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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사흘

2008.12.26 22:0912.26


―      …자신이 살아 있으며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으리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본질적으로 알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좌절되도록 운명지워져 있다. 자신이 왜 살아 있으며 왜 죽는가라는 질문은 절대로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
(데이빗 웬델,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고통의 가치에 대하여, 128)

 어머니는 마약중독자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약’ 혹은 ‘중독’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던 나이였을 때부터 그녀는 어머니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딸인 그녀보다도, 남편인 아버지보다도,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보다도 더 중요한, 비밀스러운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는 그 ‘무엇인가’가 어머니를 때로는 매우 즐겁게 해주지만 때로는 제정신을 앗아가며 결과적으로 매우 곤란한 상황을 종종 초래하기도 한다는 사실 또한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것이 어머니라는 개인의 특정한 습관이 아니라 어른이라는 상태의 특성이라고 이해했다. 어른이 되면 그렇게 소중하디 소중한, 제정신을 빼앗기고도, 다분히 곤란한 상황을 당하고 나서도 다시 찾을만큼 중요한 무엇인가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어른이 되기를 몹시 갈망했다.
 아버지가 그녀와 어머니를 떠났을 때 그녀는 열 네살이었다. 그녀가 어머니를 떠났을 때 어머니는 마흔 여섯 살이었다.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다 그토록 소중한 어떤 것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정도로 그녀도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에게는 딸보다도 남편보다도, 자기 자신보다도 더 소중한 그것이 있었다.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쉰 여섯 살이었다. 어머니 곁에는 그녀와 나이가 비슷해보이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그것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었다. 그러므로 남자는 어머니에게 별 의미가 없었고, 그러므로 그녀에게도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이미 어머니는 의식이 없었다. 일주일간 의식이 없다가 어머니는 죽었다.
 남자도 어머니도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빌릴 만한 돈이 없었다. 그녀는 그런 돈을 내놓을 의향이 없었다. 원래는 있었지만 십 년만에 돌아와 일주일간 병원에서 어머니의 약물 남용과 관련하여 의사와 간호사에게 시달리고 경찰서에도 몇 번 드나든 끝에 몇 백만원이나 되는 병원비를 뒤집어쓴 후 있던 의향이 사라졌다. 그래서 빈소는 집에 차렸다.
 문상 올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삼일간은 집을 지켜야만 했다. 첫 날 이모와 외가쪽 친척 한두 명이 잠시 다녀간 후 문상객의 발길은 끊어졌다. 밤이 되자 그녀는 남자와 단 둘이 남았다. 남자가 그녀에게 하나밖에 없는 안방을 양보했다. 그녀는 문을 닫아 걸고 잠자리에 누웠다.
 날씨는 살갗을 물어뜯듯이 추웠고, 언덕 꼭대기 달동네에 자리잡은 쓰러져가는 단층집은 난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냉골에 이불을 깔고 누워 그녀는 추위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그녀는 일어나서 불을 켰다. 시계를 보았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짐가방을 열었다. 오래 머무를 예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변변한 옷가지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옷장을 열고 어머니의 옷가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달각.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녀는 분명히 방문을 닫고 문손잡이의 꼭지를 눌러 잠갔다.
 그녀는 잠시 기억을 더듬으며 방문을 노려보았다. 문은 분명히 잠갔다. 그리고 닫혀 있었다.
 그녀는 다시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제법 따뜻해보이는 가디건을 발견했다. 잠옷 위에 껴입었다. 그러나 여전히 다리가 시렸다. 서랍을 열고 입을 만한 바지를 찾기 시작했다.
 달그락. 삐걱.
 그녀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문틈으로 바깥의 어둠이 보였다.
 “상현씨?”
 그녀는 남자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문틈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불렀다. 이번에도 문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벌어진 방문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방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리고 죽은 어머니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물러섰다.
 그녀가 물러서는 대로 어머니의 시체는 성큼성큼 방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이불에 걸려 주저앉았다.
 어머니의 시체는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방안으로 들어올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벽장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바지를 찾느라 열어젖힌 서랍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리고 손싸개를 벗어던지고는 서랍 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그대로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시체가 두 번째 서랍을 열어젖혔다. 왈칵 여는 바람에 서랍이 빠졌다. 어머니의 시체는 빠진 서랍을 바닥에 엎었다. 그리고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리에 힘을 모아 간신히 일어섰다. 그리고 가능한 한 조용히, 살금살금 걸어서 방을 나왔다. 거실로 나왔다. 불을 켰다. 제단을 모셔두었던 곳은 관뚜껑에 밀려 병풍이 쓰러지고 향로가 바닥에 엎어져 엉망진창이었다. 그 와중에도 남자는 거실 한 구석에서 색색 고르게 숨을 쉬며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남자를 흔들었다.
 남자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를 좀더 세게 흔들었다.
 “상현씨.”
 남자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를 있는 힘껏 흔들었다.
 “상현씨!”
 “에?”
 남자가 눈을 떴다.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멍한 표정이, 흐릿하게 탁해진 눈이 굉장히 낯익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남자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침실 쪽을 가리켰다.
 남자는 쓰러진 병풍과 엎어진 향로를 보고 몸을 일으켰다. 조심스럽게 안방으로 갔다. 그녀는 거실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남자가 안방 문가에 서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남자가 입모양으로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그리고 남자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대로 거실에 선 채 한동안 망설였다.
 안방에서 남자가 뭔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안방 쪽으로 다가갔다. 문가에서 멈춰섰다.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남자가 익숙한 솜씨로 주사기를 톡톡 치고 공기를 뺐다. 그리고 수의를 입은 어머니의 팔에 바늘을 꽂았다.
 어머니의 시체는 곧 축 늘어졌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남자는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시체를 안아들었다. 남자가 문가로 다가왔다. 그녀는 비켜섰다. 남자가 어머니의 시체를 안은 채 거실로 나갔다. 그녀도 따라갔다. 남자는 어머니의 시체를 도로 병풍 뒤의 관에 눕히고 관뚜껑을 닫았다. 병풍을 바로 세우고 향로를 제자리에 도로 얹고 향을 꽂았다. 바닥에 쏟아진 향로의 재를 손으로 모아 대충 치웠다.
 그녀는 남자 뒤에 서서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단을 수습하고 향을 꽂고 불을 붙인 후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뜨고 남자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괜찮을 거예요.”
 남자는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조금 웃었다.
 “그냥 약이 필요했…”
 그녀는 남자의 뺨을 때렸다.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남자는 그대로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낮게 속삭였다.
 “개새끼.”
 그리고 그녀는 돌아서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갔다.
 남자는 거실에 그대로 서 있었다. 화끈거리는 뺨에 손을 대 보았다.
 방 안에서 그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남자는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그녀는 오랫동안 흐느꼈다. 남자는 그대로 서서 그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몇 번이나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      …이 치유의 과정이 완료되고 의식이 다시 한 번 그 일체감을 되찾으면, 치유된 마음은 처음 상처 입었을 때보다 더욱 더 완전해진다. 그것은 이제, 이전처럼 황폐화되지 않고도 똑같은 상황의 공격을 받아내고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알렌 P. 페르지거, 죽음과 성장: 고통의 문제, 146~147)

