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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드문 개들만이

이나경

1.

내가 처음 옴니션트에 관해 들은 것은 연초의 술자리에서였다.

우리 동아리에서는 매년 초에-정확히는 1월의 두 번째 주말에-선배고 후배고 할 것 없이 모여서 술을 마셨다. 누구든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만나서 축하하자는 것이 최초의 취지였다고 하나 그것은 내가 입학하기도 전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당선작과 심사평을 헐뜯고 조롱할 뿐인 볼썽사나운 모임으로 변질된 지 오래이다. 어차피 술을 마시기 위한 구실이니 아무려면 어떻겠냐만.

하여간 그런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정말 들어본 적도 없어요?”

소개한 사람은 2년 후배인 윤이었다. 녀석은 도무지 글을 쓸 것처럼은 안 생겼고 실제로도 전혀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동아리 활동은 누구 못지않게 열성적이었으므로 나는 녀석이 우리 중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지 않나 하고 의심하고 있었다. 윤이 누굴 좋아하든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멍청히 앉아서 게임 얘기나 들을 바에는 차라리 그런 쪽으로 관심이 기울어지는 것이었다.

“난 게임은 별로 흥미 없어서.”

“하지만 이게요, 단순한 게임이 아니거든요!”

윤이 목소리를 높였다.

“등단 작가 중에 옴니션트로 소설 쓴다는 사람이 제가 아는 것만 다섯이에요. 이쯤 되면 이건 동아리 차원에서 구입해줘야 마땅하다는 거죠.”

“소설을 쓰다니?”

“제 얘기 하나도 안 들었죠?”

“들었어. 그러니까 나사 출신 아무개가 개발한 앰비셔스라는 게임이 불세출의 걸작인데….”

“옴니션트.”

“그래, 그거. 근데 그게 소설을 써준다고?”

“엄밀히 말하면 소설로 옮겨 쓰는 건 각자의 몫이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니 그냥 사서 해봐요. 3만원도 안 하는데.”

“나 원, 그렇게 안일하게들 하니까 신춘문예가 이 지경이 된 거 아냐.”

“와, 내가 진짜 3만원 때문에 신춘문예가 욕먹을 줄은 몰랐다.”

“얼마인지가 문제가 아니야. 소싯적에 오규원 시인이 ‘프란츠 카프카’라는 시에서 말하기를….”

그 순간 윤이 세라를 힐끔 쳐다보았다. 나는 똑똑히 보았다. 찰나의 우연이라기에는 충분히 노골적이고 음흉하며 질척거리기까지 한 시선을.

“아하.”

“뭐가요?”

“뭐가?”

“아하, 라면서요.”

“아, 그게… 지금 막 뭔가 알았거든.”

“그러니까 뭐를요?”

“넌 몰라도 돼.”

“말 안 해줄 거면 게임이나 사요.”

“알았어, 알았어. 앰비언트라고 했지?”

“옴니션트!”

윤은 과장된 몸짓으로 가방을 뒤지더니 내 손바닥에 유성 펜으로 ‘옴니션트’라고 적어주었다. 나는 간지럼을 못 참고 그만 폭소했다.

뭐- 그렇게 호언장담했건만 나는 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지냈다. 계절이 바뀌고 바뀌어 마지막 학기가 시작됐을 때 나는 동아리방에 거의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딱히 바쁜 건 아니었지만 그냥 좀 시들해졌달까, 취업의 벽을 실감하느라 주눅이 들었달까.

그런 시기에 윤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 오랜만이다.”

“누나! 누나!”

“살살 말해도 들려. 웬일이야?”

“옴니션트 안 샀죠?”

“옴니… 으응, 아직.”

“그럴 줄 알았어. 그거 추석 마지막 날까지만 무료니까 당장 사서 해봐요. 전화 끊자마자 링크 보낼 테니까. 알았죠?”

“야, 이게 그렇게까지 권할 일인가 싶다.”

“우리 동아리에서 안 산 사람은 이제 누나밖에 없어요.”

“그러고 보니 너 회장 됐다며! 회장이랍시고 회원들한테 게임이나 강매하고 다니는 거야?”

“무료라니깐, 무료.”

“너도 참 징하다 징해.”

“누가 징하다고요?”

풍문에 따르면 윤과 세라는 교제 두 달여 만에 깔끔하게 결별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탈퇴한 건 세라였다. 나는 윤이 왜 동아리에 남아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2.

“게임의 목적이 뭐야? 뭘 해야 돼?”

“오오 드디어!”

“방금 켰는데 화면에 지구가 나오더니 빙빙 돌기만 해.”

“원래 처음에 세팅할 때는 좀 오래 걸려요. 그런데 그 전에 시대 고르는 거 있지 않았어요?”

“기준점이랑 시작점? 별 생각 없이 둘 다 2020년대로 골랐는데… 잘못했나?”

“아뇨, 잘했어요. 기준점은 실제의 지구를 얼마나 반영할지 설정하는 거예요. 2020년대를 골랐으면 2020년까지의 지구를 반영하는 거고. 시작점은 말 그대로 플레이할 시작점.”

“반영한다는 게 무슨 뜻이야?”

수화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예를 들어서 기준점으로 1600년대를 골랐다고 해봐요. 그럼 어쨌든 조선은 건국되었고 임진왜란도 발발했다는 얘기예요. 하지만 기준점 이후로는 독자적인 역사가 진행돼요. 일제강점기가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예상보다 일찍 올 수도 있고.”

“고생대를 고르면 아예 인류가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

“1세기부터 시작이에요. 처음엔 100년 단위로만 고를 수 있는데 19세기부터 10년 단위로 세밀하게 설정할 수 있어요.”

윤이 말했다.

“그런데 누나는 둘 다 2020년대를 골랐으니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랑 다른 점을 못 느낄 거예요. 통계상 이용자의 70%였나 80%였나가 2000년대 이후를 선택한대요. 아무래도 그게 리얼하니까.”

