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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전화

2009.04.24 23:5304.24

 접수대 위에는 똑같이 생긴 빨간 전화기가 두 대 놓여있다. 그 중 하나가 울린다. 여자가 수화기를 집어든다. 귀에 갖다 대고 말한다.
 “예, 말씀하세요.”
 그러나 전화벨은 여전히 울린다. 여자는 수화기를 제 자리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른 쪽 전화의 수화기를 든다.
 “예, 말씀하세요.”
 그리고 여자는 우리를 향해 소리친다.
 “박유숙 씨! 박유숙 씨, 전화 받으세요!”
 … 내 이름이 아니다.
 뒤에서 기다리던 할머니가 접수대로 서둘러 다가간다. 여자가 할머니와 몇 마디 주고받은 후 수화기를 건네준다. 나는 계속 기다린다.
 할머니가 그다지 길지 않은 통화를 끝낸 후,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여자가 전화기 두 대를 노려본다. 번갈아 바라보다가 결단을 내리고는 한 쪽 전화의 수화기를 집어 귀에 갖다 대고 말한다.
 “예, 말씀하세요.”
 그러나 전화벨은 여전히 울린다. 여자는 짜증을 내며 수화기를 제 자리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른 쪽 전화의 수화기를 든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여자는 매번 잘못 받는다. 그 모습이 조금은 재미있고 우습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이곳에 앉아서 보고 있자니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한 번은 그래서 전화기 하나를 다른 색깔로 바꾸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당연하게도 ‘그런 건 제 소관이 아니라서요’였다. 최소한 전화기에 번호 같은 거라도 써서 붙이면 어떠냐고 물어봤지만, 이 역시 ‘제 소관이 아니에요’라는 대답만 들었다.
 “정호준 씨! 정호준 씨, 전화 받으세요!”
 나는 앉은 자리에서 튀어 일어난다. 접수대로 뛰어간다.
 여자가 수화기 아랫부분을 손으로 막고 내게 묻는다.
 “날짜 어떻게 되세요?”
 “칠월 십육일 오후 여덟 시 십 삼 분요.”
 “정호준 씨, 칠월 십육일…. 맞네요….”
 여자가 앞에 놓인 장부를 뒤적여 이름과 날짜를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전화 거시는 분 성함은요?”
 “김은정일 겁니다.”
 “통화하세요.”
 여자가 수화기를 건네준다. 나는 그것을 받아 귀에 댄다.
 “여보세요. 은정아.”
 “아, 자기야? 잘 있었어?”
 그녀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온다.
 달콤한, 목소리….
 뒤에서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호준이냐? 나도 얘기 좀 하자.”
 그녀가 명랑하게 대답한다.
 “예이-. 자기야, 어머니 바꿀게.”
 “여보세요. 호준이냐?”
 어머니 목소리는 기운차다.
 “어떻게, 잘 지내니? 밥은 잘 먹고?”
 “예, 잘 지내요. 엄마는 별 일 없으세요?”
 “나야 뭐, 맨날 그렇지.”
 “허리 쑤신다고 하신 건 어떻게 됐어요? 병원 가 보셨어요?”
 “디스크래…. 물리치료 받으러 다닌다, 요즘. 은정이가 굳이 여기까지 내려와서, 병원엘 끌고 가는 바람에….”
 이것은 어머니 방식의 며느리 자랑이다. 나는 조금 흐뭇하다.
 어머니가 이어서 묻는다.
 “넌 어때, 많이 바빠?”
 “예, 정신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 바빠? 한국은 언제 나오냐?”
 “올해 안엔 힘들 것 같아요,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
 어머니의 목소리에 서리는 실망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아니, 그럼 은정이는 언제 데려갈래? 언제까지 혼자 내버려둘 거야?”
 어머니가 책망하듯이 묻는다. 나는 변명한다.
 “그게, 서류 절차가 워낙 복잡해서요….”
 이것은 거짓말이다. 서류 따위는 필요치 않다.
 나는 그저, 아내를 이곳으로 데려올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어지는 어머니의 질문에 거짓말로 답한다.
 그렇게 따지면,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이다.

