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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xk160 월요일

2008.04.25 20:4004.25

1.

그는 팔에 나 있는 상처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상처 세 개를 연결하듯이 가로질러서 긋는다. 그 팔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그 몸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아무것도 원할 줄을 모른다. 그는 그 몸의 목을 졸라 본 적이 있다. 그는 그 몸의 피를 흘려 본 적이 있다. 좀 더 어릴 때, 그는 그 몸의 팔을 집어 문 사이에 끼워넣었다... 그는 문을 닫았다. 문을 열 다섯 번쯤 닫았을 때 단단하고 흰 것이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고 그는 팔을 빼내었다. 그것은 피를 흘렸고 살이 짓물러져 있었다. 무시무시한 감각이 그의 머릿속을 하얗게 메웠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숨을 멈춘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는 숨을 멈춘다. 그리고 기다린다. 결국 그는 숨을 쉬고야 만다. 그는 비틀거리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 몸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 몸은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몸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 팔을 집어들고 쟁기로 갈아도. 그것은 아무 생각도 의지도 없다... 무시무시한 감각... 그리고 이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피... 감촉과 시각... 아무 것도 없어. 아무 욕망도 없어. 아무 의지도 없어.
이 몸은 움직이면 움직인다. 그건 살고 싶어서는 아니다.
그는 담배로 팔을 지진다. 좋아? 그는 묻는다.
흘러내리는 피라든가.
목을 매달아서, 길다랗게 삐걱삐걱 움직는 그림자라든가.
순식간에 입가로 터져버리는 타고 남은 공기라든가.
그런 게 욕망이라면, 이 남근은 신경줄처럼 발기해서, 서로 약한 전류를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담배로 복사뼈를 지진다. 담배 냄새 때문에 그는 유리창을 열어놓고 있다. 창은 거실 벽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모기장에 닿을 듯이 붉은 소나무 꼭대기가 조금씩 흔들린다. 햇빛이 담배 끄트머리의 불빛을 가만히 비추고 있다. 그의 맨발에도 햇빛이 떨어져있다. 그는 걷어버리듯이 담뱃재를 털고 알콜을 묻힌 천으로 닦아낸다. 그는 남은 담배를 필터가 타기 직전까지 피운다. 재떨이는 쓰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는 것 자체를 즐기지는 않는다. 그는 물에 적신 휴지에 담배를 싸서 꾹 짜내고 버린다.
바람이 들어와서 그의 옷에 햇빛 냄새를 묻혀놓는다.
그는 툭툭 털고 일어난다. 그는 긴 팔 면티에 품이 넉넉한 청바지를 입고 있다. 청바지는 초여름 용으로 원단이 가벼운 편이고, 단은 발등 중간까지 내려온다. 그는 늘 단을 접어서 발목 길이에 맞게끔 해서 집 안에서 입고 다닌다. 그는 걸레를 가져와서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잘게 흩어진 재를 닦아낸다. 그는 바람이 집 안의 식물의 솜털을 건드리게 내버려둔다. 방에서 컴퓨터를 만져서 문서 하나를 인쇄시켜놓고, 그는 창가로 돌아가서 창문을 닫는다.
마침 차 한 대가 올라오는 게 보인다. 연두색 동글동글한 차체가 단지 내로 들어와서 경비실 앞에 잠시 멈췄다가, 이 쪽으로 단지의 다른 아파트들을 굽이돌아온다. 그는 자신이 식물에 물을 주었던지 확인해본다. 작은 자갈들이 깔린 흙은 아직 젖어있다. 좋다. 그는 손가락을 화분에서 떼고 화장실로 가서 담배나 화분 냄새가 충분히 씻길 때까지 물과 비누로 씻는다. 그 때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옷을 다 갈아입고 시계를 차고, 운동화와 운동복을 담아 둔 가방을 한쪽 어깨에 맸다. 그는 매끄러운 끈을 발등 위에서 묶어서 구두를 신었다.


2.

그녀는 구두를 벗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월요일에는 다시 검은 구두를 신어야 한다. 검은 바지와 검은 정장이 좋을 것이다. 그녀는 오늘 회색 정장 바지를 하나 더 사왔다. 봄에는 그런 엷은 색의 바지와, 가운데에 분홍색이 들어간 흰 귀걸이도 허용이 될 수 있다.
그녀는 옷장에 스커트를 걸어놓고 거실로 나가보았다. 아직 차가운 공기가 떠돌고 있다. 누군가 창을 열어두었던 것 같다.
그녀는 창을 열어보았다. 연둣빛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그녀는 창을 다시 닫아야만 했다. 그녀는 컴퓨터가 있는 쪽으로 간다. 문서가 출력되어 있다.
늘 그렇듯이 원본은 찾을 수 없다. 컴퓨터에서 한 번만 찍어내서 가지고 나가기 때문에, 원본은 파일로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녀는 문서를 내려놓고 마저 옷 정리를 하러 간다. 그녀는 회색 정장 바지를 잘 다려서 걸어놓고 그 원단의 결을 바라본다... 그것은 허벅지의 솔기에서부터 접어놓은 무릎 부분까지 흘러내려간다. 그녀는 섬유의 결을 이루고 흘러내려가는 대각선의 실자국들을 바라본다. 그것들은 한없이 바짓단까지 흘러내려갔다가 다시 바지 솔기 안으로 오그라들어가고 있다.
그녀는 아까 창문을 열었다, 그녀가 오기 전에 누군가가 그렇게 했었을 것과 같이,
그리고 압도적인 과거가 몰아닥쳤다. 연두빛 공기가-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3.

