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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za2 하늘로 올라간 풍선은

2009.01.30 23:4401.30

※ 이 글은 제가 만든 노벨 게임「Brother, My Knight」의 번외편 소설로 네 번째 혹은 여섯 번째 엔딩의 후일담입니다.


 풍선을 타고 하늘높이 올라가고 싶어요.
 자신의 꿈과 희망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한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도 끝나고 졸업만을 남겨둔 시기, 어차피 수업도 제대로 진행이 안 되던 그 한적한 시간을 빌려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꿈과 소망, 미래에 대한 포부를 말하게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부분 아이들은 장래희망, 즉 가수가 되고 의사가 되고 대통령이 된 자신의 모습을 말하곤 했는데 단 하나의 아이가 그런 미래에 대한 꿈이 아닌, 밤에 꾸는 꿈과 같은 이야기를 한 것이다.
 황당하다는 선생님의 시선과 몇몇 아이들의 짓궂은 킥킥거림 속에서 효진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 아이를 보았다. 권마리. 반에서 그리 눈에 띄지도 않던, 공부는 상위권이었지만 성격탓인지 친구도 별로 없던, 커다란 안경으로 얼굴의 반은 가린 것 같던 여자애였다. 효진보다 키가 작아서 한두 달 정도는 바로 앞자리에 앉았던 아이인데, 공책과 연습장의 표지 뒤에 색색의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리던 게 효진의 인상에 남아있었다.
 그 아이는 빨간색으로는 꽃을, 초록색으로는 풀과 나무를, 노란색으로는 별과 강아지를 그리곤 했다. 그리고 파란색으로는 풍선을 그렸다. 하늘 위에는 물방울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의 크고 작은 풍선들이 숱하게 떠 있어 마치 비가 거꾸로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었다.
 하늘을 난다는 건 아이들의 오랜 소망 중의 하나일 것이다. 비행기가 일반화된 오늘날에도 상대적으로 비행기를 탈 기회가 많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비행에 대한 원초적 욕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하필 풍선일까. 꿈이라면 날개를 달고 새처럼 날아도 되고, 비행기나 우주선을 조종할 수도 있고, 꿈이니까 그냥 슈퍼맨처럼 맨몸에 망토만 두르고 날아다녀도 상관이 없을 텐데.
 효진의 마음속에서 그런 의문과 호기심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고 있을 때 마리는 그 한 마디만을 남기고 선생님을 슬쩍 곁눈질로 살폈다. 할 말을 다 했으니 그만 자리로 돌아가도 되겠느냐는 표정이었다. 선생님의 입이 벌어졌지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도 미처 할 말을 찾지 못한 듯 얼굴이 체념의 빛으로 물들어 감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선생님은 다음 학생을 호명했고 덩치가 큰 남자애가 올라와 교탁에 두 손을 얹고 최고의 일식 요리사가 될 거라는 포부를 밝혔다. 고등학교 졸업후 일본의 무슨무슨 학교로 유학을 간다는 등 계획이 구체적이어서 아이들의 감탄사가 이어졌다.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나는 소녀의 이야기는 금세 잊혀진 듯 했다.
 마리의 대각선 뒷자리에 앉아 있던 효진은 다가올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무엇을 말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방금 들은 마리의 말과 공책에 그려진 파란 풍선들이 자꾸만 떠올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난 무엇이 될까.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그냥 사회나 도덕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까…… 고등학교보다는 중학교가 낫겠지. 고등학교는 너무 어려울 것 같으니까. 초등학교 선생님은 전과목을 다 가르쳐야 하니 너무 힘들거야. 그런 생각들을 떠올렸다. 아직 어른이 된다는 것은 너무 멀고 낯선 일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다는 것. 교복을 입고 입시를 위한 기나긴 전장에 돌입한다는 것 자체로도 막막한 일이었다. 그 이후의 일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길러, 지금의 엄마처럼 된다. 그런 삶이 정답일까. 내게도 그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걸까.
