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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냄새

2009.01.30 23:3601.30

 이곳의 일은 단순하다. 원래부터 일 자체가 단순하지만, 일을 시작한 지 8개월째에 접어든 나로서는 일하는 동안에도 무료함을 느낄 정도다. 그만큼 하는 일에 익숙해 있다.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실수 없이 일을 처리할 만큼 익숙해 있다. 그래서 하는 일이 더 단순하게 느껴지고, 그 때문에 무료함도 느낀다.
 물론 무료함을 느낀다고 해서 이 일을 그만 둘 생각은 없다. 이 일 덕분에 내 일상 또한 단순하고 무료해졌다.
 단순하고 무료할 때 나는 내가 정상이라고 느낀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고 느낀다.
 아르바이트하러 가야 할 시간에 맞춰 늘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일터에 도착해서는 주어진 업무를 처리한다. 부모님 덕분에 서울에 작은 전셋집을 얻어서 방세 걱정은 안 하지만, 그래도 음식과 옷, 책 등을 사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나서는 가끔 혼자 영화를 보거나, 집에서 캔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잠들기 전까지는 인터넷 게임도 하고 책도 읽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 고등학교 참고서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부모님과 통화한 후에는 잠깐 동안 문제집을 풀 때도 있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이다.
 스물한 살. 대외적으로는 삼수생. 하지만 아직까지 대학 갈 마음은 없다. 특별히 뭘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뭘 배우고 싶은 것도 없다. 그래서 입시학원에는 안 다닌다. 그냥 혼자 집에서 가끔 참고서와 문제집만 들여다볼 뿐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부모님이 방을 뺄지도 모른다. 당장 집으로 내려오라고 할지도 모른다.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만을 원한다고 말하면 부모님은 당장에 방을 뺄 것이다.
 학원 다닌다는 핑계로 독립을 할 수 있었다. 서울에 있는 학원 근처에 방을 얻어 대학 갈 때까지 만이라도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신 학원비와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직접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전셋집만 얻어달라고 요구했다. 그 말에 어머니는 마지못해 독립을 허락했다.
 “혼자 서울 가서 살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원도 다니겠다고! 그래가지고 대학에 들어갈 수나 있겠냐?”
 어머니는 그렇게 나를 비꼬았다.
 “언젠가는 가겠지. 요즘 대학 들어가는 거 그렇게 힘들지 않아. 그냥 아르바이트하면서 학원에만 열심히 다녀도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어. 서울에는 좋은 학원들이 많으니까. 문제는 어느 대학에서 뭘 배우느냐를 정해야지. 그게 중요한 거잖아.”
 나는 별 문제 없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런 애가 삼수를 하니?”
 “그건 내가 아직 뭘 해야 할지 정하지 않아서….”
 “또 그 소리냐! 그건 그렇고, 정말 너 혼자 서울에서 지낼 수 있겠어?”
 “당연하지. 아무 문제없어.”
 말다툼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이기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지혜롭게 싸움에 져서 독립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년 가까이 서울에서 단순하고 무료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남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이지만.
 가끔 어머니가 공부는 잘 되고 있느냐, 학원은 열심히 다니고 있느냐, 돈은 필요하지 않느냐는 등 간섭과 걱정을 동반한 전화를 하고는 한다.
 물론 그럴 때마다 나는 모든 게 아무 문제없다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공부에 집중해 본다. 역시 별 흥미를 못 느낀다.
 ‘대학은 언젠가 갈 때 되면 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참고서를 덮는다. 대학 때문에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진짜로 대학 진학에 별 관심이 없다. 현재로서는 전혀 욕심이 없다.
 하지만 가끔 속이 상할 때도 있다.
 부모님이나 친척들, 친구들은 아마 내가 머리가 조금 둔해서 대학에 못 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게 틀림없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가끔 속이 상한다. 나는 다만 대학 진학에 흥미가 없을 뿐인데. 아직 뭘 배워야 좋을지 정하지 못한 것뿐인데. 남들보다 머리가 둔한 게 아닌데.
 물론 흥미가 없는 것뿐이라고, 남들보다 머리가 둔하지 않다고, 뭘 배워야 할지 아직 모르는 것뿐이라고, 아직 아무런 목표를 정하지 못한 것뿐이라고, 그래서 아직은 대학에 가지 않는 것뿐이라고 말한들 소용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나를 더 측은하게 여길 뿐이다.
 하지만 속이 상하다가도 금세 잊는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니까.
 어쨌든 독립한 뒤로,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로, 나는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는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느끼면서.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고 느끼면서. 그렇게 8개월째에 접어들었다.

 물론 오늘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침 7시 30분에 눈을 떴다. 출근은 오전 10시까지다. 그래서 7시 30분에 일어나면 연구소에 9시 30분까지는 도착한다. 무려 30분 일찍 출근하는 셈이다.
 8개월째에 접어드는 동안 지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당연히 무단결근 및 결근, 조퇴한 적도 없다. 거의 매번 30분 일찍 출근해서 일할 준비를 한다.
 그런 나를 연구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연구소를 책임지고 있는 교수도 나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다.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한 나한테까지 특별히 회식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물론 핑계거리를 만들어 참석은 안 했지만, 그것만 봐도 교수가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교수만 나를 신뢰하는 건 아니다. 연구원들도 마찬가지다.
 연구원들은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한 나에게 가끔 회의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연구원들끼리의 회의에 아르바이트생을 참석시키려 하다니, 그것만 봐도 연구원들이 나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를 자신들의 동료로 믿고 있는 게 틀림없다.
 물론 회의 역시 그때마다 나는 다양한 핑계거리를 만들어 참석하지 않았다. 한 번도 회의에 참석한 적은 없다.
 오전 7시 30분에 일어나서 느긋하게 담배를 한 대 피웠다.
 하루 중 평화롭다고 느끼는 때가 몇 번 있는데, 지금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평화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그 평화로운 기분을 오랫동안 누리려고 한껏 여유를 부린다. 담배 한 대 피우는 데 거의 10분 가까이를 소비한다. 그 시간만 줄여도 잠을 더 잘 수 있겠지만, 그건 평화로움을 누리는 기분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씨리얼에 우유를 부어 후루룩 마시다시피 먹고, 옷을 챙겨 입고, 다시 담배 한 대를 피웠다.
 하루 중 평화롭다고 느끼는 때가 몇 번 있는데, 지금처럼 일하러 가기 전에 편히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평화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 평화로운 기분을 오랫동안 느끼려고 한껏 여유를 부린다. 10분 가까이.
 전철은 나에게 정말 고마운 교통수단이다. 전철 덕분에 시간을 계획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는 것도, 평화롭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도, 빼먹지 않고 씨리얼을 챙겨 먹을 수 있는 것도 가능하다. 모든 게 전철 덕분에 가능하다. 나는 전철 마니아인가. 그래도 가끔 좋은 승용차를 몰고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특히 아우디 S6를 보면 정말 부럽고 탐이 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우디 S6 마니아이기도 한 건가.
 어쨌든 전철 덕분에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날은 시간을 계획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고마운 전철이다.
 아참,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매번 9시 30분에 연구소에 도착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연구소에 도착해서 준비를 하지만, 가끔은 평소보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9시 40분 정도에 연구소에 도착해서 일 시작할 준비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9시 30분에 도착한다.
 평소보다 10분 정도 늦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려야 할 역도 아닌데 두세 정거장 전에 미리 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전철을 타고 목적지까지 온다. 그 때문에 평소보다 10분 정도 늦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철 안에서 책을 읽다가 역을 지나치는 건 아니다. 전철 안에서 깜빡 졸다가 허겁지겁 내리다보니 아직 내려야 할 역도 아닌데 미리 내려버리는 것도 아니다.
 전철 안에서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다. 나는 혹시라도 책을 읽거나 잠을 자다 역을 지나칠까 봐 전철 안에서는 아무것도 안 한다. 잠도 안 자고 책도 안 읽고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지도 않는다. 신문도 안 본다.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역 이름에 집중한다.
 이번 역은 교대, 그럼 다음 역은 고속터미널, 그리고 그 다음 역은 잠원. 이번 역은 고속터미널, 그럼 다음 역은 잠원, 그리고 그 다음 역은 신사. 이번 역은 잠원, 그럼 다음 역은 신사, 그리고 그 다음 역은 압구정. 그렇게 역 이름에만 집중한다.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전철 안에서 오직 역 이름에만 집중한다. 다른 것에는 일체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가끔 내려야 할 역도 아닌데 내려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주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건 아니다. 일주일에 적게는 한 번, 많게는 두 번 정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 연구소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따져보면 그렇게 많이 발생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남들도 전철역을 착각해서 잘못 내리는 경우는 많을 테니까.
 물론 그래도 가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전철 안에서 계속 역 이름만 생각하고 있다가도, 갑자기 전철 안의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어느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나는 가능하면 정신을 분산시키지 않으려고 전철 안에서 주위 사람들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우연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다가 어느 낯선 사람과 눈이 딱 마주치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순간적으로 추위를 느끼다가 곧이어 고약한 냄새가 난다. 숨을 들이쉬면 몸 안이 열기로 휩싸일 만큼 지독하고 고약한 냄새. 나는 그 냄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할 역도 아닌데 무작정 다음 역에서 내린다. 어떨 때는 어느 낯선 젊은 여자, 어떨 때는 어느 낯선 젊은 남자, 어떨 때는 어느 낯선 꼬마아이. 낯선 노인과 눈이 마주칠 때에도 지독하고 고약한 냄새가 날 때가 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전철에서 어느 낯선 사람과 우연히 눈이 마주칠 때면 냄새가 난다. 전철 안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상하게 어느 한 사람과 우연히 눈이 마주치는데, 그럴 때면 갑자기 고약한 냄새가 난다. 왜 어느 순간 갑자기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런 냄새가 나는지 모르겠다.
 전철 안의 모든 사람들은 낯설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과 우연히 눈이 마주칠 때마다 지독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건 아니다. 그냥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내가 먼저 얼른 시선을 피한다. 물론 냄새 따위는 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유독 뭔가에 이끌려 고개를 돌리게 되고, 그 순간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그냥 전철 안을 두리번거리다 혹은 누군가를 무심코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는 것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마치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찜찜한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고개를 돌려 주변을 쳐다보면 예의 어느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곧 지독하고 고약한 냄새가 난다.
 고약한 냄새의 강도는 세다.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면 짧은 순간 추위도 느낀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상관없이 순간적으로 추위를 느낀다. 그리고 이어서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역한 냄새가 난다. 도대체 이 냄새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냥 죽은 쥐의 썩은 냄새라고 하면 너무 약하다. 구수한 듯하면서도 계속 맡고 있으면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는 그런 냄새와는 비교도 안 된다. 냄새 자체에도 온도라는 게 있다면 아마 지구 내핵의 온도와 맞먹을 것이다.
 실제로도 이 역한 냄새를 맡으면 한순간 추위가 사라지고 온몸이 열기로 휩싸인다.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오자마자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도대체 맡는 순간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를 정도의 역한 냄새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과연 그런 냄새가 존재하기나 하는 건가. 온몸이 열기로 뒤덮이는 역한 냄새가 있기는 한 건가. 그런데도 정말 냄새를 맡는 순간 온몸이 열기에 휩싸이고 숨조차 쉴 수 없다. 그만큼 냄새가 독하다.
 처음 이 냄새를 느꼈을 때는 일본에서처럼 누군가 전철 안에 사린가스라도 살포한 줄 알았다. 하필 내가 탄 전철 안에 사린가스를 살포하다니. 혹시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이 범인인 건가. 나는 참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벌써 죽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린데. 아직 뭘 해야 좋을지 정하지도 못한 삶인데.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잠깐, 사린가스도 냄새가 나던가. 내가 알기로는 냄새가 안 난다고 했는데. 그러면서 아주 잠깐 신께 감사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사린가스를 살포하지 않았다. 다행히 사린가스는 아닌 것 같았다. 역한 냄새 덕에 신께 감사를 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신께 감사하며 무심코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하마터면 전철 바닥에 맥없이 쓰러질 뻔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쉰 덕에 그 역한 냄새를 한 움큼이나 들이마셨다. 그 때문에 심한 열기와 호흡곤란을 겪어야 했다.
 그때 마침 전철 문이 열렸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사람 많은 전철 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게 분명하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하지만 전철에서 내리면 곧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다. 아무 냄새도 안 난다. 그리고 더 웃긴 건 승강장에 서서 전철 안의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을 때다. 나와 함께 전철 안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런 증상이 없어 보인다.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한 모양이다. 그냥 졸거나 신문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멍하게 창밖을 쳐다보거나 할 뿐이다. 다들 변화가 없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어딘가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한 채 전철과 함께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전철 안에서 냄새를 맡은 건 나 혼자였다.
 처음에는 승강장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심각하게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다. 도대체 냄새의 정체는 무엇이며, 왜 그 냄새를 나만 맡았을까. 왜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냄새가 난 것일까. 왜 다른 사람들은 그 지독하고 고약한 냄새를 맡지 못했을까. 그런 상태로 두세 대의 전철을 그냥 흘려보냈다.
 물론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리고 다음 전철을 타고 연구소로 향했다. 까딱하면 지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교수와 연구원들의 신임을 받고 있는 나로서는 지각으로 인해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한 번 그렇게 호흡 곤란을 겪고 나면 그 다음에는 아무 문제없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지독하고 고약한 냄새는 나지 않는다. 그러니 한 번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
 그렇게 일주일에 적게는 한 번 많게는 두 번 정도 지독하고 고약한 냄새 때문에 목적지도 아닌데 미리 전철에서 내리는 경우가 있다. 그 때문에 평소보다 10분 늦게 연구소에 도착한다. 그래도 출근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하는 셈이니 크게 문제될 건 없다. 30분 일찍 도착하지 않는다고 해서 연구소 사람들의 신임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변함없이 나를 자신들의 동료로 생각한다.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날이면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고, 8시 30분에 집을 나와 전철을 타고, 전철 안에서 간혹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서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을 받다가 곧 추위를 느낀 뒤 역한 냄새 때문에 온몸이 열기로 휩싸여 바로 다음 역에서 내리고, 연구소에 도착해서는 3층으로 올라가 실험실 열쇠를 들고 4층 실험실로 향한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다. 이 모든 게 단순하고 무료한 내 일상의 한 부분들이다.
 나는 이처럼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이 좋다. 매번 이런 일상이 변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란다.

 오늘도 변함없이 9시 30분에 연구소에 도착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대학병원부설신경과학연구소다. 나는 이곳에서 실험용 쥐들을 관리한다. 쥐들의 집인 케이지를 소독하고 사료를 보충해 주고 물도 갈아준다. 그 밖에 실험실 청소 등 여러 가지 잡일도 한다.