그는 터벅터벅 산을 에두르는 길을 걸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구두로 갈아신고 운동화를 보조 가방에 넣은 후, 카페에 들어가서 인쇄물을 꺼내놓았다.
차는 계속해서 리필할 수 있다. 그는 뜨거운 물을 세 번쯤 받아온다. 그 동안 번역은 반바퀴가 끝났다. 그의 고개가 점점 아래로 쳐진다. 그의 눈이 점점 종이에 바싹 붙는다. 그는 단어들이 문자로 갈라지고 타 버린 시커멓고 미끄러운 점같은 것으로... 그는 고개를 들고 차를 마신다.
그는 점심으로 버섯이 들어간 야채 샐러드와, 오렌지 반 쪽과, 우유 작은 한 팩, 감자 하나를 먹는다. 운동을 했던 칼로리와 거의 같게 유지한다.
그는 번역을 마저 한다. 이쪽 단어와 저쪽의 단어 사이에서 몇 줄기의 상상력이 울부짖는다. 그는 포크로 그 틈을 잘게 찢어본다.
그는 찢어진 인쇄물의 거스러미를 밀어내고 면을 바로 편다. 번역을 끝내고 그는 시커먼 문서들을 가방에 집어넣는다.
그 외국어들은 서로를 비추면서 으스러져가고 있다.
마침내 서로 엇갈린 거울처럼 무한히 깊게 투명해져버릴지도 모른다.
백지만 남아서 아무런 시커먼 남의 살을 지진 자국이 없는 문자들이.
그가 올바른 번역을 한다면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그는 담배를 피운다. 그는 사람들이 일요일 오전만큼만 차 있는 깨끗한 카페에서 소매 안 쪽으로 담배 끝을 밀어넣는다. 낙인들이 구두 굽을 딸깍거렸다. 육체들이,
흘러나온 피처럼 거리에 질척거렸다. 그는 소매 안쪽으로 물에 적신 휴지를 넣어 누르고 닦아냈다.
헬쓰장에도 긴 옷을 입고 가야 하는 건 귀찮긴 했다. 그는 웃옷만은 반팔을 입으려고 노력해왔지만, 어차피 샤워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이가 더 적을 때는 몸이 손쉽게 회복되었고 그는 여러 번 뼈에 금이 가게끔 했다. 그는 하얀 감각 속에서 거실에 앉아 창을 통해 밤의 달을 올려다보았다. 숨을 쉬는 것같은, 새벽이나 밤의 규칙적인 흐름이 멈추었다. 장의 연동 운동이나 심장의 고동이 멈추는 것처럼. 통증이 창틀을 타고 흘러내렸다. 창틀의 균일한 나뭇결무늬를 따라 흘러내리다가 다시 천정 쪽의 창틀로 굼슬굼슬 기어올라갔다.
창틀이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다. 녹아내린 초가 굳은 것 같은,
그 형틀 모양의 눈동자가 그때 그를 완전히 꿰뚫었다.
창틀이 그런 식으로 보이는 횟수는 점점 더 줄어들어 갔다. 다만 이제 매만져보면 창틀은 멀어져버린 것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양 손과 팔목의 감각이 둔해진 탓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긴 했지만, 그렇게 설명해야만 할 이유는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기에, 그는 단순히 현실 자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 둔한 감각으로 전해진 사물들은 간혹 그의 흔들리는 시선 속에만 비쳐있는 열기 없는 촛불같은 것이었다.
그는 나이가 더 적었던 때의 약하면서도 훌륭했던 몸에 대한 기억과 함께, 눈을 태워버릴 것 같던 감각을 떠올렸다. 그의 시야는 늘 반 정도 시뻘겋게 차올라 있었다. 배에 찬 물을 빼내듯이 목에 칼을 집어넣어서라도 그는 피를 토해야만 했다.
그는 몸에 금을 그어야만 했다. 그의 육체는 가느다란 틈 안으로 오그라들어갔다. 그 안에는 얕은 그의 방이 있었다. 그는 증오했고 증오했으며 아무도 죽이고 싶거나 상처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인간들의 피를 한점이라도 자신의 생애에 - 회상에 빠져있다가 그는 정신을 차리고 숨을 내쉰다. 그 순수한 증오는 아직도 그의 심장의 색깔처럼 박혀있다.
그 심장이 어떻게 뛰든 그 색깔이 변할 일은 없으리라. 어차피 고동과 색깔은 상관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는 도피하듯이 잠시 더 그 증오를 쓰다듬는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빈다.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자신의 생애에 그들의 피가 단 한점이라도 튀지 않길 바란다. 그는 진심으로 온 마음을 대해 바란다.
그는 백일몽에 가까운 상상 속에 자신의 고동을 놓아둔다. 홍차가 그의 마음을 유하게 만들었고, 햇빛이 뿌연 창의 전면에 산란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번,
죽이고 싶은 인간이 있었다.
그건 그의 죄다.


4.

그녀는 버스 차창을 통해 산을 내다본다.
산은 멀리서 어릿어릿한 녹색 뭉치들을 따라 내려오다가 건물 꼭대기에 막혔다. 버스는 십자로를 몇 초만에 지나쳐버렸다. 산은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는 산을 보고 있었다. 아주 가까이와 멀리서 동시에 손에 잡힐 것처럼 생생하게. 나무들은 폐허처럼 서  있었다. 뿌리가 희긋희긋하게 드러나있었다. 자신의 발톱으로 자신의 무덤을 움켜잡고 있는 것처럼. 그 발톱 속에는 검은 부식토밖에 없다. 그 새들은 백조처럼 바래어갔다. 활엽수들이 가득했던, 그 산은 날려고 하던 모습 그대로 져 버렸다.
새들의 묘비처럼 날개의 잔뼈들이 무성하게 남아있었다.
시커먼 겨울산.
“따뜻해졌어.” 버스에서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를 그녀는 이어폰 너머로 들었다. “곧 목련도 피겠어.” 누군가 응수했다.
그녀는 이어폰 너머로 그 소리들을 듣는다. 핑크빛 눈부신 털실 가디건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 고동의 진원지를 들으라는 듯이. 다리의 자세를 약간 바꾸자 분홍빛 비린내같은 것이 올라왔다.
손으로 만지면, 부드러움이 거기 있으면, 무엇이 부드러운지 떠올리고, 어둠 속에서 소리를 들으면, 고동이 있으면, 무엇이 고동치는지 상상하고, 고통이 있으면, 무엇에 찔렸는지 찾게 하는, 그런 선천적인 몸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이런 선천적인 몸으로,
그녀는 이어폰 너머로 소리들을 듣는다. 그녀는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를 켠다. 점심을 먹고 들어와서 이어폰을 다시 끼고 있다. 사무실 문이 닫혀있고 조용하다. “...ㅊ,” 하고 그녀의 동료가 속삭인다. 그녀는 소스라쳐서 이어폰을 끈다. 동료는 뭐라고 중얼중얼 자신의 문서를 읽고 있다.
사무실은 덥다. 그녀는 천천히 웃옷을 벗어놓는다.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옆방에서. 여기는 아직 돌아가지 않는다. 좁은 창문으로 건물에 가리고 남은 햇빛이 더 좁게 스며들어온다. 그녀의 감색 웃옷에 그 햇빛이 떨어진다. 사무실은 덥다. 사람들은 옷을 점점 더 얇게 입고 있다. 자켓도 벗어버리고 아무 방비가 없다.
날은 따뜻해지고 있다. “...ㅊ,” 하고 속삭인 소리는 점점 작아져서 이제 사라진 것이나 진배없게 되었다. 거대한 한 주기 단위씩의 파동을 과거로 쏘아내면서 그 동력으로 날아오는, “....ㅊ,”는 무섭게 빨리 위축되었다. 그녀는 물론 모든 다른 사람들의 귀에도, 이제 사무실은 아주 조용하다. 거의 침묵에 가깝다. 지나간 날들은 점점 더 추워지고 있다. 이렇게 아무 방비도 없는 가운데. 그녀는 칠부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이 곳의 더운 날씨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날들은 점점 더 추워지고 있다.
더 먼 과거로 갈 수록 사무실에는 터져버릴 것 같이 광포한 추위가 휘몰아치고, “...ㅊ,”가, 그렇게 불분명한 말로 흐려지기 전에, 그 명확한 외침과 뜻을 띄고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그건 분명한 일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위축되기 전에는. 침묵하게 되어버리기 전에는,
이제 거기서는 소리가 너무 커져버렸다, 저지른 일들이,
이렇게 조용한 가운데에서는,
누구든 그런 일을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ㅎ,” 하고 그녀는 옆방에서 스위치를 내리는 것 같은 작은 소리를 듣는다. 누구든 그녀를 헐뜯는 소리,
그녀는 등 뒤에 돌아앉아 있는 동료들을 의식한다. 사무실은 조용하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틈틈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진다.
그녀는 그들이 그녀를 욕할 수 있도록, 천천히 다시 이어폰을 낀다.

