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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마법사다.
 현대 마법사. 세계가 세계 자신을 위해 선택한 족속. 정교한 기계를 움직이듯 세계를 유지하고, 관리하고, 움직이는 직업인들. 그들의 사역이 없다면 구름도 흐르지 않고 꽃 한 송이 시들지 못한다. 열매는 풍성하지 못하고 쏟아지는 함박눈도 차갑지 않으며 사람의 걸음 아래 대지가 그리 굳을 수도 없다. 그들은 세계가 필요에 의해 선택하고 기르고 유지하는 족속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날 때부터 선택 받은 것이다. 자신이 무얼 위해서 태어나는 지 아는 인간은 매우 드물지만, 마법사들은 누구든 자신의 사명을 안다. 그들은 방황하지 않는다. 나는 그를 한때 부러워했다.


 그는 마법사다.
 그는 대학에 가지 않는다.
 마법사에게 적어도 세계의 규칙을 이해하는 일은 숨 쉬는 것처럼 쉽기 때문에, 더하여 그는 항상 꽤 괜찮은 성적을 얻어 왔기 때문에, 나는 그가 대학에 갈 거라고 멋대로 짐작해 왔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 그도 그럴 거라고 나는 믿었다. 그가 마법사라는 걸 알면서도 그게 뭐 어떻단 말이냐 싶었다. 고등학교까진 똑 같이 다녔으니까 대학도 똑 같이 가는 게 내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수학능력시험 날 아침 정류장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른 새벽부터 비가 쏟아지는데 새파란 꽃이 무수히 그려진 우산을 쓰고 42번 버스 정류장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빗줄기는 하늘과 땅을 이어 놓을 듯 똑바로, 한없이, 쏟아졌다. 감파란 어둠을 찢고 그 틈새로 누가 휙 내던진 것마냥 아침이 왔다. 여섯 시 반. 나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 그를 처음 만나, 우리는 오랫동안 단짝으로 지내 왔다. 오학년 때는 반이 달랐지만 매일매일 함께 집에 돌아갔고, 육학년 수학여행 내내 아이들이 아무리 놀려대도 나란히 앉았다. 속리산 문장대에서도 에버랜드에서도 우린 한 켤레의 신발처럼 붙어 다녔다. 중학교도 똑 같이 들어갔다. 같은 날 졸업하고 같은 날 방학을 하고 똑 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쳤다. 영어 시간에 내가 이상한 발음으로 책을 읽으면 다른 반 친구들과 똑 같이 그도 와르르 웃었다. 체육 시간에 배구공을 퉁길 때면 그도 다른 애들과 똑 같이, 마찬가지로, 세 번에 한 번은 잘못 퉁겨내 빈축을 샀다. 그는 별로 특이할 게 없는 학생이었다. 성적이 꽤 좋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골똘한 표정으로 잘 들어 주고 말이 많지 않고 세 번에 한 번은 숙제를 빼먹는. 단체 기합을 받고 도시락을 나눠 먹고 청소 시간에 빈둥거리다 반장에게 지청구를 듣는. 그리 길지 않은 전 생애나마 탁탁 털어 돌이켜 봐도 뭐 대단할 게 없는 학생이었다.
 비밀인데.
 같은 교과서를 나란히 놓고 공부하던 중학교 삼학년 겨울, 기말고사 바로 전날 그가 내게 말해 주었다.
 비밀인데, 사실 나는 마법사야.
 오랫동안 그의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법사라니? 모자에서 토끼 꺼내는 그거 말야? 왜, 추석 특집으로 해주는 그…… 외국 마술사 같은 그런 거? 나는 턱을 괸 채 교과서 구석 예제 문제에 의미도 없이 밑줄을 그었다. 괄호 열고 단, x는 0 또는 1이 아니다. 괄호 닫고. 바로 아래에 달린 해설에도 쭉쭉 밑줄을 긋는 사이 그는 조그맣게 아니,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이해를 구하거나 자신의 운명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고 그는 훌쩍 떠났다. 마법사 아이들끼리 예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학교에선 모두들 그 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수군거렸다. 그의 자리가 빈 채 중학교의 마지막 기말고사가 치러졌다. 아이들은 성적과 진로와 겨울방학 이야기에 휩쓸려 그를 잊었다. 역시 좀 이상한 애야. 말쑥한 얼굴이라 아무 말 않고 있었는데 너 걔랑 어울리는 거 다시 생각해 봐라. 보온도시락 가방의 지퍼를 내리면서 엄마가 말했다. 교복 재킷을 다 벗지도 않은 채로 나는 방문을 등지고 멍하니 서 있었다.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 아프다잖아!
 부모한테 얼굴도 안 내밀고 그 따위로 소릴 지르는 것부터가 문제야, 너, 하고 엄마가 또 말했다. 뿌연 천장은 발로 차고 놀기 위해 접은 우유팩 빛깔이었다. 낮았다. 손을 뻗으면 눅눅한 벽지가 닿을 듯하던 그 날의 그 감각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날, 중3 기말고사 후의 학교란 생선 좌판 제일 아래에 남은 떨이만큼이나 형태 망가진 것이어서 나는 이교시가 시작되기도 전에 혼자 학교를 나와 버렸다. 담임이 애들에게 말했던 그 병원에 찾아갔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집중진료실에 들어갔다고 간호사가 말해 주었다. 나는 하얀 외벽을 가진 그 종합병원의 화단에 걸터앉아 그 안에 실은 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쭉 그를 기다렸다.