 이틀째인 다음 날 문상객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와 언덕 꼭대기의 쓰러져가는 단층집에서 단 둘이 하루를 지냈다. 그 하루 동안 그녀는 남자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제단 뒤로 돌아갔다. 관뚜껑을 열었다. 천금(天衾, 시신을 싸는 이불)을 헤쳤다. 남자가 대충 도로 수습해 놓은 염포(殮布, 염습할 때 시체를 묶는 베)를 풀고 면모(얼굴싸개)를 벗겼다. 어머니의 얼굴이 드러났다.
 죽은 어머니의 얼굴은 여위고 창백하고 뻣뻣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코 밑에 손을 대 보았다. 어머니는 숨을 쉬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의 가슴에 손을 대 보았다. 심장은 뛰지 않았다.
 “엄마.”
 그녀는 나지막하게 불러 보았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 눈 떠 봐.”
 어머니는 눈을 뜨지 않았다.
 “엄마, 눈 뜨고 나 좀 봐봐.”
 어머니는 반응하지 않았다.
 뒤에서 누군가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건드렸다.
 “혜진씨.”
 남자가 뭔가 말하려 했다.
 그녀는 어깨에 닿은 남자의 손을 거칠게 쳐냈다. 면모를 대충 얼굴에 덮고 그 위에 천금을 도로 덮었다. 관뚜껑을 닫았다.

