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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물고기

2009.02.27 22:0602.27

 그가 사라졌다. 대학 입시 면접 보던 날 없어졌다. 그 날 아침 누나가 그의 방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전에 가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모범생이었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외아들이었고 학교에서도 촉망받는 수재였다. 성적도 최상급이었고 친구 관계도 좋았다. 주위 사람들 모두 당혹스러워 했다. 서투른 짐작을 조심스럽게 내놓을 뿐, 아무도 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시작은 9월 무렵이었다. 그는 몸이 약해지고 있었다. 종종 작은 실 같은 빛줄기가 공기 중을 떠도는 것이 보였다. 그 중 하나가 눈을 찌르고, 반짝, 하는 순간 어찌할 겨를도 없이 코에서 묽고 비릿한 액체가 떨어지곤 했다.
 세수를 하다 말고 물 속에 번지는 붉은 빛에 놀라 그는 고개를 들었다. 코에서 흘러나온 진하고 검붉은 액체는 방울방울 물 속에 떨어져 녹아 들어가 아주 작은 알갱이로 흩어져 점점이 퍼졌다. 그는 그 미세한 적혈구의 알갱이가 품은 헤모글로빈과 철분과 산소가 물 속에서 그 나름대로 생명을 이루며 피어오르는 것을 코와 입술을 닦을 생각도 잊고 홀린 듯이 지켜보았다. 빨갛고 투명한 석류 같은 알갱이는 둥글고 길쭉한 유선형으로 늘어나면서 빨갛고 투명한 모기 날개 같은 지느러미가 돋고 비늘이 덮이고 아가미가 열렸다. 그의 생명의 일부를 나르던 알갱이에서 피어난 치어들은 수천 수만 마리의 무리를 지어 세면대 속에서 군무를 추었다. 한 방울씩 피가 떨어질 때마다 물고기들은 수백 마리씩 새로이 피어올라 새로운 대열을 이루어 새로운 춤을 선보였다. 하얗고 노르스름한 화장실의 백열등 불빛 아래 그 빨간 비늘 떼는 오색 영롱한 무지개를 반사하고, 세면대는 그 어느 원시의 대양도 맛보지 못한 생명의 환희에 몸을 떨었다. 그 순간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멈추고 우주는 팽창과 수축을 멈추고 정지된 시간 속에 오직 그와 그의 코피와 적혈구의 물고기 떼만이 하나가 되어 세면대의 바다 속에서 신성하고 고독하고 찬란한 자유의 춤을 추었다….
 
 - 똑똑똑.
 “거기서 뭐해?”
 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조금 전까지 생명이 춤추던 원시의 대양은 이제 벌겋고 조금 노르스름한 물이 고인 세면대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는 배수구의 마개를 열었다. 화려한 비늘을 빛내던 작은 씨앗들은, 단 한 마리도 성체를 이루지 못한 채, 검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 언젠가는 바다에 다다를지도 모를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얘 왜 이렇게 안 나와? 어머, 너 또 코피 났니?”
 밥 먹으라고 부르던 누나는 깜짝 놀라 허둥지둥 휴지를 찾았다.
 “괜찮아, 누나. 이제 다 멈췄어.”
 “넌 어떻게 그러고 사니?”
 누나는 휴지 뭉치를 든 한 손으로 그의 코를 막고 다른 한 손으로 그의 뒤통수를 받쳐준 채 안쓰러워하며 물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두 달 정도밖에 안 남은 걸 뭐.”
 “수영 쉬지 그래?”
 그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계속 했으면 좋겠어….”
 “체대 시험 볼 거야?”
 “모르겠어.”
 “혹시, 아버지한테 말씀드리면….”
 “안 될 걸….”
 아버지의 명령은 법대였다. 항의도 타협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삼촌들도 모두 변호사였고 그는 외아들이었다.
 “어쨌든 빨리 밥 먹고 학교 가.”
 “응…. 고마워, 누나.”
