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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lil@naver.com   옛날부터 ‘산들바람이 부는 높은 계곡’이라는 뜻을 가진 마을 ‘오루에 라보와(Orue Labow)’는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어, 길을 잃은 모험가나 이웃나라로 가기 위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몇몇 여행객을 제외하면 외지인을 보기 드물었습니다. 아니, 그런 여행객조차 아주 드물었다는 게 맞는 말이겠군요.

   나이든 노인은 마을에 하나뿐인 여관과 주점을 겸한 ‘암망아지’에 앉아 햇빛을 쬐며 조금 텁텁한, 주인이 직접 담근―――하나뿐인 주점이니 맛있게 담글 필요는 없다지만, 사실 조금 민망한 맛이랍니다―――와인 한 잔을 즐기고, 청년들은 농토에 나가 일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대부분. 여인들은 물레를 돌리면서 잡담을 나누고, 채소를 뽑고, 가끔 눌어붙은 수프 접시를 감추는 것이 매일의 하루 일과일 만큼 조용한 곳이었으니, 얼마나 평화로운 곳인지 알 수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오루에 라보와에는 종종 외지인이 오거나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듣곤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할 정도로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었답니다. 예를 들어 이웃집 아이가 이불에 지도를 그렸다거나, 밀밭에서 꼬리에 불이 붙은 여우가 도망 다니는 것 같은 그런 일 들은 너무 흔했거든요.

   그런 어느 날, 마을에 여행자들이 왔습니다.
   그것도 보기 힘들다는 음유시인이었죠―――물론 셋째, 바람과 날개의 신 호우엔의 사도인 그들은 어디에나 있는 존재지만, ‘오루에 라보와’는 바람도 넘지 못할 만큼 높디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으니, 매우 드문 손님일 수밖에요.

   펍에 늘상 앉아 있는 자곱 영감은 그날따라 유독 신이 나서 동네의 아이들과 여인들을 불러모아 놓고 지팡이를 탁탁 두드리곤, 가래 섞인 침을 내뱉은 후 목소리를 곧추세웠습니다.

   “음유시인! 음유시인이야! 평생 한 번 보기 힘들다는 그 음유시인이 우리 마을에 왔지! 그것도 이 내게 제일 먼저 말을 걸었단 말씀이야! 내가 아직 너희들만한 꼬맹이였을 때(마을 아이들은 상상해 보려고 잔뜩 인상을 찌푸렸지만, 마을에서 제일 늙은 자곱 영감의 어릴 적 모습이란, 상상이 좀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음유시인이 처음 말을 걸어준 사람은 그 날 운세가 핀다고 하셨지, 엣헴!”

   여인들은 조바심을 내며 펍으로 가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남편들과 아버지, 또는 오빠들, 아들들이 오기 전에 그런 곳에 달려 갔다간 크게 혼쭐이 날 게 분명하니 그저 노인의 말에 부럽다는 듯이 귀를 세울 수밖에요. 그녀들은 혹시라도 아이들이 음유시인을 화나게 해서 노래를 들려주지 않을까 봐 미리 자신의 아이들을 꽉 붙들고 머리를 쥐어박으며 눌러 앉히는 것도 잊지 않았지요.

   “머리카락은 꼭 꿀로 빚은 황금 같고, 눈동자는 귀한 서역 상인들이 가져오는 보석 구슬 같은 게, 세상에 그런 미인이 또 없을 거야!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노인장, 저희는 무척이나 지쳤으니 주인어른에게 밖으로 좀 나와달라고 해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말을 하는데 그게 얼마나 또 곱던지! 마을 처녀보다 손이 더 하얗더라니까!”

   그 말에 마을 제일의 미인으로 꼽히는 로우니가 입술을 삐죽였지만, 노인은 그저 신이 났는지 떠들어대기만 할 뿐 그녀의 기분은 배려해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당장 자곱 노인의 아들인 무운은 로우니에게 푹 빠져있는 데 말이지요. 아마, 한동안 이유 없이 쌀쌀맞게 거절당해 울상을 할 게 뻔합니다.

   “음유시인이야, 음유시인이지…….”

   노인은 마치 웅얼대듯이, 또는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턱을 쓰다듬었습니다. 좌우간 마을에는 큰 행사가 생긴 것이니 기뻐할 일이죠. 다만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느즈막하니 농지에서 돌아온 남편과 아버지, 오빠들, 그리고 아들들은 여인들의 손아귀에 잡혀 이렇다 할 변명도, 핑계도, 그리고 따스한 수프 한 컵 구경보지 못한 채 주점으로 끌려갔다는 게 조금 안된 일이긴 하지만요.

   음유시인이야 보고 싶었지만 그들의 얼굴이 영 편하지 못한 것이 ‘암망아지’의 주인의 요리 솜씨는 형편없었고, 그 아내의 요리 솜씨는 두 배는 형편없었거든요. 노래 한 곡만 듣고 돌아가 밥을 먹기는 글렀다는 것을 알고 영리한 남편과 아버지, 오빠들, 그리고 아들들은 품에 따뜻한 빵 하나쯤은 품고 주점을 향했습니다.

***

   음유시인은 녹아내릴 것처럼 붉고 찬란한 붉은 유리 위에 황금빛 벌꿀을 부은 듯한 머리카락과 유리알 같은 황금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흰 베일과 많은 황금 술이 달린 숄, 손 마디마디마다 낀 류트를 연주하기 위한 은색 반지들은 음유시인을 한결 더 아름다워 보이게 했지요.