 밤이 되자 그녀는 전날처럼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자리를 깔고 누웠다.
 자정이 되었다.
 이불 속에서 그녀는 추위와 긴장감으로 빳빳하게 굳은 채 문을 노려보며 앉아 있었다.
 달각.
 문손잡이가 움직였다.
 그녀는 숨을 멈추었다.
 달그락.
 문손잡이가 다시 움직였다.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어머니의 시체가 방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전날처럼 옷장 앞으로 갔다. 옷장 문을 열고 서랍을 차례차례 빼어 방바닥에 엎었다. 그리고 옷가지와 잡동사니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방을 나갔다. 거실 불을 켰다. 전날처럼 병풍이 쓰러지고 향로가 나뒹굴고 재가 쏟아져서 거실은 또다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남자는, 전날처럼, 숨을 고르게 쉬며 깊이 잠들어 있었다.
 “상현씨.”
 그녀는 남자를 흔들었다. 남자는 일어나지 않았다.
 “상현씨!”
 그녀는 좀더 세게 흔들었다. 남자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의 허리를 발로 찼다.
 남자는 한쪽으로 굴렀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전날과 같이 멍청한 표정에 눈이 흐릿했다. 그러나 그 눈은 그녀를 보고 곧 초점을 되찾았다.
 “왜 그래요? 무슨 일…”
 그녀는 말없이 안방을 가리켰다.
 남자는 일어섰다. 그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그녀는 남자를 따라가지 않았다. 남자가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는 어머니의 시체를 안고 방에서 나올 때까지, 그녀는 거실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남자는 전날처럼 어머니를 관에 눕혔다. 복건을 도로 머리에 씌우고 면모를 도로 얼굴에 씌우고 염포를 도로 묶었다. 천금을 도로 덮고 관뚜껑을 닫았다. 병풍을 세우고, 향로를 도로 제단에 얹고, 바닥에 흩어진 재를 손으로 쓸어모아 치웠다. 향로에 향을 꽂고 불을 피웠다. 전날처럼 잠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가 남자는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러나 남자의 눈은 맑고 부드러웠다.
 남자가 조용히 물었다.
 “안 때려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남자는 그대로 거실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안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자는 안방 문틈으로 비쳐나오던 불빛이 꺼진 후에도 한참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      …고통을 나누는 것, 동참하는 이들의 연합된 동맹은 아낌없이 주고 희생하며 보호하는 등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간단히 말해, 고통을 나누는 동참자들의 연합된 동맹은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킨다. 고통의 부정은 인간적 사랑을 축소시킨다.
(데이빗 웬델, 131~132)