5.

그는 핸드폰을 닫는다. 전화를 세 번 걸어보았다. 그는 호흡을 얕게 들이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집에 돌아가서 남은 번역을 한다. 카페에서 잠시 쉬기도 했고, 책을 반 권정도 읽었고, 심지어 햇빛을 보며 졸기까지 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산은... 져버렸다’그는 써 넣는다. 산은 생물들의 집합체처럼 묘사되어 있고 ‘산이... 망가졌다’라고 해야 할 만한 큰 사건이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사건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긴 할 것이다. ‘새들의 묘비처럼... 시커먼 겨울산’ 그것은 타버린 산을 묘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겨울산’은 그는 그 외국어의 ‘늦은 ...년도’라는 식의 합성어를 그렇게 해석한 것인데, 그 말은 실제로 계절의 지칭에밖에 쓰이지 않기는 하지만 개별 단어인 그 ‘늦은’은 ‘그 다음에’로 번역되기도 하는 단어이다. ‘그 해 다음에는 시커멓게만 남은 산’일지도 모른다.
다음 줄에 ‘아주 가까이와 멀리서 동시에...’ 그는 써 넣는다. 그 어순은 그가 옮겨놓고 있는 외국어의 문법대로 하면 어색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다른 쪽 외국어의 어순을 상상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어색함 속에서만,
제대로 된 문장 같은 것은 없는 곳에서, 그는 펜을 놓고 일어난다.
펜으로 적어둔 것을 곧 컴퓨터를 켜고 옮겨넣을 것이다. 손으로 적고 옮기지 않고 매번 컴퓨터를 쓴다면 눈이 나빠지기 쉽다.
이 몸을 긋거나 뼈를 부러뜨리는 것만으로 이 몸이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확인되었더라면 그는 만족했을 것이다. 숨을 쉬지 못하게 하면 숨을 쉬고 싶어한다거나, 목을 매달았을 때 경동맥으로 피를 통하게 하고 싶어한다거나, 어떤 욕망이라도 있는 것이나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더라면, 그는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가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몸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허파로 산소를 빨아들이고 싶어한다거나, 심장으로 피를 불러들이고 싶어한다거나 늘어난 인대를 관절 사이에서 빼어내주고 싶어한다거나, 그랬다면 그는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몸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순환 뿐이다. 몸을 시신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마치 떨어져나온 머리카락 하나처럼, 원래부터 썩고 죽어있던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몸은 원래부터, 피의 흐름과, 상처의 재생과, 순환기의 순환과정과, 눈의 깜박임과, 모든 그 순환적인 움직임 그 자체로 몸이다. 원래부터 죽어있던 몸이 아니라면, 심장에서 온 몸으로 피를 보내며 고동친다고 해서, 1분에 그 고동이 130번이나 170번 정도 반복된다고 해서, 그 고동을 마치 생존의 욕구로... 상처가 나면 흉터를 만들며 낫는다고 해서, 그것을 마치 생존의 욕구로... 산소가 들어오도록 허파로 공기를 빨아들이고 빨아들인다고 해서, 10초에 그것이 몇십번 반복된다고 해서, 그것을 마치 생존의 욕구로.... 자신의 몸이 원래부터 죽어있었고, 늘상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면, 진실로 초마다 몸이 얼어붙고 멈추고, 그렇게 해서 매초 삶의 상태로 미끄러져 떨어지는 정말이지 돌이킬 수 없는 움직임을 째깍째깍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극히 부드럽고 끊임없는 움직임 자체는 그저 몸일 뿐이고, 몸은 원래부터 그 움직임 자체이다, 그것은 살고 싶어한 적이 없고, 늘 언제나 살아있을 뿐이다.
피가 한바퀴 돌아서, 심장 안으로 돌아오는 그런 몸이다.
산소가 한바퀴 돌아서, 타버린 질소만 허파로 돌아오는 몸이다.
돌아오는 한 단위의 움직임이 아니고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몸이다.
그는 힘줄 옆을 조심스럽게 자르다가 그만둔다, 그는 화장실에 가서 폼 클렌저로 세수를 하고 돌아온다. 마저 번역을 하고 그는 전화벨 소리를 듣는다. 그는 전화벨이 세 번 울렸을 때 한번 수화기를 들었다가 끊는다.
다시 전화가 왔을 때 그는 받지 않았다. 문을 닫고 잠그고 자리에 누워서 그는 허공에 매달린 칼 몇자루에 대한 꿈을 꾼다. 꿈에서 깨어서 그는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인간들을 눈앞에서 치우느라 물수건으로 얼굴과 목을 닦는다. 불을 켜고 그는 잠시 책을 읽는다. 그 글자들을 한꺼번에 먹어 두어야 필요할 때 하나씩 튀어나온다.
그의 꿈 속에서, 사람들은 한 장짜리 가죽으로 이루어져 있다. 뒤에서 보면 뒷모습이고 앞에서 보면 앞모습인 가죽 한 장이다.  
그 사람들을 사람들 사이에 엇갈려 끼운 종이처럼 얄팍하게 세워놓으면, 역시나 자신의 의지같은 것은 없다. 때문에 남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어내어서 반응하는 데에 필사적이다... 아무도 별 욕망같은 것은 없어서, 그려져 있는 서로의 얼굴을 읽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상한다, 자신의 얼굴을,
그 얼굴은 정말이지 어째서 그런 말을 듣고 싶어하고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얼굴 뿐이 아닌가,
또다시 이 몸이다, 그는 모공이 가득한 얼굴을 상상한다. 그 유령같고 범죄자 같은 것이 누구나가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어느 거울 속에 있는 한 그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어떠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를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거나 그 얼굴을 읽어서 말할 것이고, 다만 싫어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은 서로를 피하면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채로 상대의 절대적인 행복같은 것을 그저 빌기나 하게 되는 것이다, 필사적으로.
그들의 입술을 통해 그는 상상하게 되곤 했다, 자신의 얼굴을, 어떤 말을 듣고 싶어하고 있는 얼굴.
그는 그런 짓이 너무도 지긋지긋해서 어쩌면 인간들이란 실제로 어떤 한 인간을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보통의 인간들이란 자신과 달라서, 가죽에 감싸인 검은 속 안이 있고, 그런 시커먼 의지 비슷한 어둠이 있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거나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거나 그는 아니다. 그는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고, 조금도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얼굴에 쓰여 있다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얄팍한 한 장짜리 얼굴들이 서로를 상상하느라, 몸 속이라는 것을 아무데나 시커멓게 지져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낙인, 이미 이루어져버린 욕망의 형태로, 애초부터 얼굴이 되어버린 욕망, 되돌릴 수도 없게,
그는 그의 몸 속에 그로서는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종류의 욕망을 처넣고 간 그 인간들을 늘 죽여버리고 싶곤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장난에 불과하다. 오래된 죽은 동물을 두려워하면서도 집착이 생겨서 가끔 털을 가지고 놀 듯이.
단 한번의 끔찍한 살의의 깨진 거울일까봐, 비슷한 것을 찾을 때마다 뒷면을 뒤집어보고 있을 뿐이다.