   마치 황혼 같은 주홍빛의 음유시인은, 주인이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펍의 한켠에 앉아 류트를 쓰다듬고 현을 조였습니다. 그건 노래와 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의미로 동화든 금화든 한 푼의 돈이 놓이는 때부터 그날 새벽이 올 때까지 노래를 할 것을 약속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우물쭈물하며 선뜻 다가설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제일 악동인 호쿠루가 앞장서서 동전을 내미는―――물론 그의 아버지인 호픈이 몰래 쥐어준 것이지만―――용기를 보였지요.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 감탄의 눈빛을 보내는 것에 우쭐해서, 그는 탁자 위에 때묻은 동화 하나를 소리나게 올려놓으며 어른처럼 말했습니다.

   “이 돈을 줄 테니 노래를 해줘요. 아주 재미있고 좋은 노래로요.”

   “아주 재미있고 좋은 노래라……. 작은 손님의 보석은 용감한 색을 띄고 있군요. 오늘은 제 일행이 피곤하니 조금 조용하고 기분 좋은 이야기가 좋을까 생각하는데, 허락해 주시겠어요, 작은 손님?”

   음유시인이 너무나 다정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기 때문에, 호쿠루는 악동다운 소리 한 번 못 하고―――사실 음유시인이 버럭 화를 내거나, 또는 내놓은 돈의 양이 모자란다고 외면했더라면, 호쿠루는 감춰두었던 개구리를 얼굴에 던져줄 생각이었습니다―――그만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고개를 끄덕여 버렸답니다.

   음유시인은 마을 사람들이 테이블이 모자라 바닥에 앉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산떠는 것을 바라보다 차분히 류트의 두 번째 줄을 퉁기기 시작했습니다. 통통통, 하고 마치 배가 떠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류트 자락 속에서 울리자 사람들은 떠들던 것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고 음유시인은 목소리를 높였죠.

   “우리들 가슴에 빛나는 보석, 평생을 두고 마음을 비추어 앞길을 정하는 신께서 내리신 가장 올바른 선물, 그 빛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결코 무섭지도 두렵지 않은 이야기지만, 세상의 정당한 이치에 벗어난 두려움의 상징을 띄고 있기도 할 테지요. 혹여라도 노여워하지 마시기를, 이것은 신을 모욕하지도 않고 이치를 거스르지도 않나니!”

   류트 줄이 퉁겨지고, 두 번째 줄과 세 번째 줄이 같이 울었습니다. 바다와 같은 잔잔한 소리와 단 향기가 나는 음유시인의 목소리는 썩 잘 어울려 할머니의 무릎 위에서 졸고 있던 고양이마저 눈을 부스스 뜰 정도였지요. 음유시인은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끌어나갔습니다.

   “세상 천지 가슴에 보석을 품지 않은 이가 없고, 설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그 가슴에 웅장하고 위대한 보석을 품고 있건만 가슴에도 그 혼에도 보석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오직 단 하나, 그를 가리켜 불새라 하였는데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이 새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지요.

   보석이 없으면 첫째께 진실을 가로지 못하고, 보석이 없으니 둘째께 심판을 받지도 못하고, 보석이 없으니 셋째께 목을 매일 수도 없어 이 새만은 신이 만드신 것들 중에서 가장 기괴한 것. 자식인 첫째와 둘째 셋째조차 그분의 의중을 헤아리는 것을 불가해한 일. 그래서 불새는 유일하게 죽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늘의 달이 땅에 내려와 이슬의 베일을 걷어갈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나, 불새는 세상 온갖 산 것들의 왕이 되고 남을 만큼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제아무리 흉폭한 존재라도 다스릴 수 있는 현묘한 것, 바로 지혜를 품게 된 것이지요. 첫째와 둘째와 셋째조차 그의 지혜를 찾건만, 불새는 세상의 서쪽 끝으로 날아가 깊고 깊은 어딘가로 숨어버렸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이던가…… 멀고 먼 서쪽에서 너무나 먼, 가장 반대편에 있는 동쪽 끝 어느 깊고 깊은, 사람도 동물도 손닿지 않는 물 깊고 바람 높은 계곡 어딘가에,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품어지지 않은 보석이 생겨났습니다. 네, 그렇지요―――여기서부터가 음유시인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할 이야기지요.”

   문득, 창문가에 놓인 촛농 한 방울이 떨어져 식초 냄새 나는 탁자 위에 또르르 굴렀습니다.

***

   계곡은 구름도 함부로 쉬어가지 못할 만큼 높았고, 깊디깊은 강은 물고기조차 살기 꺼려할 만큼 깊어 세상 천지 어느 산 것들도 발을 디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곡은 언제나 적막하였고, 이끼조차 자라지 않을 만큼 삭막한 곳이었지요. 그 계곡 어느 깊은 동굴 속에, 호수 속 땅 위, 햇빛이 비춰드는 작은 섬 가운데에 보석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습니다. 햇빛을 받으면 눈부신 황금빛, 달빛을 받으면 아름다운 푸른빛, 황혼녘에는 주홍빛, 새벽녘에는 녹빛을, 뜨거운 오후 한나절에는 붉게 변하는 아름다운 보석 말입니다.

   “네가 그 보석이구나.”

