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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살 돈 모으기

곽재식

진영이 로봇을 사겠다고 마음 먹은 날은 10살 때였다. 저녁 자유 시간 때 “수사반장”을 보던 것을 금지 당한 것이 그 계기였다. “수사반장”은 원래 “20세기 고전 TV물”이라는 제목으로 기본 무료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던 것인데, 그런데도 “수사반장”은 갑자기 볼 수 없게 되었다.

진영이 살던 보육원 원생들은 뭐든지 “기본 무료 프로그램” 중에 제일 좋은 것을 찾아내는데 대단히 밝았다. 진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진영은 그것이 아마도 선생님 보다 더 높은 원장 선생님 보다 더 높은 어떤 선생님 같은 분들이 시킨 복잡한 말과 무슨 관계가 있어서 생긴 규칙 때문 아닌가 생각했다. 보육원에서 원생들은 책, 컴퓨터 프로그램, 음악, 음식, 잠자리, 놀이기구, 장난감까지 뭐든지 “기본 무료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를 얻어서 쓸 수 있었지만, 3백원짜리든, 5백원짜리든 “유료 프로그램”은 절대 쓸 수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있었다.

3백원이면 진영의 셈으로도 별로 커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진영은 항상 “기본 무료 프로그램”의 세상에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3백원만 더 내면 갈 수 있는 “유료 프로그램”의 세계는 아주 얇지만 높디 높은 장벽으로 가로 막힌 곳이었다.

그래서 진영은 저녁 동영상 서비스의 “기본 무료 프로그램” 중에서 제일 재밌는 것을 찾아 내게 되었다. 그것이 “수사반장”이었다.

어떤 원생은 “변신 외계인도 안 나오고 댄싱 해커도 안 나오고 이상한 옛날 사람들만 나오는 그런 게 뭐 재밌냐”고 진영에게 묻기도 했다. 사실 처음에는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이것도 눌러서 보고, 저것도 눌러서 보고, 재밌는 것을 찾아 고르고 고르다가 지쳐서 다 포기한 상태로 그냥 처음 한 회를 볼 때만해도, 진영 역시 따분하고 지겨운 옛날 사람들 나오는 TV극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매일 1시간 30분씩인 영상 시간을 매번 이거 볼까, 저거 볼까, 하고 메뉴 뒤적뒤적하다가 다 보내 버리는 일을 몇 번 하고 나니, 진영은 아무것이든 뭐든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냥 댄싱 해커 365 봐.”

상급생 한 명은 그때 가장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을 남들처럼 다 보라고 진영에게 몇 번이나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영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자신이 찾아서 골라서 보고 싶었다.

보육원에서는 10살이 되어야 원생이 보고 싶은 영상을 마음대로 골라서 볼 수 있게 된다. 진영은 이제 막 10살이 되었다. 그러니 몇 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냥 9살 때처럼 다같이 보는 “댄싱 해커 365”를 계속 또 본다는 것은 무척 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래서 진영은 뭐가 되었든 볼 것을 스스로 고르고 싶었고, 자유로 정하고 싶었다.

그런데 해 보니, 뭘 볼 지 정하는 게 무척 시간이 많이 지나가는 일이었다. 20분이고 30분이고 뭘 볼까 뒤적뒤적하다가, 이게 재밌겠다 싶어서 눌러 보면, 한 1분 2분 보다가 그냥 따분해 보여서 그만 두게 되는 때가 많았다. 그러고 나면, 다시 또 20분, 30분씩 뭘 볼까 헤매게 된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못해, 그 날은 “오늘도 이렇게 뭘 볼 지 고르기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아무리 재미 없는 것이라도 무조건 참고 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진영은 처음으로 “수사반장”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딱 한 편을 보고 나자, 진영은 그 다음 편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밝은 조명이지만 이상하게 황량해 보이는 사무실, 별 다른 음악이나 화려한 효과 없이 좀 조용하고 지친 듯한 태도로 대화하는 경찰들. 진영의 눈에 화면 속 장면은 무거워 보였다. 낡아 빠진 20세기 거리 풍경과 그 낡아 빠진 모습 속에서도 자기는 새롭고 신식이며 미래답다고 한껏 꾸민 사람들과 상점들의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그런 모습 속에서 범죄 이야기를 보다 보면 괴물들의 세상을 몰래 엿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무서울 때도 있었다. 붙잡힌 범죄자가 이제는 모든 것이 멸망이라고 부르짖는 장면에서 갑자기 뚝 잘리면서 멈춘 화면으로 끝나는 에피소드 같은 것을 보면, 그 잔상이 여운으로 남았다. 진영은 잠 잘 시간이 되어서도 눈을 꿈뻑이면서도 그 범죄자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런 무서운 죄와 죄를 지은 사람의 심정에 대해 상상했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자신이 봐서는 안 될 것을 보는 방법을 찾아 내고야 말았다는 그런 느낌도 있었다. 별로 보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적당히 돈 안되는 영상들을 몰아 넣어 두었던 것 같은 “20세기 고전 TV물” 중에 자신이 이런 이상한 것을 찾아냈다니. 그 모든 것들이 진영에게는 결국 신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진영이 “수사반장”을 여섯 편 보고 일곱 편 째에서 범인이 어떻게 잡히는 지 직전까지 봤을 때, “보육원 감찰공사”라는 곳의 사람들이 찾아 왔다.

진영이 듣기로, 보육원 감찰공사란 부모와 같이 살지 않고 보육원에서 사는 아이들이 적합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 지 살펴 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바로 원장 선생님 보다 더 높은 선생님들 중에서도 더욱더 높은 선생님들이었다. 진영은 원래 그날 전까지만 해도 그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보통 그 사람들이 오고 가는 전후로 보육원의 옷이나 가구가 새 것으로 바뀔 때가 많고 음식도 더 좋아질 때가 많았으며, 보육원 선생님들도 더 친절해지는 편이었다.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해에는 달랐다.

