧바로 죽
을 거 같아 미처 생각을 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고 집을 뛰쳐나갔다.

  봄이기에 국화가 피지 않은 화단에 앉아 눈물을 닦고 있던 그녀는 어째서
사부가 교내에서 공격을 받았는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위
독한 사부의 모습만 떠오를 뿐 그 외의 생각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사부가 아프다.

사부가 죽는다.

사부가, 사부가…….


  범인이 누군지 상관없다. 지금은 사부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
다.

“네가 자연(紫燕)이냐?”

  자연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내는 사부님과 똑같은 청색
도포를 입은 자였다. 그렇다면 이 남자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상대가 뿌옇게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걸 깨
닫지도 못한 채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시죠?”

“과연”

  청색 도포를 입은 남자는 발을 놀려 사정없이 그녀의 복부를 걷어찼다. 자
연이 욱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배를 부여잡자 그는 이어서 발차기를 날려 턱
을 거칠게 올려쳤다. 그녀의 몸이 붕 떠올라 화단 위로 날아가자 남자는 싸
늘한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건방지군. 나는 네 이름이 자연이냐고 물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자연은 화단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어앉은 다음 울음
을 억누르며 말했다. 상대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녀가 인
지한 청색 도포의 남자는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네. 제가, 제가 자연입니다.”

  남자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조용해진 작은 집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때가 아니란 말인가.”

“…….”

“가라.”

“예?”

“네 사부가 너를 부른다. 그러니 가라. 나중에……”

  그가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자연은 벌떡 일어나 집으로 달려갔다. 혼
자 남아버린 마당에서 남자는 듣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마쳤다.

“다시 만나겠지.”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문을 부수다시피 연 자연은 사부의 가슴에서 비수가 뽑혀진 것을 보곤 기
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사부의 숨소리는 여전히 거
칠었고 의원은 어두운 표정을 하고선 따스한 물에 손을 씻고 있었다. 그녀
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버렸다. 시퍼렇게 질러버린 자
연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숨을 헐떡거리던 사부가 말했
다.

“춥다. 방금 들어온 건 자연이냐?”

  황급히 방문을 닫은 자연은 소매로 눈물을 훔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부님. 임무를 마치고 제가 돌아왔어요.”

“그래……. 모두 나가주시오. 제자와 함께 있고 싶소.”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하시오 자운.”

  사부의 호흡이 조금은 편안해 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게 억지로
내공을 운용해 몸 안에 퍼진 독기를 억누르고 있는 중이라는 걸 몰랐다. 모
두 나가고 둘만 남게 되자 사부는 자연이 침상 옆으로 올 것을 권했다. 그녀
가 의자를 가져와 옆에 앉기가 무섭게 사부는 질문을 했다.

“자연아. 죽였느냐?”

“네. 죽였어요.”

  사부는 킥킥 웃은 다음 거칠게 기침을 했다. 그가 내뱉은 숨에는 핏방울
이 섞여 있었다. 주변에 있던 천으로 사부의 입을 닦아준 자연은 왜 웃는 거
냐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쳐 있
었다.

“드디어 네가 살수로서 사람을 죽였으니 기뻐서 웃는 거다. 하하하.”

“그게 뭐가 좋은 일이라고 그래요?”

“후후. 내겐 좋은 일이지. 그래. 사람을 죽인 살수에게 묻겠다. 너는 사람이
언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 또 무슨 헛소리세요. 어서 몸이나 잘 보살펴요.”

“네가 말을 돌리는 건 모르겠다는 소리였지.”

“…….”

“사람은 언제 죽어야 할까? 자신의 꿈을 이뤘을 때? 길을 걷고 있을 때? 잠
을 자고 있을 때? 사랑을 나눌 때? 벌벌 떨고 있을 때? 친구를 배신했을
때? 아니면 누군가가 날카로운 비수로 그의 심장을 찔렀을 때?”

  자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제게 그런 걸 묻는 거죠? 예전부터 그게 궁금했어요. 나보다 더 똑
똑한 사람들도 많을 텐데 왜 제게 그런 질문을 하는 거죠?”

  이미 폐까지 독기가 침입한 탓에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로웠지만 사부는 빙
긋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내 분신이니까. 네가 납득한다면 나도 할 수 있을 테지. 그래서 묻는
거다. 사람은 언제 죽어야 하는 거냐.”

“…모르겠어요. 모르겠습니다. 몰라요 사부님. 제발, 제발 죽지 마세요.”

  겨우 멎었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남자는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각혈을 애써 참았다.

“크윽. 자연아. 너는 절대 죽지마라.”

“사부님도, 사부님도 죽지 말아요. 제발 죽지 마세요. 아흑!”

“사람을 죽이더라도, 넌 절대 죽지마라. 죽어서는, 죽어서 좋은 건 없다. 세
상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세상에는…….”


  사부의 말이 끊겼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손이 미끄러져 내렸다.

  거칠던 호흡이 조용해졌다.


  자연은 세상이 방금 멸망했다는 비보를 들은 사람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울었다. 울음을 터트렸다. 서럽게, 있는 힘을 다해, 울음을 터트렸
다.



- 끝 -




<글쟁이 후기>


사람은 언제 죽어야 할까요.
은자림에서 남궁련휘님께서 자유 쉽터에 이런 말을 쓰셨더군요.


'문득 제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너는 죽고 싶지 않니?
나는 죽고 싶어. 하지만 아직 해야할 일이 있어. (후략)'


그 말을 듣고
이 주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언제 죽어야 할까요?
사람은 어떤 죽음을 원할까요?
사람은 왜 죽지 않으려고 할까요?
삶에 대한 욕망이라고 말하기엔 모든 사람의 삶이
과연 죽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살았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저를 들 수 있겠군요..

사람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럼 그때가 그 사람이 죽어야 하는 순간일까요?
그저, 이렇게 허공에 대고 물어봅니다.

컨의 단편집 I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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