 은정이와 나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수업을 같이 듣다가 사귀게 되어 학부 시절을 온전히 함께 보냈다. 함께 졸업을 하고 나서 은정이는 대학원에 들어갔고, 그 동안 나는 공과 계통인 전공과 학부 시절에 따 놓은 기사 자격증 덕분에 운 좋게 병역특례로 풀려 방위 산업체에서 일했다. 화학 전공인 은정이는 석사를 마친 후 화장품 제조회사에 취직했고, 나는 이번에도 운이 좋아서 외국계 컴퓨터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취업 후 일 년 정도 지나서 우리는 길고 길었던 7년간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고, 결혼에 골인했다.
 써놓고 보니,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인생이다…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마치고 군대를 ― 대신 방산이지만 ― 마치고, 마음 먹었던 회사에 취업한 후 20대가 끝나기 전에 결혼. 크게 실패한 적도 좌절한 적도 없이, 심심할 정도로 무난하고, 어찌 보면 그만큼 성공적인 인생이었다. 적어도 젊어서 남편을 잃고 이십 년 가까이 혼자 손으로 나를 키워 주신 어머니에게 별달리 걱정 끼치거나 짐이 된 적 없이, 그저 세간에서 하라는 만큼, 나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 모두 만족할 정도로 살아왔다. 그래서 결혼식장에서 하객들에게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 정말 효자다”라는 말을 “축하해”만큼이나 많이 들었다. 어머니도 동의하셨고, 나는 만족했다.
 그리고 나는 서른 살 되던 해에 죽었다.

 그냥 교통사고였다. 야근을 마치고 이미 깜깜해진 시각에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겨울이었고, 전날 비가 온 후에 갑자기 추워져서 길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으며, 운전사는 과속을 했다. 좌회전 차로에서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화살표가 노란색으로 바뀐 걸 보고서도 운전사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오히려 높였다. 그러면서 왼쪽으로 틀던 와중에 차는 얼음을 밟고 운전사의 통제를 벗어나 반 바퀴 돌더니 제멋대로 보도로 돌진하여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늦은 밤이라 거리에 차도 사람도 거의 없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다.
 나는 운전사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비틀비틀 운전석에서 기어나와 휴대전화로 구급차를 부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내가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몸은 택시 앞유리창을 뚫고 튀어나가서 자동차 본넷과 조수석 사이에 걸쳐져 있었다. 겁에 질린 얼굴로 내 어깨를 흔드는 운전사를 내려다보며 나는 안전벨트를 맸어야 했는데, 라고 씁쓸하게 생각했다.
 내 몸은 곧바로 죽지 않았다. 구급차가 왔고, 구급차 안과 이송된 병원에서 나는 몇 번 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가 도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도로 몸 속으로 빨려들어가서, 은정이의 손이 내 손을 잡은 것을 느끼며, 은정이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으며, 감긴 채 그대로 돌덩이가 되어버린 듯한 눈꺼풀과 닫힌 채 열리지 않는 입과 아무리 애를 써도 움직일 수 없는 몸 속에서 어떻게든 은정이에게 나 여기 있다고, 살아 있다고, 그러니 울지 말라고 말해 주기 위해 몸부림치던 일이다. 그렇게 버둥거리다 말고 나는 갑자기 은정이 머리 위에 떠 있었고, 안 돼, 가기 전에 한 마디만, 어깨에 손이라도, 라고 생각한 순간 나는 이미 이곳에 와 있었다.