그 감찰공사라는 곳 사람 중 한 명이,

“어떻게 애들을 이렇게 날마다 방치할 수가 있어요? 그냥 사람들이 올려 놓은 자극적인 동영상에 노출시켜 놓고, 하루에 몇 시간 씩 멍하니 그것만 보면서 애들이 화면 앞에만 붙어 있잖아요. 본인 자식들이라면 이런 식으로 교육하시겠어요?”

라고 따졌다. 그러면서 세상이 바뀌었다.

우선 영상 시청시간이 확 줄어들었다. 진영은 몇 초라도 “수사반장”을 더 보려고 뛰어서 매일 방으로 달려갈 정도로 시간을 절약해서 결국 에피소드 하나의 결말을 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의 절반 쯤 보았을 때였다. 마침 주인공 반장이 “그러면 말이야. 우리 수사 방향을 좀 바꿔보면 어때?”라고 말하는 장면까지 봤을 때, 영상을 보여 주는 회사가 바뀌었다. 중독성 영상을 내 보내지 않는 선별 작업을 더 잘 한다는 회사였다. 그런데 영상 회사가 바뀌면서, 중독성 기준과는 아무 상관 없는 “수사반장”이 기본 무료 프로그램에서 빠져 있었다. “수사반장”은 3백원짜리 유료의 세계로 건너 가 있었다.

진영은 너무나 답답했다.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 생각이 났다. 꿈도 꾸었다. 꿈 속에서, 수사 방향을 좀 바꿔보자고 했던 수사반장이 사실은 변신 외계인이라는 정체를 드러낸다는 내용이 나왔다. 그것을 보고 너무나 놀라서 진영은 감탄했고, 정말 재밌다고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역시 “수사반장”이 제일이라고, 이렇게 재밌다니, 정말 놀랍다고 기뻐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 일어나 보니 그 모든 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짜 “수사반장” 다음 편을 본 것이 아니었다. 진영은 허탈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음 편을 실제로 볼 길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원통했다.

영상 시청 시간이 줄어든 대신에 원생들은 “창의성 함양 교육”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하게 되었다. 진영에게 그것은 너무나 따분하고 재미 없었다.

여러가지 도형 모양을 보여 주면서, 그것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자유롭게 말해 보라는 것이었는데, 진영은 답을 생각해 내는 것이 골치 아프기만 했다. 정말로 떠오르는 것을 그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진영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의 대부분은 “원래 이 시간은 ‘수사반장’보는 시간인데”하는 것이었다. 동그라미를 보여 주면 수갑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세모를 보여 주면 범인의 흉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모를 보여 주면, 형사들이 드디어 범인을 붙잡아 네모난 감방 속에 집어 넣었다는 상상만 떠올랐다. 그것을 그대로 말할 수도 없고, 대신에 적당한 답을 다시 생각해서 “네모를 보니 책상이 생각나네요” 같은 답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진영은 너무 지겨웠다.

도대체 어떻게 “수사반장”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궁리만 하면서 진영은 며칠을 보냈다. 어디서건 컴퓨터, TV 같은 화면을 보기만 하면 거기에 딸려 있는 영상 정보 회사에서 혹시나 “수사반장”을 보여 주지는 않는지 살펴 보았다.

진영은 그러다 보육원 세탁실의 조종 컴퓨터를 조작하면 그것은 세탁서비스 회사에서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보육원과는 다른 영상들을 볼 수 있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심지어, 세탁실 컴퓨터에서는 “수사반장”을 볼 수도 있었다. 진영은 그때 감동해서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세탁실 컴퓨터에서 기본 무료로 볼 수 있는 것은 맛보기용으로 풀려 있는 두 회차 뿐이었다. 그것은 이미 본 것이었다.

그래도 진영은 세탁실에서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돌려 보았다. 진영은 세탁 담당 선생님을 도와주는 당번도 아니었는데, 일부러 당번 역할을 대신하겠다고 자원해서 매일 세탁실에 따라 가서, 하루에 5분씩 끊어서 이미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던 “수사반장”을 무료 회차를 보고 또 보았다. 지겹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루에 5분 보는 잠깐 동안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어떨 때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고 잠을 자는 하루를 사는 모든 이유가 그 5분을 위한 준비인 것 같았다. 세탁실 조종 컴퓨터의 작은 화면을 지켜 보고 있는 그 5분 동안 진영은 자신이 발견한 이상한 세상을 다시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그 5분 동안 그 세상을 보고 나면, 생생하게 다시 머릿 속에 새로워진 기억 속의 “수사반장”을 떠올릴 수 있고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될 지 다시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다 “사회성 교육” 시간에 진영은 멋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교사가 원생들을 보고 너희들은 좋은 교육을 받으며 누구보다 훌륭한 환경에서 자라나고 있는 사람들인 만큼, 나중에 사회에서 다른 어린이들을 만난다고 해도 결코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거나 뭔가 손해 본 사람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는 시간 중이었다. 거기까지는 이미 훨씬 더 어릴 때부터 모든 원생들이 많이 듣던 이야기였다.

사실 꼭 그렇게 매번 강조해서 이야기해 주지 않아도, 진영 역시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육원이 진영에게 편안하고 좋은 곳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방은 따뜻하고 놀이는 재미있었고 이상한 선생님들도 조금 밖에 없었다. 화가 나면 다른 사람을 때리려는 원생 하나가 있어서 정말 싫었던 적이 있는데, 그 아이 역시 8살 때 “전문 교육”을 받아야 한다면서 다른 곳으로 울면서 가게 되었다. 그 후로는 더욱더 보육원은 편안했다.