   어느 날이었던가요. 유달리 햇빛이 따스하고, 바람이 곱고, 늘 웅웅대며 불만을 토하던 계곡의 소리가 잦아든 날, 그 한 마디와 함께 누군가 보석을 방문했습니다. 불꽃처럼 밝은 색의 날개를 가진 청년은 비록 옷은 보잘 것 없었지만 태양과 닮은 눈동자와 다정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지요. 보석은 호기심이 동해 몸을 기우뚱 흔들며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지요? 여기는 아무도 올 수 없는 곳인데요.”

   “‘아무도’는 아니지. 날개를 가졌다면 누구라도 올 수 있어.”

   “그렇지 않아요. 여기는 새들도 올 수 없어요.”

   “내 날개는 다른 새들보다 더 튼튼하니까.”

   “그렇지만 이곳의 바람은 아주 심술궂어요. 아무리 튼튼해도 날아가 버려요.”

   “바람이 사납게 굴지 못하게 하면 되지.”

   “그렇군요……. 바람은 바쁜 듯해서 말을 해도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보석은 한 번도 그런 식으로―――바람에게 말을 건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일일지도요?―――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청년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종종 바깥의 누군가가 자신을 보러 여기까지 오는 꿈을 꾸고는 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문득 청년이 입을 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있는 보석이면서, 너는 많은 걸 아는구나.”

   그것은 순수한 호의와 감탄이 담겨진 말이었기 때문에, 보석은 곧 기분이 우쭐해졌습니다.

   “그럼요. 나는 아주 많이 알아요. 이곳은 아주 깊은 계곡이죠. 때문에 세상 모든 일들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와요. 모든 게 다 흘러오는걸요. 나는 종종 호수에 비치는 바깥 세상과 사람들을 보고는 해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 일을 많이 알아요. 나는 나무가 무슨 색인지 알고, 불이 뜨겁다는 것도 알아요. 그리고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가슴에 보석을 품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청년은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보석은 그것이 자신을 칭찬하는 의미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저 보석의 끝을 톡톡 건드릴 뿐 다른 대답은 없었습니다. 한바퀴 빙그르르 돈 보석이 무릎에서 굴러 떨어지자, 그는 보석을 향해 말했지요.

   “너는 아직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세상의 모든 것이 이름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세상의 모두가 보석을 품고 있지는 않단다.”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보석은 빨갛게 물이 들어서는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정말이야. 너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잖아.”

   그러고 보니, 보석은 정말 이름이 없었습니다. 어째서 그런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요. 보석의 생각보다 청년은 지혜로운 듯했습니다. 우물쭈물하며 보석이 파란 색으로 자신을 물들이고 있는 것을 보던 청년은 다시 맑게 웃었고, 보석은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말을 받았습니다.

   “그래요, 모두가 이름을 가지지는 않고 있어요. 나한테 이름이 없으니까. 하지만 모두가 보석을 품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나는 보석이 없는 인간은 보지 못했어요. 심지어는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벌레에게도 보석은 있다구요!”

   “아니야, 그것도 아니야.”

   보석이 다시 발갛게 물들려 하자, 청년은 자신을 가리키면서 다정하게 보석을 달랬습니다.

   “나를 보렴. 내가 바로 보석이 없는 불새란다.”

***

   음유시인이 잠시 류트를 타면서 이야기를 멈추자, 가장 앞줄에 앉아―――돈을 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리지요!―――이야기를 듣던 호쿠루는 조바심을 내면서, 음유시인의 숄을 잡았습니다. 비단결에 달린 유리구슬이 부딪치는 소리에 움찔했지만, 그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잊지 않았죠.

   “어떻게 보석이 말을 하는 거예요? 내 가슴에 있는 보석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이야기 속의 보석은 사람의 가슴에 자리잡고 있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작은 손님. 우리들의 가슴에 있는 보석은, 그래요―――작은 손님과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의 가슴에 있는 보석은 가슴속에서는 그저 눌려 있을 뿐이라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지요. 보석은 바깥으로 나왔을 때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들은 아주 현명하고 지혜로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겠지요. 하지만 보석을 꺼내는 것은 첫째를 부르고, 둘째를 부르고, 셋째를 부르는 일. 손님,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들은 가슴에서 보석을 꺼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없답니다. 아, 이것 또한 슬픈 일.

   하지만 그 보석은, 이야기 속의 보석은, 그래요 작은 손님―――손님도 알고 계시듯 누구의 가슴에도 들어 있지 않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종종 자기 마음껏 입을 열 수 있었던 거랍니다. 그것도 곧 불행이 되어 버리지만…….”

   그렇게 말하며, 음유시인은 두 번째 현과 다섯 번째 현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토막처럼 작아진 초를 갈기 위해 주인이 새로이 희고 매끈한 초를 꺼내들 때까지, 마을 사람들 중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지요.

***

   계곡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깊었고, 여전히 아무도 찾지 않았습니다. 아, 그래요. 튼튼한 날개를 가지고 바람과 이야기할 수 있는 불새를 빼고는 말이지요. 보석은 햇빛을 쬐며 느긋하게 졸고 있다가 불새가 오는 듯한 날갯짓 소리에 한 바퀴 몸을 빙그르르 돌렸습니다.

   “어서 와요!”

   “잘 있었니?”