 아내는 그렇게, 두 눈을 굳게 감고 미동도 하지 않는 내 몸을 매일매일 만나러 왔다. 그리고 빈 집에 돌아와서 내 옷과 경찰서에서 받아온 사고 당시 소지품을 껴안고 침대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았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희망은 조금씩 사라져 갔고, 어느 날 절망의 밑바닥에서 아내는 전원이 꺼진, 피에 젖고 액정이 깨진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절박하고 무익한 자기 위안의 몸짓이었다. 전화기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그러므로 전원도 켜지 않은 채 딱히 번호도 누르지 않고 무작정 ‘통화’ 버튼을 누른 순간, 이 곳 접수대의 빨간 전화기 두 대 중 한 대가 울릴 것이라고는, 사무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망인 성함과 사망 일시 말씀하세요”라고 응답하리라고는, 그리고 얼떨결에 시키는 대로 더듬더듬 내 이름과 사고난 날짜, 시간을 댄 후 수화기가 내 손으로 넘겨져 전화기 저편에서 내 목소리가 들려오리라고는, 아내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거긴 뭐 재미있는 일 없어?”
 어머니와의 통화가 끝나고 자기 차례가 되자 아내가 묻는다. 어머니 앞이기 때문인지, 목소리는 여전히 명랑하다.
 나는 웃는다.
 “여기 재미있는 일이 뭐 있겠냐.”
 이건 사실이다. 나는 그저 접수대 앞에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시간이 지나기를, 그녀가 전화하기를 ― 그리고 마침내는 또 다른, 마지막 전화가 걸려 오기를.
 그녀가 투정하듯이 묻는다.
 “지난 번엔 왜 전화 안 받았어?”
 “지난 번? 언제?”
 내가 되묻는다. 이것은 알면서 묻는 거짓 질문이다.
 “지난 주에 걸었는데, 안 받더라?”
 “아, 그게, 줄이 좀 길어서…. 내 차례가 안 왔어.”
 이것은 완전히 거짓말이다. 이 곳에 줄 따위는 없다. 단지 매번 그녀가 전화를 걸 때마다 일일이 다 받을 수가 없을 뿐이다.
 “미안해.”
 내가 덧붙인다. 그녀는 쉽게 용서해준다.
 “괜찮아. 할 수 없지, 뭐.”
 “시간 다 됐습니다.”
 옆에서 여자가 말한다. 나는 내키지 않게 아내에게 통보한다.
 “은정아, 미안. 시간 다 됐대.”
 “아, 그래? 거긴 지금 몇 신데?”
 그녀는 어머니에게 들으라는 듯이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한다.
 “그래? 많이 늦었네? 내일 출근하려면 빨리 자야겠다.”
 나는 속삭인다.
 “미안해, 은정아.”
 그녀는 여전히 쾌활하게 큰 소리로 대답한다.
 “알았어, 좋은 꿈 꿔. 아침밥 꼭 챙겨 먹고. 안녕.”
 “안녕.”
 그리고 나는 여자에게 수화기를 돌려준다. 여자는 말없이 수화기를 제 자리에 얹어 놓는다. 나는 여자에게 인사한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접수대를 떠난다.
 다음 번 전화가 걸려올 때까지, 또다시 기다리는 것이다.

 이곳으로 처음 전화가 연결되어 나와 통화한 후, 아내는 피에 젖고 액정이 깨진 내 휴대 전화를 직장으로 가지고 갔다. 실험실에서 아내는 약솜에 표백제를 듬뿍 묻혀 휴대전화를 구석구석 꼼꼼하게 닦아냈다. 퇴근길에 아내는 “핸드폰 케이스 교환”이라고 현수막을 써붙인 노점에 들러서 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휴대전화 외부에 플라스틱 케이스를 씌우고 색색가지로 장식해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젊은 여자는 부서진 내 휴대 전화를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이거, 꽤 심하게 망가졌는데요? 케이스만 교환한다고 될 일이 아닌데….”
 “그냥, 보기에만 멀쩡해 보이면 돼요.”
 “액정 모서리도 깨졌네요…. 이런 건 여기서 못 고치는데….”
 “보호 필름이나 스티커 같은 거 붙여주실 수 없어요?”
 여자는 아내의 얼굴을 한 번 흘끗 쳐다보았다.
 “이런 거 오래 두시면 액정이 새서 완전히 못 쓰게 돼요.”
 “실제로 쓸 거 아니에요. 그냥 필름 같은 거 붙여 주세요.”
 여자는 석연찮다는 표정으로 양보했다.
 “그러실래요? 그럼 그렇게 해 드릴게요.”
 그리고 여자는 전문가의 손길로 휴대전화 케이스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숫자판 아래쪽에 뭐가 잔뜩 묻었네요…. 완전히 들러붙었네…. 뭐 쏟으셨나봐요?”
 여자가 키패드 겉면을 들어낸 휴대전화를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내는 들여다보았다. 전부 닦아냈다고 생각했던 내 피가 기판에 가득 말라붙은 모습이 시야를 덮쳤다.
 “아…. 매…. 매니큐어….”
 아내의 대답에 여자는 솜에 아세톤을 묻혀 기판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여자가 무심하게 문지르는 솜에 생명 없는 진갈색 액체가 묻어 나오는 것을 보고 있다가 아내가 말했다.
 “저기, 그거, 안 닦아 주셔도 되니까, 그냥 케이스만 덧씌워 주세요.”
 여자가 다시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기왕 하는 김에 청소도 좀 해야죠. 그냥 두면 버튼이 안 눌리게 되거든요.”
 “그냥, 케이스만 바꿔 주세요!”
 아내의 목소리와 어조에 여자는 흠칫 했다.
 “아, 예….”
 그리고 여자는 샐쭉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솜을 버리고 케이스를 갈아 끼우기 시작했다.