 9시 30분에 도착해 연구소 현관문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쥐들이 있는 실험실은 4층에 있다. 하지만 4층 실험실 열쇠를 보관해 놓는 곳이 3층이기 때문에, 나는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3층에 들러 실험실 열쇠를 가져간다. 4층 실험실 열쇠는 3층 출입문 우측 첫 번째 기둥에 걸려 있다.
 3층에는 연구원들이 모여 있다. 생물 시간에나 보았음직한 실험용 기구들 앞에서 연구원들은 대부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이른 시간이라 몇 몇 연구원들밖에 없지만, 열쇠가 놓인 곳으로 가는 동안 그 몇 몇 연구원들 곁을 지나치는데도, 그들은 나를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나를 아는 체하는 연구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침부터 연구에 열중해 있느라 내가 지나치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열쇠를 집어들면서 기둥 오른쪽 맨 끝, 창가 바로 옆 자리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여자 연구원이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연구원 역시 내가 열쇠를 집어드는 동안 다른 연구원들처럼 전혀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연구원들은 가끔 아는 체를 하기도 하지만, 그 여자 연구원만큼은 나한테 아는 체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침마다 열쇠를 가지러 3층에 올라가면 항상 그 여자 연구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연구원은 단 한 번도 나에게 고개를 돌려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매번 그렇다.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여자 연구원의 자리는 기둥 맨 오른쪽 끝, 창문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항상 아침부터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일한 지 8개월째에 접어들었지만, 나는 아직 그 여자 연구원의 이름도 모른다. 그리고 얼굴도 잘 모른다. 항상 옆모습 아니면 고개를 숙인 모습만 봤기 때문이다. 그 여자 연구원은 날 정면으로 쳐다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괜히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내가 연구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첫날 이강수라는 나이 많이 연구원이 나를 동료 연구원들에게 소개시켜 주었을 때도 그 여자 연구원은 자기 자리에서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이강수 연구원도 방해하지 않았다. 굳이 나를 그 여자 연구원 자리로 데리고 가 소개시켜 주지 않았다. 이강수 연구원은 연구소에 있던 다른 연구원들 자리로 나를 데리고 다니며 일일이 소개시켜주었지만, 그 여자 연구원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새로 4층 실험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 유소중 씨, 앞으로 우리 일을 도와줄 사람이니까 다들 보면 아는 체 정도는 해주세요. 그리고 이제 스물한 살이니까 여자 분들은 소중 씨한테 가끔 간식도 좀 사주시고. 그렇다고 너무 짓궂게 장난 같은 거 치시면 안 됩니다. 추해 보이잖아요. 흐흐.”
 이강수 연구원은 그렇게 재미없는 유머를 곁들이며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3층 연구원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하지만 유독 창가 쪽에 앉아 있던 그 여자 연구원에게는 나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이강수 연구원이 다른 연구원들에게 나를 소개시켜 주느라 3층 연구실 분위기가 조금 부산스러웠지만, 그런 부산스러움 속에서도 그 여자 연구원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은 뭔가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나 보네. 그래서 이강수 연구원도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가 보네. 뭐 그럼 다음에 한가할 때라도 소개시켜 주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 이강수 연구원은 나를 그녀에게 한 번도 소개시켜 준 적이 없다. 그녀는 늘 연구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 여자 연구원을 포함해서 이른 아침부터 연구에 집중해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살짝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연구원들과 비교되는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럽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열쇠를 가지러 갈 때에는 기척을 내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리고 열쇠를 집어들고 4층으로 올라가면서 비로소 당당해진다.
 뭐, 어쨌든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니 할 수 없다. 연구원들은 연구에 에너지를 쏟고, 나는 나대로 단순하고 무료한 삶에 에너지를 쏟고. 그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없앤다. 그렇더라도 아침부터 매번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그 여자 연구원을 보면 부럽기는 하다.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나는 4층 실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흰색 장화를 꺼내 신었다. 그리고 탈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손을 소독했다. 균을 없애는 액체 같은데 정체가 뭔지는 잘 모른다. 그런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만 소독할 때마다 마치 샴푸를 손에 바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손을 소독하고 나서 탈의실로 들어가 흰색 가운을 입었다. 가운을 입고 나서 실험실 내 세척실 UV등 스위치를 끄고 형광등을 켰다. 그리고 세척실에 들어가 비로소 크게 한번 심호흡을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 시작할 준비를 마친 셈이었다.
 아직 10시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일하는 시간은 보통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다. 그렇다고 해서 근무 시간이 그렇게 딱 정해진 건 아니다. 출근은 오전 10시까지지만 퇴근이 반드시 오후 4시인 건 아니다. 케이지 소독하고, 쥐들 사료 주고, 물 보충해주고, 바닥 청소하고, 혹시 빠뜨린 일이 있나 없나 이것저것 점검을 하는데, 내가 일하는 속도에 따라 어떨 때는 오후 3시 전에 끝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4시 넘어서 일이 끝날 때도 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속도를 내서 일을 하느냐에 따라 퇴근 시간이 달라진다. 하지만 나는 퇴근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일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냥 천천히 늘 일하는 속도에 맞춰 하나씩 하나씩 맡은 일을 처리해나간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 오후 4시에 일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연구원들한테 일처리가 꼼꼼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것도 연구원들이 나를 신임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세척실에서 주변을 한번 쭈욱 훑어본 후 수술용 고무장갑을 끼고 일 시작할 준비를 했다.
 세척실을 비롯해서 4층 실험실은 바닥 전체에 녹색 우레탄을 깔았다. 그것도 실력 있는 시공 업체가 깔았는지 평평하고 탄력도 아주 좋다.
 흰색 고무장화를 신은 채로 몇 번 껑충껑충 뛰어보았다. 그리고 쥐들이 있는 사육실로 가는 통로의 UV등 스위치도 끄고 형광등을 켰다. 그런 뒤 세척실에서 나와 통로를 지나 쥐 사료와 소독한 케이지 등이 놓여 있는 방의 UV등 스위치도 끄고 형광등을 켰다. 그렇게 실험실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UV등 스위치를 끄고 형광등을 켰다.
 살균을 목적으로 하는 UV등은 4층 실험실을 출입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신경 써야 한다. 항상 실험실을 출입할 때는 먼저 UV등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 켜져 있다면 UV등을 끄고 나서 실험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실험실 업무를 마치고 나갈 때에는 실험실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 후, 사람이 없으면 쥐 사육실을 제외한 UV등이 설치된 곳은 모두 UV등을 켜고 형광등을 끈 상태로 실험실을 나가야 한다.
 실험실 내 세척실이나 통로, 그 밖에 사료 보관하는 방 등 UV등이 설치된 곳은 스위치가 문 밖에 있다. 그러니까 세척실에 들어가려면 우선 위쪽이 유리로 된 탈의실 문으로 세척실 내의 UV등이 켜져 있는지 확인한 후 문 옆에 설치된 스위치로 UV등을 끄고 형광등을 켠 뒤 세척실 안으로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사육실과 연결된 통로를 출입하려면 세척실 문 위의 유리로 통로의 UV등이 켜져 있는지 확인한 후 문 옆에 달린 스위치로 UV등을 끄고 형광등을 켠 뒤 통로 출입을 해야 한다. 밖으로 나올 때는 그 반대로 하면 된다. 사육실로 연결된 통로에서 세척실로 들어가 반드시 문을 꼭 닫은 후 먼저 통로의 형광등을 끄고 UV등을 켠다.
 처음에는 UV등을 켜지 않고 실험실을 나간 적도 있었고, 반대로 UV등을 끄지도 않고 실험실 안으로 출입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UV등을 켤 때에는 반드시 실험실에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나 없나 확인한다. 혹시라도 사육실 안에 누군가가 있는데 통로의 UV등을 켠다면, 사육실 안에 있던 사람은 어쩔 수 없이 UV등이 켜진 통로를 통과해야 한다.
 사육실 안에서는 통로의 UV등을 조작할 수 없다. 반드시 통로를 지나쳐 세척실까지 와서 통로의 UV등을 조작해야 한다.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 여러 사람이 출입하는 실험실에서는 UV등 조작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아직까지도 간혹 실험실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연구원 중 누군가가 UV등을 켠 상태로 실험실을 나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런 실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거의 그런 실수를 하는 사람들이 없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UV등에 3, 40분 노출돼도 크게 피해를 입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다. 피부가 조금 가렵거나 하는 정도라고 알고 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자주 반복되면 피부가 거멓게 변하거나 할 수도 있겠지만, 통로를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 3초에 불과하다. 빠르면 1초에 통로를 통과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세척실에서 탈의실까지 가는 데에도 빠르면 1초 정도 걸린다. 그런 시간이라면 아무리 UV등에 신체가 직접 노출된다고 해도 별 이상은 없을 것 같지만, 연구원들은 그 정도의 신체 노출에도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한번은 누군가 UV등에 노출된 채 통로와 세척실을 지난 적이 있었다. 자신이 사육실 안에 있는데도 연구원 중 누군가가 통로와 세척실의 UV등을 켜놓은 채로 실험실을 나간 것이었다. 그 연구원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로 씩씩대며 연구소 전체를 휘젓고 다녔다. 그러고는 기어이 4층 실험실의 UV등을 켠 사람을 찾아내 마구 화를 낸 적도 있었다.
 화를 내는 상황도 조금 이해가 안 갔지만, UV등을 켠 사람의 태도로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뭔가 엄청나게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마냥 사과하는 모습이 조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실수로 UV등을 켠 게 그렇게 큰 잘못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연구원들은 UV등 노출에 조금 민감한 것 같다. 아마 평소에도 UV등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UV등에 노출되는 상황을 최소화하려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이해하기도 편하다.
 하지만 반대로 UV등에 노출돼도 전혀 화를 안 내는 연구원이 딱 한 사람 있다. 3층 창가 쪽에 앉아 연구에만 몰두하는 그 여자 연구원.
 한 번은 내가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실험실 내 UV등을 모두 켜놓은 채로 실험실을 나가려던 적이 있었다. 그때 마침 그 여자 연구원이 탈의실 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순간 그 여자 연구원에게 한 소리 듣겠구나 싶어 긴장했다. 내가 실험실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줄 알고 UV등을 모두 켜놓았기 때문에, 그녀는 적어도 실험실 통로와 세척실에서 UV등에 노출된 상태로 탈의실까지 왔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막 점심으로 먹을 빵을 챙겨들고 실험실을 나가려고 하는 데도, 내게 고개조차 들지 않고 그대로 실험실을 나갔다. 왜 자기가 실험실에 있는데 확인도 하지 않고 UV등을 켰느냐고 한 마디도 따지지 않았다. 한 마디도 따지지 않았을뿐더러, 내게 얼굴조차 들지 않고 그냥 고개를 숙인 채 실험실을 나갔다. 물론 그 뒤로는 실험실을 나갈 때 안에 사람이 있나 없나 확실하게 확인을 하게 되었지만,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실험실을 나간 그 여자 연구원도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연구원들은 그렇게 UV등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 그 여자 연구원만큼은 UV등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머릿속에는 연구에 대한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실험실에 UV등이 켜졌는지 꺼졌는지조차 몰랐을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실험실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사람이 과연 저렇게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할 수도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어쨌든 가끔 보면 그 여자 연구원을 포함해서 이곳 연구원들의 행동이 조금 이해 안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거야 뭐 그 사람들의 환경이 특별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간다. 그 사람들의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나는 실험실 안에서 단순하고 무료하게 일처리만 하면 되니까.

 실험실 내의 UV등을 모두 끄고 형광등을 켠 후 쥐들이 있는 사육실 가운데 한 곳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실험용 쥐들이 찍찍 소리를 냈다. 온몸은 새하얗고 눈은 새빨간 실험용 쥐들이 여기저기에서 찍찍거렸다.
 처음 실험실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한동안 실험용 쥐들이 징그러워서 사육실 안으로 들어가는 걸 망설였다. 그리고 사육실 안으로 들어가서는 실험용 쥐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징그럽고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며 케이지를 교환해 주었다. 케이지를 교환하는 동안 혹시라도 실험용 쥐들이 내 몸에 닿을까 봐 바짝 긴장하고는 했다. 그래서 몇 번 쥐들을 놓친 적도 있다. 그래서 한때는 내가 놓친 쥐들이 사육실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 적도 있다. 물론 이제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수로 쥐들을 놓친다고 해도 얼른 손으로 잡아 다시 케이지 안으로 집어넣는다. 물론 맨손으로 잡는 건 아니고 수술용 고무장갑을 낀 상태로 잡는다.
 나는 실험용 쥐들을 한번 쭈욱 훑어보았다.
 이제는 실험용 쥐들을 보면 귀엽기까지 했다. 작은 놈들은 크기가 내 새끼손가락만 한 것도 있고 큰 놈들도 기껏해야 일반 생쥐 정도만 한다. 그리고 아주 작은 새끼들도 있다. 새끼손가락 마디만 한 크기에 온몸이 빨간 새끼들이 케이지 한쪽에 모여 웅크리고 있다. 많게는 예닐곱 마리, 적게는 두세 마리의 새빨간 새끼들이 케이지 한쪽에 모여 가늘게 숨을 쉬고 있다. 보고 있으면 귀엽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리고 그 녀석들이 점점 자라서 어느덧 크기가 생쥐만 해진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물론 그 전에 죽는 녀석들이 더 많지만.
 그리고 그 방을 나와서 바로 맞은편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도 많은 케이지들이 있다. 각 케이지마다 새하얀 실험용 쥐들이 빨간 눈으로 나를 힐끔거린다.
 내가 관리하는 쥐들은 두 곳의 사육실 안에서 살고 있다.
 4층 실험실에는 모두 다섯 곳의 사육실이 있는데, 그중 내가 관리하는 곳은 두 곳이다. 나머지 세 곳은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관리한다.
 세 곳의 실험실 안에 들어 있는 쥐들은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대부분 새끼고양이보다 약간 작을 만큼 몸집이 크다. 내가 관리하는 쥐들과는 체급부터가 다르다. 그래서 하나의 케이지 안에 한두 마리의 실험용 쥐들이 살고 있다.
 가끔 나는 다른 세 곳의 사육실 문을 열어 실험용 쥐들을 보고는 하지만, 볼 때마다 엄청난 크기에 놀라서 얼른 사육실 문을 닫는다.
 저 큰 쥐들을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저 크고 징그러운 쥐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참 안타깝다. 물론 하는 일은 나와 똑같지만, 그래서 그런가, 간혹 세 곳의 사육실을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과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말이 없다. 얼굴도 들지 않고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일에만 전념한다. 그러면서도 일하는 속도가 빠르다. 아마 빨리 일을 마치고 실험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리라. 불쌍하다. 그래서 나는 그 아르바이트생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는 이 실험실 안에서 누구와도 말할 기분이 아닐 테니까. 저 크고 징그러운 쥐들을 상대하는 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까.