6.

직장 동료가 몸을 돌렸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귀걸이 체인 끝이 목을 간질렀다. 동료는 얼굴에 웃음을 띄고 있었다.
그는 스낵을 접시에 담아 내밀었다. 그녀는 받아갔다. 다른 동료가 돌아보며 미소를 띄었다.
그들은 늘 웃고 있다.
그녀의 눈을 볼 때, 눈을 마주칠 때, 그들은 늘 얼굴에 웃음을 띄고 있다. 사람이 늘 웃고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도, 그러니까, 사람이 늘 기분이 좋거나 웃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이 남아돌거나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도,
그녀를 볼 때 그들은 늘 웃고 있다, 그러면 그 안쪽엔 무엇이 있는 걸까,
무엇을 상상해야만 하는 걸까. 그들은 모두 미쳐버렸거나,
그녀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스낵이 좀 남았다. 직장 동료는 칩들을 접시 위에 모아다가 사무실의 아무라도 먹을 수 있게끔 그녀의 팔꿈치와 가까운 공용의 책상에 놓고 키친 타올을 한장 덮어두었다. 동료의 바싹 마른 셔츠에서는 햇빛이 들어간 세제 냄새가 났다.
어느 날 점심때 그녀가 십오분쯤 일찍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자 동료가 커피를 들고 들어와서 그녀를 보고, “벌써 오셨어요?”
직장 동료가 그녀가 퇴근할 때 “어서 가세요,” 문을 열어주었다.
사무실은 다시 조용하다.
분홍빛 비린내가 물씬 난다. 며칠 후 퇴사할 동료가 말한다. “...에서 일해요, 거기 들르면 연락해요.”
거기 들르지 않을 거면 결코 연락하지 마, 하고 동료는 말했다, 그런데 너는 지금까지 한번도 거기 들른 적이 없잖아. 마치 내가 아직 거기 없었다는 게 핑계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나와 연락하려고 해 왔던 거야?
그런데 만약에 연락하게 된다면 그 벌은 무엇일까.
무엇을 상상해야 하는 걸까. 그녀를 제외한 모두가 그 얼굴 뒤에서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들의 몸 속에서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녀에게는 어둠일 뿐이다.
얼굴들 뒤에서.
동료들이 다시 일한다. 그들은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소리들은 함께 엮인 활시위처럼 가느다랗고 팽팽해져서, 모든 가능한 울림들을 과거로 쏘아보내며 탄력을 잃고 마침내 와삭 부서져버린다.
그리고 사무실도 와삭. 그녀는 얇은 블라우스와 스타킹만 걸친 채로, 사무실은 몹시 추운데, 마침내 사무실마저 없어져버렸다.



8.