 그는 오지 않았다.
 스모그로 뿌옇게 흐린 하늘에 붉은 빛이 스미고 이내 별 한 점 없는 밤이 닥칠 때까지도. 우습지만 그날 비로소 그가 마법사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리도 꼬리도 없는 이해였다. 엄마가 엄마라는 걸 새삼 이해하듯 나는 그를 이해했다. 나는 무릎을 꼭 끌어 안고 턱을 무릎에 얹었다.  키우던 병아리가 죽어버려서 이제 영영 만날 수 없다는 걸 배우던 때와 똑 같은 기분이었다. 졸업식 날까지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수군거렸지만 많이 다친 모양이더라는 이야기로 모든 호기심을 접었다. 그 녀석, 이제 만날 수 없는 걸까. 내가 불쑥 묻자 이상한 사람을 보듯 내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며 동창들이 눈을 찡그렸다. 너, 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마법사고, 우리들은 그들과는 다른 존재고, 그러니 이제 만날 수 없는 게 아니냐고 말한들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노을 지는 병원 벽에서 흔들리던 헐벗은 나무 그림자. 화단에서 올라오는 젖은 흙냄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는 돌아왔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싱글싱글 웃으며 새 교복을 입고 있는 그를 보고 나는 비로소 안도했다. 키가 반 뼘쯤 자란 그가 훈화하는 교장을 두고 어제 본 버라이어티의 출연자에 빗대어 속삭였을 때 나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큰 소리를 내 웃었다. 행렬 바깥에 서 있던 교사가 내 머리를 냅다 후려쳤다. 교실로 돌아오는 인파 속에서 그가 말했다.
 야. 우리 친구 맞지?
 당연하지, 개자식아.
 그가 웃었다. 나는,
 정말로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바람이 불게 하고 비가 내리게 하고 별이 구름 뒤에서 거대한 동그라미를 그리며 사계절을 흐르게 만드는, 그런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바다거북이 산란하고 봉숭아 꽃씨가 터져나가고 첨성대의 돌들이 조금씩 바람에 닳아 가는 법칙을 나도 알고 싶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을 나도 보고 싶었다. 골목길에 도사리고 있는 외눈박이 고양이의 부모가 누구인지, 꼬리가 잘려나간 유기견이 몇 종류의 병을 앓고 있는지, 녹이 슬어 부서진 놀이터 정글짐에 숨어든 바퀴벌레의 알에 몇 마리의 다음 세대가 들어 있는지 그들은 단숨에 계산해 낼 수 있다고 했다. 마법사들은 세계로부터 세계의 모든 기관들을 위임 받았다고. 그들은 이른바 세계라는 공장의 부품이며 연산식이라고. 수없이 많은, 내가 무심히 지나치는, 내 세계의 모든 요소들을 마법사만이 오롯이 느낄 수 있으므로 나도 마법사가 되었으면 싶었다.
 그는 마법사다.
 나는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도 냉장고의 구조도 휴대전화의 칩에 어떤 정보가 기록되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데 그는 세계의 법칙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나는 동력기관이 될 수 없으므로, 냉각기가 될 수 없으므로, 반도체의 실선 하나도 되어줄 수 없으므로, 마법사는 더더욱 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건 교과서만큼의 세계. 내가 아는 건 학교만큼의 슬픔. 스무 해도 채 지내지 못한 시간만큼의 기쁨. 손에 쥐었던 것들만큼의 온기뿐 결코 그 이상이 되지 못했다. 위대한 사람이 쓴 책을 읽어도 나는 그들의 세계와 대등한 세계를 알 수 없었다. 그와 매일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교과서를 같은 속도로 넘겼는데도, 같은 수식으로 같은 문제들을 풀었는데도, 나는 그와 같은 족속만은 될 수 없었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가끔 학교를 빠졌다간 한참 만에 해사한 얼굴로 돌아와 수업시간 내내 제 손바닥을 들여다 보고 있는 그의 눈에는 교실을 떠도는 먼지 한 톨 조차 세계 그 자체로 보일까. 때에 전 황색 커튼을 흔들며 창틀을 넘어선 바람이 그에게는 여러 종류의 수식의 조합으로 느껴지는 걸까. 나는 궁금했다. 알고 싶었다.
 “어차피 세상엔 여러 가지 사람이 있잖아. 비행기를 만드는 사람도 딱 한 사람은 아니야. 냉장고나 휴대전화도 그래. 너도 알잖아. 네 가족도, 네 애완용 치와와도, 네 자전거도, 전부 다르다는 걸. 같은 운명을 타고 태어날 수는 없어.”
 “아니야. 마법사는 타고 태어나잖아. 너희들은 같은 운명을 타고 태어나서 같은 걸 보잖아. 똑 같은 속도로 세상을 읽잖아.”
 “그래도 나는…….”