 
 등교길은 차갑고 희미했다. 교실 안, 책상과 걸상 사이의 좁은 공간에 갇혀 의미 없는 시간은 녹은 납물처럼 뜨겁고 무겁게 흘러갔다. 숨이 멈춰 버릴 듯한 50분마다 그는 물을 마셨다.
 “물 중독이냐?”
 짝이 물었다. 그는 웃었다.
 짝은 마시던 캔 커피를 내밀었다.
 “마실래?”
 “아니.”
 “아, 너 커피 안 마시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 웬만하면 시작하지 마. 나 봐라. 완전 중독이다. 쉬는 시간마다 마시지 않으면 손이 떨려.”
 “….”
 “옆 반 반장은 콜라 중독이래. 페트병으로 사다 놓고 하루 종일 마신대.”
 짝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내뱉었다.
 “미친 놈들….”
 그는 잠자코 물을 마셨다.
 짝은 잠자코 커피를 마셨다.
 종이 울렸다.
 
 자율학습은 10시까지였다. 그는 학원을 핑계로 7시 45분쯤 학교를 나왔다. 수영장이 문을 닫기 전 마지막 타임은 여덟 시였다. 오십 분동안 물 속에서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코치는 그런 그를 보며 항상 인문계 치곤 참 잘 하는데…,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잘 하고 못 하고는 그에게 별 상관이 없었다.
 폐장 직전 몸을 씻었다. 수영장이 닫기 전에 빨리 씻고 독서실로 가야 한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그의 몸은 언제까지고 샤워기 앞에서 뭉그적거리고만 싶어했다. 부드러운 비누 거품과 따뜻한 물은 수영장의 차가운 물이 주는 해방감과는 또 다른 안도감을 선사했다. 마지막 비누 거품 하나와 물 한 방울까지 음미하기라도 하듯, 그는 천천히 주의 깊게 몸을 씻었다.
 그러다 발목에 돋아난 것들을 발견했다.
 복사뼈 주위에, 손가락 반 마디 정도의 길이로 단단하고 납작하고 약간 도드라진 타원형의 반투명한 무언가가 돋아 있었다. 눌러 보았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긁어 보았다. 단단했다. 조금 더 세게 긁어 보았다.
 “아야!”
 따끔, 한 느낌과 함께 한 개가 딱지처럼 떨어졌다. 떨어진 자리에 금세 피가 고였다. 쓰라렸다. 그는 떨어진 딱지를 들여다보았다.
 독서실에 가는 길에 연고를 샀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언제나 자정이 넘어 있었다. 누나는 늘 간단한 밤참을 준비해 주곤 했지만 오늘은 검은 액체가 든 사발을 내밀었다.
 “보약이야. 먹어.”
 “나 이런 거 필요 없는데….”
 “자꾸 코피 흘리잖아. 아버지가 해 오셨어. 먹어.”
 약을 들이켜는 그를 보며 누나가 뾰로통하게 한 마디 했다.
 “아들이라서 좋겠다. 아버지가 보약도 해다 주시구.”
 그는 빈 사발을 내려놓고 입을 닦았다.
 “으…. 써…. 나 이거 다신 안 먹을래….”
 “고마운 줄이나 알어.”
 누나가 그의 뒤통수를 가볍게 때렸다.
 “나 때는 보약이고 뭐고 없었다구. 원서 사오니까 딱 한 마디 하시더라. 웬만하면 시집갈 거 생각해서 전공 정하라구.”
 “그래도 아버지가 내놓고 뭐라 하신 건 아니었잖아….”
 “그건 그렇지…. 결국 대학도 내 맘대로 왔고 전공도 내 맘대로 정했으니까.”
 잠시 기분이 풀린 듯했던 누나는 다시 샐쭉해졌다.
 “그래도 우리 과에 나처럼 사는 애 없어. 아마 전국 여대생 다 찾아봐도 열 명도 안 될 걸. 이건 완전 돈 안 드는 파출부잖아.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푸념하면서 누나는 어머니를 흘긋 쳐다보았다. 텔레비전 앞에 동상처럼 앉아서 어머니는 오늘도 케이블 티비의 홈쇼핑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다 좋은데 이제는 이상한 것들 좀 주문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 진짜 처치곤란이야.”