   불새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오늘 햇빛을 듬뿍 받아 예쁜 흰색으로 빛나고 있는 보석과 꼭 닮은 꽃 한 송이를 옆에 내려놓았습니다. 보석은 꽃과 자신을 비교해 보고는, 한결 우쭐해져서 말했지요.

   “그럼요, 나는 아주 잘 있어요. 나는 이 꽃보다 오래 가니까요.”

   “오래 가는 것은 좋은 게 아니란다.”

   “그렇지만 빨리 사라지는 것도 좋은 건 아니에요. 이 꽃처럼 벌써부터 죽어가고 있다는 건 분명 싫을 거예요. 지금도 이렇게 시들어가고 있잖아요.”

   보석의 말대로, 불새가 꺾어온 꽃은 시들어가고 있었지요.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을 때보다 훨씬 못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으니까요. 초췌하게 질려 있는 게 분명합니다. 불새는 꽃을 품에 안고 쓰다듬으며―――보석은 그래서 약간은 심통이 났습니다―――답했죠.

   “그렇구나. 네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살아 있는 꽃을 꺾어오지 말고 계곡을 풀씨로 채우는 게 더 좋았을 것을 그랬구나. 그랬더라면 너도 오래 볼 수 있을 텐데.”

   “나는 꽃을 본 적이 있어요. 물 속으로 많은 것들이 모여드니까요. 그리고 여기서 참고 기다리면 더 많은 걸 볼 수 있겠죠. 죽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너는 죽지 않는단다.”

   다정하지만, 어쩐지 조금은 슬픈 듯한 불새의 말에 보석은 잠시 데구르르 굴렀습니다. 통통거리며 돌 조각이 보석에게 부딪쳤어도 다행히 금이 가거나 하지는 않았답니다. 보석은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것은 죽어요. 모두가 말이지요. 그러니까, 나도 죽을 거구요.”

   “아니야, 너는 죽지 않는단다. 보석이 죽을 수 있는 것은 일평생 한 번, 첫째께서 드신 저울 위에 올라갈 때뿐이지. 하지만 그것은 평생토록 산 것들의 몸에 들어 있는 보석에게만 가능한 일이란다. 너는 혼자 있는 보석이기 때문에, 첫째께서 저울에 올리지도 않으실 거고 둘째께서 검을 내려치지도 않으실 테고, 셋째께서 날개에 실어 하늘에 올려 주시지도 않을 거야.”

   “그렇다면, 영원히 사는 건가요?”

   “그래, 그렇지.”

   “멋지군요! 나는 그게 더 좋아요. 입을 꼭 다물고 가슴속에 꽁꽁 박혀 있는 것보다는 바깥이 더 좋아요. 당신도 그렇지 않나요? 보석이 없는 건 좋지 않나요? 죽지 않아도 되잖아요.”

   반짝반짝, 온갖 빛깔을 뿜어내며 기뻐하고 있는 보석을 쓰다듬으면서 불새는 조용히 웃어 보였습니다. 그의 미소를 보자 어쩐지 기뻐하고 있는 것이 미안해졌기 때문에, 보석은 조용히 되물었지요.

   “영원히 사는 게 좋지 않은 건가요? 그렇기 때문에 싫어하는 건가요?”

   “나는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않는단다. 하지만 모든 산 것들이 경험하는 보석과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것을 나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으니 내 삶과 내 지혜가 보잘것없는 반쪽에 불과하단 사실이 슬플 뿐이지. 아아, 어쩌면 너에게도 내 이야기가 필요할지 모르겠구나…….

   나는 첫째와 둘째, 셋째께서 아직 나시지 않았을 때 신의 품에서 처음으로 날개를 폈단다. 그분은 나를 품에 안고 있다 내리시고는 기쁘게 웃으시며 내 품안에 있는 보석을 느껴보라 하셨지. 나는 그것이 크나큰 무례가 되리란 것도 느끼지 못하고 신께 되물었어.

   ‘이것이 무엇이오니까?’

   신께서 말하시기를, ‘그것은 보석이라 한다. 너를 비추고 너를 걷게 하고 너를 위해 슬퍼하고 기뻐할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하다 네 삶의 가장 올바른 지표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네게 가장 기쁘고 크나큰 죽음을 내릴 것이다.’

   나는 크게 두려워하고 노여워하면서도 다시 아뢰었지.

   ‘죽음은 또 무엇이오니까?’ 그러나 내 무례하고도 어리석은 질문에 신께서 사랑과 자애를 담아 답하시기를, ‘네 거하고 있는 몸이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하셨고 나는 그 말에 겨우 깨어난 내 몸이 없어질까 크게 두려워 조심히 다시 물었단다. 그때 내 안에서 그리 사악하고 무섭고 두려운 생각이 생겨날 거라 미처 몰랐지. 생각해보지도 못했어.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신께 더없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리 물었어―――아아, 왜 그리도 어리석었던가……!

   ‘저는 죽음이 무서워 당장이라도 날개가 꺾어질 것 같나이다. 내 가슴에 보석이 있는 한 저는 죽는 것이오니까?’ 신께서 가로되 ‘그것이 정당한 일이라.’ 용기 내어 다시 묻기를, ‘그리하면 정녕 피할 방법이 없사오니까?’

   그 얼마나 위험천만한 질문이었는지. 내 얇고 어리석은 생각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 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어찌 되겠니.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하늘이 바뀌어도 이제 그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단다. 지혜가 아무리 높고 세상 천지 만물에게 말을 걸 수 있어도 그것만은 결코 바꿀 수 없단다. 내 신께서 자애로운 그 대답을 하실 때, 나는 그 추한 마음을 이겨낼 수 있었을지도 몰랐는데.

