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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은 거울에 투고된 후 편집부의 검토를 거쳐 초청되었습니다.)

코로나 라임

이재호

“30분만 있으면 진정한 자유를 만끽 할 수 있습니다. 자, 여러분 힘내세요.”

디스크 자키가 유쾌한 듯 지껄였다.

경식의 여압복은 땀이 흥건했지만 그 소리를 들으니 짜증이 좀 덜했다.

“코로나 라임을 틀어줘.”

경식이 디스크 자키에게 말했다. 비록 작업장에서 수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디스크 자키는 그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주민들을 부리는 위치에 있었지만 가끔은 기가 막히게 비위를 잘 맞추었다.

특히 람브린 위성의 개기일식이 있을 때면 더더욱 그랬다. 흥을 돋우는 멘트를 날리거나 인기 음악을 틀어 주는 등의 과외 활동이 그에 해당 되었다.

“내 머릿속으로만 말고 모두의 귀로 들을 수 있게, 알지?”

“당연하지! 청각을 통한 날 것 그대로! 그 정도야 기본 아니겠습니까?”

웬일인지 오늘은 굉장한 서비스정신을 발휘하고 있군. 경석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평소 괄괄한 자키의 성격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수 년간 이 구역의 지배인, 공식적 직책은 집정관 이었지만 그는 사람들을 다루는 법에 꽤 능통했다. 자키는 이따금 감투 따위는 벗어두고 자길 그냥 ‘친구’ 정도로 여겨 달라고 말하곤 했다.

사실 그의 본명을 아는 이도 바우타 뒤의 진모습을 본 사람도 거의 없었다. 큰 체구에 활달하며 성기진 성격에 가끔 흥이 나면 떠나갈 듯 음악을 신나게 틀어 주는 집정관이라는 것 뿐. 사람들은 그를 그냥 ‘디스크 자키’ 또는 ‘자키’라 불렀다. 그건 또한 그가 원한 것이기도 했다.

“30분만 있으면 이놈의 바우타 가면을 벗어버릴 수 있겠군. 정말 오랜만이야 일년만이라니까!”

샘 카니지가 어깨 춤이 절로 나는지 흥겨운 듯 지껄였다.

“정확히는 28분 30초 남았다네. 자 여러분의 철학자 친구 경식께서 청한 코로나 라임을 띄워 드립니다. 텔레파시가 아닌 살아 있는 음파 그대로 입니다. 귀로 들으세요, 한껏 즐기시길!”

디스크 자키는 어디서 배웠는지 그 옛날 지구의 디제이가 하던 우스꽝스러운 어투를 흉내 내었다.

이윽고 잔잔하면서 조용하고 기분 좋으면서도 통통거리는 운율과 리듬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실로 간만에 귀로 듣는 소리이다. 비록 전자기적 신호를 음파로 변형시키는 구식 장치를 오랜만에 쓰게 되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람브린에서의 우주이민 생활을 통틀어 이 순간이 최고다. 장담컨대 그건 이주민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말초 신경을 통한 감각의 안정과 여유 그리고 정신적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이 순간. 경식은 크레인 조종석에 앉아서 몸을 약간 뒤로 기대어 젖힌 채 허공에다 손가락을 몇 번 까딱거려 보았다.

이제 곧 쌍성위성의 개기일식이 시작되면 여압복을 벗고 지난 일년간 자아를 가두어 왔던 바우타라는 철가면을 잠시나마 얼굴에서 떼어 버릴 수 있다. 바우타의 속박에서 벗어날 것을 떠올리면, 중력을 벗어난 깃털처럼 가벼운 자유로움과 희열과 낭만을 타고 조종석 위로 둥실 떠오를 것만 같았다. 이런 느낌.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특히 이 척박한 이주행성 주민에게는 꿀맛 — 먹어본 적은 없지만 — 같은 순간이다. 이게 다 특이한 자연현상 덕분이지 않는가.

람브린 항성계의 정신 착란 현상은 신기하게도 쌍성위성의 개기일식 때는 힘을 잃는다. 왜 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쨌던 그건 낯선 이민 행성에서의 최고의 묘미였다. 비록 모두들 바우타가 없었다면, 람브린 항성계 특유의 정신 착란 작용으로 이미 완전히 미쳐버려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혔을 테지만, 완전한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동안 만큼은 무거운 가면을 낯에서 벗어 던질 수 있다. 물론, 과거에 이런 현상을 알기 전, 즉 바우타가 발명되기 전 람브린은 저주 받은 행성이었다. ‘글자 그대로였어’ 그건 아버지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다.

경식이 이것 저것을 구름처럼 떠올리는 동안, 여기 저기에서 즐거운 흥성거림이 뇌파 송수신기를타고 흘렀다. 수백명이 넘는 아카디아(람브린 북반구의 제일 큰 대륙)구역의 주민들은 비록 서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각자의 영역에서 홀로 또는 가족끼리 조를 이루어 작업하며 거주하고 있었다. 경식은 뇌파송수신만으로도 아카디아 사람들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모두들 들떠 있다.

그리고 곧 있을 람브린의 쌍성위성 큐폴라 38의 코발트 빛 코로나와 그 뒤로 펼쳐지는 황홀한 빛을 내뿜는 페르세우스자리의 항성계를 떠올려 보았다. 낯에 고개를 내민 항성계는 자주색 코로나와 어우러져 황홀하리 만치 아름다울 것이다. 그걸 사랑하는 그의 부모님과 형제들과 더불어 즐겼다면 좋았을 텐데. 안할려고 했는데, 가족 생각을 하니 다시 마음이 무거워 졌다. 그들의 부재가 모두 자신의 탓 같았다. 척박한 이주행성에서 이런 자그만 선물도 누리지 못하셨었다니.