 효진은 고개를 돌려 네모난 창문 너머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얀 플라스틱 창틀로 네모지게 잘려진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기만 했다. 저기에 파란색의 풍선 한두 개쯤 떠있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만 같았다. 풍선을 타고 저 하늘 속으로, 파랗고 파란 하늘 속으로 스며든다면…….
 효진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연습장 귀퉁이를 찢어서 짧은 글을 적었다. 펴지지 않도록 야무지게 접어서 앞자리로 훌쩍 던졌다. 쪽지는 마리의 책상 오른쪽에 있던 양철 필통을 정확하게 맞추고 책상 위로 떨어졌다. 마리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쪽지를 접어들고 펼쳐본다. 장효진. 호명되자 효진은 교단으로 올라갔다. 밑단에 레이스가 달린 청바지와 스웨터 차림의 활동적인 복장. 반쯤 뛰는 듯 생기가 넘치는 몸동작. 작지만 동그란 눈이 자신에게로 집중된 아이들의 시선에 약간은 겁먹고 긴장한 듯 천장으로 향했다가 교탁으로 떨어진다.
 그 순간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잘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쑥스러움을 달래려는 듯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카락만 만지작거리던 효진은 마리가 보내는 안광을 맞고 기운을 차린 것처럼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저는, 커서…… 그냥 선생님이 되어서 살다가 결혼해서 엄마처럼 사는 게 제 꿈이고 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이건 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커서 세계일주를 하는 게 꿈입니다. 필리어스 포그처럼 80일 정도는 일정을 잡아서 수에즈 운하에서 배도 타고 인도에서 코끼리도 타고 하면서 천천히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크고 멋진 곳인지 느끼고 싶습니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서핑도 하고, 타히티에서 고갱이 그림 그리던 집도 가보고, 프랑스 몽마르뜨 언덕에서 커피도 마셔보고, 두바이에 있는 세계 최고층 건물 꼭대기에도 올라가보고 싶습니다. 사실 그것만이 아니고요, 제 진짜 꿈은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해보는 것입니다. 저 멀리 태양계를 벗어나서 외계인들이 사는 별까지 가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과장된 웅변조의 연설을 마치자 아이들은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처음엔 당혹스러워 했던 선생님조차 마지막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대통령, 연예인, 발명가에서 운동선수, 의사, 판검사, 기업 회장으로. 그리고 교사, 공무원, 회사원으로. 점점 아이들의 발표는 말 그대로의 꿈에서 현실적인 장래의 직업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 잔잔하고 무미건조한 수면에 마리를 이어 효진이 던진 돌멩이가 만든 웃음의 파문이 아이들에게 잊었던 사실 하나를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우리의 꿈은 그런 게 아니었어.
 효진이 나오기 전에는 마리밖에 없었으나, 효진의 뒤로는 조금 장난스럽고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꿈을 발표한 아이들이 여럿 나왔다. 로봇을 만들어 세계 평화를 이루겠다는 아이, 유전공학을 공부하여 세상의 모든 질병과 장애를 치료하겠다는 아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 전세계 사람들을 다 유저로 만들겠다는 아이, FIFA 회장이 되어 한국에서 월드컵을 한 번 더 개최하도록 힘쓰겠다는 아이……. 엄숙하고 지루하던 발표장은 어느새 웃음과 환호와 애정어린 야유가 뒤섞인 떠들석한 축제마당이 되어 있었다.
 효진은 손가락으로 마리의 등을 콕콕 두드렸다. 돌아본 마리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효진은 그의 얼굴을 마주보며 웃어주었다. 그 순간 이미 효진은 소중한 친구 하나를 얻었음을 알았다. 마리가 손에 꼭 쥐고 있던 쪽지를 효진의 손바닥에 얹어놓고 다시 고개를 칠판쪽으로 돌렸다. 그 쪽지는 효진이 줬던 것인데, 밑에 마리의 답글이 달려 있었다. 위에는 효진의 문장, 밑에는 마리의 문장.
    to 마리. 설마 세상이 싫어서 떠나고 싶은 건 아니지? 이 세상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알려주고 싶어.
    to 효진. 고마워. 너의 꿈은 너무 멋졌어.