 그에 비하면 내가 관리하는 쥐들은 작고 참 귀엽다. 다행이다. 덕분에 나는 일을 빨리 마치려고 서두르지 않는다. 쥐들을 구경하고 있는 게 즐겁다. 쥐들을 보살피는 데 책임감까지 느낄 정도다. 내가 보살피는 쥐들이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는 통 그 세 곳의 사육실을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보지 못했다. 대신 3층에 있는 한 연구원이 직접 케이지를 교환하고 사료를 주고 있었다.
 혹시 실험용 쥐가 너무 커서 무서웠나,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곧 머릿속에서 지웠다.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두 곳의 사육실을 둘러본 후 나는 곧장 소독한 케이지와 사료 등이 있는 방으로 갔다. 그 방에서 전날 깨끗하게 물로 세척하고 소독까지 해놓은 케이지를 손수레에 가득 싣고 다시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한 사육실에는 보통 120개 정도의 케이지가 있다. 그리고 각 케이지마다 실험용 쥐들이 많게는 예닐곱 마리, 적게는 서너 마리 정도 들어 있다. 만약 갓 태어난 새끼들까지 합하면 하나의 케이지에 열 마리가 훨씬 넘는 쥐들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한 사육실 안에 최소한 5, 600마리의 쥐들이 있는 셈이다. 두 곳의 사육실을 합할 경우 1,000마리가 훨씬 넘는다. 그 많은 쥐들의 사료와 물을 책임지고, 늘 청결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케이지들을 청소하고 소독한다. 물론 사육실 바닥도 깨끗이 청소하고.
 비록 일은 단순하고 무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어느 정도 생명과학에 이바지한다는 사명감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쥐를 사랑하는 마음도 필요하고. 그것만 갖추고 있다면 누구든 이 일을 하는 데 아무 문제없다.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을 추구하는 자라면 더 바랄 나위 없이 좋은 일터다. 그러고 보면 다른 세 곳의 사육실을 관리하던 그 무뚝뚝한 아르바이트생은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이 싫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일을 그만 두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강수 연구원에게 혹시 그 아르바이트생이 일을 그만 두었는지 따위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는 전날 깨끗하게 세척하고 소독해 놓은 케이지들을 싣고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육실 한쪽에 놓여 있는 작업대를 끌고 와 케이지를 교체할 준비를 했다.
 우선 사육실 정면에 있는 선반의 맨 위 케이지를 집어 작업대 위에 놓았다.
 케이지 안에는 다섯 마리의 실험용 쥐들이 있었다. 그리고 쥐들 밑에는 톱밥이 깔려 있었다. 케이지 안의 톱밥은 일종의 이불 역할을 한다.
 쥐들은 톱밥 위에서 자기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장난이 심한 쥐들은 톱밥을 파헤쳐 그 속으로 숨어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톱밥 위에 배설물을 쏟아낸다. 그래서 일주일이 지난 케이지를 꺼내 보면 톱밥이 쥐들의 배설물로 더럽혀져 있다. 그러면 나는 새로 가져온 케이지에 그 쥐들을 옮겨 놓아야 한다. 물론 새로 가져온 케이지에는 부드러운 톱밥이 깔려 있다. 그리고 세척과 소독도 해놓았기 때문에 깨끗하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일주일 단위로 해서 하루에 일정량의 케이지를 교체해 주면 된다. 그렇게 해서 두 곳의 사육실에 있는 케이지를 일주일 동안 모두 교체해 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하루에 적어도 40개 이상의 케이지를 교체해 주면 일주일 동안 두 곳의 사육실 안에 있는 케이지를 모두 교체하는 셈이다. 일요일은 쉬니까 하루에 적어도 40개 이상의 케이지를 교체해 주면 된다.
 나는 하루에 많은 양의 케이지를 교체하지 않는다. 딱 40개만 교체한다. 대신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쥐들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케이지를 교체한다. 녀석들은 내 덕에 일주일마다 새로 청소한 깨끗한 집에 살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사육실 정면에 있는 선반의 맨 위 케이지부터 교체하면 된다. 그래서 그 케이지를 집어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케이지 안에 있는 다섯 마리의 쥐들이 일제히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잘 지냈어? 일주일 만에 이렇게 가까이에서 쳐다보네. 그동안 내 얼굴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그러면 확 새 케이지 안 갈아주는 수가 있다. 흐흐, 농담이야. 설마 너희들이 내 얼굴을 잊어버렸을 리가 있겠니. 내가 이렇게 예뻐해 주는데, 흐흐.”
 그러자 쥐들이 서로 나한테 안겨들려고 케이지 벽을 발톱으로 긁으며 밖으로 뛰쳐나오려고 했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케이지를 덮고 있는 메탈을 들어 손으로 그중 한 마리를 잡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메탈은 연구원들이 사용하는 용어다. 케이지 위에 덮는 은색 철망 비슷하다. 메탈을 케이지 위에 덮어놓음으로써 쥐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한쪽 부분이 마치 벼루처럼 움푹 들어가서 그곳에 사료를 담을 수도 있다. 그러면 쥐들은 케이지 안에서 메탈의 틈 사이로 삐져나온 동그란 사료를 갉아먹는다. 그리고 메탈 틈으로 물병도 꽂을 수 있다. 물병 끝은 긴 관으로 되어 있어, 그 끝에서 물이 똑똑 떨어진다. 쥐들은 목이 마를 때 그 물병 끝을 핥으면 된다.
 처음에는 쥐를 손바닥에 올려놓기 무섭게 바닥으로 튀어서 한참을 고생한 적이 있다. 도망간 쥐를 잡으려고 사육실 전체를 이 잡듯이 뒤진 적도 있다.
 사육실 안으로 들어오면 항상 문부터 닫기 때문에 비록 쥐들이 도망갔다고 해도 사육실 밖으로는 나가지 못한다. 결국 선반 밑 어딘가에 숨어 내 움직임을 살피고 있을 게 뻔하다. 그러면 나는 선반 밑을 일일이 살피며 도망간 쥐의 행방을 ㅉㅗㅈ는다. 그리고 손을 뻗으면 쥐는 다시 잽싸게 다른 선반 밑으로 숨는다. 그렇게 몇 번의 숨바꼭질 끝에 나는 도망간 쥐를 잡는 데 성공한다. 그러고는 얼른 작업대 위의 선반에 있는 케이지에 넣고는 쥐를 한번 흘겨본다. 가끔은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기도 한다. 그러면 쥐는 또 찍찍 거리며 나한테 용서를 빈다.
 물론 요즘에는 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때도 요령 있게 하기 때문에 거의 도망가지 못한다. 그리고 설사 도망을 치더라도 몇 번의 숨바꼭질 끝에 쥐 잡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전에는 그렇게 도망간 쥐를 잡지 못했던 때도 종종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잡지 못한 쥐는 결국 나중에 발견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그 쥐가 어느 케이지에 있던 쥐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각 케이지 마다 실험의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함부로 쥐들을 아무 케이지에나 섞어 넣으면 안 된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강수 연구원이 당부한 내용 가운데 하나도 그것이었다. 쥐들을 내 마음대로 이쪽저쪽 케이지에 옮겨놓지 말라고. 한 케이지에 담겨 있던 쥐들은 반드시 케이지를 교체할 때 똑같이 한 케이지에 모두 넣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덧붙인 게 있다. 만약 케이지를 교체하다가 실수로 쥐를 놓치게 되는 경우, 그 즉시 잡아서 교체하던 케이지에 넣으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도망친 쥐를 포기하라고. 그리고 나중에라도 그 쥐를 발견하면 아무 케이지에나 넣지 말고 비닐 봉투에 담아서 죽이라고. 그리고 죽인 뒤에는 사체 보관하는 저장고에 담아놓으라고. 그렇지 않고 도망친 쥐를 나중에 잡아서 아무 케이지에나 넣으면 실험을 망치게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사육실 안에는 양철로 된 커다란 통이 하나 있다. 크기가 제법 커서 잔뜩 몸을 웅크리면 사람 하나도 들어가기에 충분하다.
 그 통에는 항상 물이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물속에 투입 히터를 담가 놓았기 때문에 물이 뜨겁다. 사육실 안이 건조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나는 몇 번 그 양철통에 담긴 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적이 있다.
 케이지를 교체하다가 실수로 쥐를 놓쳤는데, 결국 그 쥐를 잡는 데 실패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우연히 사육실 안을 돌아다니는 쥐를 발견했다. 서둘러 그 쥐를 잡은 뒤 한동안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했다. 이강수 연구원 말로는 쥐를 잡은 즉시 죽여서 사체 저장고 안에 넣으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죽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의미였다. 그걸 직접 말하기에는 아무래도 껄끄러웠을 것이다. 그러면 이강수 연구원 자신이 너무 잔인한 인간으로 비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죽이는 방법까지는 차마 직접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심각하게 고민에 빠졌다. 과연 잡은 쥐를 어떻게 죽여야 할지 난감했다. 그냥 비닐봉투에 담아서 사육실 벽에 대고 세게 내려칠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너무 잔인했다. 비닐봉투 안에서 온몸이 터져 피범벅이 되어 있을 쥐를 생각하니 너무 끔찍했다. 그렇다고 쥐를 살려줄 수도 없었다. 밖으로 가지고 가 병원 잔디밭에 풀어주자니 어딘가 꺼림칙했다. 이강수 연구원도 절대 쥐를 외부로 가지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실험에 사용되는 쥐를 함부로 외부로 유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잡은 쥐를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양철통이었다.
 양철통 안에는 뜨거운 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손가락만 살짝 담가도 뜨거워서 얼른 끄집어낼 정도였다.
 내 눈에 하필 그 양철통이 보였다.
 나는 한손에 쥐를 움켜쥔 채 가만히 양철통 가까이 다가갔다. 여전히 뜨거운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손에 들려 있던 쥐를 한번 쳐다보았다. 쥐도 겁에 질렸는지 빨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충혈된 눈, 마치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것 같았다.
 “왜 좀 더 오랫동안 숨어 있지 못하고 벌써 발견된 거니. 미안해. 미안해, 쥐야.”
 그러고는 손가락을 펴서 쥐를 놓아주었다.
 쥐는 곧장 양철통 안으로 빠졌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쥐는 양철통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양철통 바닥에 가라앉은 쥐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벌써 죽은 것이었다. 나는 세척실로 가서 얼른 케이지를 세척할 때 사용하는 빨간 고무장갑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양철통에 빠져 죽은 쥐를 건져냈다.
 빨간 눈은 감겨 있지도 않았다. 실험용 쥐는 여전히 빨간 눈을 뜨고 죽어 있었다. 나는 얼른 양철통에 빠져 죽은 쥐를 비닐 봉투에 담아 사체 저장고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침울한 기분으로 케이지 교체 작업을 계속 했다.
 그 뒤로도 나는 몇 번 쥐를 놓쳤고, 그리고 나중에 그 쥐를 발견할 때마다 양철통에 빠뜨려 죽였다. 그때는 이미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 그냥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은 채 잡은 쥐를 양철통에 빠뜨려 죽였다. 그러고는 다시 건져내 비닐 봉투에 담아 사체 저장고에 넣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덕분에 실험용 쥐를 양철통에 빠뜨려 죽이는 짓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쥐를 쓰다듬으며 일주일 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내 물음에 쥐는 여전히 찍찍 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너도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아니면 내가 쥐의 말을 할 수 있어도 되고. 그러면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걱정거리가 있으면 서로에게 도움도 줄 수 있고. 그러면 참 재미있을 텐데. 흠, 좀 안타깝다. 대화를 나누지 못해서 좀 안타까워. 그래도 분명 너는 지금 나한테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겠지. 나처럼 너도 나한테 뭐라고 말을 하고 있을 거야. 서로 알아듣지는 못해도 우리는 분명히 말을 주고받고 있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흐흐, 오늘은 새 케이지로 교체해 주는 날이네. 기분 좋겠다. 깨끗한 톱밥 위에서 실컷 뒹굴고 놀아라.”
 나는 그렇게 각 케이지를 교체할 때마다 쥐들을 한 마리씩 들어올려 짧게라도 말을 걸었다. 그러고는 새로 가져온 깨끗한 케이지에 놓아주고 사료도 듬뿍 담아주었다. 물이 부족한 물병은 새 물병으로 교체해 주었다.
 그렇게 하루 할당량인 40개의 케이지를 교체하고 나면 대충 오후 1시가 조금 넘는다. 그러면 나는 연구소에 오기 전에 미리 병원 매점에서 산 빵과 우유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연구소 내에는 따로 식당이 없어서 점심 먹을 만한 곳이 없다. 물론 병원 내에 있는 외부인 출입 식당을 이용하면 되겠지만 거리가 조금 멀다. 그리고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매번 점심을 그곳에서 사먹기도 좀 버겁다.
 가격에 비해 음식 수준이나 맛도 별로였다. 그래서 연구원들도 주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온다. 아니면 병원을 벗어나 근처 식당을 이용하기도 한다. 나한테도 몇 번 함께 나가서 점심을 먹자고 권했지만, 그럴 때마다 도시락을 싸왔다는 핑계로 연구원들의 권유를 매너 있게 거절했다.
 점심시간에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연구소 앞에 야외 쉼터가 있기 때문에 연구원들도 점심을 먹고 나서 굳이 옥상까지 올라와 담배를 피우지는 않는다. 쉼터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뽑아 들고는 의자에 앉아서 수다를 떤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옥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뭐, 평소에도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아무도 없는 옥상에서 혼자 빵과 우유를 먹었다.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병원 밖 거리를 바라보며 여유 있게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점심을 다 먹은 후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연구소에서 피우는 첫 번째 담배였다.
 하루 중 평화롭다고 느끼는 때가 몇 번 있는데, 지금처럼 옥상에서 점심을 먹은 후 난간에 걸터앉아 병원 밖 풍경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평화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이번에도 평화로운 기분을 오랫동안 느끼려고 한껏 여유를 부린다. 담배 한 대 피우는 데 10분 가까이를 소비한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 나는 다시 4층 실험실로 향했다. 이제 케이지는 새 것으로 다 교체했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에는 일주일 동안 쥐들이 생활했던 케이지들을 모아 세척과 소독 작업을 해야 한다.
 먼저 케이지 안에 담겨 있던 톱밥을 자루에 버리고, 빈 케이지를 물이 담긴 싱크대 안에 차곡차곡 담가놓았다. 싱크대 안이 케이지로 꽉 차자, 나머지 케이지들을 옆 선반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세제로 케이지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물로 깨끗하게 헹궜다. 물로 헹군 케이지를 다시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담긴 소독약 속에 담갔다가 꺼냈다. 그리고 세척실 한쪽에 설치된 선반 위에 보기 좋게 진열했다. 물기와 소독약이 잘 마를 수 있도록 요령 있게 진열했다. 그리고 사료와 케이지들이 있는 방으로 톱밥을 들고 가 내일 사용할 40개의 케이지에 미리 톱밥을 채워놓았다.
