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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6월 심사평

2023.07.15 00:0007.15

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23년 6월 1일부터 2023년 6월 30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 심사 기준을 만족한 작품 6편을 심사하였습니다.

 

2023년 6월의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은 아쉽게도 없습니다.

 

천가연 '종말 앞에서 인간은'
작가는 종말 앞에서 대비되는 두 개의 군상을 제시합니다. 생존을 모색하다 인간성마저 잃게 된 이들과 죽음을 직면한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 분투하는 이들. 충인과 반충인 단체, 신현재와 신미래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양단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살아남는 것이 곧 정의’라는 식의 적자생존 윤리를 완강하게 거부하며 타인의 위에 군림하며 살 바에는 차라리 타인의 곁에서 함께 죽자는 당돌한 전언을 독자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소설의 세부적인 짜임새에서 지나칠 수 없는 치명적인 의문과 딜레마가 발견됩니다. 피해자 서다은의 재판이 종말의 가능성으로 인해 연기되는 사태에 화자는 깊이 분노하며 시위에 나서는데, 저는 이 전개가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재난 앞에서 긴급 피난할 권리는 모든 인간에게 있습니다. 종말이 가능성일 뿐이더라도 가시적으로 그것이 다가오고 있다면, 공무원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근로자는, 노동을 중단하고 그들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돌아가 삶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피해자가 재판받을 권리가 이에 무조건 앞서므로 법원 공무원들이 종말의 가능성 앞에서도 정상 출근해 강제로 근로해야 한다는 화자의 논리는 한 편에 너무 치우쳐진 탓에 설득력을 잃습니다.
전반적으로 공감과 연민의 정서가 과하게 돌출된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유와 통찰을 통해 균형감을 찾는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윤이정 '사연'
미려한 문장과 빈틈없는 고증, 강렬한 서두에서 시작되어 미스터리 추리극의 분위기를 유지한 채 목가적이고도 낭만적인 연가로 이어지는 서사의 흐름에 압도당해 초반부를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토록 흡입력 있는 작품을 만난 것은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후보작으로 선정하지 못한 이유는 잘 세공된 외피에 반해 그렇지 못한 내부 구조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소설의 중심이 되는 월연과 강덕천의 서사가 상투성을 너무 강하게 띠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체 높은 남성의 기만적 사랑과 그에 배반당한 여성’의 이야기는 이미 많이 반복되어온 소재에 속합니다. 저는 <사연>이 이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나름의 독창성을 보여주기를 기대했으나 안타깝게도 기존의 장르 문학이 보여줬던 보법을 몰개성하게 답습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예컨대 기만적인 사랑이 들통나는 장면이 그러하였고, 강덕천이라는 반동 인물이 평면성과 전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그러하였습니다.
따라가기 벅찬 월연의 심리도 문제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좇는 현명하고 사려 깊은 월연’과 ‘가해자의 가족까지 연좌제를 씌워 복수 대상으로 삼는 월연’ 사이의 괴리가 상당해 복수극에 몰입하기 어려웠습니다. 더해 월연의 복수를 이루는 장치가 우연성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점은 개연성 면에서 지적하겠습니다. 어떤 복선조차 없이 후반부에 등장해 미스터리를 해소해내는 중국인 선원들과 투전꾼은 맥이 빠지는 추리극의 결말이었습니다. 투전꾼에게 내기를 부탁한 것만으로 강덕천이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을 자결시키고 자신마저 자결할 것이라 예상한 월연의 계획은 허술했고 그 허술한 계획이 절반 넘게 저절로 이뤄지는 후반부의 만듦새는 엉성했습니다. 결말에 쓰인 강덕천의 심리묘사와 구렁이로 환생한 월연의 복수는 부족한 개연성을 일부 확보해주지만 한편으로 오컬트 장르까지 끌어들인 탓에 소설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미스터리 추리극에서 시작해 비극적 로맨스로, 다시 추리극으로, 끝은 오컬트로 맺어지는 소설의 변주는 단편 분량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흐름이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쓴 작가분의 역량이 결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뛰어난 부분을 여럿 발견했습니다. 핍진성 높은 소설의 설정과 한 번씩 곱씹게 되는 인상적인 대사, 문학에 조예가 깊은 인용 들은 분명 만만치 않은 솜씨로 쓰인 흔적입니다. 세 가지 장르를 능숙하게 다루는 작가의 스펙트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한 편의 소설에서 이 장점을 전부 마주쳐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의 근본적 패착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작가의 장기가 난사되는 가운데 소설은 밀도를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렸습니다. 경장편으로 분량을 늘리시거나 내용을 조금 덜어내 이야기를 가볍게 하시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박낙타 '뱃속의 거지'
재기발랄한 입담이 매력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억제되지 않는 식욕 때문에 곤혹스러운 시기를 보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내용입니다. 식욕이라는 대상을 의인화해 재밌는 캐릭터로 만들어낸 상상력에 미소를 짓지 않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두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작품에서 느껴지는 다이어트 시술에 대한 위험한 낭만화였습니다. 이 작품이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한다는 식의 비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외모를 가꿀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문제가 그렇듯 정도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위험해집니다. 작품 속에서 ‘뱃속의 거지 제거 시술’은 거식증의 위험성과 약간의 미각 상실을 동반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현대 의학의 기준으로 본다면 꽤나 위험한 부작용들입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이 이 시술에 갖는 태도는 너무 태평스러워 읽는 내내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미 정상 체중인 민정이 꼭 이런 위험을 무릅쓰면서 체중 감량을 해야 했을까요. ‘건강하게 다이어트’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다소 철학적인 문제 제기입니다. 저는 이 작품의 후속작으로 다음과 같은 제목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눈꺼풀 속의 잠꾸러기>, <가슴 속의 음란마귀>, <머릿속의 ‘순간적 만족감 원숭이’(이는 유튜브 TED채널의 강의 ‘Tim Urban: Inside the mind of a master procrastinator 번역- 할 일을 미루는 사람들의 심리’에서 인용했습니다. 무척 재미있고 유익하며 다행히 한글 자막이 지원되니 안 보신 분들이라면 꼭 보시기를 강력 추천드립니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해보자면 이는 인간의 무의식계에 잠든 본능들인 셈인데, 식욕과 성욕, 수면욕, 기타 본능적 욕구들은 인간의 이성적인 삶을 방해하기는 하지만 분명 인간을 이루고 있는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런 감정적 욕구를 가지치기하듯 툭툭 잘라낸다면 과연 그 존재를 우리는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2003년에 개봉된 SF영화 <이퀼리브리엄>에서는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시민들에게 강제로 약을 먹어 ‘모든 사회 구성원의 감정을 억누르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등장합니다. 저는 <뱃속의 거지>를 다 읽고 이 디스토피아 떠올라 살짝 오싹했습니다. 인간의 본능과 합리적인 삶, 그리고 행복 사이에는 쉬이 단정 지을 수 없는 복잡한 철학적 문제가 있습니다.