그는 귀 밑둥에 위치한 바우타 열림 단추를 만지려 하였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벗어버리리라. 하지만 여압복 바이저에 가린 손은 주위를 허무하게 맴돌 뿐이다. 충동적으로 굴어서는 안돼. 누군가 그에게 명령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실버드림(한가지 생각에 몰두하여 꿈속에 갇힌 것 같은 정신 증세, 주로 외계행성이나 우주 비행중에 발생하는 신경병리적 증세)은 누군가의 볼 맨 소리 덕분에 사라졌다.

“다른 지역은 일주일부터 코로나 축제한다고 법석을 떨던데 우린 이게 뭐람. 직전까지 죽도록 일이나 하고, 안 그래?”

이웃 구역의 샘이 툴툴거리듯 말했다. 이번에 샘은 디스크 자키의 허락도 없이 텔레파시가 아닌 자신의 혀를 움직거려 육성으로 내뱉었다. 스피커는 코로나 라임의 흥겨운 끝 후렴구와 샘의 짜증스런 목소리를 억지로 섞어가며 겨우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거야 누구보다 잘 알면서, 샘. 지금이 먼데인 수확철이쟎아. 더구나 우리 구역은 할당량을 아직 채우지도 못했어.”

경식이 샘을 다독이듯 말했다.

“그래도 적어도 한달전에는 알려줬어야지. 그랬다면 좋았을 것을 말이야.”

“그만 투덜거려 샘. 먼데인은 우리들의 피이자 빵이지 생명이요 람브린에서 인류를 생존시키는 진리라고. 내 말 뜻 알지? 아무리 일식 축제가 좋더라도, 먼데인을 앞설 순 없지. 오늘 같은 날에 일을 시켜서 미안하지만, 어떻든 간에 모두들 잠시 뒤에 타운홀에서 보시게나.”

디스크 자키는 능청스럽게 끼어들었고, 샘의 불평은 잦아들었다.


경식이 수확기를 멈추겠다는 생각을 하자 웅웅대는 거대한 굉음이 먼데인 숲 속으로 스멀스멀 숨어들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모든 것이 제대로 된 것을 확인하고 그는 좁은 수평 크레인의 조종실에서 내려왔다. 말이 수평 크레인이지 땅 위에서 수백 미터는 되는 높이의 크레인이 수직 수평으로 격자모양으로 수십평방킬로미터 미로처럼 뻗어 있었다. 멀리 인공위성에서 보면 거대한 바둑판 과도 같았다.

경식은 밖으로 향하는 통로에 이르러 아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발끝 밑으로 회초록의 먼데인 숲이 빽빽히 들어차 있다. 숲은 저기 멀리 산맥 자락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따금 서늘한 바람이 불어 몸통을 흔들었다. 어찌 보면 지척 난간에 서있는 느낌도 들었지만, 지구에 비하면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중력과 낮은 기압 때문에 그리 크게 높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크레인의 조종실에서 연결된 수평 엘리베이터가 덜컹 열리자 입구에는 1인승 콜벳이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 후 콜벳이 경식을 태우고 가뿐히 날아 올랐고, 경식은 콜벳 아래로 펼쳐지는 행성의 끝 없는 숲들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이놈의 행성에 우린 속아서 온 거란다. 이민자들에게는 장및빛 환상을 심어주고 사람들은 2.3광년 떨어진 이 행성에 80년 가까운 우주비행 끝에 도착 했었단다. 처음에는 세상 천지에 이렇게 아름다운 행성이 있었던가 했지. 그런데 그게 오래가지 않았다. 모두들 방문을 끌어 잠궜고 심지어는 가족끼리도 서로 격리시켰지. 이대로 끝나는 구나 자포자기 할 무렵, 바우타가 우리를 살렸어.’

“그 후로 우리 가족들은 진짜 열심히 살았었지. 살아남기 위해.” 경식이 저도 모르게 아버지가 하시던 말을 혼잣말로 되뇌였다. 문득 조종석 창에 스친 모습에 자신이 쓴 웃음을 짓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가끔 멋진 축제를 앞두고 과거의 세계에 빠져 버릴 때가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작은 비행선은 어느새 타운홀 상공에 와 있다.

이윽고 비행선이 가뿐히 내려 앉았고 경식은 투명한 지붕아래 거대한 버선코 모양의 처마가 정방형으로 솟아 있는 건물의 입구로 들어섰다.

이미 많은 주민들이 타운홀의 로비에 모여있었다. 게 중에는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낯익은 이웃들과 정겨운 친구들도 이미 여럿 와 있었다.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기분 좋은 음악이 흘러나왔고 흥겨웠다. 경식이 사람들과 서로 포옹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어 이게 누구야!”

샘 카니지의 검은색 무표정한 바우타가 고개를 까딱이며 경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아직 볼 수는 없었지만, 경식은 그가 웃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때 잘 지냈어?, 샘.”

“말도 마, 작업량이 얼마나 많았다고. 최근에는 너무 바빠서 잠잘 겨를도 없었다니까.”

샘의 투덜 거리는 듯한 말버릇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경식에게는 오히려 그런 자연스럽고 익숙한 모습이 좋았다. 가장 가까운 이웃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샘이기에 이렇게 다시 만나는 것은 친구 이상의 의미였다.