 아내는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에 기차를 타고, 내려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내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그 첫 번째 우연한 전화 통화 이후, 아내는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어머니를 찾아가서, 미리 정해둔 대로 내가 해외의 본사로 갑자기 발령받아 떠났다고 보고했다. 어머니에게 그녀가 정확히 뭐라고 설명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어머니는 놀라면서도 그녀를 일단 믿었고, 그녀가 어머니 보는 앞에서 문제의 휴대전화로 내게 전화를 걸어 “자기야 잘 도착했어?”를 외친 후 어머니에게 전화를 바꾸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어서 내가 “엄마 여기 미국이에요, 놀라셨죠?”를 외쳤기 때문에, 어머니는 ‘본사 발령설’을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가 어머니를 일곱 번 찾아간 후, 내 몸은 죽었다. 아내는 사고 사실을 이미 아는, 가까운 회사 사람들에게만 연락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빈소를 지키고, 장의사들이 내 몸을 삼베로 꽁꽁 감싸 묶어서 관에 넣는 광경을 혼자서 지켜보고, 혼자서 나를 묻었다. 소복을 입고 혼자 빈소에 앉아 내 영정 사진을 바라볼 때도, 내 몸을 실은 관이 땅 속으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볼 때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매장이 끝나고 사흘 뒤에 그녀는 검은 상복을 벗고 평소에 자주 입던 청바지와 밝은 색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정성들여 화장을 하고, 내가 선물한 귀걸이와 목걸이를 걸쳤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내려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내 어머니를 찾아갔다. 평소와 다름없이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활달하게 수다를 떨고 곰살궂게 애교를 부렸다. 그리고 늦은 저녁에 그녀는 내게 전화를 걸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어머니를 바꿔 주었다. 어머니가 언제나 그렇듯이 그녀를 언제 미국으로 데려갈 거냐고, 언제까지 혼자 둘 거냐고 나를 책망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그것은 혼신의 힘을 다 한, 일생 일대의 연기였다.
 그날 밤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어머니가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후 그녀는 몰래 집에서 빠져나와 골목길에서 내게 다시 전화했다.
 “야, 이 개새끼야!”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는 고함을 질렀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킬 수가 있어!”
 “저기, 은정아….”
 “이 씨발 새끼야, 내가 이러려고 너하고 결혼한 줄 알아? 네가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은정아….”
 “내가 무슨 마음으로 옷 갈아입고 화장했는지 알아? 네가 준 귀걸이랑 목걸이 주렁주렁 걸치면서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 엉? 어머니한테 너 잘 지낸다고 거짓말하면서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아냐고!”
 “미안해, 은정아…. 정말 미안해….”
 “너 이 개새끼, 당장 여기로 튀어 와. 지금 당장 와서 나 데려가!”
 그리고 그녀는 울었다.
 “은정아, 미안해….”
 나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정말 미안해….”
 울음 사이사이로 그녀는 말했다.
 “어머니가, 네 전화번호, 가르쳐 달라고….”
 “….”
 “국제전화, 그까짓 거, 당신도 거실 줄 아는데…, 왜 매번, 내가 내려올 때만….”
 “은정아….”
 “어머니가 직접, 거시겠대, 네 번호로….”
 수화기 너머로 그녀가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했던 지난 9년을 통털어 그녀가, 나를 묻으면서도 울지 않았던 그녀가, 이토록 걷잡을 수 없이 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은정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녀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여자가 사무적인 목소리로 ‘시간 다 됐습니다’를 통보할 때까지, 통곡하는 그녀에게, 나는 무익하고 한심한 사과의 말을 되풀이할 뿐,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했다.