“흠…. 그래서? 이제 뭘 하면 되는데?”

“일단 지구가 다 돌 때까지 기다려야 돼요. 저도 처음에는 로딩만 12시간쯤 걸렸어요.”

“그렇게나 오래 걸려?”

“지구 나이 46억 년 따라잡는 데 12시간이면 선방한 거죠.”

“1세기부터 시작이라며.”

“뭐… 어쨌든 선방이잖아요. 하나님도 천지창조에 엿새나 걸렸는데.”

“알았어. 그래서 이게 뭐하는 게임인데?”

“쉽게 말해 이제 누나는 평행우주의 신이 되는 거예요. 게임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 수 있어요. 그저 현상만 보는 게 아니고 사람들의 생각이나 심리 상태나 꿈 내용 같은 것도 전부 다요. 전혀 어렵지 않고 클릭이랑 드래그만 할 줄 알면 돼요. 그렇게 삼라만상을 다 꿴 채로 뭘 하느냐면… 어린 백성을 굽어살피는 거예요.”

“어린 백성 누구?”

“아무나요. 이 사람들은 누나가 보든 말든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거든요. 이 중에서 누굴 관찰할지는 누나가 정하는 거예요. 아이의 진짜 아빠가 누구인지, 노부부가 조개 요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금목걸이가 십 년 전에는 누구의 목에 걸려 있었는지, 절름발이 소년이 지갑을 훔친 것과 세계대전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등등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니깐.”

“그것 말고는? 또 뭘 할 수 있어?”

“그냥 관찰하는 게 목적인 게임이에요.”

“왜, 착한 사람한테는 상을 주고 나쁜 사람한테는 벌을 준다든지….”

“안돼요. 아무 영향력도 없어요.”

“신이라며. 무슨 신이 그러냐.”

“신은 원래 그래요. 누나는 신이 인간사에 개입하는 거 본 적 있어요?”

“어… 에… 음….”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으나 이내 화제를 돌렸다.

“그럼 엔딩은 어떻게 보는데? 레벨은 어떻게 올리고?”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거예요. 남들은 어떻게 지내나, 무슨 재미난 일이라도 일어나나 하고요. 예전에 세라가 써온 단편 기억나요? 동물원에 온 네 사람 이야기.”

“앗! 그게 여기서 보고 쓴 거야? 나 그거 괜찮게 읽었는데. 디테일이 좋았어.”

“살짝 극적으로 각색하긴 했지만 옴니션트에서 힌트를 얻은 거예요. 이제 이해되죠? 잘 몰라도 막상 해보면 금방 알 거예요.”

“그런데 너는 고세라 얘기를 참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응? 아무렇지 않게 안 하면 어떻게 해요?”

“그냥 그렇다고.”

내 관할의 지구는 꼬박 하루를 돌아 다음날 오후 여덟 시에 회전을 멈추었다.

나는 화면이 지시하는 대로 클릭하며 관찰할 범위를 좁혀갔다. 검색어를 입력해 추천 목록을 띄우는 방법도 있었으나 그러는 대신에 나는 더듬더듬 지구본을 훑으며 내가 사는 동네를 찾아보았다. 현실에서처럼 변두리 동네의 소방서 옆 두 번째 골목의 세 번째 모퉁이에 2층 주택이 나타난다면 거기엔 과연 누가 살고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 집에서도 나를 닮은 인간이 졸업을 앞두고 전전긍긍하고 있을까? 그 사람도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게임을 서투르게 조작하고 있을까? 그 게임에서 자기네 집을 찾고 있을까?

마침내 내가 소방서를 찾아냈을 때, 이어서 두 번째 골목을 찾아내고, 다시 세 번째 모퉁이에 위치한 붉은 지붕의 2층 주택을 찾아냈을 때,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러니까 2020년의 데이터를 반영한 지구라면 응당 이렇게 생긴 집이 화면에 나타날 줄 알았으면서도,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전율하고 말았다. 우리 집이었다.

나는 허벅지에 땀을 닦은 뒤 신중히 마우스를 움직였다. 기대감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묘한 감정이 솟구쳐 심장이 쿵쾅거렸다. 심지어 창밖에서 누군가 내 방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에 고개를 돌려보기도 했다. 창 밖에는 물론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아마도.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 나는 이내 안도했다.

우리 집 대문 옆에 엉뚱한 이름이 쓰인 명패가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왠지 난처한 기분을 느끼며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현실 세계와의 차이점을 한 가지 더 발견했다. 평행우주의 우리 집 마당에 개가 있었던 것이다. 나도 한때는 무척 키우고 싶어했던,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현관 앞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이 집에 사는 식구들을 관찰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저 늙은 골든 리트리버를.

3.

12년 전 식목일에 고등학생 유정인은 집에 강아지 한 마리를 몰래 들였다. 친구네 개가 새끼를 낳았다길래 반쯤 농담으로 한 마리 달라고 했다가 진짜로 얻은 것이었다. 부모님 허락을 받기는커녕 본인 스스로도 전혀 각오가 없던 터라 사양할 생각이었으나 막상 눈앞에서 꼬물거리는 강아지를 보자 도저히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런데 정인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부부는 신혼 초에, 즉 정인이 태어나기 전에 잠시간 개를 기른 적이 있다. 초코라고 이름 붙인 갈색 푸들이었다. 초코는 그러나 뭘 잘못 먹은 탓인지 제때 접종하지 않은 탓인지 하여간 원인 모를-그러나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고열을 앓다가 사흘 만에 죽었다. 반년도 살지 못한 것이었다. 이후 부부는 절대로 개를 기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정인이 말을 꺼낸 것은 금요일 저녁이었다. 식사 중에 아들이 안절부절못하는 걸 못 본 체했던 부부는 방에 들어간 아들이 쭈뼛거리며 나와 운을 떼자 내심 긴장했다. 정인이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그들의 상상은 최악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든지, 불량배에게 용돈을 갈취당했다든지, 또래 친구를 임신시켰다든지….