“사회성 교육”에서 진영이 멋지게 생각한 대목은 그 다음에 나왔다. 교사는 그 후에, 옛날에는 가정이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한 가지 모습 밖에 없었지만, 요즘에는 다양한 모습의 가정이 다양하게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늘어 났고 그 때문에 우리 사회가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러면서, 다양한 형태로 어울려 사는 여러 가지 가정의 모습을 이야기했는데, 보호자 역할을 하는 보호 로봇과 함께 어린이가 살아 가는 가정도 있다는 이야기를 잠깐 예시 중에서 한번 언급했다.

교사는 그 내용을 특별히 강조 하지도 않았고, 길게 설명하지도 않았다. 비슷한 이야기가 다른 수업시간에 몇 번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진영의 머릿속으로 그 이야기가 확 깊게 들어 왔다. 보호 로봇. 보호 로봇! “수사반장”의 형사가 무심코 범인이 흘린 말 중에 단서를 잡아 채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보호 로봇을 구할 수 있다면, 진영은 그 보호 로봇과 함께 사는 가정을 이루겠다고 신청할 수 있다.

로봇. 로봇만 구하면, 보육원 바깥에 나가서 따로 살 수 있고, 그러면 영상을 마음대로 볼 수 있다. “수사반장” 다음 회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진영은 다음 시간에 당장 수업용 컴퓨터를 이용해서 검색해 보았다. 어린이 보호 면허를 얻을 수 있는 로봇 중에 최저가인 로봇. 요즘 유행하는 “댄싱 해커”를 닮은 귀여운 모양의 로봇이 나왔다. 하지만 그조차도 값은 너무 비쌌다. 역시 황당한 생각인가 싶어 또 한 이틀 축 쳐져 지냈다.

그러다가 옆 침대에서 자는 원생이 지난번 소풍 때 시장 구경 갔을 때 중고품으로 산 나비 인형을 날리며 노는 것을 보았다. 그 덕분에 진영은 드디어 이 모든 것을 헤쳐서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저 목표로 향해 뻗어 있는 한 줄기의 길을 찾아 내게 되었다. 그 길은 싸구려 중고품의 길이었다.

다음날, 틈이 나는 시간을 모두 다 써서 진영은 온갖 중고 로봇 거래 웹사이트들을 검색했다. 중고 로봇 중에는 두 달 정도 보육원에서 나오는 용돈만 모으면 살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싼 로봇도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소개 영상을 보면, 그런 로봇은 너무 낡아서 작동이 안 되어 부품으로 분해해서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얼핏 보기에도 이상하게 오동작하는 로봇 정도였다. 아예 어린이 보호 면허를 받을 수 있는 운영체제를 설치할 수 없을 정도로 기능이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반대로, 시속 3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고 필요할 때는 날아 오를 수 있으며 레이저 광선 발사 기능까지 갖춘 로봇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은 중고품이라도 너무나 비쌌다. 진영이 가격을 정확히 비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보육원의 방 몇 개를 잘라다 팔아도 못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전국의 싸구려 로봇들을 뒤지고 뒤져서 마침내 진영이 찾아낸 것은 근처의 백제쇼핑몰이라는 곳에 입주한 중고 거래상이었다. 그곳에는 4026형 로봇 구형 제품이 한 대 있었다. 당장 진영이 구하기에 가격은 벅찬 액수였다. 하지만 그 숫자는 그럭저럭 머릿 속에서 쉽게 더하고 빼면서 가늠해 볼 수 있는 숫자이기도 했다. 어린이 보호 면허 기능을 간신히 갖춘 구형 로봇이었지만 작동 영상을 보니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오래되기는 정말 오래되어 보였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무릎 관절 아래에는 붕대처럼 검은색 테이프를 감고 있기도 했다.

“이거 관절 다 망가졌나 보네. 4000대 로봇은 너무 오래되어서 관절이 안 맞으면 무게 중심이 어긋나서 움직일 때 마다 진동이 나서 막 덜덜덜덜 하거든. 그래서 관절 움직이는 부위에 작은 무게 추를 테이프로 붙여 놓는단 말이야. 이것도 그렇게 해 놓은 거 보니 엄청 오래된 거네. 이런 거 못 써.”

로봇에 대해서 잘 알아서 생활 보조 로봇 산업 특기생으로 상급 학교에 진학할 것 같다던 상급생은 진영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다.

작동 영상을 볼 때만해도 가볍게 검은 테이프를 감아 놓은 것이 무슨 큰 영향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보니, 테이프 감아 놓은 곳은 뭘 덕지덕지 붙여 놓아서 대충 수리해서 쓰고 있다는 점이 과연 눈에 뜨였다. 다리 관절이 움직일 때마다 그 부분이 달칵거리는 것이 보였다. 낡고 못나 보였다.

그렇지만 진영은 이미 이 고물 로봇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비슷한 가격, 비슷한 성능의 다른 로봇을 봐도 이 로봇만큼 적당해 보이지는 않았다. 저렴한 로봇들 중에는 얼굴 표정 표현을 위해서 얼굴 자리에 화면을 붙여 놓은 것들이 많았는데, 이 로봇은 얼굴 부분에 눈 모양으로 전등이 둘 달려 있는 옛날 방식 설계였다. 그래서 표정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표정이 없는 로봇이다 보니 진영은 자신이 상상한 로봇의 성격과 태도를 상상해야만 했다. 진영은 전등 두 개와 스피커 마이크가 달려 있는 머리 부분을 보고 여러 가지 표정을 떠올려 보았다. 며칠이 지나자 한 번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로봇을 진영은 친근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 외에도 이 로봇에는 다른 장점도 몇 가지 더 있었다. 예를 들어, 백제쇼핑몰에서 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백제쇼핑몰이라면 가끔 소풍날 같은 때에 구경 나가는 곳이었다. 그러면 진영은 그때 자유시간을 틈타서 그 중고 로봇 가게에 가서 이 로봇을 사면 된다.