 발인(發靷)이던 사흘째에는 아침부터 눈이 왔다.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골목길이 미끄러워서 언덕 꼭대기까지 운구차가 올라오지 못했다. 남자를 제외하면 운구할 사람이 없었고, 그녀는 남자에게 운구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부들이 올라와서 운구차까지 관을 들고 내려가야 했다. 중간에 몇 번이나 인부들이 미끄러졌고, 몇 번인가 관을 떨어뜨렸다. 다행히 관을 잘 묶어놓았기 때문에 관뚜껑이 열리거나 시신이 튀어나오는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관이 떨어져 땅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보다 못해 남자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는 남자의 손을 쳐냈다.
 시신을 화장하고, 유골을 안치소에 안치하고, 자질구레한 수속을 모두 마치고 나왔을 때에는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지하철역을 나와 언덕 꼭대기의 단층집으로 가는 골목길에 들어섰을 무렵에는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펑펑 쏟아졌다.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은 그녀가 두 번쯤 비탈길에서 미끄러졌을 때 남자는 그녀를 붙잡아주며 말했다.
 “위험하니까 집까지 안 올라가는 게 좋겠어요. 어디 다른 데서 하룻밤만 묵는 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런 구두 신고 이 눈 속에 비탈길 올라가다간 다쳐요.”
 그녀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언덕 꼭대기의 집 안방에는 그녀의 짐가방이 있었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 짐가방을 가지고 언덕 꼭대기의 집을 나오고 싶은 것이었다. 그리고, 절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온 먼 곳으로 돌아가서 이곳에서의 일을 다시는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었다.
 그녀는 몇 발자국 간신히 올라온 비탈길을 다시 내려갔다. 골목길의 시장통으로 가서 싸고 바닥에 요철이 강한 장화를 샀다. 비탈길 앞에서 구두를 벗어 손에 들고 장화로 갈아 신고 그녀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남자도 말없이 뒤를 따랐다.
 장화를 신고도 몇 번인가 미끄러지고 구른 끝에 그녀와 남자는 눈과 진흙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짐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다시 장화를 신는 그녀를 남자가 말렸다. 그녀는 남자를 노려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관을 나섰다. 마당으로 나왔다.
 해는 이미 졌고, 하늘은 깜깜했고, 이제는 천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마당이라고 이름 붙이기조차 부끄러운 현관에서 대문사이의 협소한 공간은 어둠과 눈보라가 뒤섞여 일렁이는 회색 추위 속에 완전히 잠겼다. 대문이 어디쯤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
 “혜진씨.”
 남자가 뒤에서 불렀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그녀는 입속말로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현관으로 들어갔다. 장화를 벗었다. 안방에 짐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었다.