“강아지 키우고 싶어서요…. 허락만 해주시면 공부는 더 열심히 할게요.”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허탈감에 미소가 지어지려는 걸 억지로 참고 있었다.

“갑자기 웬 강아지 타령이야?”

“친구네 개가 새끼를 낳은 걸 받아왔어요.”

“받아왔다고?”

“네. 잠깐만요!”

정인이 자기 방으로 뛰어가더니 잠시 후 강아지를 품에 넣은 채 달뜬 표정으로 조심조심 나왔다.

“그새 잠든 모양이에요. 얘 좀 보세요.”

일찍이 부부는 동물을 기르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초코 때 워낙 상심했기에 그 결심을 무너뜨릴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노란 털 뭉치가 꼼지락대는 걸 보자 본심과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밥은 줬니? 접종은 했고?”

어린 골든 리트리버는 그렇게 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곧 이름도 갖게 되었다.

“보리야.”

보리는 그게 자기를 부르는 소리임을 금세 깨우쳤다. 어디서 자기를 찾는 소리가 들릴라치면 꼬리부터 흔들어댔다. 영리한 아이였다.

어렸을 적에 녀석은 전신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온몸에 털이 무성하고 엉덩이 쪽에는 꼬리가 있으며, 주둥이가 길고 귀는 축 늘어진, 발 네 개를 모두 써서 걷는 자신을 보았다.

또한 보리는 다른 식구들도 면밀히 관찰했다. 그들은 몸이 위로 길쭉했고 걷는 발과 먹는 발을 구분했으며 날마다 다른 모양의 헝겊을 뒤집어썼다. 꼬리가 없었고 주둥이가 있어야 할 곳은 밋밋해 전반적으로 초라하고 궁상맞아 보이는 외양이었다. 각각 엄마와 아빠와 오빠라고 불리는 그들은 생김새가 조금씩 달랐지만 어쨌든 한 무리처럼 느껴졌다. 반면 보리는 자신이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와 오빠는 보리가 자기네 무리와 다르다는 점을 전혀 개의치 않아 했으므로 보리도 그에 대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보리의 몸집이 커짐에 따라 식구들은 마당에 새 집을 장만해주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집에 드나들 수 있게끔 현관을 조금씩 열어놓았으므로 보리는 내키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 집에 살면서 보리는 행복했다.

오빠가 떠난 건 보리가 세 살이 되던 해였다.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어 떠난 것이었으나 그런 사정을 보리는 알지 못했다. 다만 유난히 길고 진하게 포옹해주고 나간 오빠가 새아침이 밝도록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만 알았다. 전에도 하루나 이틀쯤 집을 비운 적이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이 지나도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보리는 낮이면 대문 옆에서 오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밤이면 오빠의 방을 서성거렸다. 날이 갈수록 오빠의 냄새가 희미해지고 있는데 다른 식구들이 아무 일도 없는 듯 지내는 게 의아하고 못마땅했다.

한참이 지나 불쑥 오빠가 돌아왔다. 보리는 대문 밖의 발소리를 듣고 오빠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빠다! 오빠 냄새다! 보리가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오빠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더운 날에 돌아온 오빠는 얼마간 머물다가 날이 선선해지자 다시 떠났다. 이번에도 보리를 유난스럽게 안아주었고, 그에 따라 보리도 어느 정도 이별을 각오했다. 전처럼 무방비가 아니었다. 이제는 기다리면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날이 추워지니 오빠가 다시 돌아왔다. 보리는 이번에도 대문에서부터 오빠를 반겼다. 짐을 한가득 가져온 오빠는 이번엔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떠났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 얼굴 위에 달린 털이 눈에 띄게 짧아졌고 웃음기도 덜했다.

떠나던 아침에 오빠는 보리를 끌어안고서 상냥한 음성으로 한참을 설명했다. 보리는 ‘보리’와 ‘오빠’ 외에 ‘기다려’, ‘착하게’, ‘엄마 아빠랑’ 같은 단어도 드문드문 알아들었다. 중요한 내용은 대체로 이해한 셈이었다. 여느 때처럼 부드러운 손길이 보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오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훈련소에서는 유정인의 죽음을 자살로 발표했다. 정인의 부모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오빠가 죽었으며 따라서 기다려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보리가 깨달은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에 앞서 보리가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한 것은 일곱 살 때의 가을로, 그날 보리는 아빠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다.

쉰여섯 번째 생일을 한 달여 앞둔 유장환은 그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이상을 느꼈다. 개천절이라 평소보다 늦게까지 잠을 잤는데도 개운하다는 느낌은커녕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침대에서 나올 적에는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두통에 잠시 비틀거리기도 했다.

영양제 한 줌을 입에 털어 넣고 한 잔 가득 냉수를 들이켠 뒤 어슬렁대던 그는 아내와 맞닥뜨렸다. 그녀는 교회에 가려고 구두를 신은 참이었다. 그가 시비조로 불평을 몇 마디 읊으니 아내는 진력을 내며 나갔다. 마당에 있던 보리가 장환을 대신해 아내를 배웅했다.

장환은 거실 창가에 놔둔 화분으로 눈을 돌렸다. 요사이 그의 최대 관심사는 난초였다. 아끼던 난이 며칠 전에 꽃을 피우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애지중지였다. 근래 바깥 공기가 부쩍 차가워졌는데 행여나 냉기가 스미어 잎이 상하지 않았을지 난엽을 슬쩍 건드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다고 뭘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통유리 너머로 보리가 고무공을 물어뜯으며 노는 게 보였다. 장환은 화분을 닦는 틈틈이 보리를 내려다보았다. 녀석도 시선을 느꼈는지 이따금 고개를 들어 장환을 쳐다보았다.