 그러면 시간은 얼추 3시가 된다. 나머지 한 시간 동안은 두 곳의 사육실을 포함해서 실험실 바닥을 청소한다. 톱밥과 사료가 부족하면 해당 업체에 전화해서 발주도 한다. 그러고 나서 실험실 안에 사람이 있나 없나 확인한 후 세척실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형광등을 끄고 UV등을 켠다. 그 다음 세척실에서 얼굴과 손을 씻고 탈의실로 가 가운을 벗은 다음 세척실 안의 형광등도 끄고 UV등을 켠다. 그러면 연구소에서의 하루 일과가 모두 끝나는 것이다.
 나는 흰색 장화를 벗어 신발장에 넣고 내 신발로 갈아신었다. 그리고 실험실 문을 잠근 뒤 3층으로 내려가 지정된 장소에 실험실 열쇠를 걸어놓았다. 그러면서 오른쪽 창가 쪽을 보았다. 역시 그 여자 연구원이 자기 자리에서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고개까지 푹 숙이고 연구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도대체 저 여자 연구원은 연구 외에 다른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직 그 여자 연구원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내가 4층 실험실에서 일하는 동안 가끔 그녀가 사육실로 와서 쥐들을 관찰할 때도 있다. 그때도 그녀는 나한테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쥐들 관찰에만 몰두해 있다. 심지어 내가 있는 사육실에 들어올 때도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온다. 그 때문에 사육실 안에서조차 나는 그녀의 얼굴을 정면에서 쳐다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사육실 안에서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보지만, 그녀는 그런 내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케이지 안의 쥐를 꺼내 이리저리 살피다 사육실을 나가고는 한다. 사육실을 나갈 때도 그녀는 내게 수고하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얼굴도 들지 않고 조용히 사육실을 나간다.
 아무튼 어딘가 좀 특이한 구석이 있는 연구원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그리 오래 하지는 않는다. 나는 곧 몇 몇 연구원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연구소를 빠져나갔다.
 이미 그 시간에는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3층에 모여 각자의 자리에서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 간혹 무리지어 대화를 나누는 연구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자리에서 생물 시간에나 보았음직한 실험 기구들에 둘러싸여 연구에 여념이 없다.
 어쨌든 나는 단순하고 무료한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곧장 집으로 향한다. 여전히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의 연속이다.
 집에 와서는 잠들기 전까지 인터넷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 고등학교 참고서를 들춰보기도 한다. 그리고 부모님과 통화한 후에는 문제집을 잠깐 풀 때도 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다음 날 오전 7시 30분에 일어나기 위해 잠을 잔다. 자정 넘어서 잘 때도 있고, 그 전에 잘 때도 있다. 따로 잠자는 시간을 정해 놓은 건 아니다.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 나는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이 좋다.
 단순하고 무료할 때 나는 내가 정상이라고 느낀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연구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8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그 전까지는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실험실에 있는 쥐가 내게 진짜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전 7시 30분에 눈을 떴다. 그리고 10분 가까이 느긋하게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샤워를 한 후 씨리얼에 우유를 부어 후루룩 마시다시피 먹었다. 그리고 옷을 챙겨 입고 나서 다시 10분 가까이 담배 한 대를 피운 후 8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하지만 오늘은 9시 30분까지 연구소에 도착하지 못했다. 전철 안에서 역 이름을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던 도중에 낯선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고, 짧은 순간 추위를 느꼈다. 그리고 곧 역한 냄새를 맡자마자 온몸이 열기로 휩싸였다. 나는 잠시 호흡을 멈춘 채 어서 빨리 전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전철 문이 열리자마자 후다닥 전철에서 내렸다. 내려야 할 역이 아닌데도 그냥 전철 문이 열리자마자 내렸다. 전철 바닥에 쓰러져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승강장 의자에 앉아 잠시 호흡을 진정시키는 동안 두세 대의 전철을 그냥 흘려보냈다. 그리고 호흡이 진정되자 다음 전철을 타고 연구소로 향했다. 덕분에 평소보다 10분 늦게 연구소에 도착했다.
 연구소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이라 3층에는 연구원들이 몇 명 없었다. 물론 창가 쪽에 앉은 그 여자 연구원은 여전히 나보다 일찍 나와서 실험 기구에 얼굴을 파묻은 채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다른 몇 몇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의식하지 못한 채 연구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 연구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잠깐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창가 쪽 그 여자 연구원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이 좀 심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추구하는 목표가 나와 다르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곧 부끄러움을 잊은 채 열쇠를 들고 4층 실험실로 향했다. 손에는 병원 매점에서 산 빵과 우유가 들려 있었다.
 나는 4층 실험실 문을 연 뒤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흰색 장화를 꺼내 신었다. 그리고 손에 샴푸 같은 소독약을 뿌려 소독을 한 후 탈의실로 갔다. 탈의실 안에서 흰색 가운을 입고 실험실 내 세척실의 UV등 스위치를 끄고 형광등을 켰다. 그리고 세척실 안으로 들어가 수술용 고무장갑을 착용한 뒤 실험실을 돌아다니며 모든 UV등 스위치를 끄고 형광등을 켰다. 그런 다음 사료와 깨끗하게 세척해 놓은 케이지를 보관해 놓은 방으로 들어가 수레에 케이지를 실었다.
 그때부터 내가 담당하는 사육실 안에서 쥐들의 찍찍 거리는 소리가 심하게 들렸다. 마치 사육실 안에서 쥐들이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케이지를 수레에 싣는 동안 사육실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했나 하고 궁금해했다.
 사육실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사육실뿐만 아니라 4층 실험실 안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다. 실험실 내 UV등이 모두 켜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서둘러 수레에 케이지를 싣고 소리가 나는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오늘 케이지를 교체할 작업도 그 사육실에서부터였다.
 사육실 문을 열자마자 정면 선반 위에 있던 케이지 속의 한 쥐와 눈이 마주쳤다. 심하게 충혈된 듯 새빨간 눈, 몸이 하얘서 새빨간 눈은 더욱 새빨갛게 보였다. 나는 그 새빨간 눈과 마주쳤다.
 그 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분명 그 새빨간 눈을 가진 생쥐 크기의 하얀 실험용 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사람의 말이었다.
 “왜 이제 오는 거야! 하필 왜 오늘 따라 이렇게 늦은 거야! 당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그렇게 놀라서 우두커니 서 있지만 말고, 빨리 이 아래 케이지 좀 살펴봐. 어서 움직여!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지만 말고 어서 움직이라니까! 빨리 이 아래 케이지를 살펴보라고! 지금 저 케이지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어미가 갓 태어난 자기 새끼를 마구 뜯어먹고 있다고! 그러니까 당신이 가서 빨리 그 어미를 새끼한테 떼어내! 어미를 얼른 끄집어내란 말이야! 내 말 안 들려! 어서 움직이라니까!”
 “아, 알았어. 내가 가서 어미를 케이지에서 끄집어낼게.”
 나는 얼떨결에 그 쥐가 말한 케이지 쪽으로 달려갔다.
 ‘저 쥐가 어떻게 사람 말을 할 수가 있지’ 하는 생각 따위는 할 겨를이 없었다. 그만큼 쥐의 말은 다급했다. 그래서 우선 쥐가 가리킨 케이지 쪽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쥐의 말대로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미 쥐가 이제 갓 태어난 듯한 빨간 새끼 쥐를 마구 뜯어먹고 있었다. 어미한테 뜯어먹히는 와중에도 이제 갓 태어난 듯한 새끼 쥐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그냥 아주 미약하게 꿈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도대체 몇 마리나 뜯어먹은 걸까. 이제 케이지 안에는 세 마리의 새끼 쥐만 남아 있었다. 그나마 한 마리는 이미 몸통 절반 가까이가 어미 쥐에게 뜯어먹힌 상태였다. 어미 쥐는 아직도 그 새끼 쥐의 나머지 몸통을 뜯어먹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 케이지를 들어서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메탈을 들어 어미 쥐를 끄집어냈다. 어미 쥐에게 물린 새끼 쥐까지 함께 딸려왔다.
 나는 어미 쥐의 입에서 새끼 쥐를 떼어냈다. 그러고 나서 어미 쥐를 수레에 실려 있던 다른 케이지에 내동댕이치듯 쳐넣었다.
 몸통이 절반이나 뜯겨 나간 새끼 쥐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마리의 새끼 쥐는 눈도 뜨지 못한 채 아주 작게 숨을 쉬고 있었다.
 우선은 대충 상황을 해결했다. 저 어미 쥐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천천히 생각해 볼 일이었다. 어미 쥐를 죽일지 말지는 조금 더 생각해 본 후에 결정할 일이었다. 어쨌든 어미가 없는 상태라면 저 두 마리의 새끼 쥐들도 얼마 못 가서 죽게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어미 쥐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보다는 우선 내게 말을 건 쥐의 정체가 더 궁금했다.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나자 비로소 그 쥐가 나에게 말을 건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내게 말을 건 쥐에게 다가갔다. 그 쥐는 케이지 벽을 앞발로 짚고 서서 머리를 치켜든 채 나를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놀라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네가 나한테 말을 걸 수가 있지? 넌 쥐잖아. 쥐가 어떻게 사람 말을 할 수 있지?”
 “사람 말을 하는 쥐들은 꽤 돼. 아마 이 안에도 나 말고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쥐들이 몇 마리 더 있을 걸. 뭐, 그렇다고 해서 아무 사람하고나 말이 통하는 건 아니고, 일종의 선택받은 사람하고만 말을 하게 돼. 내가 당신한테 말을 하고 있어도, 아마 다른 사람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야. 그냥 찍찍 거리는 소리로만 들리겠지. 하지만 당신은 쥐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 거야. 그거 꽤 굉장한 능력이거든. 그러니 당신은 선택받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인간은 아마 극히 드물걸. 아무튼 그래서 당신은 몇 몇 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물론 쥐들 역시 전부 다 사람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당신과 마찬가지로 사람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쥐들은 드물거든. 그래도 사람만큼 드물지는 않아. 그래서 이 안에도 분명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쥐들이 있을 거야. 물론 그 수는 얼마 안 되겠지만 말이야. 시간이 지나면 그 쥐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사람 말을 하는 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니야. 어느 순간이 되면 사람 말을 하는 쥐들의 음파를 당신이 감지하게 돼. 그럼 그때부터 당신은 그 쥐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 물론 사람의 말로 말이지. 당신이 쥐의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쥐가 사람 말을 하게 되는 거지. 그리고 당신은 그 쥐의 말을 듣게 되는 거고. 한꺼번에 여러 마리의 쥐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지금처럼 나하고만 대화를 나눌 수도 있어. 쥐들 각자의 음파가 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그 여러 개의 음파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하나씩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야. 그래도 아마 당분간은 여러 마리의 쥐와 대화하는 건 불가능할 거야. 음파를 받아들이는 것도 점차 익숙해져야 하거든. 하지만 그건 당신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지. 당신도 모르게 저절로 훈련이 돼. 그러니 언제 여러 마리의 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몰라. 아마 시간이 꽤 흐른 다음에 가능하게 될 거야. 그러니 신기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고, 그렇다고 해서 빨리 동시에 여러 마리의 쥐와 대화를 나누려고 애쓰지도 마. 그런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 아무튼 그래. 아무리 설명해도 전혀 납득이 안 가겠지?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 뭐, 그냥 받아들인다고 해서 당신이 손해 볼 건 없잖아, 안 그래? 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게 아니고, 쥐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하기 버거웠다. 나머지 다른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그래. 그러니까 아무튼 난 너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는 거지? 내 말이 맞니?”
 “응, 맞아. 이제 당신은 나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 내 음파를 당신이 감지했거든.”
 “아, 음파 얘기는 이제 그만해. 도대체 뭔 얘기인지 모르겠어.”
 “그래. 그럼 음파 얘기는 이제 그만 하지 뭐.”
 “어쨌든 신기하다. 어떻게 내가 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지. 다른 사람들한테 이 사실을 얘기하면 아마 날 당장 정신병원에 쳐넣을 걸.”
 “후훗, 그럴지도 모르지. 다른 사람들은 내 말이 여전히 찍찍 거리는 소리로만 들릴 테니까. 그러니 정신병원에 가지 않도록 조심해, 후훗.”
 “그래, 조심할게. 그건 그렇고, 저 쥐는 왜 자기 새끼를 저렇게 뜯어먹은 거야? 갓 태어난 새끼들이 무슨 몹쓸 병에라도 걸린 건가. 그래서 혹시 죽기 전에 자기가 먹어버린 거야 뭐야. 텔레비전에서 보면 가끔 병들거나 허약한 새끼를 어미가 그냥 먹어버린다고 한 것 같기도 한데 말이지. 혹시 그런 게 아니라면 저 어미 쥐가 미치기라도 한 건가?”
 “미쳤지. 분명히 저 어미 쥐는 미쳤어. 그래서 자기 새끼를 잡아먹고 있었어. 하지만 저 어미 쥐를 미치게 한 건 여기 연구원들이야. 저 어미 쥐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분명히 저 어미 쥐에게 이상한 실험을 하고 있었을 거야. 그래서 저 어미 쥐는 미친 거고. 제 새끼를 잡아먹을 만큼 미친 거라고.”
 “그런 건가. 여기 연구원들은 그렇게 잔인하지 않은데. 물론 다들 실험에 미쳐 있는 사람들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험을 위해 그런 끔찍한 짓을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아무리 실험을 위해서라지만, 어미 쥐가 새끼 쥐를 잡아먹는 연구를 할 리가 없는데. 그리고 여기 연구원들은 다들 실험용 쥐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것 같았어. 너도 봐서 알 거 아니야. 연구원들이 가끔 여기 사육실에 와서 자신들의 실험 대상인 쥐들을 얼마나 귀여워하는데. 귀엽다며 쓰다듬는 모습을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거든. 특히 내가 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한 여자 연구원은 자신의 연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아마 쥐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할 걸. 오로지 쥐와 연구밖에는 모르는 사람 같더라고. 그런 사람이 그렇게 끔찍한 실험을 할 리는 없을 거야. 다른 연구원들도 마찬가지고.”
 “당신처럼 인간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던데. 연구원들은 실험 결과에 만족한 쥐들을 귀여워하는 거겠지. 만일 실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연구원들은 실험 대상인 우리들을 그냥 쓰레기 취급하거든. 사료 주는 것조차 아까워할 거야.”