 절박한 얼굴로 말하는 내게 그는 이따금 말했다. 야, 우린 친구지? 친구 맞지? 나는, 너는, 그냥 친구지. 만약에 다른 대학에 가거나 다른 나라에 가거나 심지어는 우주비행사가 돼도 친구라는 건 변하지 않는 거지?
 그러나,
 그는 마법사다.
 그는 세계가 선택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들은 세계로부터 ‘존재해 줘’ 하는 부탁을 받고 태어나 세계를 유지하고, 흐르게 하고, 살아가게 하기 위해 전 생애를 소비한다. 그들은 삶의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으며 세계의 유지 외에 그 어떤 의무도 지지 않는다. 내게 있어 세계는 그 단어만으로도 참으로 거대하며 불가해하건만 그들에게는 설계도면이 잘 마련된, 아주 오래된 공장 설비 같다고 한다. 거기에는 어떤 상상력이 작용할 여지도 없다.
 “조이고, 닦고, 기름 치는 일인데. 부러워할 이유가 없어. 내 경우엔 사냥을 할 가능성이 높지만.”
 “부러운걸.”
 태어나기도 전에 ‘필요하다’ 하는 말을 들었다니, 몹시 부러운걸.
 해야 할 일이 무언지 잘 알고 있다니. 그것이 세계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니. 부럽고도 부러운걸. 나는 일생의 일생의 일생을 곱해서 보낸다 해도 이해할 수 없을 세계인데 마법사들에게는 매우 간단한 수식의 결합에 불과하다니.
 부러웠다.
 부러워했다.
 “……내일은 별로 안 춥대.”
 수능 예비소집일 날 캔커피를 교복 재킷 주머니에 넣어 주면서 내가 말했다. 텅 빈 가방을 메고 낯선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면서 그는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내일의 기온, 습도, 바람이 부는 방향, 태어나고 죽고 혹은 부식해 흩어져 버리는 생명체의 형태마저 그에겐 명확할 터이건만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텔레비전 일기예보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내일 다 끝나고 뭐 할거야?”
 “다 끝나? 뭐가?”
 “수능 끝나잖아. 약속 있어? 아님 집에서 쉴 거야?”
 “다 끝나는 거 아니잖아.”
 그는 마법사다.
 나는 나보다 한 뼘 정도 큰 그와 눈을 맞추기 위해 걸음을 멈췄다. 바람이 불고 하늘은 어두웠다. 별로 춥지 않았다. 은행잎이 때마침 소리를 내며 한 움큼이나 떨어졌다. 운동장 한 가운데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웅성대는 목소리에 섞인 불안, 한숨, 기대, 분노, 그 어떤 것도 그에게는 있었던 적 없겠지.
 마법사는 울지 않는다.
 그는 마법사다.
 “그래 그래, 다 끝나는 건 아니지. ‘다’는 절대 아니겠지. 나도 알아. 논술 학원도 다닐 거구 입시설명회도 다닐 거야. 그치만 내일은 아냐. 내일은 나 수능 끝나고 아무 것도 안 할거야. 가채점도 안 하구 교육 방송도 뉴스도 안 볼 거다.”
 같이 놀러 갈래?
 그가 먼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는데 나는 그런 걸 바랐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읽혀 버리지 않을까, 하고, 그럴 리 없는 걸 걱정했다. 마법사는 점쟁이가 아니다. 그는 몇 번이나 이야기 했다. 마법사라고 해서 남의 일생을 예언할 줄 아는 건 아니다. 세계가 어디로 흘러가는 지 전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법사는 그냥 세계를 이루는 규칙을 보통 인간들보다 잘 아는 사람들일 뿐이다. 어떤 속도로 단풍이 물드는지, 어떤 습도에서 꽃잎이 벌어지는지, 무지개 뿌리가 어디쯤에 박혀 있는지, 그런 걸 ‘계산할 줄 아는’ 존재인 거라고. 닥쳐오지 않은 미래의, 불명확하기 그지없는 인생 같은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뭐 그렇게나 실속 없는 재주가 다 있냐?
 실속 없지. 그러니까 부러워할 필요 없다고 말 했잖아.
 그래도,
 나는 마법사가 되고 싶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싸늘한 복도를 똑바로 걸어가면서 얼마나 더 오랫동안 그와 같이 있을 수 있는지 그것만을 생각했다. 입김이 고스란히 얼어 버릴 만큼 추운 날 촌스러운 녹색 목도리를 감고 낡은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학교 계단을 내려오면서, 긴 세월을 겪은 탓에 매끄러워진 난간을 쓰다듬으며 그의 이름만을 떠올렸다. 야, 우린 친구지? 친구였지? 수업 시간 내내 손바닥에 눌어붙은 자국을 열심히 문지르고 있던 그. 살비듬이 떨어져 내리는 팔뚝을 만지며 눈이 마주치면 멋쩍은 듯 웃던 그. 야, 우린 친구지? 나는 결코 그렇게 묻지 않았다. 한 번도 나는 그에게 감히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대답하는 쪽이었다. 요즘은 사냥을 배워. 사냥이라지만…… 소프트웨어에서 오류를 잡아내거나 아니면 우유 멸균을 하는 일이랑 비슷할 거야. 굉장히 빠른 속도로 도망치는데 매일매일 창궐하고…… 창궐이라면 이상하겠지? 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어…… 하고 그는 복잡한 얼굴을 했다.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 해답을 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철학 사상 지문을 볼 때 같은 그런 표정을. 야, 그게 니네 일이라면서 모르면 어떡하냐? 마법사도 모르는 게 있어? 나는 그의 옷어깨를 툭툭 쳤다. 너 신발끈 풀렸다. 보도블록의 차량통제용 난간에 발을 얹은 채 끈을 묶는 사이 그는 차도 반대편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양손을 늘어뜨린 채 손끝을 꾸물거려,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어 나지 않는데 자꾸만 자꾸만 제 손껍질이라도 뜯어낼 기세로 문질렀다. 이상하지. 근데 정말 모르겠어. 내가 잡을 수 있는지. 잡을 수 있다는 걸 아는데, 그런데도 모르겠어. 야…… 우린 친구지? 계속 친구지?