* * * * * * * * * *

 그런데 왜 갑자기 그때의 일이 떠올랐을까. 효진은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학교를 혼란과 소문으로 뒤집어놓은 사망사건, 그리고 마리의 무단결석. 보잘 것 없던 조그만 여중에 쏟아진 세상의 선정적이고 가혹한 시선은 사건과 무관한 효진도 피해갈 수 없었다. 경찰과 형사들이 학교에 들락거렸고 학생 관리에 대한 책임을 들어 교무주임을 비롯한 몇몇 교사들이 해임 등의 처벌을 받을 거라는 얘기가 떠돌고 있었다. 어느 반의 누가 사건에 연루되어 있네 어쩌네 하면서 근거없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를 주정뱅이처럼 비틀거리며 활보하고 다녔다.
 그런 와중에 반장도 아닌 효진이 마리의 집에 찾아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더는 그 아이에게 친구라고 할 만한 존재가 없기 때문이었다. 한때 친구였다고 믿었던 효진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마리가 정말 좋아했고 사랑했던 한윤미와 박희연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둘 외에는 평소에 대화를 나누는 친구조차 없음을 늘 먼 발치에서 지켜봐온 효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 이유조차도. 평범한 여자애들끼리의 우정 이상을 요구하는 마리를 견디지 못한 효진 스스로가 마리에게 서로 모른 척 하며 살자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게 벌써 일 년 가까이 된 일이다. 중학교 1학년 시절. 효진과 마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 함께 있었던 것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반이 달랐지만 마리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후 등 수업시간을 제외하고 학교에 있는 동안 늘 효진의 곁으로 달려왔다. 마리는 늘 효진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사고, 꾸며서 선물을 줬고 보답이 없어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늘 쪽지를 쓰고 일기를 교환하고 미니홈피의 방명록에 매일 글을 쓰고 메일을 보내고 집에서는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었다. 휴일이면 같이 놀러가자고 떼를 쓰고 효진의 집에 찾아와서 침대 위에 고양이처럼 웅크리고서 효진이 산 만화책을 읽곤 했다.
 그렇게 알콩달콩하던 둘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밝고 솔직한 효진이 다른 아이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것을 보고 마리가 화를 내면서부터였다. 마리의 태도는 마치 효진이 남자친구이고 다른 여자애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질투, 집착. 그 감정을 뭐라고 불러도 좋았다. 효진은 마리의 모습에서 그런 비슷한 것을 느꼈고 자신을 향한 마리의 쪽지와 메일과 방명록의 글이 점점 노골적인 애정표현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질겁을 할 정도가 되었다.
 명확하게 규정할 순 없었으나 어린 효진에게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향한 마리의 모습과, 태도와, 그 모든 것은 마치 이성과의 사랑에 빠진 듯 했기에, 그저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효진은 그런 마리를 부담스럽고 끈적끈적한 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내 효진이 자신의 입으로 이별을 선언한 날, 마리가 효진의 집에서 자신의 첫키스 상대가 되어 달라고 수줍게 말하던 그 날 이후로 둘은 교내에서 스쳐지나갈 때를 제외하곤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런데 효진은 오늘 마리의 집에 찾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알 수 없는 동기 때문에. 그건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는 그저 갑자기 떠오른, 하나의 영상이었다. 하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네모난 파란 하늘 위로 둥실 떠오르는 파란 풍선. 유유히 바람을 타고 올라가던 풍선은 점점 작아지며 마치 하늘의 일부로 녹아들듯 그렇게 사라진다. 어딘지 안타깝고 무척이나 쓸쓸해 보이는 모습. 동시든 동요든 파란 하늘은 희망차고 밝은 세상을 상징하지 않던가. 날아가는 풍선은 가슴 벅찬 꿈을 상징하지 않던가. 그런데도 효진에게는 그 모습이 어째서인지 그토록이나 슬프게 보였다. 마리가 자신의 안에서 그렇게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일까.