‘이웃 사촌’ 아니 친형! 그런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경식아, 근데 그거 알아 내가 어쩌다가 동굴을 발견했는데, 정말 딱이야! 일하기 싫을 때 숨어서 땡땡이 치기 딱 좋은 곳. 비상 식량도 챙겨 뒀다니까….”

경식은 자신을 향해 귓속말로 엉뚱한 농을 늘어 놓는 샘 카니지를 뒤로 하고는 아카디아 구역의 주민들을 휘둘러 보았다. 물론 잠시 후에 어둠 속에서라도 잠깐 진모습을 잠시 보겠지만. 모습이 어떻든 상관 없었다. 이웃으로서 경식은 이렇게 모일 때면 정겹게 느껴졌다. 모두들 척박한 행성에서의 개척자이지 람브린 행성의 시조라는 자부심이란 것이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아까 들었던 ‘코로나 라임’이 스피커에서 다시 흘러나왔다. 약간 쑥스러움을 느꼈는지 경식의 흰색 바우타로부터 멋적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녀석, 오늘 선곡 감각 끝내 주는데! 자꾸 틀어주는 걸 보면.”

샘이 팔짱을 끼고는 탁자에 다리를 쭉 뻗어 놓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지껄였다. 나름의 집정관에 대한 거만한 표현이랄까.

특히 개기일식을 앞둔 때면 타운 홀 로비에는 언제 준비했는지 코로나 맥주가 한 가득 테이블 위에 항상 올려져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서빙 휴머노이드들이 축제 준비를 위하여 이리저리 바쁘게 주민들 사이로 움직였다.

그때 서늘한 바람이 일더니 연단 위로 거구의 사나이가 연기와 함께 나타났다.

“저기 나타나셨군, 오즈의 마법사.”

샘 카니지가 경식에게 어깨 동무를 하고는 소리쳤다. 여기 저기에서 주민들이 사나이를 향해 휘파람을 불어대고, 박수를 쳐댔다. 긴 머리는 그의 가면을 야수의 갈기처럼 뒤덮고 있었다. 하지만 가면 뒤편의 그의 눈은 날카롭게 빛났다.

“숨마 쿰 라우데.” (여러분이 최고입니다)

모두들 그의 출현을 반기며 왁자지껄하게 웃어댔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위로 치켜들었다.

“루덱스 쿰.”

모두가 영웅이라는 상투적인 말이지만 열기는 더욱 끓어 올랐다. 그가 훌쩍 뛰어올라 더 높은 가운데 연단에 오르더니 좌중을 이리저리 훑어 보았다.

“여러분! 지구로부터 무려 2.3광년이나 떨어진 람브린 행성의 영웅 여러분! 이곳은 피로 물든 지구의 꿈이자 희망이자 위대한 행성입니다. 1,2세대가 그랬듯이 여기 우리 모두도 람브린을 지상낙원으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그날은 결국 올 것이고, 이제 임박했습니다! .”

그는 감격에 겨운 듯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오늘은 그 모든 것 마음의 짐들은 잠시 접어 두고 축제의 시간을 시작합시다!”

그의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동은 와 하는 함성으로 타운홀 전체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모두의 전율이 경식의 전두엽을 자극 시켰다.

“자 이제 여러분 고개를 들어 저 위의 큐폴라를 봅시다.”

디스크 자키는 검지 손가락을 들어올리더니 돔형 천정을 가리켰다. 그러자 투명한 반구체 위로 자주색의 하늘이 드러났고 작열하는 태양이 머리위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어 저기 봐봐 가려지고 있어, 가려지고 있다고.”

모두가 위를 쳐다보자 기묘한 장관이 펼쳐졌다.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검은 점은 조금씩 커지더니 자주색 태양의 양쪽 구석을 좀먹어 가득 삼켰다.


이윽고 하늘에는 코로나가 행성의 그림자 뒤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일순간 황홀한 광경에 넋을 잃었다. 자주색과 노란색이 뒤섞인 코로나는 모든 이의 영혼을 빨아 들일 듯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이젠 가면을 벗어도 되.”

“아무렴 맨눈으로 맨 얼굴로 볼 테야.”

수백 명의 사람들은 하나 둘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속박을 벗어 내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창백한 얼굴들이 푸르스름하게 드러났다. 경식은 흘끔 옆을 보았다. 어슴푸레 희미한 샘의 맨 얼굴도 드러났다.

정확히 12분의 여유가 있었다. 람브린 주의를 돌고 있는 다섯의 위성 중에 쌍성위성은 가장 크고 길게 그들의 그림자를 람브린 위로 드리웠다. 이번엔 특히 두 개의 위성 그림자가 연속으로 개기일식을 만든 덕분에 긴 시간을 제공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천문 현상의 경이로움에 빠져 조용하던 타운홀의 광장도 여기 저기서 가면을 벗은 민 낯의 사람들로 채워지자 시끌벅적 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것도 얼굴을 가면으로 감싸지 아니하고 맨얼굴로 호흡할 수 있다는 것과 친구들과 가족들 그리고 이웃들의 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간만에 누리는 특권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몇몇 감상에 젖은 주민들은 푸르스름한 빛에 드러난 가족, 친구 혹은 이웃들의 얼굴을 어루 만지거나 껴안기도 하였다.