 그러나,
 그는 마법사다.
 나는 42번 버스에 혼자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흘깃 뒤를 돌아다 보았다. 비스듬히 내려다 본 젖은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교통카드를 인식기에 갖다 대는 도중에 이미 버스는 움직이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은 어둡고, 자리는 단 한 군데도 비어 있지 않았다. 야, 우리는…… 하고 나쁜 일을 공모하는 개구쟁이처럼 손나팔을 만들어 내게 말하던 그를 생각했다. 야, 우린 계속 친구지? 젖은 뺨에서 흐르는 물방울에 얼마쯤 나란 인간의 소금기가 섞여 들었을까를 계산했다. 알 수 있을 리 없지. 나는 구름과 바다와 플랑크톤과 원자분자의 속도도 규모도 고통도 고독도 분노도 알 수 없다. 부패와 부식의 속도도 성장과 승화의 기척조차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다.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정교하고 복잡한데 나는 살아가는 방법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버스가 과속방지턱을 넘으며 둔중하게 뒷바퀴가 퉁겨 올라갔을 때, 나는 그제서야 사람들이 아무도 우산을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먼지를 뒤집어 쓴 창에는 물기가 없었다. 달리는 버스와 반대 방향으로 멀어져 가는 건물도, 보도블록도, 원경으로 아득히 깔리는 수없이 많은 지붕들도, 모두 보송보송하게 말라 있었다. 새파란 꽃이 그려진 우산을 펼치고 미칠 듯이 쏟아지는 비 아래 놓여 있었던 건 나 뿐이었다. 그는 오지 않았다. 대학에 가지 않는다. 마법사가 될 거니까. 나는 둥그런 손잡이를 붙들었다. 축축한 점퍼 팔뚝에 바싹 마른 입술을 비볐다.
 그는 마법사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우리들은 이제 같이 등교하고, 하교하고, 내가 고른 노트에 그가 고른 노트를 겹쳐 교탁에 제출하고, 옆자리에 앉기 위해 다른 애들과 자리를 바꿀 수 없다. 나는 그가 마법사라는 걸 받아 들이게 됐던 중학교 삼학년 겨울처럼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이해했다. 젖은 머리카락 끝이 뺨에 달라 붙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긁어내며 가만히, 나는, 그저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 안은 고요했고 시험장으로 혼자 걸어 들어가는 기분은 예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마치 그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인간 같았다. 후배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발을 구르며 도열한 교문을 지나는 사이 마음은 차분해졌다. 휴대전화를 걷어 내라는 시험관의 말에 따를 때에도 메시지를 확인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만큼,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는 내 동창이었고 내 이웃사촌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다.
 야, 우린 친구지. 하고 그가 물으면 몇 번이고 웃으며 당연하지, 야, 우린 친구지, 대답을 했다. 학급 친구처럼 편한 말이 또 어디에 있다고. 너, 걔랑 적당히 놀라고 했니 안 했니? 성적이 왜 이모양이니. 대학도 안 간다 그런다며. 너 그런 애랑 어울리면…… 어머, 얘 눈 똑바로 뜨고. 얘, 정신 좀 차려라. 어머머, 뭐? ……뭐라고? 엄마한테 그런 소릴 들으려고 걔 대학 얘기 한 거 아니라고? 얘, 얘, 엄마가 그럼 니 엄마지 걔 엄마니? 걔 엄만 속이 새카맣게 타 문드러졌겠다. 정말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지…… 어머, 정말이지? 얘, 관둬라, 관둬. 엄마한테 얘기하면 당연히 엄만 너 걱정하지 그럼 너랑 같이 걔 걱정 해주게 생겼니? 걔 대학 안 간다 그러는데 왜 네가 걱정인데? 걔가 너니? 친구가 죽으라면 같이 죽을래? 친구, 친구 좋아한다, 어이구. 정신 빠진 년. 들어가서 공부나 해. 요 옆에 통로 살던 윤수 알지? 윤수는 말이다 걔네 엄마가 학원을…….
 그러나 엄마, 마법사예요. 걔는 그냥 마법사인 것뿐이라구요.