 “언제까지 계속 이래야 돼?”
 그녀는 가끔 물었다.
 “알잖아, 말해줄 수 없는 거.”
 나는 대답한다. 그녀도 침묵으로 받아들인다.
 침묵이 너무 길어지면 내가 말한다.
 “힘든 거 알지만, 조금만 더 참아 줘.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내 말에 그녀는 한숨을 쉰다.
 “그거 알아? 나, 드라마 같은 데 나오는 악독한 며느리가 된 기분이야.”
 “무슨 드라마?”
 그녀는 설명한다.
 “왜 있잖아, 생명보험 같은 거 들어놓고 시어머니 죽는 날만 기다리는 악녀 캐릭터.”
 나는 조금 웃는다.
 “그런 거 아냐. 너도 알잖아.”
 그녀가 투정을 부린다.
 “알아도, 그런 기분이 드는 걸 어떡해.”
 “… 미안해.”
 몇백 번째인지 모르게, 나는 아무 쓸모 없는 사과의 말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한다.
 그녀가 다시 한숨을 쉬고 말한다.
 “차라리 자기가 틀렸으면 좋겠어. 아니면 전부 다 거짓말이거나.”
 “…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건 진심이다.
 잠시 침묵한 뒤, 그녀가 조그만 목소리로 묻는다.
 “어머니까지 가시고 나면, 난 어떡하지.”
 “뭘 어떡해.”
 나는 짐짓 쾌활한 목소리로 반박한다.
 “다 잊어버리고, 나보다 훨씬 좋은 남자 만나서 잘 사는 거지.”
 “그딴 소리 하지 마.”
 그녀가 화를 낸다.
 “… 미안해.”
 내가 다시 사과한다.
 그러나 그 말은 농담이 아니다.
 어머니가 이 곳으로 오시고 나면, 그녀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좋은 남자를 만나서, 내가 주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사랑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 것이다. 이것은 예상이나 추측이 아니라 기정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그 사실만이 내게 작으나마 위안이 된다.
 “난, 자기 언제쯤 만나러 가?”
 그녀가 묻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런 거 묻지 마.”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도, 자기는 알 거 아냐? 나 답답하단 말이야.”
 “몰라. 알아도 안 가르쳐 줘.”
 내가 짜증을 낸다. 그녀가 다시 묻는다.
 “나, 그냥 자기한테 가면 안 돼?”
 “야, 김은정!”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친다.
 “자꾸 그 따위 재수없는 소리 할래! 그럴 거면 앞으로 전화하지 마!”
 “뭘 잘 했다고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그녀도 지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일이 이렇게 된 건 다 네 탓이잖아, 바보 멍충아!”
 그건 맞는 말이다. 나는 한풀 기가 죽는다.
 “아니, 그래도….”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정사정 없이 퍼붓는다.
 “택시건 자가용이건 차를 탔으면 안전벨트 꼭 매라고 내가 말 했어, 안 했어? 마누라가 하는 소린 귓등으로도 안 듣다가 일 다 벌어진 후에 뒷수습 힘든 건 전부 나한테 떠넘겨 놓고 자기는 편하게 앉아서 전화나 받는 팔자인 주제에 어디다 대고 언성을 높여? 너 그딴 식으로 나오면 나야말로 앞으로 전화 안 한다!”
 “알았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화내지 마.”
 나는 패배를 인정한다.
 그러나 확인할 건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만 여기로 온단 소리는 제발 하지 마, 응? 부탁이다.”
 “… 알았어.”
 그녀가 여전히 화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부루퉁하게 대답한다.
 “시간 다 됐습니다.”
 옆에서 여자가 통보한다.
 “은정아, 시간 다 됐대. 끊어야겠다.”
 “맘대로 해.”
 그리고 그녀는 거칠게 전화를 끊어버린다.
 나는 한숨을 쉰다.
 접수대의 여자가 언제나 그렇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수화기를 넘겨준다.
 “감사합니다.”

 접수대 위에 놓인, 똑같이 생긴 빨간 전화기 두 대 중 하나가 울린다. 여자가 수화기를 집어든다. 귀에 갖다 대고 말한다.
 “예, 말씀하세요.”
 그러나 전화벨은 여전히 울린다. 여자는 짜증을 내며 수화기를 제 자리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른 쪽 전화의 수화기를 든다.
 “예, 말씀하세요.”
 그리고 여자는 우리를 향해 소리친다.
 “정호준 씨! 정호준 씨, 전화 받으세요!”
 나는 앉은 자리에서 튀어 일어난다.
 이름과 사망한 날짜, 시각을 확인한 후 여자는 내게 수화기를 건네주며 말한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아….”
 수화기를 건네 받으려다 나는 멈칫한다.
 이것이, 그녀에게서 오는 전화를 골라 가며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망 일자가 확정된 후 내게 주어진 시간은 49일이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허용된 전화 통화의 횟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여자가 평소와는 달리 부드럽게 말한다.
 “통화하시는 분께도 알려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 후 수화기를 건네받는다.
 “자기야 잘 지냈어?”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쾌활하다.
 그 목소리 때문에, 나는 결국,
 그녀에게 말하지 못한다.