그때 어느 쪽에선가 여성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여성은 일식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흥분을 감추지 못해 소리를 질러댔다. 경식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가끔 개기일식 때 무료함과 따분함을 과한 방식으로 날려버리려는 사람들 시도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여성의 소리는 점점 커져 비명으로 바뀌었다. 지나친 흥분 상태일까.

처음에는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공포가 사람들을 휩쓸었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경식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건 꿈일 거야 분명, 그럴 리가 없으니까.’

일식 중에는 바우타를 벗어도 안전하다. 그건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경식은 눈 앞의 광경들을 믿을 수 없었다.

입에 잔뜩 거품을 물고 눈이 뒤집힌 유난히 창백한 이웃 커크가 그의 이웃 샨다리아의 아름다웠던 얼굴을 뜯어 먹고 있었다. 마치 좀비처럼. 이미 샨다리아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었고 형체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모습에 충격을 받은 이는 토하기도 하였다. 누군가 나서서 말리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모두들 코로나에 정신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어떤 건장한 이웃이 먼저 나서 커크를 잡았지만 황소 같은 힘으로 그를 밀쳐 공중으로 내동댕이 치고 말았다.

이윽고 또 다른 비명소리, 다시 또 다른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에 나돌기 시작했다. 어느새 커크처럼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갑자기 정상 상태에서 돌변하더니 곁의 사람들의 얼굴과 목 그리고 손과 팔 다리를 인정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그게 아닐 거야.’ 경식은 다리가 마비 될 정도로 넋을 잃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누구는 자키가 어디있냐고 그를 찾아 외쳤지만 눈이 뒤집힌 이웃에게 애꿎게 희생될 뿐이었다. 연단 위의 자키는 어디에도 없었다. 급하게 도망을 간 것일까? 그때 괴물 같은 이웃이 그를 덮쳤고 경식은 쓰러졌다. 저항을 했지만 너무 센 완력에 바닥에서 꿈쩍도 할 수가 없었다. 경식은 나도 이젠 끝이구나 하고 눈을 감으려 했다.

그 순간 억샌 손이 그를 덮친 좀비 같은 이웃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이게 구원의 손길을 건냈다. 천정의 코로나를 배경으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샘 정말 고마워.”

“그건 나중에 하고, 당장 여기를 벗어나야 해 어서.”

둘은 어둠 속에서 전속력으로 달려 건물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상의 사람들을 쓰러뜨린 미처 버린 괴물과 같은 이들 수십 명이 떼를 지어 좇아왔다.

경식과 샘이 아까 개기일식 전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무리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더욱이 경식의 간이 비행정이 입구로부터 가까이 있었다. 그사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태양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자줏빛 여명 속에서 두 남자는 젖 먹던 힘을 다하여 죽도록 내달렸다.

가까스로 탑승하자마자 그들은 비행정을 문을 급히 걸어 잠그고 즉시 이륙시켰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던 것도 잠시, 못 보던 비행체가 뒤로 따라 붙고 있었다. 누군가 그들을 추격해 뒤따라왔던 것이다. 수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밀림에서 필사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비행을 수동으로 바꾸고 현수의 현란한 뇌파 조종 기술로 기체는 아래 위 좌우로 격하게 흔들거렸다. 겨우 따돌렸다 싶을 때,

일순간 쉭하는 소리가 머리 위를 스치며 갈랐다. 상대방이 격추 무기를 쓴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머리위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동체가 아래 위로 요동을 쳤다. 격심한 흔들거림 속에서 조종석에 앉은 경식의 표정이 이리저리 일그러졌다. 수동 뇌파조종간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비행선은 수백 미터 아래로 고꾸라졌다


경식은 번쩍 일어났다. 끔찍한 꿈을 꾸었었다. 이미 온몸이 땀에 젖어 흥건했다.

“여긴 어디지?”

굉장히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콜벳 안이었다. 조수석 뒤의 좁은 간이 침대에서 잠이 든 것 같았다. 샘이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벌써 깼어? 아직 새벽이야 눈 좀 붙이라고.”

“어떻게 된 거야? 타운홀에서 모두 개기일식을 봤던 것이 기억나, 그리곤…꿈을 꾸었어.머리가 띵하다 어떻게 된 거야?”

경식은 마치 망치로 얻어 맞은 듯 아픈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아, 정말 무서운 꿈을 꾼 것 같아.”

“그럴 만도 하지.” 맨 얼굴의 샘이 경식을 내려다 보며 다독이듯 말했다.

“그건 꿈이 아니야. 사실이었어. 그러니까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었던 걸.”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지? 거짓말이라고 말해줘.”

“그러고 싶지만, 말했잖아. 사실이야.” 샘의 얼굴에는 그 어떤 웃음기도 없었다. 샘이 이토록 진지한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경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도 여러 번을. 혼란스러움이 그를 엄습했다. 타운홀의 끔찍한 사건이 꿈속의 망상이 아니었다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예전에 말씀하셨던 그 람브린 정신 착란이란 것이 그 정도로 무서울 줄은 몰랐다. 이미 수많은 이주민들이 정신 착란에 서로서로 희생되었었다. 경식의 가족들을 희생시켰던 페르세우스계로부터 쏟아 지는 방사선은 정신 착란의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철가면이 개발되었고 먼데인을 재배하면서 람브린은 다시 평화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었었다. 그런데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난 것이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만하더라도 람브린은 지구와 거의 같은 크기와 대기 조성, 기온, 중력 그리고 풍부한 산소와 우거진 밀림 때문에 제2의 모행성(母行星)이라고 불리었지만, 정식 착란 작용로 수많은 초기 이민자들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람브린은 거의 1세기 동안 살고 싶어도 살수 없는 행성이 되어 인류의 뇌리에서 잊어졌다.