그는 재차 강한 두통을 느꼈다. 그 자신은 카페인 부족을 탓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기실 그것은 그를 영원히 침몰시킬 뇌졸중의 전조였다.

장환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러다 문득 아들을 떠올렸다.

허무하게 아들을 잃은 탓에, 슬프기도 했지만 지난날에 그는 무엇보다 화를 많이 냈었다. 한동안 술도 많이 마셨고 그 바람에 아내와도 소원해졌다. 그런 세월이 쌓이다보니 이제는 짜증이 나고 울화가 치밀 때면 도리어 아들 생각이 간절해졌다. 슬플 때는… 모르겠다. 오로지 슬프기만 했던 적이 있었던가.

장환은 부정한 생각을 떨치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의식을 잃기 전에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끼던 화분이 박살나고 난초가 짓뭉개지는 풍경이었다.

우당탕 소리가 들리자 보리는 반사적으로 등을 곧추세웠다. 소리가 난 곳에는 아빠가 누워 있었다. 보리는 아빠에게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하여 계단 위로 잽싸게 달려간 것까지는 좋았으나 얄궂게도 현관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는 유장환의 실책이었다. 최근 장환은 보리가 난초를 망칠 것을 우려해 현관을 잠가놓곤 했다.) 뭉툭한 발로는 아무리 긁어도 꿈쩍하지 않았다. 컹컹! 보리가 다급히 아빠를 불렀다. 컹컹컹!

점심쯤 엄마가 돌아와 사태를 파악하고는 정신없이 대처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들이닥친 몇몇 무리가 아빠를 어디론가 실어 갔고 엄마도 그들을 뒤따라갔다.

한바탕 광풍이 휘몰아친 뒤 보리는 집에 홀로 남겨졌다.

시간이 더디 갔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리도록 식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보리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했다. 단순히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것과는 달랐다. 아빠가 있던 자리에는 아빠 모양을 한 껍데기가 축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 속을 채우고 있던 알맹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빠가 떠난 것이다.

불현듯 아빠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예감이 보리의 뇌리를 강타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이튿날 점심에 헝클어진 몰골로 혼자 돌아왔다. 엄마는 보리의 밥을 챙겨주는 것도 잊고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보리는 엄마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보리의 눈가도 덩달아 촉촉해졌다.

이후로는 단조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배은실과 보리는 넓은 집에 둘만 있는 게 더 이상 어색하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다만 은실이 낮 동안 교회에 나가고 장을 보며 문화센터를 다니는 등 집을 비우는 때가 잦은 반면 보리는 은실이 산책을 데려갈 때에나 드물게 바깥 구경을 하곤 했다.

한때 보리는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였으나 이제는 노는 것도 귀찮아져 햇볕에 데워진 돌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하릴없이 눈알만 굴리는 시간이 늘었다. 그러고 있노라면 줄무늬 고양이가 담장을 타고 넘어오거나 참새가 마당에 내려앉거나 하며 심심치 않게 해주었다. 설령 손님이 없더라도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면 엄마는 곧 돌아왔다. 이 집에 둘만 남은 이래로 이를 어긴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어느덧 은실은 쉰일곱 살이 되었고 보리는 열세 살이 되었다. 둘은, 둘이기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그렇게 끝나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4.

누군가의 12년간의 삶을 훔쳐보는 동안 내 시간은 한 달이 훌쩍 넘게 흘렀다. 그렇다고 내내 모니터만 들여다본 건 아니었다. 취업지원센터에서 채용 정보를 모았고 자기소개서를 끝없이 수정했고 여기저기 서류를 제출했다. 서너 번 정도 면접관 앞에 서기도 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차도 마시고 술도 마셨다. 새벽에 잠들어 점심에 깨는 날이 많아졌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그래야 마땅했다.

마지막 학기가 그렇게 저물었다.

연말부터 나는 옴니션트를 하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 가상의 평화로운 노년을 지켜보는 일이 내게 위안이 되기보다는 고역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새해가 되어서는 실행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올해 새해 모임은 윤의 송별회이기도 했다. 보름 뒤에 동기 몇 명과 함께 입대한다고 했다. 나는 반쯤 강제로 모임에 불려나갔다. 겨우 몇 시간 지각했을 뿐인데 졸업생과 재학생과 기타 등등이 이미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이번에 소설 안 냈어요?”

윤이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그는 얼굴이 빨갰지만 혀가 꼬일 만큼 취하지는 않았다.

“쓰지도 않았어.”

“어, 옴니션트 하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본 얘기가 소설로 쓸 만한 건 아니더라고.”

“무슨 얘기였길래….”

“훈련소에서 죽은 남자 얘기. 너도 조심해. 세상에 그런 개죽음이 없더라.”

“갑자기 저한테 왜 이러시는….”

“무사히 다녀오라는 얘기야.”

보름 뒤 윤은 입대했다.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한 나는 궁여지책으로 졸업 유예를 선택했다.

이후로도 내 생활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졸업 유예란 말 그대로 유예일 뿐이어서 백수가 되기까지 기껏해야 한두 학기쯤 늦춘 것에 불과했다. 서글픈 와중에도 나는 스펙을 쌓고자 동분서주했다.

내가 옴니션트에 재차 관심을 갖기까지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여름밤 토익 학원에서 돌아오던 버스 맨 뒷좌석에서 나는 배은실과 보리의 안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가끔 그렇게 그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그게 심했다. 모처럼 메일함을 정리하던 중에 눈에 띄는 메일이 있었던 것이다.

제목부터 심금을 울렸다.

<보리 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보리, 양순한 반려견. 나는 강렬한 그리움을 느끼며 홀린 듯이 메일을 열어보았다. 물론 보리가 보낸 건 아니었다. 거기에는 나의 부재를 걱정하는 길고 의례적인 문구와 함께 ‘지난 60일 동안’이라고 쓰인, 옴니션트의 모바일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링크가 있었다.