 “그래도 재밌잖아….”
 그는 집으로 배달되는 온갖 기기묘묘한 물건들을 생각하며 웃었다.
 누나가 손사래를 쳤다.
 “아이구, 퍽도 재미있겠다. 내가 나중에 다 돌려보내든지, 반품 안 받아주면 버리든지 그래야 된단 말이야.”
 “정말? 누나 맘대로? 엄만 뭐라고 안 하셔?”
 “사흘쯤 지나면 신경 안 쓰시잖아.”
 “하긴….”
 누나와 동생은 마주보며 공모자들처럼 히죽 웃었다.
 “어머, 시간 늦은 거 봐. 너 이제 자야지.”
 “응, 누나도 잘 자.”
 “그래, 잘 자. 엄마, 티비 끄고 주무세요. 늦었어요.”
 “….”
 어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뚫어지게 쳐다보는 화면 속에서는 플라스틱 상자에 갇힌 정체 모를 벌레들 한 떼가 울어대고 있다.
 “엄마, 주무시라니까요. 새벽 한 시예요.”
 “….”
 “엄마.”
 어깨를 건드리는 누나에게 어머니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텔레비전 화면을 향하여 대답한다.
 “저거 곤충 사육장이래. 애들한테 자연을 느끼게 해준대. 하나 있으면 멋있을 거 같지? 주문할까?”
 “엄마, 새벽 한 시라구요. 안 주무세요?”
 “생명의 신비를 접하고 정서를 함양시켜 준대. 너네 저런 거 좋아하지 않니? 너 어렸을 때 맨날 메뚜기 잡아다가 집에서 키워 보겠다고 그랬잖아?”
 “엄마, 그게 벌써 언젯적 얘긴데요. 지금은 그런 거 필요 없어요.”
 “너희는 어렸을 때부터 엉뚱했어. 집에 맨날 온갖 벌레를 잡아와서 키우겠다고 그러다가 죽으면 막 울면서 장례도 지내 주고 그랬지. 너희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애기들이었단다….”
 “엄마, 우리 집 막내가 낼 모레면 스무 살이에요. 늦었으니까 이제 텔레비전 끄고 들어가서 주무세요.”
 “그래. 잘 자라, 예쁜 내 아가.”
 어머니는 누나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이마에 쪽, 소리 내어 뽀뽀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끄고 자러 들어갔다.
 
 다음 날 새벽에도 그는 눈을 뜨자마자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 문 열자마자 시작하는 첫 타임은 6시였다.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 수영장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하고 그는 마음껏 물살을 갈랐다. 그러나 어젯밤처럼 샤워를 즐길 시간은 없었다. 오십 분을 다 채우지도 못한 채 물기만 닦아내다시피 하고 집으로 뛰어 들어와 잠옷을 갈아 입고 화장실에 숨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버지가 출근하실 때쯤 화장실에서 방금 나온 것처럼 인사를 할 수 있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집으로 달렸다. 그러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아버지와 마주쳤다.
 “아…. 아버지….”
 아버지는 한동안 그를 관찰하다가 물었다.
 “어디 갔다 오냐?”
 “수…수영장… 에요.”
 고개를 숙이고 그는 불벼락을 기다렸다. 침묵 속에 영원 같은 이십 초가 흘렀다.
 “공부하려면 체력도 필요하지.”
 뜻 밖의 복음에 그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무리하진 말아라. 성적에 지장 줘선 안 된다.”
 “예!”
 그리고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순식간에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누나가 현관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이 내밀었다.
 “괜찮아?”
 그는 씩 웃었다.
 다음날부터 아침 시간에 좀 더 여유가 생겼다.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하다 발목에 돋은 것들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코치에게 보여주었다. 수영을 며칠 쉬고 병원에 다니기로 했다.