어떤 원생들은 군것질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어떤 원생들은 서점에서 새 책을 살 것이다. 그럴 때, 진영은 모아 놓은 돈을 모두 털어서 로봇을 사면 되는 일이었다. 진영은 소풍 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쇼핑몰 같은 곳으로 가는 소풍을 상상해 보면 즐거웠다. 이런저런 자잘한 과자 가게 같은 곳으로 친한 친구들끼리 몇몇 무리 지어 흩어져서 이것저것 신기한 것을 사는 것. 그 기억이 떠오를 때, 이제 진영은 자신만 살짝 빠져 나가 로봇을 사는 모습을 쉽게 덧붙여 생각할 수 있었다. 자신의 로봇, 내 로봇이 생기는 순간은 너무 생생하게 진영의 머릿 속에 피어났다.

중고 로봇 가게에서 그 로봇을 발견한 바로 그 다음날 부터 진영은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선 보육원에서 매주 지급해 주는 용돈은 한 푼도 쓰지 않기로 했다. 원래 진영은 용돈을 톡톡 다 털어 쓰는 편은 아니었다. 시간이 남으면 무료 기본 프로그램 영상 중에 뭘 볼까 이리저리 찾아 보내며 그 시간을 소요하는 것이 진영의 여가생활이었다. 그러니 용돈을 많이 쓸 일도 없었다. 그렇지만 모인 용돈을 합하고, 다음 소풍 때까지 받을 모든 용돈전액을 전부 다 합친다고 해도, 로봇 값에는 한참 모자랐다.

그래서 진영은 돈을 더 벌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다른 원생들에게 뭔가를 해 주고 돈을 받는 방법이었다. 진영은 우선 10살 짜리 원생이면 반드시 매일 한 팩씩 먹게 되어 있는 우유나 영양 음료를 대신 먹어 주는 사업을 생각했다. 동료 원생 중에는 그 우유를 맛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 먹기 싫어하는 애들이 제법 있었다. 진영은 도대체 그걸 왜 싫어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뭔가를 의무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싫어서 먹기 싫어하는 원생도 있는 듯 싶었다.

이유야 무엇이건, 그런 원생이 보이면 진영은 접근해서 얼마를 주면 자신이 대신 먹어 주겠다고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원생 중에 둘의 우유를 먹고 나서 계산을 해보니, 이런 식으로 10살 짜리 원생들 중에 우유 먹기 싫어하는 원생들 시장을 전부다 독점하는데 성공하면 금새 로봇 살 돈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영은 드디어 로봇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좋아했다. 진영은 입에 묻은 우유를 닦으며 커다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진영의 자신의 사업 확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열심히 우유를 먹어 봐도 다섯 팩 이상은 먹기 어렵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자신은 우유를 잘 먹고,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팩을 마시다 보면 배가 불러서 아무리 맛있다고 생각해도 못 먹는 한계가 온다는 사실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사실 네 팩만 먹어도 다섯 팩 째는 먹기 싫어졌다. 진영은 로봇의 모습을 생각하며 다섯 팩 째는 겨우 참고 마시는 형편이었다. 결국 진영은 하루 다섯팩씩 우유를 먹는 것이 한계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조차 오래 이어나갈 수는 없었다. 진영의 사업을 따라 하는 다른 원생들이 몇몇 더 생겨나자, 보육원 교사들은 이것을 문제로 생각하게 되었다. 보육원 교사들은 자기 우유나 영양 음료를 먹지 않고 다른 원생들에게 먹어 달라고 하는 것은 규칙 위반이라고 결정하게 되었다. 교사들의 단속이 시작되자, 진영은 사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진영은 자신이 구상한 사업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나름대로 돌아 보려고 했다.

“진영이가 돈 받고 우유 대신 마셔 준다고 하니까, 다른 우유 좋아하는 애들도 다 돈 받고 우유 대신 마셔 준대.”

과거의 고객이 이제 다시 억지로 우유를 먹어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탄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진영은 원인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진영이 생각하기에 우유 대신 마셔 주기 사업의 문제점은, 꼭 자신이 아니라도 우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그 사람들도 같이 좋다고 같은 사업을 하게 된다는데 있었다. 누군가 즐겁게, 기꺼이 일을 해 줄 수 있는 것을 사업으로 하면, 금새 그런 사업은 퍼지고, 알려진다. 그렇다면, 남들이 하지 않을 만한 일, 그런 일을 하는 것은 괴로운 일, 하기 싫은 일을 사업으로 해야하지 않는가.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진영은 이제 맛있는 반찬을 돈을 받고 파는 일을 하게 되었다. 식사 시간마다 나오는 음식 중에 보통 한 두 가지 정도는 맛 있는 반찬이 있다. 이런 반찬은 서로 더 많이 먹고 싶어해서 그 양이 제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진영은 그런 반찬을 먹지 않고 다른 원생에게 팔아 보려고 했다. 맛 있는 반찬을 특히 많이 밝히는 원생들이 몇몇 있다는 사실을 진영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원생을 포섭한다면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일단은 성공이었다. 고객은 몇 생겨났고, 진영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사업에도 문제는 있었다. 팔 수 있는 제품의 공급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결정적인 문제였다. 진영은 자기 몫으로 나오는 맛 있는 반찬을 하나도 먹지 않고 모조리 다 다른 원생들에게 팔았지만, 결국 1인분 분량일 뿐이었다. 세 사람 정도에게 나누어 팔고 나면 더 이상 팔 것이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돈을 내고서까지 더 먹고 싶은 반찬이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한편 애초에 보육원이 급식은 넉넉하게 해 주는 편이었기에, 나눠 주는 음식 분량을 먹고 나면 조금 아쉽기는 해도 적지는 않은 양으로 준다는 점도 문제였다. 어지간히 탐욕스러운 원생이 아닌 다음에야, 돈 주고 그것을 더 사 먹고 싶어 하는 원생들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풍 날짜까지 다시 계산을 해 보니 이 정도로 돈을 벌어서는 결코 목표로 하는 로봇 가격을 다 모을 수 없다는 것을 진영은 깨달았다. 큰 숫자를 헤아려 곱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몇 번씩이나 계산이 틀린 끝에 얻은 결론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예측 결과는 더 어두운 느낌이었다.