그는 글자들을 본다. ‘...기억해야 하는 걸까’ 그는 썼다가 지운다.
맥락상으로는 ‘기억’이 맞다. 그는 해석하건대, 원본의 작자가 다분히 중의인 이 단어를 ‘기억’의 뜻에 가깝게 썼다고 거의 확신한다. 그러나 ‘기억’이라고 옮겨놓으면 원래의 단어가 이것이었을 거라고 상상하기가 어려워진다. 이쪽의 언어로 이해하기는 지나치게 손쉬워지고.
사실은 외국어다, 외국어였다, 하는 느낌이 전해지질 않는다. 그런 식으로 말이 눈과 손에서 빗겨나가버리지 않는다. 그는 ‘상상’으로 옮겨놓는다.
어쩌면 ‘기억’이 맞는지도 모른다.  전의 문단에서 ‘산이... 망가졌다’라고 써 넣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방화를 가정하면 ‘바싹 마른 셔츠’에서의 ‘햇빛’ 냄새도 더 맞아떨어진다. ‘추위’는 일부러인 양 ‘뜨거움’과 대치되는 가운데 ‘더움’에 해당될 만한 형용사로 수식된다 - 그는 이것을 ‘광포’가 아닌 ‘들끓는’으로 옮겨놓을 수도 있었다 - 사무실은 ‘와삭’ 혹은 ‘와작’ 부서지는데, 이 쪽의 단어로 옮겨놓고 보면 특별히 정해진 경우에만 쓰는 단어는 아니고 얼음이나 심지어 기계 부품이 부서지는 소리를 나타낼 때도 사용하는 것이지만, 원본의 단어는 탄 종이나 낙엽 등 타버린 얇은 사물이 부서지는 소리를 모사할 때 압도적으로 자주 쓰이는 의태어이다.
그는 ‘상상’으로 옮겨놓고 ‘광포’로 그대로 두고 넘어간다. 그는 침대에 눕는다. 그는 피곤하다. 오늘은 원래 잡아놓은 시간보다 더 오래 번역을 했다. 그는 눈이 아프다. 그는 눈 위에 차가운 팩을 올려놓는다. 이 단어는 저 단어를 상상시키지 않는다. 그럴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그건 번역이 아니다, 이 문서와 저 문서의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그려넣을 수가 없다, 서로 상상시키는 관계, 그런데 그 관계에 의해서만 서로 존재하는 문서들의 관계 말이다. 그래서 사실은 문서들이란 상상의 양 편에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꽃이 있으면, 그것을 비추어내고 있는 양 빛의 근원들처럼.
그런데 실제란 꽃 뿐이고, 하지만 그 꽃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니까 실은 아무것도 없지.
그는 전화가 제대로 놓여있나 확인한다. 시계는 7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그는 늦게사 샌드위치 남은 것을 집어서 저녁을 먹는다. 그는 반조각만 먹는다.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는 침대 아래에 놓아두었던 책을 꺼내어 읽는다. 서로 다른 외국어로 된 네 권의 책을 그는 늘 침대 아래에 놓아두고 있다. 그는 손에 스치는 종이의 질감을 느낀다.
그는 겹겹이 눌려있는 그 종이들에 대해 순간 징그러움을 느낀다. 갑자기 팔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이다. 그는 몸을 일으켜서 책장에서 사진이 실려있는 종잇장이 매끌매끌한 책을 빼어 와서, 그 종이들이 겹쳐있는 모습을 보고, 책을 비스듬히 세워들고 겹겹으로 종이날이 팔을 물어뜯게끔 한다.
그는 알콜을 묻힌 솜으로 상처를 눌러 닦아준다. 그는 침대에 다시 눕는다. 베게를 두 개 어깨 뒤에 놓고 거의 눕듯이 앉아서 그는 책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지만 페이지를 넘기지는 않는다. 이런 평온한 나날들,
번역은 잘 되어가고 있고, 그는 나름의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이런 나날들을 꿰뚫고 그것은 온다. 이 때가 아니라면 단 한번도 육체를 사용해서 살았던 적은 없는 것처럼 그것은 온다. 미칠듯한 살의,
눈 앞을 밝고 분명하게 하는, 모든 보이던 것들이 너무도 잘 보이게 되는, 그는 초침 소리 하나에도 털이 서듯이 예민해지는, 모든 것이 식물들이 가장 섬세한 가지를 뻗고 어둠 속에서, 자신들이 보면 볼수록 얼마나 보이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 자신있게 선명해지는, 눈 앞에 그 분명하고 압도적인 보이지 않음이 세세하고 뚜렷하게 펼쳐지는 밤, 그 모든 것들이 그저 나름의 방식으로 영원히 행복하길 바랐던  멀고 오롯한 증오의 꿈에서 그를 건저내어, 번쩍이는 뚜렷한 현실로 그를 던져놓는다,
살의가 단 한번 향했었다. 그 사람의 손이 움직이면,
그 사람의 눈이 그의 눈과 마주쳐서 밝아지고, 또렷해지며, 수천가지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부드럽게 웃음지으면,
모든 것이 불분명해져서, 사물들은 거기 있는 것이 아닌, 다른 틈새에서 한 팔을 내밀어 온 듯한 기이한 반사각으로 세계에서 벗어나버렸다.
그 사람의 육체는 코끝에서부터 입술의 아래까지 똑바른 선으로 반짝거렸고,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동안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그랬다.
그는 살갗의 굴곡마다 빛의 단면이 흐르는 것을 보았고,
거기에 비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세계는 이미 그 사람의 웃음 때문에 깨끗하게 망가져 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는 자기 자신을 보았다. 생애 처음으로 거울을 통하지 않고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자신의 모습, 그는 남의 팔다리를 빙의한 듯이 어떤 옷을 입고, 입술을 촉촉할 것 같긴 하지만 무슨 색인지 알 수가 없는 립글로즈로 덧바르고, 눈썹을 부드럽게 얇은 초승달이나 손톱모양으로 깎아서 덧그리고, 윤곽이 분명하게 떠오르지도 않는 채 어느 시대의 종탑인지도 모를 종탑의 종소리처럼 잘강거리는 귀걸이를 하고, 그 귀걸이는 그가 준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갑갑한 상태로,
상상 속에서 창 너머의 수많은 사물들은 선물처럼 포장되었고, 손댈 수 없는 고독한 빛으로 수만가지 가능성으로 반짝거렸다.
그는 자신을 상상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점점 더 상상했고, 마침내 그것의 행복마저 빌어주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는 그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짓밟았다. 사라질 때까지 깨끗이 갈아버렸다. 그러는 동안 그는 자신의 실제 몸에는 상처조차 내지 않았다, 그것은 고동 소리가 턱에 차도록 괴롭고 미칠듯한 작업이었다, 아니 작업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그것을 죽이지 않으면 갈아버리고 흔적조차 남지 않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본능.
뼈를 긁거나 동맥을 찌르면서도 흐르지 않았던 본능이 그때는 계속해서 그의 몸을 뒤흔들고 있었다,
마침내 어느 순간 빛의 벌레떼가 그의 심장에서 으스러져 꺼져버렸고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의 육신은 고요했다.
생이 그에게 돌아왔다. 하지만 언제 돌아보게 될지 모르는 실금같이 막혀있는 과거와 함께,
다시 그 반짝이는 호숫가로 돌아가지 않는다.
자신을 상상하지 않는다.
그는 그 후로 다시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죄다. 화장실의 유리판을 보아도, 그 영상과 그의 육체와의 관련성은 끊어져버렸다. 그는 두 번 다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죄다. 그것 나름대로의 행복을 빌어줄 수 없었던 죄. 증오를 관철하지 못했던 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손을 몸을 다른 생애의 파편으로 더럽히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죄.
사물들이 그 시절처럼 고독한 빛을,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는 한 틈새에서만 팔을 뻗어와 여전히 수만의 방향으로 반사되는 밤,
기억하지도 못하게 되어버린 한 사람의 모습이 꺼져버린 빛처럼 연기의 내음만을 남기는 긴 밤,
그는 뜬 눈으로, 번역하는 일을 생각하지도 못한 채 차마 칼을 들어 자신의 몸을 긋지도 못한 채 그  밤을 맞이한다. 마치 새벽처럼.
깨어나는 푸른 높이의 새벽처럼, 삶으로 충만한 짐승처럼 살의에 차서.
아직 살아있다, 그는 생각한다.
  

9.