그런데 상황은 급반전 되었다. 바로 철가면, 즉 바우타가 발명 되면서부터였다. 철가면 또는 바우타라고 부르는 ‘양전자 간섭 중성미자 감하장치’는 지구의 천재 과학자 하이에크에 의해 발명되었다. 초끈입자인 립톤과 중력자 그리고 글루온 등을 적절히 조합하여 탄생시킨 바우타는 위대한 하늘의 선물이라고까지 추앙되었다. 그 뒤 지구의 이민자들은 얼굴에 두꺼운 철가면 같은 바우타를 착용한 채 행성의 자생식물이었던 ‘먼데인’을 경작하면서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집에 가지 않았어?”

“여기가 더 안전할 것 같아서.”

“여기가 어딘데?” 경식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 샘에게 물었다.

“아까 말했었잖아, 동굴을 발견했었다고. 거기야. 더구나 집에는 침입 흔적이 있었어.”

“침입?”

“응 그래, 너희집 내집 둘 다.”

“아무래도 우리 쫒기고 있는 것 같아.” 샘의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유의 장난기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샘의 표정이라니 경식에게 무척이나 생경했다.

“소리가 들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다른 구역의 집정관과 주민들에게 우리가 이번 사건을 모의 한 거로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어, 제길.”

샘이 눈을 감고는 미간을 지뿌렸다. 밖의 텔레파시 뇌파신호를 감지하려는 듯 하였다.

“뭐라고? 어쨰서?” 경식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겨우 살아남았는데, 우리가 범인 이라니. 잘못 되어도 한참 잘 못된 헛소리다. 경식이 분노에 겨워 소리를 치려고 하자, 샘이 그의 입을 틀어 막았다.

“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도 알아. 하지만, 지금 이순간은 그 어느 때 보다 냉정해져야 되. 자칫해서 나섰다가는 군대에게 격추 될 수 있어. 알잖아, 반란 행위는 즉각 사형이야. 그래서 비행선을 안전한 장소로 피신시켰지. 여긴 가장 먼데인이 밀집된 원시림 지하 동굴이야 모든 전파와 감시를 차단하기에 딱이지.”

그러고 보니 각종 전자장비는 꺼져있었다.

“당분간은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는 여기에 피신해 있어야 될 것 같아.”

그러고 보면 샘의 판단이 맞았다. 샘은 어릴 때부터 그의 이웃이기도 했고 가장 믿을 수 있는 똑똑한 친구였다. 샘은 사실 그보다는 나이가 많았다. 어떨 때는 그가 가족처럼 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까의 광폭의 상황에서 샘과 같이 탈 출할 수 있었 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경식은 그가 없었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어둠 속에서 경식은 다시 한번 샘을 바라 보았다. 그런데 무엇인가 이상했다.

“그런데 샘 바우타는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어떻게 멀쩡하지?”

“그건 너두 마찬가지일 걸….”

샘의 말에 흠칫 놀라 경식은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더듬었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부드러운 맨 얼굴의 피부와 눈, 코와 턱이 손끝이 느껴질 뿐이었다. 이제서야 알아채다니.

“분명 아까 일식은 끝났었지만 지금은 아닌데…단지 어둠때문이라면.”

“착란 증상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어. 개기일식을 제외하면 말이야.”

“그게 람브린 특유의 양전자 중성미자 간섭협상 때문이란 걸 모르지는 않아. 그런데 이렇게 멀쩡하다는 건 도무지 어둠 빼고는 잘….”

샘이 말을 잘랐다.

“우리가 과연 처음 일까?”

“무슨 말이야?”

“이 행성에서 우리처럼 이렇게 가면을 쓰지 않고도 멀쩡한 적이 있었느냐 말이지.”

부모님 세대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불문율이 있었다. 그건 람브린에서의 철가면에 관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모든 이들은 부모님에게서 혹은 선생들에게서 람브린의 환경과 정신착란 작용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모든 이들에게 철가면은 인류가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행성에서 살아남는 생명의 수단이었다. 그건 마치 우주공간에서 우주복의 존재와도 같았다.

갑자기 떠오르는 일이 있다. 경식이 어린 시절 먼데인 숲을 보려고 잠시 바우타를 벗었던 적이 있었다. 아주 잠깐. 몇 초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거친 손이 그의 얼굴에 닿기까지는. “절대 이 바우타를 벗어선 안 돼! 절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알겠니.” 유리 너머로 보이는 아버지의 눈빛은 강렬했다.

“그런데 말이야, 정말 솔직히 얘기하는 거니까 절대로 누구에게 얘기하면 안 돼.”

“알았어 무슨 얘기인데?”

“난 사실 몇 번 이런적이 있었어.”

“정말이야?” 경식이 깜짝 놀라 그를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그러나 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왜 나에게는 일러주지 않았어?”

“이럴 줄은 몰랐지. 그냥 혼자만 알고 있으려 했어. 그게 언제였더라. 뭘 잘 못 먹었는지 한 동안 복통에 시달린 적이 있었지. 도통 먹을 수가 없어서 거의 물만 일주일 넘게 먹었지. 그날따라 크레인이 고장 나서 로봇으로도 불가능해서 직접 올라가 고쳐야 했어. 그런데 너무 굶어 허기가 졌던 탓인지 발을 헛디뎠고 수백 미터 아래로 굴러 떨어졌어. 죽었구나 생각했거든. 그런데 눈을 떠 보니 멀쩡한 거였어. 아주 운이 좋게도 먼데인 나무가 날 살렸어. 우거진 나뭇가지 위였거든.