 의사는 굉장히 재미없다는 얼굴로 한참동안 부스럼 주위를 만지작거렸다. 수영을 다닌다고 말했다. 곧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수영장의 소독약이 인체에 미치는 폐해와 민감한 건성 피부의 관리법에 대해 길게 설명하면서 약을 처방해 주었다. 일주일 후에도 차도가 없으면 다시 오라고 했다. 일주일이 세 번 지났다.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는 다시 수영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학교는 이제 노골적으로 조여 들어왔다. 교실 앞뒤로 빨간 두 자리 숫자가 크게 입을 벌리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전보다 물을 더 많이 마시고 잠을 더 적게 자고 코피를 더 많이 흘렸다. 책장과 책장 사이, 글자와 글자 사이를 막연히 헤엄치다가 그는 문득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대학 가야지.”
 짝은 아주 당연하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 다음엔?”
 “넌 법대 간다며. 사법고시 치고, 합격하고, 연수원 들어가고, 판검사 하면서 예쁘고 돈 많은 여자랑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다가 늙으면 옷 벗고 변호사 하는 거 아냐?”
 “그게 다야?”
 “그럼 뭘 더 바라냐?”
 그는 짝을 바라보았다.
 “넌?”
 “나도 대학 가야지.”
 “가서 뭐 할 건데?”
 “그게 문제냐? 가고 봐야지.”
 “….”
 “공부나 해, 짜샤. 그래 가지고 법대 가겠냐?”
 짝은 일어섰다.
 “어디 가?”
 “화장실. 따라올래?”
 “….”
 그는 고개를 움츠리고 다시 글자 사이로 헤엄쳐 들어갔다.
 짝은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그는 교실을 나왔다. 3학년 화장실은 학교 건물 가장 위층 구석에 있었다. 짝은 복도 끝, 화장실 문 옆의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뭐 하냐?”
 “….”
 대답 대신 짝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입에 대고 고개를 젖혔다. 목울대가 위아래로 크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냄새가 확, 풍겨왔다.
 “술 마시냐?”
 “….”
 “… 나도 줘.”
 “싫어, 임마.”
 “치사한 새끼.”
 “먹고 싶으면 네가 사다 먹어 짜샤.”
 짝은 다시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는 잠자코 옆에 앉았다.
 술병이 거의 비었다.
 “… 무슨 일 있냐?”
 그는 어렵게 물었다.
 짝은 대답 대신 교복 윗도리를 벗어 손에 감았다. 그리고 갑자기 일어나 창문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쨍그랑, 그는 벌떡 일어섰다.
 짝은 손에 감은 교복 윗도리를 풀어 유리 조각을 털어냈다. 옷을 입고 손을 점검했다.
 “선생들 오기 전에 가.”
 그리고 짝은 가 버렸다.
 깨진 유리창 밖으로는 노을이 지고, 부서진 유리의 파편들은 언제까지나 창문 주위에 안개처럼 떠돌고 있었다. 그는 다가가 깨진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멀리 지평선 위로 녹아버린 해가 불타는 주황빛을 퍼뜨리며 흘러내렸다. 그 위로는 노르스름한 오렌지색, 연한 붉은빛, 분홍빛, 보랏빛, 코발트색과 쪽빛이 부드럽게 섞이며 풍성하게 녹아들어 흘러 넘치는 노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달콤하고 따스한 빛의 향연 위에 깨진 창문의 유리 조각들이 점점이 깔려 녹아 흐르는 태양의 빛을 보석처럼, 별처럼 반사했다. 그리고 가장 위쪽, 남색의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그곳에서는 때 이른 달이 창백한 얼굴을 내밀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창문을 열었지만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먼 노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헛되이 유리 조각의 별들 사이를 휘저을 뿐, 노을은 가장 끄트머리의 붉은 빛 한 점만을 그의 손끝에 남기고는 천천히 쪽빛 커튼 아래로 사라져 갔다.