 “흠, 글쎄,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가 좀 곤란하다. 내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실험 대상인 너희들에게는 좋게 들릴 리 없겠지. 그런 복잡한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
 “그래, 그건 당신 말이 맞아. 당신이 아무리 그럴 듯한 말로 우리를 위로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입장에서 하는 말일 뿐이니까. 나도 당신하고는 그런 복잡한 얘기 별로 하고 싶지 않아. 그런 문제는 아무리 얘기를 해도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시킬 수는 없을 테니까.”
 “보기보다는 꽤 현명하구나. 어쨌든 그건 그렇고, 저 미친 어미 쥐를 어떻게 처리하지? 이강수 연구원한테라도 가서 말해야 하나? 어미 쥐가 자기 새끼들을 잡아먹고 있다고?”
 “글쎄, 난 그냥 저 미친 어미 쥐를 당신이 죽여줬으면 싶은데. 그거 당신 주특기 아닌가. 쥐를 잡아다가 저 양철통에 넣어서 익사시키는 거. 저런 쥐는 살려두면 안 돼. 그럼 앞으로도 계속 자기 새끼를 잡아먹을지 모르거든. 새끼를 다 잡아먹고 나면 얼마 후에 다시 새끼를 낳고. 또다시 새끼를 다 잡아먹고 나면 얼마 후에 새끼를 낳고. 연구원들은 계속 그런 실험을 저 어미 쥐한테 할지도 몰라. 어쩌면 진짜 불쌍한 건 저 어미 쥐일지도 모르지.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 새끼를 잡아먹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차라리 당신이 저 어미 쥐를 죽여줬으면 싶어. 그게 어미 쥐한테도 좋을 거야. 어쩌면 어미 쥐도 그걸 바라고 있을지 모르고.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참 잔인하고 이기적이야. 자신들을 위해 동물한테 그런 실험들을 다 하고. 아참, 이런 얘기는 안 하기로 했지!”
 나는 새 케이지에 내동댕이치다시피 한 미친 어미 쥐를 쳐다보았다.
 새빨간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치 제 새끼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먹이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어미 쥐를 죽이면 결국 새끼들도 죽게 될 것이다. 게다가 어미 쥐를 죽이면 나중에 연구원들한테 뭐라고 할 것인가. 나더러 케이지 안에 있던 어미 쥐를 어떻게 했냐고 다그치면 뭐라고 할 것인가.
 “물론 내가 여러 마리의 쥐를 익사시키기는 했지만, 그때하고 지금은 상황이 달라. 너도 알다시피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 어느 케이지에서 도망친 쥐인지 몰라서 죽였던 거야. 그건 이강수 연구원의 지시사항에도 포함되어 있던 내용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 내가 저 어미 쥐를 죽이면 분명 이강수 연구원이 나한테 책임을 물을 게 뻔해. 그럼 난 일자리를 잃는다구. 그러고 싶지는 않아. 난 여기서 일하는 게 좋거든.”
 “그거야 간단하지. 그냥 케이지 교체하다가 어미 쥐를 놓쳤다고 하면 되잖아. 그리고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고 말해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다 나중에 발견해서 죽인 것처럼 하고.”
 “물론 그렇게 하면 되기야 되지. 하지만 그런 실수는 초기에나 했지. 이제는 그런 실수 안 해. 그건 연구원들도 알고 있어. 그래서 연구원들이 나를 신뢰하고 있거든. 실수 없이 일처리를 아주 잘한다고 늘 나를 칭찬해. 그러니 케이지 교체하다가 쥐를 놓쳤다고 하면, 아마 연구원들은 나더러 아직도 그런 실수를 하냐면서 많이 실망할 거야. 그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은데….”
 “그럼 뭐야. 당신은 저 어미 쥐를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거지! 그냥 자기 새끼들 곁으로 다시 돌려보내 주겠다는 건가.”
 “제법 눈치가 빠르네. 나는 이곳에서 힘이 있는 존재가 아니야. 나는 그저 연구원들의 실험을 돕는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해. 케이지를 교체해주고, 사료를 넣어주고, 물도 채원주고. 단지 그뿐이야. 물론 내가 이곳 교수와 연구원들에게 신임을 받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내 마음대로 연구원들의 실험을 방해할 수는 없거든.”
 “당신은 역시 잔인하네.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거, 그것만큼 잔인한 것도 없지. 당신을 쭉 봐왔지만, 역시 당신은 잔인해.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당신은 오직 자신만 생각해. 그래야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흠, 그게 나쁜 걸까 좋은 걸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골치 아픈 문제였다. 나는 다만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만을 원할 뿐이었다.
 “글쎄, 아마 나에 대해서는 네가 느끼고 있는 게 맞을 거야. 잔인한 게 맞을 거야. 그 잔인함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아마 너는 해답을 알고 있겠지. 그 답이 맞을 거야. 하지만 상관없어. 그래도 난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어미 쥐가 있는 깨끗한 케이지 속으로 새끼들을 집어넣었다. 이제 막 태어난 듯한 빨간 새끼 쥐를. 물론 이미 어미 쥐가 반쯤 뜯어먹은 새끼도 함께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평소와 다름없이 메탈 위에 사료를 보충해 주고 물병도 새것으로 갈아주었다. 그렇게 한 뒤 케이지를 집어들어 원래 자리에 갖다놓았다. 뒤이어 새끼 쥐들의 미약한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쳐다보지 않았다. 내가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어미 쥐가 새끼 쥐를 잡아먹는 동안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케이지들을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40개의 케이지를 교체하고, 수거한 케이지를 들고 세척실로 갔다.
 내가 사육실을 나올 때까지 쥐는 나에게 한 마디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나를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쥐의 마음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쥐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가 쥐와 대화를 하다니, 나는 그런 이상한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잠깐 동안은 놀라운 능력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 순간이 지나자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쥐와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좋을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오히려 귀찮았다. 그건 내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에 변화를 주는 것 같아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쥐들의 음파를 거부하고 싶었다. 쥐와 대화할 수 있는 내 능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쥐와의 대화를 피하고 싶었다. 능력을 없애고 싶었다. 도대체 실험용 쥐들과 대화를 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생각해 보면 전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바라지도 않은 능력을 발견한 덕분에 오늘은 좀 피곤한 하루였다. 집에 도착해서도 좀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마치 공황장애라도 겪고 있는 사람처럼 괜히 불안했다.
 인터넷 게임을 하면서도 계속 심장이 두근거렸고, 손이 떨려 책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불 속에서 이리 저리 뒤척이며 불안감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빨리 잠이 들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면 그럴수록 잠은 더욱 오지 않았다. 기껏 쥐 한 마리 때문에 단순하고 무료했던 일상이 뒤죽박죽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덕분에 분노까지 치밀었다.
 내 일상 속으로 파고든 쥐 한 마리에게 분노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분노감은 일주일이 넘게 지속됐다.
 여전히 그 쥐는 내가 사육실에서 일하는 동안 말을 걸었다. 그 쥐를 피해 맞은편 사육실로 도망을 치면 더 큰 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예 그 쥐가 있는 케이지를 세척실에 갖다놓고 나서 사육실로 들어가 일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그 쥐는 더 악에 받힌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지막지하게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왜 자신을 세척실에 쳐박아 놓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왜 자신과의 대화를 피하느냐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럴 때면 혹시 다른 연구원이 실험실로 들어와 그 광경을 목격할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비록 다른 연구원들한테는 쥐의 말소리가 찍찍 거리는 소리로 들린다고는 해도, 내가 케이지를 세척실에 놔둔 채 일을 한다는 걸 알면 기분 나빠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이곳 연구원들에게 많은 신임을 얻고 있다. 그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잠시 그 쥐를 세척실에 놔뒀다가도 곧 사육실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다시 쥐가 내게 말을 걸면 잠시 세척실로 갖다놓았다. 그럼 또 그 쥐는 나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런 상태로 일주일을 버텼다. 분노감이 극에 달했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를 찾지는 못했다. 연구원들에게 자꾸 쥐가 내게 말을 걸면서 괴롭힌다고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 쥐를 양철통에 빠뜨려 죽일 수도 없었다. 미친 사람 취급 받기도 싫었고, 연구원들에게 쥐를 어떻게 했느냐고 추궁받기도 싫었다.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일주일을 버텼다. 매일 밤 공항장애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불안해하면서 일주일을 버텼다. 불안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잤고, 쥐에 대한 분노 때문에 단순하고 무료하던 내 일상도 엉망진창으로 복잡해졌다.

 비록 쥐 한 마리 때문에 일상이 엉망진창으로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는 늘 7시 30분에 일어났다. 잠을 설치는 바람에 평소보다 조금 피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를 동료로 믿고 있는 연구원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만일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출근 시간이 들쑥날쑥하거나 일 처리가 예전보다 매끄럽지 못하면, 연구원들은 분명히 내가 실험실 일에 싫증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언제까지고 자신들을 도와 묵묵히 쥐들을 보살펴줄 것이라고 믿고 있을 텐데, 그런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실험실 일에 싫증이 나지도 않았고, 쥐들 보살피는 데 소홀하지도 않았다. 다만 쥐와의 대화가 불편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연구원들한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아마 연구원들은 내가 쥐들 보살피는 데 싫증이 나서 이상한 핑계를 대고 있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세상에 쥐와의 대화가 불편해서 일하는 데 지장이 있다니, 어린아이의 터무니없는 거짓말보다 더 속이 빤히 보이는 핑계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었다. 그러니 남들은 분명 내가 그렇게 말하면 속이 빤히 보이는 핑계라고 생각할 것이다. 쥐들 보살피는 일에 싫증이 나서 어린아이들보다 더 유치한 핑계를 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7시 30분에 일어났다. 그리고 평소처럼 10분 가까이 느긋하게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샤워를 한 후 씨리얼에 우유를 부어 후루룩 마시다시피 먹었다. 그리고 옷을 챙겨 입고 나서 다시 10분 가까이 담배 한 대를 피운 후 8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는 정확히 9시 30분이었다.
 3층으로 올라가 열쇠를 집어들면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창가에 앉은 여자 연구원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내가 근처에 있는 것도, 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도대체 뭘 연구하기에 8개월 가까이 항상 이른 아침부터 연구소에 나와 꼼짝도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는지 새삼 궁금했다. 그런 생각으로 여자 연구원을 한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왜 지금까지는 그런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지 희한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언제나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자세히 보니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늘 똑같았다. 하얀 가운 사이로 보이는 하늘색 블라우스와 카키색 면바지, 거기에다 흰 바탕에 분홍색이 군데군데 섞인 나이키 운동화. 생각해 보면 그녀의 옷차림은 내가 처음 보았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늘 똑같았다. 7개월 전이나 5개월 전이나, 심지어 어제까지도 그녀의 옷차림에는 늘 변화가 없었다. 게다가 머리 모양 역시 변화를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깨까지 올 법한 약간 긴 머리를 뒤로 한 번에 묶었다. 그것도 예쁜 머리핀이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노란 고무줄로 한 번에 묶었다. 연구하는 데 방해되지 않게 머리를 성의 없이 묶은 티가 역력했다. 그렇게 8개월째 늘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또 한번 그 여자 연구원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연구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약간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왠지 흔히 접하는 보통 사람처럼 느껴지지가 않아서 감히 곁에 다가가 말조차 걸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연구 외에는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 아마 옷 입는 것조차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똑같은 옷을 여러 벌 산 게 분명했다. 예전에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아침마다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게 싫어서 같은 옷을 몇 벌 사놓고 바꿔 입는다던 사람, 그 사람이 떠올랐다. 아마 저 여자 연구원도 그런 이유 때문에 똑같은 옷을 여러 벌 샀을 것이다. 연구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물론 나도 한때는 그렇게 해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아침마다 뭘 입을까 고민하는 게 귀찮아서 아예 똑같은 옷을 여러 벌 살까 하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겐 그럴 용기가 없었다. 혹시 사람들이 매번 같은 옷만 입는다고 놀릴까 봐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런데 저 여자 연구원은 과감히 그 선택을 했다.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생각이 들자 여자 연구원이 더 위대해 보였다. 상대적으로 나는 더 초라해 보였고.
 그렇게 씁쓸한 기분으로 4층 실험실로 올라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는 깨끗한 케이지를 수레에 싣고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작업해야 할 곳도 내게 말을 거는 쥐가 있는 사육실이었다.
 나는 사육실에 들어가자마자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일에 열중했다. 쥐가 말을 걸어와도 못 들은 채 일에만 전념할 생각이었다.
 작업대를 사육실 안 넓은 곳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어제까지 작업한 케이지 바로 옆에 있는 케이지를 집어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케이지 안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새끼 쥐 세 마리와 다 자란 암수 한 쌍의 쥐가 있었다.
 새끼 쥐들은 내가 메탈을 들어올리자 겁이 났는지 톱밥 안으로 숨어들었고, 다 자란 어른 쥐들은 케이지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벽을 발톱으로 긁고 있었다.
 나는 수술용 장갑을 낀 손으로 우선 어른 쥐들부터 조심스럽게 잡아서 깨끗하게 닦아놓은 케이지 안으로 옮겼다. 새 케이지로 이사한 쥐들은 이번에도 깨끗한 톱밥을 앞발로 마구 헤치며 새집 단장에 분주했다.
 이번에는 새끼 쥐들을 새 케이지로 옮길 차례였다. 나는 톱밥을 헤치며 새끼 쥐들을 찾았다.
 톱밥을 이리저리 들추자 한쪽에 웅크리고 있는 새끼 쥐 세 마리가 보였다. 무슨 비밀회의라도 하는 듯 세 마리가 한데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먼저 한 마리를 조심스럽게 집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새끼 쥐는 내 손바닥 위에서 몸을 공처럼 돌돌 만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새끼 쥐를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 보았다. 반응이 없었다. 여전히 몸을 공처럼 돌돌 만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고는 나머지 두 마리도 조심스럽게 집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세 마리의 새끼 쥐들은 내 손바닥 위에서 또다시 무슨 비밀회의라도 하는 듯한데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새끼 쥐 세 마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잠시 뒤 손바닥에 온기가 느껴졌다. 새끼 쥐 세 마리의 체온이 고스란히 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기분 좋을 만큼 따뜻했다. 그래서 새끼 쥐들을 새 케이지에 옮겨놓을 생각도 하지 않고 한동안 그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새 케이지에 옮겨 놓은 어른 쥐들이 찍찍 하고 나를 향해 소리 지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집단장도 다 마쳤으니 어서 빨리 자신들의 새끼를 놓아달라는 소리 같았다. 어른 쥐 두 마리가 동시에 나한테 항의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또 한 번 미소를 지으면서 새끼 쥐 세 마리를 조심스럽게 새 케이지에 옮겨놓았다. 그러자 새끼 쥐들도 안심을 했는지 어른 쥐들이 집단장 해놓은 케이지를 다시 마구 흐트러뜨렸다. 세 마리가 다 톱밥을 헤치며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꾸미기에 바빴다.