* * * * * * * * * *

 마리의 집. 아파트 문 앞에서 효진은 한참이나 손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망설이고 있었다. 초인종을 누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자신에겐 감당할 수 없었던 마리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거절하고 만 자신에게 이럴 자격이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수십수백 번 되풀이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웃고 떠들던 친구라면 얼마든지 있었지만 이런 고민을 풀어놓을 상대는 없었다. 마리에 관련된 일을, 마리의 진실을 다른 아이에게 함부로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하필 둘의 관계가 어색해진 채로 2학년에 올랐을 때 둘은 같은 반이 되었고 여전히 말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 시간이 지속되었다. 그런 와중에 오늘 담임 교사는 반장에게 마리의 집에 찾아가보라는 말을 했다. 방과후에 반장은 싫은 티를 내며 마리에게 줄 프린트 같은 걸 챙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효진이 다가와 자신이 대신 가겠다고 말을 한 것이다. 귀찮은 숙제를 면하게 된 반장은 기뻐하며 그러라고 했고, 지금 효진은 그때의 자기 자신에게 꿀밤이라도 먹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니.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될 것을. 이제 마리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이잖아. 아무리 꾸짖고 몰아세워도 과거의 자신이 한 행동을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손가락을 초인종 위에 놓고 속으로 어쩌지만 연발하고 있는데 옆집 문이 열리며 중년 여인이 나왔다. 깜짝 놀란 효진은 저도 모르게 초인종을 누르고 말았다. 누르고 말았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저질렀다는 심정. 이왕 누른 거, 이제 나도 몰라. 효진은 이를 악물고 두 번 더 눌렀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분명 문 안쪽에서 벨이 울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는데.
 집에 없나보다. 효진은 포기하고 등을 돌려 이곳을 떠나고,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내일 반장에게 집에 가봤지만 아무도 없었다고 말한 뒤 프린트를 돌려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때 마리의 집 문에 달린 버튼식 도어락이 눈에 들어왔다. 효진의 집에는 없는 저것. 효진은 분명 기억하고 있다. 마리가 직접 가르쳐준, 자기 집 문을 여는 암호. 자기 집에 오고 싶으면 언제라도 오라며 암호를 가르쳐준 마리. 그때는 순진할 정도로 착한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마음마저 가슴이 아플 정도로 아린 칼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벌써 반 년도 전의 일. 지금은 암호를 바꾸고도 남았을 것이다. 특히 효진에게 가르쳐줬던 걸 떠올린다면 분명히 바꾸었을 터. 효진은 어차피 아무도 없는 집, 암호가 바뀌었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에 뚜껑을 열고 아홉 개의 숫자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마리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 이미 자신을 향해 열릴 일은 두 번 다시 없겠지. 효진은 그걸 자기 손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셈이었다. 4……1……3…… 앞자리는 분명 마리의 생일에서 따왔다고 했다. 4월 13일. 그래서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뒷자리는 마리의 엄마 생일이라는데 띄워서 기억하면 그리 어렵진 않았다.
 다 눌렀다, 거 봐,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아? 이제 돌아가자. 빨리 집으로 가고 싶어. 효진은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은 마음에서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비눗방울이 터지듯 사라졌다. 삐리릭하는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 암호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문이 마리의 마음이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마음이 아직도 효진의 두드림에 반응하여 열린 셈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몰래 들어간다는 죄책감과 약간의 설렘을 품에 안고 효진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상반신만 집 안으로 내밀었다. 따스하고 포근한 냄새, 겨울날 마리의 목도리를 함께 둘렀을 때 느껴졌던 그 냄새다.
 “저…… 계세요?”
 효진은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혹시 마리의 가족이 나오면 곤란하지 않을까 싶었다. 넌 누구니? 마리 친구인데요. 문이 잠겼는데 어떻게 열었니? 마리가 가르쳐줬어요. 마리가? 왜? 어째서 너에게 우리집 문 여는 암호를 가르쳐줬니? 여기서 효진의 상상은 가로막혔다. 그 질문에 대답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리가 절 좋아해요, 사랑하거든요. 이렇게 대답할 수는 없다. 거짓말은 아닐지 몰라도 왠지 마리에게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마리의 마음을 내 맘대로 정하고 상처입히고…… 지금껏 효진은 충분히 그렇게 해왔다고 생각했다.