 그는 손가락 끝에서 동그랗게 솟아 오르는 짙은 붉은 빛을 바라보았다. 문질러 보았다. 그 감촉은 눈물처럼 부드럽고 진하고 따뜻했다. 그는 잠시 손가락을 입에 문 채 공단처럼 천천히 흘러내리는 포근한 쪽빛 어둠과 창백한 달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황급히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갔다.
 
 7시 45분에 그는 여느 때처럼 책가방을 챙겨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물에 들어가려는 그를 코치가 불렀다.
 “네가 열심히 하는 건 아는데 말이다, 우리 수영장도 참 오래 다녔고….나도 이런 얘기 하기는 정말 뭐한데….”
 “… 예?”
 “그, 다리에 난 거 말인데…. 그러니까, 병원을 다니고는 있는 거냐?”
 그는 새삼 다리를 쳐다보았다. 모르는 새 부스럼은 무릎을 넘어 허벅다리까지 침범해 있었다.
 “그거 말인데, 다 낫고 나서 다시 오면…, 안 되겠냐?”
 “… 그만두라구요?”
 “아니, 꼭 그만두라는 게 아니라….”
 “알레르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알레르기는 안 옮아요.”
 “나야 알지,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잖아. 보기에도 심해 보이고….”
 “그렇지만….”
 그는 허벅다리까지 뒤덮은 딱지를 만지작거렸다. 어쩔 수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 알겠습니다. 이제 안 나올게요.”
 “미안하다. 좀 나아지면, 그 때 다시….”
 “갈게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돌아서려는 그를 코치가 다시 불렀다.
 “너, 그거 꼭 큰 병원 가 봐라. 내가 수영장 물에 알레르기 일으키는 사람 한두 번 본 게 아닌데, 너처럼 심한 건 처음이다. 꼭 비늘처럼 일어나는 게, 단순한 알레르기 같지가 않아.”
 “예.”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 안녕히 계세요.”
 
 소식을 들은 누나는 한편 안쓰러워하면서도 한편 안도한 것 같았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서두를 필요가 없어지니 갑자기 모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저녁 7시 45분에 그는 책가방을 챙기려다 도로 주저앉았다. 짝이 물었다.
 “안 가냐?”
 “끊었어.”
 짝은 다시 고개를 책 속으로 파묻었다.
 그는 그런 짝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말이야….”
 “공부나 해, 짜샤. 법대 간다며.”
 짝은 여전히 책 속에 고개를 파묻은 채 말허리를 잘랐다.
 그는 다시 물었다.
 “너, 그 때 왜 그랬냐?”
 “내가 뭐.”
 “유리창.”
 “유리창이 어쨌는데.”
 “유리창이 어쨌는데, 라니. 화….”
 “무슨 소리야.”
 짝은 고개를 들고 그를 마주 보았다. 돌처럼 무감정한 눈.
 그는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다고 그래. 웃기는 자식이네. 공부나 해.”
 그리고 짝은 다시 책 속으로 고개를 파묻어 버렸다.
 
 공기의 흐름은 모든 것을 차단했다. 시간은 이제 정지했다. 날짜만 흘러갔다. 문득 고개를 들면 똑같은 수학 시간, 똑같은 영어 시간, 똑같은 자율학습 시간인데도 교실 앞뒤의 빨간 글자는 섬뜩하게 줄어만 갔다. 그는 기계적으로 집과 학교와 독서실 사이 진공의 무중력 공간을 헤엄쳐 다녔다. 부스럼은 허리까지 침범해 왔다. 피부과 약도 누나가 구해다 준 약도, 발라도 보고 먹어도 보았지만 듣지 않았다.
 운동을 그만두었으니 몸은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힘들어졌다. 늘 숨이 막히고 목이 말랐다. 아버지는 누나를 시켜 다른 약을 지어왔다. 더 쓰고 더 검은 그 걸쭉한 액체는 식도를 태울 듯이 전진해 가다가 위장 바로 앞에서 역류해 나왔다. 어머니는 큰 보온병과 대형 은나노 정수기를 주문해 주었다.