 몇 년이 지나면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제일 친했던 애가 있는데 말야’ 하고 그에 관해 유쾌한 이야깃거리로 삼기 위해 큰 소리로 지껄이게 될까. 엄마가 호언장담 하듯 대학에 가서 지내다 보면 지금 하는 고민 따윈 기억조차 나지 않는 걸까. 대학에서 친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꼭 지방 출신인 학생이 고향 이야기를 할 때처럼 매우 먼 곳의, 매우 오래된 일처럼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에 관해 이름도 없이 떠들게 될까. 야, 우린 친구지? 여전히 친군거지? 그런 목소리도 술에 취해 편의점 유리문 앞에 서 있을 때나 불현듯 떠오르겠지. 모르는 사람들의 지문이 덕지덕지 묻은 문에 어린 내 얼굴은 깜짝 놀랄 만큼 금세 늙어갈 터다. 기억 속에서 그는 언제나 교복을 입고 손나팔을 한 채 불면 꺼질 듯한 목소리로 나를 부를 터이고 다른 모든 추억이 그러하듯 결코 노쇠 하는 일 없겠지. 야, 우린 계속…… 야, 얌마, 우린 계속 친구지. 질문인가 확신인가 그도 아니면 그저 한 곡의 노래였나.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고 나는 쭉 우산을 들고 다녔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잿빛으로 잔뜩 찌푸린 하늘을 혼자 짊어진 표정을 한 아이들 틈에서 나는 가채점 결과와 씨름했다. 교실은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쭉 결석 중이었다. 몇몇 아이들에 내게 그에 관해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교사는 미리 연락을 받았다며 그가 입원한 병원 이야기를 했다. 오 분도 되지 않아 아이들은 그를 잊었다. 그는 마법사다. 그는 세계가 ‘있어 줘’ 하고 부탁했기 때문에 있다. 그는 세계를 사라지지 않게 만들기 위해 태어났다. 이 수 많은 생명과 이 수 없이 오래된 역사와 이 수 없이 덧없는 미래가 지속되기 위해서 그는 존재를 명령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마법사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해야 할 일이 있는 그가. 돌아볼 필요도 고민할 필요도 없는 그가. 나는 수업을 마친 후 혼자 거리를 떠돌았다. 딱히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는데 일 주일 만에 그와 마주쳤다. 헤어져 서로를 그리워하는 연인들조차 평생 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을 것처럼 넓은 서울 바닥에서, 나는 그와 조우했다. 아홉 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하철 역에서 하차했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리를 따라 걸었으며 불 꺼진 다세대 주택이 줄지어 늘어선 골목길로 접어 들었다. 그는 어두컴컴한 골목 구석에 숨 죽이고 앉아 있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발 소리에 놀라 뛰어 나오지 않았다면, 그래서 내가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면, 나는 부서진 소파와 찢어진 이불 사이에 앉아 있던 그를 발견할 수 없었을 터였다. 그는 꼭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보였다.
 “너 왜 시험 안 쳤냐?”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더니 그는 그제서야 흘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씨익 웃었다.
 “걱정했어?”
 “개자식.”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푸른 하늘 바탕에 십자가와 성경 문구가 찍힌 교회 홍보 티슈가 손가락에 잡혀 나왔다. 내용물을 단숨에 꺼내 움켜쥔 채 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내밀어도 그는 받아들 기색이 없었다. 입가를 닦아 주자 땀과 피가 함께 묻어 났다. 대학엔 안 갈 거야. 그가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다. 난 정식으로 마법사가 됐어. 이어서 말했다. 병원 안 가냐? 나는 말했다. 난 대학에 안 가. 마법사가 됐어. 정식으로 임명 받아서, 이제, 내가 할 일을 해야 돼. 난 그걸 하기 위해서 태어났거든. 나, 계속 이걸 배웠으니까…….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뭐라 해야 할지 몰라서 재킷 주머니를 뒤져 봐도 손톱 끝에 먼지만 끼어 들었다. 나는 언제나 그가 책상 아래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손가락을 비볐다. 말라 붙었던 핏물이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손가락 위로 툭, 하고 물방울이 번졌다. 아, 이거였다.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빙글빙글 웃었다. 여기저기 얻어 터졌는지 아니면 바위산을 맨몸으로 데굴데굴 구르기라도 했는지 찢어지고 긁힌 상처투성이다. 손등으로, 그의 더러운 바짓가랑이와 밑창이 뜯어진 신발 위로 연신 굵은 물방울이 떨어져 번져나갔다. 나는 얇게 차려 입은 그의 팔뚝을 꽉 움켜 잡았다. 그는 죽는다고 꽥꽥 비명을 질러 댔다.
 “뭐 한다고 이런 데 뒹굴구 앉았냐? 분리수거도 안 될 짜슥이.”
 “일 한다니까?”
 “일? 너 그거 마법산지 뭔지 연구원 비스무리한 거 아니었냐?”
 “도시락 공장에서 정해진 칸에 단무지 올리는 기계랑 비슷한 거지. 아, 기계에 기름 치는 거랑 더 비슷하려나?”
 “토 달긴. 도시락 공장 기곈지 기계 기름인지 뭐건 간에 여기 쓰레기밖에 없구만. 이런 데 주저 앉아서 뭔 일을 하는데? 기계에 대신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했냐? 꼬라지가 이게 뭐냐? 응? 누가 보면…….”