 수화기를 돌려주면서, 나는 여자에게 부탁한다.
 “다음 번에 전화가 오면, 내가, 미안하다고…, 그렇게 좀, 전해 주시겠어요?”
 여자는 수화기를 건네받으며 말없이 진중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렇다.
 여자의 소관이 아닌 것이다.

 다시 한 달이 지나,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어머니를 만나러 가서, 그녀는 문을 열어주는 어머니 대신 거실에 쓰러진 어머니를 보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병실의 침대에 누워 눈도 뜨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는 몸 앞에 혼자 앉아 오랫동안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녀는 다시 한 번 혼자서 장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또다시 혼자서 빈소를 지키고, 혼자서 장의사들이 시신을 삼베로 꽁꽁 묶는 광경을 지켜보고, 관이 땅 속으로 내려갈 때 그 옆에 혼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모든 힘겨운 과정을 혼자서 겪어내고, 집에 돌아와 마지막으로 내게 전화했을 때, 나는 그곳에 없을 것이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 전원을 끈 휴대전화가 모두 그렇듯이, 공허한 검은 화면만이 그녀의 지친 얼굴을 무의미하게 응시할 것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나는 그녀에게 빌고 싶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에게 말할 길이 없다.

 접수대 위에 똑같이 생긴 빨간 전화기가 두 대 놓여 있다. 그 중 한 대가 울린다. 여자가 전화기 두 대를 번갈아 노려보다가 결단을 내리고 한 쪽의 수화기를 든다. 이번에는 단번에 맞췄다. 벨소리가 멈춘다.
 “예, 말씀하세요.”
 여자가 사무적으로 대답한다. 그리고 부른다.
 “정호준 씨! 전화 받으세요.”
 나는 의자에서 튀어 일어난다. 접수대로 뛰어간다.
 “예, 칠월 십육일….”
 그러나 그녀는 이름도 날짜도 확인하지 않고 내게 곧바로 수화기를 내민다.
 “아….”
 나는 멍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여자가 건네주는 수화기를 받아 든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후, 귀에 갖다 댄다.
 “예, 제가 정호준입니다.”

 마지막 통화는 간단 명료했다.
 이 전화를 받는 순간을 나는 몇 번인가 상상했었다. 어디서 걸려오는 전화인지, 상대방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부탁할 작정이었다. 언젠가 인연이 닿아 다시 한 번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그 때야말로 미안하다고 말할 기회를 달라고.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아니 그녀를 위해 뭐라도 해 줄 수 있는 기회까지는 바라지 않을 테니, 그저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고맙다고, 그리고 정말 미안했다고 말할, 한 번의 기회만 주시면 된다고.
 그러나 그 말을 하기 전에, 아니, 내 이름을 댄 후에 들려온 짧은 메세지에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는 용건만 전달한 후 가차없이 끊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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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여름 호러 특집① 메밀꽃 필 무렵8 2009.08.29
아밀 네 개의 손을 위한 변주곡2 2009.08.29
정도경 아무 것도 몰랐던 남자11 2009.08.29
여름 호러 특집① 소나기5 2009.08.29
이로빈 상사곡(相思曲) 2009.08.28
정도경 기내 안전 수칙 - 본문 삭제 -2 2009.07.31
crazyjam 이월, 장미원 二月, 薔薇園2 2009.07.31
pilza2 인생의 꿀맛 - 본문 삭제 -2 2009.07.31
미로냥 취업경위서2 2009.07.31
해외 단편 태양의 후손들: 환상4 2009.06.26
아이 한국히어로센터 - 1. 파이어 대 고슴도치 2009.06.26
정도경 바늘 자국3 2009.06.26
배명훈 예비군 로봇25 2009.06.26
갈원경 날개의 밤6 2009.05.29
아밀 야간산책 - 본문 삭제 -4 2009.05.29
아이 한국히어로센터 - 2. 능력자이자 인간 헐크3 2009.05.29
정도경 내 이름을 불러 줘6 2009.05.29
정도경 귀향 - 본문 삭제 -6 2009.05.29
정도경 전화2 2009.04.24
배명훈 마리오의 침대 - 본문 삭제 -26 200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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