그런데, 얼굴이 무엇인가 허전했어. 맙소사, 철가면 없이 맨얼굴이었거야. 떨어지는 통에 그만 나뭇가지에 걸렸거나 해서 벗겨진 것 같았어. 그걸 찾으려 했지만 보지도 않았어. 아뿔싸, 정말 하늘이 노래지더군. 살았다 생각했는데 다 허사라니. 곧 정신착란으로 고통 받으며 죽겠구나 생각했지. 나뭇가지 위에서 발작을 일으키다 마저 추락을 다시 거듭해서 수풀더미에 처박히는 내 모습이 떠올랐어. 그 순간엔 나의 뛰어난 뇌파능력이고 뭐고 다 소용이 없었어. 잡목이 우거진 지구에서 수 광년 떨어진 람브린이라는 외계행성에서 이렇게 삶이 끝나는구나 하고 있었지. 그런데 웬걸 1분이 가도, 2분이 가도 10분이 가도 심지어 30분이 넘도록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단지 희박한 공기 덕분에 숨만 가빴지만 산소 마스크 없이도 견딜 정도였지.

기적이 일어난 거야. 약간 의심은 되었지만, 날듯이 기뻤지. 오히려 머리는 더 맑고 기운이 찼어. 원숭이라는 동물처럼 나는 나뭇가지를 잡고 경쾌하게 크레인으로 다시 올라왔지.그런데 특이한 게 뭔 줄 알아?”

“뭔데?”

“그 뒤로 안전을 위해서 다시 철가면을 썼지만 몇 번 다시 아무도 모르게, 뇌파 송수신기를 차단해놓고는 철가면을 벗었었어. 물론 아무 일도 없었지.”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그게 나도 신기해서, 또 되풀이해서 몇 번 더 실험을 해보았어. 그게 뭐였냐면.”

순간 갑작스런 굉음이 들려왔다. 샘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경식도 마찬가지였다. 경식은 엄청난 통증이 머릿속을 뒤흔들고 있음을 느꼈다.

“제길 신경전자폭탄을 터뜨린게 분명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와중에도 음악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코로나 라임이었다. 신경전자폭탄과 음악이라니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거 자네가 좋아하는 음악 아니었나?’

그건 자키의 뇌파였다. 그는 살아 있었던 것이다.

‘살려줘 우리를 제발.’ 경식이 고통에 겨워하며 자키에게 빌었다.

‘그전에 어떻게 그렇게 살아있는지 말해봐.’

‘뭘?’

‘자네 둘 다 가면 없이 말이야.’

‘나도 몰라, 제발 우릴 도와줘 우리는 여기.’

순간 샘이 시뻘건 얼굴로 경식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일단 이놈의 신경전자폭탄을 제거해달라고.’

경식이 자키에게 짜증스럽게 외쳤다.

‘나도 어쩔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다만 확실한 건 너희들이 어제 사건의 테러범으로 몰렸다는 거야. 내가 알고 싶은 건 너희들이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냐는 거야. 난 너희들을 돕고 싶어. 진심이야. 사실이 어떻게 되었든, 어서 기지로 돌아와 그래야 너흴 도울 수 있어.’

“다 거짓말이야. 절대 들어선 안 돼. 뇌파장치를 꺼봐. 정신을 집중시키고 외부의 모든 뇌파를 끊어버리라고.위치가 노출되면 안 돼.”

정신을 차려보니 샘 카니지가 경식의 멱살을 잡고 두 뺨을 흔들고 있었다.

“자키가 우리를 진짜 도우려는 것일 수 있잖아.” 겨우 몽롱한 상태에서 깨어난 경식이 대꾸했다.

“아니야, 저 녀석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어. 그리고 뇌파신호가 진짜 자키의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절대 믿어선 안 돼.”

하지만 경식의 정신감응능력은 샘정도는 아니었다. 샘은 여기에서도 으뜸의 정신능력을 소유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외부의 뇌파를 스스로 차단할 수가 있었지만, 경식은 그렇지 못했다.

놈들은 그들을 찾을 때까지 계속 신경전자폭탄 터뜨릴 것이다. 이렇게 있을 순 없었다. 그랬다간 샘도 위험에 빠질 것이다. 다행히 그사이 어느 정도 폭탄의 위력이 잦아 들었다. 하지만 또 다시 곧 다른 것이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하여야만 했다.

경식은 갑자기 비행선의 출구로 가더니 수동 개폐버튼을 더듬었다.

“그건 왜? 뭘 할려고.” 샘이 가까스로 따라와 경식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이미 눈치를 챈 것이다.

“우리 둘 다 잘못될 수 없어. 니 말이 맞다면 우리는 사냥감이 된 셈이야. 한 명이라도 살아야지.”

“그래서 어쩌려고? 이 상황에 잘 못 노출되면 둘 다 죽어! 알겠어?”

“아무것도 안 하다 당하는 것 보다 낫지. 그리고 살아남아서 밝혀야 해. 너네 부모님도 우리 부모님들 친하던 이웃들이 왜 사라졌었는지도.”

“그렇다면 넌 그냥 여기 있어.” 샘이 말했다.