진영은 다른 방법을 더 찾아야 했다. 하지만 예로부터 누구에게든 좋은 생각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 법이다. 어린이들이 돈 버는 내용을 다루는 옛날 동화 같은 것을 찾아 봤지만, 구두를 닦는다거나 신문을 판다는 이야기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현실성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읽는 세상이니 신문을 팔 수도 없었고, 원생들의 신발은 세탁실에서 알아서 처리해 주니 구두를 닦는 것도 일거리가 되지 않았다. 교사들 중에는 가끔 구두를 닦을 만한 사람이 있을 만했지만 사람 수는 작았고, 보육원 교사들이 원생들을 개인 잡무에 활용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했다가는 괜히 “심층 상담”에나 불려갈 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진영은 자잘한 장사거리라도 찾아야 했다. 기숙사 3층까지 올라 가는 것이 힘들다는 다른 원생을 업어 주는 일을 하는가 하면, 머리 감기 귀찮다는 원생의 머리를 대신 감겨 주는 일을 제안하기도 했다.

반드시 자기 스스로 하도록 규칙이 정해져 있는 방청소는 대신 해 준다고 나설 수 없었지만, 자기 방에 귀신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하급생에게 인터넷에서 찾아낸 귀신 쫓는 정화의 의식을 치러주는 것은 할 수 있었다. 진영은 원생들이 귀하게 생각하는 투구풍뎅이 같은 것을 숲에서 잡아다 팔기도 했고, 네잎 클로버를 뜯어서 팔기도 했다. 때문에 진영은 벌레들이 자주 보이는 햇빛이 약한 새벽시간에 일찍 숲에 나가 매일 한참을 돌아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영은 뭐든 다른 원생들이 힘들어 하는 것만 있으면 “돈 주면 내가 대신 해줄께”라고 나서는 원생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진영의 돈은 조금씩 더 불어 났다. 돈이 모일 때 마다 진영은 기뻐했다. 이런 식이라면 로봇을 사고, 로봇과 함께 보육원 바깥에서 사는 것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아침 이슬이 발목에 튀는 숲길을 걷다가 보육원 울타리를 보면, 그 울타리 바깥으로 넓게 펼쳐진 언덕 비탈 바깥을 로봇과 함께 달려 가는 장면을 생각했다. 로봇은 무릎이 약한 편이니까 내가 너무 빨리 달리지는 말아야지. 그런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렇지만 그 달 말에 다시 돈이 모인 것을 계산해 보니, 역시 로봇 가격에 가을 소풍까지 도달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 정도로 돈을 계속 모은다면 로봇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몇 년은 걸릴 것 같았다. 그 정도 시간이 흐른다면, 아무리 찾는 사람 없는 고물 로봇이라도 누가 사 갈지도 모른다. 분해해서 부품만 뜯어서 재활용하려는 사람이 사갈 지도 모르고, 아예 껍데기를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활용하려는 수거 업자가 갖고 갈지도 모른다.

실망한 진영은 다시 로봇 판매 영상을 돌려 보았다. 다시 보니, 더 좋아 보이는 로봇이었다. 너무 크지 않은 크기라 특히 어린이를 돌보아 주는 역할에 적당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이 어떤 목소리로 말할까 괜히 짐작도 해 보았다. 모습이 옛날 영화 속 로봇 같으니까, 목소리도 옛날 로봇 같은 딱딱한 말투일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 로봇을 못 구하게 된다는 것이 더 안타까웠다.

그렇게 아쉬워하면서 로봇에 대한 소개 내용을 보다가, 진영은 로봇의 생활 방수 기능에 대한 설명을 다시 보게 되었다. “간단한 방수 기능이 있어서, 물놀이를 같이 하기는 어렵지만 낚시나 청소는 충분히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진영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낚시였다. 보육원이 인접해 있는 동산 기슭을 올라 돌아가면 작은 호수 하나가 있었다. 목요일 야외 활동시간에 자주 가는 곳이었는데, 아이들에게 낚시 체험을 하게 할 때도 있었다. 이 보육원의 원생들은 대체로 지루하게 긴 시간 기다려야 하는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에, 별로 인기는 없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진영은 이제 그 지루함을 견딜 의향이 있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야광 물고기”라고 부르는 밤에 빛을 내는 이상한 물고기가 있는데, 그것을 잡으면 돈을 받고 팔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 것이다. 하급생 중에 하나가 우연히 야광 물고기를 잡았을 때, 물통 속에 이틀 동안 넣어 두었다가 금요일 외출 시간에 보육원 바깥에 있는 횟집에 그것을 팔았더니 돈을 주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진영은 그 하급생을 찾아 가서, 그 횟집이 어디에 있으며, 돈을 얼마나 주더냐 하는 것을 캐 물었다. 하급생은 다그쳐 묻는 것을 무섭게 여겨서 나중에는 울먹울먹하였으므로, 진영은 그 원생을 달래주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물고기를 잡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한 번 실험해서 깨달은 진영은, 앞으로 취미 생활 시간과 야외 활동 시간에 대한 계획을 모조리 “낚시”로 적어 냈다.

낚시에 관심을 갖는 어린이는 극히 드물었고 보통 한 두 번 경험해 보면 그만두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에, 보육원 교사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떤 교사들은 진영이 낚시를 담당하는 교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 추측하기도 했지만, 진영을 유심히 관찰한 그 교사는 그런 것 같지도 않다는 결론을 공유해 주었다.