 수능이 닥쳐왔다. 시험은 안개 속에 흘러갔다. 뜨겁고 무거운 공기, 질식할 듯한 정적, 난방기에서 풍겨 나오는 진한 냄새, 낯선 교실의 유리창에 서린 김, 매끈하고 날카롭고 차가운 시험지와 답안지의 감촉들이 뒤엉킨 속에서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눈 앞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 나갔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로 달려가 수도꼭지를 한껏 틀고 머리를 세면대에 처박았다. 시험장에 돌아와서는 보온병의 물을 들이켰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는 내내 뒤죽박죽이 된 꿈 속을 헤매다가 집 앞을 지나칠 뻔했다.
 학교 수업은 사실상 끝이 났다. 논술고사만이 남았다. 그로서는 다행이었다. 몸은 점점 약해졌고, 부스럼은 어떻게 손을 써 볼 도리 없이 퍼져 나갔다. 더 이상 ‘시험’의 존재는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모호하고 답답한 생활 속에서 문득 수영이 그리워지면 그는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몸을 담갔다. 손으로 물을 젓고 흐름을 즐겼다. 그러면서 옆구리까지 올라온 부스럼을 무심결에 만져 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그러다 그는 발목의 오래 된 딱지를 떼어 보았다. 전처럼 아프지도 피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가볍게 떨어졌다. 반질반질한 회색이었다. 옆구리의 부스럼은 아른아른한 붉은색이었다. 불빛에 비춰 보았다. 떨어진 부스럼 딱지는 노르스름한 화장실의 백열등 불빛 아래 반투명한 은회색으로 빛났다. 코치의 말이 떠올랐다.
 ‘꼭 비늘처럼 일어나는 게….’
 욕실을 나왔다. 사전과 도감을 뒤져보았다. 거울 앞에 서서 온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비늘’처럼’이 아니었다.
 
 십 이 월이 왔다. 수능 성적표가 나왔다. 달력의 빨간 날짜 대신 각 대학 원서 교부일과 접수일, 입시 요강이 사방의 벽을 지배했다. 몸만 잘 추스르면, 그리고 논술만 웬만큼 잘 보면, 무리 없이 합격할 것이라고 주위 사람들 모두 낙관하고 있었다.
 누나는 익살맞은 만화가 그려진 합격엿과 찹쌀떡을 한아름 안겨 주었다. 아버지는 전에 없이 마주칠 때마다 말을 걸었다. 뭔가 격려가 될 만한 말씀을 생각해 내려 고심하는 눈치가 역력했지만 실제로는 의미 없는 헛기침이나 ‘어…’를 되풀이하다 머쓱하게 가 버리곤 했다. 어머니는 홈쇼핑에 ‘수험생’과 관련된 물건이 등장하면 뭐든지 주문했다. 그 어느 것도 그에게는 쓸모가 없었다. 사실 무엇이 쓸모가 있을 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매일처럼 거울 앞에 서서 시시각각 늘어만 가는 부스럼, 아니 비늘을 들여다볼 따름이었다.
 본격적인 입시철이 시작되었다. 가야 할 대학, 가야 할 학과는 하나 뿐이었다. 그 단 하나의 원서는 교부 시작한 첫날 아버지가 사 들고 왔다. 정성스레 이름을 쓰고 도장을 받았다. 접수 첫날 제출했다. 어영부영 지내다 정신 차리고 보니 논술 시험장이었다. 답안지를 제출하고 시험장을 나오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버지는 이제 다 끝났다, 고 말했다.
 다 끝났다. 그는 입안에서 되씹었다.
 그 맛은 썼다.