 “일이니까. 옆에서 보조 하던 거랑은 완전 다르더라? 나 혼자 뛰거든, 오늘부터. 나, 이거 담당자야. 평생 이거 해야 돼. 죽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
 나는 내년의 나, 아니 당장 몇 주 후의 나도 상상이 안 되는데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일생이 결정 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어느 대학에 가야 할지 불안해서 미치겠는데. 뭘 전공해야 되는지,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뭘 먹고 뭘 꿈꾸며 뭘 위해 숨을 쉬면 좋은 건지 안절부절 못 하겠는데 그는 벌써 삶의 모든 걸 결정했다고 한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세계, 그러니까 내일이나 모레나 일억 년 후나 영원이나 죽음이나 사랑이나 혹은 그 어떤 대단히 추상적인 것과도 비슷한 ‘우주의 규범’이 그에게 의무를 주었다고 한다.
 “비 온다.”
 “앗, 늦겠다! 얼른 일 해야 되거든, 나 놓쳐서…….”
 “비 온다고, 미친 놈아!”
 “얼른 잡아야 돼! 야, 이거 진짜 심각하거든? 내가 안 잡으면 완전 큰일 나.”
 “뭘 잡는데?”
 요란한 소리가 났다. 채찍 같은 소나기였다. 거짓말처럼 그와 내가 서 있는 자리에만 비가, 하늘과 땅을 똑바로 이어 놓은 것처럼 세찬 물방울이, 계속 떨어져 내렸다. 그는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내 손 위에 다른 쪽 손을 올려 놓았다. 그게 더운지 찬지 생각할 새도 주지 않고 그는 말했다.
 “아침!”
 그는 마법사다.
 “아침?”
 그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돌아섰다. 나는 우산을 꺼냈다.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그가 걷기 시작하자 빗방울은 내 머리 위에서 점차 잦아 들었다. 어서 가, 하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세계의 목소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마법사다. 세계는 그를 세계를 위해 지었다. 그들은 세계를 위해 태어나 세계를 위해 살아가며 세계를 위해 죽는다. 사람은 왜 태어나는 걸까. 나는 아마 일생 동안 그 해답 근처에도 가지 못할 테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답을 알고 있다. 나는 그를 부러워했다. 나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될 수 없는 마법사가, 그가 마법사라고 고백하며 내가 그 사실을 이해한 순간부터 언제나 나는 마법사가 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렇다면 그가 홀로 상처 입은 채 뒷골목에 팽개쳐져 있지 않았을 터이므로. 그가 홀로 비를 맞으며 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얼굴로 휘청휘청 걷지 않아도 됐을 터이므로.
 “넌 아예 시험이나 안 쳤지. 난 존나 열공했는데 아무래도 인서울 못하지 싶다.”
 나는 새파란 꽃이 무수히 그려진 우산으로 그의 머리 위를 가려 주었다.
 “얼른 가. 빨리.”
 “가고 싶어도 못 간다니까? 등신아, 사람 말 좀 들어라. 얻어 터지기나 하고. 퍽이나 마법사님이다, 미친 놈.”
 “됐으니까, 가.”
 “어제 정류장에 왔다 갔지? 시험 치기 전에 쫄딱 젖었잖냐. 씨발, 망했어. 개자식 진짜 세계 같은 소리 한다, 완전…… 너 이 새끼 내 성적은 상관 없다 이거냐?”
 “…….”
 “시험은 치지. 치고 대학 안 가도 되잖아. 졸라 간지 날 텐데.”
 “……빨리, 가. 제발.”
 흐느끼듯이 웅크린 어깨가 떨렸다. 빗방울이 투닥투닥 꾸짖는 소리를 내며 그의 어깨를 쳤다. 아직 솜털이 보송한 목덜미를, 요즘 애들답게 비실비실해 보이는 손목을, 흘러내린 피로 엉망이 된 운동화 콧등을 두들겼다. 나는 그의 걸음처럼 휘청거리는 우산을 쥐고 곁에 붙어 걸었다.
 “아침을 잡는 게 너 하는 일이냐?”
 “응. 아침을 잡아야 돼. 이따만 하고 막 사납게 군다.”
 “물어?”
 “물렸다. 여기.”
 “되게 지랄 맞네. 시급 얼만데? 너 혼자 해?”
 “…….”
 “야. 나 원서 낸거 다 망하면 어떡하냐? 재수 할까? 야, 나 재수 하면 너 같이 할래? 공부 혼자 하면 노는데.”
 “화 내기 전에 가. 내가 빌까? 어쩌면 집에 갈래? ……말 했지, 나는 마법사라고. 난 이제 아침을 잡아야 돼. 안 그러면 이 비도, 밤도, 안 끝나. 난 얼어 죽을 거야.”
 “와, 그거…….”
 되게 지랄 맞지?