   신께서 내게 더없이 상냥히 이르시기를, ‘네 가슴의 보석을 꺼내 대지 위에 내치고 그 안에 네가 처음 본 것을 채워넣으면 두 번 다시 죽지도 살지도 않으리라. 하지만 내 작은 새야, 보석이 너에게 주는 것이 무엇이더냐? 너를 사랑으로 충만케 할 것이고 너를 슬픔과 기쁨과 노여움으로 충만케 하고, 또한 네가 무엇인지 그 순간과 순간의 찰나에조차 알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새야, 내 작은 새야.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비록 보잘것없어 보인다 하여도, 나는 죽음을 능가하는 권능을 그 작은 것 안에 넣었느니! 두려워 말지어다. 너에게는 내가 함께하고 있음이다.’

   그 아름다운 말씀, 그 사랑과 자애가 함께 있는 높으신 말. 내 그것에 담긴 무한한 위대함을 등지고 이 육신이 진토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슴을 갈랐다고 해도 그것은 변명일 뿐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죽음이 너무나도 무서웠기에, 신께서 보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날아가 내 손톱으로 가슴을 가르고 내 품안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보석을 꺼내들었단다.

   아아…… 그것은 불꽃보다 붉고, 핏방울보다 짙고, 어둠보다 달콤한, 그토록 아름다울 수 없는 보석이었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고말고. 그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단다. 하지만 나는 내 보석을, 내 생명을, 아픔과 쓰린 고통 속에서 멀리 대지 위에 버리고 내 처음 눈 닿은 곳에 있던 한웅큼의 눈을 잡아 가득히 채워 넣었지.

   내 가엾은 보석, 미처 내가 알아주지 못한 그 보석은 슬피 훌쩍이며 나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단다. ‘아, 가엾은 작은 새. 왜 나를 버렸나요? 왜 나를 이리 버렸나요? 내가 그대에게 사랑을 주고, 고통을 주고, 기쁨을 주고, 절망을 주고, 또한 내가 그대를 비추고 그대의 앞길을 축복하고 저주할 텐데! 왜 나를 버렸나요! 죽음이 비껴가도 나 없이 어찌 사시려고, 이 나를 버렸나요……!’ 정녕, 그 가엾은 보석의 말을 내가 들었어야 했는데, 내 가슴에 채워진 눈이 얼마나 차가웠는지―――나는 그만 매정하게 소리치고 말았지.

   ‘시끄러워! 더러운 피처럼 붉고 가장 저주받은 밤처럼 검은 것아! 죽음이 내 육신을 갉아먹어 들어가는데, 추한 너를 품에 안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네가 주는 것이 대단한 것이라 여기지 마라! 너는 보잘 것도 없는 추한 것이다! 죽음을 피하게 되지 않아도 너 같은 추한 것을 어찌 내 가슴에 품으랴?’ 그리고 내 보석이 내게 마지막으로 말하길, ‘가엾은 작은 새……. 가엾은 작은 새, 신께서 화를 내실 거예요. 보석을 내놓지 못하게 할 거예요. 아무도 자신의 보석과 대화할 수 없게 될 거예요. 첫째와 둘째와 셋째가 와서 모두를 심판하겠지요. 어찌해서 그렇게 어리석은 일을 했나요. 가엾은 작은 새……. 안녕, 안녕―――내 작은 새.’

   보석은 그렇게 숨죽여 울고 또 울다가 빛을 잃고 소리 없이 사라졌지. 나는 그 말에, 보석의 모습에 더럭 겁이 나 신의 앞으로 날아갔어. 그리고 신께서는 그처럼 무서운 것이 세상 두 번 다시없을 만큼 크게 노여워하고 또 노여워하셨단다. 그리고 그분은 누구도 나같이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도록, 다시 그런 불행한 보석이 생기지 않도록, 후우――― 하고 길게 숨을 뱉어 첫째와 둘째와 셋째를 만드셨지.

   나는 신께서 그들에게 내린 존재의 이름을 들었단다. 노엽고도 웅장하고, 그리하여 참회하게 만드는 목소리로 신께서 첫째와 둘째와 셋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이제 아무도―――그렇단다, 아무도 감히 그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지만 나만은 그들의 진짜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많은 산 것들이 슬퍼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증오하고 배신하고 믿고 죽고 살고 또 죽었지. 내가 겪지 못한 것들을 겪으면서 그것들이 웃으며 사라지는 동안, 나 또한 살았단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고, 마냥 그리 살았지.

   보석아,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은 가엾은 것. 네가 무슨 죄가 있어 이리 되었을까. 너는 많은 것을 느끼지도 못할 것이고, 많은 것을 알지도 못할 것인데. 어찌해서 신께서 네게 그런 슬픈 일을 준비해 두셨을지, 나는 모르겠구나. 영원히 사는 것은 기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그저 무지몽매한 천 것들의 환상이나 몽상보다 못한 것이더란다. 내가 느껴야 할 것, 내가 가져야 했던 것들을 버리고 내 스스로 택한 그리도 괴로운 결과지. 결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란다…….”