 더운물은 5분만에 얼음장같은 찬물로 바뀌었다. 그녀는 덜덜 떨면서 얼굴에서 진흙과 눈 녹은 물과 땀을 간신히 씻어냈다. 안방으로 돌아와 전처럼 문을 잠그고 자리를 깔고 누웠다.
 몸은 녹지 않았다. 그녀는 딱딱 마주치는 이를 악물고 이불 속에서 몸을 옹송그렸다. 해가 뜨면, 눈보라가 그치면, 이라고 그녀는 덜덜 떨리는 몸을 가느다란 양팔로 꽉 껴안고 악문 이 사이로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추위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시계를 보았다. 자정이었다.
 달각.
 문손잡이가 움직였다.
 그녀는 문을 쳐다보았다.
 “상현씨?”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달그락. 삐걱.
 “상현씨?”
 대답 대신 문이 살짝 열렸다. 문틈으로 바깥의 어둠이 보였다.
 그녀는 일어섰다.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벌어진 틈 사이로 그녀의 어머니가 스며들어왔다.
 육체를 잃은 어머니의 혼령은 죽은 어머니의 얼굴처럼 여위고 창백했고, 약간은 투명해 보였다. 그녀는 선 채로 굳어져서 희뿌옇고 반투명하고 창백한 어머니의 혼령이 옷장 쪽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혼령은 옷장 문을 열려 했다. 그러나 손은 옷장 문을 통과했고, 옷장은 닫힌 채로 있었다. 혼령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기계적으로 헛손질을 계속했다.
 한동안 그렇게 팔을 휘두르다가 혼령은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섰다.
 어머니의 혼령과 눈이 마주치기 전에 그녀는 방에서 뛰어나왔다.
 “상현씨!”
 남자는 거실 한구석에서 색색 고른 숨을 쉬며 깊이 잠들어 있었다.
 “상현씨!”
 남자는 깨어나지 않았다.
 “일어나!”
 그녀는 남자를 흔들었다.
 “일어나!!”
 그녀는 절규하며 남자를 흔들었다.
 “혜진씨, 혜진씨.”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는 흔들기를 멈추었다.
 “왜 그래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전과는 달리, 남자의 눈은 맑고 초점이 또렷했다.
 그녀는 말없이 안방을 가리켰다.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기 있어요.”
 남자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따라 들어갔다. 남자는 옷장을 열고 가장 아래쪽 서랍 안쪽에 팔을 넣어 휘저었다. 그리고 조그만 사각형 비닐 봉투를 꺼냈다. 안에 흰 가루가 들어 있었다.
 어머니의 혼령은 흰 가루가 든 비닐 봉투를 보고 손을 뻗어 움켜쥐려 했다. 손은 비닐 봉투를 그대로 통과했다. 어머니의 혼령은, 옷장 문을 열려고 했을 때처럼, 헛되이 기계적인 동작을 되풀이했다.
 그녀는 남자에게 다가가 흰 가루가 든 비닐 봉투를 낚아챘다.
 어머니의 혼령이 동작을 멈추었다. 남자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혜진씨, 무슨…”
 그녀는 남자를 무시했다. 어머니의 혼령에게 말했다.
 “이게 갖고 싶어요?”
 어머니의 혼령이 천천히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혼령의 반투명하고 어두운 시선은 그녀가 아닌 비닐 봉투를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갖고 싶냐고!”
 어머니의 혼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의 혼령을 향해 비닐 봉투를 내민 채로 뒷걸음질쳤다. 어머니의 혼령은 천천히 그녀 쪽을 향해 움직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재빨리 뒷걸음질쳐서 안방을 나왔다. 어머니의 혼령도 천천히 그녀를, 혹은 흰 가루가 든 비닐 봉투를 따라 나왔다.
 그녀는 현관을 지나 마당으로 나갔다. 맨발이 차가운 눈 속에 발목까지 파묻혔다.
 “이게 갖고 싶어요?”
 그녀는 어머니의 혼령에게 다시 말했다. 혼령은 비닐 봉투에 시선이 붙박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
 “갖고 싶으면 내 이름 불러 봐요.”
 그녀가 말했다.
 “혜진아, 그거 이리 줘, 라고 말해봐요.”
 어머니의 혼령은 비닐 봉투를 쳐다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혜진아, 해 봐요!”
 그녀는 소리쳤다.
 어머니의 혼령은 변함 없이 비닐 봉투 쪽으로만 시선을 향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봉투의 입구를 찢었다. 마당의 눈에 흰 가루를 뿌렸다.
 혼령의 입이 벌어졌다. 가슴까지, 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벌어졌다. 우렁우렁한 고함소리가 집을 뒤흔들었다. 어머니의 혼령은 그녀를 통과하여, 흰 가루를 따라, 마당에 쌓인 눈 속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흩어져서, 사라져 버렸다.

 어머니의 혼령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그녀는 한동안 마당에 그대로 서 있었다.
 “혜진씨.”
 남자가 불렀다. 그녀는 대답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혜진씨!”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다.
 남자가 자기 외투를 가지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녀의 어깨에 외투를 둘렀다.
 “혜진씨, 들어가요.”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 이러고 있으면 감기 들어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혜진씨.”
 그녀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녀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려 했다.
 갑자기 그녀가 팔을 휘둘러 남자의 얼굴을 가격했다. 남자는 중심을 잃고 눈 속으로 미끄러져 쓰러졌다.
 그녀는 쓰러진 남자에게 덤벼들었다.
 남자는 몇 대 더 맞고서야 그녀를 제압했다. 몸부림치는 그녀를 안아서 집안으로 옮겼다. 현관문을 닫았다.
 그녀는 눈과 얼음조각과 눈 녹은 물에 뒤덮여 흠뻑 젖은 채 덜덜 떨면서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남자가 욕실에서 수건을 가져왔다. 그녀를 조심스럽게 이끌어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불을 둘러준 후 머리카락과 얼굴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돌연히 남자에게 입맞추었다.
 그녀가 남자의 옷을 벗기고 요 위에 눕혔을 때 남자는 저항하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반응하지도 않았다. 얼음처럼 차갑게 식은 그녀의 몸이 남자의 몸을 안았을 때 남자는 양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러나 남자가 아무리 감싸 안아도, 눈 덮인 사흘째의 밤이 조용히 시간 속으로 흘러 사라져갈 동안 그녀의 몸은 조금도 달아오르지 않았다….