 “누구세요?”
 그때 마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막 깨어난 듯한 잠긴 목소리다. 이미 도망칠 길은 없다. 막다른 골목이다. 효진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
 “나야. 효진이.”
 누군가 리모콘의 mute 버튼을 누른 것처럼 고요했다. 세상의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마리는 평소에도 말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반대급부인지 쪽지나 채팅으로는 긴 글을 얼마든지 쓰곤 했지만 실제로 대화할 때는 말을 별로 하지 않았다. 입을 다물고 있을 때가 훨씬 긴 아이인데, 특히 지금처럼 난처하고 곤란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랬다. 효진은 그걸 알기에 일부러 조금은 밝게 말하려 애썼다.
 “담임이 너무 오래 결석한다고 한번 찾아가 보라고 해서. 집에 전화를 해도 받질 않는다네. 반장이 너네 집을 모른다고 하길래 그냥 내가 간다고 했어. 괘, 괜히 그랬……나?”
 마지막에는 조금 머뭇거리며 말을 맺었다. 현관에서 고개를 내밀어봐도 두 개의 방문은 다 닫혀 있었다. 안쪽에 있는 마리의 방문 역시.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여기다 프린트랑 노트 필기한 거 두고 갈게. 그리고 문 여는 암호는 바꿔. 또 내가 불쑥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래. 그럼 나 간다. 기운 차려서 학교 다시 나와.”
 효진은 떠오르는 두서없는 말들을 짧게 정리해서 남기고는 도망치듯 문을 열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마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지만 알아듣기엔 충분했다.
 “일부러 안 바꿨어.”
 “뭐?”
 효진은 놀라서 돌아보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마리는 방을 나오고 있었다. 겨우내 얼은 시냇물이 봄 햇살에 녹아들듯, 마리의 마음도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녹은 얼음 사이로 다시 흐르는 시냇물처럼 작지만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는…… 네가 와주지 않을까 싶어서.”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이게 얼마만의 일일까. 둘이 서로를 마주본 것이.
 “네가 오더라도 내겐 열어줄 용기가 없으니까……. 네가 열고 들어오길 바라고 있었어.”
 어색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시선을 더 견디지 못한 효진의 시선은 마리의 등 너머, 열린 문 안으로 보이는 방을 향했다. 방의 절반이 엷은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가, 마리의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뚜렷하게 보이는 방 안의 풍경은, 온통 파란 풍선으로 가득했다. 천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서 2층, 3층으로 겹겹이 차 있는 풍선들. 모두 하늘의 색을 닮은, 물방울을 뒤집은 듯한 모양의 풍선이었다. 너무 많이 들어 있어 방 안에선 서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얘, 저게 다 뭐야? 풍선이잖아?”
 “넌 기억하지?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게 내 꿈이라고. 지금 그 꿈을 이룰 준비를 하는 중이야.”
 마리는 조금 얼빠진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효진은 순간 마리가 충격을 받아 어떻게 된 거 아닌가 생각했다. 저런 풍선을 가지고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옛날에 했던 TV프로그램에서는 어린 아이를 공중에 띄우는 데에만도 몇천 개의 풍선을 매달아야만 했다. 많아야 100개는 넘을까 싶은 이 정도의 풍선으로 마리가 하늘로 날아갈 리가 없다.
 효진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거칠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이렇게 작은 풍선은……”
 “괜찮아. 하늘로 날리는 건 내 마음. 예전의 나이니까.”
 마리는 고개를 돌려 풍선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풍선 하나하나에 내 마음을 담으며 불었어. 희연이를 향한, 윤미를 향한, 그리고……”
 그리고.
 “효진이를 향한 마음.”
 효진은 마음이 아파 마리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마침 잘 됐네. 너도 함께 봐줘. 과거의 내가 하늘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거야.”