 
 면접 시험 전날 밤 그는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과거와 미래가 머릿속에서 춤을 추었다. 비늘 갑옷을 입고 법전을 들고 고시원에 틀어박혀 지금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수험 생활을 계속하는 자신을 그려 보았다. 담배 연기 자욱한 사무실에서 아버지처럼 무표정한 사람들과 함께 남은 일생을 보내게 될 자신을 그려 보았다. 올해가 아니라면 내년에, 내년이 아니라면 내후년에, 그는 별 수 없이 그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었다. 보지 않고도, 겪지 않고도 그는 알 수 있었다. 결코 원하지 않았던 건조한 세계에서 그는 차츰 말라 죽을 것이다. 마침내 썩어 비린내를 풍길 그의 시체는 파리떼로 뒤덮이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크게 뜬 눈동자만이 쓰레기통 속에서 다시는 갈 수 없게 된 물 속 깊은 곳처럼 푸른 하늘을 멍하니 응시할 것이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난 대학에 갈 거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것이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을 잡고 좋은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게 뭐가 나쁘지.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일인데.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안을 서성거렸다. 면접 고사장과 일정, 그리고 별 것 없는 준비물을 공연히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웃옷 위에 놓아둔 수험표를 핀으로 가슴 부분에 잘 고정시켰다. 핀을 다루는 손이 떨렸다. 자꾸 빗나갔다. 긴장을 풀기 위해 그는 심호흡을 했다.
 긴장 때문이 아니었다. 팔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손등 위로 야들야들하고 투명한 것이 돋아 나오고 있었다.
 지느러미.
 서둘러 옷을 벗었다. 틀림 없었다. 비늘이 급속도로 어깨를 덮어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 두 다리가 달라붙기 시작하고 어깨 형태가 뭉그러졌다. 몸이 본격적인 유선형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는 멍하니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다. 한참 만에 사태를 깨달았다.
 시간이 없다.
 그는 누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누나! 누나!”
 누나는 잔다.
 “누나! 일어나 봐! 빨리!”
 “…응…. 왜 그래…?”
 “나 지금….”
 말이 막혔다.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으로 가야 하나? 수족관으로? 동물원으로? 강으로? 바다로?
 “내일 면접 봐야지… 빨리 가서 자….”
 누나는 돌아누워 다시 잠들려고 한다.
 어깨가 무너져 내렸다. 팔이 옆구리에 들러붙기 시작한다.
 “누나, 나 좀…. 어떻게든….”
 어쩔 줄 모르다가 그는 결정을 내렸다.
 “누나, 나 좀 살려줘. 나 지금 바다로 가야 돼.”
 “으응….”
 누나는 반응이 없다. 그는 마음이 조급해져 울기라도 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눈이 원형으로 커지고 눈꺼풀이 얇아지기 시작한다.
 “누나, 나 좀 살려달라니까. 나 지금 큰일 났어!”
 “빨리 자… 내일… 면접…. 응….”
 “누나!”
 목이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누나는 이미 다시 잠들었다.
 서 있기가 힘들어졌다. 눈꺼풀이 얇고 반투명하게 변해 갔다. 눈물이 점점 말라 눈을 뜨고 있기가 괴로웠다. 다시 누나를 깨우려다 그는 깨달았다. 이젠 바다는 커녕 한강까지 갈 시간도 없다. 아가미가 열리고 폐가 사라지면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죽는다.
 그는 서로 합쳐지려는 다리를 뒤뚱거리며 힘겹게 욕실로 뛰어갔다. 욕조에 물을 틀었다.
 ‘빨리, 빨리, 빨리…!’
 차 오르는 물을 바라보며 이제 성대가 사라지고 아가미가 생기기 시작하는 목 안에서 절박하게 외쳤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다시 방으로 뛰어갔다. 눈에 띄는 종이와 연필을 집어들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크고 또렷한 글씨로 ‘바다에 놓아주세요’ 라고 쓰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서로 달라붙었다.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뿐이었다. 그는 쓰던 것을 팽개치고 엎어질 듯 넘어질 듯 위태롭게 다시 욕실로 뛰어갔다. 물은 욕조에 반쯤 차 올라 있었다.
 욕실 바닥을 박차면서 그의 발은 꼬리지느러미로 변했다.
 수돗물 속에서 그는 아가미를 한껏 열었다.
 
 면접날 아침, 언제나처럼 일찍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욕실로 들어가려던 누나는 욕조를 보고 기겁을 했다.
 “엄마얏!”