진영은 대단히 성실한 낚시꾼이었다. 정해진 시간을 모두 투자했으며, 낚시 담당 교사가 알려주는 모든 방법을 꿋꿋하고도 정확하게 실천했다.

“낚시대를 보면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거지. 이런저런 세상 사는 생각, 어떻게 사는 게 맞는 지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거야.”

낚시 담당 교사가 그렇게 말해주었을 때, 진영은 그런 생각하는 것도 낚시를 잘 할 수 있는 요령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세상 사는 생각”이라는 제목으로 어떤 작가가 신문사 웹사이트에 게재하던 잡다한 수필 같은 것을 다운로드해다가 낚시를 기다리는 동안 정신을 집중해서 매번 열심히 읽기도 했다.

진영은 시간이 남으면 변신 외계인이 나오는 애니매이션 대신에 낚시 방송을 항상 보면서, 뭔가를 계속 궁리하고 연구하기도 했다. 진영은 이윽고 낚시 방송의 통발을 보고, 물 속에 넣어두면 물고기를 함정으로 끌어 들여 붙잡을 수 있는 간단한 장치를 만들기도 했다.

보육원 교사들은 진영이 지나치게 혼자서만 낚시에 빠져 드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교사들은 진영이 다른 원생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원생들과 어울릴 수 없는 다른 문제가 있을까 걱정했고, 때문에 진영에게 자꾸만 자상한 목소리로 말을 걸며 “오늘 이런저런 이야기 좀 할까?”라고 말을 꺼내기도 했다. 진영에게는 이 모든 일이 대단히 귀찮았고, 무엇보다 돈을 벌 시간을 빼앗기게 되는 일이었다. 그 근본 원인을 눈치 챈 진영은 친한 원생들 몇몇에게 부탁해서 돌아가면서 잠깐씩만 낚시 하는 데에 왔다 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따돌림 당한 것은 아니라는 티를 내달라는 것이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교사들은 큰 문제는 별로 없겠거니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긴 시간을 낚시 대 앞에서만 보내는 진영을 보고, 보육원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 같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무슨 사고가 생길지 모르잖아요. 혹시 진영이가 너무 푹 빠져서 호수에 안전선 너머까지 걸어 들어 갈 지도 모르고요.”
“그러면 진영이가 갈 때마다, 안전 드론으로 호수 쪽에서도 매번 살펴 보도록 합시다.”
“진영이 낚시 말고 여럿이서 같이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합창단 같은데 들도록 한번 권해 보면 어떨까요?”
“워낙에 낚시를 좋아하니까, 상급생이라도 한 두 명 짝지워 주어서 그물로 여럿이서 물고기 잡는 것을 하도록 할 수는 없을까요?”

그러나 사실 진영은 그 모든 시간 동안 외롭다는 느낌은 조금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통발을 설치 하거나, 낚시대를 던지는 동안, 진영은 로봇이 같이 서서 일을 도와 주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런 작업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생활 방수 기능이 있는 로봇이라고 하지 않는가. 비록 구형 로봇이라고 하지만, 적외선 영상 분석 소프트웨어를 새로 설치하면 물 속에 있는 물고기의 모습을 감지해서 알려 주는 기능 같은 것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저 쪽에 큰 물고기가 있다, 저 쪽에 물고기 떼가 있다고 로봇이 손가락으로 가리켜 알려 줄 것이다. 어쩌면 호수에 이상한 괴물이 숨어 있고, 보름달이 뜨는 날 자정마다 나온다는 떠도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밝혀 줄 지도 모른다.

호수가 있는 기슭편에서 호수 너머 저 멀리 도시 중심 쪽을 바라 보면, 높은 건물들과 많은 집들이 가득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산이 보였다. 구름이 떠 있는 하늘 저편으로 산 뒤에는 또 다른 도시가 있겠거니 싶었다. 진영은 로봇과 함께 보육원을 나가게 되면, 저 넓은 세상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 없이 혼자서 도시의 복잡한 거리를 산책하고, 저 산을 올라 반대편으로 건너가 보면 무슨 기분이 들까. 로봇이 길을 잘 알려 줄 수 있을까. 다른 도시에도 낚시할 수 있는 호수나, 투구풍뎅이를 잡을 수 있는 숲이 있을까.

가을이 다가 왔을 때, 진영은 다른 원생들에게 소풍 장소를 백제쇼핑몰로 하자고 설득하러 다녀야 했다. 보육원은 단체 외출 활동이나 소풍 같은 행사가 있을 때, 대체로 원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다수결로 결정을 해서 장소를 선택했다. 진영과 같은 저학년 원생들은 교사들이 정해 주는 두 세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 정도였지만, 그래도 다수결에서 백제쇼핑몰 대신에 물놀이 체험관이나 스페이스타워 같은 곳으로 가자는 결론이 내려지면 그것을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때문에 진영은 백제쇼핑몰의 장점을 이것저것 조사해서 생각이 다른 원생들에게 설명하고 다녔다. “백제쇼핑몰은 인도어와 아웃도어가 결합된 신개념 복합 쇼핑 디스트릭트야. 대단하지 않아?” “백제쇼핑몰은 패밀리 프렌들리 스팟이래.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게 정말 많다는 뜻이지.” 진영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데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원생들 몇몇을 백제쇼핑몰 편으로 굳어지게 할 수는 있었다.

마지막으로 진영은 쇼핑몰의 자동 계산 컴퓨터에 동전을 빠르게 집어 넣는 연습을 했다. 용돈을 받은 것은 용돈 지급 카드의 계좌로 입금되기 때문에 바로 쉽게 결제할 수 있었지만,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하고 받은 돈 중에는 동전으로 모은 것도 많았다. 특히 금요일 외출 때 횟집에 야광물고기를 팔고 얻은 돈은 동전이나 액수가 작은 지폐로 받은 것들이 많았는데, 횟집의 자동 계산 컴퓨터에는 고액권 교환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더 큰 액수의 지폐로 바꿀 수가 없었다. 은행에 가서 돈을 교환하면 간단했겠지만, 금요일 외출 지역에는 ATM이 설치된 곳만 몇 있었을 뿐 은행은 없었다.