링크를 따라가 로그인하니 영상 두 개가 내 계정에 등록돼 있었다. 내가 설정한 인물들의 최근 두 달 간의 행적을 녹화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윤이 해준 설명이 기억났다.

“일단 게임을 시작하면 기준점을 리셋하지 않는 한 중단할 수 없어요. 세계 일주를 떠난다든지, 군에 입대한다든지, 감옥에 갇힌다든지… 아무튼 도저히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없게 돼도 그러거나 말거나 게임 속 시간은 계속 흐른단 얘기예요.”

기본적으로 미접속시 게임에서 흐르는 시간은 실제 시간보다 열 배인지 열두 배인지가 빠르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윤은 덧붙였었다.

“실제 플레이와 별개로 60일치의 영상이 계정에 자동으로 저장돼요. 말하자면 블랙박스 같은 건데요, 단순한 동영상이라서 실제 게임을 조작하듯이 화면 각도를 바꾸거나 생각을 확인하는 건 안 돼요. 휴대폰으로 보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죠.”

“바쁘면 안 하는 거지 뭘 감지덕지씩이나 하면서….”

그렇게 콧방귀를 뀌었건만 그날 나는 자투리 시간에 그들을 만날 수 있다는 데 그야말로 감지덕지하고 말았으니, 이 사실을 윤이 알았으면 지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영상은 은실과 보리를 각각 관찰한 것이었다. 일찍이 나는 이 집 식구들을 모두 관심 인물로 지정했었다. 두 남자가 살아 있었다면 그들을 관찰한 영상도 존재했을 것이다.

집까지는 아직 열 정류장쯤 더 가야 했으므로 고민할 것 없이 보리의 영상을 재생했다.

날이 밝자 현관 앞에 웅크린 보리 모습이 나타났다. 그 자세로 꼼짝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던 보리는 점심 무렵에 은실이 외출할 때만 잠깐 주둥이를 쳐들었을 뿐 다시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날이 저물었다.

날이 밝았다. 보리가 현관 앞에 웅크려 있었다. 그대로 가만히 시간을 보내던 보리는 그림자가 짧아질 즈음 은실이 집을 나설 때 잠깐 주둥이를 쳐들어 관심을 보였다. 그런 뒤에 다시 원래대로 잠을 청했다. 그렇게 날이 어두워졌다.

날이 밝았다. 보리는 웅크려 있었다. 현관 앞이었다. 은실이 현관을 나와 대문으로 나갈 동안만 짧게 생기를 보였고 나머지 시간에는 만사 의욕 없는 모습으로 늘어져 있었다. 이윽고 주위가 캄캄해졌다. 하루가 또 저문 것이다.

“뭐야….”

60일 내내 그런 식이었다. 보리의 생활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단순해져 있었다. 일상이 너무나 비슷해 숫제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버스는 어느새 소방서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나는 골목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제 보리는 노쇠한 거야. 어쩌면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지.

대문을 들어서다가 나는 영상에서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매일 점심마다 외출했던 은실이 다시 이 대문을 통과해 들어오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돌아온 적이 없는데 어떻게 다음날 버젓이 외출했을까? 더구나 전날 입었던 것과 똑같은 차림으로 말이다.

5.

“엄마 금방 나갔다 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보리가 눈을 떴다.

엄마는 어제와 똑같은 차림이었다. 즉 오늘도 어제와 같은 날이라는 뜻이었다.

오래 전부터 보리는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다만 분명한 것은 보리가 눈치 채기 훨씬 전부터 하루가 반복되었으며 눈치 채고 나서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이변을 감지한 계기는 단순했다. 무심코 쳐다본 밥그릇 때문이었다. 기억하기로는 전날 밤에 밥그릇을 싹싹 비웠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다시 사료가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골아 떨어져 있느라 엄마가 밥 주는 걸 못 봤을 수도 있다. 그랬던 적이 전에도 종종 있었으니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보리는 전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었다. 사실 보리는 이런 일들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주변 일들에 일일이 신경을 쓰고 살기에는 너무 늙어버렸다. 이제 보리의 일과란 그저 따사로운 데서 명상에 잠겨 있는 게 전부였다. 따라서 밥그릇 따위는 눈여겨보지도 않았었다. 어쩌다 밥그릇에 눈길이 닿았어도, 엄마가 밥 주러 나온 줄도 몰랐네, 하고 스치듯 생각했을 뿐.

하지만 다음날에도 사료가 보충돼 있는 걸 봤을 때 보리는 ‘엄마가 밥 주러 나온 줄도 몰랐네’ 하고 가벼이 넘길 수 없었다. 그러는 대신 ‘어째서 밥이 있지?’ 하고 의문을 품었다.

어째서 밥이 있지?

이로써 보리의 정신은 세속으로 즉각 소환되었다. 의심이 한번 싹을 틔우니 그 다음부터는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수상쩍게 느껴졌다.

엄마가 집을 나서자 잠시 후에 빈 집에서 전화벨이 울렸고, 빙빙 맴돌던 잠자리가 날개를 펴고 층계참에 내려앉으면 곧 바깥 골목으로 요란한 차가 지나쳐 갔다. 동시에 고약한 냄새와 함께 하얀 연기가 마당으로 틈입했다.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에는 목청껏 누군가를 부르는 소년의 고함 소리가 들렸으며, 비슷한 시기에 멀리 흉측한 경적 소리도 들렸다. 휘파람 음률과 경쾌한 구둣발이 담장 가까이 다가왔다가 이내 멀어졌다. 어둠이 세상을 뒤덮으면 벌레들이 분주해졌다. 소리가 낮게 깔렸고 냄새는 진해졌다. 스산한 바람이 축축한 흙냄새를 실어왔다.