 마리는 망설임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었다. 초여름의 따스한 공기가 방으로 스며듦과 동시에, 풍선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창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효진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건 말도 안 돼.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마음 한 구석에서 지르는 비명도 지금 눈앞의 풍경을 거부하진 못했다. 파란 풍선들이 비둘기떼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 풍선의 밑에 달린 실의 끝은…… 모두 마리의 손아귀에 있었다.
 마리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리의 몸은 둥실 떠올라 풍선들과 함께 하늘높이 날아올랐다. 풍선과 함께 마리는, 효진이 떠올렸던 상상의 광경 그대로, 구름 사이를 지나 푸르고 푸른 하늘 너머로 올라가며 점점 작아져, 마침내 하늘에 녹아버린 듯 사라지고 말았다.
 안 된다고, 가지 말라고 비명을 질렀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치 악몽에서 깨어날 때처럼 효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리의 침대 위, 예전에 가끔 그랬던 것처럼 마리의 침대에 누운 채로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침대가 작고 낡은 게 늘 분만이었던 효진은 마리의 크고 멋진 침대를 부러워했었다.
 “깼니?”
 마리의 목소리. 머리카락을 날리는 강한 바람. 간신히 눈을 뜨니 강렬한 햇살. 태양을 가려준 마리의 모습은 역광을 받아 한 순간 낯설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 이국의 여신상 같은 마리의 잿빛 얼굴에 그늘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고개를 든 효진은 놀라서 몸을 움츠러들었다.
 두 사람을 태운 침대는 한없이 높은 하늘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파란 풍선이 침대 다리에 묶인 채 바람을 타고 안개처럼 희미해진 구름 속을 가르며 침대를 하늘 위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건…… 꿈이야. 그렇지? 꿈이지?”
 효진은 방금 본 광경, 마리가 풍선을 타고 사라진 것이 꿈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아직도 꿈에서 깨지 못한 상태임을 알았다. 마리는 여전히 수수께끼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그래. 꿈이야. 이건 너의, 그리고 나의 꿈 속이야. 우리만의 꿈나라야.”
 그렇게 말하며 양팔을 벌리고 불어오는 바람과 스쳐 지나가는 구름의 강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 모습에서 개운함과 후련함이 느껴지자 효진의 마음도 한층 가벼워졌다. 그래서 과장된 동작으로 손을 쭉 뻗으며 고함을 쳤다.
 “야호! 기분 좋은데!”
 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침대를 타고 풍선에 매달린 채 하늘을 날 수 있으랴. 이제 효진도 이 기회를 마음껏 누리기로 작정했다. 둘은 침대 끝을 붙잡고 좌우로 상하로 방향을 돌리며 하늘을 누비고 다녔다. 가끔 새들이 옆을 스치고 지나갔고, 비행기가 남기고 간 긴 비행기 구름을 쫓아가기도 했다. 까마득히 아래로 보이는 산과 강과 집과 빌딩들이 전부 색연필로 그린 그림처럼 보였다. 롤러코스터를 탈 때보다 더 신나고 짜릿한 순간순간이었다.
 얼마나 그렇게 날아다녔을까. 둘은 세찬 바람을 맞고 벌개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바라보며 까르르 웃었다. 한참 웃은 후 효진이 정색을 하고 말을 꺼냈다.
 “마리야.”
 “응? 왜?”
 “이젠 돌아가야지.”
 “…….”
 “돌아가자.”
 “…….”
 마리의 입은 늘 그렇듯 도로 굳게 닫혔다. 효진은 도어락을 떠올렸다. 누군가 열어주길 기다리며 닫혀 있던 문을 생각했다. 푸른 하늘 속으로 녹아들어간 작은 풍선과 그 끝에 매달려 있던 소녀의 환영을 되새겼다.
 “미안해……. 효진아.”
 “뭐가?”
 “그냥. 모든 게.”
 “그렇게 말하면 나도 미안한 거 많아. 잘못한 일도 많았고.”
 “난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걸.”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서로 그런 말 하지 말자.”
 “…….”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는 어느새 서서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분명, 마리의 방 창문이었다.