여덟시 반이다. “어서 가세요,” 하고 누구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사무실에는 사람이 없다. 그녀는 아홉시에 전화를 한다. 받지 않는다. 그녀는 핸드백과 파일 가방을 챙긴다.
그녀는 그날 아침 화이트닝 로션을 촘촘하게 발랐다, 그녀는 연보라빛 베이스와 매끌매끌한 파운데이션과 반들반들한 파우더 알갱이들을 두드려주고, 목과 쇄골 아래 가슴에 반짝이를 한 겹 뿌리고, 실크 소재 블라우스와 실크 소재 치마와 우유빛 스타킹을 팽팽하게 펴 놓았다, 화장실에서 그녀는 귀걸이가 보이도록 머리를 귀 뒤로 넘긴다, 지금 그녀의 안색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매끄럽고 반짝거리고 꼭 닫혀있는 열매 껍데기같은 것에도, 마치 무언가가 내부처럼 시커멓게 감추어져있다는 것, 그녀는 귀걸이를 빼낸다,
그녀는 새하얗고 반들반들하며, 귓바퀴를 받치는 부분에는 연오렌지색 반투명한 무늬가 덧대어진 이어폰을 돌돌 감아서 핸드백에 넣는다, 그녀는 운전대에 앉는다, 오늘은 차를 가져왔다, 연초록색의 후판들을 외장한 풍뎅이 모양의 차체,
그녀는 오늘 일이 많았다, 그녀가 실제로 자신에 대해서나 자신에 관해서 어떤 말을 하려 한다면 큰일이 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태는 도무지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기 때문에, 그녀에게 업무를 주어서 그녀가 그 업무에 관련된 말만은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말을 할 수 있게끔 해서, 그 모든 받아야만 할 비난을 그녀가 어쨌거나 받을 수 있게끔 그녀를 자기들 사이에 끼워놓고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어서 가세요,”하고, 어서 사라져버리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만히 차 안에 숨어서 집에 돌아가면 된다.
그녀는 운전석 햇빛 가리개에 장착된 거울을 열고 콧등에 파우더를 두드린다, 그녀에게는 얼굴이 없다,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아무 감출 것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니까, 얼굴이 생기지 않는다 아무런 은폐도 비밀의 뚜껑도, 닫아놓을 것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얼굴을 만들어서 무언가 닫아놓은 양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얼굴을 만들지 않는다면 그녀는 사라져 버릴 것이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양 말이다,
그녀가 저지른 일은 그녀를 먹어치워 버렸다,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녀의 몸도 없는 것이다. 그녀의 죄라는 것은, 모두의 것이고, 그녀의 몸은, 재판장의 한가운데에 열려있는 상자같은 것이다. 누구든지 그녀의 몸과 죄에 관해서는 그들의 얼굴 뒤에서 마치 그들의 몸 속처럼 세세하게 알고 있고, 그녀에게는 어떤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오렌지빛이 섞인 갈색의 립스틱을 덧바른다. 입술 가장자리를 라이너로 그린 다음 가볍게 두드려준다. 그녀는 차를 아파트 아래까지 운전해와서 주차장에 세우고 복도로 걸어들어온다, 복도에서 그녀는 하이힐 소리가 총총총 쏘아지는 것을 듣는다, 텅 빈 공간으로, 무언가의 몸에 박히고 서로 죽이고 사라지기 위해서 간다,
현관을 지나쳐서 그녀는 잠겨 있는 문을 지나쳐서 자기 방의 침대에 눕는다, 엎드려 누웠다가 바로 눕는다, 그랬다가 일어나서 얼굴을 씻고 로션을 바른다.
그래도 여전히 비린내는 그녀를 떠나지 않는다. 잠옷을 갈아입고 침대 위에 그녀는 공룡처럼 앞발을 구부리고 누워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저 어린 시절의 기억, 그 작고 보드라우며 갓 태어났다는 것이 너무나 뻔한 꿈과도 잘 구별되지 않는 신선한 기억. 그녀의 것도 아닌 것 같은 다만 생명과 어린 살냄새에 바쳐진 것 같은 그런 기억들 뿐이다. 그녀는 공룡처럼 앞발을 구부리고 누워있는데, 그 오래된 기억들은 머나먼 이제 쉰 냄새가 날 게 뻔한 그녀의 뿌리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늙어버린 기억, 이미 갈가리 찢어지고 후회로 점철된 기억은.
아무것도 그녀의 가장 오래된 과거에는 없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얼굴 뒤에서.
오직 그것을 감추기 위해 그들이 웃고있는 얼굴들을 가진다고 해도, 비밀의 뚜껑처럼,
그녀는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알지 못한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던지 기억하지 못한다. 원래부터 권리가 없는 것처럼. 그녀는 풋잠이 들었다가 깨어서 ‘그래,’하고 생각한다.


10.

그는 커터칼로 귀 밑을 약간 그어보았다.
그래도 시원해지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공룡’... 그는 생각한다. ‘늘어뜨리고...’ 그는 쓴다. 공룡들은 앞발을 늘어뜨리지 않는다. 그것들은 꼬리도 늘어뜨리지 않는다. 고양이 한 마리라고 해도 꼬리를 늘어뜨리지 않는다, 언제나 몸의 균형에 맞추어 자기 위치를 따라갈 뿐이다. 차라리 늘 북극성을 가리키는 진자에 비유하는 게 나을 법 하다. 그는 ‘구부리고’라고 고친다. 손이 차갑다.
공룡은 어떻게 생겼던가 그는 생각한다. 꼬리 아래에 비늘이 있던가 없던가. 하이힐은 어떻게 생겼던가. 뒷꿈치에 굽이 몇 센티미터로 박혀 있으며 소리는, 얼마나 좁은 복도에 어떻게 울리고 있었던가, 파우더는 붓으로 털어낸 것인가 스폰지로 두드린 것인가, ‘어서 가세요’ 하는 말은 어떤 식으로 해야 그 목소리는 말처럼 들리게 되는가, 말로 들리게 되는가, 눈 앞이 찢어지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사물들이, 거기 있는 멀고 희미하고 흔들리고 있지만 모두 그의 책임인 사물들이, 거기 있기는 있어야 할 것으로 결정지워진 채로, 실수나 오해처럼 온통 이지러진 채 바닥에 붙지 않는 배를 바닥에 끌고 다니려고 애를 쓴다, 사물들이 서로 닿지 않는다, 아무 열기없는 흔들리는 촛불같은 사물들, 그의 손에서도 멀다, 너무 많은,
꽃들이,
글자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그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하이힐이, 에나멜이 형광등에 반응한 광택이, 우레탄을 덧붙인 굽이 움직이는 감촉이, 바닥의 물결무늬 아니면 세로줄무늬가, 그에게서 어떤 단어를 읽을 수 있는 힘을 빼어가버렸다. 상실감 때문에 그는 움직일 수도 없다. 허리를 구부린 채 그는 조심스럽게 침대에 돌아와서 눕는다.
그는 어떻게 번역을 해야 할지에 대해 참을 수 없이 계속해서 생각을 한다, 하지만 글자들을 강제로 읽고 있는 것 같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것이 방화범의 이야기인지 타버린 산인지 겨울산인지 공룡인지 도룡뇽인지 모르겠다. 그는 지독한 역겨움을 느끼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는 모든 모공들이 숨을 쉬듯이 좍 벌어져서 몸이 열리기를 꿈꾼다, 그의 숨을 쉬어야만 하는 몸이 그렇게 공기를 휑휑한 터널로, 붙잡지도 밀어내지도 않은 채 펄럭이는 것이다, 육체의 자리는 모공들의 사이사이를 지탱하는 막으로만.
어둠 속에 그는 제대로 잠들지 못한 채 누워 있다. 박탈감이 잠 속으로 밀려나자 생각들이 그의 눈앞으로 빨려든다, 글자들이,