그래서 진영에게는 잡다한 여러 가지 동전과 지폐들이 여러 뭉치 모여 있었다. 자동 계산 컴퓨터는 2분 안에 결제가 완료되지 않으면 다시 첫 화면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영은 2분 안에 그 모든 돈을 기계에 다 집어 넣어야만 거래를 할 수 있었다.

백제쇼핑몰로 가을 소풍 장소가 정해지고, 결국 보육원 버스를 타고 원생들이 모두 그곳에 도착했을 때, 진영은 긴장감 때문에 손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우선 마음껏 돌아 다니면서 놀고요. 그리고 꼭 시간 맞춰서 점심 먹으러 오세요. 점심 못 먹으면 안 되니까 군것질 너무 많이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교사는 태평하게 말했고, 원생들은 높은 소리로 다같이 “예”라고 대다하더니 쇼핑몰 입구가 흔들흔들할 정도로 저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스물스물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진영은 자유시간이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인터넷으로 지도를 살펴 보면서 방향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게가 있는 곳은 잘 알고 있었다. 뛰다 보니까 숨이 찼지만, 진영은 “조금만 더 뛰고 조금만 더 참아 보고 도저히 못 참겠으면 그때 쉬자”라고 생각하면서 더 뛰었다. 그 못 참겠는 순간이 왔지만, “다섯 발짝만 더 뛰어 보고 그때 도저히 안 되겠으면 쉬자”라고 생각하면서 조금 더 뛰었고, 그것을 몇 번 더 반복했다.

망한 상점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조명이 좀 어두운 구역으로 들어서자, 그 귀퉁이에 있는 중고 로봇 가게가 보였다. 인터넷 화면으로 본 것보다 더 작아 보였지만, 모양은 너무 여러 번 많이 봐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숨을 몰아 쉬며 진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 섰다. 처음에는 숨이 차서 소리 내는 자기 소리만 들렸고 힘들다는 생각 때문에 잘 몰랐지만, 조금 시간이 흘러서 호흡이 가라 앉으니 그곳은 아주 조용한 곳이었다. 찾는 사람이 없는 곳인데다가 무인 가게였는데, 낡은 로봇들만 진열대를 따라 번호에 맞춰 놓여 있으니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진영이 걸어갈 때마다 자동으로 컴퓨터가 조종하는 감시카메라가 움직이는 작은 모터 소리만 들려 왔다.

그리고 진영은 그곳에 있는 모든 로봇 중에서 가장 가격이 싼 4026형 로봇 한 대 앞에 섰다. 무릎에 접착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바로 그 로봇이었다.

진영은 이 로봇이 몇 센티 미터인지 써 놓은 것을 보고, 보육원 방에서 30센티미터 짜리 자로 몇번 벽을 따라 표시를 해서 키가 어느 정도고 덩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본 적이 있었다. 만약에 로봇이 내 방에 서 있으면 창문 여기까지 오는 정도 크기겠거니, 진영은 그렇게 생각했고, 한 번 그렇게 생각한 후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볼 때 마다 그 생각을 했다. 그러니, 실제로 로봇을 보았을 때 느낀 느낌은 딱 그대로였다. 새로운 것을 보았다느 느낌 보다는, 그 동안 오래도록 있어야할 것이 곁에 없었는데 그것이 다시 찾아 왔다는 느낌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설레는 느낌과 흥분은 또 새롭고 신기한 것이어서, 절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진영이 이 로봇을 사겠다고 자동 계산 컴퓨터에 입력하자, 자동 계산 컴퓨터는 로봇에 전원을 넣고 기본 점검 프로그램을 가동해서 로봇이 정상이고 판매 가능 상태라는 점을 확인했다.

“결제해 주십시오.”

안내문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진영은 가방을 열고 안에 있는 돈뭉치들을 꺼낼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안내문이 나오자마자 진영은 연습해 두었던 대로 돈을 빠르게 컴퓨터에 집어 넣었다. 보육원에서 연습할 때 사용하던 매점 자동판매기와 돈을 넣는 곳의 높이가 약간 달라서 생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돈이 잘 들어가지 않거나 인식이 잘 안 되는 것 같으면 그때마다 조금씩 더 마음이 초조해졌다.

“금액이 부족합니다. 남은 금액을 결제해 주십시오.”

진영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가방 속에 있는 모든 돈을 다 넣고 기다렸지만 금액이 아주 약간 부족하다는 내용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진영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가방을 다시 잘 살펴보고 아예 까뒤집어서 흔들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남은 돈은 없었다. 모든 돈을 다 기계에 털어 넣은 상태였다.

왜 이렇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돈 계산을 잘못했나? 덧셈을 굉장히 길게 했어야 했으니까 계산이 틀렸을 수도 있기는 있겠지. 아니면 혹시 잃어버렸나? 가방 안에 어디에 동전 몇 개가 끼어 있는 것은 아닌가? 가방 안은 아까 다 봤잖아. 너무 빨리 한꺼번에 돈을 넣었기 때문에 기계가 인식 하는데 오류가 약간 일어 났나 싶기도 했다.

“금액이 부족합니다. 남은 금액을 결제해 주십시오.”

이유는 잘 알 수 없었고, 돈이 조금 부족하다는 사실만 머리를 퉁퉁 때렸다. 돈이 부족하다. 돈이 부족하다. 그 말만 몸 속에 퍼져 나가서 피 대신에 온 몸을 빙빙도는 기분이었다.