유이현 '거짓말쟁이 여자'
일종의 서술 트릭을 통해 마지막에 반전을 꾀하고 있는 소설로 읽었습니다. 너무 파편화된 광경들만이 쭉 나열되어 있어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시놉시스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중간중간 서술된 설정이 풍부한 두께의 서사로 묘사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니그라토 '우주폭력배론 : 반복'
이것은 소설이 아닌 철학적 사유를 담은 수필처럼 보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제법 있지만 분량 사정상 줄이겠습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Ⅱ 헤겔과 마르크스- 칼.R.포퍼 지음 민음사 1998>의 마르크스 비판 부분으로 반론을 대신하겠습니다.

성훈 '빈 심장'
무척 난해하고 실험적이며 탐미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토머스 핀천이 쓴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미스터리 추리극을 보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엽편이라는 짧은 분량 때문에 이 소설을 충분히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다만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빈 심장’은 삶의 허무를 고백하며 사라진 아내가 잃어버린 생에 대한 의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남습니다.
관념과 현실, 환상과 실제가 무척 자연스럽게 뒤섞이고 초반부부터 발생한 특유의 파토스가 결말까지 꾸준한 밀도로 이어진다는 점은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종반부에 화자가 쏟아낸 고백은 감정 이입이 어려웠습니다. 화자는 아내가 ‘두 발’이며 ‘생의 지탱’이자 ‘지지대’라 서술하지만, 정작 작품 속 화자는 실종된 아내에 대해 시종일관 담담한 태도만을 보여줬고 두 사람에 대한 전사 역시 따로 제시되지 않아 이 감정의 도약은 감정의 비약처럼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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