   보석은 한참이나 듣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요. 나는 여기서 많은 것을 보았어요. 그들의 보석은 종종 주인을 더없이 아프게 해요. 나는 너무 슬퍼서 보석이 깨지는 바람에 죽은 여자를 보았어요. 한없이 기쁜 나머지 보석이 달아올라 기절해 버린 남자도요. 무엇하나 재주 없어서 한없이 자괴감을 늘리다 보석만 가득 무거워져 곱사등이가 된 남자도 보았어요. 보석이 너무 많은 걸 알려주기 때문에, 언제나 가르쳐주기 때문에, 산 것들은 너무 슬퍼하고 너무 기뻐하고 너무 노여워하고 너무 사랑해요.

   나는 산 것들의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마냥 지혜롭고 슬기롭지 않은 대신 조금은 어리석다는 걸 알아요. 보석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새들의 날개를 빼앗고 물고기에게 숨쉬는 법을 잊게 해버려요. 좋은 것은 아니에요……. 모두가 좋지는 않아요. 때때로 나쁘기도 해요. 보석이 있어도 사람들은 나를 찾아주지 않아요. 하지만 보석이 없는 불새는 나를 찾아주었어요.

   나는, 보석이 없는 불새가 더 좋아요.”

   불새는 한참이나 그런 보석을 내려다보다 무엇을 느꼈는지 보석을 안아올려, 그 위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만 수줍어진 보석은 다시 발갛게 색을 바꾸었지요. 불새는 몇 번이고 보석을 쓰다듬으면서, 기쁘게 미소했습니다.

***

   아이들을 자라고 채근하는 것도 잊고 이야기 속에 빠져 있던 어머니들은, 음유시인이 일곱 번째 줄과 첫 번째 줄을 튕기자 그제야 제정신이 든 것처럼 화들짝 놀랐지요. 새벽은 아직 멀었지만, 이상하게도 방안의 초는 너무나도 빨리 타고 있었습니다.

   음유시인은 황금빛 도는 머리카락 위에 둘러진 숄을 걷고, 긴 이야기로 지친 목을 주인장이 내준 와인 한 모금으로 달랬죠. 그는 예의바르게 잔을 내려놓고는, 주인을 향해 다정하게 말했지요.

   “아주 달콤한 와인이네요. 목이 금세 돌아오는 것 같아요.”

   거짓말일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암망아지’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뒤뜰의 우물에서 길어 온 물뿐이었으니까요. 펍을 경영하면서도 마을에서 가장 술을 못 담그는 주인에게 그것은 썩 기분 좋은 소리였기 때문에, 그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웃어 보였습니다. 음유시인은 곧 다정히 목소리를 높였지요.

   “불새와 보석은 그렇게 서로에게 아주 좋은 친구가 되었답니다. 다정하고 사려 깊은 불새와 조금 우쭐거리지만 올바른 보석은 아주 좋은 짝이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몹시 바람이 불고 몹시 어두운 밤이었지요…….”

   촛농을 가지고 장난치던 아이를 끌어다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부인은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았습니다. 잠시, 창문이 덜컹거리는 것이 느껴지는군요.

***

   그날은 폭풍이 오는 날이었습니다.
   보석은 호수 위에 덩그러니 있는 섬의 가장자리에 앉아 바깥을 향해 귀를 기울였습니다. 술렁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리는 조금 이상한 날이었지요. 계곡은 깊고 물은 높아서, 아무리 큰 폭풍이 오더라도 계곡 아래의 물길은 흔들리지 않았고 동굴 속의 호수도 불어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날의 폭풍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어요. 세상에서 제일 큰 폭풍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대 주기가 소멸하고 새로운 주기가 생겨날 때, 한 세기가 바뀌고 새 세기가 올 때 비로소 오는 폭우니까요. 당연히 찰랑찰랑하던 호수의 물을 조금씩 불어나게 할 정도로 큰 비랍니다.

   불어난 물 위에는 사방에서 내리는 비의 모습만이 흘러들어왔지요. 세상 어디든 비로 가득 차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가 높은 곳으로 피해갔습니다. 물이 조금씩 올라왔기에 보석은 데굴데굴 굴러서 좀더 섬의 안쪽으로 들어가, 침울한 녹빛을 띄었습니다.

   바깥에서 보던 것과 달리 비가 오는 것은 그리 좋지만은 않아서, 보석은 물에 잠길까 봐 작은 섬을 이리저리 굴러다녀야 했지요. 동굴 위로 뚫린 햇빛이 들어오는 구멍에서도 종종 우르릉, 하는 소리가 울려 보석은 몸을 가장자리로 굴렸다, 물이 차 올라서 안으로 들어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겁이 나고 무서워진 보석은 웅웅거리며 바깥에서 부지런히 비구름을 독촉하고 있는 바람에게 말을 걸어보았지요.

   “저어, 계속 물이 차 오르고 있어요. 여기서 비를 치워주실 순 없나요?”

   하지만 바람은 무척 바빴는지 보석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저만치 가버렸죠. 보석은 실망해서는 섬의 안쪽을 빙그르르 맴돌았습니다. 불새는 종종 바람과 말을 하고는 하노라고 했는데, 자신은 그게 되지 않았다는 것에 조금 심술이 나던 차였답니다. 우르릉, 하는 소리가 한번 더 울리나 했더니 번쩍, 하고 뭔가가 지나갔습니다.

   보석은 근처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요. 왜냐하면 보석은 물에 잠길 만큼 무거워서 바깥으로 굴러나갈 수가 없었으니까요. 이리저리 통통거리면서 불안하게 구르고 있던 보석은 어쩐지 조금 슬퍼졌습니다.