“금액이 왜 부족해? 왜, 금액이 부족해.”

진영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무표정한 로봇이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진영은 눈물이 저절로 흘러 나오는 것을 느꼈다. 한번 눈물이 솟으며 얼굴이 우는 표정으로 변한 것을 느끼자, 그만 긴긴 시간 오래 오래 참아 왔던 울음이 확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중고 로봇들 사이에 둘러 쌓인 채로 우두커니 서서 우는 진영의 소리는 가게 안에 퍼져 나갔다. 울어 본다고 한들, 그저 떼를 쓰며 운다고 누가 와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세상도 아니었다. 진영은 이제 돌아가는 수 밖에 없나, 너무 아깝다, 너무 아깝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때, 진영 앞에 서 있던 로봇은 어린이의 울음 소리를 감지하면서, 어린이 보호 프로그램의 긴급 구조 기능이 작동했다.

“어린이 보호 면허에 따른 동작을 시작합니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인가요?”

진영이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그 말투와 목소리였다. 진영이 대답했다.

“돈이, 돈이 모자라요.”

로봇은 주변을 살펴 보고 주위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했다. 로봇이 다시 말했다.

“탐색을 시작합니다.”

진영이 여전히 울고 있는 중에 로봇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사용 가능한 자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진영은 로봇이 내민 다리를 보았다. 무릎 관절에 붙어 있는 검은 접착테이프가 보였다. 접착테이프 안 쪽에는 검고 동그란 추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진영은 그 테이프를 뜯어 보았다. 손을 내밀어 테이프 끝트머리를 찾아 잡고, 몇 년 동안 붙어 있어서 먼지가 가장자리에 묻어 있는 그것을 떼어 냈다. 울고 있던 것을 몇 번이고 닦았던 손이라 손등은 다 젖어 있었다. 그 테이프 안에는 무릎 관절에 매다는 추로 쓰기 위해 넣어 둔 동전 두 개가 있었다.

동전 두 개를 집어 넣자, 진영은 자신의 이름으로 즉시 로봇을 등록할 수 있었다. 진영은 로봇의 통신 기능을 이용해서 바로 “보호자 로봇에 의한 어린이 세대” 신청이라는 것을 접수시켰다. 정확히 어떤 내용을 어디에 신고하고 접수해야 하는 것인지 몰라서, 진영은 로봇과 한참 대화를 해야 했는데, 로봇은 말을 잘 알아 듣는 편이었다.

로봇과 이런저런 온갖 잡담을 나누면서 진영이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후, 파견된 경찰 두 사람이 찾아 왔다. 신청이 접수된 것이었다. 경찰은 진영과 로봇을 데리고 다시 보육원 교사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갔다. 그들은 보육원 교사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진영은 로봇과 함께 경찰차를 타고 경찰서로 가게 되었다.

경찰서 내부 풍경은 진영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그렇지만, 오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다른 경찰들 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경찰 한 사람 앞으로 불려가 앉았다. 진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반장님이신가요?”
“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어린이 청소년 긴급지원반 반장이야.”

경찰과의 대화를 마치자, 바로 그날 저녁으로 진영과 로봇은 고층 아파트 구역에 있는 공공 임대 주택 한 곳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그곳이 당분간 진영이 살게 될 집이었다.

경찰들이 떠나가고, 진영이 로봇과 둘만 남게 되자 문득 집안은 대단히 조용하게 느껴졌다.

잠 잘 시간이 되어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있으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깐 그러는 것 같더니, 멀리서 누군가 소리지르는 소리, 자동차가 거세게 달리는 소리 같은 소음이 연기가 흩어지는 것처럼 덧없이 들려 왔다.

새로운 곳에 떨어져서 혼자 지내게 된 진영에게 이 모든 것이 아주 이상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갑자기 세상이 너무 지나치게 넓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르는 사람들이 어느 곳이나 사방에 가득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유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달빛과 도시 전등 불빛이 비치는 창가에 누워 있는 기분이 조금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아무 영상이든 볼 수 있지만, 지금 당장은 무슨 재밌는 TV프로그램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잠에 들기 어려우신가요?”
“아니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조금 더 있으면 잘 수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로봇이 묻자, 진영이 대답했다.

“제가 노래 불러 드릴까요?”
“네.”

진영이 대답하자, 로봇은 자기 목소리로 “빠라바라빠라바라바-”하고 “수사반장” 주제곡을 불러서 흥얼거렸다. 진영은 누워서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웃게 되었고, 곧 그것을 따라 불렀다.

— 2018년, 회현동에서

댓글 6
  • No Profile
    너울 18.11.01 00:50 댓글

    뭔가 가혹한 반전이 있을 거 같아 마음을 추스리면서 읽었는데 참 동화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최근에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가 갑자기 트위터 수면에 떠올라 현실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실제로 그렇죠), 아이가 머리를 굴려서 해낸 사업들이 정말 미래 세계의 아이가 할 법한 일이라 고까운 생각이 들지 않고 기분이 좋네요.

  • 너울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8.11.01 08:18 댓글

    진작에 써 두었던 글이라, 열두살에 부자가 된 키라 와 마침 맞아 떨어지게 될 줄은 또 몰랐네요. 이상한 우연입니다. 기분 좋게 읽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 No Profile
    마빗 18.11.05 19:12 댓글

    가슴 한구석이 알싸하고 편안해지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감사합니다.

  • 마빗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8.11.05 20:59 댓글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밝고 상쾌한 느낌으로 써 보려고 했는데 어느정도 엇비슷하게 된 듯하여 기쁩니다.

  • No Profile
    슴컹크 18.11.14 13:58 댓글

    마지막에 따뜻한 결말이라서 눈물이 납니다. 진영이에게 행복한 결말을 주셔서 고마워요, 작가님.

  • 슴컹크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8.11.14 21:50 댓글

    오래간만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결말처리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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