 “효진아.”
 “응?”
 “난 조금만 더 가야할 것 같아.”
 “어디로?”
 “내 마음을 떠나보내러. 배웅해줘야 할 것 같아서…….”
 “그래. 말리지 않을게. 대신 빨리 돌아와야 해.”
 “그럴게.”
 이번엔 마리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대답했다. 그때 강한 바람이 불어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을 때, 효진은 자신이 침대 위에 혼자 누워 있음을 깨달았다. 열려진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이 작별의 징표처럼 손을 흔들고 있었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네모진 하늘은 점차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효진은 가만히 일어나 그저 창가에 서서 무심한 하늘만 쳐다보며 한참을 있었다. 안타깝기만 했던 효진의 마음도 풍선에 실려 떠나간 듯, 이젠 편안하고 포근함만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었다. 무너진 모래성을 감싸주는 파도처럼, 따스한 초여름의 저녁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효진은 말없이 작별의 인삿말을 건넸다.
 잘 다녀와, 마리야. 하지만 너무 빨리 이 세상에서 멀어지진 마. 이 넓고 아름다운 세상구경도 해봐야지. 수에즈 운하도 가보고, 타히티 섬에도 가보고, 프랑스 몽마르뜨 언덕도 가봐야지. 그런 다음에 저 멀리, 더 높이 날아가 우주로 향하렴. 안드로메다로 가서 관광갔다는 개념도 만나보고, 말머리 성운이랑 뱀 성운도 구경해보렴. 사랑도 미움도 미련도 후회도 남기지 말고 모두 떠나보내. 그리고는 다시 돌아오는 거야. 뒤도 돌아보지 말고 말야…….
* * * * * * * * * *

 마리는 이틀 후에 등교를 했다. 효진은 처음에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아줄까 하다가 마리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반 아이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마리를 피하고 있었다. 그전까지 마리는 그저 있으나 마나한, 교실 뒷편에 있는 화분과도 같은 아이였다. 하지만 이제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에 마리가 관련되어 있음을 안 아이들은 마리를 보자 인상을 쓰고 고개를 돌렸다. 마치 마리의 몸에서 강한 악취라도 나는 것처럼.
 하지만 효진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마리는 이제 예전의 그가 아님을. 과거의 마리는 이미 풍선을 타고 저 하늘 너머로 날아갔지 않은가.
 효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화장실로 갔다. 하지만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눈치챘을지 모른다. 마리의 옆자리를 지나가는 순간 손에 쥐었던 작은 무언가를 마리의 교복 치마 위로 던졌음을. 그건 몇 번이나 접어서 딱지처럼 단단하게 만든 쪽지였다. 무심히 펼친 마리의 얼굴이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환해진다.
    to 마리. 이제 새로운 꿈을 꿔야 하지 않겠니?
 그 날 점심시간, 친하던 아이들과 구내식당에서 빵과 과자를 사먹고 교정을 돌아다니며 잡담을 나눈 후 종이 울릴 무렵 들어와 5교시 교과서를 찾는데 필통 안에서 쪽지가 하나 나왔다. 펼치자 그 안에는 그리운 마리의 글씨체가 있었다. 몇 개의 색볼펜으로 테두리도 치고 가장자리에 꽃이며 풍선이며 별도 그리던, 예전의 쪽지 그대로였다.
    to 효진. 네가 날 좀 도와줘. 내게 어떤 꿈이 어울리는지.
 효진은 킥킥 웃으며 연습장을 꺼냈다. 그리곤 답장을 적기 시작했다. 새롭고 멋진, 밝고 희망찬 꿈에 대해 말해주기 위해. 그래, 이왕이면 열기구를 타고 떠나는 건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큰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거야. 이왕이면 파란색이 좋겠지. 효진은 스스로의 생각에 감탄도 하고 웃기도 하며 쪽지에 글을 써나갔다. 흥분을 주체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는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주위 아이들의 시선이 어떻든, 이미 두 사람의 마음은 새로운 공기를 가득 채우고 둥실 떠오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크고 넓고 아름다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200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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