새로운 건 하나도 없었다. 모두 익히 아는 것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하루 전에 고스란히 겪은 일들이었다. 되풀이되는 풍경을 몇 날 며칠 동안 거듭 확인하고서야 보리는 신중히 결론을 내렸다.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인지라 퍽 기묘하긴 했으나 그냥 그뿐이었다. 보리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시간이 거슬러가기 전에도 이미 보리는 비슷한 일과를 답습하고 있었으니까. 오래 전부터 하루를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보리는 다시 현관 앞에 웅크린 채로 생각에 잠겼다. 많은 개들이 그러하듯 보리에게도 오래된 의문이 있었다.

나는 왜 사는 걸까?

아빠가 거죽만 남기고 사라진 사건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이후 보리는 줄곧 죽음을 의식했다.

왜 죽는가?

길고 긴 사색의 결과 보리는 스스로 답을 내렸다. 죽는 것은 태어났기 때문이다. 죽음이 끝이라면 그 시작은 탄생일 것이다. 탄생이 원인이고 죽음은 결과였다. 모든 존재는 죽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다. 적어도 보리가 본 바로는 그랬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 중간이었다.

일단 태어난 다음에는 그저 죽음을 기다리기만 할 뿐인가? 딱히 별 일 없으면 지금 당장 목숨을 끊어도 되지 않나? 도대체 다들 왜 살고 있는 거지? 무언가 이루어야 하나? 각자 맡은 역할이라도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내 역할은 뭐지?

나는 왜 사는 걸까?

보리는 죽음에 대해 골몰한 나머지 생의 목적을 묻기에 이르렀다. 일찍이 많은 반려견들이 이 질문을 던지는 데까지는 도달했다. (반면 야생의 개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시급했다.) 그러나 극히 드문 수의 개들만이 이에 대한 답을 얻었다.

보리도 그중 하나였다.

우연한 기회에 보리에게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하루를 살면 하루어치의 시간이 되감겼다. 고장 난 레코드처럼 시간은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맴돌았다. 이전까지 열두 해를 살았고 덤으로 열두 해쯤 더 살았다. (나중에 계산해본바 보리는 같은 하루를 정확히 5,766일간 반복했다.) 하지만 보리는 열세 살에서 조금도 노화하지 않았다.

이렇듯 불멸의 생을 누리게 되었건만 그럼에도 보리는 불멸보다 필멸을 믿는 편이었다. 언젠가는 껍데기만 남기고 사라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따라서 보리는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기존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썼다. 도대체 나는 왜 살지? 무엇 때문에?

오랜 묵상에 잠겼던 보리는 마침내 답을 내렸다.

삶이란 우연에 불과하고 목적도 의미도 없다. 다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일말의 목적이나 의미를 구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목적과 의미를 부여한들 그것은 거짓된 것이며 죽음에 이르는 동안 고통만 더해질 따름이다. 즉 이미 죽은 자들을 가련히 여길 게 아니라 아직 죽지 못한 우리 자신을 가련히 여겨야 마땅하다.

위와 같은 깨달음을 얻은 밤에 보리는 스스로 머리를 계단에 짓찧음으로써 지난했던 삶을 끝장냈다.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찬 행동했다. 뜨거운 피가 흐르고 의식이 몽롱해지는 동안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으나 그것은 착각일 터였다.

“엄마 금방 나갔다 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보리가 눈을 떴다.

엄마가 코앞에서 환영처럼 어룽거렸다. 엄마는 어제와 똑같은 차림이었다.

죽지 못한 것이다.

아니다. 확실히 죽었었다. 알맹이가 빠져나가는 감각이 아직도 생생했다. 하지만 시간이 되감기는 바람에 죽기 전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이어서 보리는 몇 번을 더 자해했고 그럴 때마다 멀쩡한-여전히 늙고 쇠약한-몸으로 부활했다. 이런 식이라면 결코 죽을 수 없다. 그렇다고 사는 것도 아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어느 흐릿한 점에 갇혀버렸다.

어째서 밥이 있지?

보리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지난밤에 안 들어왔는데 어떻게 여기 밥이 있을 수 있어?

“엄마 금방 나갔다 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보리는 자신의 처음으로 올바른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왜 돌아오지 않는 거지?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었으나 오랜 고민을 타개할 궁극의 답이기도 했다.

6.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길래 받아보니 윤이었다. 나흘짜리 포상휴가를 나왔다고 했다. 내가 밥을 사기로 하고 동아리 후배를 몇 명 더 데려가는 걸로 약속을 잡았는데 어쩌다보니 둘이서만 보게 되었다.

윤을 보자마자 나는 바짝 깎은 머리를 놀리긴 했지만 사실 별로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어색해진 것은 따로 있었다. 인상이 조금 날카로워졌고 말투도 왠지 낯설었던 것이다. 대화하는 중에도 윤은 주위를 곁눈질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취업한 줄 알았으면 더 비싼 데로 가자고 할 걸 그랬어요.”

“그럼 넌 내가 백수라고 생각하면서도 밥 사달라고 전화한 거야?”

“그나저나 남자친구 생겼다면서요?”

“말 돌리긴. 반년 됐어.”

“반년이면… 설마 사내 커플?”

“아냐. 초등학교 동창인데 여차저차해서 만난 거야.”

“제일 궁금한 부분을 여차저차라고 하면 어떡해요.”

“진짜 별 거 없어. 그보다 너는 어때? 이제 1년 남았지? 시간 참 빠르다.”

“그런 말 마요. 시간 안 가서 죽겠구만.”

“아.”

불현듯 얘깃거리가 떠올랐다.

“시간 얘기하니까 생각났다. 그 게임 말이야. 작년에 얼마간 방치했었거든. 한 반년쯤 쉬었나? 그러다 간만에 다시 해봤는데 이게 좀 이상해졌더라. 게임 속에서 하루가 계속 반복돼. 원래 안 하면 그렇게 되는 거야?”