 그가 푸르게 질린 얼굴로 웃었다. 개자식, 혼자 시 쓰고 앉았냐? 나는 말했다. 야, 울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 중딩 때부터 그랬던 거 아냐? 너 그 마법산지 뭔지 연수 간다고 기말 쌩까고 학교 안 왔을 때 딱 그러더라. 씨발…… 너 수능 안 쳤다 그럼 또 완전 화려하게 나 뭐라 그럴 거다. 야, 너 억울하지도 않냐? 학굘 그렇게 열심히 다녀 놓구 시험은 왜 안 쳐? 야, 응? 안 그래? 야, 제발…… 제발 나 좀 봐 주라. 응? 나는 계속 말했다. 말하고 또 말했다. 우산에 화려하게 프린팅 된 꽃이 그의 젖은 이마에 똑 같이 푸른색 그림자를 드리웠다. 희미하게 웃으며, 그는 몸을 돌려 젖지 않은 골목 쪽으로 달려갔다. 아무 말도 없이. 변명하지도 화를 내지도 혹은 보통 소년처럼 요란하게 웃지도 않은 채 그는 그냥 무어라 입술을 들썩거렸다. 야, 우리는…… 우린 친구지, 계속. 그렇게 말했을까. 말해 줬을까. 내가 입을 다물었다면 그는 빳빳하게 다린 새 교복을 입고 고등학교 입학식날 내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친구지, 하고 물어 주었을까. 나는 답할 수 있었을까. 있었을 것이다. 있었어야만 한다. 나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그가 마법사이므로. 세계가 선택한 사람을 부러워하며 모든 것이 정해져 있고 한 점 흔들림도 고민도 없는 그 일생을 동경하였으므로. 나는 그의 친구이므로. 무엇보다도, 그렇다, 나는 언제나 그의 물음에 답해 주었어야 했다. 야, 우린 친군거지. 계속, 계속 친구인 거지. 기억 속에서 그는 언제나 교복을 입은 소년으로 눈부시게 웃고 떠들 터다. 친구면 된다. 나는 친구면 된다고 계속 생각했다, 언제든 곧바로 큰 소리로 당당하게 웃으며 답할 수 있도록 결코 그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초등학생이던 그, 중학생이던 그, 교과서를 나란히 놓고 떠들던 그, 졸고 있던 그, 더 이상 손을 잡지 않게 되었던 날의 그, 웃는, 언제나 기억 속에서 환하게 웃는, 그 모든 시절의 그. 친구면 된다. 우린, 친구지, 그렇지, 그가 물으면 나는 답했다. 우린 친구지. 계속. 나는 그의 빈 자리에 우산을 기울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젖은 흙냄새를 풍기며 피가 말라 붙은 상처에서 다시 피와, 구정물과, 땀이 흐르는 인간인 그는 아침을 따라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아침을 볼 수 없었다. 그는 그저 텅 빈 골목길을 질주하고 있을 뿐이었고 거짓말처럼 벗갠 하늘은 뿌연 빛으로 그득했다. 네온사인이 반사된 하늘은 탁했다. 그가 내 시야를 벗어나자마자 비는 그쳤다. 나는 우산을 접지도 않고 흠뻑 젖은 어깨에 걸친 채 그가 사라져 간 골목길을 따라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발견한 그는 차곡차곡 전봇대 옆에 쌓인 쓰레기 봉투를 길고양이 무리마냥 무자비하게 찢어 발기더니, 보기 드문 플라스틱 쓰레기통 위로 펄쩍 뛰어 올라갔다. 그가 서 있는 자리에 비가 내렸다. 한 줌의 어둠이 일렁이며 담장을 박차는 것을, 나는 본 듯도 싶었다.
 그는 아침의 꼬리털 한 거웃을 주웠을 뿐이라고 했다. 자정이 넘어서 음식물 쓰레기에 파묻힌 채 그는 손을 내밀었다. 오랜 친구 사이인 나는 더러운 냄새가 폴폴 풍기는 그의 손을 잡아주는 대신 우산을 내밀었다. 세계는 그를 용서하지 못하겠는지 세차게 비를 쏟아 부었다. 그는 드러누운 채 내가 건네준 우산을 쭉 뻗어 자신의 시야를 가렸다. 나는 마법사가 아니었으므로 거만하게 맨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여전히 뿌옇고 검고 별 거 아니다. 아무 것도 없다. 텅 비었다. 저 텅 비고 이해 안 되는 것이 그를 가졌다.
 “대학 진짜 안 갈래?”
 “너 은근 질기다?”
 “재수 혼자 하면 망한다니까. 내가 좀 근성이 없잖냐.”
 “성적도 안 나왔는데 벌써부터 그런 소리 하냐?”
 “……아침인가 뭔가 그거 그냥 잡지 말지 그러냐? 마법사 관두고 나랑 재수 때리자, 응? 내 성적 봐서 존나 거지 같으면 그래 줄라냐?”
 “못 잡아도 아침은 와.”
 그가 다른 쪽 손을 뻗었다. 마법사는 아주 많아, 복숭아 나무보다도 회양목에 핀 무수한 꽃송이보다도, 저, 쏟아지는 빗방울보다도 많이 있어. 죽거나 죽이거나, 피가 흐르면 아침은 와. 움켜쥐고 있던 것을 놓아 보내자 펼친 손바닥에는 피가 흐르고 빗물이 떨어졌다. 핏방울이 부스스 떨치고 일어서 방울방울 밤 사이로 날아 올랐다. 그는 마법사다. 아침을 부르는 마법사. 세계가 밤을 전송하고 새 날을 부르라 명하여 그리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 나는 그의 피가 하늘 저편을 일순 밝히는 것을 보았다. 이 밤은 가고 아침이 올 것임을 나는 이해했다. 그를 이해했던 순간처럼.