“그 꼴로 어디를 가? 그리고 넌 여기서 나가는 즉시 녀석들의 정신감응 반응장치에 발각될 거야.”

샘은 아무 대꾸도 없이 분을 삭이지 못한 나머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난 괜찮아. 나의 작용은 미약한 편이니까 나가더라도 쉽게 찾을 순 없을 거야. 여기서 충분히 멀어진 이후에 놈들을 유인할 테니까 넌 이 콜벳으로 동굴에서 탈출해.”

“하지만 넌….”

“소캐 뭉태기가 대가리를 깨는 법이야. 할 수 있어.”

경식의 그 어느 때보다 단호히 말했다.

“그래 알았어. 대신 반드시 살아야 돼.”

“그럼, 당연하지. 정확히 20일뒤 개기일식 때 아카디아 타운홀의 정반대 지점에서 보자. 가본적은 없지만 지도에 의하면 여기와 비슷해서 충분히 안전할 거야. 행운을 빌어.”

“힘이 들더라도 절대 뭘 먹지마. 이유는 나도 몰라.”

이윽고 쉭하는 소리와 함께 경식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눅눅한 습기와 발을 적시는 검은 어둠의 손들은 한없이 경식을 지하세계로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환영일 뿐이다. 망상일 뿐이다. 고개를 흔들었다. 이를 악물었다. 경식은 우주선을 등지고 사력을 다해 내달렸다. 바닥은 몹시 미끄러웠고 곳곳이 돌 무더기로 패어있었다. 쉴 새 없이 넘어지는 통에 온몸이 아리고 피멍이 든 것 같았고 다리의 감각도 무뎌졌다. 어떻게든 이 동굴을 벗어나야 했다. 경식은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뛰고 그러다 지치면 걷고 또 뛰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랐다. 너무 낮은 기압에서 여압복도 없이는 무리었다. 사력을 다해 움직였지만 그는 점점 지쳐갔다. 머릿속은 멍했고, 어제 아무런 생각도 흘러나오지 못했다. 정신작용은 극도로 미약해졌다. 덕분에 놈들이 자신을 찾지는 못할 것이다. 그냥 이대로 영원히 잠들었으면, 결국 경식은 쓰러졌다.

아득한 시간이 흘렀다. 영겁의 시간과 같은 느낌. 긴 잠을 자는 존재.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었을 때. 커다란 식물 줄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먼데인 이다.

그는 드디어 땅 위로 올라온 것이다. 어떻게 올라 왔을까? 의아스럽지만 확실한 건 자신이 살아 있다 있다는 것이다. 아직 무사히…

그리고, 전자장치는 작동을 멈춘지 오래다. 낮은 기압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 이제 오직 모든 것을 정신 작용에 의지해야 한다. 한번 심호흡을 길게 하고 경식은 두 눈을 감았다. 여유로운 바람이 계속을 따라 흐르던 먼데인 숲을 떠올려 보았다. 바람결이 손가락 끝에 와닿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숲속의 요정이라도 있는 듯 향기로운 손길이 그를 간지럽혔다. 이따금 경식은 수백 미터 크레인에서 내려와 땅으로 내려서곤 했다. 그리고 고갤 들어 하늘을 보았던 때가 기억난다. 먼데인의 줄기와 고깔 같은 덩굴, 나선형 모양의 꽃과 열매가 탐스럽게 천정을 빽빽히 뒤덮고 있었다. 하늘은 겨우 손바닥만큼 보일락 말락 하였다. 위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손짓하는 듯 하였다.

그건 먼데인의 잎사귀들이었다. 그는 줄기에서 늘어진 덩굴이 어느새 그를 휘감더니 순식간에 위로 솟구쳤다. 그의 몸은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올랐다. 황홀한 향기가 그를 감쌌다. 탐스런 먼데인의 나선형 열매가 무르익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한입 배어 물어보라는 듯 그것은 가까이 왔다. 순간 너무 허기가 졌다. 너무 배가 고팠다. 한모금의 물이라도, 아니 조금이라도 무엇을 먹는다면 기운을 차릴 것만 같았다. 입을 벌린 순간, 벼락같은 소리가 메아리 쳤다.

‘힘이 들더라도 절대 뭘 먹지마. 이유는 나도 몰라.’

샘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결국 먼데인을 먹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미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경식은 그렇지 않았다. 왜 정착민들은 이 행성이 뒤덮이도록 오로지 먼데인만을 경작해 왔던 것일까. 어차피 람브린을 주민들이 다 먹을 수 없다. 그 많은 잉여 물량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여태껏 먼데인을 가득 싣고 화물 우주선이 날아 오르는 걸 여러 번 봤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늘어진 덩굴은 여전히 탐스런 먼데인의 나선 열매를 그의 눈앞에서 갸릉거리며 유혹하고 있다. 샘은 공중에 열매의 한부분을 콕 따서 한입 깨물었다.

맛을 보았다. 예전과 다르지는 않았다. 전혀 무엇인가 달라진 것이 없다. 어느덧 먼데인의 숲 지평선 사이로 자주색 태양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평화로 왔다. 향긋한 내음이 바람을 타고 흐른다. 맨얼굴 이 평화로운 순간, 그런데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리고 그는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곤 말없이 나아갔다.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순간 모든 돈오가 밀려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경식은 곧장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떴다. 그리고 그것이 또다시 열두 번 반복되었다. 다리는 잔뜩 젖었고 이미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고 굶주려 몰골은 메말라 있었지만 정신은 어느 때 보다 맑았다. 더 이상 배도 고프지 않았다.