“아뇨,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보는데…. 지금도 그래요?”

“몰라. 그때 한번 실행했다가 괜히 소름끼쳐서 다시 안 켜봤어. 그 뒤로 녹화 영상을 두어 번 보긴 했는데 계속 같은 날이더라고. 무슨 저주 받은 영상 보는 줄 알았어.”

“별일이네요.”

윤도 이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듯했으므로 그 대화는 그걸로 끝났다.

그것 말고도 할 얘기는 많았다. 우리는 지칠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윤은 나보다 동아리 근황을 훨씬 잘 알고 있었다. 선후배들의 온갖 소식을 전하던 그는 갑자기 제 풀에 진지해져서는 전역 후에도 동아리 활동을 계속할지 모르겠다고 선언했다. 그래도 소설은 한 편 써볼 생각이라고 덧붙이면서.

“제 옴니션트에서 지금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진행 중이거든요.”

“무슨 얘긴데?”

“초등학교 동창이랑 여차저차해서 만나는 얘기.”

“볼 것도 없이 해피엔딩이네.”

“방금 그건 농담이고…. 누나는 혹시 현실의 인물을 게임 속에서 찾았다면 믿겠어요?”

“누구? 나?”

“아니요. 다른 사람.”

“다른 사람 누구?”

“음, 다 쓰면 보여드릴게요.”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까다로운 독자야.”

우리는 시침이 10을 가리키기 전에 헤어졌다. 윤은 이제 곧 취침 시간이라며 연신 하품을 해댔다.

그래놓고는 자정이 지나 내게 전화했다. 화장을 지우고 침대에 막 누우려는 참이었다.

“누나! 누나!”

“이거 잠꼬대하는 거면 죽일 거야.”

“누나네 컴퓨터, 윈도우 버전이 몇이에요?”

“어… 몰라. 산 이후로 쭉 쓰고 있어.”

“언제 샀는데요?”

“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으아, 그럼 십 년도 넘었잖아! 검색해봤더니 이게 윈도 10 이전 버전에서는 버그가 있을 수 있대요. 그 버그가 뭐냐면….”

“다음날로 안 넘어가는 거?”

“그런데 이건 패치만 깔면 해결된대요. 홈페이지 자료실에 있을 거예요.”

“오, 찾아볼게.”

물론 곧바로 그러겠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눈가리개를 한 뒤 잠을 청했다. 그 일이 있고부터 일주일이 지났을 때 패치 생각이 났고, 다시 사흘이 지나서야 홈페이지 자료실을 뒤져보려는 의욕도 생겼다. 결국 열흘 만에 패치를 할 준비를 마친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패치에 성공하기까지는 그로부터 4년 하고도 6개월가량이 더 필요했다. 결코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반대로 아주 성실히 보낸 4년 6개월이었다.

패치하기로 마음먹은 날에 나는 귀갓길 버스에서 옴니션트에 접속했다. 별다른 기대 없이, 그저 마지막으로 녹화 영상을 확인해볼 셈이었다. 그런데 영상을 재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믿기지 않는 장면이 펼쳐졌다. 보리가 집 밖을 홀로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항상 무기력하게 엎드려 지내던 보리가.

나는 허둥지둥 날짜를 확인했다. 게임 속 하루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유독 보리만이 정해진 일과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휴대폰 화면에서 노쇠한 골든 리트리버는 예순 번의 하루를 다 다르게 보냈다. 도대체 어떻게? 새로운 버그일까?

나는 보리가 은실에게 들키지 않도록 먼발치에서 그녀를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은실은 집을 나와 지하철에 탑승했고 보리의 미행은 모조리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래도 보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끝없이 되풀이하며 은실의 행방을 찾으려 했다.

이렇듯 보리가 늙은 몸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뛰어다니는 데에는 확고부동한 목적이 있었다. 은실의 목숨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보리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배은실은 그날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이었다. 하루가 반복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윤은 옴니션트의 버그가 관심인물이 사망하는 날에 발동된다고 했었다.

나는 보리가 소명을 다할 때까지 패치를 미루기로 했다. 이대로 패치한다면 보리는 엄마가 없는 내일을 맞이할 터, 보리가 불의의 사고로부터 엄마를 구했을 때 그 보상으로 내일을 선사하고 싶었다. 무능한 신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게 기껏해야 그 정도뿐이었다.

나는 게임 진행 속도를 기존의 10배속에서 1배속으로 조정했다. 즉 현실과 동일하게 시간이 흐르도록 설정했다. 은실이 무사히 돌아와도 하루가 리셋되어 보리의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도록, 보리가 은실을 구하는 게 답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매일 자정 전에 녹화 영상을 확인했다.

보리가 임무를 완수하기까지 그러나 1,282일이나 걸릴 줄 누가 알았을까.

10배속이었으면 반년도 안 걸렸을 테지만, 보리가 고군분투하는 사이에 나는 직장을 옮겼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고 여차저차 결혼까지 해버렸다. 이듬해에는 아이도 낳았다. 앙증맞은 요크셔테리어도 한 마리 입양했다. 강아지에게는 싸리라고 이름 붙였다.

한편 보리는 사람들에게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보리에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주인 없는 개가 단독으로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상당한 제약이었다. 보리는 안전한 경로를 익히며 조금씩 은실과 가까워졌다. 보리 자신의 역량으로 은실에게 다가간 건 아니고, 정확히는 용무를 마치고 돌아온 은실이 오후 내내 동네를 서성이던 보리의 눈에 띈 것이었다.

어쨌든 보리는 적절한 때에 적절한 곳에서 은실을 발견했다. 그게 대략 1,100일째였다. 이때 나는 식구들이 깰 정도로 환호했었다.