 나는 쥐들을 옮겨놓은 새 케이지 위에 다시 메탈을 덮고 원래 자리에 갖다놓았다.
 내게 말을 걸던 쥐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고 태연한 척 쥐들을 차례대로 새 케이지로 옮겨놓았다.
 그동안 난데없는 쥐와의 대화로 내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이 갑작스럽게 변했다. 그래서 그 갑작스러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평소에도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떤 얘기들을 주고받아야 할지 몰라서 일부러 사람들과의 대화를 피했다. 잠깐 안부 정도 묻고 지나치는 거라면 상관없었지만, 그 이상 길게 대화가 이어지면 나는 상대에게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통 감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괜히 시선을 피하며 상대 앞에서 딴 짓을 하기 일쑤였다. 그냥 상대가 자리를 피해주기만을 바랐다. 내가 먼저 피할 수는 없었으니까. 나는 그럴 만한 용기가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과의 대화 자체를 싫어하게 됐다. 누군가 나와의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면 나는 일부러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피했다.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미리 자리를 피해버렸다. 대화가 시작되면 그 다음에는 내가 먼저 자리를 피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대화 상대가 쥐였다. 그러니 미처 대화를 시도하기도 전에 피하지 못한 건 당연했다. 이번 같은 경우는 전혀 경험이 없었으니까.
 물론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쥐와 대화를 나누다니. 뭔가 특별한 능력이라도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쥐와의 대화 역시 다를 건 없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와 마찬가지였다. 불편하고 귀찮았다. 그래서 쥐가 말을 걸어도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쥐는 내가 상대를 안 하면 안 할수록 더욱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말려들었다. 조금 더 냉정하고 침착하고 예의바르고 교묘하게 처신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같이 감정적으로 대처했다. 아마 상대가 쥐였기 때문에 내가 잠시 쓸데없는 객기를 부린 것일 테다. 상대가 사람이었다면 용기가 없어서라도 그런 객기는 부리지 않았을 테니까.
 아무튼 내가 대화를 피하려고 하면 쥐는 왜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느냐며 화를 냈고, 나도 거기에 말려들어서 같이 화를 냈다. 쥐가 고함을 지르면 나도 고함을 질렀고, 쥐가 케이지 벽을 거칠게 두드리면 나도 사육실 벽을 발로 꽝꽝 찼다. 그리고 급기야는 쥐를 옆 사육실로 옮겨놓은 채 일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세척실에 갖다 놓기도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쥐는 더욱 거칠게 항의했다. 그러면 나 역시 당장에 세척실로 달려가 쥐에게 욕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쥐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쥐 주제에 인간인 나한테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나는 그런 쥐의 태도에 또 한번 흥분을 참지 못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버텼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았다. 쥐와의 실랑이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쥐의 심리전에 말려들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쥐가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나는 쥐를 옆 사육실에 갖다놓지 않을 것이다. 쥐가 아무리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케이지 벽을 거칠게 두드려도 나는 쥐를 세척실에 갖다놓지 않을 것이다. 그냥 다른 쥐들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으며, 실험용 쥐들이 깨끗한 케이지 안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런데도 쥐가 나한테 계속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지르며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면 한번 씩 웃어주며 무시할 것이다. 그러면 그만이다. 괜히 나까지 덩달아 흥분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을 탐하는 인간이다. 주변 상황을 무시하는 것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다. 당해낼 자가 없다. 그러니 쥐 역시 무시하면 그만이다. 다시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을 ㅉㅗㅈ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큼은 자신 있다. 전철에서처럼 지독하고 고약한 냄새만 나지 않는다면 나는 이 연구소에서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아무리 쥐가 내게 말을 건다 해도 연구소를 뛰쳐나갈 일은 없다. 그냥 늘 하던 대로 모든 것에 무관심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러면서 케이지 교체하고 사료 주고 물 갈아주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어서일까, 벌써 20개 가까이 케이지를 교체하는데도 쥐는 내게 한 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다. 내 능력을 눈치 챈 것이 틀림없다. 유소중이라는 인간은 쥐가 건네는 말에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눈치 챈 게 틀림없다. 뭐, 나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쥐가 알아서 포기했으니까. 물론 아직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지만.
 이제 스물한 개째 케이지를 교체할 차례였다. 그때 갑자기 사육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보통 다른 연구원들은 내가 사육실에서 케이지를 교체하는 시간 동안은 사육실 출입을 하지 않는다. 특별히 급한 일 아니고는 내가 일 하는 데 방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것도 다 내가 연구원들에게 신임을 받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 내가 사육실에서 일을 하는데도 불쑥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3층 창가 쪽에 앉은 그 여자 연구원.
 이번에도 그 여자 연구원은 내가 사육실에 있는데도 스르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항상 소리도 없이 문을 연다.
 여자 연구원이 사육실 안으로 들어올 때면 늘 전철에서 맡았던 비슷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전철에서처럼 그렇게 지독하고 고약하지는 않았다. 분명 비슷한 냄새이기는 했지만, 숨도 못 쉰 채 사육실을 뛰쳐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추위도 느끼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그 여자 연구원이 사육실 안으로 들어와도 케이지 교체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비록 약간 이상한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그 여자 연구원과 단 둘이 사육실 안에 있다는 데 묘한 흥분을 느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여자 연구원은 이번에도 소리 없이 사육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선반 위의 어느 한 케이지를 끄집어냈다.
 여자 연구원은 사육실 안으로 들어오면서도 단 한 번도 내게 눈인사를 건넨 적이 없다. 그냥 고개를 푹 숙인 채 케이지를 집어 쥐를 살피기만 한다. 마치 내가 사육실 안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예 내가 사육실에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쪽에 더 가깝다. 그냥 말없이 들어와서는 자신의 일만 하다가 또 말없이 사육실을 나간다.
 이른 아침부터 3층 자신의 자리에 앉아 연구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내가 열쇠를 가지러 온 것도 모르는 것처럼, 사육실 안에서도 그 여자 연구원은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채 자신의 일만 처리하고 사육실을 나간다. 그 때문에 나는 그 여자 연구원과 몇 번이나 단 둘이 사육실에 있었으면서도, 여태 그 여자 연구원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직까지 나는 그 여자 연구원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른다. 그냥 옆모습이나 고개 숙인 모습을 통해 대충 얼굴 생김새를 짐작할 뿐이다. 정확히 정면에서 그 여자 연구원의 얼굴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녀의 눈을 본 적이 없다. 그저 피부가 남들보다 유난히 희고, 잠을 제대로 못 자서인지 눈 주의가 약간 거멓고, 손가락이 남들보다 유난히 길고, 걸음걸이가 남들보다 유난히 조심스럽다는 것뿐. 나는 아직 그녀의 얼굴도 제대로 모르고 목소리가 어떤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작고 가녀릴 것 같다. 걸을 때도 늘 소리 없이 조심조심 걷는 걸 보면 목소리가 결코 클 리 없다. 말할 때도 언제나 소곤거리기만 할 것 같다. 새하얀 피부 때문에 얼굴 예쁜 건 당연할 거고. 다만 이 냄새의 정체가 좀 궁금하기는 하지만. 여자라면 아무리 머릿속이 온통 연구 생각밖에 없다고 해도 은은한 향수라도 좀 뿌리면 좋으련만. 3층 창가 쪽에 앉아 있을 때는 냄새 나는 걸 못 느끼지만 이렇게 사육실에서 가까이 있으면 약간 안 좋은 냄새가 난다. 아마 본인은 모르겠지. 뭐, 어쩌면 냄새 따위 신경도 안 쓸지 모른다.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연구에 더 집중하겠지.
 그런데 오늘은 그 여자 연구원이 사육실에 들어온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혹시 그녀가 있는 곳에서 쥐가 내게 말을 걸어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 때문에 약간 평정심을 잃었다. 쥐가 말을 걸더라도 웃으면서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던 마음에 약간 흔들림이 찾아왔다.
 그녀 앞에서 괜히 이상한 사람 취급 받기는 싫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단 둘이 있는 것에 묘한 흥분을 느끼면서도 하는 수 없이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저, 이, 일하시는데 방해해서 죄, 죄송합니다.”
 그녀 앞에서 말을 하려니 꽤나 긴장이 됐다. 갑자기 말까지 더듬었고, 얼굴도 화끈거렸다. 혹시나 내가 말을 거는 동안 그녀가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보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졌다. 덕분에 태어나서 이처럼 긴장하기는 처음이었다.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보다 몇 천 배는 더 긴장이 됐다.
 “저, 제, 제가 지금 화장실이 좀 그, 급해서요. 그래서 지금 화장실엘 좀 가야 하, 하거든요. 뭐, 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그, 그러니까 호, 혹시 일 다 보시고 나, 나가실 때 구, 굳이 실험실 문 안 잠그셔도 돼요. 화, 화장실 갔다가 다시 들어올 거거든요. 유, 유브이 등도 안 켜셔도 되, 되고요. 그, 그럼 천천히 이, 일 보시다가 가세요.”
 그러면서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고개 숙인 여자 연구원의 뒤통수를 한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나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내게 뭐라고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 10초 동안 제자리에 서서 멍청하게 그녀의 뒤통수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도 들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내 말을 못 들은 사람 같았다. 그냥 케이지에 있는 쥐들을 열심히 살피기만 할 뿐이었다. 혹시 이 연구원, 귀가 잘 안 들리나. 나는 그런 생각까지 했다. 사람이 바로 옆에서 말하는데 이렇게 아무 반응을 안 보일 수도 있나. 그렇다고 내가 그 여자 연구원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다시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덕분에 살짝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애초에 연구밖에 모르는 사람이려니 생각하고 나 역시 무시하기로 했다. 옆에 다가가니 냄새가 조금 더 강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그녀의 대답을 듣지도 못하고 사육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가 잠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병원 밖 풍경을 구경했다.
 10분 정도 옥상에서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다시 사육실로 돌아왔을 때 그 여자 연구원은 없었다.
 여전히 그 여자 연구원이 내가 말을 거는 데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게 신경 쓰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정도로 자신의 일에 몰입해 있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점점 그녀가 신비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언제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나, 언제쯤 그녀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머지 케이지를 교체하고 있었다.
 그렇게 케이지 교체 작업이 끝나고 옥상에 올라가 점심까지 먹은 뒤, 오늘 수거한 케이지 세척 작업을 했다.
 일주일 동안 쥐들이 살았던 터라 수거한 케이지에서는 시큼한 오줌 냄새가 났다. 그리고 구수한 듯하면서도 오래 맡고 있으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는 정체불명의 냄새도 났다. 아마도 쥐들 몸에서 나는 냄새이거나 배설물 냄새일 것이다.
 나는 방진 마스크를 쓴 채 수거한 케이지 안에 있던 더러운 톱밥을 플라스틱으로 만든 납작한 주걱으로 깨끗하게 퍼냈다. 그리고 톱밥을 퍼낸 케이지를 물이 담긴 싱크대 안으로 차곡차곡 넣었다.
 40개의 케이지에서 퍼낸 톱밥의 양은 만만치 않았다. 100리터짜리 영업용 쓰레기봉투에 담으면 거의 절반 가까이 찼다. 그렇게 톱밥을 다 퍼내고 나서 케이지를 세척하고 있는데, 갑자기 세척실 문이 열렸다. 또 누군가가 실험실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싱크대와 세척실 문은 서로 반대쪽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세척실에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누구인지 확인하려면 고개를 돌려 세척실 문을 쳐다봐야 했다.
 혹시 또 그 여자 연구원이 온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아까 내가 사육실 안에서 말을 걸었는데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려 사과하러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꼭 굳이 사과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하지만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세척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이강수 연구원이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를 다른 연구원들에게 소개시켜 준 바로 그 연구원이었다.
 “여, 수고가 많네요, 소중 씨.”
 나는 그 말을 듣고 약간 실망한 채 고개를 돌려 이강수 연구원에게 인사를 했다.
 “오셨어요! 이제 막 톱밥 퍼내고 케이지 세척하는 중이에요. 덕분에 세척실에 좀 냄새가 심하죠? 쥐들이 워낙에 열심히 먹고 싸고 하는 바람에, 히히. 그나저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이강수 연구원은 장난삼아 잠깐 코를 막고 냄새가 고약하다는 손짓을 하더니 곧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오늘은 반드시 소중 씨에게 약속을 받아놓으려고 왔지요. 매번 이렇게 고생하는데 우리랑 통 밥 한 번 먹은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미리 못박아놓으려고요.”
 “예? 뭘 못박아놓으신다는 건지….”
 “허허, 또 벌써부터 긴장하신다. 꼭 밥 같이 먹자고 하면 긴장부터 하시더라. 아무래도 이상해, 소중 씨. 혹시 밥 먹을 때 뭐 이상한 버릇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예를 들어 소처럼 되새김질을 한다든가 하는. 아, 미안. 역시 나는 남을 웃기는 재주가 없어. 이런 식상한 얘기로 남을 웃기려고 하다니, 참.”
 “히히, 재미있어요. 그리고 저 밥 먹을 때 되새김질 안 하고요.”
 “웃기긴 뭐, 하나도 안 웃기지. 참, 그건 그렇고 오늘이 우리 아버님 생신이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음식 준비를 많이 할 거예요. 덕분에 연구원들이 내일 음식 좀 싸와서 같이 먹자고 난리지 뭡니까. 그래서 내가 그러자고 했지요. 그런데 또 연구원들이 이번에는 꼭 소중 씨도 같이 먹어야 한다고 아우성입니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매번 밥도 한 번 같이 먹은 적이 없다고 투덜대지 뭡니까. 그러니까 소중 씨도 이번에는 도망갈 생각 하면 안 됩니다. 내일은 점심 싸오지 말고 우리랑 같이 먹어요. 그냥 멀리 안 가고 요기 실험실 앞 쉼터에서 먹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점심 때 쉼터 내려가기 전에 소중 씨 데리러 올게요. 그때 같이 가서 점심 먹읍시다. 이번에는 그 어떤 핑계도 안 통합니다. 이상 끝. 나는 도저히 냄새 때문에 이곳에 있을 수 없답니다. 자, 가요. 그럼 내일 같이 점심 먹는 걸로 하고, 계속 수고 좀 해줘요. 안녕, 소중 씨. 히히.”
 그러면서 사라졌다.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그냥 냄새가 지독하다면서 횅하니 사라졌다. 냄새 핑계를 대면서 내 말도 듣지 않고 사라졌다.