   사람들은 무섭고 외로울 때도 누군가 옆에 있어주고, 손을 잡아끌고, 그것이 없더라도 가슴에 들어 있는 보석이 따뜻하게 달아올라 용기를 주는데 자신은 혼자였으니까요. 혼자서 불안해하고, 혼자서 초조해하고, 혼자 바람에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

   불새는 자주 와주었지만, 보석과 늘 함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럴 때는 정말 혼자입니다. 보석은 물끄러미 비가 내리는 기억들이 가득 차 있는 호수를 보다 심술맞게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저 보석들보다 더 잘 주인을 이끌어줄 자신이 있어. 결코 잘못된 숲길로 들어서지도 않을 거고, 뗏목을 만들 때 손이 비껴나가지 않도록 도와줄 거야. 허둥지둥하다 가슴에 용기를 채워넣는 걸 잊지도 않을 테지. 나보다 더 뛰어난 보석은 없어, 그렇고 말고.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내 보석은 발갛게 달아오른 빛을 잃어버리고, 무색의 빛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쿵쿵, 동굴을 두드리는 것 같은 빗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틈새로 보석은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혼자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불새가 왜 그렇게 다정하게 손으로 안아올려 입을 맞춰주었는지, 보석은 겨우 알았습니다.

   산 것들의 안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은 언제나 귀찮은 일들로 가득하겠지만, 적어도 이런 기분은 아닐 겁니다. 혼자 서 있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처음 알아버려서, 이때껏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까지 한꺼번에 오는 느낌은 정말 크게 보석을 슬프게 했습니다. 보석은 자신이 울기 때문에 호수가 더 빨리 높아진다는 것도 모르고, 짙은 회색빛을 띄고는 그렇게 계속해서 울었습니다.

   “이런이런, 내가 늦었나 보구나. 울고 있니?”

   “당신이로군요. 하지만 난 오늘 너무 슬퍼요. 기쁘게 맞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어째서 그렇게 슬프지?”

   보석을 안아 자신의 품에 안은 불새는 조심스럽게 매끄러운 보석 위를 쓰다듬어주었습니다. 보석은 훌쩍거리면서 힘없이 읊조렸지요.

   “나는 정말 불행한 보석이에요. 이곳을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어요. 내게는 팔도 다리도 없고, 나를 품고 있는 사람도 없어요. 나는 따뜻하게 데워질 필요도 없고 용감함을 북돋을 필요도 없어요. 나를 품고 있는 이가 없으니까요. 나는 왜 이런 보석으로 태어났을까요? 앞으로 매일매일이 너무 슬퍼질 거예요. 비가 와도 혼자 앉아서 몸을 굴리는 게 다인걸요.”

   말을 끝마치고 보석은 엉엉 울었지요. 불새는 그런 보석을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고는 품에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는 통통거리는 빗소리와 우릉대는 우레, 번쩍번쩍한 번개가 내는 리듬에 맞춰서 낮게 노래를 불러주었지요. 보석이 울음을 그칠 수 있을 때까지요. 그리고, 비가 멎을 때까지 말이죠.

   비가 걷히고 계곡의 물이 빠지는 동안에도 불새는 계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보석은 계속 울고 있으면 불새의 노랫소리를 놓치게 되어서인지, 결국 울음을 멈췄지요. 다행한 일입니다. 보석이 계속 울기만 했으면 불새도 많이 슬펐을 테니까요.

   “이제 비가 그쳤구나. 기분은 괜찮니?”

   “아니오. 이제 나를 내버려둬요. 나는 계속 슬퍼만 할 거예요. 산 것들에게 깃들지 않은 보석은 세상에 나 하나뿐이니까, 고독에 파묻혀서 계속 울고 있을 거예요.”

   투정과 같은 보석의 말을 듣고 웃음을 눌러 참은 불새는 조심스레 보석을 토닥이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바깥에 나가보고 싶지 않니? 네가 꼭 보아줬으면 하는 것이 있는데.”

   “바깥이오? 하지만 나는 벌써 아주 많은 걸 알고 있어요.”

   “아주 멋진 것이란다. 너도 무척 마음에 들어할 거야. 약속할 수 있어.”

   “하지만 바깥으로는 어떻게 나가죠?”

   미심쩍다는 듯이 보석이 묻자, 불새는 말없이 아름다운 불꽃의 날개를 펼쳐들었지요. 그리고 앗, 하는 사이 벌써 동굴의 구불구불하게 꼬인 종유석을 빠져나가 높게, 동굴 위로 몸을 솟구쳤습니다. 비가 그친 바깥의 계곡을 타고 오르고 올라, 심술궂은 바람의 손아귀 사이를 사뿐히 빠져나간 불새는 계곡 끄트머리에 발을 딛었지요.

   “우와, 굉장해요! 불새는 굉장히 빠르군요!”

   “그래, 하지만 이건 네게 보여줄 것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란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이 있나요?”

   불새는 보석을 안고 있던 손을 놓고, 대지 위에 보석을 올려 둔 다음 계곡 쪽으로 다리를 내밀고 앉았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겁이 나서 도망치는 계곡도, 날개를 가진 불새에게는 무서운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보석은 처음에는 머뭇머뭇하다가 불새가 고개를 돌리고 있는 ‘위’를 쳐다보았지요.