그러자마자-환호가 무색하게도-태권도장의 노란색 승합차가 흉측한 경적 소리를 내더니(보리가 마당에서 줄곧 들어왔던 바로 그 경적 소리였다) 은실을 들이받았다. 미처 돌아볼 새도 없이 습격을 당한 엄마는 서늘한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날았다. 보리는 그러한 광경을 180번이나 지켜보았다. 엄마를 구하려는 180번의 시도가 모두 실패했다.

그래도 결국엔 성공했다.

성공하던 날 나는 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공했어! 보리가 성공했어!”

윤이 물었다.

“우리 딸? 보리 아직도 안 자?”

“뭔 소리야! 보리가 드디어 배은실을 살렸다고!”

7.

“엄마 금방 나갔다 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문이 닫히고 엄마의 발소리가 모퉁이를 돌아 멀어졌다. 이어서 행인 하나가 지나갔다.

골목이 안전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보리는 현관 계단에서 담장을 향해 힘껏 뛰었다. 가뿐히 뛰어넘으면 좋으련만 늘 조금씩 힘이 모자랐다. 담에 매달린 채로 뒷발을 한참 버둥거려야 겨우 넘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착지하는 데 요령이 생겨 절룩거리지 않게 되었다.

착지에 성공해서도 안심하기엔 일렀다. 보리는 납작 몸을 숙여 주차된 승용차 옆에 붙었다. 잠시 후 남자 두 명이 보리가 은신한 곁을 지나갔다. 뒤이어 자전거도 미끄러지듯 지나쳤다. 예전에 저 자전거 때문에 고생한 걸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졌다.

자, 다시 이동할 때가 됐다. 멍하니 있다간 차 주인이 차를 옮기러 올 테니까.

보리는 노련한 솜씨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무사히 의류수거함에 도달했다. 오랜 시간 이곳은 보리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간혹 지나치는 사람들은 보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소독차의 경로에서 비껴 있는 점이 좋았다. 보리는 여기 웅크린 채로 얼마간 숨을 골랐다.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었다. 소독차가 떠난 뒤 들리는 일곱 번째 발소리의 주인은 피해야 했다. 그 자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보리를 위협했다. 보리는 타이밍을 재다가 다시 이동했다.

그렇게 빌라 주차장과 학교 운동장과 아파트 화단 등등 인적이 드문 곳을 전전하니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쓰레기봉투를 뒤지던 생쥐가 보리의 기척에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이를 신호로 보리는 사거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보다 앞선 신호에 움직이면 사거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람들에게 가로막혔고, 그보다 뒤의 신호를 보고 움직이면… 너무 늦었다.

생쥐 신호도 완벽한 건 아니어서, 아무리 힘껏 달려도 제때 도착할 수 없었다. 엄마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변을 당할 때 보리는 그 맞은편에 있었다. 몸을 던져 엄마를 감싸려 해도 꼭 몇 걸음이 모자랐다. 즉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날 보리가 엄마를 구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사거리에 도달하기 전 언덕에서 보리는 허겁지겁 코너를 돌다가 뭔가를 밟아 미끄러졌다. 늙고 지친 몸이 관성을 못 이겨 차도를 구르던 순간 직선 도로에서 방심하고 있던 승용차 운전자는 불의의 사태에 침착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브레이크를 밟는 대신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버린 것이었다.

승용차는 중앙선을 침범했고 마주 오던 택시와 충돌했다. 입이 거친 두 운전자는 다행히 가벼운 부상만 입었다.

하지만 좁은 도로였던 탓에 체증이 발생해 차량들의 가늘고 긴 행렬이 언덕 아래 사거리까지 이어졌다. 이로 인해 태권도장의 승합차가 속력을 낼 기회는 사전에 차단당했으며 은실 또한 어떠한 위험에도 노출되지 않은 채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다만 그녀는 뒤따라오는 개를 보고 흠칫 놀랐다가 그게 자신의 반려견임을 알고 한 번 더 놀랐을 뿐이었다.

은실의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온 보리는 비로소 긴장이 풀려 탈진했다. 한때 삶의 목적도 의미도 부정했던 보리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살아왔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고자 엄마를 구하려 했던 의도는 퇴색했으며 이제는 그 대신 형언할 수 없는 충만감이 차올랐다.

어둠이 물러나 새아침이 밝았을 때 여전히 시간이 고여 있고 똑같은 하루를 재차 삼차 반복해야 한대도 상관없었다. 오늘 보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엄마를 구하겠노라고 맹세했다. 그러기 위한 삶이었다. 거짓된 목적일지라도 있는 편이 나았다.

보리는 실로 오랜만에 단잠을 이루었다.

반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늦게까지 회식하다 돌아온 윤을 붙들고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다정한 윤은 꾸벅꾸벅 졸면서도 내 말에 일일이 대꾸해주었다.

아침이 밝았다. 이제 보리는 더 이상 엄마를 찾아 애태우며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전과 다름없는, 그러나 엄연히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외출했다가도 날이 어두워지면 곧 돌아왔다. 둘만 남은 이래 그녀는-보리의 의견은 다르겠지만-한 차례도 이를 어긴 적이 없었다. 단조롭고 평온한 일상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보리와 은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결국 이렇게 끝날 이야기였던 것이다. ▧

댓글 3
  • No Profile
    심너울 18.09.01 11:18 댓글

    옴니션트 안에는 옴니션트를 돌리고 있는 사람이 있을테고 그 안에는 또 옴니션트를 돌리는 사람이 있을테고 그 안에는 또다른 보리가 있을테고..

  • 심너울님께
    No Profile
    글쓴이 이나경 18.09.02 09:52 댓글

    헉 그렇습니다 이는 극히 드문 수의 사람들만이 도달하는..

  • No Profile
    다대기 18.09.13 13:24 댓글

    개에게 '아주 많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의 이야기군요. 사람에게 저런 상황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보다 못한) 개가 주인공이 되어서 더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짜로 주인공과 윤 같은 저런 사이였다가 결국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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