 큰일이다. 이렇게 되면 내일은 어쩔 수 없이 연구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어야 한다. 벌써부터 긴장이 된다. 사람들하고 같이 밥 먹는 거 참 부담스러운데. 그냥 혼자 옥상 가서 빵 먹는 게 훨씬 더 마음 편한데. 하지만 나한테 뭐라고 말할 기회도 안 주고 이강수 연구원은 횅하니 세척실을 나가버렸다. 아마 내가 일을 끝마치고 실험실 열쇠를 갖다놓기 위해 3층으로 가더라도 이강수 연구원은 찾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일을 끝마칠 시간에 맞춰 이강수 연구원은 나를 피해 어딘가로 도망가 있을 것이다. 내게 핑계 댈 기회를 안 주기 위해서.
 후, 이럴 때는 정말이지, 연구원들에게 신임을 받는다는 것도 꽤 달갑지만은 않다.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려는 건지. 물론 그 의도야 순수하겠지만, 정말 나처럼 남들과 함께 밥 먹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왜 그런 개인의 취향은 무시하는 건지.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케이지를 벅벅 문질렀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케이지를 소독약 속에 담갔다 뺐다.
 모처럼 말을 거는 쥐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다시 예전처럼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으로 되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은 사건 때문에 또다시 일상이 비틀거릴 위기에 봉착했다.
 딱 한 번 점심 같이 먹는 걸 가지고 뭘 그렇게 걱정을 하나 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된다. 그게 걱정이었다. 어떻게든 내일 한 번으로 끝을 내야 할 텐데, 신임을 받는 연구원들한테 이번 딱 한 번만 같이 점심 먹겠다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다. 차라리 밥 먹을 때 진짜로 되새김질 하는 흉내라도 낼까 하는 절박한 아이디어까지 떠올랐다. 전혀 웃기지도 않은 농담일 뿐이었는데, 그걸 또 아이디어라고 떠올린 내가 한심했다. 그렇다고 내일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다고 결근할 수도 없었다.
 고민을 하면 할수록 머리만 더 지끈거렸다. 차라리 내일 일은 잊어버리고 어서 실험실 아르바이트나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자꾸 머릿속에서는 내일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제멋대로 이 생각 저 생각 떠올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차라리 사육실에 있는 쥐라도 내게 말을 걸어줬으면 싶었다. 그럼 최소한 내일 일을 걱정하는 것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세척실을 나와 가만히 사육실 문을 열어보았다. 내게 말을 걸던 쥐는 열심히 사료만 갉아먹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어 쳐다보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사료 먹고 물 마시고 또 사료 먹고 물 마시는 것에만 충실했다.
 저 쥐 역시 나와 말을 하는 것에 더 이상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나처럼 그냥 단순하고 무료한 일상을 ㅉㅗㅈ기로 한 것 같았다. 내가 먼저 말을 건다 해도 오히려 나를 무시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서운 쥐 같으니라고.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밥만 먹으면 되나, 아니면 이야기 주제를 만들어 함께 대화를 나눠야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가 끊기지 않게 노력을 해야 하나, 아니면 밥 먹는 중간 중간 짧게 대화를 나누면 되나. 도대체 밥 먹는 데 어울릴 만한 대화 주제는 뭐가 있을까. 여럿이 밥을 먹을 때는 사람들이 각자 말을 할 때 적당히 호응만 해주면 되나, 밥을 너무 빨리 먹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천천히 먹는 것도 예의가 아닌가. 아,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실험실에서 일을 하는 동안 제멋대로 떠오르는 생각들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이 상황에서 쥐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제멋대로 떠오르는 생각을 제멋대로 놔둔 채 간신히 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실험실 문을 잠근 뒤 3층으로 내려가 열쇠를 제자리에 걸어놓았다.
 잠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여자 연구원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까 사육실에서 내가 말을 걸었다는 사실은 아예 모르는 것 같았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지금쯤 내게 한 마디 정도 말을 걸어줬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가 3층에 내려왔는데도 쳐다보지 않았다. 정말 연구에 미친 사람 같았다. 진짜로 내가 사육실에서 말을 걸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연구에 미친 사람, 나는 지금 내일 일 때문에 미칠 지경인데. 어쩜 이리도 그녀와 나는 서로 미치는 종류도 다른지 모르겠다. 덕분에 심한 좌절감까지 느꼈다.
 역시 이강수 연구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로 도망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내일 일을 걱정하며 터덜터덜 연구실을 나왔다.

 오늘도 7시 30분에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점심시간이 걱정됐지만,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수를 찾지는 못했다. 일단 오늘은 연구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어야 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했다. 대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그럴 듯한 핑계거리를 한두 개 만들어놔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제처럼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완벽한 핑계거리를 몇 개 만들어놔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다짐을 하면서 10분 가까이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샤워를 한 후 씨리얼에 우유를 부어 후루룩 마시다시피 먹었다. 그리고 옷을 챙겨 입고 나서 다시 10분 가까이 평화롭게 담배 한 대를 피운 후 8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오늘도 연구소에 정확히 9시 30분에 도착했다. 아마 이런 상태라면 내일이나 모레 쯤 평소보다 10분 늦게 도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3층으로 올라가 열쇠를 집어들면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창가에 앉은 여자 연구원을 쳐다보았다. 이제는 아침마다 그 여자 연구원의 모습을 쳐다보는 게 거의 습관처럼 굳어졌다.
 그녀는 여전히 내가 근처에 있는 것도, 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4층 실험실로 올라가면서 오늘은 일을 좀 서둘러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연구원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점심시간을 많이 낭비하는 대신 오전에 일을 좀 서둘러서 해치우면 일 마치는 시간은 평소와 거의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케이지 교체하는 일을 좀 서둘러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게 말을 걸던 쥐는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을 안 갖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내게 단 한 마디의 말도 걸지 않았다. 말을 걸지 않는 건 물론이고, 이제는 아예 사육실 안의 다른 쥐들과 다를 바 없이 톱밥을 파헤치거나 사료를 갉아먹거나 물을 마시는 등 사육실에서 키우는 다른 실험용 쥐들과 똑같은 행동만 반복하고 있었다. 케이지 벽을 앞발로 거칠게 긁으며 내게 고함치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평범한 실험용 쥐가 되기로 작정한 듯했다. 나야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동시에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케이지 안에 갇혀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드디어 내가 쥐의 음파를 감지해 대화 나눌 기회를 얻었는데, 내가 그걸 거부해버렸으니 저 쥐는 다시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라는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는 걸.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잠깐 동안은 대화를 나누다가 곧 불편함을 느끼고 피해버리는 걸. 아마 쥐와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에도 만찬가지였을 것이다. 잠깐 동안은 별 부담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게다가 쥐와의 대화라서 신기해하기도 했겠지만, 역시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쥐의 음파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 따위 내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왜 나 같은 사람한테 그런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화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쥐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니. 신은 내게 전혀 쓸모없는 능력을 주셨다. 차라리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능력이나 주시지.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능력.
 쥐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 따위는 내게 전혀 필요 없다. 신이 그 능력을 가져가서 차라리 다른 사람한테나 주는 게 낫다. 혹시 쥐와 대화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라도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 사람이 진짜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케이지 교체 작업을 서둘렀다. 실험실 일은 단순했기 때문에 머릿속으로는 언제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게 이곳 실험실 아르바이트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였다.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온갖 상상을 할 수 있었다. 단순하고 무료한 삶을 원하는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바쁘게 케이지를 교체하고 있는 사이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사육실 문이 열리면서 이강수 연구원이 고개를 삐죽이 내밀었다.
 “여, 수고가 많네요, 소중 씨.”
 첫 인사는 늘 똑같다. 레퍼토리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셨어요.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 됐나 보죠? 아, 한창 필 받아서 케이지 교체하고 있었는데…. 그냥 필 받은 김에 조금 더 케이지 교체하다가, 저는 나중에 혼자 점심 먹으면 안 될까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손도 멈추지 않고 이강수 연구원에게 물어보았다.
 “안 되죠. 당연히 안 됩니다. 지금 쉼터에서 연구원들이 소중 씨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거든요. 아마 소중 씨 안 내려오면 다들 오늘 점심은 굶을 것 같던데요. 그러니 당연히 같이 내려가서 점심을 먹어야죠. 자, 자, 이제 그만 잠시 일손을 멈추시고 저와 함께 만찬장으로 내려가시죠, 소중 씨. 히히.”
 나이에 걸맞지 않게 웃음소리가 가늘었다. 나를 끌고 가는 게 즐거운 듯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수술용 장갑을 벗고 대충 손을 씻은 다음 이강수 연구원을 따라 연구소 앞 야외 쉼터로 내려갔다.
 쉼터에는 이미 많은 연구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쉼터 탁자 위에는 정말 만찬장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많은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세 개의 탁자에 저마다 음식들이 가득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초대해서 같이 먹고 싶을 만큼 음식들이 많았다. 이 많은 음식을 다 어떻게 가져왔나 궁금할 정도였다.
 연구원들이 나를 보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올 사람이 다 온 것에 기뻐하는 눈치였다. 이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환호성이었다.
 3층 연구원들이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 쉼터가 꽉 차서 더 이상 앉을 자리도 없어 보였다.
 이강수 연구원과 나는 쉼터 맨 끝에 있는 두 개의 빈 자리에 각각 마주보고 앉았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점심을 먹는 동안 굳이 내가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음식이 맛있다는 소리를 연발하는 바람에 다른 얘기는 할 새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그때 한 연구원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나이 많은 이강수 연구원을 쳐다보며 궁금한 얼굴로 무언가를 물어보았다.
 “그나저나 소중 씨 말고 4층 실험실에서 일하던 또 다른 아르바이트생 있었잖아요. 그 사람은 이제 좀 괜찮데요?”
 “어, 아, 그 영호 씨라는 사람! 글쎄, 아르바이트 그만 두고는 따로 연락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뭐 별일이야 있겠어! 다들 한동안 겁에 질려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잖아. 영호 씨도 뭐 벌써 여기 아르바이트 그만 둔 지 일주일 넘었으니까 이젠 괜찮아졌겠지. 그런 거 보면 우리 소중 씨는 참 대단해.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한두 달 일하다가 무섭다며 뛰쳐나가고는 했는데. 소중 씨는 실험실에서 일하는 게 체질에 맞나봐요?”
 이강수 연구원이 뜬금없이 나한테 이상한 질문을 하기에 좀 어리둥절했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뭐, 저야 실험실 일이 체질에 맞기는 하지만, 혹시 전에 아르바이트하던 사람이 다치기라도 했나요? 안 그래도 요 며칠 그 사람이 안 보이더라고요. 대신 다른 연구원이 케이지 교체하고 그러시더라고요.”
 “아 참, 그러고 보니까 내가 소중 씨한테는 말을 안 했나 보네요. 옆 사육실에서 일하던 그 영호 씨라는 사람, 아르바이트 그만 뒀거든요. 가끔 여기 실험실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사람들 중에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한두 달 정도 일하고 나면 갑자기 나한테 와서 일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 종종 있었어요. 어떤 때는 말도 안 하고 다음 날부터 안 나온 사람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게 일 그만 둔 이유가 좀 희한해요. 영호 씨도 갑자기 어느 날 나한테 오더니 내일부터 일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갑자기 쥐 한 마리가 자신한테 말을 걸더라는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 계속 자신이 일하는데 쥐 한 마리가 말을 걸더라는 거예요. 그게 무서웠데요. 환청인 줄 뻔히 알면서도 쥐의 말이 계속 들리더래요. 그러면서 이러다가 결국 자신이 진짜로 미치는 거 아닌가 겁이 나더래요. 그래서 더 이상 일 못하겠다고 하면서 그만 뒀어요. 가끔 아르바이트생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사육실에서 케이지 교체하는데 쥐가 말을 걸더라는 겁니다. 참 희한한 일도 다 있죠? 하지만 한두 사람도 아니고 여러 명이 그렇게 말들을 하니까 믿기는 믿을 수밖에 없지요. 진짜로 쥐의 말이 들리기는 하나보더라고요. 물론 환청이겠지만, 그래도 본인이 직접 겪게 되면 아무래도 겁이 날 겁니다. 어쨌든 뭐 워낙에 이곳에서 하는 일이 특수하다보니까 이런 경우 저런 경우들이 다 생기는 것 같아요. 사방에 쥐들뿐인 곳에서 혼자 일을 하다보면 그런 환청도 들리고 그러겠지요. 게다가 케이지 안에 갇혀 있는 쥐들을 측은하게 생각하다 보면 특히나 그런 경우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래도 좀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이곳 일이 적성에 안 맞을 수도 있어요. 그러고 보면 소중 씨는 참 대단해요. 벌써 여기 온 지 8개월째인데,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니. 가만 보면 조용조용한 성격의 소중 씨 같은 사람이 의외로 강한 것 같아요. 정신력이 남들보다 좀 강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8개월째 일하면서 늘 처음처럼 변화가 없지요.”
 “그거야 모르죠 뭐. 혹시 소중 씨도 사육실 안에서 쥐와 대화하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이강수 연구원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 연구원이 끼어들었다.
 “아, 아니에요. 쥐와 대화를 어떻게 해요. 저야 쥐와 대화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이 쥐와 대화를 할 수 있다니, 꽤 신기한 경험일 것 같은데요, 뭘.”
 “후훗, 그런가.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도 좀 쥐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통 그런 기회가 안 주어져요. 왜 나한테는 쥐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꼭 아르바이트생들한테만 말을 거는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참 신기하긴 하죠.”
 젊은 여자 연구원은 쥐와 대화를 하지 못해서 안타깝다며 자기 앞에 놓인 산적을 입속으로 가져갔다.
 “그거야 영미 씨가 쥐에게 애정을 안 가져서 그래. 쥐에게 애정을 듬뿍 쏟아봐. 그럼 분명히 쥐의 말이 들릴 테니까.”
 이강수 연구원이 열심히 산적을 뜯고 있는 영미라는 젊은 여자 연구원에게 농담조로 말했다.
 “어머, 그럼 선배님도 쥐와 대화를 나누신다는 말씀이세요? 호오, 몰랐는데요. 역시 선배님은 대단하셔. 존경합니다.”
 영미라는 젊은 여자 연구원도 이강수 연구원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쳤다.
 대화 주제가 어째 이상하게 쥐와 말하는 쪽으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는 괜히 자리가 불편해졌다. 괜히 나도 쥐의 말이 들린다고 말해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참, 그러고 보니까 한 사람이 안 보이는 것 같네요.”
 “어, 누구? 누구 안 온 사람 있나! 3층에 있는 연구원들은 모두 내려온 것 같은데. 선배님, 혹시 3층에 우리 말고 누구 다른 연구원 있었어요?”
 내 말에 영미라는 여자 연구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이강수 연구원에게 물었다.
 “글쎄, 내가 알기로도 다 내려온 거 같은데…. 혹시 누구 빠진 사람 있나! 소중 씨, 누구 안 보이는 사람 있어요? 난 잘 모르겠는데.”