   “와……!”

   위는 보석이 생전 처음 보는, 반짝거리는 모래가 흩뿌려진 듯한 길다란 강이 나 있었습니다. 푸른색이 곱게 갈려 섞인 남빛의 염료를 뿌린 뒤에, 그 위에 진주를 갈아 올린 신부의 예복 같은 것이었지요. 보석은 한참이나 그 반짝이는 강을 올려다보다 입을 열었습니다.

   “……저건 대체 뭐지요?”

   “보석의 강이란다.”

   “보석의 강이오?”

   “하늘에 올라가기를 허락받은 보석들이지. 첫째가 심판하고, 둘째가 보석을 깨고, 셋째께서 밧줄로 한아름 모아 허공으로 흩뿌린 것이 바로 저 보석의 강이란다. 저 수만큼 많은 산 것 들이 태어났다 죽었고, 저 수만큼 많은 보석들이 심판대 위에 올랐지. 그리고 보석의 강이 세상의 끝과 시작, 시작과 끝에 닿을 때 비로소 땅 속으로 내려간 가엾은 보석들도 신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거지.”

   보석은 한참이고 보석의 강을 올려다보았지요. 그것은 넓고, 아주 길었습니다. 보석이 있던 동굴 속의 호수보다 훨씬 더 말이죠. 동굴 안과 전혀 다른 바람이 불어왔고 사방은 훤히 열린 광야였기에, 보석은 마치 세상의 중심에 선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았군요. 한 번도 보석의 강을 보지 못했어요. 내가 내는 빛보다 더 많은 색으로 반짝이고 있어요……. 한 번도 보지 못한 색들이 저 속에 가득해요.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죠?”

   “보석의 강은 지상을 흐르는 물과 만나지 않으니까.”

   “나도 저 위에 올라가고 싶어요. 저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어떤 기분일까요? 보석의 강이 흐르고 있는 끝은 어디일까요?”

   “대지에 발을 딛는 한, 결코 저 곳에는 오를 수 없단다.”

   보석은 한참이나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비가 오고 나서인지 땅은 축축했고, 하늘은 평소보다 훨씬 맑았지요. 보석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몸을 기우뚱하며 입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저곳에 가고 싶어요.”

   “하지만 그건 아주 힘든 일이야. 이름을 받아야 하고, 삶을 살아야 한단다. 평생토록 힘들거나 괴롭고, 불행할 수 있어. 그래도 오를 수 없을 지 모르지. 보석의 강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혼자 울면서 슬퍼하는 것보다는, 무엇인가라도 할 수 있는 게 좋아요. 슬퍼서 우는 건 싫어요. 사람들이 기뻐서 우는 것처럼, 나도 종종 그렇게 울고 싶어요. 불새는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그냥 이름 없는 보석이기를 바라요? 아니면 이름이 있는 보석이 되는 것을 바라요? 내가 그냥 보석으로 남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이름을 가지는 게 좋은 건지 알고 있나요?”

   “그건…… 아주 어려운 문제로구나. 첫째께서 내신 질문보다 더 말이다. 하지만 너도 언제까지 그냥 보석일 수는 없겠지. 너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산 것들에게 깃들지 않은 보석이니까.”

   불새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한참이나 보석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는 아주 지혜로워 첫째와 둘째, 그리고 셋째께서도 그 지혜를 빌리는 존재였지만 이번 결정만큼은 쉽지 않나 봅니다. 그는 보석을 매만지다 나직이 입을 열었지요.

   “수트 아마리에(행복을 쫓는 이), 네 이름으로 어울릴까?”

   “아주 좋아요. 그렇지만 나는 지금 조금 슬퍼요.”

   그리고 보석은 팔을 뻗어서, 불새를 끌어안았습니다. 처음 안아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너무 꽉 끌어안았지만 불새는 탓하지 않았으니 괜찮겠지요. 보석은 투덜대는 것처럼 불새를 꼬옥 안고는 입을 열어 말했지요.

   “옷이 없어서 너무 추우니까요.”

***

   “그리고 불새와 보석은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아다녔습니다. 보석이 원하는 곳, 바로 보석의 강에 도달하기 위해서지요. 불새와 보석이 얼마나 세상을 떠돌아다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보석이 이름만큼의 성취를 찾았는가는, 음유시인의 눈으로도 알 수 있을 테지요.”

   음유시인은 끝을 알리기 위해, 아홉 번째 줄을 튕겼습니다. 그리고 촛불도 이제 두 번째 막대가 가물가물해질 정도가 되었지요. 통통 튀는 듯한 류트의 줄을 두드린 음유시인은 악기를 끌어안고는 부드럽게 미소지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석은…….”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 위에 서 있던 청년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음유시인의 말에 끼어 들었지요. 그것은 매우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청년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답니다. 그것도 아주 중대한 이유가.

   “이제 그만 해야지. 새벽이 밝았어. 동전의 대가 이상을 말하는 음유시인은 자격이 없어져, 수트.”


   글쎄요, 보석은 행복했을까요?
   아마도, 아마도―――행복했겠지요. 옛날 이야기와 음유시인의 노래는 으레 행복한 것 외에는 모두 잊어버리니까요.





―――――――――――――――――――――――――
펜릴   환상서고, 딤비, 문피아 등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백서현이라는 필명으로 [데이브레이커](대원씨아이, 2007년)를 2권 출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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