11.

‘그래, 물론 나는 망상하곤 한단 말야, 특히 이런 밤에 말이야. 야근을 하고 피곤한 밤에, 하지만 잠은 잘 오지 않는 밤에 말이야. 뭔가 원망스럽고 살기가 힘든 밤에 말이야. 하지만 누군들 그렇지 않겠어. 가끔씩은 말이야. 하루 일이분은, 내 생각엔, 하긴 일이분도 하지 않는 무서운 인간들이 있고 그런 놈들이 성공하는 걸 거야, ’난 항상 내가 사랑스러운걸!‘이라고 자신있게 말한 아이도 있었지. 아, 나도 그래야 하는데.
하지만 보통은 누구든지 가끔씩은 걸려들 거 아냐. 자기가 정말 쓰레기같이 생각되는 날 말이야. 그런 날에는 ’어서 가세요, 얼른 퇴근하세요!‘같은 친절한 말을 들어도 얼른 꺼지라는 말로 들릴테고, ’벌써 오셨어요?‘같은 뭐하러 벌써 일을 하려고 하냐는, 살짝 농을 거는 말을 들어도 벌써부터 엉덩이 들이밀지 말고 꺼지라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지, 그래, 하루에 일이분쯤, 좀 많이 우울한 날엔 오분, 그러니까 글로 쓰자면 하루에 열서너 줄 쯤은 나오겠지. 이런 기분일 때 내가 하는 망상들만 가지고서 십년치를 모으면 심지어 아주 재미없고 찌질하기 이를 데 없는, 도무지 진행이 되어먹질 않는 장편도 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보다는 내 인생이 더 재미있어. 난 행복할 줄을 아는 인간이야.
하지만 가끔씩 이런 기분이 되는 걸 또 부끄러워하기까지 할 건 없잖아. 우리끼리도 얘기하긴 했어. 아무리 저같이 예쁜 여자라도 가끔은 자격지심이 든답니다, 아, 난 또 그렇게 뻔뻔하게 얘기했어. 그럼 어쩌라구. 자꾸 냉이 나와서 불편해 뭐 이러라구? 요즘 질염이 있어서 팬티만 내리면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짜증이 나? 어쨌든 사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서로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잖아, 심지어 예쁘더라도 예쁘다고 미워할 수도 있고 예쁘다고 해서 머리가 비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걸. 말하고 미워하려면 뭔 짓을 못하겠어. 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서로 해 버리면 어쩔 수가 없는 거잖아.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말이야. 그리고서는 우리는 결국 누가 간식을 사 올 건지 얘기했는데 말이야, 아, 하여간 그만 좀 먹어야 해. 특히나 칩 같은 걸 자꾸 사 오다니, 아무래도 그 사람한테는 한마디 해야겠어.
하지만 그 번역물 말이야. 그걸 읽은 다음에 내가 더 예민해진 건 사실이야. 그걸 읽지 말 걸 그랬어. 글 쓰는 놈들은 그걸로 남의 머릿속을 헤집어놓아야 먹고 살 것 아닌가, 그래, 자기는 먹고 살 거면서 말이야. 난 왜 자꾸 남의 방에는 들어가서는. 하지만 자기 사는 꼴을 전혀 보여주지 않으니까 불안했어. 동거인인데 아무것도 모르잖아. 얘기도 이메일로 했고, 신호도 전화벨 횟수같은 걸로 정했고. 모습도 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머릿속이라도 알고 싶었어. 번역으로 먹고 산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같은 문장만 수백개를 뽑아뒀다거나, 그러면 좀 무섭잖아, 무슨 공포 영화도 아니고. 하지만 그냥 번역물이었어. 그래... 컴퓨터는 잠그어두는 거 같지만 번역이 끝난 것은 프린터 옆에 뽑아다가 그때그때 모서리도 딱딱 맞춰서 차례대로 쌓아두더라구. 나야 주중에는 저 방에 들어가 볼 수도 없으니까, 주말마다 주루룩 읽어보고 도로 쌓아놓느라 조바심났어, 원.
그래, 진짜 좋은 건 따로 있어. 솔직히 말아자. 구좌로 돈이 들어오잖아. 그 녀석은 내가 정 보기 싫을 때는 이 집을 독차지하고 싶을 때는 구좌로 말없이 주말 하루 전에 돈을 슥 넣어준단 말이야, 몇십만원을 말이야. 그렇게 머리 깨지게 번역해서 돈 받아서는 내 구좌로 넣고 싶은가? 흥, 그걸 가지고 여행을 가버리라고 주는 건데, 이상하게 내가 딱 따분해지고 있을 만한 타이밍에 잘 맞춰준단 말이야. 이것도 인연이겠지, 그러니까, 궁합이라는 거겠지. 그런데 몇십만원을 한번씩 퍼넣을 정도로 그렇게 이 집이 좋나? 아니면 그게 놈 나름대로의 여행인 건가? 집을 혼자 둘둘 싸들고 살아있는 사람은 없고 아파트 소음만 있는 요상한 세계로 날아가는 건가? 그놈이라면 그럴 수 있어. 그런 여행도 할 수 있을 테지. 나는 월요일까지 월차를 내고 멀리나 가까이나 아무데나 다녀와버리는 거지.
그 번역물 말이야, 그 방에 나는 그 때만 한번 들어가보지. 주말에 한번, 그걸로 끝이야. 어떻게 사는지는 확인해야 할 거 아니야. 평소에 볼 수가 없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상식이 있다면 그 놈도 내가 그걸 읽는다는 건 알고 있을거야. 그 놈이 제정신인지는 확인해주어야 할 거 아니야, 내가. 그런데 그걸 읽고 나면, 예를 들어서 말이야 창틀에 대한 거나 칼질하는 꼬라지나 가죽으로만 된 인간들이니 낙인이니 어쩌니 하는 얘길 읽고 나면 말이야 징글징글하지만, 무언가, 머릿속에서 떠올라버려. 기억들이. 원래 나는 그런 형틀같은 창틀과 그런 새파란 새벽을 알고 있어. 새벽이란 원래 그랬어. 마치 처음부터. 나는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새벽들이 어떤 새벽인지 잊고 있었을 뿐이야. 아니 심지어 언젠가 새벽을 보았다는 것조차도. 다만 내가 모두 알았었던 것들을 그 글을 보고 기억해낸 것 같다. 마침내 기억하게 된 것과 같다. 아니 읽어낸다는 것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닐까. 뭐가 다르지, 다르지 않아. 기억하는 것과 글을 읽는 것은 다르지 않아.
하지만 무슨 상관이지. 내 과거는 남이 전부 알고 있어, 내 생애는 누군가가 전부 알고 있어, 그리고 난 언제나 글을 읽고 있어, 거봐 또 이런 생각이야, 하지만 정말이지 여기는 한번 붙들리면 빠져나올 수가 없어. 자 그런 것을 버려야 기분이 좋아지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건강해지는 거야! 하지만 누구든지 여기서 묻게 되고야 말 거야. 도대체 왜 기분 따위가 좋아져야 한다는 거야? 아니, 누구든일까? 나는 누구의 글을 읽었을까? 이런 질문들이 의미가 있을까? 내가 읽은 것은 어차피 번역본일 뿐이야. 그것도 어딘지 제정신이 아닌 듯한 번역본.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한다는 것 밖에는 알 수가 없는 인간이 번역한 것이지. 아니, 그 번역본을 통해서밖에 알 수 없는 인간이야. 그게 번역본인지도 확실치 않아. 잔뜩 찍어놓고 읽어나가면서 컴퓨터에서 다른 외국어로 번역하고 있는지 알 게 뭐람.
하지만 그 말들이야. 바로 그 말들이었어.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내가 기억하게 된 것은. 도대체 어떤 원본을 상상할 수 있는 걸까, 어떤 원래의 제대로 된 말들을, 아니 제대로 되거나 말거나 하여간 원래의 말들을. 왜 언제나 무엇을 상상해야만 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고는 아무것도 없어, 이 세상엔 아무것도 없잖아. 우리 거짓말하지 말자. 어떤 것이 원래 있었던 게 아니잖아. 원본이 있는 거잖아, 그 뿐이잖아. 서로 번역본인 원본 말이야. 아,
오늘밤은 이러다 가나보다. 괜찮아, 내일은 주말이니까. 내일은 봄옷을 입을 거야. 새로 샀잖아. 울지 마. 기분이 안 좋아. 나쁜 자식, 오늘은 내가 야근하는 날이 아니었단 말이야. 약속이 있었는데. 다음 주에는 여행을 갈 거야. 눈치를 주든 말든 미뤄뒀던 월차 3일치를 다 낼 거야. 또 육십만원이 구좌로 들어왔단 말이야. 나는 가. 가버릴 거야. 그런 것이 누구에게 상관이겠냐만. 내게도. 나는 어차피 거기에 있을 텐데. 어딜 가겠다는 거야. 아무데도 없었으면 좋겠어. 아무데도. 하지만 그런 소원은 지금 눈을 감아도 이루어지지 않지. 어디에 있지, 어디에든 있겠지, 거기에서 뭘 하고 있는거지, 나는, 나는.‘