이제야 모든 것을 알 것 같았다. 람브린 여기 저기에 아로새겨진 사람들의 흔적과 기억들을 경식은 읽을 수 있었다. 비록 그것들이 이미 누군가에 의해 갖추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어쩌면 그의 가족에 대한 기억들도 만들어져 준비된 것 들이라 할지라도, 이젠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왜냐하면, 애당초 람브린 착란 현상이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페르세우계의 태양은 태양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더 이상 먼데인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모든 식민행성 중에 람브린은 먼데인을 재배하기 위한 최적의 행성이었고, 정착민들의 정신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신비의 작물이었지만 바우타라는 안전장치가 없다면 한낱 공포에 찌든 야수로 돌변시킬 뿐이었다. 정착민 들은 주민이 아니라 이러한 정신 작용의 산물일 뿐이다.

여태껏 한번도 만나 본 적도 만나 볼 수도 없지만, 20세기 지구에는 니체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그가 철학자가 예언하길 ‘광야에서 철인이 오리라’. 그로부터 채 100년도 되지 않아 인류는 스스로 철인이 되는 법을 터득했었다. 먼데인이 트라피스트에서 발견된 것을 두고 신의 축복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이라는 누가 알았으랴. 지나친 인간 정신 작용의 확장은 철인들로 하여금 엄청난 파괴와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결국 철인들은 외딴 행성으로 유배되었다. 그것도 아주 지구로부터 멀리. 이제 그들의 정신을 가두는 바우타 따위의 철가면은 필요 없다. 포악한 환각열매를 맺는 먼데인은 그냥 감상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젠 경식에게 환각의 열매가 그의 정신을 흩트릴 수는 없다. 그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약물의 힘을 극복하게 된 것이다.

강력해진 경식의 정신작용은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도 포착되었다. 곧 하늘로부터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날카로운 모양의 비행선과 두더지 같이 생긴 비행 차량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어왔다.

경식이 떠나고 몇 일 동안 동굴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샘 카니지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엄청난 폭발 굉음 때문이었다. 아마도 람브린 전체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생전 처음 느낄 정도의 지축을 흔드는 진동. 샘은 저도 모르게 힘없이 탄식했다.

“아 경식아…솜 뭉치가 더 낫다더니….”


보름 + 6일뒤

먼데인 공급 보고 # 람브린 4861-12

몇 주전 람브린의 먼데인 비섭취 개체 발생 이주민클론 집단 LBR ZAS 17구역에 대한 조치가 성공적으로 완료됨. 개기일식 때 일부 실험 개체가 탈주하는 소동이 빚어 졌으나 집정관의 조치로 살처분 됨. 이후 새로운 몇 주에 걸쳐 새 이주민클론 집단이 배양될 예정임. 따라서 당분간 지구로 보낼 먼데인의 생산이 다소 차질을 빚을 예정이나, 전쟁을 위한 수급에는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판단됨.

일부는 반복되는 결함으로 클론 대신 로봇을 먼데인 채취에 투입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전자 장치들은 켄타우로스 인들에 의해 해킹되기 쉽고 람브린의 인간 클론들을 생물무기로 개발하는 당초의 목적이 희석될 수도 있어 향후 논의에서 제외키로함.

람브린은 양질의 먼데인이 지속적으로 군대에 공급 될 것을 약속드림. 인류가 켄타우로스 외계생명체와의 고스트전쟁에서 승리할 날을 기대하며. 끝.

전송완료

“모사 전송은 처음이야. 해보니까 재미있는걸.”

경식이 말했다.

“지구에서는 꿈도 못 꿀 거야. 우리가 살아있는지.”

샘 카니지가 대꾸했다.

“이제 너와 내가 아닌 ‘우리’는 람브린 주민 전체가 되겠지. 어쩌면 우린 지구와 길고 긴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모든 목숨은 고귀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 또한 한낱 적의 정신을 흩트리는 먼데인에 의지하여 비열하게 전쟁을 이기려는 지구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기도 하지.”

“그건 그렇고 몇 분 후면 개기일식이니 구경이나 하러 가자구.”

둘은 사이 좋게 타운홀로 향했다. 어디선가 코로나 라임의 도입부가 기분 좋게 흘러나왔다.


*작가 소개 : 이재호
40대 중반의 SF 매니아이자, 작지만 담대한 꿈을 그리고 싶어하며 살고 있다. 원래는 SF영화에 심취하여 직접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어 습작을 하다가 꿈속에서 필릭 K. 딕을 만나고나서(믿거나 말거나) 본격적으로 SF를 쓰기 시작했다. 필립 K.딕, 벤 보바, 아서 클라크, 하인라인 등의 SF작가와 코엘료, 레이먼드 카버, 제임스 조이스, 스캇 핏제럴드와 같은 작가를 좋아하며, 특이하면서도, 보편적이고, 재미있으면서도 긴 여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2007년 11월, KBS 이야기발전소 ‘여우누이’편에 출현한 이력이 있으며, 2011년과 2012년에는 Joy SF에 단편 「너를 위한 다이아몬드 릴리」 등을 기고한 바 있다. 전자책 『고래를 부르는 피리소리 래파람』, 『닥터 플로지스톤』 체험판 등을 출간하였으며, 2017년 2월에는 크로스로드에 단편 「기묘한 전설」을 게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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