 “3층 열쇠 놓는 기둥 맨 오른쪽에 앉아 있던 그 여자 연구원 있잖아요. 그 분도 오늘 아침에 열쇠 가지러 갔을 때 보니까 계시던데. 그새 어디 잠깐 외출하셨나 보지요? 매일 아침마다 일찍 나와서 항상 연구에만 몰두하던 그 여자 연구원 있잖아요. 그 분이 안 보이시는 것 같아서요.”
 내 말에 음식을 먹고 있던 연구원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다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도대체 누구를 말하느냐고 나한테 되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연구원들을 대표해서 이강수 연구원이 내게 말했다.
 “글쎄, 난 아직도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소중 씨, 도대체 누구 말하는 거예요? 3층 열쇠 걸어놓는 기둥 맨 오른쪽 자리라니, 혹시 그 창문 바로 옆 자리 말하는 건 아니겠죠?”
 “맞아요. 거기 창문 바로 옆 자리에 앉아서 연구에만 몰두하던 여자 연구원 얘기하는 거예요. 그 분이 안 보이시네요. 아침까지만 해도 연구실에 계셨는데…. 아침마다 항상 그 자리에서 연구에만 전념하시잖아요. 제가 열쇠 가지러 가도 통 아는 체를 안 하시더라고요. 가끔 사육실 안에서 볼 때도 아는 체 안 하시고. 예전에 저 처음 여기 왔을 때도 이강수 연구원 님이 저를 그 분한테는 소개 안 시켜주셨잖아요. 물론 그 분이 한창 연구에 몰입해 계셔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그러셨겠지만요. 아무튼 그 여자 연구원은 정말 대단하신 거 같아요. 언제나 보면 연구에만 몰두해 있거든요. 어제도 제가 사육실에서 작업하는데 들어오셨더라고요. 그때도 저한테는 눈길도 안 주시고 쥐만 살펴보시더라고요. 제가 사육실에 있는지조차 모르셨나 봐요. 그런 거 보면 정말 대단하신 거 같아요. 여기 8개월째 있으면서 그 분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다니까요. 항상 고개 숙이고 연구에만 집중해 있는 바람에 옆모습하고 고개 숙인 모습만 봤어요. 심지어 목소리도 한 번 못 들었다니까요. 그래도 다른 연구원 분들한테는 가끔 말도 걸고 그러시겠지요? 피부도 너무 하얗던데. 창백할 정도로 하얗더라고요.”
 말을 하다보니까 내가 괜히 그 여자 연구원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비칠까 봐 살짝 걱정도 됐다. 말을 하다보니까 쓸데없는 것까지 다 털어놓아 버렸다. 물론 그 여자 연구원에게 관심이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서 얼굴이 조금 붉어지기까지 했다.
 내 얘기 때문이었을까, 쉼터에서 같이 점심을 먹고 있던 다른 연구원들이 모두 입을 다문 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뭐라고 소곤거리고 있었다. 내 시선을 피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내가 괜한 얘기를 한 건 아닌가 후회가 됐다. 그 여자 연구원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들킨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늘어놓아야 할 것 같았다. 그냥 매번 연구에만 몰두해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단지 그것뿐이라고 한 마디 덧붙여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강수 연구원이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소중 씨, 이거 그냥 진짜로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소중 씨 눈에는 정말로 그 창가 쪽에 누군가가 앉아서 연구하는 모습이 보이나요?”
 이강수 연구원의 말에 다들 시선이 나한테로 집중했다.
 도대체 다들 왜 이렇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거지. 내가 그 여자 연구원에게 관심을 갖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그리고 이강수 연구원의 말은 또 뭔가. 진짜로 그 여자 연구원의 모습이 보인다니. 그럼 내가 없는 사람이 보인다고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걸까. 도통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강수 연구원의 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다른 연구원들의 반응도 이해가 안 갔다. 도대체 개인의 취향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진짜로 보인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럼 제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나는 이강수 연구원이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되물었다.
 “네. 말 그대롭니다. 소중 씨 눈에는 정말로 거기에 누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나요?”
 또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갑자기 이강수 연구원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래서 사람들과 함께 밥 먹는 건 피곤하다.
 “당연히 보이죠. 거기에 사람이 있는데 그럼 안 보이겠어요. 이강수 연구원 님한테는 혹시 그분이 안 보이기라도 하시나요?”
 나는 살짝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도대체 이강수 연구원의 의도를 모르겠다. 나를 놀리고 있는 건가.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나를 희생양 삼아 분위기를 즐겁게 띄어보자는 건가. 그렇게 안 봤는데, 지금 보니까 이강수 연구원이 아주 형편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감히 나를 희생양으로 삼다니. 내가 그렇게 실험실 일에 최선을 다했건만. 그래서 많은 연구원들한테 신임도 받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교수한테 회식 제의도 받을 만큼 일처리를 똑부러지게 했건만. 그런 나를 밥 먹는 자리에서 희생양으로 삼다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소중 씨, 혹 소중 씨한테 실례를 했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아마 나 말고도 다들 소중 씨의 말에 의아해할 겁니다. 다들 믿지 못할 거예요.”
 “네. 저도 소중 씨 얘기가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창가 쪽에 사람이 앉아 있다니, 소름이 쫙 끼쳐요. 어떻게 거기에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죠? 거기에는 오래 전부터 아무 연구원도 앉지 않는 자린데.”
 뭔가 이상했다. 연구원들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않는다니, 이상해도 한참 이상했다.
 나는 사람들을 쭉 훑어봤다. 그들의 표정을 살폈다.
 분명 나를 놀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로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다시 이강수 연구원을 쳐다보았다.
 “아무도 앉지 않는 자리라니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그럼 제가 헛것이라도 봤다는 얘긴가요? 혹시 지금 저 놀리시는 거 아니죠? 그러면 저 정말로 화낼지도 모릅니다. 지금 제 기분 별로 안 좋거든요. 갑자기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에요. 그러니 저를 놀리시는 거라면 이제 그만 하세요. 충분히 놀림거리가 된 거 같으니까요.”
 내 말에 이강수 연구원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원들도 모두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지금 소중 씨 놀리고 있는 거 아니에요.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뿐입니다. 정말로 오해하지 마세요.”
 이강수 연구원은 나를 놀리는 게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그런 걸 보면 이강수 연구원이 나를 놀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왜 그렇게 이상한 질문을 한 거지.
 “그럼 왜 그런 질문을 하신 거예요?”
 이강수 연구원은 내 질문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말을 꺼내려다가도 다시 입을 다물었다. 뭔가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때 영미라는 젊은 여자 연구원이 이강수 연구원에게 말했다.
 “제가 얘기할까요? 아무래도 말 꺼내기 뭐하시면 제가 대신 말할게요.”
 “아니, 잠깐만 기다려봐. 잠깐 생각 좀 해보고 나서 내가 얘기할게.”
 이강수 연구원의 말에 다들 고개를 푹 숙였다. 더 이상 만찬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아직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얘기이기에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답답했다. 그때 드디어 이강수 연구원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기, 소중 씨,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소중 씨 얘기를 못 믿겠어요. 창가 쪽 자리에 사람이 앉아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소중 씨 얘기를 믿지 못 하겠어요. 왜냐하면 그 자리는 1년 전부터 비워놓은 자리였거든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 자리는 박지윤 연구원 자리였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그 자리를 될 수 있으면 끝까지 비워놓을 작정이거든요. 거기는 박지윤 연구원 자리니까요. 박지윤 연구원처럼 실험실 연구에 열정적인 사람은 없었어요. 아마 앞으로도 그런 연구원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이곳에 2년 가까이 있으면서 거의 매일 밤을 새다시피 하며 연구에 매달렸거든요. 몇 날 며칠 밤을 새도 지칠 줄 모르던 사람이었어요. 오직 연구밖에 모르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것에는 문외한이었죠. 연구 외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심지어 2년 가까이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툭하면 옆 건물인 병원에서 길을 잃기도 했어요. 한동안 박지윤 연구원이 자리에 없으면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의심했지요. 4층 실험실에 있거나 아니면 또 병원에서 길을 잃었거나. 그래서 병원 돌아다니며 박지윤 연구원 찾아서 데리고 온 적이 부지기수였어요. 핸드폰 같은 건 아예 들고다니지도 않았고요. 작동법도 잘 몰랐거든요.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안 되더라고요. 오직 연구에만 관심을 두다보니까 다른 것에는 집중을 안 하려고 해요. 그래서 박지윤 연구원 때문에 우리들도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한 가지 일에 매달리려면 박지윤 연구원처럼 저렇게 미쳐야 한다고 말했지요. 그런 사람이었어요. 박지윤 연구원은 그렇게 연구밖에 모르던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 발생한 겁니다. 그날도 박지윤 연구원은 혼자 연구실에 남아서 연구에 매달리고 있었어요. 그런 날이 아주 많았거든요. 남들 다 집에 갈 때까지도 박지윤 연구원은 혼자 남아서 연구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어요. 그러다 연구실 안에 있는 휴게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는 했지요.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박지윤 연구원이 새벽에 집엘 갔던 거예요. 연구에 몰두하다 문든 오늘이 아버지 생신이라는 걸 떠올렸나 봐요. 뭐, 우리들은 그렇게 추측하고 있어요. 마침 그날이 박지윤 아버님 생신이기도 했고, 박지윤 아버님도 우리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박지윤 연구원 아버님이 오후에 연구실로 전화하셔서, 박지윤 연구원에게 그냥 바쁘면 연구실에 있으라고, 괜히 피곤한데 집에까지 왔다가 다시 가지 말고 차라리 연구실에서 한 시간이라도 더 잠을 자라고. 그런데 박지윤 연구원은 새벽녘에 연구실을 나간 거예요. 아버님 생신인데 얼굴이라도 잠깐 보고 싶었던가 봐요. 그래서 박지윤 연구원은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어요. 그리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지요. 하지만 박지윤 연구원은 그날 집에 가지 못했어요. 생일을 맞은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했어요. 아니, 그 뒤로 영원히 아버지 얼굴을 못 봤다고 해야 맞겠네요. 택시가 올림픽도로를 달리다가 마주오던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거든요. 택시기사가 졸음운전을 했던 것 같습니다. 박지윤 연구원은 그 자리에서 죽었어요. 택시기사도 죽었고요. 그래서 우리는 박지윤 연구원을 기리기 위해 그녀의 자리를 비워두기로 했답니다. 이 연구소가 사라지지 않는 한 박지윤 연구원의 자리는 영원히 비워둘 거예요. 그게 우리가 박지윤 연구원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거든요. 평소에 그렇게 연구에만 매달렸는데, 죽어서라도 그 자리에 와서 언제든 연구에 매달리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 자리를 비워둬요. 거기는 박지윤 연구원의 자리니까요. 누구보다 연구에 애정을 쏟은 박지윤 연구원의 자리니까요. 교수님조차 그 자리에는 함부로 앉지 않아요. 그 자리는 박지윤 연구원이 앉아 있어야 하니까요….”
 나는 더 이상 이강수 연구원의 말을 듣지 않았다. 더 이상 쉼터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연구원들의 젖은 눈망울을 쳐다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쉼터에서 빠져나와 허겁지겁 3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실험실 열쇠를 걸어놓는 기둥이 있는 곳으로 숨도 안 쉬고 내달렸다. 그리고 기둥 옆에 서서 창가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여전히 여자 연구원이 앉아 있었다. 피부가 하얀 여자 연구원이 앉아 있었다. 창백할 만큼 피부가 하얀 박지윤 연구원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내가 근처에 왔는데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박지윤 연구원 곁으로 다가갔다. 다가가서 그녀의 몸에 손을 대볼 작정이었다.
 호흡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박지윤 연구원 곁으로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박지윤 연구원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8개월째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처음으로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창백할 만큼 하얀 피부의 그녀, 잠이 부족했는지 눈 주위가 약간 거멓던 그녀, 8개월째 목소리 한 번 들어보지도 못한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박지윤 연구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의 기분, 눈이 마주친 순간의 기분, 낯설지 않았다. 어디에서였지, 어디에서 이런 기분을 느꼈지.
 생각났다. 전철 안에서 느꼈던 기분, 뭔가에 이끌려 고개를 돌릴 때의 그 기분과 똑같았다. 고개를 돌리면 예의 어느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던 때와 똑같았다.
 순간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을 받았다. 짧은 순간 추위도 느꼈다. 그리고 이어서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역한 냄새가 났다. 역한 냄새를 맡는 순간 추위가 사라지고 온몸이 열기로 휩싸였다.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오자마자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독하고 고약한 냄새 때문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온몸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숨조차 쉬기가 힘들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한다면 맥없이 3층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직 내려야 할 역도 아닌데 전철 밖으로 뛰쳐나가듯 나는 박지윤 연구원 곁을 빠져나왔다. 1층 계단까지 구르다시피 내려와서 쉼터를 지나 곧장 병원 밖으로 빠져나갔다.
 쉼터에서 연구원들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냄새 때문에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병원을 빠져나와서야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뒤 천천히 병원을 바라보았다. 병원 건물 너머 연구실을 바라보았다. 죽은 박지윤 연구원이 앉아 있을 3층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냥 곧장 전철역으로 향했다.
 나는 전철역으로 향하면서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하루 중 평화롭다고 느끼는 때가 몇 번 있는데, 지금처럼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전철역으로 향하면서 담배를 피울 때 평화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그 평화로운 기분을 오랫동안 누리려고, 느린 걸음으로 전철역으로 향했다.
mirror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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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중 09.01.31 04:09 댓글 수정 삭제
    나이트 워치에서 안톤이 마녀와 처음 만나던 장면이 떠올랐어요.
  • No Profile
    아이 09.01.31 04:35 댓글 수정 삭제
    히갸, 그러고 보니 제가'나이트 워치'를 못 봤네요. 일단 오늘은 '나이트 워치'를... 일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 어떤 장면일지 굉장히 궁금합니다.
    그나저나 이 긴 글을 벌써 읽으신 겁니까. 다른 필진 분들 작품도 읽으신 것 같은데, 너무 무리하신 듯...;; 그래도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저야 고맙지만요. ^^;;
    역시 이번 호는 풍성하네요. 저도 놀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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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ol 09.01.31 23:23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분량이 길어도 재미있어서 잘 읽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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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아이 09.02.01 17:07 댓글 수정 삭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직업이 사서이신 건가요. 아, 제가 또 좋아하는 분 중에 사서로 근무하시는 분이 한 분 계신데... 하뮤츠 메세타 님이시라고, 싸우는 사서 중 한 분이십니다. 일명 무장사서. 아주 매력적인 분이시죠. ;;
    그건 그렇고, 제가 사서라는 직업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요, 알아보니까 관련 학과 전공에 무슨 자격증도 필요하다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
    어느 지방 사서 님, 부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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