12.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릿속은 시원했다. 여느 때처럼 입 안에서는 뜨물같은 희고 반투명한 뇌수의 맛이 났다. 토요일이다, 오늘과 내일은 그가 밖에 나가 있다가 여기에 전화를 해 보게 될 것이다.
지난번에 받은 번역비는 이미 필요한 데에 송금했다. 그는 번역해야 할 문서를 들고 나간다. 쌓아둔 문서의 맨 앞장에 작자의 이름이 써 있다. 늘 그렇듯 그것은 이 두 외국어 사이에서는 굳이 번역할 필요가 없다, 알파벳이 다른 문서들을 맡게 되어서 이름을 번역한다 해도 그것은 이 것을 집어다가 다른 병에 꽂아두는 것과 같다.
맨 앞장에 작자의 이름이 써 있다,
꽃처럼,
번역본들과 번역본들 사이에서 원작이라고 할 만한 부분도 원작자라고 할 만한 것도,
그가 일 하나가 끝나갈 때마다 허탈감과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글자들도.
단 한번,
단 한 사람이었다,
문서들의 첫 장에서, 드물게는 마지막 장의 서명에서, 수많은 작자들의 이름을 접할 때마다 그는 그들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는다.



13

과거라는 말이 원래부터 있었던 양 하지 마라.
그것은 나의 죄다.




14.

그는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어깨부터 닦기 시작한다. 그는 해가 뜨기 전에 나갈 것이다.
아직 새벽이다. 내일 깨어나면 월요일일 것이다.
유리에는 김이 서려있다. 몸을 닦는 동안 증기가 빠져나가도록 그는 문을 열어두었다. 유리에 김이 흐려지기 시작하면서, 어떤 영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는 영상을 가린 껍질을 손을 뻗어 파내려고 한다,

나는 좋은 시체를 만들었다

그는 그렇게 쓰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 외국어로 써야 할 것인지 찾지 못한다.
내일은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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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7 2008.09.26
초청 단편 반복구간 2008.09.26
배명훈 수이15 2008.09.26
김이환 01001한 로봇 친구들4 2008.09.26
초청 단편 사라진 아내1 2008.08.29
김이환 소년3 2008.08.29
pilza2 거울 속에서 사는 법 - 본문 삭제 -5 2008.07.26
배명훈 냉방노조 진압작전 - 본문 삭제 -15 2008.07.25
곽재식 콘도르 날개 - 완결편4 2008.07.25
양원영 청소 로봇의 죄 - 본문 삭제 -4 2008.07.25
초청 단편 바다의 노래1 2008.06.27
배명훈 영웅9 2008.06.27
crazyjam 나의 우주1 200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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