―      …부재를 부재로서 인정하고 확인하는 데에는 궁극적인 해결책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과 자기 자신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된 소멸될 수 없는 불안감을 인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또한 … 더욱 바람직한, 어쩌면 매우 다른―――그러나 완벽하지도 완전하게 합일되지도 않는―――지금, 여기의 삶을 창조하는 데 있어 긍정적인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도미닉 라카프라, 외상, 부재, 상실, 707)

 다음날 아침 남자가 안방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이미 떠날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아침… 먹고 가세요.”
 남자가 어색하게 말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아직 추워요… 밤새 눈이 언 것 같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몇 시간만 더 있으면… 날이 풀릴 것 같은데…”
 “그만 해요.”
 그녀가 남자의 말을 잘랐다. 남자는 무안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짐가방을 집어들었다. 안방을 나왔다.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갔다.
  장화를 신는 그녀에게 남자가 말했다.
 “사십구재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내년 기일엔…”
 “맘대로 하세요.”
 그녀가 신발을 다 신고 일어섰다. 그리고 남자를 돌아보았다.
 “이젠 상관 안 할 거니까, 그쪽 맘대로 하세요.”
 “혜진씨…”
 그녀는 현관문을 열었다. 좁은 마당으로 나왔다.
 눈은 밤새 얼었다. 장화를 신은 그녀의 발 밑에서 언 눈이 파삭파삭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흰 가루가 뿌려진 곳, 어머니의 혼령이 마지막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진 그곳은 어디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마당을 가로질렀다. 장갑 낀 손으로 대문을 밀었다. 얼어붙은 대문이 끼긱, 소리를 내며 열렸다.
 “혜진씨.”
 남자가 뒤에서 불렀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돌아보았다. 남자는 한쪽 뺨이 불그스름하게 부어 있었다.
 남자가 말했다.
 “용서하세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왔다.

 전철 안에서 그녀는 울었다. 그것은 장례 첫날 밤, 약을 찾아 관에서 걸어나온 어머니의 시신을 보고 무섭고 놀라서 흐느꼈던 눈물과는 달랐다. 그것은 그녀가 처음으로 흘리는 애도의 눈물이었다.
 그녀가 애도하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 아니라 어머니의 부재였다. 그녀의 눈물은, 자신에게 생물학적인 의미의 어머니 외에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의미의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으며, 살면서 이제껏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뒤늦게야 인식하고 인정하는 눈물이었다.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은 상실할 수 없다. 부재하는 것은 또한 존재하지 않으므로 용서할 수도 용서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삶의 중대한 사건을 맞이하여 아무런 권한도 책임도 없는 완전한 방관자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울었다.

 공항에서 탑승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녀는 어깨에 전날 밤 자신의 차가운 몸을 감싸 안았던 남자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을 느꼈다. 망설이다가 탑승 안내 방송을 듣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휴대 전화를 꺼냈다.
 남자가 전화를 받았을 때 그녀는 말했다.
 “고마웠어요.”
 남자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떠나기 위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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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No Profile
    공허나비 08.12.29 08:58 댓글 수정 삭제
    가입한지 한시간도 안됐군요....

    잘읽었습니다.

    가입하길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 No Profile
    가연 08.12.30 14:56 댓글 수정 삭제
    먹먹해지는 글이네요. 평생 같은 사흘이에요.
  • No Profile
    보라 09.01.01 02:16 댓글 수정 삭제
    공허나비님/ 그런 과찬의 말씀을. 감사합니다.

    가연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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