 “넌 마법사가 돼서 매일매일 아침 붙잡고. 난 대학생이 돼서 존나 별 거 아닌 걸로 고민하고 진상 부리다가 나중에 취직 하고. 야, 그냥 다 그렇게 사는 거다. 수십 년이나 더 살아야 될 지도 모르는데 의무도 없고 이룰 것도 없고. 야, 너는 아침을 부르고, 넌, 평생 그 빌어먹을 아침한테 물리고, 그러니까 나는…….”
 “안녕.”
 그러니까 나는…… 나는,
 마법사가 아니다.
 놓아 보낸 우산이 둥실둥실 떠올랐다가 다시 빗방울에 떠밀리듯 그의 내민 손으로 되돌아가고, 또 잡았던 손을 풀어 보면 영영 작별인 양 떠올랐다가 몇 번이고 미련이 남아 돌아보는 사람마냥 되돌아가고. 나는 그가 안녕, 하는 목소리에 다시 한 번 돌아볼 생각도 없이 비 내리는 하늘을 벗어났다. 이를 악물고 속눈썹을 적신 빗물에도 눈을 부릅떴다. 온 세상이 부드럽게 부풀어 올랐다. 우산에는 새파란 꽃, 무수히무수히 새파란 꽃. 난 아직 스무 해도 살아 보질 못했는데 그는 세계를 위해 피 흘린다. 우린 친구지. 난, 친구면 됐다, 언제나 언제나, 나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그와 같은. 절대로 진짜 피어날 수 없을 푸른 꽃다지를 하늘 삼은 채 나는 그의 피가 불러온 여명이 닥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간다. 너 따위가 피 흘리지 않아도 아침은 온다고, 너만 괴롭고 너만 상처 입고 너만 홀로인 게 아닐 거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왜 책임을 지고 밤마다 거리를 떠돌아야 되느냐고, 나는 말하지 못했다. 그는 마법사다. 그가 아침을 부르기 위해 죽이거나 혹은 죽지 않으면 세상에는 결코 빛이 돌아오지 못한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그는 마법사다.
 현대마법사.
 나는 한때 그들을 부러워하였다. 그들의 환한 눈을 닮고 싶었고 그들의 높은 시야를 배웠으면 했다. 그들은 세계를 위해 살건만 세계가 아니다. 나는, 정말로, 몹시, 그를 부러워했다. 내 한때는 흘러가고 평범한 인간인 나는 그를 잊겠지. 학교 다닐 때 나 알던 놈 하나 있는데 그 자식이랑 수학여행 첫날에……. 그 망할 놈이 수능 째고 튀는 바람에 지각할 뻔 해 가지고 교문 앞까지 졸라 뛰는데 말이지, 진짜 내가…… 그런 이야길 하며, 아주 먼 옛날 이야길 하듯이, 이젠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웃기까지 하면서, 나는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어김없이 아침은 밝아 오겠지. 아침 햇살 아래 나는 매일 죄 지은 듯 괴로울 지도 모른다. 쓸데 없는 부채감에 몸서리 치며 쿰쿰한 냄새가 나는 이불 속으로 도망을 칠지도.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그는 마법사다. 그는 세계를 위해 산다.
 나는 아니다.
 내가 아는 세계에선 온 몸 던져 피 흘리는 사람이 없어도 아침이 온다.
 간밤 세찬 비에 꺾여 버린 건 앙상한 나뭇가지뿐이고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도, 이유 없는 폭력에 희생되지 않았다고 공고하게 믿는다. 나는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처럼 이 별 거 아닌 하루하루가 공짜로 왔다가 멋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며, 불평을 하고, 고개를 돌릴 작정이다. 아침 같은 건 그냥 주어진다. 그냥 오고 그냥 간다. 이따위 걸 위해 피 흘리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아무도 희생되지 않았다. 새로 밝아오는 아침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리하고 태양은 스모그에 싸여 침침하며 사람들은 무표정하게 거리를 꽉 메운다. 피 냄새 따윈 어디에서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 왜 내가 울겠는가? 그는 마법사다. 그만이 아침을 불러오기 위해 피 흘리는 마법사다. 나는 언제나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너 혼자 저 추운 비 아래 서 있지 않아도 좋다고. 보이지 않는 고통에 어깨 물리며 네 피와 상처로 세계를 구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기 위해.


 누군가 어둠을 새파란 칼로 찢고 피가 뚝뚝 흐르는 짐승을 휙 집어 던진다.
 그제서야 아침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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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No Profile
    임태운 08.11.29 03:40 댓글 수정 삭제
    느낌이 좋군요.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살다보면 '저 놈 혹시 마법사인가?' 싶은 인물들이 가끔 있지요. 좀 더 정갈해지고 명쾌했다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No Profile
    지나가던 08.12.02 10:09 댓글 수정 삭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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