 넘어질 뻔했다가 균형을 찾았다. 진정하려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조금은 겁먹은 채로, 조금은 신기해 하면서 욕조 속에서 뻐끔거리고 있는 커다란 물고기를 들여다보았다.
 “이건 무슨 고기야….”
 잠시 들여다보다가 누나는 거실로 달려갔다.
 “엄마, 욕실에 있는 저 물고기 엄마가 주문하신 거예요?”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텔레비전을 쳐다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누나는 다시 물었다.
 “엄마, 물고기 주문하셨냐구요!”
 “물고기? 생선 먹고 싶니?”
 “아니, 엄마가 주문하셨냐구요.”
 “수협 특송 갈치 싱싱한 거 있던데 주문해 줄까?”
 “그게 아니구, 엄마가 욕실의 물고기 주문하셨냐구요!”
 “수험생한테는 생선이 좋대.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고 머리가 좋아지는 디에이… 디… 뭐가 들었대. 기름 쓰지 말고 찌거나 조려서 먹이라던데. 찜통도 주문할까?”
 “저거 형석이 쪄 먹일려구 주문하신 거예요?”
 “아니면 조림 냄비 세트 주문할까? 신상품 나왔던데.”
 “아냐 엄마, 됐어요. 저 생선 그럼 찔게요. 너무 커서 잘 되려나 몰라.”
 역시 엄마가 주문하신 것이었구나. 누나는 안심했다. 동생이 면접 보고 돌아오면 따끈한 생선찜을 해줘야겠다.
 그런데 얘가 도대체 어딜 갔을까? 일찍 나간 건가?
 말도 없이 밥도 안 먹고 나가버릴 애는 아니었다. 휴대전화는 가방 속에서 혼자 울렸다. 별다른 연락도 없이 오후가 다가왔다. 걱정은 점점 부풀어 갔다. 누나는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아버지? 저예요. 혹시 아침에 형석이 나가는 거 보셨어요?”
 “형석이? 면접 보러 가지 않았어?”
 “아침에 보셨어요?”
 “아니, 못 봤다.”
 “어쩌지…. 지금이 시험 시간일텐데, 꼭두새벽부터 나갔나봐요. 깨우러 들어갔더니 벌써 없던데요. 밥도 안 먹고….”
 “맘이 불안해서 일찍 나갔나보지.”
 “방에 가방이 그대로 있는데요. 입시 요강이랑 전형 시간표도 다 있어요.”
 “수험표는?”
 “수험표…. 잠깐만요.”
 누나는 방으로 뛰어가서 확인해 보았다.
 “수험표, 없어요.”
 “그럼 시험 보러 간 거다.”
 “가방이랑 소지품 다 놔두고요?”
 “면접볼 땐 수험표만 있으면 되지. 거추장스러우니까 안 가지고 갔을 거다.”
 “아….”
 “집에 오거든 맛있는 거 해 줘라.”
 전화가 끊어졌다.
 누나는 안심했다. 그래, 면접엔 수험표만 있으면 되지. 집에 오면 맛있는 걸 해 줘야겠다.
 저 생선, 엄청나게 큰데다가 아직 살아 있지…. 잡아서 요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
 누나는 가장 큰 솥에 물을 채우고 부엌을 뒤져 가장 큰 도마와 가장 큰 칼을 찾아냈다. 욕실로 가서 욕조 속에 있는 생선을 잡았다. 비늘을 긁고 내장을 빼고 토막을 쳤다. 일부는 찌고 일부는 국을 끓였다.
 
 그 날 저녁 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밤 늦게까지 기다렸다.
 다음 날도 소식이 없었다. 그제서야 누나와 아버지는 사색이 되어 사방에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누나가 그의 방에서 바닥 한 구석에 내동댕이쳐진 수험표를 발견했다. 뒷면에 크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바다ㅇ’ 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라지기 전날 밤, 방에 뛰어들어와 뭔가 애타게 말하려던 것을 기억했다. 누나는 가출을 걱정했다. 아버지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실종 신고를 했다.
 
 그는 여전히 행방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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